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5.13 창19:29 죄와 실수로 자라가는 목적, 두 번 반복없는 회개의 새 기회, 악용은 롯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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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5.13 창19:29 죄와 실수로 자라가는 목적, 두 번 반복없는 회개의 새 기회, 악용은 롯의 멸망

관리1 0 131 2022.05.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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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금밤
 
제목 : 죄와 실수로 자라가는 목적, 두 번 반복없는 회개로 새 기회, 악용은 롯의 멸망
 
찬송 : 10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문 : 창세기 19장 29절 -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구원의 주님, 죄와 실수를 피할 수 없는데 늘 영생의 새 기회를 주시니, 이 밤도 다시 한 번 모여 오늘과 지난 한 주간 돌아보며, 알고 모르고 짓는 죄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시 우리를 살피는 복된 이 시간 되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시려고 영원 전 목적을 정할 때부터 자유성을 주셨고, 죄를 통해 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영생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우리에 대한 인도를 주셨으니, 늘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향하는 이 밤의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이 밤도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롯은 죄인입니다. 신앙에 유리한 가나안 쪽을 두고, 신앙에 불리한 소돔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말씀을 어긴 죄는 아닐지라도, 주의 뜻을 따라가는 의의 반대말인 불의가 되어 집니다. 그리고 불의의 그 길에서 돌아오면 좋은데, 가다보니까 하나님과 따로 놀게 되었습니다. 이게 불목, 이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뒤에 소망은 없습니다. 반대말은 절망입니다. 죄로 시작한 것은 명확하지를 않으나, 죄 안에 숨어있는 불의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떨어져버린 원수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멸망은 못 피하는데,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소돔으로부터 구원이 아닙니다. 소돔으로 갔고 죄를 지어 심은 대로 거두고 망해야 되는데,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게 오늘 이 밤에 우리가 기억할 첫 번째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은 평생에 한 번 기회를 더 받고 지나갑니다. 똑같은 말인데 이걸 표현하면 회개라 그러고, 이게 세상 공부할 때는 재수라 그럽니다. 또 일반적으로는 기회라고 그럽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 다음 또 기회는 있지 않겠느냐? 이리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멸망으로 치달아버립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불안전이라. 또 하나님께서 죄와 실수를 통해서 길러 가시려고, 에녹 같은 특별한 그런 표시를 할 사람 말고는 어느 누구도 죄를 피한 적은 없습니다. 죄를 통하여 더 강하게 만들어 가시는 사랑인데. 그 사랑까지 이용을 해서 나쁘게 이용하면 악용이라 그럽니다. 악용.
 
높이 뛰려면 선 자리에서 뛰는 것보다 조금 구부렸다가 뛰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 죄와 실수의 이유입니다. 죄는 나쁜 것이고 실수는 나쁜 것입니다. 근데 그것 때문에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이 강해진다면 이건 좋은 겁니다. 기계는 그럴 것 없이 고장 나지 않는 기계가 좋습니다. 생명은 자유성을 가져서 경험을 통하여 발전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죄와 실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가는 굉장한 아주 특이한, 이건 하늘의 전적 은혜입니다. 불신자와 불택자들은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를 않습니다. 만 번 잘하다가 한 번 죄지으면, 그 죄로 더욱 더욱 내려만 가고 해결이 없습니다. 믿는 우리는 천하를 다 어떻게 해버려도 또 새로 기회를 주십니다. 새로 기회를 준다. 아이 그렇게 했으면 이건 끝장이 나야 되는데 인데 새 기회를 준다? 그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서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 그러라고 주신 건데 한 번 더 두 번 더 기회가 있구나! 이게 바로 악령이 우리 마음에다 대고 잘못된 눈을 띄어버리는 겁니다.
 
가정에서 엄마 알고 교회 알고 학교 알고, 그래만 뱅뱅 돌면 이게 등신이 아니라 훗날에 굉장한 준비를 하는 건데, 저쪽 골목 여기 가면 뭐가 있고 저기 가면 뭐가 있고, 그래서 시내 한 번 나갔다와 가지고 뭔 어른들은 놀음 방 어디 어디, 청년들은 뭐 어디 어디, 그 하나 둘 아는 것이 10년 20년 깨끗하게 정성들여 만든 것이 다 엉망이 돼버리는 건데, 이런 것은 어려도 하나님께서 작은 경험을 통해 항상 두 길이다. 기회는 있습니다. 굳이 망할 길 가면 그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된다고,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어리다고 그거 어려서 몰랐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소돔으로 간 롯은 소돔이 다 망했고 그 속에서 함께 망했어야 되는데, 29절 하나님이 소돔과 소돔 주변들의 성들을 다 멸하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한 것이 아니라 롯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아직 롯에게는 심판이 미루어져 있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노력해야 되는지 모르는데 이게 소돔에서 나올 때도 주여 그리 하지 마옵소서. 이리 가면 좋고 저리 가면 안 좋고, 저쪽은 멀고 또 이쪽은 가까우나 또 뒤가 걱정이 되고, 그 롯의 걸음걸음을 보면 끝까지 자기 죽을 길을 향해서 치달아갑니다. 그러면 망하고 죽어야 싼 겁니다.
 
뭐 공부하기 싫어 마음껏 책을 내버리려면 실컷 내버리고, 나중에 그 책을 몰라서 평생 짓밟히고 억울하게 당해야 싼 거지. 건강관리 안 해서 건강한테 뚜드려 맞으면 그 뭐 몸이 아파 정신이 없어도 할 수 없는 겁니다. 건강도 가정도 경제도 공부도 인사성 하나도, 신풍은 뭐 어디 될 만한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아도, 이 골목 이 골목 이 골목에, 이전에 예배당 딱 붙은 앞집에 칼텍스 본사 총무 계장 과장 부장까지 그대로 진급한 분이 우리 교인입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 안 봐주는 줄 알았습니다. 뒤에 보니까 또 누구 하나 챙기는 거 봤습니다. 아이 학교 10년 공부하니 나 같으면 그분 바짓가랑이 잡고, 그냥 10번만 찍으면 안 넘어질 나무가 있습니까? 10번 가지고 안 되면 20번 하지. 시험 20번 모의고사 20번 기말고사 20번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빠를 것 같은데. 그런데 예배당 들어오며 예배당 들어오면서 왼쪽 집이지요? 예배당 들어오면서 대문 바로 왼쪽 집, 칼텍스 제일 실력자 집입니다. 그 집에 인사 꼬박꼬박 한 학생들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인생의 새 길을 한 번 챙기는 겁니다. 그 골목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 골목 저 골목, 골목마다 다 있습니다.
 
나 많다고 째려보고 갔겠지. 뭐 신풍 시골에 뭔 괜찮은 게 있을까 그리 봤겠지. 이 골짝 안에도 서 시장 순천 아래시장 생선 장사하느라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꽁치 한 마리 팔기 위해서 애타게 장사한 그분 아들, 지금 국회의원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 전남 출신으로서는 검찰 제일 위에까지 올라갔지 않습니까? 우리 예배당 바로 밑에 경찰 세 손가락까지 올라간 치안 정감까지 올라갔지 않습니까? 이건 뭔 말인지 불러줘 봐야 모릅니다. 그러니까 로비를 못 하지. 그 로비는 나쁜 게 아닙니다. 좋은 거지. 인사 잘하는 걸 로비라 그럽니다. 좋게 말을 할 때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때. 그건 우습게 알고 갖다 내버리고 100분의 1, 천분의 1도 안 되는 거 그거 붙들고 오만 양심도 체면도 자존심도, 인생도 거기에 다 기울이는 것이 그게 참 안타깝지만은 그렇습니다.
 
관찰력이 좋은 분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쥐가 쌀독 안에만 돌아다니는 쥐는, 쌀독 안에 쌀만 물어내는 쌀독 쥐도 있습니다. 시궁창 쥐는 그 하수구 시궁창 앞만 돌아다니면서, 찌끄러기 나가는 거 뼈다귀 하나 낱알 하나 물어 물고 나오느라고 정신도 없습니다. 시궁창 쥐는 시궁창 위에 쌀독이 있어도 거기는 안 들어갑니다. 죽어도 끝까지 시궁창만 돌아다니지. 아이 그 냄새 나고 그 징그럽고 먹을 거 찾을 것도 없는, 거기서 뭔 쌀알 한 개를 구한다고, 그 옆에 있는 쌀독에 쌀뒤주 쌀 창고에 들어가면 뭐 한도 없는 게 쌀인데, 여기 10대 때는 눈에 안 보입니다. 그게. 20대도 눈에 안 보입니다. 혹시 10대 20대 때 이런 눈이 떨어지면 굉장한 인물 됩니다. 세상 살아 나가는 처세술 가르치는 거 아닙니다. 그 먹어봐야 그렇고 안 먹어봐야 그렇고, 인사성 없는 사람은 고생 좀 하고 그다음 나이가 들어야 철이 되니까 놔두고. 아브라함 때문에 롯을 그 엎으시는 소돔 생지옥에서 건져낸 것이 아니라, 기회를 한 번 더 줬습니다. 뭐 요즘 경기로 말하면 이거 연장선입니다. 연장전입니다. 경기 끝난 거 아닙니다.
 
그 어떡하다가 이런 과정이 지나갔는가? 금 번 집회는 창세기 4장에 범죄 한 가인의 범죄와, 그 범죄 직후에 가인의 자세를 주로 공부를 했습니다. 더 앞으로 아담까지 나가면, 아담은 첫 번째 죄 인류 전체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나, 죄 짓고 핑계는 대지만은 죄의 값 얼굴에 땀 흘려 일을 하라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라 하는, 이건 거부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 구원의 반열에 세워놨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이 그 유명한 아벨입니다. 그리고 7세손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역사에 깨끗하게 하늘로 옮겨집니다. 엘리아도 죽지 않고 승천했지만은 엘리아는 죄의 기록이 많습니다. 그리고 노아도 아담의 후손입니다.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역사의 모든 죄인이 지은 모든 죄에 다 합한 것과 아담이 지은 죄 하나와 같습니다. 그런 죄인이라도 죄 짓고 나서 죄 때문에 처벌이 올 때, 그걸 달게 받으므로 구원의 새 길을 받은 겁니다.
 
가인은 죄를 짓고 오히려 죄 짓지 않았다고 딱 잡아떼고 들키니까, 처벌을 줄여 달라 그러고 처벌을 줄이는 것도 부족해서, 가다가 어떻게 사고 나면 안 되니까 통행 보장 권, 여권까지 신청해서 받아놓고 그리고도 성을 쌓았습니다. 성이 없으면 언제 누구한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렇게 두고 갈 자기 세상을 위해서는 알뜰살뜰 철통같이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하여 주력하고, 있는 힘을 다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와 그 보호라는 것은 있어도 그만 없으면 치우고, 이게 끝까지 이렇게 나가기 때문에 가인의 후손은 7배가 아니라, 77배로까지 나가고 홍수로 나가는 겁니다. 사람은 죄와 실수를 피할 수가 없는데, 오히려 하나님은 죄와 실수를 하게끔 만들어 놓고, 더 길러가는 좋은 방법을 씁니다. 극히 조심할 것은 지나간 잘못 현재의 잘못 있으면, 얼른 빨리 돌아서고 해결하는 게 가장 경제적이고 좋습니다. 이번 집회 한 주간 전부의 공부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집회 때 모든 롯의 길로 가인과 비교해보며, 그 앞에 아담과 비교해보고 그 다음 롯의 이 길을 뒤따라오는 그 마지막 주님이 오셔서 마태복음 24장, 하나님의 나라가 마지막 초토화되고 초토화가 되고 멸망을 당할 때 산으로 도망가라. 들에 머물지를 말아라. 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가까운 것은 안 좋다. 세상 사람들이 어쨌든 많이 모이는 데는 죄가 왕성하게 되어있다. 죄악 구덩이 속에 죄 짓는데 듣고 보고 접하는데 유리한 쪽으로 가지 말아라. 그 반대쪽으로. 먹는 거 입는 거 세상 살아가는 것이 불편해도, 하나님과 가까이, 천국을 향한 유리한 걸음, 말씀으로 사는 이쪽에다 대고 방향을 잡아라. 이게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을 가라 하는 말씀입니다.
 
천사가 롯과 가족을 끌어내어, 끌어내어. 앞에 16절 17절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 이제는 마음껏 도망하게 했었는데 19절, 산까지 도망갈 수가 없나이다. 이걸 아담으로 가져가면 죄는 지었고 얼굴에 땀을 흘리고 먹고 사는 것이 좋겠다. 이게 처벌이 아니라 그게 구원이며 그게 지은 죄보다 더 나은 복을 받는 비결인데, 아이, 얼굴 땀 흘려 뭔 일을 하면 노동자라 그러고 남들이 천직이라고 야 잡아볼 거니,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사무직을 가겠습니다. 참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은 뭐 한 20년 전까지는, 그냥 이 나라 온 백성들 목숨 걸고 전부 다 글 읽고 도장 찍는 것만 좋은 직장인 줄 압니다. 참 불행스럽고 무식해 그런데, 지금은 뭐 그냥 돈만 많이 벌면 좋다고 그러지만, 지금도 같은 조건에서는 현장보다는 책상 앉는 걸 좋아할 겁니다.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아담으로 말하면 아이, 얼굴에 땀 흘려 돈 벌지 않아도 요즘은 편하게 돈 버는 방법이 있습니다. 뭐 신청서 내면 코로나 또 600 준다던가요? 600. 그 600 받는 방법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신풍삼거리에 사업장 한 10장 20장 갖다 놨는데, 그거 한 장에 지금 500만 원 1000만 원짜리입니다. 모르면 당하는 겁니다. 알지만은 가질 필요가 없어서 포기하는 것과 줘버리는 것과, 몰라서 못 받는 것은 아예 틀립니다.
 
산으로 도망하라. 들에 머물지 말아라. 아닌데요? 한번 볼까요. 새벽에도 했는데. 18절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아이, 구원의 방법이 뭔 산으로 도망가라고? 17절 끝에 보면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 받지 말아라. 들판에 살고 안 망하면 되지, 아이 왜 또 등산을 하랍니까? 산으로 달려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든데, 살 길을 줘도 아니올시다.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결과를 모르고 경험 안 해본 사람이 이 길 좋고 저 길 좋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좋고, 말 많이 한 만큼 그 망하는 겁니다. 전공은 이게 좋고 회사는 저게 좋고 뭐 군대는 이게 좋고 결혼은 저게 좋고, 뭔 옷은 이게 좋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알고 말하는 만큼 생고생 많이 하겠다마는, 예전 같으면 끌어다가 그냥 못 가게 막지만은, 요즘은 큰일 나기 때문에 그냥 몇 마디하고 풀어 놓습니다. 마음껏 달려서 마음껏 망하거라. 어떡합니까? 길이 없으니. 이게 누가복음 15장에 집 나간 둘째를 향하여 뒤 꼭지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말릴 만큼 말렸습니다. 목숨 걸고 나가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해가 저물 때에” 19장 1절 소돔에 들어왔다가 동 틀 때까지, 이 인간 설득하느라고 지체하다가 하루 저녁 시간이 다 가버렸습니다. 한 인생 기회 다 손해 봤습니다. 마지막에 끌어다 내놓고 17절 도망하라. 들에 머물지 말아라. 산으로 도망하라. 그리고 18절에 롯이 주여 산으로 도망하다니요. 등산해 보셨습니까? 산으로 도망가려면 나는 남자지만 아내가 여자지, 딸 둘이. 아이 세 여자를 데리고 산으로 도망하다니요? 얼마나 힘이 드는데, 그리 마옵소서. 내 주여, 주님 했으면 순종을 해야 주님인데 말로는 주여 해놓고 하기는 제멋대로 합니다. 내 주여, 주님, 주인, 주님, 이걸 가정으로 가면 엄마라고 그럽니다. 엄마라고 불렀으면 시키는 대로 해야 엄만데, 지 맘대로 하면서 왜 부르긴 또 엄마라 부릅니까? 그래야 돈이 나오겠지. 말 안 듣고 지 멋대로 하려면 엄마 그러지 말고 몸종을 부르십시오. 여봐라! 이렇게 떳떳하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개성이 있고 솔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다면서요? 아버지는 머슴 놈이고 엄마는 종년이고 이래라 저래라 뭐 그러지. 아버지 어머니 불렀을 때는 시키면 순종합니다! 그 약속이 들어있는 말입니다.
 
여기에 롯 좀 보십시오. “내 주여” 18절에. 나의 주인 나의 주님 나는 종입니다 시키면 합니다. 이렇게 불러놓고, 산으로 도망을 하다니요 얼마나 힘이 든데? 19절에 인심을 쓰려면 “인자를 내게 베푸사” 인심을 쓰려면 “내 생명을 구원 하시오나” 살려주고 인심을 쓰려면 산으로 도망하라니요? 못합니다. 산 사람이라 에서처럼 돌아 댕겨본 사람은 산이 자유로우나, 들판에 살던 사람이 산을 타려면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가 우리 말하는 게 좋지 영어가 얼마나 어려운데. 영어하던 사람들 여기 와서 한국말 하는 거 보십시오. 얼마나 더듬는데. 들사람은 들에 살고 산 사람은 산에 살고 물고기는 물에 사는 게 좋은데, 산으로 도망하라니? 못 갑니다. 이게 종입니까? 이게 종이 맞습니까? 한마디를 더 합니다. 두렵건데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이것들 죽이려면, 올 것도 없이 그냥 소돔 다 불태우고 잿더미 만들면 되는데, 왔고 막았고 구해냈고 온 다음 소돔은 불태우고 이 사람들은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자라 아는 사람이고 롯은 모르는 사람이니, 날 구원하러 왔기 때문에 구해주려면 다 될 거고, 마음 바꾸면 안 되니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이게 다시 받은 기회가 복된 기회가 되고 아브라함과 같이 되고, 아브라함을 초월할 수 있는 뒤선 자가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 있는 기회인데,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산으로 못 갑니다. 거기까지 가다가는 중간에 죽습니다. 죽일 사람이 살려준다는데 가다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그리고 20절에 보소서 구원이라는 것은 저기에 있습니다. 저성 소알 성, 저성은 작으니 온 들판 소돔 고모라 천지를 다 멸하면서 작은 성 하나는 빼줄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작고 큰 문제입니까 죄악의 문제인데, 그래서 전부 다 멸망을 시키는데, 이렇게 끝까지 지금 두고 가는 땅의 것이 되어 뗐다 붙였다. 계산을 하고 앉았습니다. 이 롯이 오늘 밤 오늘 하루 살고 있는 우리의 인간적 계산이 다 그렇습니다. 뭐 뭔 말하든지 그 계산 적어놓고 분석하면 다 그 말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한테 이러십시오. 저러십시오. 작으나 크나 그런 식이고.
또 하나님이 이게 아니라 저거다 그러면 그 오판입니다. 계산 잘못하셨습니다. 제가 계산을 빼보니까 견적이 안 나옵니다. 그런 식이고. 그래도 이게 맞는데? 맞지만 제가 못 간다는데 뭔 소리 합니까? 구원이란 20절 저리 가야 됩니다 가깝지 않습니까? 작으니 거기는 둘러가도 되지 않습니까? 자기가 지금 살아가는 방법 구원의 방법 다 결정하고 앉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늘에서 주어지는 전적 은혜라야 그게 구원인데, 지가 만들고 자가 청구하고 자가 다 예정하고 자가 다 지금 주문 생산해가지고 맞춤을 하고 앉았습니다.
 
이게 원래 영계에서 사탄이 하던 짓입니다. 천사였는데 하나님 상대로, 하나님이 이래라 저래라 그러니까 아니올시다. 이게 좋고 저게 좋고, 이게 천사였던 사탄의 첫 번째 타락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았더라. 하나님은 주, 천사는 종인데 이 종 되는 것이 주인한테 주인 자리에 앉아버렸습니다. 이게 사탄의 첫 번째 타락입니다. 그리고 와가지고 아담을 그리 만들었고 그리고 가인을 그리 만들었고, 홍수 뒤에까지 바이러스가 살아남아가지고 지금 롯을 그리 만들었는데, 소돔에 가서 망해보고 그 꼴이 되었으면 내가 걸어온 지난날은 전부 다 틀렸습니다. 이제는 반대로만 살겠습니다. 이래야 될 건데 한 번 더 기회를 주니까 아직도 그 소리. 한 번 결혼 실패한 사람이 두 번 결혼 실패할지 딱 관상을 보면 아는 게 있습니다. 첫 결혼 때 하던 그 말 그 행동하면 두 번째 또 그리 됩니다. 그거. 한 번은 몰라서 이랬지만 두 번째는 완전 바꾸겠다. 그러면 두 번째 결혼이 첫 번째 결혼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거 주변에서 다 보고 계시지요? 첫 번째 결혼 실패했다가 두 번째 결혼 대박 터져가지고, 그냥 막 보름달처럼 웃고 댕기는 거 다 보셨습니까?
 
일부러 그럴 거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 때부터, 죄를 한 번 짓게 해놓고 살리는 것이 기본 구원의 목적이고. 건설 구원은 단 번 단 번 기회는 지나가지만은 오늘의 잘못, 실수, 아쉬움을 내일을 다시 주사 내일은 더 낫게, 몇 번만 하고 나면 뭐 굉장한 신앙가가 되어 집니다. 뭐든지 아담으로 말하면 범죄 후 넌 남자지? 네 멋대로 하다가 죄 지었지? 앞으로는 그냥 주는 것 보다 얼굴에 땀 흘려 일하거라. 그래야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 군소리 없이 그대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가죽 옷을 입혔습니다. 하와에게는 아이를 낳는 것은 고생이다. 고생하고 낳아라. 아무 소리 안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범죄 이전에는 출산의 고생 없었고 먹여 살리는 고생이 없었는데, 범죄 이후에 그 고생을 달게 받아 순종함으로, 비록 아담이 죄는 지었으나 구원의 종자 구원의 씨앗 생명을 붙들었기 때문에, 아벨로 에녹으로 노아로 내려가는 조상이 되고 오시는 주님이 올 때 이름을, 나 둘째 아담이다 하고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이다.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게 쭉 내려와서 이게 롯에게 적용을 해보면, 소돔으로 가서 소돔 속에서 죄는 지어 멸망을 받게 되었으나, 여기 천사들이 왔다면. 예 지금부터라도 어느 산입니까? 저 산? 태산이라도 가다 엎어져 죽어도 도망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 좋은 대로, 제 생각대로, 제 형편대로, 계산했던 것은 전부 다 멸망입니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들이 아니라 산입니까 맞습니까? 예 덮어놓고 달리겠습니다. 이게 롯이 아브라함을 닮는 길이고, 소돔에서 다시 한 번 더 받은 기회를 복되게 쓰는 겁니다. 아담은 범죄 후에 군소리가 보이지 아니하는데, 가인은 별의별 소리하다가 홍수에서 끝났고, 여기에 롯은 보니까 아니올시다. 그림 마옵소서.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저기가 낫습니다. 저 작은 성 소알이라 불렀더라. 22절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완전히 이제 어둠은 다 지나갔습니다. 죄악세상 속에 주님 모실 기회는 다 지나갔고, 이 새로운 날이 원래 회개의 새 날이 되었다면, 브니엘에 해가 떠올랐더라. 야곱이 지난날에 꾀쟁이로 살았다가 브니엘에서 엉치뼈 하나 맞고 다리 저는 장애자가 되었다가, 이제는 주님만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말씀 어기는 것은 사망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장소에 이름을 브니엘이라. 해가 떠올랐더라. 그랬습니다. 그 떠오른 해로 이제 야곱은 새롭게 출발을 제대로 하는 겁니다.
 
이 소알에 들어갈 때 해가 떠올랐더라. 해가 돋았더라. 회개하고 출발했더라면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갈 거고, 나중 된 자 먼저 될 수 있는 이런 소망을 잡았을 건데, 이 해가 돋았기 때문에 회개의 기회는 다 지나가고, 그 뒤에는 전부 다 불행한 역사밖에 없습니다. 24절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성경 해석 방법이 보이십니까? 하늘은 하나님입니다. 하늘 곧 하나님에게서 그렇게 적어 놓으셨지요?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세계 하늘. 왜 하늘이 하나님이며 왜 하나님의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입니까? 하나님 때문에. 작은 집이라도 임금님이 들어가면 궁궐 됩니다. 아무리 큰 집이라도 임금의 집이 아닌 걸 임금 집이라 부르면 역적 되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계셔야 하나님의 나라고, 하나님이 자유 하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하늘나라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약에 자주 쓰시는 하나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곧 하나님에게서. 성구 잘 기억하셨다가 제가 잊으면 그 창세기 19장 24절로. 24절입니까? 몇 절? 24절. 창세기 19장 24절 꼭 기억하셨다가 외워 놓으십시다. 하늘이란 하나님의 세계다. “하나님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 유황은 불은 있는 걸 소멸한다. 태워버린다. 없애버린다. 지나온 너의 생애와 너의 모든 수고와 너의 존재 자체는 다 없는 거다. 이럴 때는 불입니다. 유황이란 뜨거운 겁니다. 고통입니다. 그냥 뜨거운 것이 아니라 못 견디는 고통이라 할 때는 유황입니다.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성. 그 성들 주변에 있는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자기 주변에 많은 불신자들까지도 천벌을 함께 받습니다. 니느웨로 가라 할 때 가면 그날 배 타고 가는 사람들은 별일 없이 갔을 건데,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배를 타버림으로, 배 안에 있는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죽을 판이 돼버렸습니다. 가진 물건 다 내버리고 토하고 막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아무리 자기 신 다 불러보고 항해술로. 그 짐을 버리는 것은 배의 무게를 조절해가지고 지금 폭풍우를 벗어나는 항해술인데, 기술, 수단, 지식, 다 동원하고 어디다 되고 다 빌어 봐도, 요나를 안고 있는 배는 그건 물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요나를 빼서 던져버리는 것이 해결이지. 그 요나를 빼가지고 물속에 던질 때, 아니 선지자를 물속에다 던져 넣는 것은 종교 탄압, 기독교 박해가 아닌가? 기독교 박해라니요? 그러면 불신자들이 요나하고 순교하라는 말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인데. 이신 저신 귀신 다 흔들어보고, 불교 믿는 사람은 부처 앞에 잘못 없다 그러고, 유교 믿는 사람은 제사 잘 지냈다 그러고, 다 물어봤는데 여호와를 믿는 선지자인데 도망을 갔다 그러니, 그 원인은 여기 있지. 이거 빼다가 던져버리니까 그만 조용해졌습니다.
 
교회가 있는 사회 그 사회에 문제 생길 때마다 교회는, 우리를 쥐어박으니까 그렇지 그 말하기 전에, 이렇게까지 된 것은. 교회가 사회봉사를 안 해서 그런다! 또 귀신은 또 이렇게 가르쳐줍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잊어 그런 것일까? 이렇게 찾으면 됩니다. 사회 전체를 맡을 역량이 되지 않을 때는, 우리 가정의 이 모습 오늘의 이 방향은 나의 잘못이 아닐까?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리를 재보면 거의 다 나오게 돼 있습니다. 역사의 다윗은 하나님과 제일 가까웠습니다. 가면 다 이겼습니다. 역사의 솔로몬도 처음에는 하나님과 가까웠습니다. 백향목이 들에 뽕나무처럼 많았더라. 뭐 은덩이? 은 그까지 것은 돌처럼 많았더라. 전부 나무 그늘 밑에 하나님 찬송하고 감사하고, 예배드리느라고 기도하느라고 어디 돌아다닐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가까워지면, 날 봐서 이렇게 저렇게 마지막에는 전부 하나님께서 복되게 이렇게 인도해 가십니다. 그중에서도 26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왜 뒤를 돌아봤을까? 끌어다 놓으니까 몸은 끌려 나오면서 마음은 소돔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런 걸 마음은 콩밭에 라는 말이 있습니다. 꿩이 닭하고 제일 비슷하게 생긴 게 꿩입니다. 꿩이 콩알을 그리 좋아합니다. 그래서 콩알에 독약을 쳐놓으면 꿩을 잘 잡습니다. 근데 산채로 꿩을 잡아다 놓으니 마음은 콩밭이라.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마음은 콩밭이라.
 
밀려서 학교 가든 끌려서 학교 가든, 몸은 학교에 있는데 마음은 지금 휴대폰 게임 밖에 없는 사람, 연애밖에 없는 사람, 돈밖에 없는 사람, 몸은 여기 있고 마음은 돌아다니는 사람, 롯의 아내를 끌어다가 유황 불구덩이에서 빼놓았는데, 마음은 유황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저 아까운 살림, 저 아까운 텃밭, 빌려준 저 돈, 영수증. 하나님의 안면,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섭섭함, 하나님의 기쁨, 이런 거는 멀어진 지 옛날이고. 이 급한 와중에서도 뒤를 돌아본 걸 보니, 지나온 날에 하나님과 멀어진 그 세월만 그립고, 그게 익숙하고 그게 자기고 그리고 현재도 자기의 진심은 거기에 있고, 내 진심 내 중심 내 전심 나의 정성은 어디에 있는고? 항상 생각 좀 하셔야 됩니다. 이게 해결이 안 되면, 끌어다가 갖다 놓아도 다른 사람들은 그 멸망에 살아 나왔으니까 복을 받았네 그러는데, 하나님 계산은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습니다. 또 저 사람 때문에 이 사람 봐주고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돌아섰냐 한 번 더 물어보신 겁니다. 정말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면 돌아선 생명이 귀해서 이걸 살리지, 이거 아닌 것을 살리지는 않습니다.
 
오늘 저녁 회개입니다. 실수 없는 사람 없고 돌아보면, 참 어찌 내 입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어떤 그런, 그런 참 망할 일을 내 손으로 했을까? 평생에 뭐라 뭐라고 해도 망한 원인에 100에 한 99는, 자기가 자기 망치로 자기 복을 다 깼지, 남이 와서 자기 복 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저한테 전화 제일 많이 해서 이게 예수냐고 항의 제일 많이 한 분, 자기 인생 1000에 999를 자기가 다 뚜드려 깨는데 어떻게 막겠습니까? 자기 집에 장독도 자기 망치로 깨지, 자기 집에 된장독도 자기 손으로 깨지, 자기 집 논문서도 성냥불로 다 지르지, 밤낮없이 그러는데 그걸 어떻게, 경찰도 요즘 그거 함부로 경찰서 데고 가면 경찰이 잡혀갑니다. 구속영장 없다고. 하나님도 그렇게는 말려주지 않습니다. 소돔의 멸망에 함께 망해야 될 죄가 있는데, 망하고도 남는데 빼놓은 것은, 꼭 망할래? 아니면 완전 돌아설래? 한 번 더 질문을 하신 겁니다. 기어코 망하겠습니다. 그러냐? 망하거라. 그리고 롯은 모압과 암몬의 이름으로 오늘까지도 내려옵니다. 오늘까지도. 모압과 암몬족속은, 이스라엘 옆에 붙어가지고 지금도 테러하고 옆구리를 들쑤시고 앉았습니다. 성경시대 내내 오늘까지. 그 이름이 롯의 이름입니다.
 
여러 면으로 깊이 되돌아봐서, 깨알만한 작은 것도 씻어야 되지만은, 내가 내 마음속에 내가 나를 돌아볼 때 가장 급한 것, 많은 것 중에 가장 급한 것, 급하기는 급하지만은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거 다 두고, 이건 내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그중에서 제일 급한 거 그거 하나만 딱 돌려 세우면, 이게 해결되는 순간 나머지 죄는 뭐 줄줄이 그냥 다 해결이 돼 버립니다. 굉장한 겁니다. 귀신이 이걸 알기 때문에 인간이 작고 겁 많은 죄 중에 자기가 하면 될 만한 것 하나, 하면 되는 거중에서도 가장 급한 거 하나. 이건 하면 하는데, 여기에 눈 뜨고 돌이키면 귀신은 쫓겨나가야 되니, 이때 귀신이 또 홀려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큰 죄부터 회개를 해라. 아프리카까지 선교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라. 죄의 세계를 복음화 못한 걸 회개합니다. 목사들의 회계는 주로 그렇습니다. 75억을 전도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럽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교인 전도나 해라! 너 처자식이나 바로 믿게 해라! 그러십니다.
 
큰 죄도 회개는 해야 되나 지금 할 수 있는 것, 이게 딱 숙제입니다. 그래서 하면하고 말면 마는데 이게 모든 것이 다 시작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게 참 힘이 드는 겁니다. 마음먹으면 고칠 수 있으니 근데 이걸 고쳐버리면 이 아까운 걸 끊어야 되니, 이 아쉬운 말을 해야 되니 그래서 아끼다가 뭐가 되는 겁니다. 굉장히 큰 걸로 가지고 회개를 시키는 방법 하나. 또 아니면 어제도 정지 신호등을 잘못 지켰는데 이거 회개하고, 오늘도 보행자 클랙슨으로 위협을 했으니 앞으로는 이런 죄도 회개하자. 그 죄 회개하느라고 세상 양심, 세상 도덕, 교통신호 양심 회개하느라고, 이거 회개하느라고 처박혀 앉아가지고 이거 회개하다 보면, 정작 내 앞에 더 중요한 것은 놓쳐버립니다. 많은 죄 가운데 네가 마음먹으면 되는 거 그리고 네가 하면 되는 거, 제일 급한 거 하나 있지 않느냐? 그건 자기 양심이 자기한테 콕 찌르면서 이거 해결해라고 하십니다. 그거 하나만 딱 잡아버리면 태산처럼 큰 죄라. 저건 감히 이길 리도 없고 해결 못할 것 같았는데, 그거 이거 하나 해결한 그 연장선으로 쉽게 해결돼 버립니다. 그리고 자잘한 것은 저절로 해결이 다 돼버렸고. 오늘 저녁 간단한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각자 자기 양심으로, 많은 것 중에 이것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내가 마음먹으면 되는 거다. 이건 나에게 너무 부대끼는 것도 아니다. 이건 그냥 힘 안 들이고 해결하는 시시한 것도 아니다. 이건 힘은 든다. 하면 된다. 그게 뭘까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1차-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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