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밤22.6.1 눅14:28 높은 망대의 평소 준비와 손익계산, 완전 목표 지금 실행의 한걸음 *눅14장 전체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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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밤22.6.1 눅14:28 높은 망대의 평소 준비와 손익계산, 완전 목표 지금 실행의 한걸음 *눅14장 전체주해

관리1 0 315 2022.06.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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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1 수밤
 
제목 : 높은 망대의 평소 준비와 손익 계산, 완전 목표 지금 실행의 한 걸음으로 *눅14장 전체주해
 
찬송 : 18장(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본문 : 누가복음 14장 28절 -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오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땅 위에 주신 경제적 생명, 건강의 생명 가족의 생명 매일의 기회 모든 생명적인 것, 세상을 위해서 쓸 수도 있고 하늘을 향해 쓸 수도 있으니, 주를 위하여 쓸 때 영생으로 바뀌어 지고 두고 갈 세상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면, 우선은 사는 것 같아도 마지막 결산은 전부 세상에 버려야 되는 것이오니, 이 밤도 복잡고 바쁜 세상 속에 3일 예배로 불러주심은, 우리의 생활 속에 주를 향한 걸음걸음을 돌아보게 해주시는 기회며, 얼마든지 새로 배우고 새로 고치고 주님을 향하여 더욱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의 은혜를 주시오니, 잘 믿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한 번밖에 없는 생애를 허비하지 않는, 이 밤에 저희들 되도록 함께해 주옵소서. 휴가 또는 연휴 인하여 여러 곳을 오고 가는 우리 교인들, 운전 중 또는 걸음 중 눈길하나 마음하나 일일이 붙들어, 조심하며 복되게 주님 모시고 어떤 현실이든 찬송하며 걸어갈 수 있도록, 군무에 있는 아들들 해외까지 두신 자녀들, 병원의 수술이나 요양 또는 여러 형편에 있는 우리 모든 교인들 위에, 이 시간도 실시간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천하만국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들 위해 함께 하시되 부족함으로, 공회 노선에 마음을 기울이는 우리 교회들 위해 더욱 크신 은혜로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요나서 3장을 지난 한 주간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누가복음 14장 1절부터 살피다가, 25절 앞에까지 하고 그 다음 마태복음 11장의 말씀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 2주 전, 누가복음 14장 빠진 부분 보충합니다. 14장 1절 돌아가서 “안식일에” 오늘의 주일입니다. 또 안식일을 좀 넓혀 말하면 모든 신앙에 해야 될 의무 계명들은, 우리를 고치고 우리를 길러가는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을 잘 지켜 천국을 갈 것 같으면 그건 행위로 가는 거지, 노력과 자기의 수고로 가는 거지 은혜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멋모르고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끌어다가 믿는 사람 만들어 믿어질 때 믿는 사람입니다. 내가 믿으려고 애를 쓴 것은 겉돌 뿐이고, 믿어지게 해버리면 믿게 되는데 그 믿음만 구원받은 표시입니다. 본인 외에는 모릅니다. 그 사람들은 천국 갈 중생의 사람입니다. 중생된 우리들에게 안식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안식일을 잘 지키면 천국 가고 안식일 어기고 주일날 놀러 댕기면 지옥 가느냐? 그게 천주교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 기본 방향을 잘못 잡으면 늘 혼돈하다가 문제 됩니다.
 
하필 안식일에 주님이 바리새인 두목의 집에 가셨습니다. 왜 하필 안식일이며 왜 하필 바리새인이며, 왜 바리새인 두목 집에 밥 잡수러 간 이야기를 적었을까? 신앙이란, 신앙이란 몸이 밥을 먹어야 살고 움직이는 것처럼 신앙도 신앙의 양식이 있다. 신앙의 양식이 말씀입니다. 신앙의 양식이 실행입니다. 그 양식을 못 먹으면 지옥 가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양식을 잘 먹어 힘이 있으면, 추위를 이기듯이 달려갈 수 있듯이 많은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천국 갈 우리들이 하나님을 배우고 자기를 고치고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는 실력이 힘을 받게 됩니다. “안식일에” 잘 믿겠다고 노력하는 바리새인 그중에 지도자 두령 집에 밥을 먹으러 떡 잡수시러 들어갔는데, 바리새인들은 엿보고 있더라. 뭔 흠이라도 하나 잡을까봐. 복 없는 사람입니다. 부부가 처음 만나 서로를 연구하다 보면 배울 것도 평생 한도 없이 많은데, 상대방 집의 단점 잘못된 것만 뽑아내면 그 어느 인간인들 그거 합격하겠습니까? 또 그렇다고 단점이 있는데 좋은 것만 보고 다 단점을 덮어버리면, 나중에 뒤 고장 누가 책임질 겁니까? 장점을 보고 서로 배우고 협력하며, 서로에게 있는 단점을 찾아서 고치는 이게 부부고 이게 부모 자녀입니다. 부모 자녀도 그렇습니다.
 
자녀가 부모 단점 발견해서 욕을 하려면 죽는 날까지 믿을 것도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부모는 틀렸다고 욕해봐야 자기한테 남는 게 없지 않습니까? 자기를 위해서 부모의 좋은 점 먼저 배우고, 어떤 부모든지 아쉬운 게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 그 단점은 잘 보고 나는 맞고 고쳐야 되겠구나. 그러면 부모보다 나은 자녀 되고 부모보다 나은 자녀 되면, 2대 3대 가면 세상 점령 다 하게 돼 있습니다. 그게 잘 안 됩니다. 부부도 부모 자녀도 목회자와 교인도 그렇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인간관계를 하나님은, 그냥 대충 대충 짜 맞춘 것 같은데 믿는 사람은 자기 가족, 부부, 교인, 자기 주변을 잘 들여다보면, 이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 친구에게 좋은 거 배우게 하고, 이 사람에게 친구의 단점을 주며 그거 조심을 시키며 양면으로 길러갑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바리새인 집에 갔는데 1절 끝에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더라. 뭔 흠을 하나 잡아낼까? 그건 스스로 망하는 길입니다. 주님이야 흠이 있습니까? 우리가 흠이 있지. 흠 없는 주님에게 흠이 없으니 나중에는 흠을 만들어가지고 십자가에 처형을 했습니다. 죽이면 죽을 줄 알고 그게 자기들 죽는 일인데 그 신앙의 자세를 말합니다. 중요합니다.
 
2절에 안식일에 식사하러 초대받아 갔는데 고창병 든 사람이 있더라. 몸이 붓는 병이라 그랬습니다. 고창병은. 먹을 것도 있고 먹었으면 내 보낼 것도 있는 겁니다. 먹기만 먹고 놀부처럼. 놀부는 저 남원 사람입니다. 우리 위쪽. 놀부보다 몇 배 더 지독한 사람은 우리 위쪽 섬진강 넘어가면, 부산 갈 때 진주 지수 그 진주 쪽 사람들이 남원 사람보다 더 독하다고 거기는 자린고비라고 그럽니다. 놀부보다 더 센 사람, 들어오는 것은 긁어모으고 나가는 것은 무조건 다 막아버립니다. 지식도 도움도 부부도 부모 자녀도 교인들끼리도 세상 살아가며, 하나님이 구원의 은혜를 주셨으면 내가 받은 구원을 전할 줄도 알아야 되고, 모르는 진리를 하나 깨달았으면 모르는 동생 모르는 친구에게 귀띔도 해줘야 되고, 받기도 하고 전하며 자라갑니다. 나무도 뿌리에 영양을 받아 놓고 가지로 뻗지 않으면, 그 둥치는 다 썩어서 도태가 돼 버립니다. 저절로. 문화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고 사람의 인체도 그렇고 인격도 그렇습니다. 세상의 원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가 신앙을 가르치는 자연의 계시입니다.
 
구원을 받아놓고 남한테 소개 안 하면, 너는 알 속 있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천국에 가서야 후회할 거다. 이걸 알리기 위해서 고창병이라는 병을 이 땅 위에 주셨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신부전증 정도입니다. 콩팥이 고장 나오면 이게 배출이 잘 안 돼가지고, 몸이 누렇게 뚱뚱 부어서 고생하는 병입니다. 그거 참 굉장한 고통입니다. 들어오는 것은 좋고 나가는 것은 싫고, 들어오면 나가는 것도 있어야 됩니다. 그렇다고 들락날락 들락날락하다 보면 광화문 네거리에 이거는 벌판이 돼가지고 못 씁니다. 받을 것은 받고 보관할 것은 하고 줄 것은 줘야 되고, 남한테 주는 것은 펑펑 주고 자기 받을 것은 안 챙기면 말라 죽습니다. 영양실조. 받아 챙기는 것은 많고 전하라는 것은 안전하면 몸이 붓는 부종 고창병이 걸립니다. 주님이 안식일 날 고창병을 고쳤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신앙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신앙으로 하나님이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서 나한테 주신 은혜, 뭐든지 하나님이 직접 주시든 간접으로 주시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잘 받아라. 모아라. 동시에 주실 때는 쓸 데가 있어 주시니 내 지식, 내 건강, 내 신앙, 나의 이런 장점은 내 주변에 누구한테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반드시 계산하고 나아가야 됩니다.
 
받는 것은 있고 줄줄 모르는 사람 이게 고창병입니다. 몸이 퉁퉁 붓고 앉았습니다. 몸이 부으니까 자랑입니까? 자기도 죽을 지경이고 의사가 볼 때는 치료가 없습니다. 이걸 주님이 고치며 안식일에 고쳤습니다. 주일이란 예배란 신앙이란, 고창병도 고치고 못 먹어 영양실조도 고치고 뭐든지 잘못된 것은 하나씩 둘씩 배워서 마음도 고치고 생활도 고쳐나가는 게 신앙입니다. 가장 중요한 날이 주일날 고치기 때문에 배우고 고치기 때문에 주일을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다. 이런 일이 1절부터 있었다. 복습입니다. 그리고 5절에 안식일에 네 아들이 또는 소나 나귀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도 구약에 끌어내게 돼 있습니다. 생명은 살리게 돼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반적인 노동 일반적인 돈벌이 일반적인 것은 못하는데, 생존 생명에 관한 것은 구약에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구약에 이런 일을 하게 했느냐? 안식일이란 죽은 걸 살리는 날이다. 이걸 가르치기 위해서 말 못하는 짐승도 구덩이에 빠져 죽을 정도면 안식일 날 교회 가다가 그거 살리고 가야 됩니다. 일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구하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해놓은 겁니다.
 
그다음 7절입니다. 식사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서로 윗자리에 앉으려고 난립니다. 윗자리에 올라가면 출세 아닙니까? 오늘이 선거 날입니까? 구, 군 대표면 군 의원 잘나면 도의원 부산은 부산시 광역시의원 그다음 국회의원 장관, 뭐 못 올라가서 안 믿는 사람은 목숨 걸고 올라가고 많이 잡기위해서 난리고, 주님은 바리새인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부 올라가려고 출세하려고 정신도 없는데, 하나님 없는 죄악 세상에 사람이란 당연히 그러는 거다. 제쳐놓고 천국 갈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위에 하룻밤 올라가는 게 문제냐? 고치는 게 문제다 이걸 가르쳤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이 있다. 많이 고치면 높은 사람입니다. 고칠 게 많으면 죄인이라 말석입니다. 자기 속에 고칠 것이 많아도 없는 척해야 세상에서는 당선됩니다. 대통령 선거 나섰다 떨어진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자기 지은 죄 다 갖다가 고백하면 후보도 안 될걸요? 대통령 된 사람은 자기 그러면 죄 지은 게 없다고 그랬겠지만 없겠습니까? 더 많지. 자기 잘못은 덮어버리고 남의 잘못은 뒤져버리는 것이 타락한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생존법입니다. 그래서 이 잔치에 온 사람들이 서로 윗자리 차지하느라고 눈치 보고 정신도 없는데 주님이, 자기를 들여다보고 고칠 걸 찾는 것이 안식일이다. 고칠 게 많으면 저절로 말석에 가게 돼 있습니다. 죄인이니까 부족하니까. 죄가 있어도 모르는 척 윗자리 또 무식해가지고 죄가 없는 줄 알고 착오로 윗자리, 그건 불신자들이다. 안식일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구원의 주님이 오셔서 빛을 비추고 복음을 가르쳤으니, 그 말씀을 들어보고 자기를 들여다보면, 여기 예배드리는 우리끼리는 교회 주는 생활비 가지고 월급 받고 성경만 연구하는 제가 성경은 제일 잘 알아야 되고, 성경을 제일 잘 알면 저는 제가 제일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모르는 사람이 뭔 성경의 죄가 있는 줄 알겠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으면 많이 읽고 알면 알수록 자기 속의 부족은 더 많이 보이는 법입니다.
 
병원에 X-ray, MRI로 가지고 훑기 시작하면 CT, MRI로 훑은 사람은 고장이 나올 것이고, 검사 안 해본 사람이야 멀쩡하겠지. 멀쩡해 멀쩡합니까? 검사를 안 하니까 그렇지. 안식일이란 오늘의 주일이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고? 근데 나는 어떤고? 이걸 비춰보는 거지, 나는 빼놓고 아버지 집에서 하는 거 보니까, 어머니 저렇고 목사 저렇고 장로님 저렇고 누구 저렇고 누구 저렇고,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 뒤지고 나면 전부 죄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자기는 들여다보지 않았으니 난 의인이고 나머지는 다 저절로 죄인이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무수한 법을 가지고 이걸 가지고 원수만 쳐다보면 전부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 법 가지고 자기를 봐서 되겠습니까? 자기는 조사 안 하고 원수만 조사해야지. 그래가지고 이제 집어넣는 게 세상이고 그런 세상 싸움은 제쳐놓고,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그리해야 되겠느냐? 교인 주는 월급 받아 하루 종일 성경을 읽어 놓고, 장로님은 이 말씀이 문제고 이쪽에 여반들은 이게 문제고 애들은 저게 문제고, 교인들 틀린 것만 연구하다 보면 절 조사하고 검사할 시간 없고, 성경 가지고 교인만 조사하다 보면 가르칠 게 그냥 한도 없이 많아집니다. 이 죄인들. 그럼 귀신이 제 속을 들여다보면서 넌 죄가 없냐? 많이 알면 죄가 더 많을 건데 그러니 아예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남만 돌아보는 겁니다.
 
신앙도 말씀과 신앙과 신앙생활을 가지고 한 가족끼리도, 성경의 설교는 이렇던데 부모님은 말씀대로 사셨습니까? 또 부모님은 주일학교 가서 이거 배웠는데 그러고 있냐? 부부부터 부모 자녀부터 교회부터 말씀 가지고 남 보기 시작하면 이거는 끝없는 전쟁의 시작입니다. 귀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탄이 성경 말씀 가지고 예수님 시험했습니다. 법 중에서는 제일 센 법이니까. 복음이 복음이라는 것은 흔히들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 나누는데 큰일 날 소리, 신구약 전부가 율법이고 전부가 복음입니다. 알고 보면. 말씀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면 나를 고치는 치료입니다. 복입니다. 말씀으로 지는 들여다보지 않고 남만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자기는 안 고치고 남 틀렸다고 손가락질하고 앉았으니까 누가 보면 지는 의사고 지는 건강한 것 같고, 하나님이 보면 이 죄인 중의 괴수인데. 안식일이라는 것은 세상일 급해도 전부 접어놓고, 공부 돈 뭔, 뭔 아무리 바빠도 다 제쳐놓고 가장 급한 것이 하나님 앞에 난 뭐가 잘못됐냐? 나를 고치고 내가 건강해야 그다음 다른 게 있지, 그래서 7일 중에 하루를 주일로 빼가지고, 구약은 안식일의 율법으로 신약은 복음으로 적어준 형태는 달라도 속의 내용은 같습니다. 넌 어떠냐? 말씀으로 내가 나를 먼저 살펴보면 당연히 부족하고, 더 살피면 더 부족하고 더 많이 살피면 더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면 남이 윗자리 가라 아랫자리 가라 할 것도 없이 그냥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설교 때 모두들 다 주목하기가 좋아서 이리 높은데 서 있지만은, 공간적 위치는 제가 제일 높게 서있지만은 제 양심의 말씀의 지식으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제일 부족하다 그러면 목사다운 겁니다. 목사는 많이 위대한데 교인들은 세상 살면서 죄가 많다 그러면 목사 눈먼 목사입니다. 교인은? 성경은 잘 몰라서 성경에 내가 얼마나 틀렸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저렇게 자기가 많이 틀렸다 그러니 난 어느 정도이겠느냐? 감은 잡아야 됩니다. 안식일이란 주일이란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말씀을 가지고 나를 비춰보며,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을 배워야 되며 무엇을 고쳐야 되느냐? 그래서 알아지는 게 많고 고쳐지는 게 많고 나아지면, 저절로 하나님이 볼 때 그거 참 잘 믿는다. 하나님이 윗자리로 올려주십니다. 내려가려고 그래도 저절로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력이 없어 끄집어 내리는데 피해가며 올라가려고 애를 쓰면, 이게 하나님과 직접 충돌이 되는 고민입니다. 그래서 상석 말석 비유는 그런 말씀입니다. 어디 초대를 받거든 말석으로 가라. 속으로 잘랐는데 겸손한 척 하느라고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과 말씀 앞에 잠깐만 생각해 봐도, 아이고 제 자리는 윗자리가 아니라 아랫자리입니다. 자세가 그리 되어야 그래야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12절.
 
오늘 잔치에 모신 바리새인 두목 1절 그에게, 12절 자기를 청한 자들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초대해서 먹을 기회가 있거든, 부자들 잘난 사람들한테 인사를 해놓으면 그 사람들도 너를 청에다가 인사하지 않겠느냐 그리 말고, 13절 가난한 자 병신 저는 자 소경들을 청하라. 너보다 앞을 못 보는 사람 그가 소경입니다. 너만큼 말씀으로 실행을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저는 사람입니다. 너보다 실행이 못한 사람 저는 사람, 너보다 말씀을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소경입니다. 너보다 천국을 덜 준비한 사람 그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 하늘에 부족한 사람입니다. 큰 형은 동생을 보며 너 아직 이거 좀 모르는구나. 이게 사람이 살아가는 길 신앙의 길 이게 더 좋은 거다. 너 숙제 없는 날은 좋다고 그래 쌌는데 지금은 좋겠지. 나중에 어떻게 되겠느냐? 성경에 개미에게서 배우라 했다. 개미도 여름에 양식을 모은다. 미리 준비 못하면 너 개미만도 못하다. 이 한마디를 눈치로 가르치든 조금 도와주면, 이게 바로 자기만큼 못 보는 동생을 눈 띄워주는 것이니 소경에게 신앙의 힘을 주는 양식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가 받은 은혜 자기의 신앙으로 도와줄 사람이 있게 돼 있습니다.
 
1절에서 11절까지는 안식일 주일 신앙의 모든 세계란, 하나님 앞에 날 먼저 배우고 고치는 거다. 그리고 나면 좀 나아집니다. 나아지고 고쳐진 걸 가지고 주변에 나보다 좀 뒤따라오는 사람을 살펴 주거라. 이게 12절 이하입니다. 넘겨서 15절, 안식일 날 백성의 지도자가 불러서, 예수님과 여러 바리새인들이 함께 먹던 중에 이제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니까, 함께 밥 먹던 사람 중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는 신앙의 양식 안식일에 대한 핵심 내용을 듣고, 밥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떡 먹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식사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신령한 떡 신령한 양식을 먹는 것이 문제군요. 이렇게 배우고 나면 한마디 응답이 있어야 된다. 그랬습니다. 하늘나라는 신령한 나라인데 뭐 거기서 밥 먹고 떡 먹고 그러겠습니까? 신앙의 양식을 말하는 겁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함께 먹는 식탁에 앉아 하신 말씀을 들으며, 식사하려고 모였는데 주님이 하시는 몇 마디를 들어보니까, 밥을 먹으면서 이 밥이 아니라 신령한 양식을 가르치는구나. 그 말을 듣고 16절 또 한 말씀을 더 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어놓고 전부 오라고 그랬더니 만은, 세상 살아가고 이거저거 하느라고 바빠서 못 온다고 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 십자가 구원 완성하고 천국 백성이 되라고 천국 잔치를 열어놨는데, 전부 세상 사느라고 이거저거 하느라고 관심도 없다. 그러지 말아라. 그리고 21절에 집주인 하나님 아버지께서 종들을 보내며, 빨리 시내 거리 골목을 다니면서 가난한 자 병신 소경 전은 자들을 데리고 와라. 세상 돈 버는데 나처럼 빠른 사람이 있습니까? 너는 저는 사람이 아니니 너는 놔두고 또 저는 학자라 책 읽는데 바쁩니다. 너는 뭘 잘 본다니까 소경이 아니니까 너는 두고 또 너는? 저는 세상에 가진 것이 많아서 재산 정리하고 돈 벌이하느라고 바빠서 교회 못 갑니다. 너도 놔두고 또 너는? 저는 천하의 제일 부자지만은 말씀을 너무 몰라서 소경입니다. 그래? 소경은 와라. 저는 믿는다고 열심히 믿었는데, 믿었는데 되돌아보니 참 실행을 한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별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저는 자다 너도 와라. 그리고 이들에게 천국의 신앙의 건설의 기회를 주셨다. 이렇게까지 나간 것이 24절까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봉독한 25절 이하.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는데 예수님께서 가다가 방향을 돌이켜 돌아보시며 돌이켜 이르시되, 예수님이 앞을 가는데 뒤를 따라오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방향을 틀어 돌이켜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것도 그냥 적다 보니까 길 가는 방향에 예수님이 앞서가고 뒤따라가며 배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뒤따라오는 사람을 돌아보며 가르쳤겠다. 방향 전환만을 두고 이렇게 적은 거 아닙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이르시되, 너들 지금 걸어가는 방향 맞냐? 너 수십 년 잘 믿는다고 간 방향 맞냐? 감리교 니들 감리교 식으로 믿는 거 맞냐? 침례교 너희 정말 맞냐? 천주교 니들 식으로 평생 몇 천 년 믿어왔다는데 그 방향 맞냐? 그거 돌이켜야 되는 거 아니냐? 성경에 방향을 돌이킬 때는 항상 신앙의 방향 한 번 점검하고 가야 됩니다. 주님이 앞에 가시다가 뒤따르는 사람을 향하여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던지는 말씀이 “내게 오는 자” 예수님에게 오는 자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자가, 자기부모 자기처자 여자 기준에서는 남편 아들딸 형제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 말씀 가지고 이단들이 가출을 할 때 부모처자 형제자매 가족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하니까 가족을 던져 놓고 가출하라고 그러는데, 그 보면 부모 버리고 처자 버리고 형제 버리고 자매도 버리고 뭐까지 버려야 되죠? 목숨까지 버려야 됩니다. 교주 너 죽어야 되겠네? 네 목숨은 왜 안 버려? 그 성경 앞뒤를 조금 맞춰보면 그렇게 억해로 곡해로 나가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 부모가 정말로 가로막는다면, 주님을 따라가겠습니까? 부모 따라 절에 가겠습니까? 그때 이야기지. 부모 잔소리 듣기 싫은 차에 이 말씀을 읽고, 나 그냥 나가 살랍니다. 넌 가출이고 부모 무시지, 너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모 형제자매 자기목숨 버리기 쉬워하는 사람들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정말로 주님이 인도하는 이 길에 버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당연히 자기 목숨까지도 버리는 것이 맞으나, 혹시 착각 아니냐? 아브라함이 본토친척 아비의 집을 떠날 때 롯은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롯은 따라온다니까, 하나님 따라가는데 불편 없고 따라가겠다는 롯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데려갔습니다. 안 따라가겠다 그러니까 고향을 버려둔 거지. 그리고 27절 누구든지 주님을 따라가려면 주님처럼 자기 십자가 어려움은 각오해야 된다. 어려운 각오 없이는 주님을 쫓고 따라가지는 못하는 법이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어 배우려면 미국 가야 될 것이고 미국까지 못 가면 외국어학원 가야 될 것이고, 또 수학 배우려면 수학시간 주저앉아 있어야 될 것이고, 시간 골치 아프지만 투자하지 않고 배우는 게 있습니까? 운전면허증 따려면 시간 돈 놀라는 거 다 거쳐야지. 주님을 따라가려거든, 주님도 십자가를 먼저 지고 갔는데 그 길을 뒤따르다 보면,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주변 때문에 마찰과 불편은 있기 마련입니다. 있기 마련일 때 평소에 그냥 집이 갑갑해서 나가고 싶던 차에, 이런 누가복음 14장을 읽고 가출만 하면 전부 믿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줄 알고 기어 나가싸는데, 너 저 자식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을 가는 거냐? 정말로 주님 때문에 따라가는 제자냐? 이렇게 따져보면 정말 가족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가야 되는 이런, 뭐 평생에 한 번이나 두 번 있을까 없을까 그렇지, 그렇게 많지를 못합니다.
 
오늘 말씀은 결론적으로 그것이 아니고 28절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데” 망대라는 것은 높아야 망대입니다. 적이 오기 전에 미리 멀리 오는 적을 발견하려면 망대를 세워야 되는데, 망대라는 것은 높을수록 좋습니다. 낮은 망대는 필요가 없습니다. 망대는 높아야 됩니다. 망대의 본질이란 높아야 됩니다. 배의 본질이란 물에 던져놓으면 떠야 배입니다. 배가 물에 가라앉으면 잠수함도 아니고 그건 침몰입니다. 그건 배가 아닙니다. 날라야 새지, 잡아먹어야 맹수지, 높아야 망대입니다. 높은데 왜 높으냐? 적을 미리 발견하여 준비하려고. 망대란 평소 적이 없을 때 쌓아서 높이 올려놓을수록 좋은 망대입니다. 요즘처럼 시대적인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인 어려움, 신앙의 어려움 거의 어려움은 없는 이런 때 시대적으로는 어려움이 없는 이런 때, 좋은데? 망대 안 쌓는 사람입니다. 좋은데? 망대 필요 없다는 사람입니다. 북한의 주적은 남한을 손대지 않을지라도 귀신은 믿는 사람 그냥 두는 수는 없습니다. 중국은 우리를 5천 년 집어 먹으려고 늘 드나들었지만, 요즘은 세계 눈치 보느라고 함부로 손은 못 댈 겁니다. 중국은 우리를 집어 삼키지 않을지라도, 귀신이 믿는 사람의 신앙을 그냥 두는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뭐 신앙 자유 있지, 세상 좋지, 경제 좋지, 건강하지, 요즘은 뭐 그냥 기독교 선진국 기독교 문화국이 되어 이렇게 좋습니다. 넌 준비가 필요 없단 말인데 넌 적이 오지 않는다는 뜻인데, 벌써 그냥 귀신한테 삼킨 사람입니다.
 
남한의 그 어떤 인간이든지 그 인간 입에서, 아이 뭐 북한이 우리를 쳐들어오려고? 그 인간이 간첩입니다. 그 역적이지 딴 역적이 따로 있습니까? 6.25때 그렇게 당해보고 새도 한 번 화살에 빗맞아 놓으면, 나무 가지 중에 굽은 가지만 봐도 날아가다가 깜짝 놀란답니다. 말 못하는 등신 같은 새도 한 번 놀라보면 다음에는 조심을 하는데, 6.25에 온 나라 그만큼 놀래 봤으면 북쪽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그게 애국자고 정상입니다. 아니 뭐 핵 만들어 설마 우리한테 쏠려고? 그 인간들이 지금 일을 벌일 인간들이지. 여기 망대를 가르칩니다. 망대란, 이 서지 눈 떴나요? 망대란 뭐가 망대라고요? 높아야 망대입니다. 높아야 망대. 왜 높죠? 전망대 구경하려고? 사진 찍으려고? 날 좀 보라고 우뚝 서서 명예심 때문에, 높아야 막대인데 높아야 되는 이유는 적의 공격을 미리 알기 위해 준비입니다. 준비. 신앙은 늘 말씀을 높여 높은 도의 말씀으로 미리 봐야 되고, 말씀으로 세상을 미리 보고 높이 보지 않으면 싸워 볼 것 없이 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코로나 기침소리 들리니까 전부 한국 교회는 다 죽어버렸습니다. 준비를 안 해 놓으니까. 정부 발표대로 따라가는 게 교회라고 교계 지도자들 일치해서 전부 다 짖어댔지. 정부에서 교회 없애라면 그것도 순종할 건가?
 
왜놈들이 36년 식민지 삼을 때에도 예배당 문 닫으라 소리는 안했습니다. 인민군들 저것들이 내려 와가지고도 예배당 문 닫으라 소리 한 데는 없었습니다. 핵심들 잡아가서 고문은 해도. 자유대한에서 알아서 자기 건강 알아서 할 건데 예배당 문을 닫으라니? 저것들은 몇 백 명 모여 앉아가지고 식사하고 회의하고. 평소에 미리 준비하고 미리 계산해 놓지 않으면 들이닥치면 전부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 삼키는 겁니다. 임진왜란 500년 전 400년 전입니까? 500년 전, 부산 앞바다 들이닥치니까 그냥 서울까지 한꺼번에 그냥 다 죽어나가듯이, 준비 못하니까. 부산 앞바다에 그냥 망대 세우고 배 한 척 띄워서 쳐다만 봐도 전부 다 현해탄 바다에 다 수장을 시켰을 건데, 그런 안 믿는 세상 역사 몇 가지를 우리에게 보이면서 성경에 망대를 적어놓은 것은, 그냥 하필 망대는 세울 때 예산이 있어야 세우는 거다. 그러려고 하필 망대를 했을까? 성경을 차분하게 읽어보면 망대는 많이 나옵니다. 항상 망대가 나올 때는 높아야 됩니다. 그리고 적에 대한 준비입니다. 북한? 일본? 중국? 어디가 적이죠? 뒷집? 앞집? 부부들 싸우고 나면 부부끼리 서로 원수 돼서 서로 망대 세워서 몰카하고 다 조사하고 그래야 됩니까? 그건 세상 생활이고. 귀신이 네 마음의 방심을 통해 귀신이 네 마음속의 약점을 통해, 언제든지 죄짓게 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는데, 말씀의 도를 높여 내려다보지 않으면 판판이 귀신에게 싸워도 못보고 다 당한다. 망대는 죄와 악령과 세상이 우리의 신앙을 삼키는 이런 원수 이런 공격, 미리 살펴볼 수 있도록 신앙은 높을수록 좋은 겁니다. 신앙의 지식이 높다고 신앙의 행위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알기를 알아야 따라 올라가지. 아는 것은 많이 알수록 좋습니다. 실행이 모자라는 것은 실행으로 따라가면 됩니다.
 
신앙이란 망대가 필요하다. 미리 알고 미리 배우고 미리 보지 않으면,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666이라는 단수를 가진 악령에게는 이건 싸워보지도 못하고 삼킨다. 주님을 따르려 하느냐? 1절부터 안식일 날 주님에게 배우고 싶으냐? 맞다. 고치고 싶으냐? 잘한다. 배우고 고쳐보면 얼마나 네가 부족한 줄 알 것이다. 맞다. 그걸 고쳐보려고 하면 노래 부르며 놀러 댕기며 찬송하면서 고치느냐? 아니다. 몸도 고치려면 언어도 발음을 고쳐보려면 기술도 배워보고 고쳐보려면, 뭐든지 새로 배우고 새로 고치고 새로 자라갈 때는 항상 어려운 거다. 당연한 거다. 이걸 신앙으로 말하면 주님이 앞서가신 십자가의 길이다. 근데 세상 기술 세상 돈벌이는 배우고 고치는데 어렵고 성공도 하지만 하룻밤 지나가고 나면 헛일이다. 천국의 영생을 향하여 마련하고 나아가는 우리가 배우고 고치는 것은, 한 번 배우고 고쳐 놓으면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으로 써먹는 영생이다. 세상 하룻밤 수고는 당연하니까 수고는 각오 하거라. 그런데 그 수고를 할 때 일주일에 1시간은 교회에 앉아줘야 되지 않을까? 다리가 불편한 분은 일주일에 한 번만 와도 하나님께서 100점 매길 겁니다. 제가 일주일에 두 시간 교회 오면서 한 시간만 오는 분보다 저는 두 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는 월급 받지 않냐? 당장에 그러지 않겠습니까? 너는 80에 집 앞에도 나가기 어려운데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왔냐? 100점. 너는 30살이라서 날라도 갈 수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 왔냐? 너는 빵점 그럴 겁니다. 사람마다 주신 위치와 달란트가 달라서 점수가 다 달라집니다.
 
전부가 공통적인 것은 신앙이란 주일이란 예배란 말씀이란, 몰랐던 거 배우고 또 내 속에 배우며 잘못된 거 고쳐가며 그리고 점점 신앙을 길러가는 것인데, 그 과정에 어려움은 당연한 것이니까 징징 짜지 말아라. 당연하다. 운전 배우느라고 몇 달 식겁 먹고 그러는데 아이고 귀찮아서 못 배우겠습니다. 그런 사람 봤냐? 다 아는데, 몇 번 실수하고 그러다 보면 익혀지고 익혀지면 자가용을 가지고 끌고 댕기는 그 소망 때문에 전부 운전 배우지 않냐? 영어 그 뭐 같은 거 배우느라고 전부 시간이고 노력하지 않냐? 두고 갈 세상 것은 배우느라고 있는 힘을 다하면서 10분의 1, 100분의 1도 예수 믿는데다가 대고 쏟아 넣지를 못해? 10분의 1, 100분의 1도? 그 아예 무시하는 거지. 신앙으로 배우고 고치고 신앙으로 자라가는 이건 영원히 써먹는 영생인데 조금 수고는 해라. 그렇다고 많은 수고를 맡기지도 않습니다. 사람 봐가며 조금 조금만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수고라도 수고는 해야 됩니다. 어느 정도 수고를 할 것인가 계산을 하거라. 망대를 세우는 데 얼마 정도 시간이 얼마 정도 자본이 얼마 정도 드는지 계산을 해라. 망대는 쌓다가 중간에 말면 이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배를 만들다가 한 절반 만들어 놓으면 그게 배입니까? 사과는 절반 먹으면 절반짜리 사과입니다. 다 먹으면 다 사과고. 배는 만들다가 90% 만들고 말면 배가 아니라 그건 침몰입니다. 못 쓰는 겁니다.
 
주님 따라가는 길은, 어리면 어린대로 신앙이 있으면 있는 대로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고 입장이 있는데, 아이는 아이만큼 저는 저만큼 각자 자기에게 주신 기회 자기에게 하나님이 원하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건 다해라 작아도 되고 많아도 되고. 할 수 있는 분량을 다하지 않으면서 신앙에 준비를 한다 그러면, 그거는 망대를 세우다가 중단한 사람이다. 적을 발견 못 한다 적에게 삼킨다. 세상 살아봐야 귀신 좋아하는 걸로 끝나버린다. 모든 신앙의 준비만 하면 다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신다. 아이는 아이만큼 신앙이 없는 사람은 없는 만큼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만큼, 아는 사람은 아는 만큼 자기 신앙의 양심이 자기한테, 넌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알려줍니다. 그거 계산해라 그리고 그건 각오해라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전부 해결하신다. 이게 14장 끝까지의 말씀인데 중간에 요나서로 갔다가 마태복음으로 오는 바람에 이 부분이 빠졌습니다. 오늘 말씀 간단하게 다 잘 파악하셨습니까? 배우는 게 신앙입니다.
 
배운 만큼은 고치려고 노력해야 그게 신앙입니다. 실제 그렇게 보면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압니다.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 하나님이 고치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난 부족한데 하나님이 볼 때는 무럭무럭 자라는 겁니다.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이렇게 자라가는 겁니다. 난 부족한데 남이 볼 때 아 괜찮다 이리되는 게 신앙입니다. 조건은 말씀으로 배워 자기를 좀 고쳐보려면, 어리면 어린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자기의 신앙의 양심이, 그 정도 배우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이 정도니 넌 배우고 고치는데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제가 여기 있는 주일 학생을 나하고 비교하면서, 아이 주일 학생 요만큼 하는데 저도 요만큼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게 준 다섯 달란트 다 어디 갔느냐? 엄청나게 심판이 커질 겁니다. 또 주일 학생이 저만큼 믿는다고 애를 쓰면 의도 지나치면 어떻게 된다고요? 기한 전에 죽는다. 하나님 주신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나는 신앙생활에 또 새로 배워보고 새로 고치는 이 정도를 시간으로 경제로, 또는 기회로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됐다. 그 정도는 해야 되겠다. 각자가 찾으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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