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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1 토새
제목 : 습관적 기독교 문화를 신앙 본질로 착각, 세가지 잔치 거절 깊이 생각할 것
찬송 :18장 (내 진정 사모하는)
본문 : 누가복음 14장 24절 -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늘나라는 영계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이 땅위의 인간의 심신 가지고 만든 것은 하늘나라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시작을 하고 내 몸으로 열심히 만든 것은 어떤 것이든지 하늘나라에는 출입금지입니다. 말하자면 종이로 된 것은 불 속에 견딜 수가 없는 것처럼, 또 일반적으로 숨 쉬는 사람은 물속에 들어가서 견딜 수가 없는 것처럼, 공기 없는데 우리가 숨 쉴 수는 없는 것처럼 존재 형식이 다릅니다. 영계는 신령한 나라입니다. 심신 둘 합해서 만든 것은 전부 이 땅위에서만 기회가 주어지고 끝나면 그대로 영원히 버려야 됩니다. 내 마음이 내 몸을 끌고 교회에 간 것 그게 전부면 믿는 행위처럼 보이지 신령한 것은 아닙니다. 요즘 법적으로 다 주일을 휴일로 쉽니다. 안 믿는 사람 아무리 쉬어봐야 그런다고 자기 심신 천국 가는 거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마음속에 영이 마음을 흔들고 끌고 붙들어 주일과 말씀을 지킨 것은 신앙의 행위입니다마는 마음속에 영이 원인이 되고 주동이 되고 장악을 해가지고 끈 것이 아니라 영 없이 마음이 습관으로, 습관으로 그냥 마음이 생각 없이 또는 마음이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사랑 때문에, 자녀 교육 분위기 때문에 교회의 세월이 오래가면 기독교 선진 사회의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 우리나라 나이 많은 분들은 절에 가지 않아도 불교의 그런 분위기가 베어 들어간 것처럼 유교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남아가지고 어린 아이도 나이 먹고 생일 물어서 선배니 후배니 철저하게 따지는 이게 유교 없어진 지가 언젠데 이게 6백년 내려오는 유교의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베어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유교입니다.
신학교도 기수별로 얼마나 선후배가 정확하고 확실한지 육군 사관학교처럼 검찰 법원 기수처럼 신학교까지도. 이거 아무리 뒤져봐도 이거는 공자가 만들어 놓은 중국제지 성경은 아닙니다. 이걸 분위기를 이제 바꿔서 불교에 내려온 분위기 그 다음, 베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유교가 6백년 완전 쩔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가 100년간 계속 거기에다 대고 지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믿는 가정, 믿는 조상, 믿는 분위기에, 믿는 생활에 중들도 요즘은 뭐 나누자 그러고 또 베풀자 그러고 한 20년쯤 되었을까 서남사 절을 가니까 들어가는 입구부터 목사님 설교가 들려서 절 안에까지 가는데 한 10분도 더 걸릴 건데 계속 목사 설교입니다. 거 참 많이 개선이 됐다 하고 절 안에까지 들어가 보니까 중 설법입니다. 중 설법이 그냥 기독교 설교를 다 닮았습니다. 이게 이제 융합이 되어 지면 문제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의 마음을 순간순간 감화와 감동으로 보여주고 인도하고 그리고 여기에 순종한 걸 성령이 능력으로 변화를 시켰을 때 비로소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심신의 행위인데 속에는 성령, 영의 것으로 바뀔 때 이것만 추려갑니다.
그러면 습관으로 생활 속에 신앙 분위기로 산 것은 성령으로 살 때 유리하고 반대가 되지 않아 편리한 정도까지지 전국에 고속도로를 잘 깔아 놓았단 말은 안 가도 그 길을 저절로 가진단 말이 아니라 차를 몰고 가려고 마음먹으면 도로가 명정처럼 좋아서 편리하단 말이지 도로 좋다고 차로 거기를 갔다는 말은 아닙니다. 비포장으로 도로 없을 때 차량들 고장도 많고 얼마나 사고도 많고 흙먼지에 그냥 참 말도 못했습니다. 세월 속에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고 또 주고받는 말도 그렇고 이게 그리 될 때 좋은 것은 그 자체가 신령한 것으로 변화가 되어 천국 잔치를 맛보는, 동참하는 영원한 천국 잔치가 펼쳐지는 그곳에 들어갈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에 마음을 기울여 찾아야 되고 붙들려야 되고 처음에는 내가 성령의 뜻을 감화와 감동을 찾으려 노력하고 찾으려고 노력할 때부터 남들이 볼 때는 신앙인 줄 압니다. 나도 그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주와 동행의 그 마음이 이루어지고 이제 여기서부터 입니다. 내가 성령을 찾아 붙들었을 때, 아직까지는 아닙니다. 이런 나를 보고 성령이 나를 잡으면 이때부터가 이제 “영으로 난 것”이 되어 집니다. 어린 아이가 복잡한 행사장에 옛날 오일장에 엄마는 물건 사느라 정신없고 아이는 엄마 치마 자락 잡고 가다가 아이가 엄마 치마 자락을 잡은 것은 주변에 휩쓸리면 이거는 쉽게 떨어져 버립니다. 엄마는 바빠서 잊어버립니다. 그러다가 미아 되는 수 많았습니다. 엄마가 아이 손을 딱 잡아버리면 놓쳐도 엄마가 알아서 다시 바로 잡아버리고 그리고 엄마가 잡은 이 손은 놓치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엄마 치마 잡고 시장 구경 나온 아이가 엄마와 동행입니다. 이거 환경에 휩쓸려버리면 아이의 힘이 넘는 것이 흔들어 버리면 떨어져 버립니다.
습관적으로 기독교 문화가 오랫동안 이렇게 베어져 있으면 우리나라도 지금 많이 그리 되어 있습니다. 믿는 사람처럼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믿는 사람의 행위라고 다 천국 가는 거 아닌데 믿는 사람의 믿음의 행위라야 되는데 그런데 믿음의 그 행위도 다시 한 번 더 들어가 보면 내가 믿은 것이 내가 믿은 건지 하나님이 마음을 여러 비추어 주므로 믿어져 믿은 것인지 내가 믿은 것은 믿어지는 은혜를 달라는 기도고 요청이고 노력이고 청구입니다. 물통을 수도꼭지 밑에 들이밀면 물이 나오느냐 아닙니다. 멀리서 보면 수도꼭지 밑에 물통이 들어갔기 때문에 물을 받는구나, 그 물통 안을 보고 준비가 다 됐으면 이제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와서 채워야 그게 물통에 물이 찬 거지 수도꼭지 밑에 들이 밀었는데 내용이 속이 더러워 그 물 채워봐야 더러워서 못 먹겠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지 않습니다. 물통 가져온 걸 보고 잘한다, 위치는 잡았다, 방향은 맞다, 자세도 맞다 그런데 속을 더 청소하거라, 이 상태로는 못 준다. 물통 넣고 그다음, 안이 받을 준비가 될 때 되면 벌써 채워버립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16절에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어 놨습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앞에 함께하는 그 모습,
밭을 샀습니다. 말하자면 집회를 가는 겁니다. 말하자면 연경을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재독을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예배를 참석하고, 주일을 지키고 기도하는 일반 신앙의 생활의 기본들을 말합니다. 이게 마음을 잡는 일이요, 마음을 붙드는 일이요, 이게 마음을 신앙의 마음으로
사는 일입니다. 죄악의 세상에서 주일을 지키고 예배와 연경과 재독과 집회를 가는 이런 일들은 이 땅위에 시간을 손해 보든지 뭔가 내 놔야 가지지 그냥은 못 가집니다. 그게 밭을 사는 겁니다. 신앙의 자세 자기의 마음을 주일만 지키면, 예배만 참석하면, 설교 필기만 하면, 집회만 가면, 또 기도회 가면, 연경 재독, 이런저런 여러 가지 참여를 하면 주님은 그 속을 들여다 봅니다. 수도꼭지에 물동이는 갖다 놨구나, 그런데 물통 안이 오물이면 아무리 부어봐야 그거 오물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과 섞어 내버리는 데 쓰도록 그렇게 틀어주지는 아니합니다. 멀리서 남들이 보면 저렇게 물통을 막 열심히 구입해서 가져가서 수도꼭지 밑에 딱 들이 밀었으니 저 물통 안에는 수돗물로 가득 찼겠지, 그 인간의 목격이고 인간의 착각입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물통 안을 들여다보십니다. 위에서 주는 하늘의 은혜를 받아 쓸 수가 있는가?
“밭을 샀더라” 일반적인 예배 생활 신앙의 마음을 붙들어 하늘나라로 가져갈 수 있도록 기본적으로 필요한 행위들입니다. 그렇다고 하늘로 옮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는 됐는데. 예배 자세가 어떤가? 그 기도가 놀다가 시험 날이 다가오니까 합격증 달라고 밤새도록 울부짖는 그런 억지인가, 뭔가 그다음 “소 다섯 겨리를 샀더라” 전도입니다. 심방입니다. 복음 운동입니다. 교회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하여 땀 흘리는 모든 수고들입니다. 또 결혼을 했으니 하나님이 내게 맡긴 신앙의 사람들, 가족들, 집에 있는 가족들, 신앙의 나의 식구들 내가 챙겨야 될 사람들 알뜰하게 부지런하게 그들이 신앙 생활하는데 필요하도록 세상의 도움까지 신앙의 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있는 주력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신앙으로 식구가 제일 많은 구역이 되었습니다. 80년대 기준으로 서부교회 구역장은 한 분의 구역 식구가 천 명,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때는 시내에 최대 교회라 해도 몇 천 명되기가 어려웠습니다. 주일학교 청년 반사 하나가 데리고 앉히는 학생만 매주 100명 150명 200명 그 식구들 챙기느라고 얼마나 달렸으며 얼마나 노력했겠습니까? 전부 세상 사람이 신앙의 사람이 되었고 신앙의 사람이 이면으로 저면으로 충성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이 있다, 하늘나라 가져갈 게 많다, 그럽니다. 그리 보면 사울도 하나님 나라의 대왕으로 평생 죽을 때까지 수고했고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될 국가유공자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속을 데려다 보니까 다윗 잡느라고 생 난리하다가 간 겁니다. 블레셋하고 싸웠는데 다윗을 찾아 잡아 죽이려고 이 잡듯이 돌아다니느라고 국력이 소모가 되어 블레셋은 이기고도 남아야 되는데 블레셋에게 왕이 전사하고 마지막 순간 죽는 모습은 자살입니다마는 나쁜 거는 다 가졌습니다. 국가를 위한 순국인가? 지도자의 위대한 자기 실행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한날한시에 전사했으니 하나님이 볼 때는 그놈, 다윗 잡아 죽이느라고 평생 난리하다가 마지막 저주 받아 원수 죄악의 세력에게 죽어버렸으니 신앙의 시작은 먼저 된 자나 신앙의 나중은 과연 나중 되었다. 하늘나라 가져올 것은 없다. 이 사울도 밭을 샀고 수많은 소를 부렸고 왕으로 자기 맡은 백성들을 위하여 마지막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순교입니다. 내용은 들여다보니까 하늘나라 잔치판을 뒤집어 엎어버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고 중생이 되어 그 영은 천국 가고 그 심신 자체는 천국 가지만은 그리고 처음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 능력으로 활동했던 앞부분은 채워가지만은 다윗이 등장한 이후에 사울의 것은 하늘나라 가져갈 것이 거의 없습니다.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자꾸 신경을 써야 됩니다. 놈팽이라 학교도 안 가던 것이 학교를 갔다면 뭐 박수를 치고 얼마나 칭찬을 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내 뒷골목에 하던 짓을 이제는 학교 안으로 가서 친구들 돈 뜯는 방향으로 잡았는지 모릅니다. 학교를 갔으니 일단 됐고, 학교를 들어갔으니 이제 독 안에 든 쥐입니다. 두 번째, 하루 종일 학교에서 뭘 했는지를 이제는 또 살피는 겁니다. 뭐 선생님, 친구, 이리저리 조사해보면 나오지요. 요새는 cc tv까지 있으니까 이제 자세가 보니까 어느 정도 됐습니다. 더 발전한 거니까 아직도 된 게 아닙니다. 저게 뒷골목에서 하던 짓을 중단을 하니 마음은 콩밭이라고 그냥 선생님을 쳐다는 보는데 마음은 지금 밖으로 돌아 댕기는가, 딱 집중을 하는가, 이건 아직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시험 치고 성적을 딱 보니까 아, 마음이 완전 기울여 졌구나, 이제 비로소 더 안심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 가르치는 방향이 엉뚱한 데로 가고 그래서 그 학교의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은 이게 대학 가는 데 필요한지 세상사는 데 필요한지 아직도 모릅니다.
하나 더 들어가서 이 아이에게 맞는 공부인지 이 아이의 잡아갈 진로에 지금 필요한 건지까지를 들여다봐야 됩니다. 여기까지가 되고 나면 이제 시내 뒷골목의 아이가 자기 인생의 앞날을 위해서 소중한 시간 머릿속에 부지런히 담고 인격을 도야하고 실력을 갖추는구나, 이건 졸업하면 순서를 거쳐 좋은 사람이 되겠구나, 자꾸 속을 들여다봐야 되는 겁니다. 세상도 겉모습이 있고 겉모습 안의 모습이 있고 그 안의 모습이 있고 자꾸 안을 들여다봐야 되는데 아, 교복 입고 학교가면 됐지,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으니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애국이지, 지금 이 정도입니다. 이 나라가. 국회의원이 한 말은 그 어떤 말을 하든지 애국이랍니다. 참, 그렇게까지 그럴까, 세상도 아는 사람은 그 속을 들여다봅니다. 속을 또 들여다봅니다. 더 들여다봅니다.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렇게 돼 있고 영계는 영의 나라라 인간의 노력 가지고는, 인간의 노력을 보고 그다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고 나면 하나님이 베푼 은혜 외의 인간적인 것은 다 뽑아버리고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만 하늘나라 가지고 가게 되어 집니다. 8월 집회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번 한 주간 보이는 안식일 속에 매 순간 매 현실마다 고쳐가는 것 고치되 어느 정도 고쳐야 되는가, 내가 고친 거 말고 내가 고쳤으니 됐다, 내 평가 말고 주님과 하나 된, 시작은 내가 했는데 마지막에 보니 주님 것만 남고 내 것과 나의 노력은 전부 다 빼버린 상태가 되어 져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