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6.3 눅14:25 세상 위해 주님 따르는 순서를, 이제 주님을 제일 앞에 두는 것이 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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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6.3 눅14:25 세상 위해 주님 따르는 순서를, 이제 주님을 제일 앞에 두는 것이 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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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사랑과 미움에 대한 정의는 가치의 순서 차이
* 딤전5:8의 가족 사랑과 눅14:25의 가족 미움은 순서에 따른 강조의 방법 



220603 금밤
 
제목 : 세상 위해 주님 따르는 순서를, 이제 주님을 제일 앞에 두는 것이 바른 자세
 
찬송 : 121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본문 : 누가복음 14장 25절 -
 
다한 무리가 함께 갈 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이 밤도 불러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세상은 어두워져 가고 어려워져 가며 우리는 갈수록 부족해지는데,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신 이 한 가지 인하여 세상을 만들고 운영하시는 주님, 우리를 지켜보시며 우리를 길러 가시며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를 고쳐 하늘에 영생의 사람으로 우리를 향하여 모든 것을 운영하시니, 세상 속에 사는 신앙과 세상생활 전부를 주님과 천국을 향하여 맞춰놓고, 오늘도 내일도 또 주시는 모든 매일의 현실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5일 예배로 기억하고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하시되, 부족하여 이 길에서 주님을 뵙기를 소원하는 공회 모든 교회들 위해 함께 해주옵소서. 여러 형편 인하여 시공을 초월하여 이곳의 예배에 마음과 정성을 모으는 군무에 있는 아들들, 병원 요양 중인 종들 해외까지 두신 우리 모든 교인들 위해 이 밤도 함께 해주옵소서. 오가는 길 교통을 안전하게 지켜주시며 좋은 세상 감사함으로, 하늘을 향하여 마음먹고 다 투자하는 말세에 복된 저희들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14장은 안식일을 가르치며, 안식일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란 생명의 역사가 이게 문제고 핵심이라. 생명이란 배우는 게 있어야 생명이고 또 배웠으나 생명이란 실수를 합니다. 고칠 수가 있어야 그게 생명이고, 배우고 고치게 되면 생명이란 돌처럼 그대로 있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자라가게 돼 있습니다. 어디까지 자라 가는가? 강아지는 어미 개만큼 자랄 것이고 망아지는 어미 말처럼 뛰어다닐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기까지 자라갈 겁니다. 사람이 무슨 하나님을 본받아 따라갈 건가? 사람으로서는 닮아가지 못합니다. 닮아가려고 소망을 가지고 노력을 할 때 하나님이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이야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시고 못 만들 것이 없으니, 인간이 노력하여 나아져서 하나님 흉내를 낸다. 그건 안 되겠지만 하나님이 만들면 어디까지든지 만들어진다는 것은 안 믿으면 불신자입니다. 믿어야 믿는 사람이지.
 
태어나면 부모의 자녀입니다. 호적에는. 자녀 노릇 못하면 호적에만 자녀지 하는 짓은 강아지처럼 됩니다. 여기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 새” 주님이 안식일을 가르치시고 안식일 속에 담아놓은 신앙을 가르치고, 신앙이란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향하여, 배워가고 고쳐가고 자라가는 이런 말씀을 가르치고 걸어가시니까, 허다한 무리가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잘 가르치시는 주님이시니 주님은 당연히 앞서 걸어가고, 배우는 사람들은 뒤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잘 가르치니 뒤를 따라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25절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주님께 배우려고 뒤를 따라 가셨는지요? 따라합시다. “허다한 무리가” (허다한 무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허다한 무리라고 그럽니다. 안 믿는 사람도 더러 섞여있지만, 성경의 말씀은 믿는 우리를 향하여 기록해 주셨기 때문에,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고 나머지는 안 믿는 불신자다 그러지 마시고, 성경의 기록은 믿는 우리 전부 다 늘 그렇게 믿는 것이 좋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그때도 오늘도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믿는 사람이 몇 명인지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많아서. 믿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믿으려는 사람을 향하여 주님이 돌이켜 이르시되 방향을 바꾸고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믿고 따라오는 그 방향이 맞냐? 지금까지 너희들이 믿는다고 따라온 그 방향, 반대로 돌려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라. 신앙의 방향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이 뒤를 돌이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믿는 자세, 믿는 방향, 믿는 생각을 전혀 다르게 하나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부모와 자기아내와 자기자녀와 자기남편과 자기자녀와, 이게 처자입니다. 형제와 자매는 이런 형제 저런 자매를 형제자매라 그럽니다. 이런 형제 저런 자매가 기분 나쁘시면, 이런 자매 저런 형제라고 읽어도 됩니다. 부모는 자기위에 세우신 하나님이 세우신 분, 그 다음 이쪽저쪽 옆에다 대고 주신 분들은 형제자매 그다음 그 가운데 자기가 있습니다. 위로 부모 내게 맡긴 나의 아래 처자 옆으로 이런저런 형제자매 전부를, 그다음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수요일 밤 마지막에 잠깐 살핀 말씀입니다.
 
부모를 미워해라. 부모 꼴 보기 싫을 때 이런 말씀을 읽으면 이 말씀 가지고, 아이 뭐 효도 안 해도 되겠구나. 불량배들 불효자들 나쁜 인간들이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을 가지고 부모 고려장하면서 아마 자랑할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또 아내와 자녀를 책임지기 어려운 무능한 인간 또는 게으른 인간 아니면 불량배 같은 나쁜 인간, 자기 가족 책임 못 지면 그중에 하나입니다. 게으르던지 아니면 무능하든지 아니면 나쁜 인간이든지. 예전에는 남자기준으로 처자식이 자기식구고, 지금은 여자기준으로 남자와 자녀가 자기식구입니다. 이거 책임지고 먹여 살리고 이걸 지키려니 힘들고 곤란하면, 그냥 처자식 자기남편 내버리고 나는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부모, 처자식, 남자, 형제자매 전부를 미워하라 그러지 아니했느냐?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을 가지고 죄를 지으려고 나서면 이거는 약도 없습니다. 일반 병원 약으로 치료하면 되는데. 약으로 치료했는데 약발이 먹히지 않으면 약에 저항성이 생겨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약이 없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까지 악용해서 죄 짓는 사람은 성경의 그런 죄를 고범 죄라고 그럽니다. 고범 죄. 성경의 말씀을 알고 말씀으로 가지고 죄 짓는 인간은 사하심이 없다. 그랬습니다. 왜 그런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자기양심 속에 너 그러지 말라 알면서. 성령 하나님과 싸우는 죄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조폭들끼리 서로 싸운 거야 병원 가면 의사가 치료해 주면 되지만은, 의사 상대로 싸우는 인간은 어디 가서 치료하겠습니까? 오늘 저녁 26절 말씀을 잠깐 살펴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을 따라오려는 자는, 허다한 무리가 25절에 따라오고 있으니까 예수님을 따라오는 허다한 무리들에게, 너들 예수님 바로 따라 오냐? 잘 따라가고 있는데요. 병도 고쳐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고 죽은 자도 살려주시고, 별별 불치병 다 치료하지 먹여주지 죽은 자도 살리는데 왜 안 따라가겠습니까. 따라가지. 그들을 향해서, 너들이 예수님 때문에 두고 갈 세상 보이는 복 세상의 복, 그것 때문에 믿는다고 뒤를 따르는 것은 방향을 뒤집어라. 바꾸거라. 그 믿는 방향 자세가 틀렸다. 자기 목숨을 미워해라 부모를 미워해라 가족을 미워해라. 미워하라니요? 바로 조금 앞입니다. 누가복음 9장,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빠르게 찾는 분만 찾으시고 누가 복음 9장 25절 바로 앞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세상 천하를 다 가지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제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근데 자기목숨 미워하면, 목숨을 미워하면 죽인단 말인데 자기생명 포기하면 천하를 얻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9장 25절에 네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다 이렇게 말씀해놨는데, 그래 말씀하신 주님이 14장 26절에 오니까 자기 목숨을 미워해라. 당장 몇 장 사이에 모순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다음 누가복음 9장 앞에 6장을 보시겠습니다. 6장 35절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를 잘 선대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누가복음 14장 26절 본문에, 자기 미워하고 부모 미워하고 형제 미워하고 자매 미워하고 처자식을 미워해라? 원수도 사랑하라 했는데 자기가족 전부를 미워하라. 아 이거 미움이 그런 세상적인 미움은 아니겠구나! 이렇게 마음에 생각이 들어오면 성령이 마음을 열어준 거고, 아 뭔 성경에 이 소리 저 소리 별별 그런 모순이 많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 복 없는 사람이고, 성경을 많이 기록하다 보니까 횡설수설하는구나! 그러면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맞지 않고 이상한 부분은 왜 이렇게 기록을 해 주셨을까? 연구를 하는 것이 배우는 좋은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장 26절에 자기 목숨을 미워해라. 누가복음 6장 35절 앞에는 보니까 원수를 사랑해라. 원수도 사랑하는데 제 목숨 미워하면 어찌 됩니까? 9장 25절에 보니까 너 없으면 너 아니면 천하를 얻어도 소용도 없다. 내 목숨은 귀한 거구나! 내 생명은 소중한 거구나! 원수도 사랑하니 가족은 오죽 더 사랑해야 될까? 그 다음 디모데 전서 5장8절입니다. 한번 따라하십시다. 자기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자기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
 
자기 친족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다. 배신. 이 믿음을 배신이란 말은, 그냥 일반적으로 마음을 바꿨다 정도가 아니라 배교라고 그럽니다. 일반적으로 죄 중에 제일 큰 죄. “믿음을 배반한 자요” 안 믿는 사람 지옥 갈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기 가족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 그 주님이 부모 처자식 형제자매 자기목숨까지 미워하라? 아 이거 그냥 일반적인 그런 미움이 아니겠구나! 그리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장26절 “내게 오는 자가” 주님을 따라 가는데 지장이 된다면, 조건이 붙은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에 문제가 된다면. 예배를 드리러 오려다보니까 부모님 찾으러 찾아뵈러 가는 것이 늦어집니다. 그럴 수 있다. 주일날 예배당에 오다가 짐승 새끼가 구덩이에 빠져도 생명을 방치하지 말고 건지 거라.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가 구덩이에 빠졌으면 생명은 살리거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하물며 부모 가족의 생존 목숨 문제가 따르면 그건 안식일이라도 병원 갈 수 있고 어떤 조처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 주님을 따라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그 어려움 중에 부모님의 생존 생명 이런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그런 불편 문제가 따르거든 그때는 주님을 더 사랑하거라. 이 말씀입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거라. 학생이냐? 노는 게 있고 공부하는 게 있다. 둘 중에 무엇을 더 사랑해야 되겠느냐 공부를 더 사랑해라 다 맞는 말이죠? 공부를 더 사랑하라는 말은 뒤집으면 무슨 말이 되는가요? 노는 거 좋아하지 말아라. 좀 더 나가면 학생이 공부하는 데 방해되는 놀 거리는 그건 딱 잘라버리고 미워해라 그래야 학생이지. 사업가는 돈을 벌어야 사업가입니다. 그래야 종업원들이 먹고 살지. 회사는 돈 벌기 위해서 만든 겁니다. 복지하고 이벤트해서 뭐 그냥 남들한테 돈 퍼주려고 하는 거 아닙니다. 그건 복지센터지 회사는 돈을 벌어야 회사입니다. 사장이 돈벌이하는데 불편하거든, 정말로 돈 벌이하는데 정말로 불편하거든 그 뭐든지 제쳐놓고 돈 버는데 집중해라 그래야 사업가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 걸고 국방을 하는 것이 군인이다. 그래야 군인입니다. 소방대가 불났다고 도망가면 그건 소방 수가 아닙니다. 불이나면 목숨 걸고 쳐들어가겠습니다. 그 한 가지 의무 때문에 1년 열두 달 불이 안 나도 우리가 월급을 줍니다. 만에 하나 1년에 한 번 불날까봐 10년에 한 번 불날까봐.
 
요즘 뭐 소방시설이 얼마나 좋습니까? 대한민국의 소방대원들이 얼맙니까? 다 공무원들인데
그 사람들 늘 매일 불 끄러 댕깁니까? 거의 불나는 거 요즘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국에 몇 만 명을 월급 주는 것은, 만에 하나 10년에 하나 100년에 한 번이라도 불이 나면 그때는 목숨 걸고 쫓아가거라. 그래서 평소에 먹여 살린 겁니다. 근데 10년 만에 20년 만에 불났다고 휴가 가버리면 그건 나쁜 사람입니다. 네가 소방대원이냐? 불 끄는 데는 무엇이 급해도 다 물리쳐라 친구 약속도 제쳐놔라. 아이 학교 가는 것도 일단 제쳐놔라. 너 병원 가는 것도 불났을 때는 제쳐놔라. 당연한 말 아닙니까? 경찰도 군인도 소방대원도 회사원도 학생도, 자기 1번 의무가 있으면 1번 의무를 위해서는 다른 것은 미뤄놓는 거다. 상식이다. 이 땅 위에서 주님의 제자 되어 주님을 따라다니며 배운다는 네가, 공부가 1등 가족 사랑이 2등 놀러 가는 게 3등 예수 믿는 것은 5등 10등 100등 쪽으로 미뤄놓고, 시간 있으면 한 번 가보고 바쁘면 못 가보고. 선진국이 되면 1년에 한 번 성탄절 날 교회 간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1년에 세 번 교회 갑니다. 부활절 한 번, 추수감사절 한 번, 성탄절 한 번. 절 믿는 사람이 잘 믿는 사람이 4월 초파일 한 번 갑니다. 그러니 그게 뭐 중입니까? 그게 불교입니까?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 등산 가느라고 절에도 1년에 몇 번 갈 건데, 믿는 사람이 성탄절 한 번 교회에 오는 사람은 놀러가는 겁니다. 파티 하러 제쳐놓고. 저는 1년에 3번 갑니다. 어이구! 많이 간다. 너 학교는 1년에 몇 번 가냐? 일주일에 다섯 번 갑니다. 옛날에는 여섯 번 갔고. 한 번 가면 몇 시간 앉아 있냐? 하루 5시간 8시간 공부합니다. 공부 끝나면 옵니까? 방과 후 하지, 학원가지, 과외하지, 동영상 강의까지 다 듣지. 공부를 위해서는 일주일내 20년도 공부하고 하루에 1시간도 공부하고 예수? 교회? 일 년에 한 번 가면 되지 뭐, 온라인 연보도 하니까 이만하면 회원이지. 이게 예수님을 깔보는 일이고 예수님을 뒤따라가며 배우는 걸 짓밟아버리는 무시하는 일이 되어 진다. 세상에 학생도 세상에 경찰도 세상에 소방공무원도 자기직업 자기본분이 있으면 1번으로 놓고 노력하지 않냐? 주님 따라 가는 일에 배우고 고치고 주님을 본받는 이 일은 늘 1번에 놓거라. 그걸 먼저 하거라. 그러기 위해서 다른 거는 2번 3번 4번이 될 수 있는 거다. 주님을 제일 사랑하고 주님께 배우는 것을 제1순위로 놓고, 주님 뒤따라가는 일을 제1번에 놓고 부모님 2번 처자식 3번, 형제자매 4번 애국 5번 친구 6번 7번 8번 그건 순서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양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습니다. 처가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친가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주님을 1번에 모셔놓고 2번에다 대고 부모 사랑을 못합니다. 다 돌아가셔서. 물 떠다놓고 제가 제사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주님 따라가는 것이 1번, 부모를 빼버리고 처자식이 2번 이렇게 순서가 됩니다. 아니 부모는 왜 사랑하지 않죠? 돌아가셨으니까. 그러면 주님 뒤따라가는 일이 1번이고 그러면 사택의 가족 사랑이 당신은 2번이냐? 목사가 월급을 받았으니 가족보다는 교인이 앞서겠지. 아이하고 등산 가기로 약속했다고 소방대 대원이 불난 소식 듣고, 아이 아이하고 놀러 가기로 선약이 있습니다. 불 끄러 못 갑니다. 그럼 직업을 내놔야지. 직업에 따라 신앙에 따라 건강 환경에 따라 그 누구라도 주님이 1번, 그다음 2번부터는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부모가 없으면 형제가 될 수도 있고, 결혼을 했으면 처자가 될 수도 있고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10살짜리는 처자식이 없습니다.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렇게 강한 말씀을 하신 것은 이거 믿는다는 것이 그냥 부모 좋고, 처자식 좋고 형제 좋고 친구 좋고 취미 생활 하느라고 전부 여기 가있고 저기 가있고 정신도 없고. 너한테는 예수님이 몇 번째냐 열 번째입니다. 너는? 100번째입니다. 너는? 순서도 잊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따라오는 사람들이 왜 전부 예수님을 따라오는데 예수님이 방향을 딱 돌려, 너희들에게는 예수님이 몇 번째냐? 제 몸이 나아야 됩니다. 1번. 이 몸이 낫기 위해서 주님을 따릅니다. 주님 따라가는 거는 2번이고 몸 낳는 것이 1등입니다. 너는 왜 나를 따르느냐? 부자 되기 위해서 따릅니다. 부자가 1번이고 예수님은 2번입니다. 이게 누가복음 14장 1절부터 내려온 말씀입니다. 죽은 자 살리지, 소경 눈 띄우지, 앉은뱅이 일으켜 세우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지. 주님 따라 다니면 떡이 생긴다, 돈이 생긴다, 사업이 잘 된다, 아이들 진학이 잘 된다, 아들을 낳는다, 딸을 낳는다, 이것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딱 되돌아보며, 니들 믿는 방향이 지금 옳으냐? 틀렸느냐? 말로는 주님을 따르는데 주님은 2등이고 3등이고, 주님을 이용하고 불쏘시개로 삼아서 두고 갈 세상에 오래 살려고? 두고 갈 세상에 돈 벌려고? 이게 1번이고 주님은 2번 3번 4번으로 내려져 있으니까 주님을 1번에 놓거라. 그게 믿는 옳은 방향이고 옳은 자세고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바른 길이라.
 
주님을 1번에 놓으려면 효자는 부모가 1번이고 주님은 2번 밑이었는데, 주님을 부모보다 앞에 놔버리면 부모가 한 등수 뒤로 밀려버립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거라.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부모님을 한 칸 내리 거라. 다른 거 앞에는 다 갖다놓아도 주님 앞에는 부모라도 갖다 놓으면 안 된다. 주님을 제일 앞에 갖다 놓다보니까 부모도 형제도 처자식도 전부 한 칸씩 뒤로 밀려갑니다. 그건 미워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사랑하려다 보니까 그리되는 거다. 고3,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은 친구 모임도 놀러 가는 것도 부모 심부름도 형제 계모임도, 미안하지만은 올해 시험 보고 나서 해보겠으니 좀 기다려주라 다 그러지 않습니까?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니 나를 이전에는 1번으로 뒀는데 이제는 2번으로 둬? 3번으로 둬? 4번으로 둬? 날 미워하는 거야? 이렇게 모두들 펄쩍 뛰면서 오해를 하니까 부모 형제자매 처자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렇게 적어놓은 겁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미워하라 했는데 왜 해석을 해서 뒤집어 놓느냐? 누가복음 6장, 누가복음 9장, 디모데전서 5장, 요한일서 3장.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구나.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 해놓고 부모를 미워하라니요? 처자식을 미워하라니요?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가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자니라. 여기저기 말씀을 한 곳에 잘 모아보니까, 주님을 제일 앞에 갖다 놓고 그리고 나서 나머지는 2번 3번 4번 그렇게 사랑하라는 말이구나! 그런데 이렇게 순서를 갖다 놓으면 주님을 1번, 제일위에 갖다 놓으면 나머지는 모두 한 칸씩 뒤로 밀려지니까, 순서가 밀려지니까 아니 이전보다 나를 미워하네? 나를 미워할 수 있어? 이래가지고 모두들 펄펄 뛰니까 그 사람들의 기준으로 가지고, 그런 욕을 얻어먹고 그런 오해를 받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는 되지 못한다. 좋게 말하면 주님을 1번에 놓으라 그 말입니다. 주님을 2번에 놓으면 그 종교가 아닙니다. 절 믿는 사람이 돌부처를 2번 3번 4번으로 밀어놓고, 사업을 1번으로 갖다 놓고 공부를 1번으로 갖다 놓으면 그건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란, 종교란 ‘종’자가 산꼭대기 종자입니다. 종교의 ‘종’자는 산꼭대기 종자입니다. 그 이상이 없는 데 갖다 놓아야 종교입니다. 불교인이든 유교 인이든 미신이든 기독교인이든, 자기 하나님 자기 신앙을 꼭대기에 갖다 놓지 않고 2번 3번으로 내려놓으면 그건 종교인도 안 됩니다. 그거는.
 
다른 거는 다 순서가 바뀔 수 있다. 믿는 사람은 날 구원하러 오신 주님 날 구원하여 가르치는 주님 배우며 뒤를 따라가는 이 신앙생활은, 모든 순서 모든 가치 모든 바쁜 일 중에 늘 1번에 놓거라. 1번.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은 다 같이 무슨 날이요? 김성광,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은 무슨 날이요? 주일이라고 그랬습니까? 주일. 날이 365일이 있습니다. 365일만 있습니까? 10년 살면 3650일도 있지. 100년을 살면 3만6천50일을 살겠지. 나라마다 이런 날 저런 날 기념일 별의별 것이 가정마다 나라마다 아무리 많아도,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은 주일. 시간이 별의별 시간이 많고 중요해도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예배 시간, 그리하지는 못할망정 마음은 그리되고 방향은 그리되어야, 주님이 가다가 돌이켜 너희들 방향 잘못됐다 그러지는 않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5절에, 주님을 따라오는 수많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앞에 서서 가다가 뒤를 딱 돌이키며 방향을 틀었습니다. 너들 방향 다 틀렸다 그 말입니다. 돈 때문에 예수 믿지? 취업하려고 예수 믿지? 옛날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 믿지? 옛날에는 아들 낳으려고 교회 왔지? 예전에는 결혼하려고 교회 다녔지? 별의별 세상 것을 위해서 믿는 사람들 주님 앞에 어떤 것도 갖다 놓지 말아라. 전부 주님은 1번 나머지는 뒤로 하나씩 내려 앉히거라. 그게 미움의 정입니다. 그게 미움의 정입니다.
 
미워하는 자는, 덜 사랑한다. 이게 미움입니다. 덜 사랑한다. 상대적인 겁니다.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여야 천국에 들어가고 영원히 살겠습니까? 물어볼 때 십계명을 헤아리며 십계명 다 지켰냐? 열 가지 다 지켰습니다. 그때 주님이 십계명 엉뚱하게 잘못 지켰네, 그러지 않았습니다. 부자 청년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세상은 부자라 걱정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가겠나이까? 1번 계명을 지켜라 그리고 십계명을 꼽았습니다. 근데 부자청년이 십계명은 이미 지켰습니다. 잘 하였도다 잘했다. 그랬습니다. 십계명 지킨 거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지키거라. 십계명도 안 지키는 사람은 십계명부터 지켜라. 초등학교도 모르는 사람은 초등학교부터 다니라. 그리고 중학교 가야지 초등학교도 모르는 게 중학교부터 가서 되겠습니까? 초등학교 졸업했냐? 예 잘했다. 그러면 중학교 가거라 그 말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거든 십계명 지켰냐? 예. 하나 더 지켜라 너 있는 거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내 제자가 되라 그러니까, 부자라 돈이 많아서 낙심하고 돌아갔더라. 그랬습니다. 교회마다 모금 운동할 때 그 말을 쓰는데 그거 그런 뜻 아닙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부자 청년 뒤 꼭지에다 대고 제자들에게, 얘들아 부자는 하늘나라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 이래 놨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또 천주교에서는 부자는 지옥 간다고 했지? 전부 연보 하거라. 모금 운동하는 데 전부 다 써먹습니다. 뭐 이단도 그렇고 천주교도 그렇고 전부 다 정신도 없는데 그 말 아닙니다. 거기 부자라는 뜻은, 다리 밑에 거지가 10원 가지고 있으면 10원은 부자입니다. 내 전 재산이 100만 원밖에 안 됩니다. 요즘 그러면 거지인데 100만 원 가지고 있으면 100만 원어치는 부자입니다. 내가 천하에 제일 부자인데 그 부자가, 전 뭐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많은 돈을 벌게 해서 사장은 사장인데, 이 모든 돈 내 마음대로는 한 푼도 안 씁니다. 기도해보고 주님이 내 신앙 양심에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할 때만 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지입니다. 자기 돈 한 푼도 없습니다.
 
남 보기에는 부자라도 그 돈을 내 마음대로 쓰지 않으면 그건 하나님 겁니다. 난 거지입니다. 남이 볼 때는 가난한데 몇 푼 안 되는 그걸 붙들고 제 마음대로 쓰면 그만큼은 부자입니다. 네가 뭐든지 네 거라고 네 거 네 마음대로 하면 그게 그 마음 그 행위는 천국 가지 못한다 그 말씀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제 것은 주께 순종함으로만 쓰지, 제 마음대로는 안 씁니다. 그럼 자기 거 하나도 없으니까 그게 가난한 자입니다. 부자는 천국 들어가지 못한다? 가난해야 천국 들어간다. 이거 전부 다 해석을 뒤집어 놓는 통에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입니다. 교회들이. 미움과 사랑의 정의도 그렇습니다. 가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는데 근데 주님이 더 급한 일을 부탁하면, 가족을 위하여 인생과 목숨과 가진 걸 다 바칠 수 있으나, 주님이 다른 걸 부탁하시면 이것 때문에 가족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걸 말하는 겁니다. 가족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멀쩡하게 가족 미워하란 말이 아닙니다. 게을러서 미워하고 싫어서 미워하고 맨날 보니까 지겨워서 갖다 내버리고 또 새것으로 바꾸고. 옛날에는 남자가 그랬고 요즘은 여자가 남자를 계속 바꿔치기 합니다. 놀아보고 지겨우니까 또 바꾸고 또 바꾸고, 그러면서 누가복음 14장 26절에 부모도 가족도 형제도 다 내버려야 제자가 된다. 그래서 저는 남자를 내버렸습니다. 그래놓고는 또 성경에 이걸 읽어 댑니다. 그런 사람은 약도 없습니다.
 
행실을 고치고 사고방식을 개조하기 전에는, 그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아예 들으시지 않습니다. 하다가 힘이 없어 넘어지고 하다가 부족해서 넘어지는 것은 고함으로 다 해결을 해 주십니다. 그래서 가족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아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주님의 제자가 되는구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어공부 때문에 수학공부 국어공부 다 밀쳐놔야 영어를 잘할 거 아닙니까? 국어만 쳐다보고 수학만 쳐다보는데 영어공부 되겠습니까? 영어 잘하려면 영어만 하고 나머지는 하지 말아라. 수학하고 싶으냐? 수학시간에 전념하고 나머지를 다 밀쳐놔버려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으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을 따라 배우고 예수님을 따라 고치려면, 네 목숨까지도 전부 2등 3등으로 다 밀쳐놓고 주님 따라가는 일을 제1로 삼거라. 그러다보면 남들은 너는 목숨도 돌아보지 않냐? 너는 가족도 돌아보지 않냐? 넌 부모도 돌아보지 않냐라고 너를 비판할 거다. 그런 소리는 당연히 듣는 거다. 공부를 해도 그렇고 직장을 가도 그런 거고. 뭐든지 급한 일을 먼저 하려다 보면 나머지는 2등 3등으로 미루어지는 것이다. 게을러 그런 것이 아니라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면 이 말씀은 가족을 사랑하라. 단 주님의 가족보다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강조를 하려면 어떻게 강조를 합니까? 이것만 하고 마칠까요?
 
애기가 너무 예쁘면 애기가 너무 예쁘면 애기한테 예쁘다.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다 그러다가 더 이상 표현이 없으면, 유아교육 한 사람이 여기 한 네댓 명 되나요? 교과서에 안 나올걸요 그런 말은? 인권위원에서 잡아갈 걸요? 경찰서에서 아동폭행 폭언 법으로 잡아갈 겁니다. 예쁘다 더 예쁘다 너무 예쁘다. 그 이상의 표현이 나갈 때는 김진숙 선생님? 뭐라고 표현을 하나요? 좀 크게 다 들리게? 장현정 선생님 뭐라고 그러나요? 미워 죽겠네. 그럽니다.
예쁘네, 더 예쁘네, 제일 예쁘네, 예뻐서 죽겠네, 그다음 가면 아이 그 녀석 미워 죽겠네, 이럽니다. 한 30년 더 된 얘기 또 할 건데 저하고 둘이 대화한 사람, 죄송하지만은 이름은 말 안 하겠습니다. 교회 운전하는 청년이 두 살짜리 세 살짜리한테, 아이 그 녀석 미워 죽겠네! 이랬습니다. 나한테 와가지고. 저 인간이 우리 이 애를 미워서 죽겠다 그랬습니다. 고발이 들어오는데 제가 뭐라 그랬겠습니까? 예뻐 죽겠다는 말보다 더 위에 말이 미워 죽겠네! 그 말입니다. 팥쥐 엄마 뭔 남이 한 것도 아니고. 이걸 부정을 통한 강조라고 그럽니다. 저처럼 중학교를 정식으로 다닌 사람은 이런 걸 김희락 선생이 무슨 법이라고 그러죠? 반어법이라고 그러죠? 중학교 나오셨지요? 저하고 김희락 선생님은 정규 중학교를 나와서 학교에서 이런 걸 배웠습니다. 나머지는 왜 모르지요? 검정고시를 하니까 전부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어 모르는가 봐요? 중학교만 나오면 압니다. 반어법이라고.
 
부자가 자기 돈 자랑할 때 제일 마지막에 자랑하는 법은 세끼 밥 먹고 삽니다. 그 참 고등교만이 들어갔을 때 그 말합니다. 졸부들. 거지가 조금 돈 벌면 막 그냥 외제차 타고 돈 있다고 막 펄펄 자랑하고 댕깁니다. 진짜 부자는, 아 요즘 뭐 그냥 세끼 밥 먹고 삽니다. 엄청 부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반대로 뒤집어가지고 강조한 것이 누가복음 14장 26절입니다. 이래 해석 안 하면 성경은 모순입니다. 네 부모를 사랑하라. 처자식을 사랑하라. 형제를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가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지옥 갈 행동이니라. 이래 성경에 기록을 해놓고 아니 누가복음 14장에서는 부모를 미워해라, 형제도 미워해라, 제 목숨도 미워해라, 미워하는 거는 죄라 해놓고 뭔 말이냐? 모순이냐? 주님 주신 부모 형제자매 가족 원수까지도 다 사랑하거라 조건이 붙었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주님을 더 사랑하고 1번으로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나머지는 그 밑으로 미루어 두거라. 세상 사람도 직업에 충실하고 자기 신분에 충실하면 다 그러지 않느냐?
 
효자가 결혼해서 부모님이 전화 와가지고, 아니 너 결혼하더니만 여자한테 팔려서 요즘 부모한테 인사도 안 와! 그럴 때 남자가 자기 부모 쫓아 댕기면 이혼 당합니다. 그러면 결국 부모가 슬퍼집니다. 예, 결혼 전에는 부모님밖에 없었는데 결혼해서 이 여자하고 잘 사는 게 부모님이 바라보는 거 아닙니까? 이 여자 달개다 보니까 못 가는 겁니다. 명절에 부모님 찾으러 가면 여자가 삐질 거고 여자하고 잘못돼가지고 갈라서 놓으면 부모가 죽을 지경 아닙니까? 부모 죽을 지경이 될까봐서 지금 설날에 못 가는 겁니다. 이래 말하면 어지간히 알아들을 건데, 우리 교인들은 대부분 못 알아들으시지요? 이건 알아들을 것 같은데. 남의가정 문제 생기면 다 선생 노릇하면서 제 가정 문제 생기면 다 그냥 혼돈이 돼 버립니다. 양심이 없어 그렇고 진실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주님 사랑 1번, 주님 배우는 거 1번, 주님 따라가는 거 1번,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것은 2번 3번 4번 5번 형편 따라 알아서 하거라. 자세와 방향이 이렇게 딱 되면 나머지는 주님이 위에서, 나 때문에 세상에 오해 받는구나, 나 때문에 가족이 그렇게 어려웠다며? 주님이 모른 척하겠습니까? 직접 알아서 다 해주시지. 여기까지를 믿을 때 비로소 믿는 사람입니다.
 
정말 그럴까? 그 사람이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에이 설마? 그 사람이 불신자입니다. 그래놓고 우리가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면, 뭐 저나 누구나 대부분 우리는 그냥 의심절반 아니면 불신절반 그렇지, 정말 제대로 믿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이거 성경의 신앙의 양심에 확실하다 싶으면 걸어가면서 해결하지, 보험 넣고 뭔 앞길 조사하고 저 여호수아 갈렙 시절처럼 정탐꾼 보내가지고 가나안이 어떤지 전부 일일이 조사해보고, 아이고 가나안에 억센 놈들이 있어서 안 되겠는데요? 그 인간들 그 말 들은 사람들 광야에 다 묻어버렸습니다. 그냥 딱 봐서 말씀에 옳고 신앙 양심에 옳다 싶으면, 예 순종해놓고 나머지는 뒷수습하는 겁니다. 이게 신앙입니다. 문제 생길까봐 뒷조사 다 해놓고 다 단도리 해놓고 이제 이만하면 뭐 순종해도 별일 안 생기겠지 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에고 꾀쟁이! 에이 야곱 같은 꾀쟁이! 네가 믿음이냐 네가 하나님이지! 거기다대고 무슨 복을 주겠습니까?
 
저녁에 무슨 설교 했는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무 살 결혼하면 얼른 할 일이지, 뭐 스무 살이 결혼하면 먹고 사는 게 어찌되고 설거지가 어찌되고, 요즘은 스무 살 며느리 봐놓고 시집 살리는 40대들도 있습니다. 공회에 세상에. 스물 며느리 봐놓고 설거지 할 줄 모르던데? 인사할 줄 모르네? 네 딸년은 스무 살인데 인사하더냐? 입에서 떡 말이 나오고 싶은데 또 삐질까 싶어 말은 못합니다. 스무 살 데려다 놓고 시집 살리는 40대 시어머니들 아이고 흉악해라. 또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은 그것까지도 돌파하고 그냥 주님 믿고, 아이 스무 살이면 덩치가 이만한데 결혼하지. 남들은 실패를 했니 뭐니 말을 하든지 말든지 저는 주의 길이면 따라갑니다. 따라가다가 일 나면? 그 주님하고 수습은 뒤에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14장을 아는 믿는 사람. 말이야 뭐 그렇지만은, 그리고 이거 저거 자꾸 뒤 계산하고 앉았으면 하늘에서, 너 믿는 방향반대로 바꿔라 그게 14장 25절 26절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덮어놓고 가면 되겠구나 그럴까 봐 28절 이하에서는 계산은 잘하거라. 계산은 잘하거라. 아무리 계산해봐야 안 되는데요? 너 할 수 있는 대로만 하거라 나머지는 주님이 뒷감당 한다. 이게 끝까지 가는 겁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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