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5.23 욘3:5 자연양심의 가책 두려움, 백성 < 대신 < 왕 회개, 모여진 애절함 위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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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5.23 욘3:5 자연양심의 가책 두려움, 백성 < 대신 < 왕 회개, 모여진 애절함 위에 역사

관리1 0 123 2022.05.23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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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월새
 
제목 : 자연양심의 가책 두려움, 백성 <대신 <왕 회개, 모여진 애절함 위에 역사
 
찬송 : 50장 (내 너를 위하여)
 
본문 : 요나서 3장 5절 -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창세기 3장에 뱀이 하와를 선악과 먹게 만들 때. 선악과를 먹게 되는 그때까지의 과정은 나오지를 아니합니다. 창세기 2장에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으로 하와를 만드시고 둘에게 부부로 살아야 될 위치와 관계를 말씀 하셨고 그리고 3장에 들어오면 바로 악령이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의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렇게 대화만 잠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까지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 안에서의 자세, 과정을 살펴는 볼 수가 있습니다.
 
뱀이 하와와 대화 할 때 아담이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하와에게 주신 위치는 창세기 2장에 아담을 돕는 아담의 배필로 붙여놓았습니다. 아담을 돕는 하와라면 아담 옆에 붙어 있어야 됩니다. 아담은 하와를 살펴야 되고 하와는 아담 옆에 있어야 됩니다. 요즘 말로 말 하면 조수입니다. 또 신약에 오면, 남자는 머리요 아내는 몸이라, 위치와 관계를 그렇게 더 밝혀놓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장소는 다를 수가 있어도 결정에 대해서는 아담에게 질문하고 아담에게 허락 받고 아담에게 연락하고 말을 해야 될 터인데, 평소에 주고받은 위임된 일이면 몰라도 오전에는 나는 동쪽 살필 테니까 하와 당신은 서쪽을 살피라 이렇게 시켜서 움직이느라고 떨어져 있으면 모릅니다마는 선악과를 먹는 이 일은 중대한 일이요, 그건 처음 겪는 일입니다. 이건 아담에게 물어보고 아담의 승인 없이 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일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그 과정에 첫째는 아담이 없었는데 장소적으로만 없던 것이 아니라 명령적으로 승인적으로 결정 과정에 아담이 전혀 보이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하와가 선악과를 넘겨 아담으로 먹게 했습니다. 부부 의논이 되고 배필인 하와의 설명을 듣고 아담이 이해가 되고 아담이 먹고 그다음, 따서 하와에게 주고 죄를 지어도 순서가 이리 되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이 정해놓은 그 위치 그 관계가 반대로 되어졌습니다. 기록은 없어도 잠깐 살펴보면 이런 것은 쉽게 찾아 낼 수가 있습니다.
 
가인이 성을 쌓은 그 방향, 에덴동산의 동쪽을 막아놨는데 그 동쪽으로 갔습니다. 또 아벨을 죽이고 부인을 하고 죄를 지었으면 책임이 따르며 고치는 기회가 되는데 면책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구 행위로 열심히 성을 쌓고 나아갔습니다. 범죄 이전의 기록은 많지 않으나 범죄의 내용이 자기중심이고 범죄 이후 쭉 보니까 방향을 역산해보면 방향이 나옵니다. 대전 네거리에 섰는데,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이 그 다음 네거리를 통과하면서 한발을 더 딱 내딛으면 아 부산에서 와서 서울로 가는 구나, 또 북쪽에서 허겁지겁 오는 사람이 네거리에 선 다음 남쪽으로 발을 한 걸음 더 딱 디디면 서울서 와서 부산으로 가는구나, 괘적을 통해 그 다음을 읽을 수 있고 이후의 괘적을 역산을 해보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아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돔은 롯이 가기 전에 악하여 큰 죄인이었더라. 그리고 19장에 천사가 소돔에 들어갈 때에 “롯이 성문에 앉았더라, 성문에 앉았더라” 자기의 위치는 이 성 중심에 서서 안 믿으면 전도를 하든, 그 동안 전도를 하여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되었다면 그 위치가 성중이 되어야 될 터인데, 성문에서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던 그 자세, 그리고 18장에 아브라함이 마음속에 생각해보는 소돔 이주 후에 롯이 의를 넓혀갔을까? 아니면 잃어갔을까? 하나님과의 기도 속에 명상 속에 그치고 더 이상 주장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 문에 앉았더라, 그리고 모시고 집에 들어갔더라, 딸 둘이 있었는데 그 사위들이 그러했더라, 과정을 살펴볼 때 이 소돔은 악한데 의인이 들어가 의를 줄이고 빛을 흐리며 소돔에 뒤섞여버렸더라, 어느 정도 뒤섞여버렸는가?
 
소돔에서 롯과 가족을 빼놓았더니만, 되돌아보는 걸 보니까 이 여자는 끌어다놔도 롯의 처는 천국에 갖다놔도 지옥이 좋아 그것만 쳐다볼 본질이 전부 다 그 쪽입니다. 그렇게까지 원하면 하나님이 강제로 친국에 밀어 넣지는 않습니다. 딸 둘은 남자보면 여자 아는 거고 여자 보면 남자 아는 거고 둘이 달라도 살다 보면 하나가 될 터인데 딸에게 붙들려 말이라도 부모 말이니 경청을 했다면 강팍한 것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건데 “농담으로 여겼더라” 하는 걸 보니까 그리고 뒤에 굴에 살며 딸 둘이 합작해서 아버지를 농락하는 걸 보니까 이것들 소돔에 가서 더러운 것만 다 배운 애들입니다. 이게 서서히 변해 가고 가족이기 때문에 지켜봤을 터인데 이렇게 바뀌어가는 과정을 롯이 비록 이들을 이끌고 깨끗하게는 못 만들어도 자기 하나라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으면 “나만 남았나이다” 이 시대 전체가 다 아합과 이세벨의 손아귀에 들어가 “나만 남았나이다” 이리라도 되어져야 되는데 나만 남은 것이 아니라 나까지도 그 속에 이미 쩔어 있습니다.
 
소돔이 어떤 데인지 알고 소돔이 망할 때 천사를 해치러온 소돔의 사람들의 그 악독을 다 알고, 그들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남자들인데 끌려서 밖에 나왔으나 속이 돌아선 것 아닌 줄 알 건데, 산으로 도망하라는데 산까지는 멀어서 힘들어 안 되겠다, 여기에서 가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죄는 지었고 망해야 되겠으나 망하되 저렇게까지 줄여달라고, 깎을 게 따로 있지. 그런 딸들임을 알만하면 조심을 했어야지. 소돔으로 선택하여 가족을 끌고 오던 그 롯, 겉보기는 아브라함을 따르는 제자이고 동지인데 속은 벌써 달랐습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소돔을 택해 나오는 그 과정이 롯의 신앙의 흐름입니다. 그리고 오늘 믿는 우리 속에 믿음에 불타던 사람이 세상 쪽으로 서서히 식어지며 방향을 틀 때에 그 심리와 과정과 사실은 꼭 같습니다. 성경으로 세상을 운영하시고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형편을 요약해서 그 중에 특별 계시로 적어놓은 게 성경입니다. 성경과 다른 세상없고 세상과 다른 성경이 없습니다. 이 롯이 진행이 되는 과정, 그 과정을 보니 딸 둘만 나쁜 여자들인가? 모압과 암몬은 조상이 롯입니다. 이름을 못 뺍니다. 아브라함 속에는 이스마엘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옛사람. 아브라함 속에는 새사람 이삭으로 내려오는 구원의 성화의 요소도 있습니다. 롯 속에는 옛사람의 요소가 소돔 생활을 통해 새사람의 요소를 다 삼켜버리고 빈껍데기 흔적만 남았습니다. 그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 모압과 암몬 족속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살피고 그 다음에 요나 3장에 악독한 이 니느웨에 극히 큰 성읍이므로, 당대 최대의 하나님 없는 나라의 함의 자손이 이렇게까지 잘 되려면 의로 잘 됐겠습니까, 선으로 잘됐겠습니까, 타락은 했으나 하나님의 나라가 부러워 이스라엘을 흉내 내며 그래도 그 율법은 그들의 율법이나 그 율법을 그대로 흉내라도 내며 그러헸겠습니까? 아니면 반대였겠습니까? 그게 니느웨였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니느웨에게도 하나님께서 자연 양심을 통해 인간의 기본은 알도록 비추어 줄 수가 있고 거기에 대한 가책이 있고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 안 믿는 사람도 나쁜 짓을 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좀 그렇다, 그런 게 있고 안 믿는 사람이 주변을 살피며 이게 뿌듯할 수 있고 그게 짐승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자연 양심을 지켜 천국 가는 것은 아니지만은, 인간이 땀 흘려 일을 하고 자기 수고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면, 남의 걸 가져와서 쌓아놓는 죄악의 낙과 제 것을 좀 풀어서 주변을 살펴준, 그리고 나서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면 보람을 좀 느끼는 겁니다. 불신자에게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 자연의 양심의 자세와 방향이 극히 크게 성공한 니느웨 안의 백성들에게도 깔려 있고 꼭대기 왕에게도 깔려 있고 중간에 있는 대신들에게도 깔려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나라 4월이 되면 대형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이유는 10월 되면 열매로 다 털어버리고 11월 달이 되면 푸른 잎이 남아도 속으로는 물 공급이 되지 않아서 낙엽으로 말라 들어갑니다. 그리고 12월이 되면 이파리를 다 털어버리고 가지 속에 물이 공급이 되지 않고 증발이 계속 되기 때문에 웬만한 나무 가지 안에는 물기가 전혀 없어지고 굵은 가지 에도 물기가 거의 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게 1월, 2월 계속 메말라져 있다가 4월에 봄바람 시작되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버리면 말라빠진 나무 가지들끼리 계속 비비다보면 열이 나고 여기서 화재가 납니다. 불이 났다 하면 전체적으로 부는 바람에 불꽃이 실려 전부를 다 태워버립니다. 이런 환경 이런 과정 이런 진행, 하나는 열매를 맺었으니 나무가 석 달을 쉬어야 되고 4월, 5월 아직까지 뿌리에서 둥치로는 이제 서서히 준비를 해도 저 위에 가지까지는 물은 가지 않았고 바람은 세차고 봄 가뭄은 몇 달 이어왔고 이런 저런 모든 요소가 산불을 낼 요소가 다 차버린 겁니다.
 
이럴 때에 습기가 많다 던지 안개가 끼었다 던지 소나기가 한번 지나가버리면 심지어 그런 것이 전혀 없어도 바람 자체가 불지 않으면 아무리 말라 빠져도 나무 혼자서 불내지는 못합니다. 마른 가지가 이게 계속해서 비벼야 불이 나는 거지. 건조함과 바람으로 비벼지는 두 개는 있어야 되는데 바람이 없거나 습기가 많으면 불내려고 해도 불은 꺼져버립니다. 가인의 성과 바벨과 소돔을 살펴보면 이거는 하나님께서 성냥불만 갖다 대면 전부 다 타버릴 요소가 그득 찼습니다. 악하지 독하지, 악과 독을 더 못부려 난리지, 아래 위가 꼭 같지, 남녀노소가 똑같지 소돔의 천사를 대할 때 남녀노소 전부가 똑같은 인간들입니다. 아니, 남자들만 패거리로 움직인 거 같은데? 여자들도 똑같으니까 그런 남정네들을 그냥 뒀고 부채질을 했지. 같으니까! 소돔성에 여자들이라도 가정과 남녀 관계가 이렇게까지 돼서는 안 된다고 펄펄 뛰었더라면 습기가 있는데 불이 붙습니까? 아무리 메말라도 바람이 불지 않는데 발화가 일어납니까? 이거저거 전부가 다 맞아졌을 때 불이 나는 겁니다. 그래봐야 하나님이 직접 손대지 않으면, 자연 세계와 역사 세계의 일반적인 흥망으로 끝났을 터인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본보기가 된 소돔에다대고 자연발화가 일어나도 무너질 정도인데 아예 이거는 하나님이 위에서 퍼 붓는다고 유황불비로 때려 버렸습니다. 인간적으로도 때는 되었지마는 마지막에 정리는 자연의 이치와 도덕의 이치 인륜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이건 하나님이 이 땅위의 주인이 직접 손대는 거다, 표시를 유황 불비로 가지고 해결했습니다.
 
니느웨도 똑같은데 이쪽은 불을 붙이려고 성냥불을 치켜드니, 우리의 죄악이 드디어 이제 이렇게까지 되었다, 모두들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도 하나님을 믿어왔는데 믿는 모습은 있고 속은 믿지 않는데 나중에 가면 믿는 모습까지 다 없애 버리는데 안 믿는 나라에 안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더라, 이렇게까지 기록을 했습니다. 눈이 어두운 우리가 보면 어느 날 뚝딱 되어지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벼락부자가 나오고, 갑작스럽게 번개에 맞아 죽고, 아이 없는 동네에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생기고 갑자기 그런 것 같으나 그건 자기가 못 봐서 그렇지 면밀하게 살펴보면 남자 여자가 만나야 아이가 생기고 열 달은 기다려야 출산이 되고 5년이 지나야 그게 다섯 살짜리가 되지 5년 지났는데 10살짜리가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 6.25전쟁은 그냥 어느 날 벼락같이 기습을 했다 그러는데 나라의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그 벌써 몇 년 전에 다 읽고 있었고 몇 달 전 부처는 그거 다 기록해가며 날짜까지 대충 그때가 될 거라고 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게을러 잠이 들어 망하려고 들어도 안들은 것이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운영을 하고 역사를 할 때, 원인 없이 어느 날 뚝딱 그렇게 하지를 아니합니다. 먼저 주시고 먼저 준 걸 이어서 기르시고 뻗어나가고 이렇게 연관되게 이치를 따라 반드시 움직이십니다.
 
니느웨에 하루 사이에 일어난 남녀노소 각계각층 전부의 이런 대단한 회개는, 한편으로는 세상이니 망할 요소를 다 갖췄지만은 그 안에서는 회개하고 그 멸망을 피할만한 다른 자세가 하나 읽혀집니다. 주님 오셔서 안 믿는 니느웨는 이 복음을 듣고 요나의 선지의 회개를 듣고 돌아섰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외치는데도 듣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니느웨를 예를 딱 들었습니다. 불신자라도, 자연의 양심만을 가지고 있어도 이건 이럴 수 없다는 선이 있는데 그 선을 넘겨 버렸습니다. 많이 기다리시고 매를 든 겁니다. 더 이상 기다리면 더 큰 재앙이 닥칠 일이라 그렇습니다.
 
결혼과 출산을 두고 모든 문제가 많으나, 결혼 출산 문제를 두고 이건 니느웨가 망하는 그 날까지 악독을 넘어서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되겠는가? 이러면 소망이라도 있겠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요즘 애들이 말을 듣나? 다 그런데? 이게 뭔 차이가 있느냐 하면, 뭐 그냥 다 그런 것 아닌가? 이건 벌써 절망으로 돌아섰고 하나님께서 소망의 구원의 손길을 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이걸 어떻게 해볼 수는 없는데 이걸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 애라도 터지면 그 애 터지는 애절함이 주님이 붙들고 구원의 첫손을 볼 수가 있는 시작이 되어 집니다.
 
해당되는 사람 말고, 가족으로 주변의 교인으로 함께 있는 우리의 애절함이 이게 얼마나 애절함에 불이 타고 있느냐? 한 사람이 아니고 백성도 왕도 대신도 이게 모여져야 그 다음, 니느웨 같은 이런 멸망도 재앙을 복으로 돌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결혼을 예사로 알고 출산을 예사로 알고 그걸 비웃고 그걸 던져버린 그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끼고 있는 부모가, 그들을 데리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들의 형제와 그들의 함께 신앙생활 하는 교인들이, 여기에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정도면 대신들 정도 됩니다. 왕과 대신이 먼저 시작했어야 될 일을 백성이 먼저 시작할 때 함께 호응이라도 해야 되고, 백성이 먼저 시작하는 거 보다 신앙에 앞선 책임의 우리의 간절함이 불이 붙어야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해야 될 만사 복된 일을 이런 애절함이, 더 이상 눌러 놓을 수 없이 이게 폭발 직전까지, 이렇게까지 되어 질 때 하나님께서 이걸 붙들고 너희들의 애절함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애절함을 보고 그다음, 하나님께서 해결의 길을 열어주신다 할 수 있도록 여기 우리의 자세가 좀 달라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한 가정과 한 교회와 한 시대의 죄악이 아무리 끓고 넘친다 해도, 애절하고 애 터지는 마음의 바탕이 있으면 이걸 붙들고 하나님이 역사를 할 수가 있고 요나 선지를 통해 한마디로 전부 하루아침에 돌려 세울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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