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6.21 막9:24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와 순종의 믿음은 하나, 자기 부인하여 주님만 모시기 위한 단일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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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6.21 막9:24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와 순종의 믿음은 하나, 자기 부인하여 주님만 모시기 위한 단일 목적

관리1 0 89 2022.06.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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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1 화새
 
제목 : 주님의 뜻을 찾는 기도와 순종의 믿음은 하나, 자기 부인하여 주님만 모시기 위한 단일 목적
 
찬송 : 120장(주와 같이 가게 됨은)
 
본문 : 마가복음 9장 24절 -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도와주소서” 좀 모자라니 보태주소서 라는 말이 아니라 했습니다. 믿음 없는 것을 주님 따르는 것만 믿음이고 주님과 다른, 주님 없는 그리고 내 주관 인간의 노력이 원인 된 것은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도와주소서” 이 말이 나오도록 주님이 이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을 찾아올 때 일부러 이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우연으로 얽혀 돌아간다 보지만은 시공을 초월한 완전자 하나님은 미래와 과거와 현재가 늘 동일합니다. 높은 산에 제자 셋을 데리고 올라가시고 아홉은 무리 가운데 남겨두시고 그럴 때에 귀신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데려오도록 모든 것은 정확하게 순서를 맞추시고 일정을 맞추시고 그렇게 인도해 가는 것이지 우연히 발생한 일을 성경에 기록하고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 전 예정된 사건들, 그리고 정확무오하게 운영되는 모든 섭리들, 그 안에서 기록할 것은 기록하시고 기록하지 않을 것은 일부러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마태라는 제자는 이렇게 적고 마가라는 제자는 저렇게 적은 것이 아니라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 방면에서 이렇게 간추려 이렇게 적어져야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우리를 가르칠 그런 필요 그런 요건이 되어 지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 높은 산에 올라가실 때 여기 아비가 아이를 데리고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주님 없을 때 사건은 시작을 했고 그래서 아홉 명의 제자들 있는 데서 문제가 발생을 했고 무리들이 있고 서기관이 있고 제자 아홉이 있어도 못 고치는 이 일이 먼저 전개가 차례로 되어 지고 그다음, 서기관들과 제자들의 논쟁이 벌어지고 네 선생님이 귀신 들린 사람을 제정신 차리게 했다는 것이 정말이냐? 정말이다. 무리들에게 물어봐라. 오해가 아니냐? 정말이면 선생님이 하면 제자들도 해야 제자인데 너희들은 왜 못 하느냐? 이런저런 여러 가지 변론 토론이 있었던 것은 지금도 신앙으로 바로 믿어보려고 하면 언제든지 다 있는 그런 일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게 되자 아이의 아버지가 주님을 보고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리고 또 주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라, 탄식하시고 그리고 또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한 걸음 더 나왔으나 할 수 있거든 도와주고 못 하면 할 수 없이 돌아가겠습니다. 네 기준에서 보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할 것 같다. 그 기준 시각을 내버려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사람 되어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으니 이건 되는 거다. 주님이 해주시면 100% 되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아이의 아버지의 입에서 “내가 믿나이다” 저는 따르겠나이다. 제 주관, 인간적인 계산 할 수 있거든 도와주시고 그런데 할 수 있을까? 사람이 본 가능성 사람의 계산 사람의 표현 인간에 속한 것은 전부 다, 다 제거를 해버려라 없애버려라. “내가 믿나이다” 내 생각 내 주관 내 기준 내 판단 인간에게 속한 것은 모두를 다 버렸나이다, 이제 주님이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필 여기 “도와주소서” 였습니다. 주님이 하면 됩니다, 해라 가 아닙니다. 또 기다리는 겁니다. 그래도 도와주소서 말이 좀 약화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단계별로 데려가시고 길러 가시는 자유성의 성장의 과정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 아버지가 완전히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이 고치십니다. 28절 “제자들이 종용히” 조용히 입니다.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다른 사람들을 고쳤을 때는 믿음이 없어 그렇다,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믿음으로만 답변을 하셨는데 여기서는 23절에서는 “믿는 자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믿음을 말씀해 놓고 마지막에는 “기도 외에는” 마지막에는 기도라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냐? 밥 세끼 잘 먹으면 건강하다, 똑같은 입으로 잠 잘 자면 건강하다, 또 운동을 해야 건강하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건강하다, 밥만 먹으면 운동을 안 해도 스트레스를 받아도 잠을 안자도 건강하겠는가? 똑같이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은 입이 까다로운 사람한테는 고루고루 먹어라 그러는 거고 일이 바빠 잠을 못 자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자면서 생활해라 그러는 거고 성격이 뭐 같은 사람한테는 마음씨를 말하는 것이지 이건 맞고 저건 틀리고 그런 게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이 뭘까? 찾는 것이 기도의 첫 단계고 주의 뜻을 발견한 다음에는 이대로 이루어지리다, 이게 기도입니다. 주님이야 뭔 생각하든 말든 내 멋대로 말을 하고 그다음에는 이거 이루라고 억지를 부리는 거는 우리끼리는 기도고 주님 앞에는 그거 기도입니까? 그게? 횡포지. 억지지. 어리면 억지라도 봐주지만은 억지를 부려 안 되는 나이에 억지 부리면 그건 쥐어 박히는 겁니다.
 
앞에서 믿음을 두고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믿음 인간적인 믿음 인간의 계산이 들어간 믿음 인간이 출발한 모든 것은 다 빼버리고 주의 뜻 찾아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다 그럼 기도는?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주의 뜻 찾아 순종하는 것 그걸 믿음이라 합니다. 그걸 기도라 합니다. 왜 이런 현실을 주셨을까? 현재가 이러니 앞으로는 어떤 현실을 주실 것인가? 왜 이렇게 만드셨는가? 아니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런가? 운영하는 분이 주님이시니 내 마음이 주의 뜻을 찾아보고 발견하면 그다음 그 뜻에 맞추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소원 내 의지 내 주관 내 뜻을 주님 앞에 들이밀고 아, 도장 찍으시라, 이거 해내시라, 이거 요구고 그거는 기도가 아니라 강요고 강매인데 하나님을 상대로 강요해가지고 될 일입니까? 그게 믿음이겠습니까?
 
바른 믿음과 바른 기도는 하나입니다. 주의 뜻을 무엇인지 찾는 쪽을 강조하면 기도가 되고 어떻게 해야 나를 부인하고 따라갈까? 순종을 강조하면 믿음이라 그럽니다. 믿음의 기도 이게 바른 기도고 그다음, 기도로 바로 믿고 따라가는 기도의 믿음, 믿음의 기도 앞이나 뒤나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도 또 각자 가지고 있는 과제도 또 우리 함께 다 같이 과제로 숙제로 가지고 있는 문제도 어떤 문제든지 내 생각 내 주관 세상 상식 어쨌든지 이걸 빼고 이걸 버리는 것이 우리 노력이라야 되고 모든 현실을 우리에게 조절해 주시는 것은 마지막에는 내 속에 날 부인하도록 날 뽑도록 날 부인하고 뽑은 자리에 주님을 모시도록 이거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은 하는 겁니다. 군인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저녁에 자는 시간 휴식시간 일반 시간 훈련 받는 거 전부는 민간인 하나를 군인답게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이 목적 하나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래야 정상인 것처럼 모든 초, 중, 고등학교의 공부는 대학 입학에 맞춰져 있고 초, 중, 고, 대학까지의 모든 공부는 사회 속에 혼자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될는지에 대한 지식과 적응을 향하는 것처럼 세상을 만든 것도 오늘까지 운영한 것도 내 주변의 환경이 이런 것도 또 앞으로도 하나님 닮는 사람, 하나님 닮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형상과 같아져야 되지 하나님은 이렇습니까? 전 이렇습니다. 그건 개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깨버리는 파괴입니다. 세상과 내 현실과 하나님의 모든 인도가 하나님을 따라 닮도록 만들어져 놨는데 여기서 이탈이 되는 거는 낭떠러지 떨어지는 이거는 잘못된 겁니다.
 
이아침, 넓게 하나님의 인도의 방향과 성격을 살펴 이쪽으로 생각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마음을 다 거기다 대고 맞춰버리면 이렇게 좋은 세상 감사할 것밖에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밖에 없고 하나님의 뜻 잠깐 제쳐놓고 나는 이렇다, 이래야 된다. 이게 강한 만큼 지금 시온의 반석이신 주님의 바위하고 박치기를 하는 겁니다. “나는 시온의 반석이다 내게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바위 위에 들이받으면 깨지지 다른 건 없습니다. 자꾸 떨어지면 소원대로 해주신다고 바위가 그 사람 위에 떨어져 버립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8월 집회 준비를 위하여, 또 공회적으로 추진하는 이런 저런 일을 위하여 우린 이걸 목표로 삼았으니 무조건 밀고 갑니다, 이런 거 없습니다. 이러고 저러니 주님이 이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주의 소원이면 주의 뜻이면 그리고 주의 명령이면 저희들이 성실하게 있는 힘 다하여 따라갑니다. 따라가다가 우리가 잘못 생각했구나, 막히면 당연히 또 고치는 것이 회개니까 바꾸는 것이고 뜻은 분명히 맞는데 우리가 힘을 다하지 않았을 때는 기다리며 또 힘을 보태는 거고 아무리 노력해도 대기로 만드시면 주님이 열 때까지 출애굽을 400년 기다린 이스라엘처럼, 40년 기다린 모세처럼, 13년 기다린 요셉처럼 일에 따라 하나님의 순서에 따라 뜻을 찾고 있는 힘 다하여 따라가고 그다음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만사를 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마음도 편하고 만사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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