.수새22.6.22 막9:25 믿음이란 본래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고, 순종으로 전적 은혜를 깨닫는 것, 자기 제한의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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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6.22 막9:25 믿음이란 본래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고, 순종으로 전적 은혜를 깨닫는 것, 자기 제한의 불신

관리1 1 94 06.22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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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2 수새
 
제목 : 믿음이란 본래 인간에게 달려 있지 않고, 순종으로 전적 은혜를 깨닫는 것, 자기 제한의 불신
 
찬송 : 87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 마가복음 9장 25절 -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 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인간으로 고칠 수 없는 것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귀신 문제는 절대로 주님 아니고는 아니 됩니다. 먼저 단정합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에베소 2장 1절. 이죄 저죄 할 것 없이 죄로 죽은 인간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너희를 살리셨도다” 영이 죽은 걸 살려 놓은 것 주님의 대속 사활의 대속으로만 되어 진 겁니다. 집 밖에 전선이 끊어져 버리면 스위치를 켜든 말든 또 전기 제품이 좋든 말든 전기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늘의 자연의 별빛을 보고 달빛의 신세는 져도 또는 바람이 세게 불면 선풍기 날개도 움직입니다. 그런 걸 보면서 어, 위치를 켜니까 선풍기가 돌아가는가? 또는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전기가 들어 왔는가? 이런 저런 착각은 있을 수 있습니다. 전선이 끊어져 버리면 스위치를 넣던 말든 전기제품이 좋든 말든 전기 혜택은 아예 없습니다.
 
죄로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전선이 끊어진 집과 같이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행위는 아예 죄밖에 없고 귀신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삽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동정을 할 때 안 믿는 사람도 그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구원의 기회를 주사 저렇게 마음이 밝아지며 옳은 일도 하지 않는가? 착각입니다. 귀신도 불교를 만들고 귀신도 유교를 만들고 유교와 불교와 철학과 도덕을 통해 귀신도 서로 돕자 하고 모범이 되자 그럽니다. 공산주의 북한에는 구제가 없겠습니까? 거기는 칭찬이 없겠습니까? 그 나라도 남을 위해 희생이 있고 도덕이 있고 모범이 있습니다. 하도 가난해져 그렇지 공산주의 초기의 국가는 자유자본주의 국가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건전합니다.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세계가 남녀 이성에 더럽고 경제에 더럽고 흉악하기가 맹수 소굴입니다. 어느 나라든 공산주의 처음 시작할 때 도덕적으로 인륜적으로 경제적으로 엄청 깨끗합니다. 배가 고파 놓으니 뒤에 엉망이 되는 겁니다. 공산주의 앞에는 성령이 인도하셨고 뒤에 엉망이 될 때는 악령이 들어가서 그런 겁니까? 처음부터 귀신입니다. 귀신이 꼭 거품을 내고 이렇게 사람을 뒤집는 일만 하는가? 별별 일을 다 합니다.
 
죄로 죽은 인간 그 마음이 어떻게 좋은 말을 하고 밝은 말을 하고 봉사를 하고 전 인류를 위하여 어떤 좋은 일 해도 그 속에 진리의 빛은 없습니다. 해결은 주님만 해결이지 영이 죽은 인간에게 해결은 없습니다. 중생이 되고 나면 이제 끊어진 외부 전선이 이어진 겁니다. 전선이 이어지든 말든 스위치 켜지 않으면 전선 끊어진 때와 꼭 같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면 합선될까 전기 코드를 다 빼고 그럽니다. 밖에서 전선을 이어놓아도 스위치 켜지 않으면 코드를 꽂지 않으면 중생이 되기 전이나 후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기가 켜지면 이 집 저 집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 집 저 집에 불 들어오는 모습은 별빛 달빛 다른 빛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내 마음에다대고 전선이 수리됐으니 불을 켜라 이렇게 마음을 자꾸 흔들어 댈 때 그때 마음이 순종을 하면 이제 불을 켜기 시작하는 겁니다. 코드를 꽂고 불을 켜도 전구가 터졌으면 외부 전선 복구했고 코드 꽂았고 스위치 켜도 여전히 아직까지 혜택은 못 봅니다. 밖에 전선 수리 되었고 코드 꽂고 스위치를 켰는데 여전히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이제 등을 교체해 보면 압니다. 이게 실행과 같습니다.
 
주님이라야 영을 중생시키고 중생된 영에게 순종을 할 때 마음이 깨달아지고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정신 차리고 깨달아도 몸이 악습에 버티면 여전히 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깨닫고 행하면 됩니다. 깨닫고 행하면 내가 깨닫고 내가 행하여 내가 이룬 것인가? 그게 아니고 마음이 깨달으려고 애를 쓸 때 다 불이 들어왔는데 내 마음에도 불 들어오면 좋겠다, 이렇게 애가 터질 때 내 마음을 지켜보고 주님이 마음을 열면 그때 깨달아집니다.
 
역순으로 내 마음이 진리를 좋아하고 옳은 걸 붙들고 내 마음이 귀신과 멀어졌으면 내 마음의 노력이 아니고 내 마음의 노력을 보시고 주님이 스위치를 켜준 겁니다. 스위치의 높이가 보통 아마 1미터나 될 겁니다. 우리 가슴 높이 이제 막 돌이 되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은 손을 올려도 1미터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아이가 스위치를 켠다고 자꾸 넘어져 가며 애를 쓸 때 그리고 불이 탁 들어왔으면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없는데 불이 들어왔으면 그 집에 어른이 켜준 겁니다. 아이만 쳐다보고 있으면 키가 작아도 저렇게 세 번, 네 번, 열 번을 노력하니까 불이 들어왔구나, 그 아이의 키를 몰라 그렇습니다. 아이가 켜려고 노력하는 걸 보고 어른이 켜주면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주변에 불 들어온 집을 보며 나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도 밝게 살아봤으면 좋겠다, 나도 하나님과 천국의 소망 속에 살아보면 좋겠다, 내 마음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영이 준 마음이고 영이 주는 마음에 내가 순종을 할 때 나의 순종의 힘이, 순종의 걸음이 내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발버둥을 칠 때 그 마음을 성령이 지켜보시다가 그만하면 애썼다, 그만하면 잘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주님이 스위치를 켜주는 것처럼 드디어 내 마음에 구름을 걷어버리고 밝혀주시면 깨달아집니다.
 
나는 성령의 역사는 결과만 보고 알고 나는 내 마음을 잘 아니까 내가 성경을 이렇게 읽으며 막 연구를 하다 보니까 이게 깨달아졌다 그러는데 바르게 깨달아졌으면 주님이 열어준 겁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받을 수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은 불교의 진리는 석가도 깨달으면 깨닫는 거고 석가의 제자 중에 석가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은 것도 발전시키고 그럽니다. 백 년 전에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을 때 네 바퀴 달고 겨우 그냥 가는 정도인데 지금은 로켓을 쏘고 그러지 않습니까? 처음 발명한 사람 발명에다 대고 첫 발명의 지식을 넘어가는 사람은 개선을 해서 더 발전을 시키고 나중에는 자동차가 날아가는 자동차가 되고 나중에는 로켓이 되고 그러는 겁니다.
 
불교 유교 철학 도덕 인간의 모든 발전은 더 나은 사람이 태어나면 더 나은 걸 말을 하고 앞사람이 수고해 놓은데 뒷사람이 또 하나를 더 붙이면 더 좋아지고 성경 진리의 세계, 구원의 세계 악령과 싸워 이기고 귀신으로부터 벗어나고 구원의 바른 길을 걸어가는 이 길은 사도 바울이 신약의 첫 길을 열고 제자들이 그 다음을 덧붙이고 그 다음을 덧붙이고 그렇게 교리가 2천년 발전되어 왔습니다. 이걸 다른 종교처럼 과학처럼 다른 기술처럼 쌓아놓은 기초 위에 올리고 올려서 마지막에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느냐, 똑같이 보이는데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거는 귀신이 철저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공중의 권세 잡은 귀신 세상의 임금이라 하신 그 악령이 철학 종교 과학 다른 것은 다 발전하도록 밀어주고 조절하고 끌고 있지만은 진리의 말씀으로 깨닫고 발전되어 가는 이 세계는 필사적으로 막기 때문에 만약에 진리의 세계에 발전이 있다면 내 마음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옳고 바른 깨달음을 바르게 깨달았다면 인간은 깨달아보려고 애를 태웠을 뿐이고 일으켜 세우고 열어젖히고 끌어주신 주님만이 하신 일입니다.
 
귀 먹고 벙어리 귀신, 이걸 데리고 왔는데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오니까 이 아이만 귀신 들린 줄 압니다. 아버지는 귀신 들린 사람 아닙니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닙니까? 전부 귀신들인데. 공자 석가는 천국 가지 않았겠냐? 이 소리 하는데 그 귀신 중에 꼭대기 귀신들인데 지옥을 가도 지옥 밑바닥에 갔을 건데 거지 동냥을 주면 거지는 귀신이 들렸고 동냥 주는 사람은 귀신 없는 사람인 줄 압니다. 그거나그거나 똑같은데 주님의 은혜로 순간순간 붙들어주지 않으면 인간은 늘 귀신에게 붙들려 있다는 거 내가 말씀에 내 마음을 밝히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나도 귀신에게 붙들려 있다는 거 그 귀신이 부부의 사랑도 주고 자녀 교육도 주고 온 가족 손잡고 나들이도 하고 이웃도 돕고 동네 칭찬도 받고 온 인류의 존경도 받고 빛도 되고 영광도 누리고 다 그럽니다. 귀신도 알 거 다 압니다. 진리 깨닫는 것만 못하지. 진리를 깨닫고 자기를 고치는 걸 못 하지. 어떤 마음이든 어떤 행위든 성령에 붙들려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자기를 고치는 것은 어떤 순간도 전적 은혜고 주님만 하십니다.
 
오늘 아침 믿는다고 노력하는 모든 노력에 새벽 기도를 나오려고 일어나고 애를 쓰는 것은 우리가 해도 이 자리까지 데리고 오신 분은 주님이시고 준비한 설교를 하려는 것은 나지만 준비한 설교가 은혜롭게 전해졌다면 그것은 주님 하신 일이고 어려운데 나와서 듣고 깨닫기를 원했다면 원하는 것은 우리고 애쓰는 것은 우리인데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행해지는 것은 전부 다 귀신을 쫓아낸 것이니 그는 중생되어도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 직접 하는 겁니다. 만사 주의 은혜다, 기억하고 이게 중요한 것은 저 정도 일은 내가 못하겠는데 뭐 새벽 예배 오고 설교하고 이런 예배당 운영하는 거는 우리가 하지만은 코로나에 예배를 계속 드리는 것은 그건 우리가 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화가 나서 온 나라를 이 잡듯이 잡는데 아이쿠, 그거 우리가 하겠는가? 미리 포기를 해버리면 그건 자진해서 귀신의 교회가 된 겁니다. 못 하겠는데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하고 이게 우리입니다. 온 나라가 막든 말든 노력은 우리가 하고 그래서 모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모여졌고 막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노력하니까 막히지 않았구나, 그게 아니라 우리는 노력했고 우리는 했습니다. 그런데 되어 진 걸 보니까 주님이 하셨구나, 이 교리를 알고 이 성경을 아는 사람은 말씀으로 해야 되겠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 맞겠다. 할 때는 무조건 주저 없이 해봅니다. 노력은 하고 시도하고 해봅니다. 소망은 놓치지 않습니다. 되어 지면 주님의 은혜다. 안 되어지면 주님이 아직은 막는구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천지차이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볼 때 저건 할 만한데? 하고 된 것은 인간의 힘이지 주의 힘이 아닙니다. 안 될 것은 아예 안 하고, 막혀 그런 것이 아니고 제가 막은 겁니다. 믿는 사람은 할 만하면 하면서 주님이 해줘야 됩니다. 되고 나니까 주의 은혜입니다. 이거는 인간으로 못 합니다. 그러나 해야 되기 때문에 합니다. 되고 나면 그것도 은혜입니다. 중요한 말씀 마지막에 기억하십시다.
 
 
1차-김현숙

Comments

메모 06.22 15:00
(성경 신학/ 조직 신학)
죄 문제는 그 배후에 악령이 있으니, 세상 다른 일과 달리 주님 없이 인간 단독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한다.
심신의 성화는 우리가 주님께 순종함으로 말씀으로 살아 변화 되고 이 과정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한다.
말씀으로 살아 심신이 변화 되고, 그 과정에 인간이 할 수 있든 없든 발생한 일은 전부 하나님의 능력이다.

내가 해서 된 것이 있다면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주님이 직접 해 주셔서 된 것만 심신의 성화가 된다.
하면 된다고 시도했을 뿐이고 주님과 상관 없이 성공한 것이 있다면 인간이 한 것이니 성화와 상관이 없다.

내가 노력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내가 노력을 했는데도 주님의 도움이 없어서 안 된 것이다.
할 수 없다면서 아예 시작하지 않아서 안 된 것은 못할 것이라 안 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서 안 된 것이다.

성경과 교리 따라서 '소망'과 '믿음'의 세계에서는 이 교리 이 말씀 때문에 우리의 자세와 노력은 달라 진다.
사람이 볼 때 절대 안 되는 일이라도 우리는 주님 앞에 해야 할 일이면 끝까지 해야 한다. 주님 때문에 한다.
그렇게 해서 된 것은 주님이 필요가 있어 해 주신 것이고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충성을 했으니 결과는 같다.
세상은 결과가 중요하고 우리는 시작과 그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는 주님께 맡길 때 비로소 소망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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