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5.14 창19:29 피 진리 성령으로 주시는 매 기회, 돌이키는 각오 마음의 순간을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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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새22.5.14 창19:29 피 진리 성령으로 주시는 매 기회, 돌이키는 각오 마음의 순간을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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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4 토새

 

제목 : 피 진리 성령으로 주시는 매 기회, 돌이키는 각오 마음의 순간을 지킬 것

 

찬송 : 80(인애하신 구세주여)

 

본문 : 창세기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이아침도 불러 주셨사오니, 마음을 열어 볼 것을 보고 깨달을 것을 깨닫게 해주옵소서. 우리는 더욱 미약하고 세상은 더욱 거칠고 어두우니, 과거보다 더욱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밝혀주시고 마음을 열어 바른길 갈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걷고자 할 때에 걸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옵소서. 특별히 노년의 종들 주님 앞에 설날의 방법을 두고, 염려근심 떨칠 수가 없사오나 맡겨 놓고 담대한 종들이 되게 하시고, 학생들 청년들 세상을 향하여 공연한 담대함을 버리고, 조심하며 조심하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당대에 살아 있는 의인의 기도와 간구만 들으셨을까? 아벨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역사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으나 오늘까지 그 순교의 순종, 그 순종이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까지 우리에게 힘이 되고 힘이 되도록 주님이 붙들고 쓰십니다. 항상 두 길 중에 옳고 바른 길을 갈 때의 능력은 아벨의 피의 힘이라면, 롯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돌아 설 수 있는 이런 여건을 주신 것은, 의인 아브라함을 생각했습니다. 롯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고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했으니, 아브라함으로부터 우리까지는 천 대가 되지를 아니합니다. 성경만 가지고 따져보면 한 백 몇 십대. 1953년에 우리 신풍에 오셨던 두 번째 목회자 이진석 조사님이라고. 몇 년 전에 댁을 찾아가보니까, 아담으로부터 자기까지 몇 대라고 일일이 다 적어놓으셨는데 그게 아마 110-120대 안팎으로 제가 기억이 됩니다.

 

성경은 전부 기록이 아니라 일부 빠질 수는 있습니다마는, 출애굽기 20장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킨 아브라함은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롯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위해서는 기도를 하지 않을까? 나사로가 낙원에 왔을 때에 아브라함 품이었습니다. 나사로 홀로 외로운 길을 걸어간 것 같았으나, 늘 아브라함이 보이지 않게 겹쳐 인도하고 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 해놓고 왜 또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오는가? 또 왜 아벨 이야기가 나오는가? 다 겹쳐지는 겁니다. 산꼭대기 물이 발원이 될 때에 그냥 소리도 나지 않게 형성이 됩니다마는, 그런 것이 내려가며 하나 둘 계속 합류가 되다가 시내가 되고, 그 시내가 흘러가는데 계속해서 여기저기 더해져서, 바다 같은 큰 강물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곳은 물의 발원지가 아니고 중간이 아니고, 우리는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역사이후에 살다간 모든 의인들의 그 순종, 주님을 기쁘시게 한 그 헌신이 우리 뒤에서 이 말세를 감당하도록, 총력 응원을 하고 난리가 나는 겁니다. 세상에서 무슨 해외에 가서 1등하고 돌아와 온 국민이 환호 할 때, 하늘나라 순서대로 우리가 설 때마다 영계의 천군천사, 영계의 영물 앞서간 의인 전부가 한 사람 한 사람 받아들일 때의 모습입니다. 이건 딱 그렇게 그려보면 짐작은 됩니다.

 

정말 수고하고 환영을 받을만한 분이 입성 했을 때에도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많은 보이지 않는 배경이 있었구나, 깜짝 놀랄 것이고 감사할 것이고, 부끄럽게 살다가 간 사람들은 쥐구멍을 찾을 만큼 그렇게 참 죄송할 겁니다. 죄송하라고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 배려하고 이해한다. 그러니 더욱 미안할 겁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의 그 심리를 보면 압니다. 또 뭔 취임식 이럴 때에 절반의 지지자들만 그러겠지마는, 우리가 하늘나라 섰을 때에 저렇게 열광적으로 다 환영해주실 건데, 뭔 국가대 국가의 경기가 있을 때에 온 국민들이 이쪽저쪽 서로그냥 응원하는 그 열기, 보이고 보이지 않는 그 마음, 이걸 전부 다 느껴가며 오늘 믿음 생활하는데 하나 더하면 좋습니다. 뭔 공차기 하나가지고? 또 그 날 지면 그냥 잊어버리고. 이건 세상입니다.

 

믿음생활에 한 믿는 사람의 망설임, 그때에 애 터지는 만물, 피조물의 탄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 그 망설임 속에 옳은 길 하나 착 택하여 방향을 전환할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 피 흘려 구원하신 주님의 그 고난, 아벨 이후에 모든 의인들의 그 공로, 그 관심이 마구 환호할 것이고. 이런 걸 읽으면 뭐 그냥 세상 노는 것을 봐도 세상 경기를 봐도 세상 불신자들의 패싸움을 봐도, 무얼 봐도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으로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의인은 더욱 의롭게 되고, 세상을 향하는 소돔 길의 롯은 잠깐 돌아서니까, 이렇게까지 망할 수가 있나? 자기 마음을 잘 붙들고 조심하지 않으면 우습게 순간 타락하여, 저렇게까지 될 수 있나? 조금 조심하면, 저렇게까지 저렇게 잘 믿을 수가 있나? 어중간하게 가는 길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신 중에 내어보내셨더라하나는 만물과 영계의 환호까지 탄식까지 우리는 집중을 받는, 저 티비 같은데 나오는 스타만 스타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아무 것도 아니고. 믿는 사람의 현실의 망설임과 선택과 바른길은, 이건 영계와 우주의 진동입니다. 우주에 있는 피조물들도 표시를 못 내서 그렇지 죽을 지경입니다. 영계에서는 마구 발표가 되는데 우리의 심령이 어두워 못들을 뿐입니다. 영안이 밝은 분들은 영계를 의식하면서 걸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두 번째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보내셨더라우리는 매일의 걸음이 주님의 대속 때문에, 매 현실마다 다시 기회를 받습니다. 지난날의 잘못 믿은 것은 우리의 다시 만나는 현실에서는 결정적으로 엄청나게 불리합니다. 말하자면 어제 실수는 이겨도, 어제 실수까지 엎어서 밀어 붙이는 오늘의 선택은 이건 뭐 못 빠지고 멸망입니다. 통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말하면 나 하나 결심하면, 소돔 고모라에서도 재출발 다시 기회를 주신 이 원리에 따라, 말세 오늘의 재앙도 고도화 되어 있고 엄청나지만은, 성격은 똑같은 성격입니다. 주님의 대속이 함께 하는데 이건 소돔도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이건 말세의 오늘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빠와 아이가 돌을 밀 때, 이 강단만한 돌이 되면 아빠나 밀지, 돌 되는 아이는 밀고말고 해당도 없습니다. 그런데 포클레인이 도와준다면, 그 뭐 아빠가 도와서 도움이 됐다 안됐다 이거 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빠의 도움이라면 이 정도 되는 돌을 한 살짜리가 밀 때에 도움이 되겠지마는, 이거보다 여러 배 큰 돌은 성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대속,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 그 말씀은 천지를 만든 창조의 말씀이고 운영하는 주동력입니다. 원동력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진리의 말씀 그리고 표 없이 내 양심에 오셔서, 이제 이렇게 살자 라고 귀띔하는 이 감화와 감동 셋을 합하면, 아담의 죄를 이기는 것도, 가인의 죄에서 벗어나는 것도, 롯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룟 유다의 죄에서 벗어나는 것도, 이것은 우리 마음 순간입니다.

 

시대가 어렵다 이렇게 보면 한량없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선악과 먹게 할 때에 말 한마디로 슬쩍 방향 돌려놓은 그 귀신이, 그 다음 가인을 통해 아벨을 때려 죽였고, 그게 지금 롯 속에 들어 가가지고 그 급한 와중에서도, 살아날 길이 이렇게 저렇게 그 놈의 인간 생각 때문에 들어갔고 지금 유황 불비를 맞고 앉았는데, 들어갈 때와 그 안을 생각하면 자기 생각은 근처도 가지 말아야 되는데, 이게 자유성이 있다고 그게 입이 있다고 꼭 이 소리 저 소리, 기어코 그 소리를 합니다. 기어코. 백 목사님 돌아가시는 마지막 날까지 저는 제 소리했습니다. 이 소리 저 소리. 근데 한 번도 이렇다 저렇다 그러지 않으시고 그냥, 그냥 당신 말씀만 하고 가셨습니다. 오늘까지, 어떻게 그때 늘 예만하지, 이 말도 하고 저 말도 하고 그랬을까? 이걸 생생하게 새기게 해주시려고, 명확하게 제가 복될만한 100% 짜리를 얘기하면, 한명도 안 빠지고 이 소리 저 소리 합니다. 그 뭐 이 소리 저 소리 하나마나 그거는 소돔에서 벗어나는 지금 롯이, 소돔에서 죽었더라면 가인이 나 죽을 판이니 살려달라고 애걸하지 아니하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은혜를 구해도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자기 행위에 대해서는 죽여주옵소서. 이게 살아나는 길인데, 이 말도 저 말도 이 말도 저 말도, 눈이 있으니 나름대로 본 것 있고 마음이 있으니 나름대로 생각한 거 있고, 멸망할 꾀밖에 없는 타락한 인간이 자기중심을 가지고, 기어코 이 소리 저 소리 하면 결국은 그리 됩니다.

 

그 시골에 염소 기르다가 주인이 목줄을 길게 늘여놓고 잠깐 어디를 갔다 오는데, 늦게 오면 이것이 풀을 먹고 뱅뱅 돌면 말뚝에 줄이 감기고, 감기고 계속 감겨서 마지막에 목에 숨통을 딱 죄입니다. 그만하면 말지, 염소 이것은 목이 죄이면 죽으라고 앞을 향해서 더 돕니다. 결국은 제 힘으로 목 졸려 죽는 겁니다. 그 참 어떻게 양과 염소라. 우리 속에 염소가 딱 그 꼴입니다.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가 위에서 옆에서 총력지원하고 있는데, 안될 일을 또 하고 또 하고 마지막에 말뚝에 매인 줄로 자기 목을 쥐어짜니, 그렇게 죽으려면 죽어야 되겠지. 다행히 주인이 빨리 발견하면 풀어서 해결되고 주인이 깜빡 바쁜 일에 잊어버리면 영 가버립니다.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보내셨더라죄 짓고 구사일생 살아남고, 다시 이제 과거는 잊어버리고 새 출발. 넓은 범위 안에 아직까지 지금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러다가 결국 이 일을 벌려버립니다. 역사에 없는 일. 예전에는 29절 이후 30절부터, 그 처음 믿고 성경을 제대로 읽는 분들마다, 성경에는 왜 그렇게 참 낯 뜨거운 것을 기록을 했냐? 라고 제대로 읽어본 분들은 한번 씩 물어보십니다. 이거든 저거든 성경에 적힌 것은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읽는데 특별히 그 중에 머릿속에 잘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더 조심하셔야 됩니다. 자기중심에 자기 오해로 남는 것, 또 성경에 죄를 구경하고 없던 눈을 뜨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이 말씀은 한번만 읽어놓으면 두 번 읽지 않아도 다 압니다.

 

그래서 예배 전에 교독 때에 30절 이후를 이걸 자꾸 반복을 해서, 예배 전에 그 빼라고 적었는데 또 이걸 읽으라고 잘못 읽으셨는지, 어제 또 교독에 시작부터 읽고 지나가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때는 반드시 읽으시고, 따로 교독용으로 더 들여다보는 것은 좀 조심해야 될 때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몰래 감춰놓고 덮어놨는데 이제는 막 텔레비가 들어서, 온 사방에 눈과 귀를 못 피하도록 반복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짓을 했으니 처벌을 한다. 그리고 귀신은 속으로 천하에 막 뿌리고 앉았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 그러면 말라는 마지막 말은 잊어버리고, 앞에 도둑질만 머릿속에 계속 박아 놓는 겁니다. 그렇다고 말 안할 수는 없는 겁니다. 결국 도둑질하면 손해 본다. 한마디 하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이 건강에 좋고 나중에 좋고 만사 좋은 거다. 이것을 한 일곱이 아니라 다른 것은 좋은 것 한 일곱, 안 좋은 것 셋, 야단을 이렇게 칭찬 7 책망 3, 73 이 정도가 좋다고 하는데, 도둑질하지 말라 이런 것은 91정도로 나가야 됩니다.

 

창세기 지금 1930절 이하 이런 것은 991로 나가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시대가 다 가르치고 앉았으니까 안 읽어도 될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주신 기회에 돌이키는 각오는, 늘 가인의 후손과 그 다음 롯의 모압과 암몬을 기억하며, 두 번은 말자. 앞에 것은 행복한 고민이었다면, 소돔을 갈까? 이쪽을 갈까? 멋모르니까 행복한 고민이겠지. 소돔에서 다시 살 길을 열어주셨을 때에는 죽어도 두 번은 없다. 그 각오가 남은 평생을 복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안별로 한 몇 가지 저도 그런 거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래서 엄청 뭐 참 복이다. 그러면서 다 나아가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주 중요할 때에 이렇게 꺾어놓고 이렇게 기록해놓고, 소돔은 다시는 아니 된다. 오늘 우리 현실이 소돔입니다.

 

 

 

 

1-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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