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5.30 마11:5 인격과 신앙의 나병, 죄로 인한 원인 결과를 보지 못하는 더러움, 결혼 출산의 무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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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5.30 마11:5 인격과 신앙의 나병, 죄로 인한 원인 결과를 보지 못하는 더러움, 결혼 출산의 무감각

관리1 0 142 2022.05.3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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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월새
 
제목 : 인격과 신앙의 나병, 죄로 인한 원인 결과를 보지 못하는 더러움, 결혼과 출산의 무감각
 
찬송 : 5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본문 : 마태복음 11장 5절 -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 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구원의 주님이 증명을 이렇게 여섯 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신인양성일위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 아니고는 보는 문제 해결할 수 없고 실행하는 문제 해결할 수 없고 깨끗해 질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살아날 수 없고 하늘의 복음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어제 오전 오후를 통해 소경이 보며 천국이 보여야 그게 눈이지, 하나님이 보여야 그게 눈이지 세상만 보고 인간만 보면 그것도 본다고 할 수가 있는가? 천국을 본다 말은 공간적인 그림 모양을 살피는 것이 아니고 완전의 나라, 영원불변의 나라, 그건 오늘 이 땅 위에서도 만들 수 있고 그려볼 수 있고 가져볼 수가 있습니다. 이걸 찾는 눈, 이걸 보고 걸어가는 그 걸음이 앉은뱅이였는데 일어나 걷는 것이 되어 집니다.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사의 기록에 수없이 기록한 것이 다윗의 길로 행하고 아합의 길로 행하고, 그 아합이 아합의 길,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더라, 행하여 복 받더라, 행치 않더라, 수 십 번 왕 들마다 계속 손 꼽아가며 그리 말합니다. 다윗의 길, 순종의 길, 믿음의 길, 다윗이 걸어간 이 골목 저 대로 그 길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 가라시면 어디든지 갔던 그 실행, 사망의 음침한 길도 주님 모시고 간다면 갈 수 있는 그 순종, 견딜 수 없는 오해와 박해 가운데, 주님만 바라보고 걸어간 소망의 길, 이런 길을 걸은 걸음을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더라, 아합의 길로 행하였더라. 아합의 불신, 아합의 미신, 아합의 강팍 이걸 흉내 내고 이걸 따라가면 아합이 받은 그 화를 당하게 됩니다. 다윗의 순종을 본받으며 뒤따르며 그렇게 걸어가면 걸음걸음이 다윗처럼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빌라델비아 교회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다윗의 열쇠 다윗이 걸어간 그 길을 걸어가니 열린 문을 두었도다, 자연도 막지 못하고 원수도 막지 못하고 세상 그 어떤 것도, 다윗의 비밀, 열쇠란 비밀, 해결, 비록 연약하지만은 주님만을 믿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그 비결 하나에 막히는 것 없이 전부 다 열려버리더라. 이게 앉은뱅이가 걸어가는 것이 되어 집니다.
 
먼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은 진리고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게 기본입니다. 말씀 순종 안에 나에게만 해당되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 이걸 찾아 여기 순종하는 것이 앉은뱅이가 걸어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없으면 성경을 책으로는 읽어도 성경 말씀에 기록한 진리는 깨닫지를 못하고, 주님이 아니고는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내게 대한 주의 뜻을 발견하고 걸어가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예수님이 피 흘려 구원하신 믿는 사람만, 가로막는 죄를 해결했고 가로막는 불의를 해결했고 가로막는 하나님과 원수의 막을 터버렸고. 한 치의 앞을 쳐다 볼 수 없는 소망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사죄로 걸어가고 칭의로 걸어가고 화친으로 걸어가고 영생의 소망으로 걸어가는 이것이 바로 인간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되어 집니다. 개가 개답게 살아야 개의 걸음을 걷는 것이고 말이 말답게 뛰어야 말이 달리는 것이고, 여성의 걸어갈 길, 아이의 갈 길, 왕의 앉을 자리, 믿는 사람의 도리, 난 어떤 길 어떻게 걸어가는 것이 주님이 내게 원하는 걸음인가? 이게 앉은뱅이 걷는 것인데 이건 예수님의 대속이 없이는 안 되는 일입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혀버렸습니다. 천국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본 구원으로 이게 열렸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격, 권리,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학교 갈 기회가 주어진 것과 등록금을 내서 입학증을 받아준 것과 공부하는 것은 다릅니다. 합격증 받아 놓고 학교 안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등록금 냈는데 학원 안 다니는 아이도 있습니다. 가다가 새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등록금 없고 입학증 합격증 없으면 가고 싶어도 못 들어오게 막아버립니다. 등록금 내서 합격증 학생 합격증 갖다 준 것은 학교를 가서 공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고 이게 기본 구원. 그 기회를 가지고 등교했고 공부했고 배운 것을 담아왔으면, 그게 건설구원입니다. 천국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중생입니다. 세상 사는데 정신이 없어 볼 수 있는데 안 봐버렸으면, 안 믿는 사람이나 결과적으로는 같아 보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보지를 못했고. 믿는 사람은 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보지를 않아서 또 못 봤고. 볼 수 있는 기회 주셨으니 보고, 주님으로 보는 겁니다. 그럴 수 있는 기회 주셨으니, 걷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오늘 아침, “문둥이가 깨끗하여 지며”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만들어 놨는데 죄를 지어 더러워졌습니다. 깨끗하게 씻어 놓은 아이가 엉망이 흙탕물에 뒹굴다가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옷도 사람도 못 알아 볼 만큼. 눈으로 볼 때 사람이 변형이 되고 살이 썩고 그리고 뭔가 뭔지 감각이 없고, 이게 나병입니다. 인격에 죄가 들어가면 사람이 이리 돼버립니다. 이 땅 위에 소경을 둔 것은 못 보는 사람이 있다, 못 보면 저렇게 불편하다, 보는 사람이 되라, 는 말입니다. 세상에 있는 소경, 그 불편 그 딱한 형편을 겪어보며, 눈은 못 봐도 천국은 봐야 되겠구나, 이리 되어져야 됩니다. 안과과서 눈을 보고 말고 이것만 알면 봐도 소경 안 봐도 소경입니다. 보이는 소경을 보며, 천국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살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되면 소경도 눈을 떴고 눈뜬 사람도 이제 눈을 뜬 것이 되어 집니다.
 
“문둥이가 깨끗하여지며” 왜 나병을 역사적으로 주셨는가? 지금은 나병 환자가 없어 성경에 그렇게 많이 신구약에 기록한 문둥병을 나병이라 합니다. 나병이 뭔지 보고 있어야 실감을 하고 깨달을 건데 이게 없는 시대도 이게 좋은 게 아니라 이것도 불행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길에 나가면 못 보는 소경을 더러 볼 수가 있었습니다. 흔하지는 않아도 주변에 소경 보는 것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왜 예전에는 소경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귀머거리가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는 턱에 목덜미에 주먹만 한 혹을 달고 있는 혹부리 할머니 혹부리 영감님 이렇게 모두들 그렇게 큰 혹을 달고 다니는 분들도 그렇게 많았습니다. 지금은 아예 못 보시지요. 앉은뱅이 시장에 가면 자동차 타이어 위에 자기 몸을 붙여서 끌고 다니면서 구걸하는 분들 그렇게 많았습니다. 왜 장애자라는 장애자를 거의 다 없애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상 낙원이 됐다 그러는데 육체의 앉은뱅이, 육체의 소경, 육체의 나병, 육체의 귀머거리는 거의 다 없애버렸는데 인격의 앉은뱅이, 인격의 소경, 인격의 나병은 아닌 사람이 없도록 그냥 천지에 차고 넘칩니다. 눈에 보이는 소경이 좀 있으면 아, 못 보는 게 저렇게 답답하구나, 난 천국을 보는가? 이렇게 문답이 오고가며 자문자답을 통해 좀 보려고 노력이라도 할 건데, 지상낙원인데, 이렇게 좋은데 뭐가 아쉬워서 그래서 그냥 모두 아래위에 즐기라는 소리만 난리입니다. 즐거워할 걸 즐겨야 되는데 뭔 이거든 저거든 네 멋대로 즐기라고 위에도 밑에도, 유명한 사람도, 너도 나도 그냥 온 부모라는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태어날 때부터 행복 하거라, 즐거우라, 거, 애 속에 무슨 철이 있다고 아이란 저 망할 것 밖에 모르는데. 바른 지식을 넣고 인격을 바르게 만든 다음 바른 길로 걸어갈 때 오는 행복, 옳은 길로 걸어갈 때 느끼는 그 감사, 이걸 감사하고 이걸 즐거워하라,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는데.
 
일반적으로 장로교의 헌법처럼, 상식입니다. 우리만 빼고. 모든 장로교회의 헌법에 요약의 제 1조 1항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좋습니다. 하나님 모시니 이렇게 기쁩니다.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든 목적이다 이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제 1번입니다. 우리는 싫어서 그걸 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식이니까. 아, 사람이 외출하면서 이마에다 대고 ‘나 사람이다’ 이렇게 써 붙입니까? 당연히 사람이지. 사람인지 강아지인지 헷갈려 모르던 천년의 중세 천주교 시절에 하도 교황중심으로 이상하게 교회와 천하를 변질을 시켜가지고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라고 성경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해서 공과처럼 모두 상식적으로 배우게 했었습니다. 수 백 년이 내려오다 보니까 이제 더 발전해서 나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무시가 아니라 알고 상식이니 그 다음 나간다고 그걸 굳이 외우고 그러지 않았을 뿐입니다. 장로교를 교리적으로 요약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다. 우리 빼고 모든 장로교는 입에 달고 댕깁니다. 그 제일 첫 번째 줄이 하나님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그러므로 인간의 제일 되는 목표가 뭐냐?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만 기쁘고 하나님이 있으면 전부고 하나님 모셔보면 이렇게 행복하고, 다른 것은 전부 제쳐놓고 이것이 1번이다. 첫사랑의 남녀가 쳐다 만 봐도 그냥 안 먹어도 배부르고 모든 것이 다 좋고. 그냥 너 있으니까 나 좋고, 나 있으니까 너 좋고 이것만 딱 추릴 때 그게 순수한 사랑이라 그럽니다. 반지를 주니까 좋고 외식을 하니까 오늘은 마음이 풀어지고 이건 벌써 변질된 사랑이고 고장 난 이건 장애입니다. 너 때문에 나는 좋고 너만 생각해도 좋고 너면 전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하나님은 나 때문에 그 고생을 다하셨고, 나는 하나님만으로 전부를 삼고, 여기에 죄가 들어가니까 앞도 보이지 아니하고, 가야할 길 걷지도 아니하고 그보다 더 문제는 전부가 더러워져버렸습니다. 천국을 못 보는 것은 소경을 만들면 아, 저렇게 못 보는 것이 큰 문제구나. 앉은뱅이를 옆에서 보면 발이 고장 나서 못 걷는 것이 저렇게 불편하구나, 실감을 하는데 예전에는 천하에 어디나 어디든지 집안마다 나병 환자는 다 있습니다. 우리 신풍도 보니까 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차 씨 집안, 여기 유 씨 집안, 어디 박 씨 집 안, 할 것 없이 최 씨 집 안 말할 것도 없고 집안 별로 동네 별로 나환자 한분씩이 다 있었습니다. 한 집안에 한명 나오면 모두가 바짝 긴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아, 참 큰일이다 뭐 코로나가 뭐 근처에 갑니까? 나병? 그러면서 하나님은 보이는 살과 피부병이 문제가 아니다, 죄를 가지면 신앙과 인격이 더러워진다, 더러워지는 것이 뭐 옷 먼지 묻은 것 털면 그만 두는 그 정도가 아니다 나병은 피부 자체가 썩어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문둥이라 그럽니다. 문드러진다. 물러진다. 물이 들어가면 물컹물컹 해지는 ‘물’ 자가 들어가는 거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글에. 사람이 무르다. 물렁물렁 하다. 단단하지 못하다. 그게 물렁물렁, 물컹물컹 그다음, 이렇게 단단한 것이 스러지고 내려앉으면 문드러진다. 한마디로 딱 잘라서 문둥이다.
 
죄를 가르치는 겁니다. 경제에 죄가 들어가면 경제적으로 전부 다 물러지며 다 무너져버립니다. 무너집니다. 도덕에 죄가 들어가면 도덕이 다 문드러집니다. 남녀 이성에 죄가 들어가면 남녀 이성이 요즘처럼 이 판이 돼버립니다. 남자 아이를 길러 엄마 아이를 만들겠답니다. 여자 아이 딸을 길러 아빠를 만들겠답니다. 이 세상 이 정도로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이게 자랑스러운 건데 이걸 만약에 손가락질 하면 손가락을 부러뜨려버린다고 법을 만들고 앉았습니다. 이 사회가 전부 나병환자가 돼버렸습니다. 나병의 시작이 아니라 지금 중증으로 가고 앉았습니다. 스물을 넘고 결혼을 안 하면 결혼에 가정적으로 나환자가 돼 버렸습니다. 스물다섯 서른에 결혼도 안하고 얼굴을 치켜 들고 다닙니다. 나병환자는 얼굴이 문드러져서 감추고 다니고 밖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의 나환자들은 남녀 이성에 문드러진 인간들은 환처가 심할수록 날 보라고 펄펄 뛰며 테레비에다 대고 뭔 이마에 눈썹에 그냥 입술에 그냥 화면을 가득 이렇게 담아가지고 날 보라고 펄펄 뛰고 앉았습니다. 창피한 줄 모르고.
 
피부병의 나병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불편한 것이지. 요즘은 약으로 다 치료해서 없습니다. 인격과 신앙의 나병은 창궐하고 있습니다. 독감 창궐 코로나에도 천하가 벌벌 맸는데 독감보다 열배가 아니라 백배 더 흉측하고 불편하고 끝장을 보는 이 나병이 부부에, 가정에, 자녀에, 출산에, 결혼에, 남녀 이성의 기준에 전부 다 내려 앉아버렸는데 더 자랑하고 앉았습니다. 우리교회도 나병 환자 있는 가정 아닌 가정이 별로 없어서 문둥병에 대한 설교를 좀 자주하고 싶어도 집안 별로 없는 분이 별로이 없는데 또 어느 분 겨우 교회를 어떻게 나왔는데 그런 것 때문에 상처 돼 나온다, 못 나온다, 그럴 까봐 저도 집안적으로 나병환자가 있습니다. 외삼촌. 몰랐습니다. 초등학교 이, 삼학년이나 됐는데 어머니가 한번은 어디 가자 그러고 날이 좀 어두움이 조금 깔리는데 외갓집에 뒷마당으로 가가지고 뒷마당에 쌀을 모아놓는 쌀 창고, 쌀이 좀 많으니까 쌀 창고가 따로 있었는데 그 쌀 창고 앞에 가가지고 저를 이렇게 서라고 그래요, 쌀 창고 앞에 가서 서라 그래서 이게 뭔고 어리니까 모르니까 이렇게 해서 했지 똑바로 서라, 앞을 봐라 몇 번 그러다가 이제 가자 그래요, 뒤에 알고 보니까 외삼촌이 나병이 걸렸는데 애양원 같은 데 보내면 사랑하는 가족을 못 보니까 또 동네 소문나면 큰일 나니까 몰래 감춰가지고 돌아가실 때까지 집안에 모시고 있었던 겁니다. 어두워지고 밤이 되면 대문 걸어 잠그고 가족끼리 얼굴보고 낮에는 쌀 창고 안에 그냥 성경 읽고 계시고 그랬던 겁니다. 저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드리면 오해가 좀 덜할는지.
 
이번 주간, 죄 중에서도 남녀 이성의 죄처럼 코로나 같이 빠르게 바로 전파되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죄 중에서도. 경제 도둑놈 게으른 것 등등은 전파력이 그렇게 강하지를 못합니다. 남녀 이성의 죄는 코로나처럼 그 뭐 천하에 그냥 단번에 전부 다 삼켜버립니다. 그 결과는 코로나 정도로 기침 몇 번 하는 것이 아니고 목이 아픈 것이 아니라 이건 피부와 용모 자체를 전부 썩혀 버립니다. 스물 넘고 결혼 안 하는 사람은 이성적으로는 전부 문둥이들입니다. 스물 넘는 여자가 아기를 못 낳으면 그만하면 장애지. 질병 중에 하나를 꼭 찍으라면 나병이 들어 그런 겁니다. 팽팽하고 생생한 얼굴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온갖 남자를 다 흔들어 놓습니다. 예전 같으면 만장 가운데 때려죽일 죄인들인데, 이것들이 더 큰 소리를 치고, 노아 홍수는 물로 천하가 가득했지마는 지금은 나병으로 차고 넘치고 홍수가 나서 다 빠져 죽어버렸습니다. 몇 남지를 않았습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세 가지 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주변에 나병 환자가 보여야 내 모습이 저렇구나, 우리 딸 모습이 저렇구나, 우리 아들이 모습이 저렇구나, 내가 저렇구나, 그럴 건데 전부 깨끗하게 성형수술까지 해 가지고 그냥 도배장판을 매끔하게 해 놓으니까 속은 얼마나 더러운 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걸 봐야 소경에서 떠납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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