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5.18 눅14:12 천국을 준비하는 단번의 기회, 자기 고치고 주변을 살리며 목적을 이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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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5.18 눅14:12 천국을 준비하는 단번의 기회, 자기 고치고 주변을 살리며 목적을 이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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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요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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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18 수새
 
제목 : 천국을 준비하는 단번의 기회, 자기 고치고 주변을 살리며 목적을 이뤄갈 것 
 
찬송 : 34장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본문 : 누가복음 14장 12절 -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1절부터 6절에서는 고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목적이다. 안식일의 목적도 고치는 것이지만은 안식일을 넓히면 신앙생활이 되어 집니다. 주님 오셔서 우리 구원하시고, 영만 해결합니다. 영만 해결해 놓은 것은 영을 살려놨으니 심신은 네가 스스로 너를 고쳐라. 그러도록 진리의 이치를 주셨고 성령의 지도를 주셨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의 공로라는 비용 다 주셨습니다. 그냥 심신을 마저 다 고쳐주시지, 그 말은 돌로 만든 벅수를 만드시지 라는 말이 되어 집니다. 인형을 만들지, 돌로 만든 벅수로 만들지, 그건 병이 생기지 않고 고장은 없는데 인격이 없어 답답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통해 안식일을 먼저 가르치고 안식을 넓혀보면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이며 모든 날의 시작이며 전부가 안식일입니다. 고치는 게 문제다. 구약의 끝이니 육체를 고치며 고치는 것이 문제다. 신약의 출발이니 이제 두고 갈 육체가 문제가 아니라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 속의 인격 신앙을 고치거라, 여기 전념하거라.
 
그 다음 7절로 11절까지는 고치는 순서가 하늘의 순서다. 신앙은 고치라고 준 거다. 영계와 우주의 존재 목적부터가 그렇습니다. 영계는 변동이 없는 고정의 영생의 나라, 변동이 없기 때문에 그 나라 가가지고 회개를 한다든지 죄의 경험은 못합니다. 실패의 경험, 하나님 없이 살면 어찌 되는 경험, 더 나아가 지옥을 조금 맛보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세상에서만 합니다. 그래서 영계의 천국과 지옥의 조금씩을 떼다가 버무려 맛보기로, 시식으로 잠깐의 체험으로 세상을 만들어두셨습니다. 여기서 맛본 천국, 그걸 길러가고 제대로 가져갈 것이 천국입니다. 여기서 맛본 지옥, 제대로 영원히 뛰어들 곳이 지옥입니다. 세상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보며 천국 아니면 안 되겠구나, 이 사람 만들려고 천국의 영원한 감사를 세상에서 맛 본 지옥으로 알 수 있게 하려고. 편하고 심지어 천국과 지옥이 바뀌는 교차의 세상을 만드시고 그리고 변동 없는 영계를 만드시고 그 다음, 오늘 우리들에게 네가 너의 심신을 고쳐 보거라. 1절에서 6절. 7절부터는 고친 순서가 천국의 순서다.
 
가장 많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 아버지 보좌 우편 아버지 보좌 우편이란 말은 존재적으로는 다르고 모든 것은 같고 이게 아버지 보좌 우편입니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은 것과 같이 이기는 그에게는 그도 나의 보좌 우편에 앉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을 딱 찍어 보좌 우편에. 그 다음, 그 주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이야 완전자며 삼위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체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며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우리와의 인성의 관계입니다. 보좌 우편, 보좌 우편. 이게 영원한 영생의 하나님의 목적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우리를 어느 정도로 만드시려고 마음을 먹었는가? 공공기업 취업하면 평생이 보장되니 좋겠다, 요즘 부모의 일반적인 기대가 그 정도가 아닙니까? 얘는 특수해서 취업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고위 공직자는 돼야 되지 않겠는가? 고위? 어느 정도? 뭐 국장 정도까지는 가야 되지 않겠느냐? 시장부터는 이제 선출직이니 급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우리를 목적 정하시고, 이걸 어느 정도로 정할까? 돌로 만든 벅수? 좀 부드러운 나무 인형? 그보다 나은 식물? 그보다 나은 동물? 그보다 나은 천사? 그 위에 하나님을 아예 딱 닮아 앉혀놓으면 만물이 모를 완전자 하나님을 완전히 닮은, 이게 완전자의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실 때 첫 내용입니다. 우리는 계산을 빼야 되기 때문에 많은 계산을 하고 이거보다는 이거 이러는데 하나님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완전이기 때문에 영원 전 홀로 계시다가 하나님 닮은 존재, 목적입니다. 이걸 만들기 위해 그 다음, 목적을 정하셨으니 이 목적에 얼마나 가까운가? 이 목적 달성에 몇 프로인가? 이게 천국의 영원한 영생의 내용이 되어 집니다. 세상은 시공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주인이 손님들을 양쪽으로 쭉 또는 원으로 둘러 앉혀 거리를 달리 주지만은 하늘나라는 공간이 없어 그런 공간적인 거리 차이는 없습니다. 시공에 제한을 받는 우리는 넓고 높고 가깝고가 있지만은 영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버립니다. 거리로 의자로 비교해서 첫째 둘째가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의 주인을 중심으로 1,2,3으로 서열이 쭉 펼쳐지는 그 보이는 모습을 신령하게 바꾸어 하나님을 원형으로 다윗처럼 동행한 인물, 사울처럼 잘 나가다가 평생에 반대쪽에 선 사람의 순서가 각각 다릅니다. 제사장 사무엘과 제사장 엘리가 다릅니다. 이 모습은 영원무궁토록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함께 자라갈 뿐입니다. 무한을 향하여. 무한을 향하여 자라갈 때 세상에서 5정도로 하늘나라 간사람, 세상에서 3을 가지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둘로 가지고 간사람 세상에서는 5대2의 차이인데 하늘나라가면 함께 자랄 때 5가 50자랄 때 2가 20으로 자라겠는가? 끝없이 자라는 속도가 다를 겁니다. 가속도가 붙어 버립니다. 이 땅위에 죄를 짓고 의를 행할 때도 가속이 붙었습니다. “그 날이 가까울수록 말세가 되면 악한 자는 더욱 악해지고” 수평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시공의 제한이 풀려져버리면 속도의 차이는 더 많이 납니다. 이걸 계산을 빼봤다면 물질에 돈 욕심, 명예 욕심, 세상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신앙생활에 불리한데 이게 강한 사람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차이의 계산을 빼봤다면 이 땅위에 있는 것 아낌없이 다 바칠 겁니다. 똑같이 출발해서 자본 조금 차이 나는데 하나는 대기업되고 하나는 중소기업 될 때의 규모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오늘에 하루의 충성에 따라 하늘나라의 영생의 모습이 무한히 자랄 건데 그 무한히 자라는 게 등속도로 가는 게 아니라 가속이 적용이 된다면 이거는 이 땅위에 있는 거 순간도 빠짐없이 다 바쳐야 되겠다는 의의 욕심이 요동을 칠겁니다. 의의 욕심도 있는가? 욕심은 다 나쁜 건데,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소욕이라, 육체의 소욕이라 욕심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의 의욕이냐? 여기 따라 다른 겁니다.
 
그래서 7절로 11절은 얼마나 고쳤느냐? 세상에서는 고칠게 많으면 바보가 되고, 그래서 고칠 게 있어도 덮어야 되고 우리 쪽에 지은 죄는 감춰야 되고 부인을 해야 되고 이게 세상입니다. 세상을 자기 나라로 가지지 않고 하늘나라를 가진 우리의 세상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못 고치니, 여기에서만 고칠 수 있으니 오늘 하루 몇 가지를 고쳤느냐? 얼마를 고쳤느냐? 이 구상이 이 정도가 하늘의 영생에 고정된 모습입니다. 그래서 많이 고친 자, 자기가 자기를 보면 저절로 내려가게 돼 있는 겁니다. 고칠 것이 많으니, 자기 단점 자기 못난 점, 자기 아쉬운 점, 자기의 잘못이 많이 보였느냐? 많이 보였으니 솔직하게 자기는 몹쓸 사람입니다. 그게 많이 보이고 그걸 많이 고칠수록 많은 환자입니다. 큰 환자입니다. 중환자입니다. 대학병원에 가서 그냥 외래 앉았다가 보고 갈 겁니까? 입원을 해야 되는 입원 환자입니까? 입원 중에서 중한 사람들은 중환자실로 보냅니다. 중환자실보다 더 급하면 응급실 갑니다. 어디 갈래? 전 이거 순간적으로 죽겠습니다, 응급실이냐, 순식간에 죽진 않지만 잘 못 관리 했다가는 순간 어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전 중환자실 가겠습니다, 일반병실 가겠습니다, 외래 와서 그냥 얼굴이나 잠깐 보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라. 아예 약국에 와서 그냥 소화제 하나만 먹고 갈래? 갈 것도 없냐? 내가 나를 점검할 때 이건 너무 중환자입니다, 육체가 아니라 인격과 자기 신앙을 그렇게 문제가 많고 과제가 많다고 보는 순간 벌써 하늘에 그의 신앙에 영생의 모습은 제일 윗자리가 됩니다.
 
자기의 문제점을 발견하라, 어느 정도 발견할 것이냐? 영 쓰지 못하겠구나, 심각한 자기의 단점을 찾아 내거라, 이리 가르쳤는데, 이리 말을 해놓으니까 낮추면 올라간다? 고칠 것은 없는데 고칠 것이 있는 것처럼 연극을 해야 겸손하다는 말을 들어 막 올라가시라 그럴테니까 이런 연극 이런 사기 그런 허위 그런 이중 삼중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외식으로 딱 찍혀버립니다. 이건 고칠 병(약)도 없다. 이렇게. 남한테 표현을 하고 말고는 사회성과 남의 입장까지를 생각해서 적당하게 하고 내용으로는 참 이 면이 문제다, 저 면이 문제다, 참 중대하다, 심각해야 됩니다. 이게 심각한 만큼 고칠 은혜가 와서 소망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주님 없이 심각한 걸 발견하면 우울증이 되고 그거는 좌절이 되고 그거는 절망으로 빠집니다. 둘 다 똑같은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딱 볼 때 이거는 어떤 약도 약이 없는 두 사람이면, 그리고 한 사람에게는 이건 약도 없고 이렇게 안 좋은 얘기만 다 하고 한 사람에게는 아, 뭐 그냥 별 거 없고 살다 보면 그렇고 연세가 많으면 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그냥 행복하게 사시지 뭔 걱정하시냐고 아, 교통사고 나서 그냥 건강한 청년도 오늘 죽는데 연세가 이렇게 많으니 든든하게 사시라고 별거 없다고. 한 사람은 마음 편안하게 위로해 주고, 한 사람한테는 온갖 나쁜 얘기를 다 해주고 병은 똑같은데, 병이 똑같을 것 같으면 그냥 좋은 얘기 하지 뭐하려고 나쁜 이야기 할 겁니까?
 
주님 앞에 못 고치는 게 있습니까? 그래서 신앙에 인격의 병이란 못 고칠 게 없기 때문에 아무리 발견을 하고 아무리 심각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고칠 게 많을수록 치료가 많이 오고 은혜가 많지. 그러라는 것이 11절까지고.
 
그 다음 12절에 마지막, 주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한 주인에게 점심이든 저녁이든 다른 사람을 불러 식사를 초대할 때 먹기 어려운 때입니다. 지금 누구를 불러놨느냐? 친구를 불러놨지 벗, 친구를 불러 놨지 뭐 보기 싫은 원수를 불러놨겠습니까? 또 형제를 불러놨지 뭔 이민족 나그네 남을 불러놨겠습니까? 아니면 형제 다음 친인척이나 되니까 불렀지, 그리고 부자를 불러야 또 오가는 게 있지. 그들을 불러놓으면 그들도 너하고 같은 종류고 너하고 같은 급이고 너하고 같은 수준이니 또 너를 청하여 너한테 갚게 되어 진다. 이 땅위의 모든 신앙의 양식은, 이 땅위의 모든 신앙의 양식은 깨달음의 힘, 실행의 힘, 그런 은혜, 그런 기회는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 주변에 이게 꼭 필요한 사람, 이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볼까?
 
그리고 13절에 “잔치를 베풀어라” 잔치를 베푼단 말을 배설한다고 그럽니다. “베풀어라” 없는 사람, 장애가 생긴 병신, 또박또박 걸어가야 되는데 신앙이 이랬다저랬다, 이렇게 저렇게 요동 많은 분들, 뭔지도 모르고 달리는 소경들. 네가 깨달은 신앙의 힘, 네가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여건, 전부를 다하여 그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하거라. 그러면 너에게 복이 있으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이 땅 위의고치는 전부는 하늘나라만 바라봐라, 이 땅위에 고치고 돌려서 칭찬 그 어떤 종류의 대가도 바라보지 말아라, 천국 일념으로만 계산하라. 정말 공부 잘하는 애들은 마지막 최종 합격에 거기에 목표를 맞춰서 쭉 나아갑니다. 달달이 나오는 성적이 아니고 최종 마지막. 당연할 거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의 목표에 전력을 해야 유한한 부족한 힘을 가진 것을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넌 최종의 목표가 뭐냐? 순간순간을 즐깁니다, 이게 요즘 나오는 모든 학교든 문화든 티비든 입만 열면 현재를 즐겨라? 뭐 현재 즐기는 게 좋지. 현재 밖에 없으니까 그 인간들은. 오늘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성경이 이렇게 표현해놨습니다.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그건 멸망의 족속인데. 불신자도 훗날 어찌 될지 모르니 살펴라. 하룻밤 나그네지만은 조금 앞을 내다보는 불신자도 이렇게 가르쳤는데 아예 이놈의 세상 말하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축구를 차냐? 그 순간을 즐겨라. 뭐, 뭘 하든지 순간 순간을 즐겨라. 내일은? 다음은? 죽던 말든 다음에 또 즐기고. 이거 뭐 그냥 막 가는 겁니다. 불신자도 소년아 청년이 될 때를 생각해라. 청년아 늙을 때를 생각해라. 나이 들어가느냐? 마지막 죽을 때 나중에는 후손을 생각해라. 이게 그래도 좀 멀리 보는 지성인데 현재를 즐겨라? 온 나라고 뭔 입 있는 것들은 전부 그 소리 하느라고 그 말을 해야 또 이게 또 인기입니다. 우리는 최종 마지막에 목표를 맞춰놓고 오늘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을 우리는 즐기는 사람입니다. “보물을 발견하고 돌아가서 다 팔아 샀느니라” 이 즐거움. 천국을 사는 즐거움. 그 기쁨. 그 만족.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영생, 하늘에 맞추고 한번 밖에 없고 지나가는 이 순간 이 현실 지금을 어떻게 하늘에 맞춰놓고 잘 부어버리느냐? 어떻게 하면 고치느냐? 고치는 연습 고치는 과정, 여기에 주력하면 좋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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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


220518 수새
 
제목 : 천국을 준비하는 단번의 기회, 자기 고치고 주변을 살리며 목적을 이뤄갈 것 
 
찬송 : 34장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
 
본문 : 누가복음 14장 12절 -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안식일)

1절부터 6절에서는 고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목적이다. 안식일의 목적도 고치는 것이지만은 안식일을 넓히면 신앙 생활이 되어진다. 주님 오셔서 우리 구원하시고, 영만 해결하셨다. 영만 해결하신 것은 영을 살려놨으니 심신은 너가 스스로 너를 고쳐라. 그러도록 진리의 이치를 주셨고 성령의 지도를 주셨고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의 공로라는 비용을 다 주셨다. 그냥 심신을 마져 다 고쳐주시지, 그 말은 돌로 만든 벅수를 만드시지라는 말이 되어진다. 인형을 만들지 돌로 만든 벅수로 만들지, 그건 병이 생기지 않고 고장이 없는데 인격이 없어서 답답하다.

​그래서, 안식일을 통해 안식일을 먼저 가르치고 안식을 넓혀보면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이고 모든 날의 시작이며 전부가 안식일이다. 고치는 것이 문제다. 구약의 끝이니 육체를 고치며, 고치는 것이 끝이다 고치는 것이 문제다 신약의 출발이니 이제 두고 갈 육체가 문제가 아니라 육체를 가지고 있는 그 속의 인격 신앙을 고치거라 여기에 전념하거라.

​(상석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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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7절로 11절까지는 고치는 순서가 하늘의 순서다. 신앙은 고치라고 준 것이다. 영계와 우주의 존재 목적부터가 그렇다. 영계는 변동이 없는 고정의 영생의 나라, 변동이 없기 때문에 그 나라 가가지고 회개를 한다던지 죄의 경험은 못한다. 실패의 경험, 하나님 없이 살면 어찌 되는 경험, 더 나아가 지옥을 조금 맛보는 천국이 아니라 세상에서 한다. 그래서 영계의 천국과 지옥의 조금씩을 떼다가 버무려 맛보기로 시식으로 잠깐의 체험으로 세상을 만들어두셨다. 여기에서 맛본 천국, 그것을 길러가고 제대로 가져갈 것이 천국이다. 여기에서 맛본 천국 그것을 길러가고 제대로 가져갈 곳이 천국이다. (또) 여기서 맛본 지옥, 제대로 영원히 뛰어들 곳이 지옥이다. 세상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보며, 천국 아니면 안되겠구나(라는) 이 사람 만들려고 천국의 영원한 감사를 세상에서 맛 본 지옥으로 알 수 있게하려고, 변하고. 심지어 천국과 지옥이 바뀌는 교차의 세상을 만드시고. 그리고 변동없는 영계를 만드시고 그 다음 오늘 우리들에게, 네가 너의 심신을 고쳐보거라. 1절에서 6절. 7절부터는 고친 순서가 천국의 순서다.
 
가장 많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 아버지 보좌 우편. 아버지 보좌 우편이라는 말은 존재적으로는 다르고 모든 것은 같고 이게 아버지 보좌 우편이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은 것과 같이 이기는 그에게는 그도 나의 보좌 우편에 앉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을 딱 찍어서 보좌 우편에. 그 다음 그 주님의 보좌 우편에 우리를. 삼위일체 하나님이야 완전자며 삼위의 다른데도 일체이니까 그렇다쳐도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우리와의 인성의 관계이다. 보좌 우편(의) 보좌 우편. 이게 영원한 영생의 하나님의 목적 내용이다. 하나님의 목적.

​우리를 어느 정도로 만드시려고 마음을 먹었는가?

​공공 기업 취업하면 평생이 보장되니 좋겠다. 요즘 부모의 일반적인 기대가 그 정도가 아닌가? 이 아이는 특수해서 취업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이고 고위 공직자는 되지 않아야 할까 고위? 어느 정도? 뭐 국장 정도까지는 가야 되지 않겠느냐, 시장부터는 이제 선출직이니 급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우리를 목적 정하시고, 이것을 어느 정도로 정할까? 돌로 만든 벅수? 좀 부드러운 나무 인형? 그것보다 나은 식물? 그것보다 나은 동물? 그것보다 나은 천사? 그 위에 하나님을 아예 딱 닮아서 앉혀놓으면 만물이 모를 완전자 하나님을 완전히 닮은, 이게 완전자의 영원한 목적을 정하실 때의 첫 내용이다. 우리는 계산을 빼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계산을 빼고 이것보다는 이것이지만은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한 완전이기 때문에 영원한 혼자 계시다가 하나님 닮은 존재, 목적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그 다음 목적을 정하셨으니 이 목적에 얼마나 가까운가? 이 목적 달성에 몇프로인가? 이게 천국의 영원한 영생의 내용이 되어진다.

​세상은 시공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주인이 양쪽으로 쭉 또는 원으로 둘러 앉혀서 거리를 달리 두지만은, 하늘나라는 공간이 없어서 그런 공간적인 차이는 없다. 시공 제한의 우리는 넓고 높고 가깝고 멀고가 있지만은 영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버린다. 거리로 의자 비교해서 첫째 둘째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의 주인 중심으로 1 2 3으로 쭉 서열이 펼쳐지는 그 보이는 모습을 신령하게 바꾸어, 하나님을 원형으로 다윗처럼 동행한 인물, 사울처럼 잘 나가다가 평생에 반대 쪽에 선 사람의 순서가 각각 다르다. 제사장 사무엘과 제사장 엘리가 다르다. 이 모습은 영원무궁토록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함께 자라갈 뿐이다. 무한을 향하여.

​무한을 향하여 자라갈 때에, 세상에서 5정도로 하늘나라 간 사람, 세상에서 3을 가지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둘을 가지고 간 사람 세상에서는 5대 2의 차이인데 하늘나라 가면 함께 자랄 때 5가 50 자랄 때에 2가 20 자라겠는가? 끝없이 자라가는 속도가 다를 것이다. 가속도가 붙어 버린다. " 날이 가까울수록 말세가 되면 악한 자는 더욱 악해지고" 수평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시공의 제한이 풀려져버리면 속도의 차이는 더 많이 난다. 이것을 계산을 해봤다면 물질의 돈 욕심 명예 욕심, 세상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신앙 생활에 불리한데, 이게 강한 사람이 하늘나라의 영원한 차이의 계산을 빼봤다면 이 땅 위에 있는 것 아낌없이 다 바칠 것이다. 똑같이 출발해서 자본 조금 차이 나는데 하나는 대기업되고 중소기업 될 때의 규모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데. 오늘 하루의 충성에 따라 하늘나라의 영생의 모습이 무한히 자랄 것인데 그 속도가 등속도가 아니라 가속이 적용이 된다면 이것은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순간도 빠짐없이 다 바쳐야 되겠다는 그 의의 욕심이 요동을 칠 것이다. 의의 욕심도 있는가? 욕심은 다 나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성령의 소욕, 육체의 소욕" 욕심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의 의욕이냐 여기에 따라 다른 것이다.

(말석)
 
그래서 7절-11절은 얼마나 고쳤느냐? 세상에서는 고치는 것이 많으면 바보가 되고 그래서 고칠 것이 있어도 덮어야 되고 우리 쪽에 지은 죄는 감춰야 되고 부인을 해야 되고 이게 세상이다. 세상을 자기 나라로 가지지 않고 하늘나라를 가진 우리의 세상은, 그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못 고치니 여기에서만 고칠 수 있으니 오늘 하루 몇가지를 얼마를 고쳤느냐? 이 구상이 이 정도가 하늘의 영생에 고정된 모습이다.

​그래서 많이 고친 자. 자기가 자기를 보면 저절로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칠 것이 많으니, 자기 단점 자기 못난 점 자기 아쉬운 점, 자기의 잘못이 많이 보였느냐? 많이 보였으니 솔직하게 자기는 몹쓸 사람이다. 그게 많이 보이고 그걸 많이 고칠수록 많은 환자 큰 환자 중환자이다. 대학 병원가서 그냥 외래 앉았다가 보고갈 것인가? 입원해야 되는 입원 환자인가? 입원 중에서 중한 사람들은 중환자실로 보낸다. 중환자실보다 더 급하면 응급실 보낸다. 어디로 갈래? 저는 이거 순간적으로 죽겠습니다의 응급실이냐? 순식간에 죽지 않지만 잘못 관리했다가는 어찌 되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환자로 가겠습니다. 저는 일반 병실가겠습니다. 저는 외래와서 얼굴만 잠깐 보고 가겠습니다. 알아서 해라. 아예 약국가서 소화제만 먹고 갈래? 아니면 갈 것도 없냐? 내가 나를 볼 때에 이건 너무 중환자입니다. 육체가 아니라 인격과 자기 신앙을 그렇게 문제가 많고 과제가 많다고 보는 순간. 벌써 하늘의 그의 신앙에 영생의 모습은 제일 윗자리가 된다.
 
자기의 문제점을 발견하라. 어느 정도 발견할 것이냐? 영 쓰지 못하겠구나 심각한 자기의 단점을 찾아내거라 이리 가르쳤는데, 이리 말을 해놓으니까 낮추면 올라간다? 고칠 것은 없는데 고칠 것이 있는 것처럼 연극을 해야, 겸손하다는 말을 들어 막 (주변에서) 올라가시라고 할테니까 이런 연극 이런 사기 그런 이중 삼중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외식으로 찍혀버린다. 이것은 고칠 길도 없다. 남한테 표현하고 말고는 사회성과 남의 입장까지를 생각해서 (외부는) 적당하게 하고, 내용으로는 참 이 면이 문제다 저 면이 문제다 참 중대하다(라고) 심각해야 한다.

​이게 심각한 만큼 고칠 은혜가 와서 소망으로 바뀌어진다. 주님 없이 심각한 것을 발견하면 우울증 좌절 절망으로 빠진다. 둘 다 똑같은 병에 걸렸는데 의사가 딱 볼 때에 어떤 약도 없는 두 사람이면, 그리고 한 사람에게는 이건 약도 없고 안 좋은 이야기만 다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아이 뭐 그냥 별 것 없고 살다보면 연세 많으면 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행복하게 사시지 뭔 걱정을 하시냐고, 교통사고로 건강한 청년도 오늘도 죽는데 연세가 이렇게 많으니 든든하게 사시라고 별 것 없다고, 한 사람은 마음 편하게 위로해주고 한 사람에게는 온갖 나쁜 이야기를 다 해주고. 병은 똑같은데 병이 똑같을 것 같으면 그냥 좋은 이야기 하지 뭐하려고 나쁜 이야기를 할까? 주님 앞에 못 고치는게 있나? 그래서 신앙 인격의 병이란 못 고칠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발견하고 심각해도 상관이 없다. 고칠 것이 많을수록 치료가 많이 오고 은혜가 많지 그러라고 하는 것이 11절까지이고.

(초청 대상)
 
그 다음 12절 마지막, 주님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 주인에게, 점심이든 저녁이든 "다른 사람을 불러 식사를 초대할 때에" 먹기 어려운 때이다. 지금 누구를 불러놨느냐? 친구를 불러놨지 보기 싫은 원수를 불러놨나 또 형제를 불러놨지 뭔 이민족 나그네 남을 불러놨을까? 아니면 형제 다음 친 인척이나 되니까 불렀지 또 부자를 불러야 오가는게 있지. 그들을 불러놓으면 그들도 너하고 같은 종류이고 너하고 같은 급이고 너하고 같은 수준이니 "또 너를 청하여 너한테 갚게 되어진다" 이 땅 위의 모든 신앙의 양식은 이 땅 위의 모든 신앙의 양식은 깨달음의 힘, 실행의 힘, 그런 은혜 그런 기회는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 주변에 이게 꼭 필요한 사람, 이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볼까?
 
그리고 13절에 "잔치를 베풀어라" 잔치를 베푼다는 말을 배설한다고 한다. 베풀어라. 없는 사람, 장애가 생긴 병신, 또박 또박 걸어가야 되는데 신앙이 이랬다 저랬다 이렇게 저렇게 요동 많은 분들, 뭔지도 모르고 달리는 소경들. 네가 깨달은 신앙의 힘, 네가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여건 전부를 다하여 그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하거라.

"​그러면 너에게 복이 있으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이 땅 위의고치는 전부는 하늘나라만 바라봐라 이 땅 고치고 돌려서 칭찬 그 어떤 종류의 댓가도 바라보지 말아라. 천국 일념으로만 계산하라. 정말 공부 잘하는 애들은 마지막 최종 합격에 거기에 목표를 맞춰서 쭉 나아간다. 달달이 나오는 성적이 아니고 최종 마지막. 당연할 것 아닌가? 마지막의 목표에 전력을 해야 유한한 부족한 힘을 가진 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 모든 면의 원리가 그렇다.

 
너는 최종의 목표가 뭐냐?

​순간 순간을 즐깁니다 이게 요즘 나오는 모든 학교든 문화든 티비든 입만 열면, 현재를 즐겨라? 현재 즐기는 거 좋지 현재 밖에 없으니까 그 인간들은. "오늘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성경이 이렇게 표현해놨다.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이것은 멸망의 족속인데 불신자도, 훗날 어찌 될지 모르니 살펴라. 하룻밤 나그네이지만은 조금 앞을 내다보는 불신자도 이렇게 가르쳤는데 아예 이놈의 세상 말하는 표현이 그렇다. 축구를 차느냐? 그 순간을 즐겨라? 순간 순간을 즐겨라? 내일은 다음은? 죽던 말든 다음에 또 즐기고. 이건 뭐 막 가는 것이다. 불신자도, 소년아 청년이 될 때를 생각해라. 청년아 노년을 생각해라. 나중의 후손을 생각해라. 이게 멀리 보는 지성인데 현재를 즐겨라? 온 나라 입 있는 것들은 전부 그 소리 하느니라고 그 말을 해야 또 인기이다. 우리는 최종 마지막에 목표를 맞춰놓고 오늘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보물을 발견하고 돌아가서 다 팔아 샀느니라. 이 즐거음. 천국을 사는 즐거음. 그 기쁨 그 만족.
 
통성으로 기도.
 
모든 것은 영생, 하늘에 맞추고 한번 밖에 없고 지나가는 이 순간 이 현실 지금을 어떻게 하늘에 맞춰놓고 잘 부어버리느냐? 어떻게 하면 고치느냐? 고치는 연습 고치는 과정, 여기에 주력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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