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5.27 마11:16 곧 오실 심판의 주님, 요한의 사무치는 간절과 염려, 그 실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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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5.27 마11:16 곧 오실 심판의 주님, 요한의 사무치는 간절과 염려, 그 실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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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요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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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27 금새
 
제목 : 곧 오실 심판의 주님, 요한의 사무치는 간절과 염려, 그 실감성
 
찬송 : 115장 (나의 갈 길 가도록)
 
본문 : 마태복음 11장 16절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소돔에 의인 롯을 보내시고 이어 천사 둘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드러날까? 가인은 하나님이 에덴의 동쪽을 막아놨는데 동쪽으로 가버렸습니다. 어두우니까 빛을 피하여 떠나버린 겁니다. 바벨탑은 아예 하늘에 닿도록 쌓아버려 그거 뭐 출입이고 뭐고 다 막을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니느웨는 막지는 않아서 요나가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구약에 신 불신을 막론하고 하늘의 하나님은 공의롭게 필요한데로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구원의 완성을 해야 되는 이 시점, 이때 요한을 시대에 먼저 보냈습니다. 요한이 먼저 오면 뒤에 오시는 주님은 회개의 복이 되든지 아니면 멸망이 되든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시게 되는 겁니다. 역사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영원한 천국에 이런 영광을 받게 되어 지고, 주님 오실 때 불택자들은 완전히 멸망 받습니다.
 
주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맞느냐? 이게 문제지. 지금 성탄절에 안 믿는 사람들까지 들썩거리는 거 그들을 심판하러 오셨는데 그들이 자기 명절이라고 쉬고 잔치하고 선물 보내고 그러니 참, 보통 제정신 아닙니다. 석가 태어났다고 우리가 잔치할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이 처음 오시던 때를 초림이라 그럽니다. 초림의 주님. 오시면 구원과 멸망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먼저 요한을 보냈습니다. 요한을 두고 18절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했더라. 요한이 왜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을까?
 
주님이 오셔서 구원의 주님으로 맞으면 잔치할 일인데, 주님이 들이닥치는데 준비 못하면 멸망의 주님이 되어 집니다. 같은 민족 구약교회, 사랑하는 형제들이 전부 구원의 주님으로 맞으면 좋겠는데. 이거 구약 교회 당시까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건 뭐 그냥 전부 실패지. 이거 오시는 주님을 메시야로 구주로 맞을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뒤에 보면 주님을 모신 요셉과 마리아 부부 하나, 준비하러 보낸 요한의 부모님 둘, 그 다음에 동방의 박사. 그 다음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 마지막으로 시므온과 안나처럼. 시므온과 누구지요 여선지? 안나? 성전의 기도생활하며 주님을 기다린 둘, 종류로 다섯, 숫자로 몇 되지 않는 그들만 오시는 주님을 구주로 맞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멸망의 주님으로 맞았습니다. 아예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뭐 폭동을 일으켜 불신 빌라도가 당황할 만큼. 이렇게 끝장을 내고 망할 길로 치달아버렸습니다.
 
그들은 2천년 지나도록 일부는 알고, 대부분은 모를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순서대로는 전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기들 인줄 알고 가슴을 치고 영원토록 후회할 것이고 살아생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오시는 주님을 준비하러 먼저 왔고, 알았고 뱃속에서부터 시작을 했고 그런데 오시는 구주를 멸망의 주님으로 상대할 형제들 온 민족인줄 알았기 때문에 밥이 입에 넘어가겠습니까?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 했더라”
 
가정에 큰 근심거리가 있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고, 생존의 본능 때문에 먹고 마시고 피곤하면 잠은 자지만, 건강할 때는 자면 잠도 바로 오고, 또 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 몸도 개운하고 움직이면 배가 고파 뭐 다 맛있고 이게 정상입니다. 너무 큰 근심이 깔려버리면 자도 개운치 않고, 좋은 일을 봐도 좋은 가뿐한 마음 좋은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이게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닥칠 멸망을 눈앞에 미리 보니 선지자입니다. 아무리 외쳐봐야 먹히지를 않습니다. 할 일은 하는데 세대가 강팍하고 돌아 서는 사람 없고 주님은 들이닥쳤고 시간은 가고 구원 아니면 멸망 밖에 없는데, 모두가 멸망의 길로 달려가니 애 터지는 세례요한의 이 마음. 17절에 피리를 부를 때 춤추는 동무가 있는가? 또 애곡하니 가슴을 치는 동무가 있는가? 세례 요한 하나입니다.
 
결혼 때문에 출산 때문에, 유황 불비가 쏟아지는 이런 세상을 맞고도, 노아 홍수 그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다가, 천 번 만 번 할 말이 없는 겁니다. 120년 전부터 예고가 되어졌는데 비가 와서 홍수에 다 잠기는 그날까지라고 그랬습니다. 망하는 그날까지. 120년 여유가 있는데 그날까지. 세례 요한이 주님 오셨다고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구원의 주님이오셨으니 전부 구원의 주님을 가지시라.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이건 뭐 그냥 가면 갈수록 더 합니다. 오늘은 현실마다 기회 되는대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너도 못 박고 나도 못 박고, 부활한 신령한 주님은 눈에 보이는 못은 못 박습니다. 내 양심을 꺾을 때, 주님 내게 원하는 그 간절함을 꺾어버릴 때 이게 주님을 못 박는 행위가 되어 집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금요일이고. 하루 고요함을 가지고 그 다음날 주일날 새벽에 부활함으로 우리에게 세상이 아니라 천국의 산 소망을 열어주셨습니다.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이 늘 운영 되어 집니다. 그 중에 금요일을 당할 때는 늘 날 위해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이라, 마음속에 하나 더 무거운 마음 가지고 복된 오늘이 되도록.
 
멀리, 전체를 위해서는 기도할 힘이 없는 연약한 등불이나, 자기 가정만은 무조건 위해서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간곡하게 “세례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했더라” 안 먹고 살았겠습니까? 살기는 살았지. 요한도 30년을 더 살았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왔습니다. 출산이 예수님보다 세례요한이 6개월 앞섭니다. 그리고 예수님 복음을 전할 때까지 있었으니, 세례요한도 서른 살은 넘겼습니다. 안 먹고 30년 살았겠습니까? 먹었습니다. 먹었으나 먹은 것 같지를 않았을 겁니다. 아예 세례 요한은 제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험한 것으로 먹었지.
 
오늘 하루를 위해서 먹을 것은 드시되, 큰일을 닥치면 먹어도 먹는 둥 마는 둥,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고 걱정되는 일이 마음에 차야 됩니다. 먼저 이 근심, 이 염려, 이게 애절한 기도가 되고 이 기도가 옆으로 번져 지며 모여지면서 니느웨에 주신 긍휼을 받아 올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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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 

220527 금새
 
제목 : 곧 오실 심판의 주님, 요한의 사무치는 간절과 염려, 그 실감성
 
찬송 : 115장 (나의 갈 길 가도록)
 
본문 : 마태복음 11장 16절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소돔에 의인 롯을 보내시고 이어 천사 둘을 보내셨다. 그렇게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드러날까? 가인은 하나님이 에덴의 동쪽을 막아놨는데 동쪽으로 가버렸다. 어두우니까 빛을 피하여 떠나버린 것이다. 바벨탑은 아예 하늘에 닿도록 쌓아버려 그거 뭐 출입이고 뭐고 다 막을 수 있도록 해놨다. 니느웨는 막지 않아서 요나가 들어왔다. 이렇게 구약에 신 불신을 막론하고 하늘의 하나님은 공의롭게 필요한데로 종들을 보내셨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구원의 완성을 해야 되는 이 시점, 이 때에 요한을 시대에 먼저 보냈다. 

요한이 먼저 오면, 뒤에 오시는 주님은 회개의 복이 되든지 아니면 멸망이 되든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역사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시면 영원한 천국에 이런 영광을 받게 되어지고, 주님 오실 때에 불택자들은 완전히 멸망을 받는다. 주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맞느냐는 이것이 문제이지. 지금 성탄절에 안 믿는 사람까지 들썩거리는 것, 그들을 심판하러 오셨는데 그들이 자기 명절이라고 쉬고 잔치하고 선물 보내고 그러는 참, 보통 제정신이 아니다. 석가가 태어났다고 우리가 잔치할 일이 있을까?
 
주님이 처음 오시던 때를 초림이라고 한다. 초림의 주님. 오시면 구원과 멸망으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먼저 요한을 보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요한을 두고 18절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했더라” 요한이 왜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했을까?
 
주님이 오셔서 구원의 주님으로 맞으면 잔치할 일인데, 주님이 들이 닥치는데 준비 못하면 멸망의 주님이 되어진다.(되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 구약교회, 사랑하는 형제들이 전부 구원의 주님으로 맞으면 좋겠는데. 이거 구약 교회 당시까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것은 뭐 그냥 전부 실패이지. 이거 오시는 주님을 메시야로 구주로 모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뒤에 보면 주님을 모신 요셉과 마리아 부부 하나, 준비하러 보낸 요한의 부모님, 둘. 그 다음에 동방의 박사. 그 다음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 마지막으로 시므온과 안나처럼. 성전의 기도생활하며 기다린 둘, 종류로 다섯, 숫자로 몇 되지 않는 그들만 오시는 주님을 구주로 맞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멸망의 주님으로 맞았다. 아예 십자가에 못을 박으라고 뭐 폭동을 일으켜 불신 빌라도가 당황할 만큼. 이렇게 끝장을 내고 망할 길로 치달아버렸다. 그들은 2천년 지나도록 일부는 알고 대부분은 모를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는 순서대로는 전부 십자가에 메시야를 못 박은 자기들인 줄 알고 가슴을 치고 영원토록 후회할 것이고 살아 생전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례요한은 오시는 주님을 먼저 알았고 준비했고. 뱃 속에서부터 준비했고. 그런데 오시는 주님을 멸망의 주님으로 상대할 형제들 온 민족인줄 알았기 때문에, 밥이 입에 넘어갈까?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했더라” 가정에 큰 근심거리가 있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마셔도 마신 것 같지 않고, 생존의 본능 때문에 먹고 마시고 피곤하면 잠을 자지만, 건강할 때에는 자면 잠도 바로 오고 자면 아침에 일어날 때에 몸도 개운하고 움직이면 배가 고파서 뭐 다 맛있고, 이게 정상이다. 너무 큰 근심이 깔려버리면 자도 개운치 않고 좋은 일을 봐도 좋은 가뿐한 마음 좋은 마음이 없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게 세례 요한이었다.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딱 제 멸망을 눈 앞에 미리 보니 선지자이다. 아무리 외쳐봐야 먹히지 않는다. 할 일은 하는데 세대가 강팍하고 돌아서는 사람 없고 주님을 들이닥쳤고 시간은 가고. 고난이며 멸망 밖에 없는데, 모두가 멸망의 길로 달려가니 이 애 터지는 세례요한의 이 마음. 17절에 피리를 부를 때에 춤추는 동무가 있는가? 또 애곡하니 가슴을 치는 동무가 있는가? 세례 요한 하나이다.
 
결혼 때문에 출산 때문에, 유황 불비가 쏟아지는 이런 세상을 맞고도. 노아 홍수 그 날까지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가고 있다가” 천 번 만 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120년 전부터 예고가 되어져 있는데. 비가 와서 홍수에 잠기는 그날까지라 했다. 망하는 그날까지, 120년 여유가 있는데 그날까지. 세례 요한이 주님 오셨다고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구원의 주님이 오셨으니 전부 구원의 주님을 가지시라. (그런데) 그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이것은 뭐 그냥 가면 갈수록 더 하다. 오늘은 현실마다 기회가 되는데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 너도 못 박고 나도 못 박고, 부활한 신령한 주님은 (눈에 보이는 못은) 못 박는다. (그러나) 내 양심을 꺽을 때에. 주님 내게 원하는 그 간절함을 꺽어버릴 때 이게 주님을 못 박는 행위가 되어진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금요일이고. 하루 고요함을 가지고 그 다음 날 주일날 새벽에 부활함으로 우리에게 세상이 아니라 천국의 산 소망을 열어주셨다.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이 늘 운영이 되어진다. 그 중에 금요일을 당할 때에는 날 위해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날이라. 마음 속에 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복된 오늘이 되도록
 
멀리 전체를 위해서는 기도할 힘이 없는 연약한 등불이나, 자기 가정만은 무조건 위해서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 자기 가정만을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간곡하게 “세례 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했더라” 안 먹고 살았을까? 살기는 살았지. 요한도 30년을 더 살았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왔다. 출산이 예수님보다 세례요한이 6개월 앞섰다. 그리고 예수님 복음을 전할 때까지 있었으니, 세례요한도 30살은 넘겼다. 안 먹고 30년 살았을까? 먹었다. 먹었으나 먹은 것 같지를 않았을 것이다. 아예 세례 요한은 제대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험한 것으로 먹었지.
 
오늘 하루를 위해서 먹을 것은 드시되, 큰 일을 닥치면 먹어도 먹는둥 마는 둥,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고 걱정되는 일이 마음에 차야 된다. 먼저 이 근심, 이 염려, 이게 애절한 기도가 되고 이 기도가 옆으로 번져지며 모여지면서 니느웨에 주신 긍휼을 받아 올 수 있다.
 
통성으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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