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5.17 눅14:1 사활대속 피 공로의 겸손과 그 영광, 정말 제대로 계산해야 자기 위치를 알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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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5.17 눅14:1 사활대속 피 공로의 겸손과 그 영광, 정말 제대로 계산해야 자기 위치를 알게됨

관리1 0 125 2022.05.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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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요점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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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17 화새
 
제목 : 사활대속 피 공로의 겸손과 그 영광, 정말 제대로 계산해야 자기 위치를 알게됨
 
찬송 : 91장 (환란과 핍박중에도)
 
본문 : 누가복음 14장 1절 -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자기 내면을 높게 보는데 그런데 높아지면 낮아진다 하니 허리를 숙이고 아랫자리 말석을 찾아 가게 되면 이게 바로 외식이 되어 집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속으로는 윗자리가 내 자리인데, 속으로는 나는 잘난 사람인데 높은 사람 좋지 못하다, 자기를 높이면 뒤에 낮아진다니 나는 잘났고 높으지만 나를 꺾어야 되겠다, 라고 그리 생각한다면 그게 회개가 되고 개선이 되어 집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은 자기를 향한 자기의 평가는 항상 높고 계속해서 높아 있는데 겉만 계속 말석에 앉고 낮아지면, 그건 개선이 아니고 그건 외식이 되어 집니다.
 
속으로 생각을 할 때 생각을 해보니 계산을 해보니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구나, 진정으로 깨달아가지고 알고 보니 높지 않은 내가 나를 높게 봤구나, 이렇게 자기 속의 지식을 바꾸어 알고 보니 나는 실체가 낮은 사람 못난 사람이구나, 그래서 저절로 자기의 몸이 숙여지고 자기 자리가 아랫자리이니 아랫자리로 내려가게 만들어야, 이게 속이 있는 신앙이고 그게 참 신앙입니다.
 
속으로는 여전히 잘났는데,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할 수 없이 낮춰봐야 얼마나 낮추겠습니까? 임금님이 나는 신하보다 못난 자다, 떠들어봐야 타고 나기를 임금은 하늘이 준 잘난 사람인데 그게 임금이고 그게 귀족이고 그게 양반이고, 양반을 못해서 모두 생난리들인데 자기가 자기 속을 고치지 않고 자기가 자기 속을 새롭게 인식하지 않고는 해결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네가 낮은 자임을 알아 차려라. 오신 주님은 창조주요 만유주입니다. 이쪽을 생각하고는 겸손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인 우리를 대신하려고 왔습니다. 대신 해야 됩니다. 생각도 자세도 대신하지 않으면 우리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 거두절미하고, 죄인 대신 왔으니 죄인으로 있어야 되기 때문에 죄인도 그냥 죄인이 아닙니다. 택한 백성 전부의 죄를 다 걸머지셨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라 했는데 그보다 더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의 괴수 죄악도 담당하셨으니. 아담과 하와의 죄, 노아 때 전부 죽어버린 그때 홍수에 빠진 모든 사람의 죄, 롯의 죄, 가룟 유다의 죄, 만백성의 모든 죄를 한 몸에 다 걸머지셨으니, 예수님이 제일 죄인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높은 분입니다. 높기 때문에 높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정도 낮췄느냐?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까지 낮아졌습니다. 모든 죄인 중에 내가 두목이다, 전 인류 전체에 제일 낮은 자리로 갔습니다. 바울이 제일 의인입니다. 그 바울의 죄까지 다 걸머지셨으니, 바울은 자기 하나가 모든 택한 백성 중에 제일 밑에지만은 그 죄와 모든 택한 백성의 죄 전부를 다 한 몸에 걸머지셨으니 주님보다 더 낮은 자는 없습니다.
 
낮추셨으니, “높아지리라” 어디까지 높아지겠습니까? 그 전부의 의를 다 합한 그 위로 올라가십니다. 원래 출신도 하나님이시지만은, 한 몸으로 가진 인성 때문에 낮아지셨지마는 그 인성의 부활로 이제는 존재적으로도 모든 만물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이 되셨고, 또 공로적으로 수고적으로도 제일 위에 가셨습니다. 충성하고 바르게 목회한 분들을 추억을 해보면 그 교회 교인 다 합한 것보다 수고는 더 하신 것이 맞다, 그렇습니다. 그 교회에 기도는 그 목회자보다 더 잘하는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그 교회의 성경은 누가 목사님보다 누가 더 잘 아는 분이 있고 그 교회의 전도는 전도만을 두고 말하면 그 교회 목사님보다는 그 교회 누가 전도는 더 많이 한 분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습니다. 종합 점수에서는 그 교회 목회자가 1등일지라도 국어는 목회자 아닌 사람이 1등, 수학은 목회자 아닌 누가 1등, 그런 것이 있는 것처럼, 과목별 1등은 따로 있고, 총점이 1등인 경우.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과목이 한 열개 정도 되면. 총점 전체 1등을 과목별로 보면 1등 과목, 3등 과목, 심지어 5등 과목 이렇게 분포가 여러 가지입니다. 평균을 내보니까 1등이지.
 
주남선 목사님 같은 분은 돌아가실 때 시골의 교인이 한 6백여 명 되었습니다. 참 어떤 면으로 봐도 그 분보다 더 기도한 분 없고 그 분보다 더 충성한 분 없고, 그 분보다 더 전도한 사람 없고. 어떤 면으로 봐도. 과목별로 전부 1등에 총점도 1등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되돌아봐야 됩니다. 자녀들에게 너를 낳았으니 나는 태생적으로 존재적으로 어른이지, 여기까지인가? 나머지를 과목별로 볼 때 성질은 첫째 아이가 더 낫고, 그런데 부모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수고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인가? 이런 걸 명목상 신앙이라, 실질적 신앙이라. 부모가 정말 부모 노릇 했냐? 형이 정말 형 노릇 했냐? 목회자가 정말 목회자다웠느냐? 동천교회 조례교회 이렇게 목회자들 계산을 해보면 목회자들이 교회에 경제적으로 기여한 게 제일 많습니다. 번 돈으로 연보한 액수가 아니라 월급을 한 100만 원 정도 덜 받았으니 1년에 천만 원 덜 받은 거고 10년이면 1억이고, 20년 이상 목회했으니 한 2억 정도는 연보한 것이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아마 그 교회에서 모두들 연보액수가 제일 많을 겁니다. 아주 특별한 분들은 있겠지마는. 돈도 목사가 제일 많이 냈다, 돈. 뭐 기도니 전도니 그런 건 말 할 것도 없고.
 
목회자 전도가 안 믿는 사람이 많을 때는 모두들 먹고 살기가 어려워 주변 접하는 몇 사람 전도하지 그렇게 전도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부부가 1주일 내도록 심방하고 전도하다보면, 목회자 때문에 전도 받는 사람이 많아야 됩니다. 실제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전에 공회 목회자는 하루에 50 가정 호 별 방문이 기본입니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 50가정이 아닙니다. 문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 가지고 만나는 전도 50가정 전도. 주일 오전 교인이 300명 넘어가면 그 다음, 구역장과 교인을 통한 전도로 바꾸어 1일 50호 전도가 면제가 됩니다. 300명 이하는 전부가 다 해당이 됩니다. 그리고 나서 구역장 교인들에게 하루 50장 전도 이렇게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하고 그 다음, 교인이 뒤를 따르고, 요한복음 10장에 양을 내어놓은 후에 양들보고 거친 세상을 앞서 가라 하고 목사는 뒤를 따르느냐? 거친 세상에 목회자가 제일 앞에 서고 양이 뒤를 따라오느냐? 전쟁이 나면, 대장이 제일 앞에 서서 나를 따르라, 이게 전투가 좋은 전투인가? 전부 앞에 몰아내고 대장은 제일 뒤에 서서 죽을까봐 이렇게 몸을 빼버리는 것이 좋을까? 대장이 죽으면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에 제일 뒤에 있는 거다,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려면 넌 그렇고 네 아들놈은 어딨냐? 고향에 있냐? 해외로 뺐냐? 전쟁하는데 총 안 맞는 저 후방에 뺐냐? 네 아들을 제일 앞에 세웠냐? 이렇게 물어보면 뭐 간단하게 나옵니다.
 
미국에 손꼽는 아이젠하워라는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그 분 아들이 6.25전쟁에 총 맞는 제일 앞에 섰습니다. 대대장인데. 몰랐는데 울산 지방의 모든 교회는 남산 교회가 모 교회가 돼가지고 개척합니다. 그 남산교회를 개척할 때 1번 교인이 이술희 장로님입니다. 그 분 하나 보고 공회에서 김철수 목사님 부부를 파송해서 조사님 부부와 이술희 장로님 한 분이 청년 때 세 명이 예배를 보고 시작한 교회가 남산교회고 그 교회 때문에 울산 지방에 교회가 10개가 넘습니다. 이술희 장로님이 6.25 전쟁에 상이군인입니다. 사연을 물어보니까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이 부대장이어서 중공군들에게 포위 돼 제일 일선에 있었다 그럽니다. 그 이런 말을 들을 때 참 그 나라 잘돼야 되겠구나. 그런 지도자를 만난 민족이 이 땅 위해서도 다행스러울 겁니다.
 
우리나라 무슨 친일파 논쟁마다, 독립군 이야기 나오는데 조선 오백년에 전주 이씨, 조선 오백년에 고종 황제까지 내려오면서 왕족들이 독립운동 했단 말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아, 그 중에 왕이 될 알토란은 빼놓지만은 그 사촌 그 조카들은 다 어디 갔는고? 우리한테다 대고 너거 나라 너거가 독립운동해서 찾아라, 뒤로는 부추기고 왕은 지가 하고. 그거 밉상 아닙니까? 친일파 처단한다고 생난리인데 고종부터 처단해야 됩니다. 벌써 그냥 원수 잡는 걸보면 심보가 다 틀려먹었다 이리 나오는 겁니다.
 
이게 세상이 아니라 그걸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낮아지면 올라가고 올라가면 낮아진다, 그 말하는 넌 낮아졌냐?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보면 아담의 죄가 올라가려다가 하나님이 끄집어 내려서 내려간 인류입니다. 면밀하게 계산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다음,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건 본능적으로 치켜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뭐든지 치고 올라갑니다. 우리가 제일 잘 볼 수 있는 게 봄에 제비집인데 엄마 제비 벌레 하나 물고 들어오면 그 제비 한 대여섯 마리 예닐곱 마리 목숨 걸고 자기부터 먹겠다고 막 생난리입니다. 그게 생존 경쟁입니다. 나중에 크고 배우면 아닌 척해도, 정말로 속을 들여다보면, 너냐 남이냐?
 
세상을 만든 하나님, 주인이 다 던지고 그냥 나 정도가 된 것이 아니라 내 죄만 다 걸머지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올라간 자리라 영광입니다. 세상은 옷 잘 입으니 영광이고 고생 안하고 피부 관리 잘했으니 나이가 많은데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니 이런 걸 영광이라 그럽니다. 결과만 봅니다. 우리는 그 속을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 위해서 죽어 날 영원무궁토록 끌어 올리시고 당신의 자리에 올려놓으셨으니 존재적으로 본질적으로 이거는 계산 할 것도 없고 수고한 그 공로만 가지고 봐도, 내가 영원무궁토록 영광의 나라, 영생으로 자라가는 그 전부가 그리고 내 주변에 모두의 전부가 주님의 십자가 그리고 부활 후에 고난의 그 수고 하나에서 다 나오고 있는 겁니다. 제 아무리 부자라도 또 가난해도 성공하고 나면 부모의 수고가 다 배여 있고 그렇지만은, 거기에다대고 자기 수고도 더했지만은 우리의 천국의 영생과 그 모든 영광에는 주님이 거저 주셔서 받은 것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 아니면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렇게까지 받아놓고, 넌 너를 누구 위해서 썼느냐? 이게 낮아지는 겁니다. 그냥 못나서 낮아지는 것만 가지고 말 하는 게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못나서 못난 사람인줄 알아야 되고, 그렇게 못난 것은 아무리 내려 가봐야 편차가 있습니다. 높낮이가 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분석해서 제대로 낮춘 다음 원래 위치를 잡은 다음 그런데 그 위치가 중간이냐? 그 위치가 아직까지 바닥이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나머지는 남은 것을 다 가지고 주님 날 위한 것처럼 난 이걸 어디에 써야 다른 사람의 신앙과 천국에 도움이 될까? 남은 만큼은 털어서 투자하는 수고에 써야 되니, 제 것은 하나도 없다면 저절로 말석을 향하는 것이 그게 믿는 사람의 기본이 되고 근본이 되어져야 합니다.
 
교회의 여러 이유 때문에 피치 못하게 발표도 하고 그렇지만은 공회가 기본적으로 연보 액수 발표 안하고 그런 것 발표 안하는 이유가 그게 이것저것 해석할 것 없이 본능적으로 그리 될 수밖에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바뀌어가지고 그 뭐 어디 선교를 얼마 했니, 선교를 얼마 했는데 얼마 했니, 뭐 선교사를 몇 명 파견 했니 줄줄이 하는 것이 열군데 파견했는데 앞으로 열군데 더 파견하기 위해서 보라, 그러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다면. 우리도 열군데 했다, 우리는 지금 스무 군데 한다, 현황전달이면 문제 심각한 겁니다.
 
일단 오늘 아침, 난 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느냐? 제대로 평가해서 제자리 갖다놔야 되고, 그래도 중간 이하로 안 가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자기가 자기를 평가해도 1등은 있습니다. 1등도 있고 중간도 있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의 자기 재산, 속에 있는 재산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난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우리 교회에서는 제일 부자다, 중간이다, 나는 세상 공부 학습력으로는 1등을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다 있습니다. 일단 제자리 갖다 놓고 발견된 그거 다 빼가지고 그거 주님 뒤에 갖다 놓으면 됩니다. 주님 우리를 위하여, 난 내게 있는 실체를 발견해서 그게 내 자리고 그거 전부를 다 손에 들고 내게 맡긴 사람의 신앙에 이걸 어떻게 써야 될까? 그러기 위해서 내가 유지가 돼야 됩니다. 그 유지도 다른 사람 위하여, 그리고 써야 될 것은 얼마인가? 잘 조절이 될 때 참, 참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 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총량 분량 그 결과를 딱 보고 계시다가,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영생이 되어 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계산적이고 분석적이고 구별적이며, 실체와 또 앞날의 소망과 소원도 있고. 그리고 또 충성할 때에 충성이 충성다워집니다. 덮어놓고 그냥 말만 떠들다 보면 엉뚱하게 되어 집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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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정리)


220517 화새
 
제목 : 사활대속 피 공로의 겸손과 그 영광, 정말 제대로 계산해야 자기 위치를 알게됨
 
찬송 : 91장(환란과 핍박 중에도) 
 
본문 : 누가복음 14장 1절 -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외식)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자기 내면을 높게 보는데, 그런데 높아지면 낮아진다고 하니 허리를 숙이고 아랫자리 말석을 찾아가게 되면이게 바로 외식이 되어진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속으로는 윗 자리가 내 자리인데 속으로는 나는 잘난 사람인데 높은 사람 좋지 못하다. 자기를 높이면 뒤에 낮아진다고 하니 나는 잘났고 높지만은 나를 꺽어야 되겠다 하면 그게 회개가 되고 개선이 되어진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은 자기를 향한 자기의 평가는 항상 높고 계속해서 높아있는데 겉만 계속 말석에 앉고 낮아지면, 그것은 개선이 아니고 그것은 외식이 되어진다.
 
속으로 생각을 할 때에 생각해보니 계산해보니 '내가 잘난 사람이 아니구나' 진정으로 깨달아가지고 '알고보니 높지 않은 내가 나를 높게 봤구나' 이렇게 자기 속의 지식을 바꾸어 '알고보니 나는 실체가 낮은 사람 못난 사람이로구나' 그래서 저절로 자기의 몸이 숙여지고 자기 자리가 아랫자리이니 아랫 자리로 내려가게 만들어야, 이게 속이 있는 신앙이고 그게 참 신앙이다.
 
속으로는 여전히 잘났는데,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할 수 없이 낮춰봐야 얼마나 낮출까? 임금님이 나는 신하보다 못난 자이다 라고 떠들어봐야 타고나기를 임금은 하늘이 준 잘난 사람인데 그게 임금이고 그게 귀족이고 그게 양반이고, 양반을 못해서 모두 생 난리들인데 자기가 자기 속을 고치지 않고 자기가 자기 속을 새롭게 인식하지 않고는 해결이 안되는 말씀이다.
 
​(겸손)

네가 낮은 자임을 알아차려라. 오신 주님은 창조주요 만유주이다. 이 쪽을 생각하고는 겸손해질 수가 없다. 그런데 죄인 우리를 대신하려고 왔다. 대신 해야 된다. 생각도 자세도 대신하지 않으면 우리를 대신할 수가 없다. 모든 것 거두절미하고, 죄인 대신에 왔으니 죄인으로 있어야 되기 때문에 죄인도 그냥 죄인이 아니다. 택한 백성 전부의 죄를 다 걸머지셨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죄인 중에 괴수라" 했는데 그보다 더 죄인이다. 사도 바울의 죄수 죄악도 담당하셨으니. 아담과 하와의 죄, 노아 때에 전부 죽어버린 그때 홍수에 빠진 모든 사람의 죄, 롯의 죄, 가룟 유다의 죄, 맨 백성의 모든 죄를 한 몸에 다 걸머지셨으니, 예수님이 제일 죄인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장 높은 분이다. 높기 때문에 높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분이셨다.

​어느 정도 낮췄느냐?

​사도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까지 낮아졌다. 모든 죄인 중에 내가 두목이다. 전 인류 전체에 제일 낮은 자리로 갔다. 바울이 제일 의인이다. 그 바울의 죄까지 다 걸머지셨으니, 바울은 자기 하나가 모든 택한 백성 중에 제일 밑이지만은 그 죄와 모든 택한 백성의 전부를 다 한 몸에 걸머지셨으니 주님보다 더 낮은 자는 없다. 낮추셨으니, “높아지리라”

​어디까지 높아질까?

그 전부의 의를 다 합한 그 위로 올라가신다. 원래 출신도 하나님이시지만은, 한 몸으로 가진 인성 때문에 낮아지셨지만은 그 인성의 부활로 이제는 존재적으로도 모든 만물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이 되셨고, 또 공로적으로 수고적으로도 제일 위에 가셨다.

​충성하고 바르게 목회한 분들을 추억해보면 그 교회 교인 다 합한 것보다 수고는 더 하신 것이 맞다. 그렇다. 그 교회 기도는 그 목회자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그 교회 성경은 누가 목사님보다 누가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고 그 교회 전도는 전도만을 두고 말하면 그 교회 목사님보다 더 전도 많이 한 사람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다 그렇다. 종합 점수에서는 그 교회 목회자가 1등일찌라도 국어는 목회자 아닌 사람이 1등, 수학은 누가 1등, 그런 것이 있는 것처럼, 과목별 1등은 따로 있고, 총점이 1등인 경우. 그런 경우가 많다. 과목이 한 10개 정도 되면. 총점 전체 1등을 과목별로 보면 1등 과목 3등 과목, 심지어 5등 과목까지 분포가 여러 종류이다. 평균을 내보니까 1등이지. 주남선 목사님 같은 분은 돌아가실때에 돌아가실 때에 시골의 교회가 600여명 되었다. 참 어떤 면으로 봐도 그 분보다 더 기도한 분 없고 그 분보다 더 충성한 분 없고, 그 분보다 더 전도한 사람 없고. 어떤 면으로 봐도. 과목별로 전부 1등에 총점도 1등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자녀들에게 너를 낳았으니 나는 태생적으로 존재적으로 어른이지. 여기까지인가? 나머지를 과목별로 볼 때에 성질은 (나보다) 첫째 아이가 더 낫고 그런데 부모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수고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인가? 이런 것을 명목상 신앙이라, 실질적 신앙이라. 부모가 정말 부모 노릇 했느냐? 형이 정말 형 노릇을 했느냐? 목회자가 정말 목회자다웠느냐?  동천교회 조례교회 목회자들 계산을 해보면 목회자들이 교회에 경제적으로 기여한 것이 제일 많다. 번 돈으로 연보한 액수가 아니라 월급을 한 100만원 정도 덜 받았으니 1년에 천만원 덜 받은 것이고 10년이면 1억이고, 20년 이상 목회했으니 한 2억 정도는 연보한 것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그 교회에서 연보가 제일 많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분들은 있겠지만은. 돈도 목사가 제일 많이 냈다. 돈. 뭐 기도니 전도니 그런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목회자의 전도가 안 믿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모두들 먹고 살기가 어려워 주변 접하는 몇 사람 전도하지 그렇게 전도 많이 못했다. 그런데 목사님 부부가 1주일 내도록 심방하고 전도하다보면, 목회자 때문에 전도 받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실제 그러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이전에 공회 목회자는 하루에 50가정 호별 방문이 기본이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 50가정이 아니다. 문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가가지고 만나는 전도 50가정 전도. 주일 오전 교인이 300명 넘어가면 그 다음 구역장과 교인을 통한 전도로 바꾸어 1일 50호 전도가 면제가 된다. 300명 이하는 전부가 다 해당이 된다. 그리고 나서 구역장 교인들에게 하루 50장 전도 이렇게 목표가 있었다.  

목회자가 먼저 하고 그 다음 교인이 뒤를 따르고, 요한복음 10장에 양을 내어놓은 후에 양들보고 거친 세상을 앞서 가라고 하고 목사는 뒤를 따르느냐? 거친 세상에 목회자가 제일 앞에 서고 양이 뒤를 따라오느냐? 전쟁이 나면, 대장이 제일 앞에 서서 나를 따르라 이게 전투가 좋은 전투인가? 전부 앞에 몰아내고 대장은 제일 뒤에 서서 죽을까봐 제일 몸을 빼버리는 것이 좋을까? 대장이 죽으면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에 제일 뒤에 있는 것이다, 이건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보면은 너는 그렇고 네 아들 놈은 어딨냐? 고향에 있냐 해외로 뺐느냐 전쟁하는데 총 안 맞는 저 후방에 뺐느냐 네 아들을 앞에 세웠느냐 이렇게 말하면 간단하게 나온다.

​미국에 손 꼽는 아이젠하워라는 대통령, 그 분 아들이 6.25전쟁에 총 맞는 제일 앞에 섰다. 대대장인데. 몰랐는데 울산 지방의 모든 교회는 남산 교회(각주)가 모 교회가 되어가지고 개척하는데 그 교회를 개척할 때에 1번 교인이 이술이 장로님이다 그 분 하나 보고 공회에서 김철수 목사님 부부를 파송해서 조사님 부부와 이술이 장로님 한 분이 청년 때에 3명이 예배를 보고 시작한 교회가 남산교회이고 그 교회 때문에 울산 지방에 교회가 10개가 넘는다. 이술이 장로님이 6.25 전쟁에 상이 군인이다. 사연을 물어보니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이 부대장으로 중공군 포위에 일선에 있었다고 했다. 그 소리 들을 때에 참 그 나라 잘되어야 되겠구나. 그런 지도자를 만난 민족이 이 땅 위에서도 다행스러울 것이다. 우리나라 무슨 친일파 논쟁마다, 독립군 이야기가 나오는데 조선 500년의 전주 이씨 고종 황제까지 나오면서 왕들이 독립운동했다는 말이 안나온다. 그 중에 왕이 될 알토란은 빼놓지만은 그 사촌 그 조카들은 어디에 갔는고? 우리에게 독립해서 나라 찾으라 뒤로 부추기고 왕은 지가 하고. 그거 밉상 아닌가? 친일판 처단한다고 생 난리인데 고종부터 처단해야 한다. 벌써 원수 잡는 것을보면 심보가 다 틀려먹었다 이리 나오는 것이다.
 
이게 세상이 아니라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낮아지면 올라가고 올라가면 낮아진다" 그 말을 하는 너는 낮아졌느냐?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보면 아담의 죄가 올라가려다가 하나님이 끄집어 내려서 내려간 인류이다. 면밀하게 계산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다음 자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것은 본능적으로 치켜 올라가게 되어 있다 뭐든지 치고 올라간다. 우리가 제일 잘 볼 수 있는게 봄에 제비집인데 엄마 제비 벌레 하나 물고 들어오면 그 제비 한 대여섯 마리 예닐곱마리 목숨걸고 자기부터 먹겠다고 막 생 난리이다. 그게 생존 경쟁이다. 나중에 크고 배우면 아닌 척해도, 정말로 속을 들여다보면, 너냐 남이냐?
 
​(영광)
 
세상을 만든 하나님, 주인이 다 던지고 그냥 나 정도가 된 것이 아니라 내 죄만 다 걸머지고 자기를 낮추셨다. 그리고 올라간 자리라 영광이다. 세상은 옷을 잘입으니 영광이고 고생 안하고 관리 잘했으니 광채가 나서 영광이라 한다. 결과만 본다. 우리는 속을 들여다본다. 하나님이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날 위해 죽어 나를 영원무궁토록 끌어 올려 나를 당신의 자리에 올려놓았아니 존재적으로는 게산할 것 없고 수고한 그 공로만 가지고 봐도, 내가 영원 무궁토록 영광의 나라 영생으로 자라가는 그 전부가 그리고 내 주변의 모두의 전부가 주님의 십자가 그리고 부활 후의 고난의 그 수고 하나에서 다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부자라도 또 가난해도 성공하고 나면 부모의 수고가 다 배어 있고 그렇지만은 거기에다 자기 수고도 더했지만은, 우리의 천국의 영생과 그 모든 영광에는 주님이 거저 주셔서 받은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거 아니면 아예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렇게까지 받아놓고, 너는 너를 누구 위해서 썼느냐? 이게 낮아지는 것이다.

​그냥 못나서 낮아지는 것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못나서 못난 사람인줄 알아야 되고, 그렇게 못난 것은 아무리 내려가봐야 편차가 있다. 높낮이가 있다. 자기를 제대로 분석해서 제대로 낮춘 다음 원래 위치를 잡는다 그런데 그 위치가 중간이냐 아직까지 바닥이 아닌 경우가 있다. 나머지는 남은 것을 다 가지고 주님 날 위한 것처럼 나는 이것을 어디에 써야 다른 사람의 신앙과 천국에 도움이 될까? 남은 만큼은 털어서 투자하는 수고에 써야 되니, 제것은 하나도 없다면 저절로 말석을 향하는 것이 그게 믿는 사람의 기본이 되고 근본이 되어져야 한다.
 
교회의 여러 이유 대문에 피치 못하게 발표도 하고 그렇지만은 공회가 기본적으로 뭐 연보 액수 발표 안하고 그런 것 발표 안하는 이유가 그게 이것 저것 해석할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그리 될 수 밖에 없어야 된다. 그런데 이것이 뒤 바뀌어가지고, 그 뭐 어디 선교를 얼마 했니 얼마 했는데 얼마 했니 선교사 몇 번 파송했니 줄줄이 하는 것이 10군데 파견했는데 더 10군데 하기 위해서 '보라'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좋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10군데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20군데 한다! 현황 전달(자랑)이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    
오늘 아침, 나는 나를 어느 정도 평가하느냐? 제대로 평가해서 제대로 갖다놔야 하고, 그래도 중간 이하로 안 가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자기를 평가해도 1등은 있다. 1등도 있고 중간도 있고 있다. 우리 교인들의 자기 재산 속에 있는 재산을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아무리 낮게 평가해도 우리 계산은 제일 부자다 중간이다. 나는 세상 공부 학습력으로는 1등을 벗어날 수 없다 등 다 있다. 일단 제자리 갔다놓고, 발견된 그것 다 빼가지고 그것을 주님 뒤에 갔다 놓으면 된다. 주님 우리를 위하여, 나는 내게 있는 실체를 발견해서 그게 내 자리이고. 그 전부를 다 손에 들고 내게 맡긴 사람의 신앙에 이것을 어떻게 써야 될까? 그러기 위해서 내가 유지가 되어야 한다. 그 유지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써야 될 것은 얼마인가? 잘 조절이 될 때에 참 참으로 낮추는 자가 되어진다. 그리고 그 총량 분량 그 결과를 딱 보고 계시다가,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영생이 되어진다.
 
통성으로 기도.
 
계산적이고 분석적이고 구별적이며, 실체와 또 앞날의 소망과 소원도 있고. 그리고 또 충성할 때에 충성이 충성다워진다. 덮어놓고 그냥 말만 떠들다보면 엉뚱하게 되어진다.


[각주] 공회역사

▷1974년 울산 남산교회 (김철수 목사님)

(개척)송종섭 목사님의 덕수교회 복귀가 결정 되자 다음 목회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백 목사님께 개척을 하겠다고 지원. 지역은 울산으로 신청. 목사님께서 울산은 어려운 곳이라 하며 허락을 하지 않고 잘 생각해 보라고 몇 차례 보류하며 남해를 권했고 꼭 가 보겠다고 말씀 드리니까 미리 한 번 가서 살펴 보라 하심. 몇 번을 방문하고도 뜻을 말씀 드리니까 한 달간 오간 후 허락.
(교동교회 - 사택 예배)1974년 2월 24일에 울산에 와서 예배당은 없는 상태에서 교동 370번지. 3월 10일 8 명이 모여 첫 공식 예배. ‘교동교회’라고 함. 평일은 사택이었고 예배 드릴 때는 방 2 칸의 사이에 문을 떼고 이불은 다락에 올린 다음 예배당으로 사용. 6 개 월을 예배 드리다가
(남산교회 시절)1974년 8월 21일 수요일 밤예배를 새로 마련한 학성동 155-3번지에서 예배. 2층 집에 전세로 들어 갔는데 이 건물은 과거 교육청하던 일본식 건물.
(예배당 건축)1974년 9월 1일에 양동 694-36번지 부지 184평 360만원 조건으로 차용술 씨에게 50만원 계약금을 지불하고 10월 30일에 예배당 32 평을 착공. 예배당 마련 후 첫 주일 11월 30일에 27 명이 출석하고, 1976년 1월 7일 남산교회로 공회에 허락 받음.1976년 2월 22일에는 장년 43명 유년 110명 출석하고 2월 26일 집사로 남자 3명(이술이 이윤재 황길태) 여자 4 명(장경재 이소둘 이경자 이명달) 그리고 권찰 2 명(곽금자 이향순) 임명. 당시 황길태 장로님은 울주 군수로 계시며 울산 시내 거주. 당시 취업하게 한 가정의 곽금자라는 분은 딸이 김진복 집사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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