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6.14 막9:25 더러운 귀신, 죄로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 원래 위치 원래 모습을 떠나 더럽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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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6.14 막9:25 더러운 귀신, 죄로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 원래 위치 원래 모습을 떠나 더럽게 함

관리1 0 63 06.14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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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4 화새
 
제목 : 더러운 귀신, 죄로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 원래 위치 원래 모습을 떠나 더럽게 함
 
찬송 : 145장(주 날개 밑 내가 편히 거하네)
 
본문 : 마가복음 9장 25절 -
 
예수께서 무리에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은 전부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귀신 저 귀신 활동하는 곳과 역할이 달라 그렇지 서로 고장 나거나 부딪히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짜고 하는 것은 몰라도. 이 사람에게 들어간 이런 귀신, 저 사람에게 들어간 저런 귀신 보이는 모습은 다 달라도 뒤로는 대장 사탄의 휘하에 역할을 분담하며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거 기억하셔야 됩니다. 사람의 인체가 눈과 발가락이 모양도 위치도 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만은 신경으로 혈관으로 모든 면으로 하나인 것처럼 상대방을 파악할 때 달라서 다른 것과 뒤로 하나 되어 있는 거 구별하지 못하면 참 안타깝게 손해 보고 당합니다.
 
오늘 아침에 귀신이란, 여기 주님이 “더러운 귀신이라” 이 사람한테 들어간 귀신은 더럽고 또 다른 사람한테 들어간 귀신은 깨끗할 수도 있는가, 귀신은 모두가 다 더럽습니다. 인격을 더럽히고 사상을 더럽히고 인격이 삐뚤어지면 사상은 삐뚤어지게 되어 있고 아무리 사상이 옳고 발라도 인격이 아무리 발라도 사상이 삐뚤어진 게 들어가면 결국 인격도 틀어집니다. 인격이 빗나가면 그 인격에서 나오는 것은 전부가 다 삐뚤어진 것이 나올 수밖에 없고 또 인격이 옳고 발라도 밖에서 들어가는 사상이 계속해서 잘못된 사상이 주입이 되어 지면 결국은 인격을 털어버립니다. 앞서고 뒷 서지 다르지 아니합니다. 귀신이란 자기중심으로 살게 하는, 그래서 하나님과 끊어지고 떨어지게 만드는 그리하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명령을 어기게 하는 죄, 제일 겉모습은 죄 짓게 되면 그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귀신이지 그거는 성령은 아닙니다. 성령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독자적으로 이러고저러고 가운데 서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소시장에 소를 사고 파는 그 순간 그 소에게 주인이 없는 순간은 없습니다. 팔 때까지는 앞에 주인에게 끌려왔고 그 줄이 상대방에게 넘어가는 순간 주인이 바뀌는 것이지 순간이라도 속아 주인 없이 독자 독립이라는 그런 신분은 없습니다. 악령과 성령에게 붙들려 살지 악령도 아니고 성령도 아니고 난 나대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지를 않았습니다. 마음 없는 몸이 없는 것처럼 영에게 붙들리지 않는 순간에 마음이 독자적으로 독립하는 그런 순간은 구조적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엔진 없이 굴러가는 차가 없는 것처럼 엔진이 고장 나고 엔진을 드러내도 차를 내리막에 두면 엔진 없는데도 차가 굴러갑니다. 내리막이 끝나면 그다음 못 움직입니다. 일시 엔진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지 않냐 스스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경사가 져서 움직일 뿐이지 올라갈 수 없는 데를 올라가야 그게 차 입니다. 그 엔진의 힘입니다. 영 없이 마음이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존재하고 운영될 수는 없다. 단정하시고.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리 아시면 됩니다.
 
과학이 없을 때는 몰랐는데 과학이 면밀하게 보니까 사람은 심장이 움직이며 온몸을 움직입니다. 심장 없는 몸은 없습니다. 죽은 거지. 또 뇌가 없으면 듣지도 보지도 아무것도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심장에서 피를 뿜어주고 뇌에서 듣고 보고 이렇게 모든 걸 보이지 않게 조정을 합니다. 그것처럼 악령이냐 성령이냐, 교대해가며 우리의 마음을 서로 장악하고 우리의 마음을 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가 느꼈던 못 느꼈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 죄를 짓고 있느냐? 성령은 지금 밀려나가는 겁니다. 죄를 짓고 있느냐? 아이 부자 한 사람 거 털어 열 명, 백 명을 먹여 살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도둑질하러 들어갈 때는 악령이지마는 그 훔쳐온 걸로 여러 사람에게 베풀고 있을 때는 성령일 수도 있지 않느냐? 적어도 악령에게서는 도망 나오지 않았느냐? 그건 네 마음이고, 너 희망사항이고, 너의 합리화고, 변명이고, 너를 예쁘게 단장하는 말장난이고 너 속이 문제인데 속을 들여다보니 남의 거 들고 나온 거 성령은 그런 거 가르치지 않는다. 성령이 가르치지 않으면 그거 악령이다. 주인에게 돌려주고 돌아서는 것이 성령이지 훔쳐 나온 걸로 여기저기 이렇게 찌끄리고 댕기는 거 뭐라고 말을 해도 그건 악령에게 계속 붙들려 있는 중이다. 죄로 가지고 악령의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 빠르고 아주 쉽습니다.
 
한의사가 맥박을 가지고 몸 안의 상태를 짐작하는 것처럼 100%로 해야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것이 뭐 대충 대충이면 한의학이 오늘까지 살아남았겠습니까? 뭐 아무리 멀쩡하다고 단장하고 큰소리 쳐도 청진기 대보면 또는 소변이나 혈액을 뽑아서 검출을 해보니까 이렇다 저렇다 나오면 그냥 뭐라고 떠들어도 검사가 말을 하는 겁니다. 말씀이 기준인데 말씀에서 빗 나갔는가 그 행동이 죄고 그 행동 뒤에는 악령이 있는 겁니다. 물고기가 먹이를 먹었는데 먹고 제멋대로 탈 없이 잘 돌아 댕기면 되는 겁니다. 근데 물었는데 먹었는데 낚시 바늘이 있으면 이 낚시 바늘이 우연히 떠돌아 댕기는 게 아닙니다. 무거워서 가라앉는데 먹이를 물었는데 바늘이 있고 끈이 있으면 그 뭐 볼 것 없이 물 밖에 지금 누가 낚싯대를 쥐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이 당긴다고 죽고 그냥 있다고 그거 해결된 거 아닙니다. 물면 이제 끝난 겁니다. 주인의 손에 달려있는 겁니다.
 
여기 주님이 귀신의 이름을 “더러운 귀신아” 그런데 17절에서는 그 아이를 낳아 기른 아이를 잘 아는 아버지가 “벙어리 귀신이라” 벙어리 귀신하고 더러운 귀신하고 다 다른 귀신이 아니라 벙어리가 되면 그다음, 더러운 귀신이 되고 더러운 귀신이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벙어리 귀신으로 이렇게 지금 고장을 내고 있는 겁니다. 25절 돌아와서 벙어리 귀신이 더러운 귀신인데 벙어리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왜 할 말을 안 하고 할 말을 안 했으면 또 안 할 말을 합니다. 육체의 벙어리는 할 말이든 안 할 말이든 어떤 말도 안 해야 벙어리인데 하나님 앞에 벙어리는 할 말을 안 하는 벙어리만 벙어리입니다. 할 말을 안 했다 말은 안 할 말을 하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아, 입이 열리지 않고 소리가 안 나오는데 뭐 말로만 말을 합니까? 눈빛이 있고 표정이 있고 손발이 있는데 생활이 있는데. 거지가 문을 두드리고 주인이 나와 보니까 말을 한마디도 안 하고 밥그릇을 들고 서 있습니다. 달라고 말 안 하니까 문 닫아 놓고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말이 안 되지요? 서 있는 모습이 지금 배가 고프니까 밥 좀 달라는 말인데 입으로 밥을 달라는 거지도 있고 모습이 보니 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거지도 있고 뭐 별별 표현은 다 있는 겁니다.
 
입은 말을 못 해도 어떤 표정도 어떤 표시도 할 수가 있습니다. 할 말을 아니 하면 아이를 야단칠 때 야단을 치지 않으면 그거야 아이의 얼굴이 행복하지. 막 즐겁지. 그러면 온 집을 뒤집어 어지럽게 만들겠지. 더러운 귀신인 겁니다. 집안에 방 안에 아이의 방 안에서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노는 것 놀이터로 노는 것 놀아서 노는 것이야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아이가 건강해서 활발하게 지금 놀이를 하며 배우는 겁니다. 깨끗한 식당에 가서 남의 집에 가서 손을 대면 안 되는 것까지 전부 다 헝클어 버리고 뒤집고 돌아 댕기면 이건 생기발랄하다, 놀이를 통해 아이가 배우며 자라간다, 그러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질서가 없구나, 앉을 자리 설자리를 모르는구나, 한마디로 애 더럽게 기른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남의 애들이 그러면 문제다 그럽니다. 자기애가 그러면 포기가 좋은 겁니다. 이건 뭐 타락한 인간은 못 피합니다. 자기중심이니까. 부모 눈에 이 아이가 큰일 났다 싶을 때는 남이 볼 때는 이건 인간도 아니고 부모 눈에 좋게 보여도 남이 볼 때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뭐 그냥 다른 나라 말은 모르겠고 우리말은 더럽게 길러 놨다 그럽니다.
 
생활이 인격과 질서와 가치 판단과 남에 대한 배려도 있는 건데 내 입장이 있고 남의 입장이 있고 배려가 있는 건데 그 배려가 헝클어지면 깨끗한 겁니까? 더러운 겁니까? 십년을 노숙을 해서 남자도 여자도 노숙 십년에 엉망이면 위생적으로 옷 복장과 모습은 더러운 겁니다. 십년 노숙을 해도 남자는 저쪽에서 노숙하고 여자는 이쪽에서 노숙하면 남녀 이성문제는 깨끗한 겁니다. 옷은 단정하게 말금하게 향기 나게 깨끗하게 갖춰 입었어도 남녀가 뒤엉키면 위생 복장적으로는 깨끗하고 남녀 문제는 더러운 겁니다. 더럽다? 위생적으로만 더럽다? 생물학적으로만 더럽다?. 기준이 뭐냐? 성경에 더럽다는 말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원래의 모습이 깨끗이고, 개는 짖어야 깨끗한 겁니다. 그 개를 보면 배가 고플 때는 잡아먹을 수 있어야 깨끗한 인간입니다. 개를 깨끗하게 미장원에 갖춰 놓고 이걸 외동딸처럼 곱게 이러면 뭐 가정마다 좀 다르겠지마는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이게 엉켜버리면 존재적으로는 더러운 게 되는 겁니다. 개 단장은 예쁘게 했는데 너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으로 만들었고 강아지는 네가 필요하면 팔아 돈도 되고 아니면 집도 지키고 사람이 먹다가 못 먹게 된 거 그걸 먹음으로 짐승의 사육도 되고 또 몸이 영양실조가 되면 인간과 함께 살고 인간과 같이 먹은 강아지처럼 (좋은)보양식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보신탕 그런 거는 일부러 붙인 것이 아니라 먹어보면 결론은 딱 나옵니다. 배고프면 먹게 돼 있고 배고파서 먹고 먹은 사람이 많고 많은 사람들의 결과가 그걸 먹으니까 그냥 보약이더라, 보신탕입니다. 이거는 법으로 뒤집는다고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거는 엄연한 과학이고 사실이고 역사입니다.
 
그 범위 안에서 풀 한포기도 아끼듯이 그 사람의 감정과 서로 잘 통하니까 배부르고 살만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항상 나는 주인이고 넌 개다, 그 위치에서 주인이 종업원을 살펴줘서 종업원이 행복한 것은 좋은 겁니다. 근데 종업원이 사장한테 운영은 이리하시고 투자는 저리하시고 이제 이래 나오면 강아지가 주인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이 됩니다. 이게 헝클어지면 그다음, 인간이 위로 하나님에게 아, 세상 운영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이 사람이 비록 죄인이지만은 이럴 때는 격려하시고, 이렇게까지 나와 버립니다. 욥기 1장입니다. 하나님이 산울로 둘러 그렇게까지 오냐 오냐 길러 놓으니 욥이 하나님 찬송하지, 먹을 거 입을 거 뭐 이것저것 손대 보십시오, 욥을 더럽게 길렀다고 사탄이 말은 곱게 하는데 하나님의 운영 하나님의 결정에다 대고 지금 이 일을 달며 흔듭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 공정한 회의 같으나 존재적으로 더럽고 가치적으로 더럽고 입장과 위치를 지금 엉망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신하가 깨끗하게 단장하고 좋게 옷 입고 위생적으로 임금 앉을 자리에 먼저 떡 앉아 임금보다 내 인물이 낫지 않냐, 그러고 앉았으면 왕권을 더럽힌 인간 반역죄로 대역죄로 왕의 권위를 짓밟은 죄로 무참하게 쓸어버릴 겁니다. 더럽다는 점이 오늘 아침 좀 생각해 보면서 옷도 깨끗하게 행동도 깨끗하게 위생적으로도 깨끗하게 남 볼 때 남 눈에 부담되지 않도록 만사를 깨끗하게 잘하시되 성경에 깨끗의 정의는 하나님이 주신 원래의 위치 원래의 모습이 그게 깨끗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은 답게 사는 것이 깨끗한 가난입니다. 가난하지만은 자존심이 있는데 무리하게 있는 표시를 내면 더럽게 가난한 겁니다. 많이 가난하다 말이 아니라 가난의 모습이 잘못됐다는 말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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