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5.24 욘3:6 니느웨 왕의 3가지 자기 통감, 주변을 향한 책임 회개 간절한 하나님 소망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화새22.5.24 욘3:6 니느웨 왕의 3가지 자기 통감, 주변을 향한 책임 회개 간절한 하나님 소망

관리1 0 74 05.24 11:49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자료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요점정리




--------------------------------------------------------------------------------------
(설교 타이핑)


220524 화새
 
제목 : 니느웨 왕의 3가지 자기 통감, 주변을 향한 책임 회개 간절한 하나님 소망
 
찬송 : 36장 (낮에나 밤에나)
 
본문 : 요나 3장 6절 -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어른은 고생했고, 어른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말을 했고, 요즘 애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들은 모두 다 그렇습니다. 또 젊은 사람 아이들은 시대가 달라졌는데 뭔 소리냐, 이게 역사 이후의 기본이고 솔로몬 죽고 나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아버지를 모셔 역사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를 제일 번창하게 성공시킨 솔로몬을 모셔 섰던 신하들, 아버지 죽었으니 그들은 물러나고 이제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새 시대, 젊은 시대 발전하는 앞날은 다른 거다, 이거 벌써 3천여 년 전에 있었던 기록을 성경이 일부러 기록한 것은 역사의 흐름이 이러하다 미리 알려주신 겁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뒤에 있었던 요나 시대에 니느웨는 안 믿는 세상입니다. 족보가 아예 함의 족보라 이건 멸망의 족보입니다. 그 안에서도 지극히 큰 성공한 대표적인 그런 죄악의 도시입니다. 세상에 일반 역사에 맡겨 놔도 망할 건데 천벌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려고 딱 짚어서 요나를 보냈습니다. 요나가 하루 말했는데 말이 될 사람은 하루 말해도 말이 되고 안 될 사람은 십년 아니라 죽는 날까지 얘기해도 얘기가 안 통합니다. 말을 많이 해야 말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니느웨의 백성이 돌아섰습니다. 백성들이 돌아서면 왕은 이게 뭔 일인고. 남의 일 보듯이 보든지 그놈들 뭐 좀 너무 심하더만 정신을 차렸는가, 이리 되든지 또 아니면 바르게 살고 악하게 살지 말라 그랬는데 이제 좀 내 말을 알아들었는가, 이게 사람 살아가는 이치고 하나님이 복으로 열어주지 않으면 그리 되어 지게 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무론대소하고 굵은 배를 입고 모두 돌아서니까 그 말을 들은 니느웨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습니다. 왕 자리에 앉아 나라를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결정하고 백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자리가 왕 자리입니다. 가정마다 아이들의 왕은 엄마입니다 가족 전체의 왕은 남자입니다. 가정에 왕이 못 된, 되지 못한 사람도 요즘은 흔하고 또 아이들에게 왕이 되는 엄마도 적지만은 어릴 때 듣는 거야 그거 뭐 칠 것도 없고 제멋대로 할 수 있는데 들어야 그게 왕입니다. 그런데 니느웨 왕은 보좌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건 내 자리가 아니다, 내 자리는 내 자리인데 그 자리의 값을 못 했습니다. 목회자가 나는 목회자 역할을 바로 했던가, 돌아보아 부끄러우면 강단에 서기는 서지만은 저 교인 중에 한 자리에 앉아도 참 부족하다, 가정도 식구들 앞에 난 부모 노릇을 했는가, 잘한 면만 가지고 자꾸 연구해 보면 다 잘한 것이 있을 겁니다. 여기 왕인들 극히 큰 니느웨를 다스렸는데 왕 노릇을 못 했겠습니까, 실력 있고 잘하니까 왕 노릇을 했지 안 믿는 죄악의 세상 나라기 때문에 무조건 많고 크면 잘하는 겁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정권과 대통령을 평가할 때 나라 경제가 몇 프로 발전을 했느냐 취업률이 얼마냐 수출이 얼마냐 이거 따지지 벌 돈을 벌었냐, 깨끗하고 착하냐, 그걸로 뒤져보는 거 보셨습니까? 국가와 국가의 순위를 따져도 덩치가 얼마나 크냐, 국민이 얼마나 많으냐, 국가가 한 해에 총 생산한 GDP가 얼마냐 뭔 전부 결과만 가지고 따집니다. 역사를 따지고 들어가자면 남의 나라 먹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으며 인권 문제로 저렇게 세계를 뒤흔드는 미국도 인디언 모조리 다 걷어치웠지, 아프리카 흑인들 수도 없이 사다가 그랬지, 일본도 그랬지, 중국도 그랬지, 우리나라는 안 그랬습니까? 못 나면 나라 안에서 서로 그랬겠지. 결과만 따지는 건데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난 아버지다, 이름만 아버지였지 정말 아버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가정에 하나님 은혜로 살자고 앞장섰던가, 그리고 따르는 가족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은 의지하자고 그랬던가, 다 부끄러운 일이고 세상이 험하니 생존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까 그냥 그러했고 또 이제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니까 우리도 세상 좋은 꼴 보자고 돈 버느라고 종, 돈 쓰느라고 종, 산전로 수전로라고 그랬습니다.
 
“니느웨 왕에게 들리며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구약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야 그게 겸이고 오늘은 주신 자기 자리는 지키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마음을 찢어라 이게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입니다. 구약은 옷을 찢고 마음을 찢을 준비로 들어가고 신약은 옷은 찢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마음만은 무조건 찢어야 됩니다. 시대에 대한 아픔을 가져야 되고, 시대에 대한 아픔은 말세라도 믿는 교회 우리 전부가 잘못됐다, ‘우리’가 돼야 되지 나 빼고 ‘너들’ 잘못됐다 아닙니다. 또 시대와 세계는 다 일단 제쳐놓고 이 나라 전부가 이 모양 이 꼴 된 것은 우리 교계,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다, 이 나라 전부가 그러든 말든 우리 사는 교인들 우리 주변은 우리 문제다, 또 더 줄여서 교회나 가정이 되어 지면 그때부터는 나, 나 하나의 문제다.
 
가정과 교회라는 것은 가정을 좀 넓히면 교회고, 교회를 좀 줄이면 가정입니다. 가정교회, 그 다음 교회는 규모만 틀리지 같습니다. 이걸 가정과 교회로 이름을 정해준 것은 너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너 하나. 니느눼는 왕 하나면 충분합니다. 한 교회는 목회자든 교인이든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가족은 둘 사나, 열 사나, 할머니나 젊은이나 어린 아이나 한 명이 마음먹으면 그 하나로 한 가족은 다 소망으로 돌아섭니다. 죽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안 되고 죽게 되면 죽으면서 하나님께 부탁하고 돌아가시면 죽도록 기도하고 간 그 기도를 붙들고 살아있는 가족 중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쪽은 하나님이 직접 해결을 하고 나섭니다.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불신자는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죽은 귀신이 아무래도 뭔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래서 미개한 나라나 발달한 나라나 죽은 조상귀신 앞에 떨지 않는 민족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 기도를 들으시고 붙들고 죄는 삼사 대, 의인은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소돔에 간 롯을 아브라함의 기도와 아브라함의 의를 보시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줄 때는 그냥 주지 않습니다. 노름판으로 말하면 판돈이 커집니다.
그냥 똑같은 조건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왕이 듣고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난 지난 날 하나님께 내 가족과 나의 교회에 충분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맞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그 인내의 순종이 맞다, 이걸 나는 보였어야 한다, 조금 보인 사람 어느 정도 보인 사람 많이 보인 사람의 차이는 있다 해도 육을 가진 사람이 다 그렇게 보인 경우는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손꼽는 위대한 신앙가들도 그들에게 주신 그들의 자리에서 전부 다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교회에 주력하면 교회는 엄청나게 좋아지는데 가정교회가 내려앉아 버리고 가정교회에 주력하면 가정은 좋아지는데 교회가 그냥 그렇고 혹시 봐보면 교회도 괜찮고 가정도 괜찮은 원만한 목회자들도 요즘은 더러 많습니다. 그건 해석을 하면 그렇습니다. 네가 가족에게 쏟을 그 시간 그 노력을 교회를 위하여 더 쏟아 부었으면 교회는 현재보다 더 나았을 거 아닌가, 인간에게 주신 시간과 인간에게 주신 자본은 유한하기 때문에 평생 국어에 주력하면 수학은 좀 떨어지는 거고 수학을 주력하다 보면 수학자로는 성공해도 국어가 모자라는 겁니다. 더 발전하지는 못하는 겁니다. 적어도.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위치를 말합니다. 그다음, 조복을 벗고 조복은 자기의 사명을 말합니다. 임금이 입는 옷, 모자 중에 임금 머리에 올라가면 면류관이라 그럽니다. 아무리 비싸도 임금 모자 말고는 면류관이란 말을 못 붙입니다. 다른 사람이 쥐면 전부 다 지팡이인데 임금이 손에 쥐는 지팡이는 홀이라 그럽니다. 홀. 창세기와 에스더에 나오는 홀. 영어 아닙니다. 임금 손에 쥐어지면 홀. 나머지는 아무리 비싸고 예술적으로 위대해도 그건 지팡이. 도장중에 임금의 도장은 작아도 커도 그거는 전부 다 어인이 됩니다. 국장이 되어 집니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할 때 입는 옷, 갖춰 입은 옷을 조복이라 그럽니다. 학생이 학교 갈 때 입는 옷은 교복, 군인이 입으면 군복, 사복이 아니라 군인이 군복을 입었을 때는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옷은 입고 폼은 잡고, 속은 엉망이고 이거 내가 왕이면 백성을 다스리는 건데 백성 전부가 스스로 다 틀렸다고 굵은 베를 입어버렸습니다. 자기 백성 전부가 다 잘못됐습니다, 왕이 잘못된 거지. 백성은 내가 잘못됐습니다, 내가 잘못됐습니다, 온 백성이 전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백성 중에 절반은 잘했고 절반은 못 했으면 나는 바로 했는데 내 말 잘 들은 백성 절반은 저렇게 성공했고 내 말 듣지 않으면 저렇다, 그럴 건데 전부가 다 빵점입니다. 그러면 왕은 제가 죄인이 맞습니다, 왕의 옷을 입고 왕 노릇을 해야 되는데 왕 노릇을 못 했습니다, 왕의 위치는 보좌, 왕의 역할은 조복, 조복을 벗으면 평복을 입으면 될 일인가, “굵은 배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이 시대의 막가는 현상을 보며 이거 이래서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나이가 젊든 많든 그들은 이 사회의 어른입니다. 윗물이 그 꼴이니 아랫물이 그 꼴이지, 난 위에서 맑은 물 좋은 물만 흘려보냈는데 이 아랫물이 구정물이 된 것은 누가 그랬는고? 네가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걸 보여주시려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게 만들어 놓고 물이 아랫물 아래로 흘러가지 위로 흘러가거나 딴 데 새지 않는다.
 
백성을 보며 왕 네 모습을 봐라 교인을 보면서 목회자 네 속에 신앙을 보거라, 이런 거는 다 잘 보이지 않습니까? 너희 집의 아이들을 보며 네 아들들을 봐도 잘 안 보이거든 손주까지 내려다 보거라, 그게 너의 모습이다. 제게는 가정의 아이들과 교인들이 함께 제 모습입니다. 교회 쪽에다 대고 주력 하면 가정 모습이 곤란하게 됩니다. 가정 쪽에 주력하면 교인들의 모습이 문제가 생깁니다. 정말 가정은 가정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잘했냐? 그러면 잘한 겁니다. 과연 그런가, 너 보기에 모두들 하나님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내로서 세상이 그렇든 말든 신앙인의 사람에 갈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는가, 오늘 아침 우리는 다 자기 현실에 일부면으로도 우리는 왕입니다. 백성의 잘못된 게 보이면, 나의 식구의 문제가 보이면 하나님 앞에 깊은 죄책감을 가져야 이게 하나님 앞에 자기 회개가 되고 하나님 소망이 되며 다시 새롭게 기회를 받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난 어떤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모르면 거울 보면 됩니다. 어떤 거울을 보면 되는가, 자기 사람들을 보면 그게 자기 얼굴입니다. 아랫물을 보면 윗물의 모습입니다. 열매를 보면 뿌리의 모습입니다.
 
 
 
1차-khs



    
-------------------------------------------------------------------------------------- 
(요점정리)


220524 화새
 
제목 : 니느웨 왕의 3가지 자기 통감, 주변을 향한 책임 회개 간절한 하나님 소망
 
찬송 : 36장 (낮에나 밤에나)
 
본문 : 요나 3장 6절 -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니느웨 왕) 

어른은 고생했고 어른은 아이들을 위해 좋은 말을 했고 (반면에) 요즘 애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어른들은 모두 다 그렇다. 또 젊은 사람 아이들은, 시대가 달라졌는데 뭔 소리냐? 이게 역사 이후의 기본이고 솔로몬이 죽고 나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아버지를 모셔 역사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를 제일 번창하게 성공시킨 솔로몬을 모셔섰던 신하들, 아버지 죽었으니 그들은 물러나고. 이제 르호보암과 함께 자란 새 시대 젊은 시대 발전하는 앞 날은 다른 것이다 (이 역사) 이거 벌써 3천여 년 전에 있었던 기록을 성경이 일부러 기록한 것은, 역사의 흐름이 이러하다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뒤에 있었던 요나 시대에 니느웨는 안 믿는 세상이다. 족보가 아예 함의 족보라 이건 멸망의 족보이다. 그 안에서도 지극히 큰, 성공한 대표적인 그런 죄악의 도시이다. 세상의 일반 역사에 맡겨 놔도 망할 것인데 천벌로 하나님이 보여주시려고 딱 집어서 요나를 보냈다.
 
요나가 하루 말했는데, 말이 될 사람은 하루 말해도 말이 되고 안 될 사람은 10년 아니라 죽는 날까지 얘기해도 얘기가 안 통한다. 말을 많이 해야 말이 되고 그런 것은 아니다. 니느웨의 백성이 돌아섰다. 백성들이 돌아서면, 왕은 이게 뭔 일인고? 남의 일 보듯이 보든지. 그놈들 뭐 좀 너무 심하더만 정신을 차렸는가? 이리 되든지. 또 아니면 바르게 살고 악하게 살지 말라 그랬는데 이제 좀 내 말을 알아들었는가? 이게 사람 살아가는 이치이고 하나님이 복으로 열어주지 않으면 그리 되어지게 된다.
 
(보좌에서 일어나)

그런데 백성들이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모두 돌아서니까, 그 말을 들은 니느웨의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다. 왕 자리에 앉아서 나라를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결정하고 백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자리가 왕 자리이다. 가정마다 아이들의 왕은 엄마이다. 가족 전체의 왕은 남자이다. 가정의 왕이 못된, 되지 못한 사람도 요즘은 흔하고. 또 아이들에게 왕이 되는 엄마도 적지만은 어릴 때 듣는 것이야 그거 뭐 칠 것도 없고. 제멋대로 할 수 있는데 들어야 그게 왕이다.
 
그런데 니느웨 왕은 보좌에서 일어났다. 이건 내 자리가 아니다 내 자리는 내 자리인데 그 자리에 값을 못 했다. 목회자가 나는 목회자 역할을 바로 했던가? 돌아보아 부끄러우면 강단에 서기는 서지만은 저 교인 중에 한 자리에 앉아도 참 부족하다. 가정도 식구들 앞에 나는 부모 노릇을 했는가? 잘한 면만 가지고 자꾸 연구해 보면 다 잘한 것이 있을 것이다. 여기 왕인들 극히 큰 니느웨를 다스렸는데 왕 노릇을 못 했을까? 실력 있고 잘하니까 왕 노릇을 했지. 안 믿는 죄악의 세상 나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많고 크면 잘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정권과 대통령을 평가할 때 나라 경제가 몇 프로 발전을 했느냐? 취업률이 얼마냐? 수출이 얼마냐? 이거 따지지 벌 돈을 벌었느냐? 깨끗하고 착하냐? 그걸로 뒤져보는 거 봤는가? 국가와 국가의 순위를 따져도, 덩치가 얼마나 크냐? 국민이 얼마나 많으냐? 국가가 한 해에 총 생산한 GDP가 얼마냐 뭔 전부 결과만 가지고 따진다.역사를 따지고 들어가자면, 남의 나라 먹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으며. 인권 문제로 저렇게 세계를 뒤흔드는 미국도, 인디언 모조리 다 걷어치웠지. 아프리카 흑인들 수도 없이 사다가 그랬지. 일본도 그랬지 중국도 그랬지. 우리나라는 안 그랬는가? 못 나면 나라 안에서 서로 그랬겠지. 결과만 따지는 것인데.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나는 아버지다 이름만 아버지였지 정말 아버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가정에 하나님 은혜로 살자고 앞장 섰던가? 그리고 따르는 가족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자고 그랬던가? 다 부끄러운 일이고. 세상이 험하니 생존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까 그냥 그러했고, 또 이제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되니까 우리도 세상 좋은 꼴 보자고 돈 버느라고 종, 돈 쓰느라고 종, 산절로 수절로(각주)라고 그랬다.“니느웨 왕에게 들리며 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구약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야 그게 겸손이고 오늘은 주신 자기 자리는 지키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마음을 찢으라 이게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다. 구약은 옷을 찢고 마음을 찢을 준비로 들어가고 신약은 옷은 찢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마음만은 무조건 찢어야 된다.
 
시대에 대한 아픔을 가져야 되고, 시대에 대한 시대에 대한 아픔은 말세라도 믿는 교회 우리 전부가 잘못됐다. 우리가 되어야 되지 나 빼고 너희들 잘못됐다가 아니다. 또 시대와 세계는 다 일단 제쳐놓고 이 나라 전부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우리 교계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다. 이 나라 전부가 그러든 말든, 우리 사는 교인들 우리의 주변은 우리 문제다. 또 더 줄여서 교회나 가정이 되어지면 그때부터는 나, 나 하나의 문제다. 가정과 교회라는 것은 가정을 좀 넓히면 교회이고 교회를 좀 줄이면 가정이다. 가정교회 그 다음 교회는 규모만 틀리지, 같다. 이것을 가정과 교회로 이름을 정해준 것은 너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너 하나. 니느웨는 왕 하나면 충분하다. 한 교회는 목회자든 교인이든 한 명이면 충분하다. 가족은 둘이 사나 열이 사나, 할머니나 젊은이나 어린 아이나 한 명이 마음 먹으면 그 하나로 한 가족은 다 소망으로 돌아선다. 

죽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안 되고 죽게 되면, 죽으면서 하나님께 부탁하고 돌아가시면 죽도록 기도하고 간 그 기도를 붙들고 살아있는 가족 중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쪽은 하나님이 직접 해결을 하고 나선다. 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이게 성경이다. 불신자는 그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죽은 귀신이 아무래도 뭔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해서, 미개한 나라나 발달한 나라나 죽은 조상 귀신 앞에 떨지 않는 민족은 없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 기도를 들으시고 붙들고, “죄는 삼 사대 의인은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소돔에 간 롯을 아브라함의 기도와 아브라함의 의를 보시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다. 한 번 더 기회를 줄 때는 그냥 주지 않는다. 노름판으로 말하면 판돈이 커진다. 그냥 똑같은 조건으로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왕이 듣고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나는 지난 날 하나님께 내 가족과 나의 교회에 충분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맞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는 그 인내의 순종이 맞다. 이것을 나는 보였어야 한다. 조금 보인 사람 어느 정도 보인 사람 많이 보인 사람의 차이는 있다고 해도, 육을 가진 사람이 다 그렇게 보인 경우는 없다. 역사적으로 손꼽는 위대한 신앙가들도 그들에게 주신 그들의 자리에서 전부 다 그러지는 못했다. 자기의 시간과 노력을 교회에 주력하면 교회는 엄청나게 좋아지는데 가정 교회가 내려앉아 버리고, 가정 교회에 주력하면 가정은 좋아지는데 교회가 그냥 그렇고. 혹시 봐보면 교회도 괜찮고 가정도 괜찮은 원만한 목회자들도 요즘은 더러 많다. 그건 해석을 하면 이렇다. 네가 가족에게 쏟을 그 시간 그 노력을 교회를 위하여 더 쏟아 부었으면 교회는 현재보다 더 나았을 것이 아닌가? 인간에게 주신 시간과 인간에게 주신 자본은 유한하기 때문에, 평생 국어에 주력하면 수학은 좀 떨어지는 것이고 수학을 주력하다 보면 수학자로는 성공해도 국어가 모자라는 것이다. 더 발전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적어도.“왕이 보좌에서 일어났더라” 위치를 말한다. 

(조복을 벗고)

그 다음 “조복을 벗고” 조복은 자기의 사명을 말한다. 임금이 입는 옷, 모자 중에 임금 머리에 올라가면 면류관이라 한다. 아무리 비싸도 임금 모자 말고는 면류관이란 말을 못 붙인다. 다른 사람이 쥐면 전부 다 지팡이인데 임금이 손에 쥐는 지팡이는 홀이라 한다. 창세기와 에스더에 나오는 홀, 영어 아니다. 임금의 손에 쥐어지면 홀, 나머지는 아무리 비싸고 예술적으로 위대해도 그건 지팡이. 도장 중에 임금의 도장은 작아도 커도 그것은 전부 다 어인이 된다. 국장이 되어진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할 때 입는 옷 갖춰 입은 옷을 조복이라 한다. 학생이 학교 갈 때 입는 옷은 교복, 군인이 입으면 군복. 사복이 아니라 군인이 군복을 입었을 때는 죽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는 조건이 붙는다. 옷은 입고 폼은 잡고, 속은 엉망이고. 내가 왕이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인데 백성 전부가 스스로 다 틀렸다고 굵은 베를 입어버렸다. 자기 백성 전부가 다 잘못됐다면, 왕이 잘못된 것이지. 백성은 내가 잘못됐습니다. 내가 잘못됐습니다. 온 백성이 전부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백성 중에 절반은 잘했고 절반은 못 했으면, 나는 바로 했는데 내 말 잘 들으면 백성 절반은 저렇게 성공했고 내 말 듣지 않으면 저렇다 그럴 것인데 전부가 다 빵집입니다. 그러면 왕은 제가 죄인이 맞습니다. 왕의 옷을 입고 왕 노릇을 해야 되는데 왕 노릇을 못 했습니다. 왕의 위치는 보좌, 왕의 역할은 조복.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조복을 벗으면, 평복을 입으면 될 일인가?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이 시대의 막가는 현상을 보며 이거 이래서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나이가 젊든 많든 그들은 이 사회의 어른이다. 윗물이 그 꼴이니 아랫물이 그 꼴이지. 나는 위에서 맑은 물 좋은 물만 흘려 보냈는데 이 아랫물이 꾸중물이 된 것은 누가 그랬는고? 네가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걸 보여주시려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게 만들어 놓고, 물이 아랫물 아래로 흘러가지 위로 흘러가거나 딴 데로 새지 않는다. 백성을 보며 왕 네 모습을 봐라, 교인을 보면서 목회자 네 속에 신앙을 보거라. 이런 것은 다 잘 보이지 않는가? 너희 집의 아이들을 보며, 네 아들들을 봐도 잘 안 보이거든 손주까지 내려다 보거라 그게 너의 모습이다. 저에게는 가정의 아이들과 교인들이 함께 제 모습이다. 교회 쪽에다대고 주력하면 가정 모습이 곤란하게 된다. 가정 쪽에 주력하면 교인들의 모습이 문제가 생긴다. 정말 가정은 가정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잘했느냐? 그러면 잘한 것이다. 과연 그런가? 남 보기에 모두들 하나님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인내로서 세상이 그렇든 말든 신앙인의 사람의 갈 길을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는가?
 
오늘 아침, 우리는 다 자기 현실에 일부만으로도 우리는 왕이다. 백성의 잘못된 게 보이면 나의 식구의 문제가 보이면, 하나님 앞에 깊은 죄책감을 가져야 이게 하나님 앞에 자기 회개가 되고 하나님 소망이 되며, 다시 새롭게 기회를 받게 된다.

통성으로 기도.
 
나는 어떠한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모르면 거울을 보면 된다. 어떤 거울을 보면 되는가? 자기 사람들을 보면 그게 자기 얼굴이다. 아랫물을 보면 윗물의 모습이다. 열매를 보면 뿌리의 모습이다.
 



*각주-산절로 수절로*

설명 : 돈쓰고 모으고 하다가 그 속에서 죽고 마는 것이 인생 

散錢奴        (흩을 散산, 돈 錢전, 노예 奴노)收錢奴散收奴散收間에 錢奴 錢奴너도 錢奴, 나도 錢奴산 ~ 절 ~ 로수 ~ 절 ~ 로산수간에절로 절로너도 절로 나도 절로                       
(해석)돈 쓰는데 매여 살고돈 버는데 매여 살며쓰고 버는데 종된 인간너도 돈의 종나도 돈의 종

*남단에서2 인용

------------------------------------------------------------------------------------------------- 

Comments

Category
State
171,084 since 2005
163,219 since 202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