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6.15 막9:17 문제를 알아 본 아버지, 우리는 주님 외에 해결 없는 귀신 문제를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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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6.15 막9:17 문제를 알아 본 아버지, 우리는 주님 외에 해결 없는 귀신 문제를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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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5 수밤
 
제목 : 문제를 알아 본 아버지, 우리는 주님 외에 해결 없는 귀신 문제를 아는지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마가복음 9장 17절 -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 밤도 간곡하게 주님께 부르짖는 우리들의 마음 애절한 간구가 있도록, 마음마음 붙드시고 시대인하여 저희들의 부족인하여, 주님 아니고 해결이 없는 만사를 보며 어려도 또 주님 앞에 설날이 가까워도, 신앙의 용맹한 때를 가졌을지라도 아직 신앙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할지라도, 병원에서 요양 중에서도 군무에서도 해외에서도, 만사가 자기 뜻대로 잘되어질지라도 또 만사가 어려울지라도, 주님 앞에 간절하게 애절하게 긍휼을 구하는 이 시간 되고, 주님만이 열어주시며 우리는 받아 따라가는 주의제자 됨을 기억하는 이 시간 되게 해주옵소서. 사모하고 준비하는 8월의 집회위에 함께하시고, 이 밤도 예배로 오고가는 모든 걸음걸음 안전하게 지켜주시며, 곳곳마다 두신 주의 종들에게 시대와 자신을 놓고 기도하며 함께하는 이 시간 되게 해주옵소서. 교회 위하여 몇몇 사업을 진행하고 있사오니 우리는 찾아보고 충성하며, 주님은 열고 닫는 능력의 주님이시니 주의 뜻을 찾아가며 순종하는 모든 걸음 되게 해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주일 이후 오늘 새벽까지 이어진 말씀 간단간단하게 요약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문제는 이거는 난치가 아니고 불치입니다. 난치병과 불치병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까다로우면 난치라 그럽니다. 아예 고칠 수가 없으면 불치라 그럽니다. 다른 고장이면 해결이 있는데 인간 위에 있는 귀신이 딱 붙은 이 귀신들린 아이의 병은, 이건 인간으로서는 불치입니다. 해결 못할 난제였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이 모여 모두들 수근 거렸고 성경을 아는 서기관들이, 뭐 아무리 말을 하고 연구해봐야 이 사람들은 길을 모릅니다. 주님만 해결인데 주님을 모르니 성경 알아봐야 귀신 쫓아내는 방법을 모릅니다. 무리들과 제사장들은 알지 못하니 무지라고 그럽니다. 모르면 무지, 모르면 무지. 근데 제자들은 주님이 낫게 할 줄을 압니다. 알기는 압니다. 자기들은 낫게 하지를 못합니다. 제자들은 알기는 아는데 고칠 줄을 모르니 무능이라고 그럽니다. 무지는 아예 모르는 것, 무능은 아는데 고칠 줄을 모르는 것이 여기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병은 귀신들린 병이라. 귀신들려도 그냥 두면 넘어갈 수가 있는 것인가? 추악하여 경련하지 입에 거품 물지, 이거 뭐 모두들 그냥 제 정신이 아닙니다. 치료는 주님만 했습니다. 오늘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돈으로 하면 됩니다. 기술로 하는 문제 기술이면 됩니다. 뭐든지 하면 되는 게 있습니다. 인간과 과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라고 맡겨 놨기 때문에 되는 겁니다.
 
귀신들린 이 아이의 문제는 과학, 인간, 돈 뭘 다 동원해도 이거는 안 됩니다. 안 되도록 하나님이 딱 막아 놓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되느냐? 주님만으로 해결입니다. 주님만으로 해결. 그래서 여기 17절에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방향은 바로 찾았습니다. 절 간다고 되는 것 아니고 병원 가서 해결할 문제 아니고 학교 가서 해결할 문제 아니고, 교도소 한 번 다녀온다고 해결되는 것 아니고 귀신들린 문제.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멀쩡한 사람을 뒤집어 버리고 좋은 속을 뒤집어 거품이 나오고, 이걸로 가지고 보이면서 신약 오늘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지어놓은 원래의 모습 이게 깨끗입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인격과 생활이 깨끗한 겁니다. 이거 전부를 뒤집어 놓는 것은 죄가 들어가면 그리되어집니다. 죄의 모습을 가르친 겁니다. 이 아이의 이 난리에 배우는 귀신입니다. 이 아이와 같은 건강문제는 우리가 없습니다. 뭐 가끔 동네마다 있다 해도 병원에서 약 하나면 다 치료해 버립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 없는 기록인가? 성경에 기록했을 때는 모든 사람에게 늘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러면 뇌를 다쳐 경련 일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는 순간 모든 사람의 모든 문제입니다.
 
그러면 죄에 경련을 말하는구나. 배후에는 귀신이고 앞에는 죄고, 죄를 짓게 만들면 죄의 주인 귀신이 장악을 합니다. 그리고 죄를 지면 죄에 붙들린 그 사람은, 거꾸러져야 되고 굴러야 되고 그다음 속에 있는 것이 들끓으며 제 정신없이 나와야 되는 것이고, 주변 모든 사람들을 다 뒤흔들어 놓는 것이고 마지막의 결론은 눈 뜨고 못 보는 그런 장면입니다. 가끔 주변에 그런 모습이 보이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하나님 앞에 늘 죄로 내 인격이 이 모양인데, 인격의 격려는 예사롭게 알고 건강 문제는 모두들 펄쩍 놀라니 이게 신앙인가? 이게 바로 귀신에게 붙들려, 붙들린 줄도 모르는 나의 신세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됩니다. 성경의 소경을 읽을 때마다 신앙의 눈을 돌아보고, 성경의 벙어리를 읽을 때마다 신앙에 나의 할 말을 하는지 안 할 말을 안 하는지 돌아봐야 되고, 성경에 절뚝발이 나올 때마다 나는 신앙으로 한 걸음씩 또박또박 걸어가는지, 울컥 벌컥 이렇게 요동을 치는지 돌아봐야 됩니다.
 
여기 경련 일어난 이 아이의 문제를 볼 때마다, 요즘 주변에 너무 없어 이것도 참 탈인데 그냥 그림을 그려보면 나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이 모습입니다. 인간 인격이 뒤집어집니다. 발은 하늘로 머리는 땅으로, 이거 큰일인데 속에 있는 모든 것은 가지런하게 할 일이 있는데 이게 뒤집어져 결국은 밖으로 거품이 나옵니다. 참 눈 뜨고 못 볼 일입니다. 한 사람도 빼지 않고 전부 귀신들린 아이와 같은 이 귀신에게, 거의 전부 다 붙들려 있으면서 남 걱정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맨 돼지 누운 돼지 보고 걱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돼지를 지붕 석가래 같은데다 대고 기둥 윗 기둥에다대고 묶어서 잡는 거 눈으로 직접 보신 분계십니까? 돼지 저 목매달아가지고 죽이는 거 보셨습니까? 강 집사님 보셨습니까? 이순금 집사님 못 보셨습니까? 돼지를 높은 기둥에 밧줄을 던져서 묶고 올려놓고 목을 찌르는 게 돼지 잡는 방법 중에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잡으려고 묶어서 이렇게 매달아놓은 걸 맨 돼지라 그럽니다. 그 다음 돼지는 이제 기다리는 돼지는 누운 돼지입니다. 맨 돼지가 밑에 보니까 그다음 죽을 돼지들이 쭉 보입니다. 이걸 보고 이놈들 너희들 곧 죽겠구나. 그러고 비웃는다 그 말입니다. 지금 지목에는 바로 칼이 들어오는데 나머지 돼지는 그 다음 순서인데 맨 돼지 누운 돼지 보고 걱정하더라. 비웃더라. 사람 살아가는 원리가 그렇고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기록해 두셨습니다.
 
여기에 귀신들린 아이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연령층으로 보면 지금 10대 20대들 거의 전부 다 이 신세입니다. 여기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오늘 10대 20대 속에 들어간 귀신들린 아이들의 부모들은, 감추느라고 정신도 없습니다. 또 아니라고 딱 잡아 떼버립니다. 그 집 아이 그런 행동 그거 귀신 들린 거라고 말했다가는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회원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말 못합니다. 몇 천 명 몇 만 명 교회 되면 아마 그냥 마음껏 고함을 질렀을 겁니다. 그래도 자기를 향한 말이라는 걸 못 느끼니까 숨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이 정도 돼 놓으면 너무 빤해서. 아이 그 집 딸 그 집 아들 이게 되느냐고 이래 놓으면, 그 몇 명 안 되니까 누구보고 말하는구나. 화가 나서 지금 강단에서 저러는구나. 이리 돼 버리면 될 게 안 되기 때문에 그냥 빙빙 둘립니다. 성경은 전부 나를 위해서 기록한 내가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여기 귀신들린 아들은 아버지가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데리고 왔느냐 안 데리고 왔느냐? 우리가 전부 귀신들린 아이 신세입니다. 귀신들린 줄 알기나 아느냐? 귀신들린 것도 모르느냐?
 
귀신들린 이 아이를 17절에,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해결이 안 됩니다. 성경을 아는 서기관이면 길을 가르쳐주지 않겠느냐? 이 사람들도 모릅니다. 성경 속에 있는데 성경만 들고 있지 성경 안에 치료법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무지했고 주님 따라다니는 제자들은 알기는 압니다. 주님이면 해결은 된다. 근데 지금 주님이 계시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해줄 게 없습니다. 이게 무능입니다. 따라하십시다. 무지무능(무지무능). 이서지 무지무능, 이서지 얼굴 좀 보시고 무지무능 모르면 무지, 못하면 고이언? 모르면 무지 못하면? 무능이라 그래요. 모르면 무지 못하면 무능, 무지무능 서기관들은 무지했고 제자들은 무능했고, 여기 아버지는 제자만 못하고 서기관만 못한 무리 중에 한 명입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제자는 못되고 서기관은 못되지만은, 무리 중에 한 명은 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 좀 볼까요? 17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그 사람이 이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내 아들을, 아 무리 중에 한 사람. 주님만 못하고 제자만 못하고 또 서기관만도 못하고, 아무리 꼴지라도 무리 중에 한 사람입니다. 내가 못하면 주님 앞에 가져오면 됩니다. 여기 아버지는 자기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오늘저녁 우리는 가정문제 주님 앞에 가져오시면 됩니다.
 
돈 있고 음식 있고 내가 요리해서 차리면 되는데, 주님 밥상 차려주십시오 이러면, 내가 네 종이냐 네 손으로 해라 그러십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는, 주님 이거는 못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해주십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는 것이, 1 더하기 1은 2 그거야 주님이 안 도와줘도 내가하면 하겠는데? 주님 도움 필요 없습니다. 내가하면 하지. 이리 생각하기 쉬운데 머리 안에 혈관 하나만 딱 터져서 뇌출혈 오면, 당장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교통사고 나서 드러누우면 바로 초상 칩니다. 1 더하기 1 주님 제가 하면 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야 제가 합니다. 이게 충성과 믿음을 합한 겁니다. 쉬운 거는 내가하고 어려운 것은 나하고 주님하고 5대 5로 하고, 인간이 절대 못하는 것은 주님이 100%로 해주옵소서. 이게 보통 신앙 같은데 어릴 때는 이게 좋은 신앙인데 100점은 아닙니다. 작은 거든 큰 거든 인간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대학생이 1 더하기 1은 할 수 있지 않냐? 할 수 있습니다. 1 더하기 1을 할 수 있는데 1 더하기 1을 주님 필요 없고 내가 하면 합니다? 주님이 데려가면 어떡할 겁니까? 죽는데. 주님이 내 중풍을 줘 버리면 당장에 그냥 눈 감아 버리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걸 보고 주님 이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 앞에 조심하며 해야 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이거는 주님 제가 못합니다. 아예 다 해주옵소서.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이 길을 열어주셔야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할 때. 이 사람이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 부탁하면 그때는 들어주십니다. 여기 정상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가정마다 내 힘으로 못하는 거 다 있지요? 버려야 되는 욕심을 딱 거머쥐고 이거 이루어 주옵소서. 그때는 주님이 욕심 내버리라 그러지, 도와주지 않습니다. 1 더하기 1을 할 수 있는 아이가 아침 밥상 차리고 설거지 할 수 있는 가정주부가, 주님 이거 다 하시라 그러면 네가 해라 그러십니다. 주님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지, 내가 해 주면 너 게으른 인간 되지, 하나님 부려 먹는 나쁜 인간 되지. 네 부모는 너를 나쁘게 그렇게 길렀지만은 난 내 자녀를 피 흘려 구원 했는데, 난 나쁘게 못 기른다. 내가 회개를 해야 될 것, 내가 포기를 해야 될 것, 내가 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 조심하며 해야 되는 것, 이걸 구별해서 이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이걸 제가 하는 것이 주님 기뻐하시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합니다. 이걸 하는데 이게 되어 진 것은 주님이 허락해서 그런 거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할 일을 또박또박 찾아서 하는 사람이, 아 귀신 들린 이 아이를 치료하는 것은, 무리도 서기관도 주님의 제자들도 못 합니다. 이건 주님이 해결해 주옵소서.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주님만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돈 벌이는 불교인도 유교인도 공산당도 무신론자도 재벌 되고 세상 운영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비행기 못 만듭니까? 신풍교인은 로켓 만듭니까? 하나님 욕을 하고도 로켓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 수 있는 과학과 물질의 이치를 주셨기 때문에 지금 하는 겁니다. 했는데 올라가던 게 제 머리 위에 터질 수도 있고 올라간 게 생각보다 더 잘 될 수도 있습니다. 잘 되도 못 되도 그건 다 결과가 전부 다 생지옥입니다. 주님께 물어보고 주님이 하라 해서 하는 거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여기에 이 아이의 문제는 귀신들린 문제입니다. 오늘 이 밤도 이건 죄 때문에 생긴 문제다 싶은 것은, 이거는 뭐 할 수 없이 주님밖에 없습니다. 밥하는 거 공부하는 거 이것저것은 주님과 의논해가며 하시되, 죄가 원인이 된 것은 죄 뒤에 귀신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것은 주님만 해결하지, 인간은 세상 임금이라 하신 귀신,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 이건 못 이기는 겁니다. 여기 이 아이를 낫게 하는 과정을 보니까 18절 “귀신이 어디서든지 이 아이를 잡으면” 지난 주일날 살폈습니다. 오후에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가는지라”
 
이 좋은 세상을 받았는데, 주5일 근무하고 일주일에 이틀씩 놀고먹으라고 불신자들도 기회를 줬으니, 마음껏 주일 지키고 공단 노동현장에 5시면 퇴근하고 6시면 다 퇴근하지 않습니까? 제가 현장 노동할 때 아침 7시에 현장에 지게 져야 되고, 저녁 7시라야 지게를 내립니다. 7시 예배 참석하려면, 주인이 볼 때 30분 일찍 보내줘도 될 만큼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을 해야, 30분 전에 출발해서 씻지도 못하고 예배당 들어갑니다. 지금은 노동현장에서 5시인데 안 보내주면 50%씩 일당을 때려 버립니다. 그것도 돈 안 받고 퇴근하겠다는 걸 붙들면 노동청에서 잡아갑니다. 그거. 나만 원하면 얼마든지 밤 예배까지 자유를 누리는 이런 때를 주님은 주셨습니다. 근데 밤 예배 어디 갔지요? 귀신에게 붙들렸겠지. 새벽예배 어디 갔지요? 밤새도록 죄 짓고 귀신하고 뒹구느라고 그 못 일어났겠지 뭐. 체질이 맞지 않고 여러 가지 환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한 번씩 빠집니다. 작정하고 계속되는 것은, 주일? 불신자도 주일은 지킵니다. 불신자도. 밤 예배 퇴근을 일찍 시켜줘서 2차 3차 시내를 돌아 댕깁니다. 특수직장도 있고 이런저런 형편도 있습니다. 자기가 사무실을 지켜야 되는 당직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실시간으로 지금도 여러 곳에서 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분들, 거리 가 너무 멀어 예배당까지 오는 것은 위험하다. 또 내게 주신 입장이 그래서 지금 사무실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나님은 그 마음 그 중심 그 일정 다 아십니다. 그런 척하고 이렇게 저렇게 뒤집으면, 너 거품 물고 지금 거꾸러지고 지금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구나. 뭐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가는지라. 너 지금 파리하여 가는지라. 이 아이는 도서관에서 스물네 시간 공부를 합니다. 공부를 하느라고 이렇게 비쩍 말랐습니다. 정말 해야 할 공부를 그만큼 해야 되면 그건 충성인데, 자기야욕 자기계산을 잘못해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공부하다가 말라 들어가면, 이 아이의 귀신들려 파리하여 가는지라 주님은 이렇게 환자로 보십니다. 여기 아이의 아버지는 이걸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보는 눈.
 
50년 만에 집사 시무투표 한다고 모두 오늘 연락이 갔을 겁니다. 목사는 50년간 투표하고 교인은 왜 안 하지요? 당연히 해야지. 목회자들이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50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50년 모범을 보이고 교인들 중에서도, 집사님 정도면 언제든지 목회를 나갈 수 있다 정도니까, 집사님들만 시무투표를 해봤습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그래도 어느 정도 자리는 지키고 있는가? 이분 때문에 오는 교인 다 쫓겨내 가지고 도무지 교인 전도도 못하겠냐? 그래도 뭐 인정을 봐서 사정을 받아서 연세가 많으니까 전부 잘한다고 해 주자. 뭐 시골이니까 또 그럴 것 같습니다. 아무소리 안하고 지금 투표를 했습니다. 오늘 12시까지 끝나고 나면 집사 시무 투표의 기준이 뭐냐, 몇 가지 제시를 해드릴 겁니다. 그리고 이제 거기 따라서 다시 한 번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무엇이 깨끗인지? 무엇이 정식인지? 무엇이 뒤집어졌는지? 1차는 모의고사 비슷하니까 또 누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냥 알아서 소신껏 적으시고 쓰시고, 내일 다시 기준을 드리면 기준을 보시면 누구든지 딱 느낌이 올 겁니다. 학생? 학교가야 학생이지 다른 애들 다 학교 가는데 시내 극장을 돌아 댕겨도 학생이냐? 그 정도는 곤란하겠지. 또 학교 가서 돈 뜯고 아이들을 패서 늘 파출소로 오고 가는데 그래도 학생이냐? 아 그건 곤란하겠다. 훌륭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래서야 되겠는가? 이제 이리 돼야 되겠지요. 그래서 학교마다 입학생을 받을 때 의무교육은 서명 없이 받는데, 의무교육 아닌 학교는 서명을 시키는 게 있습니다. 멋모르고 사인만 했겠지 읽어보지 않고. 우리 학교 학칙을 잘 지키겠습니까? 반드시 그거 학생과 학부모가 사인해야 입학 됩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어디든지 그건 상식입니다. 잘하지는 못해도 그거 사인하는 겁니다.
 
여기 이 아이가 뒤집어지고 거품을 내고, 어디서든지 이를 갈고 파리하여 그냥 막 새파랗게 가는데 나중에 창백해지는데, 이 아이의 아버지는 이 아이를 알아보는데 귀신 때문에 그렇다고, 우리는 자기가 지금 그런지 안 그런지 압니까? 음식조심하고 건강관리하고 마음 평안히 먹고 병원 자주 다니고, 그래서 뭐 세상 어디 내놔도 나는 건강 좋고 인물 좋고 성격 좋아서 전부 좋다는데 혈색도 좋다는데, 주님은 그 혈색 그 모습을 보는 게 아니고 네 신앙 좀 보자. 이게 신앙이냐? 비쩍 말랐네. 안 먹었는데 말랐지 뭐 안 먹어도 안 마릅니까? 엉뚱한 짓을 하는데 이게 눈이 뻐끔하게 들어가지. 남자애들 밤새도록 시내 pc방에 가가지고 2박 3일 컴퓨터 게임만 하고 왔는데. 눈 보면 눈이 뻐끔하게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거 어디서 벌 짓 한 겁니다. 공부는 아무리해도 눈이 휑하게 그리 안 갑니다. 공부 많이 해가지고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뭔 짓을 했는지 딱 보면 알지 그냥 써놨는데. 술이 과해서 간으로 온 사람, 농사를 많이 지어 무릎과 엉치뼈가 나가서 절고 오는 사람, 웬만하면 병원에 들어오는 모습 보면 저거는 부어서 온 고창병 환자, 저건 피부색이 노라니 저건 당뇨병 환자, 저건 발을 절뚝거리고 오는 걸 보니 정형외과 환자, 저 횡설수설하는 걸보니까 정신과 환자, 저건 지금 밤새도록 노름을 해서 눈이 시커멓게 뻐끔하게 들어간 거보니까, 어른은 노름했을 거고 애들은 게임했을 거고. 뭐 대충 다 분류가 되지 않습니까? 여기 아버지는 귀신 든 아이를 알았고 그냥 둘 수 없어 주님 아니고 안 된다고 지금 해결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 아버지만 못 할듯합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예고는 안 했는데, 늘 앞자리 잘 앉던 학생이 앞자리에 안 보여서 지금 저 뒤를 찾았더니만 앞에 잘 앉아 있어요. 제가 이렇게 실수를 합니다. 혹시 실수하면 손을 들고 잘못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실수를 줄이고 그러지요. 또 꼬박꼬박 앉을 애가 안 오면, 아니 병원을 갔나? 뭐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지금 밖에서 예배를 드리나? 아니면 어른들 선생님들 전부 예배당 앉아있을 테니까, 수요일 금요일 7시에는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해도 이거는 안 들킨다. 그런 건지? 앞으로 예배 때 좀 챙길 겁니다. 아마 한 20년간 제가 안 챙겼지요? 둘러갔지. 너무 빡세게 하는 것도 탈, 죽든지 살든지 버려두고 그냥. 저한테 늘 전화 오는 분이 그냥 설교는 좋게좋게 하고 말아야지. 어느 가정이 이렇다 어느 애 이렇다 그러면 누가 앉아 있겠냐? 그럽니다. 목사 밥값은 해야 될 거 아닙니까? 하도 그 말을 해 싸서 한 20년 말을 조심한 것 같습니다. 10년은 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시내 방방곡곡에 신풍교인들, 어디 술집에 돌아 댕기더라. 뒷골목 돌아 댕기더라. 저 순천대학에 그냥 술을 밤새먹고 오바이트를 해가지고 네 발로 기 돌아 댕기더라. 그러는데 식구들은 절대 안 그렇다고 펄펄 뜁니다. 아니라니까 아닌 줄 알았는데 선보려고 이름을 딱 내니까, 아 그 사람! 제 눈으로 몇 번. 그건 이름도 말하지 말라고 갈 데가 없어 술꾼한테 가냐고, 갈 데 없어 줄담배한테 가느냐고. 그 여자 끼고 얼마나 돌아 댕겼는데? 너는 남자 끼고 안돌아 댕겼냐? 난 또 이래 물어보겠지요. 비슷하니까 내가 중매 서지. 앞으로 좀 그렇게 좀 챙겨 볼 겁니다.
 
목사 시무 투표 50년 했으니까 이제, 목회자도 교인들에게 집사님부터 평가 시무투표 좀 받아보겠습니다. 누가 표시하는지 이름은 쓰지 마시고, 교회가 작으면 표시가 나서 이름을 안 써도 대충 아는데, 우리 교회는 이름 안 쓰면 모를 만큼 숫자가 괜찮습니다. 그렇게 바쁜 직장 먼 직장에서도 주일을 지킨다면 이건 장로감이다. 잘 안 보여도 그런 분도 계시고 늘 앞자리에 앉아계셔도, 이건 뭐 순 가짜지 그런 분도 계시고, 이런 분 저런 분 다 있기 때문에 사람의 평가는 그냥 참고만 하는 겁니다. 여기 아버지는 자기 아이에게 귀신이 원인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우리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 뭐 예배당 청소야 제가 해도 하면 합니다. 그건 하면하는 거고. 이건 죄 때문이고 귀신 때문이지 이건 길이 없다. 아무래도 해결이 안 되면, 선생님 이 아이를 데려왔나이다. 이렇게 되어져야 됩니다. 그다음 넘어가서 20절입니다. 아버지가 데리고 온 이 아이를 이 아이를 예수님이 지켜봅니다. 근데 예수님이 보기 전에 귀신이 예수님을 먼저 봤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놓칠까봐, 놓칠까봐, 놓칠까봐. 누가 도둑질했는지 잘 모르는데 도둑질 하면 안 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설교를 하고나면, 예배 마치고 내가 도둑질했냐고 전화 들고 그냥 벌컥 성내는 분이 계십니다. 그냥 설교를 하다 보니까 그랬지, 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들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도둑놈 제 발 저리는 구나, 제가 그리 압니다. 안 그러겠습니까? 설교만 끝나면 예전에는 공 권사님이 꼬박꼬박 전화 옵니다. 오늘 목사님 뭐가 화가 나서 그렇게 예배 때 고함을 지르지요? 제가 뭘 잘못했지요? 그럽니다. 뭔 일인지도 모르는데 아 권사님 속에, 저한테 제가 알면 미안한 일을 지금 하셨구나. 고수들은 죄를 짓고도 모르는 척합니다. 표시를 안 내야 모르지. 서툰 도둑은 표시를 내고 고급 도둑들은 표시를 안 냅니다. 그 위에 도둑이 돼놓으면 빙글빙글 웃습니다. 잡아보라고. 이게 아이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그렇습니다.
 
여기 귀신이 예수님을 먼저 알아보고 선수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늘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며 자꾸 좀 생각을 많이 하는 게 맞지, 말부터 나가고 행동부터 나가면 참 불편한 일이 많아집니다. 예수께서 21절 아이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릴 때부터 니이다.” 귀신들려 고장 난 것은 귀신이 서툴지를 않기 때문에, 귀신이 사람을 잡자마자 막 바로 거꾸로 뒤집고 그렇지 않습니다. 하와를 죄짓게 만들 때 봐보십시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좋아 보이는데? 먹어도 안 죽을 것 같은데? 먹으면 하나님이 될 것 같은데? 그냥 슬슬 던져만 놓고 흔들어 보다가 흔들리면 뭐 먹든지 말든지 그러고 빠집니다. 하와 제 입으로 먹게 만들지. 아담을 제 손으로 죄 짓게 만들지, 선악과 따먹고 나면 이제 손댈 것 없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쫓아낼 건데 뭘 지가 데리고 나갈 겁니까? 하나님하고 아담하고 둘이 싸울 건데. 방심하고 모를 때 슬금슬금 주변에 베어 들어가고 말 한마디로 섭섭하게 만들고, 의욕이 넘치게 만들고 이래저래 가지고 죄를 슬쩍 흐트러놨다가 딱 낚시를 물면, 그 다음 귀신은 가만 놔둡니다. 이제 내 거 됐으니까. 나 필요할 때 댕기면 이거는 바로 온다. 그리고 완전히 장악했을 때 그다음 엉망을 만듭니다.
 
민물낚시는 작아서 걸리면 댕기면 바로 해결이 되는데, 바다 물고기는 사람만 하고 사람보다 더 큰 게 있는데, 낚시 바늘 물었다고 벌대로 댕기다가는, 당기는 사람이 딸려 들어갑니다. 고래 잡아놓고 댕기면 배가 침몰을 해버립니다. 물면 그다음 풀어버려야지. 마음껏 돌아 댕겨봐라. 진이 다 빠지고 나면 솔솔 댕기면 예배당보다 더 큰 고래가, 뗏목 하나한테도 따라오는 게 원리입니다. 이걸 잘 아는 것이 귀신입니다. 이미 뒤집고 거품이 나고 난리가 났다는 말은 이거 어릴 때부터 벌써 오래된 겁니다. 밤 예배 와야 될 사람이 밤 예배 안 올 때는 벌써 1년 전에 3년 전에 5년 전부터, 지금 서서히 오랫동안 귀신이 작업을 해놓은 겁니다. 그리고 분명히 이거는 학교도 아니고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그때는 이미 말해봐야 늦었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이때 도리깨를 들고 막 이러고 저러고 생난리를 하는 것은, 교인들에게 남들에게, 저는 신앙이 있는데 이 아이가 지금 잘못된 겁니다. 그걸 광고를 하는데, 그러면 아이는 더 안 돌아옵니다. 아이의 신앙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아이 뭐 좀 안 믿을 수도 있지 더 많이 나가보라. 떠미는 것이 오히려 고급입니다. 귀신을 잡아들이려면 귀신보다 한 술 더 떠야 됩니다. 귀신의 수는 666이고 하나님의 수 귀신을 이기는 수는 하나를 더해서 777입니다.
 
별일 없을 때는 오는 귀신 망대를 세워 철저하게 막고, 나의 실수로 세월 속에 이미 놓쳤고 이게 들켰을 때는, 아이 뭐 그럴 수 있지. 저보다 목회를 널널하게 너그럽게 푸짐하게 하는 사람 별로 없을 걸요? 실제 겪어보면. 웬만하면 제 입에서 아 그럴 수 있지. 아니 목사가 배고픈데 뭐 예배당 팔아서라도 먹어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러겠지. 목사가 화가 나니까 절에도 가고 그러는 것이지. 또? 어느 교회에 욕 다 해보십시오. 전 다 칭찬하지. 막을 수 있을 때 막지 않았으면 이미 낚시 바늘은 매인 겁니다. 그걸 단 번에 때려잡으려면 잡힙니까? 사람인데, 근데 우리 교회 분위기가 있어 놓으니까 남들 보기엔 바늘방석이라니까 막, 저게 내가 이렇게 강조하는데도 저게 저런다고 모두들 그러는데, 평소에 누가? 자기가 밀어줬는데 만들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릴 때부터니이다. 여기에 이 아이는 아이입니다. 아이인데 어릴 때부터라 말은 오래 되었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귀신은 죄를 가지고 교회와 우리를 잡으러 들어올 때, 소동을 부리고 난리를 부리고 그러지 않습니다. 코로나 2년에 온 전국 교회를 다 잡아 족쳤는데, 그거 코로나 때부터 시작한 게 아닙니다. 5년 10년 몇 십 년 전부터 작업을 해가지고 이제, 100% 그물만 던지면 된다고 마지막에 잡아들인 겁니다. 자진해서 다 들어갔지.
 
여기 아버지는 애가 터졌습니다. 이게 도무지 사람으로 이래선 안 되는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신앙의 사람이 소돔같이 되고 니느웨처럼 되려고 이것 이래서 되겠느냐? 그 아이가 파리하여 가는 모습을 알아차렸습니다. 아이가 밤늦게 들어오면서, 오늘 시험 때문에 늦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늦었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 공부하다 늦었습니다. 애들이 말만 던지면 뭐 100개 던지면 100개 다 듣는 부모, 용돈까지 집어주는 부모, 나는 착하고 순수해서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봐 믿어줬습니다. 도둑놈을 만들고 앉았지. 지가 놓은 지애를 딱 쳐다보면 이놈이 도서관 핑계 대고 pc방 갔는지 연애했는지, 책은 보고 그 다음 책 밑에다가 대고 만화책 놓고 보고 왔는지 보면 모를 겁니까? 그거? 뻔히 다 알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릴 때부터니이다. 22절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죄악의 물에 빠져 죽고 심판의 불에 타 죽도록 정신없이 던져, 이거는 보니까 학생의 인생이 날아가고 청년의 청년이 날아가고, 이 아이의 결혼한 가정이 다 날아가도록 눈에 훤하게 보입니다. 40에 결혼해야 문화인인데 죄악의 물에 빠져서 지금 다 지금 죽어가는 겁니다.
 
뭐 살림 차립니까 그냥 대충 알고 지내면 되지, 이건 또 불 심판에 이미 타 죽을 운명입니다. 근데 문제점은 알고 왔는데 아버지의 자세가 예수님에게 23절입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옵소서.”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겠지요. 주님이시라도. 주님께 해결하려고 온 것은 장한데 이건 뭐 무리보다 서기관보다 제자보다 이건 나은데 “할 수 있거든” 주님이라고 다 되기야 하겠습니까? 주님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다윗을 붙들고는 세계도 점령하시고 르호보암을 붙들고는 나라운영도 못하시던데 주님이라도, 주님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고 그렇지 어떻게 주님이라고 다 된담? 근데 혹시 싶어서 왔습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귀하기는 귀하고 주님까지 온 것까지는 잘했는데, 주님이라고 100%로 절대겠습니까? 좀 뭐 좀 안 될 수도 있지. 그러면 주님은 일을 못해줍니다. 왜 못해주느냐? 안 믿는데도 해주면 믿을 것 아니냐? 착한 분들은 그리 생각하지요? 저같이 나쁜 사람들은 안 될 수도 있는데 해주면, 낫고 나면 우연으로 된 거 아닌가? 꼭 그 소리가 나옵니다. 암 3기에 나아놓으면 살려만 주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막 이러겠습니다. 저러겠습니다. 서원은 다해놓고 막상 나으면, 어디 텔레비 보니까 철에 가서도 3기 환자가 낫고 자연 치료법으로 4기 환자도 나았다던데, 이것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주님이 100% 능력으로 낫게 해 놓으면 귀신이 와가지고 우연도 있고 자연도 있고 과학도 있고,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해가지고 또 뒤집어버립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건 주님 아니고는 절대 안 되겠나이다. 여기까지 내 둬버립니다.
 
반대로 고생 안 하시려면 오늘의 10대를 누가 교육시키겠나이까? 오늘 20대를 누가 이기겠나이까? 누가 교회 말을 듣고 누가 밤 예배를 오겠나이까? 뭐 우리 집에 따라 나온 것도 지금 눈치 보고 빠질 연구하겠지, 샐 연구하겠지, 안 나오면 이길 겁니까? 못 이기지. 많이 따져보고 생각해보고 주여 인간으로서는 이거는 안 됩니다. 결론을 낸 다음, 주님이 창조의 능력으로 손대면 됩니다. 여기까지가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이거 가지고 안 되는 겁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가 믿었으니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러는 게 믿음은 순종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다 해주시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으니, 나만 100% 순종하면 100% 순종을 붙들고 주님이 알아서 처리하십니다. 가정마다 한 가정도 빠짐없이 애절하게 애타는 일들이 다 있지 않습니까? 일부러 하나님이 그런 일들을 만들어 놓고, 좋으면 기도 안할까봐 절벽 끝까지 밀어놓고, 떨어져서 고생하지 말고 떨어져 고생하니 애절하게 간구하라고, 우리 시대와 우리 교회를 이렇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나 두 개의 기도 제목 다 있습니다. 애절하게 간절하게 주님께 매달립시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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