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새22.5.12 창19:17 세상 집중으로 하나님과 멀어진만큼 소돔, 롯의 실패, 주님 향할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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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새22.5.12 창19:17 세상 집중으로 하나님과 멀어진만큼 소돔, 롯의 실패, 주님 향할 마지막 기회

관리1 0 89 2022.05.1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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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2 목새
 
제목 : 세상 집중으로 하나님과 멀어진만큼 소돔, 롯의 실패, 주님만 향할 마지막 기회
 
찬송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본문 : 창세기 19장 17절 -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죄인은 자기 죄로 죽습니다. 피하지는 못합니다. 지옥 가는 멸망은 해결해 주셨고 천국 갈 사람이 천국에 가져가야 될 자기 생애 자기 심신의 요소를 다시 가져갈 기회를 받았는데 두 번째 또 아담을 따라 그 기회를 놓쳐버리면 그건 둘째 사망입니다. 둘째 사망은 대속이 없습니다. 선악과 먹어 원죄, 이건 첫째 사망입니다. 아담과 오늘 우리까지 사람은 아담의 원죄로 무조건 영이 죽었고 1차 사망, 예수님의 대속으로 영의 사망은 중생으로 다시 믿는 사람을 만들어 살려주셨고 살아난 영이 저주 아래 있는 심신을 현실마다 말씀으로 죽지 않도록 붙들어야 되는데 그 기회를 한 번 더 놓친 것은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천국은 해결, 천국에 가져갈 자기의 실력은 차이.
 
롯은 소돔으로 갔는데 이 소돔을 멸하러 온 천사들이 14절에 “이곳에서 떠나라” 이게 사위도 15절에, 딸도 아내도 멸망 한다고 떠나라 하는데, 죄악의 사람들의 죄악을 멸망시킬 테니까 떠나라 하는데 전부 망설이고 롯까지 망설이다보니까, 롯은 이 사람들을 알아봅니다. 아내와 딸 뜰 때문에 망설입니다. 아내는 그곳은 둔 재산, 딸들은 남편들 때문에 망설입니다. 소돔이 아내를 붙들었고 소돔의 사람이 딸들을 붙들었고 소돔의 재산과 생활이 그리고 사위들이 아내를 붙들었고 소돔에 익어진 과거, 사위 딸 아내 전부가 다 총력, 롯을 붙들어버리니까 롯 하나같으면 딱 나오겠는데 붙든 것이많아서 간접 간접으로 붙들려, 직접 붙들리나 간접에 붙들리나, 굵은 한 줄에 붙들리나 가는 여러 가닥에 붙들리나,
 
“롯도 지체하매” 이게 16절이다. 그러나 “롯이 지체 하매, 다른 것들 죽든지 말든지 롯만 빼내면 되는데, 롯이 지체하니까, 롯과 가족을 붙들고 집어내버렸습니다. 17절 ” 밖으로 이끌어낸 후“ 아브라함의 의로 롯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의, 아브라함의 기도, 아브라함을 봐서 롯에게 한 번 더 심판을 미루어주며, 기회를 줬을 뿐입니다. 이게 노아 홍수 때로 말하면 가인과 아벨은 노아를 따라 노아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모이는 자라, 이게 신앙의 첫 출발이니 그래서 노아 뒤를 따른 셈 뿐 아니라 함과 야벳까지 홍수를 넘어 왔습니다. 홍수 후에 함은 함이 됩니다. 홍수전의 함은 함이 아니었습니다. 앞 뒤 계산을 해보면 노아는 구원, 노아는 구원, 홍수 뒤에 노아의 실패는 방심입니다. 홍수까지의 결산의 노아 또는 부부, 하나니까 통과. 자녀 셋은 나이도 이번 집회 때 계산해봤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세월을 따라 함께 왔으나, 깜깜한 밤중에 한 사람이 등을 들고, 밤길을 걸어가면 그 사람은 준비한 기름으로 준비한 기름을 들고 어두운 밤을 가야 할 길을 끝까지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 바로 뒤에 옷 자락을 잡고 따라가는 사람은 등 없어도, 등이 없다는 말은 불신자라도, 또는 등은 가지되 기름이 모자라면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인데 준비가 덜 된 사람입니다. 등을 들고 기름불을 밝혀 어두움을 뚫고 나가는 사람 뒤를 따르면 그 사람은 등 없고 기름 없어도 남의 등불을 보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속기가 쉬운 겁니다.
 
백 목사님이 깨달으니까 온 공회 목회자들은 전부 그만큼 깨닫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필기해서, 두 번째는 녹음해서 세 번째는 아예 설교록 까지 갖다 바치니까 아, 이거 놓고 읽는 데야 뭔 어려움 있습니까? 그런데 읽어만 줘도 그냥 난리가 나니까. 이게 남의 등불 따라 간다, 라고 그럽니다. 남의 등불, 그런데 한번은 갔는데, 밤까지는 갔는데 그 밤은 갔는데 인생 끝까지가 밤중입니다. 인생 끝까지가 죄악 세상 밤중인데 가던 사람을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가 버립니다. 앞 사람의 등 불, 그 사람의 등불입니다. 그 사람이 깨닫고 그 사람이 이럴 때는 이 길, 저럴 때는 저 길, 항상 두 길, 옳은 길을 따라 쭉 갔는데 알고 깨닫고 원함으로 끝까지 간 자기 진리, 자기 성령의 인도를 따라간 사람은 끝까지 성공, 진리도 성령도 모르고 뒤로는 별별 짓을 다하면서 남의 등불을 뒤따라간 사람은 앞 사람을 하나님께서 데려 가고 나면, 이제 이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두 길에는 자기가 한 길을 선택을 해야 되는데, 이때 다 실패해버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다 흩어져버렸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사도행전 2장부터 주님 없는 출발해서 이제는 열두 제자가 자기 등불을 비로소 켰습니다. 그 전까지는 주님 따라다니니까 누가 봐도 주님과 같거나 주님과 한 패거나 또는 주님 2등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뽑아 버리고 나니까 이것들 전부 빵점입니다. 그동안 믿은 것은 헛일, 그래도 그걸 들고 그다음, 사도행전 2장에 성령 인도를 받으니까 과거에 듣고 배운 것이 들어 다른 사람과 비교는 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아브라함을 따라다녔습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지고 나니까 아브라함의 등불이 없으니, 아브라함 뒤를 따라다니다가 아브라함과 나뉘어지니 그 다음부터는 롯의 신앙도 후퇴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표시가 나는 겁니다. 지금 소돔 고모라 유황불로 때릴 때는 소돔 고모라에게는 밤중에서도 한 밤중입니다. 한 밤 중에 오시는 주님을 등불을 들고 맞아야 되는데, 이 천사를 통해 나타난 이 분을 붙들고 나오는 게 구원인데 그 이전까지는 실패입니다.  “롯이 주저하더라" "붙들어냈더라” 구원이 아니라 지금까지 산 것은 실패, 몸을 살려 앞날을 열어 다시 주님만을 향하도록 밖에 까지는 끌어 놓고 이제 출발 하거라. 어제 말씀. 여기서부터 멀어지거라. 소돔 지역 번지가 아니라 소돔 안을, 소돔으로 만들었던 그 죄악으로부터 도망가거라. ​어떻게 소돔이 소돔 안에 그런 죄악을 만들었던가? ​먹고 살기 좋으니, 여건 환경이 좋으니. 오늘 우리 사회는 신풍 바닷가 이, 사람 못 산다고 전부 도망간, 전부 떠나신 여기까지도 차고 넘쳐 주체를 못하고 있습니다. 신풍, 많은 여건에서 생명 걸고 교회만 다녀도 온갖 생활비 온갖 좋은 것 다 들어오는데 여기 있어도 소돔인데, 시내 어디 간다고 교회와 멀어지고 신앙과 멀어지면, 그 참 곤란합니다. 도망가라, 멀어져라. 위치 지역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소돔의 세상 살기 좋은 여건이란 안 봐도 하나님과 멀어지는 거다. ​ ​"돌아보지 말아라" 마음의 소망 마음의 기대 마음의 소원도 가지지 말아라.
 
그 다음,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산으로 도망하여" 홍수 후에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동쪽으로 가다가 시날 평지, ”평지를 만났더라“ 평지니 모이기 좋고 모든 인간들을 모으고 돈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고 뜻을 모아, 다시는 홍수가 오지 않도록 노아 할아버지처럼 믿자, 아 이랬으면 백점인데 전부 다 모여가지고 그다음, 죄를 지어도 심판을 면할 이런 방법을 찾자. 신앙생활 잘못하다가 하나님께서 경제를 어렵게 만들면 금융 회사를 만들어 버티자. 주님이 하늘에 비를 주지 않으면 지하수를 파자. 지하수도 끊기면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 버텨 나가자, 온갖 연구를 다 하면 그게 바로 지금 더 큰 재앙을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시날 평지. 뒤에 망할 때를 보면 전부 평지입니다. 원래13장에 롯과 아브라함이 나뉠 때도 보면 ”들에 머물렀더라“ 롯은 요단들, 들이라고 그랬습니다. 롯은 평지에 머물고.
 
13장 12절에 헤어진 뒤에 ”롯은 평지에 머물고“ 평지에 머물고 시날 평지에 옮겼고 전부 멸망인데 소돔에서 빼내면서 ”들에 머물지 말아라“ 들의 반대 ”산으로 도망하라“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 주님이 마지막 멸망이 닥치거든 ”산으로 도망하라“ 밭에 들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가라. 그냥 멀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소돔의 멸망이라 소돔과 그냥 멀어지면 또 소돔을 만들고 소돔 꼴이 난다. 아예 소돔을 상상할 수 없는 산으로 도망을 가라. 들과 산을 비교하면, 똑같은 현실 공간 형편인데 세상 살기는 산이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가까운 형편입니다.

​어떤 사람과 부부가 되어야 세상 살기 편할까? 전부 연구 이것만 머릿속에 가득 가득 찬데, 뭐가 찼다고 그러지? 쌍 디귿?  머리 속에 찬 게 그거니, 돼지는 구정물만 찾습니다. 맑은 물도 있는데. 개, 돼지 더러운 것만 찾습니다. 여우는 사냥을 해가지고도 그냥 먹지를 않고 땅에 묻어 그다음, 땅을 파고 묻고 감춰버립니다. 그래서 썩고 나면 그거 이제 맛있다고 그때 사 먹습니다. 여우는 생고기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자꾸 팝니다. 썩어야 맛있다고. 그냥 두면 다른 게 와서 들고 가니까. 감춥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우가 그겁니다. 첫째는 포도나무 뿌리를 파서 포도나무를 죽여 버리는 것. 신앙의 사람의 신앙의 뿌리를 뿌리째 뿌리부터 휘집어 놓는 것. 교회 신앙의 밑바닥. 그 사람 신앙의 근본을 흔들어놓는. 그리고 두 번째는 생명 없는 사망을 좋아하는 것, 진리와 먼 것일수록 죄를 많이 짓고 오래 지은 것일수록 맛있다. 찬송가보다는 안 믿는 노래 중에서도 클래식은 좀 덜 썩었을 겁니다. 대중가요 유행가는 좀 더 썩은 겁니다. 찬송이 아니면 똑같지만은 그래도 클래식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원래 인간의 깊이라도 좀 있는데 깊이가 없으면 그다음, 대중가요. 점점 더 나가 가지고 뭔 그냥 온갖 노래 온갖 예술 온갖 예능이 다 나오는데 썩기는 썩었고 죽기는 죽었으나 진리 없으면 죽었으나 얼마나 썩었는가? 썩으면 썩은 것일수록 더 좋아하는 것이 그게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여우 습성이라 그렇습니다. 그 말은 인격이 여우라 그렇습니다. 구원의 열매를 맺는 주님께 매달린 포도나무 가지에 열매를 맺는 것은 근본적으로 싫고 끊어 버리고 하는 짓이란 맨날 그 짓 만합니다. 어쨌든 파기만 파댑니다. 여우가 포도나무 뿌리를 먹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 살아있는 생명에 가까운 것일수록 싫고 생명과 멀어진 것일수록 좋고. 많이 썩을수록 좋고.
 
들에 머물지 말아라. 들판 좋아하다 살아가는 세상 형편 좋아하다가 소돔 건설했고 소돔이 그런 데가 되었고 롯의 신앙까지도 끌어들여 이렇게까지 되어졌다. 소돔에서 살려 놨는데 빼놓았는데 또 그 짓 반복하지 말아라. “ 산으로 도망하라”. 하나님만을 향하여 이제는 달려가거라. 세상 걸어가고 살아가는데는 불편할 거다. 상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이게 소돔의 멸망을 연기시켰음이 나옵니다. 죄인을 그 순간 심판을 해도 되고,  죄인을 좀 미루었다가 좀 죄가 많아 진 다음 심판을 해도 됩니다. 그건 공의와 다른 겁니다. 죄는 망하는데 심판의 기간은 멀어질수록 이거는 커집니다. 그냥 봐주는게 아닙니다. 돌아설 기회도 있지만은 돌아 서지 않으면 더 커집니다.

​에덴동산에 타락한 천사가 시험을 한번 했습니다. 그때 이겼으면 두 번 시험은 없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오면 몰라도. 한 번. 그런데 예수님이 구원을 해버린 것은 비겁한 것 아니냐? 어떻게 시험을 다기 기회를 다시 주냐? 그게 아닙니다. 에덴동산의 타락의 시험은 아담 하나나, 아담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오셔서 아담 죄인의 자리에 대신 섰고, 주의 능력 위치를 다 포기하고 죄인 아담 자리에 선 주님은 악령이 에덴동산 아담을 범죄 하게 하듯이 그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신성의 능력과 위치는 다 포기를 했기 때문에 죄인은 아닌데 죄인처럼 상대하기 때문에 평생을 악령이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을 죄 짓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이겼으면 되는데 왜 또 두 번이냐? 두 번째, 주님을 이기면 아담과 우주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까지 연결을 다 가집니다. 원래 영계에서 타락한 천사의 타락이 영계 차지입니다. 실패하고 왔는데 우주를 책임진 아담 죄 짓게 해서 우주를 가졌고 아담을 구원하러 오시려면 주님이 영계를 걸고 와야 됩니다. 영계뿐만 아니라 영계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셨기 때문에 호랑이 꼬리를 잡으면 호랑이가 도망을 못 가듯이, 송아지를 잡고 있으면 소가 도망 못 가고 맴돌다가 먹히듯이, 예수님의 인성이 아담의 죄 해결하러 오셨기 때문에 그 인성은 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인성을 죄 짓게 만들면 인성 속에 신성이 끌려 들어옵니다. 그러면 타락한 천사가 영계에서 타락하기 전, 처음으로 하나님과 맞섰던 그 전쟁을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으로 말하면 큰 걸 걸어놓은 겁니다. 아담을 죄 짓는 것은 작은 것, 예수님을 죄짓게 하면 하나님의 세계 전부가 다 걸려버립니다. 악령으로서는 영계에서의 실패를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니, 이 땅위에 아담의 다시 기회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것을 공의롭게 합니다.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피하라” 오늘도 이것은, 이 선택은, 이 일정은, 이 마음씨는, 이 눈빛은 하나님과는 좀 멀지 만은 나, 나와 세상에는 유리하지 않겠느냐 작은 소돔입니다. 작은 소돔, 이건 아예 뭐 신앙에는 아예 좋지 않지만은, 이건 작정하고 그거는 소돔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가끔 한 번씩 주일날 출근을 해야 되지 만은 여천공단 대기업이 합격증을 줬으니 이건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 제대로 소돔 잡은 겁니다. 아무리 그런 청년이 많아도 제가 그걸 딱 끊어버리면 등불 하나는 켜는 겁니다. 만약에 교회의 중심 교인들이 천만금을 줘도 그건 안한다. 빌어먹지, 그런 짓은 안한다. 산속에 산 위에 살겠다, 못 먹고 살고 굶어죽어도, 그러면 신풍은 환한 동네입니다. 뭐 한 사람 그러고, 평생 잘 사는데? 그 밑에 자녀들이 봤으니 뭐라 하겠습니까? 또 그러고, 부모는 신앙이 없고 부모는 어려운 때니까 그랬을지라도 그 부모의 수고로 먹고 산 난 이 좋은 세상에 왜 주일을 내주고 취업할거냐, 이러면 좋을 건데 그 부모의 모습을 보고 드문드문 그래도 먹고 사는 게 이런 게 좋구나, 이리 되면 그 가정은 이미 소돔의 문을 열고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겁니다. 강단에서 말하기 어려운 면이 많아서 이젠 그렇게까지 세상에 마음을 기울이면 곤란합니다.
 
그럴까봐 믿음 있는 가정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난 신앙으로 술집에 가도 술과 안주를 구별해서 안주만 먹고나온다, 넌 가서 안주만 먹고 왔겠지, 널 보고 수도 없는 사람이 어, 저런 분도 뭐 술집에 한 번씩 가는데 나야 가서 퍼져도 되겠다, 그리고 다 따라 옵니다. 그래서 아이들 보는데 찬물도 마시지 말라는 겁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이마에 표를 높게 세워서 저는 이런 죄인입니다, 저를 따라 가지 마십시오, 라고 해야 됩니다. 백 목사님은 자녀들을 거의 전부 서울로 공부를 시켰습니다. 서울대 연대 이화여대 하나 둘, 뭐 그러니까. 그리고 평생에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대학 그놈의 걸 갖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된다, 나는 가르쳐 준 사람이 없어 나도 가르침을 못 받다보니 이리 됐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랬습니다. 다른 분은 모르겠고, 우리 공회 목회자들은 그래서 자기 교회에서 시내버스 타는 학교만 보냈습니다. 백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백 목사님은 그래놓고 나정도 되는 사람은 자녀들이 뭐 서울 공부해도 영향 받지 않지 않느냐 그러면 그 정도 되지도 않는 유학 보낸다 그러다가 전부 다 세상사람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목회자란 안 그래도 되는데 교인보다는 한 번 더 조심할 수밖에 없고 목회자 빼 놓고 교회의 중심 교인들은 나는 이 정도는 피해갈 수 있다? 넌 피해갈 수 있는데 널 지켜보다가 드디어 나도, 그러고 몰려가는 뒷사람을 어떻게 할래? 이것 때문에 아직까지 제가 제주도 한번을 못가는 겁니다. 미국은 놀고 와도 공회 교회가 있어 순회를 갑니다, 핑계라도 댈 수가 있습니다. 제주도는 왜 갔지요? 무슨 말을 해도 그거는 목회자도 그냥 놀다 올 수 있는 거지. 놀다 올 수 있는 겁니다, 이래 놓으면 전부 비행기를 못 타서 발버둥 하는 온 교인들을 만들 때 그들도 다 그럽니다. 주님 모시고 갈 건데, 주님 모시고 가면서 주님은 태평양에 내버리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한번 갔다 다시 올 때는 사람은 그 사람이고 위치는 그 위치인데 가기 전 신앙과 갔다 온 신앙은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마치 신혼여행까지도 비행기 타면 죄나 짓는 것처럼, 그냥 신혼에 좋아서 사고 나니까 근처나 두시고 나중에 해외는 가시라, 그러는 이유가 한 사람 문을 열고 신앙 있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갔다면 그 다음부터는 그 문을 열고 가면 죽는 사람이 몰살을 하기 때문에 몰살한 뒤에 수습하는 거보다는 차라리 성문에서 그냥 공연히 싸우느라고 이렇게 복잡하게 교회를 만드는 겁니다. 이게 분쟁이 될는지 소돔 고모라의 이 유황 불비를 막아내는 복된 지혜로운 조처가 될는지 가정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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