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22.5.10 창19:18 롯의 소돔구원과 실패, 단번기회 ①세상단절 ②여건포기 ③하나님만, 전환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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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새22.5.10 창19:18 롯의 소돔구원과 실패, 단번기회 ①세상단절 ②여건포기 ③하나님만, 전환실패

관리1 0 83 05.1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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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0 화새
 
제목 : 롯의 소돔 구원과 실패, 단번 기회에 ①세상단절 ②여건포기 ③하나님만, 근본전환 실패
 
찬송 : 88장 (주의 주실 화평)
 
본문 : 창세기 19장 18절 -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아침에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아브라함은 의인 롯은 죄인의 길 둘만 있다면 아브라함은 복 받고 구원의 길로 계속 번창했고 롯은 망해가다가 망한 것까지는 19장 1절에서 알겠는데 죄인은 망해야 되는데 죄인이 살아나는 길이 있습니다.
 
의와 죄만 있는데 왜 롯은 따로 빠져 다른 길을 주시느냐? 에스겔 14장에 많은 말씀으로 노아 다니엘 욥 천하의 의인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의인 3명이 모든 멸망 가운데 구원을 얻는다면 그들의 의로 그들의 생명만 건지지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하리라. 아 조카보다야 자녀가 더 가깝지 않습니까? 자기 의로 자기가 구원되고 자기 죄로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지 내 죄로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죽지 않습니다.
 
나의 의로 나의 자녀를 구하지 못한다면 나의 죄로 자녀가 망하는 일도 없어야 됩니다. 그런데 왜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주어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 했는가? 죄악 세상은 전부가 죄악으로 넘치는데 죄 짓기가 쉽고 죄 짓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에 그래서 아버지가 죄를 지었습니다. 죄악 세상의 죄를 피할 수가 없는데 아버지까지 죄인이면 어려서부터 그 죄가 윗물이 되어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흐린 법인데 죄악 세상의 환경 그 환경의 죄지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자녀는 그 아버지가 지은 죄까지 덮었습니다. 피하면 됩니다. 환경의 죄까지 물 드는데 아버지가 들이 붓는 죄를 피할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피하지 못한단 말이지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죄인입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는데 이스라엘 역사에는 기록이 되어 내려오는 것이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 장사였다, 제조업자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절에 물품, 절에 부처 조각 판매하는 사람 정도 되어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 없는 죄악 세상 우상의 세계에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것이 직업이면 뭐 그 자녀는 우상을 피할 길이 없는데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아합이 하나님의 모든 종을 다 죽이고  850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로 천하를 휩쓰니 하나님의 종들도 다 거짓말하고 저쪽으로 쏠려 가는데 단 한 명도 하나님의 종은 남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엘리아는 “나만 남았나이다” 살아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너 말고 칠천을 숨겨뒀다, 엘리아가 모르는 곳곳의 현실 각 곳의 교회마다 엘리아 정도의 신앙의 역할과 수준은 되지 않아도 소 잡는 칼과 닭 잡는 칼이 크기가 같겠습니까? 엘리아는 아합을 맞상대로 천하와 시대를 맞으며 구원의 계통을 이어가는 종이고 그 정도 필요 없이 이 골짝 저 가정에 하나님이 필요한 곳에는 사람이 모르고 엘리아가 모르지 곳곳에 하나님은 역사를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의는 굉장한 의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때문에 롯을 살려준다 했습니다. 롯은 조카인데도 살려주는가, 아브라함의 의로 롯이 살아났지 않은가 좁게 읽으면 그렇습니다. 신앙을 인도하는 길에, 처음에는 술 끊고 믿는 사람, 뒤로 마셔가면서 믿는 사람, 술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잘 먹고 잘 마시고 믿는 사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둘 중에 어느 거 할래? 물어보십니다. “모이지 않는 자는 해치는 자라” 처음에는 주님의 복음운동을 훼방하지 않는 자는, 해치지 않는 자는 모이는 자라, 어릴 때는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제일 마지막에는 베드로에게까지도 함께 갈래? 배신할래? 둘만 있지 가운데는 없게 만듭니다. 신앙에 여러 길이 보일 때나 또는 다른 사람을 신앙으로 지도하고 또 그 사람을 후원할 때는 원리적으로는 좁은 길 넓은 길, 죽는 길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라가는 과정에는 자유성을 길러 가시기 위해서 많은 길 좋은 길이 있고 또 중간에 길이 있으니 중간에 길에서 좀 생각해 보라 1등도 있고, 2등도 있고, 3등도 있고, 4등도 있고 많은 것 중에 무리하게 가려다가 아나니아 삽비라처럼 되지 말고 충분히 갈 수 있는데도 미리 빠져 타락하지도 말고 자기에게 맞게끔 원하고 원함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먼저 찾으라, 수준에 맞는 지도를 하는데 수준에 맞는 지도란, 수준에 맞는 연보란 뭐 이 정도는 해도 그냥 전혀 문제가 없는 거 그 무성의입니다. 이 정도는 하면 좋겠는데 굉장히 영향을 미치는 연보 아나니아 삽비라 연보 될 수 있습니다.
 
이걸 하려니 조금 아까운 정도 그게 이제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걸 하면 생활에 또는 마음에 좀 쉽지 않은 그 약간 어려운 이게 정답입니다. 자라가는 정답이란 말이지 최종 정답은 원하시면 목숨 바치는 것이고 원하시면 있는 거 다 바치고 가는 길이 그게 정답입니다. 한 단계씩 나아가는 그런 면을 두고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고 가운데 길도 있다. 이런 겁니다.
 
여기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소돔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의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아니 이 죄인 빠져나오는 수도 있네? 의인이지 않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내어보내셨더라” 분명히 아브라함입니다. 아버지 의로 아들은 죄 짓고도 사냐? 그리 읽기가 쉬운데 그 순간 멸망에서는 피했으나 그건 구원이 아니라 살아날 기회만 준 겁니다. 의인으로 바뀔 기회 결국 죄인이었고 아브라함 때문에 한 번 더 돌아설 기회를 줬는데 소돔으로 들어갈 때처럼 똑 그렇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꼭 이런 걸 좀 찾아낼 줄 알아야 됩니다. 롯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을 따라갔다가 한번, 12장. 그다음, 애굽에 갔다가 죽을 뻔했으나 아브라함 때문에 살아나올 때 함께 살아나왔더라, 아브라함 따라 출발했고 아브라함 따라 애굽 갔고 아브라함 따라 다시 돌아오면서 부자 되었더라, 아브라함의 설명은 만고 롯의 설명은 적습니다. 그런데 13장에 재산이 많아 서로 땅을 나누게 될 때 그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먼저 기회를 줬고 조카는 소돔으로 갔다는 말만 나옵니다. 그런데 설교록에 보면 딸들이 그냥 가자 그러지, 아내가 여보 가자 그러지, 천하의 어떤 사람도 처자식이 흔들어대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억세 보여도 여자가 끝까지 흔들면 남자는 여자 따라가는 거다. 엄마는 아이들이 흔들면 결국은 따라가는 거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었다. 그래서 여자와 또 딸들 때문에 롯이 고민하다가 따라갔다. 설교록에는 뭐 설명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 나뉘는 13장만을 읽어보면 힌트 하나를 가지고 소설처럼 많이 써 나갔다, 이렇게 오해할 만한데 여기 18장 19장의 롯이 망해가는 과정을 다시 앞에 비교해보면, 그리고 이사야 49장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돌이키는 길에서부터 먹기 시작한다, 길에서 초장이 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며 풀 없는 곳으로 향했는데 그곳을 갈 때 벌써 풀이 나기 시작했구나, 이사야 19장으로 비교해보면 이렇게 재구성이 됩니다. 요셉은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가 자세합니다. 과정이 전부 자세하게 있습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 이야기만 있고 갑자기 40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40년 후에 출발 때 이야기만 나옵니다. 출생의 이야기 40년 지나 호렙산에서 이야기 잠깐, 잠깐 잠깐에 40년이 다 비어 있습니다. 미디안 40년, 바로왕궁 40년이 다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걸어간 길하고 이렇게 딱 비교를 해보면 또 다윗은 출생 이야기도 없습니다. 바로 전쟁에 불려올 때부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릴 때 얘기가 없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야기를 겹쳐보면 적지 않은 부분을 재구성해서 짐작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띄워놓고 다른 데서 붙여 넣을 수 있어야 성경을 여기저기 전면적으로 다 읽는 사람 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이 되고 우리를 길러가는 이유고 성경을 적을 때 요약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빈곳을 성경 외에서 가져오면 이거는 소설이 되는 거고 성경에서 성경을 하나씩 둘씩 맞추면 다 맞출 수가 있습니다. 롯이 길, 죄를 지었고 망해야 되고 그 성이 다 망하는 데 롯은 살아난 것은 아브라함의 의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에, 의인의 기도 때문에, 의인의 기도를 붙들고 다시 돌아서서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 것이다, 그 기회를 줬는데 아담이 죄를 지었으나 얼굴에 땀 흘려 하나님 없이 먹고 살아봐라, 먼저 죄 지은 하와에게는 출산의 고통과 가정 때문에 고생 좀 해봐라, 죄의 처벌로 준 것이 아니라 죄는 지었고 그 처벌처럼 보이는 고난을 통해 돌아오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죽옷 입혀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이 은혜로 인도하셨습니다. 가인은 죄를 짓고 숨었습니다. 아니라고 부인. 들키자 그다음 처벌의 방법을 이러시라, 저러시라 자기가 정했습니다.
 
여기 롯을 보니까 오늘 첫 번째 말씀은 제3의 길은 없습니다. 의인에 의하여 의인의 가족과 교인에게 기회는 한 번 더 줍니다마는 그건 여전히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받은 롯이 두 천사가 “롯을 불러다가” 17절입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죄인의, 소돔으로 가서 죽을 죄 지었고 함께 죽어야 되는데 “생명을 보존하라” 또 죄 지으라 그 말이 아닙니다. 남은 때는 육의 생명의 기회로 하나님과 연결에 신앙의 생명 있는 신앙을 보존하고 살아라, 그러기 위해서는 1번, 돌아보지 말아라. 소돔의 지난날은 단절을 해라. 방향을 정반대로 해라. 소돔 밖에 나가 소돔적으로 살면 두 번째, 소돔을 향할 때의 그 방향으로 소돔을 향하면 소돔 밖에 가서 또 소돔을 만듭니다. 돌아보지 말아라. 소돔에서 마음과 생활을 완전히 끄집어내라. 단절. 돌아보지 말아라. 그쪽을 향하지 말아라.
 
아브라함을 따라가다가 소돔을 향하여 소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돔 밖으로 나와 육의 생명을 구했으나 또 다시 마음이, 방향이 소돔을 향하는 그따위가 되면 죽어야 됩니다. 돌아보지 말아라. 1번. 그다음, 들에 머무르지 말아라. 요단들, 소돔성 이는 들입니다. 넓으니 물이 있고 들판이니 물이 있고 넓으니 편리하고 목축에는 좋았습니다. 산 쪽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물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들에 머물지 말아라. 소돔이 소돔인 것은 물 좋고 들 좋으니 소돔이 된 겁니다. 소돔이 망했는데 옮겨서 들이 넓은데, 물 좋은데 또 소돔 같은 형성, 소돔 같은 여건을 가지지 말아라. 그러면 그것이 또 그리 됩니다. 
 
들에 머물지 말아라. 산으로 도망하라. 산이란 마태복음 24장 마지막이 됐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벌어지고 그럴 때에 들에 있는 자는 산으로 도망하라.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지붕위에 있는 자는 아래층 살림 챙기러 가지 말아라. 마태복음 20장의 말세의 마지막에 피난의 방법을 “산으로 도망가라” 산? 하나님과 가까운 곳, 하나님을 향하는 곳, 내려갈수록 세상의 깊은 곳입니다. 세상으로 살기는 좋으나 세상과 멀어 지거라. 세상을 떨쳐 내거라. 하늘을 향하거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거라. 소돔들로 향한 것은 세상을 향했고 세상사는 데 편리했습니다. 방향을 바꾸어라. 소돔은 유황불비로 때릴 거다. 같은 들판인데 소돔이 아니라고 이 들판 저 들판 옮겨 댕기면 하나님이 따라가면서 다 소돔 만들고 처벌 한다. 산으로 가라. 구약의 이스라엘이니까 육체 보이는 걸로 가르쳤습니다. 산으로 도망을 가라. 들에 머물지 말아라. 죄악의 세상 어울려 죄악의 세상 살아가는 그 편의, 그 일정, 그 환경 속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 산으로. 위로. 하늘을 향하여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가까운 쪽으로 갈까, 그 문제로 소돔 같고 소돔이 멸망당하니 반대로 달려라. 이게 롯에게 주는 방법입니다. 원래 소돔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제 소돔은 끝났고 두 번 다시 소돔 같은 짓 하지 말아라. 소돔을 가지지 말아라. 그쪽으로 방향을 잡지 말아라. 생활에, 사상에, 인생에 근본의 방향이 사람과 가족과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늘을 향하거라. 이게 다시 한 번 주신 구원의 좁은 길입니다.
 
그런데 이 롯이 하는 말이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저를 구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정한 그 길이 아니라 딱 보니까 이 길입니다. 죄를 지은 가인이 죄는 지었으나 저에게 처벌할 땐 이러시고 저러시고 뭐 죄지은 인간이 앞날 설계를 다 해가지고 제가 이렇게, 이렇게 할 테니까 이거, 이거 해내시라 이런 길을 닦으시고 이렇게 보호하시고 자세 방향이 이리 되면 회개가 안 됩니다. 더 큰 죄인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소돔에서 죽었더라면 소돔가기 전까지는 의로 건설의 구원이 컸을 것이고 그 이후만 망했을 건데 피난의 방법, 들을 찾고 좋은 데를 찾고 세상 생활을 찾은 그걸 놓치지 않고 그걸 붙들고 이래야 되고 앞으로 저리 살아야 되고 계속 그러고 그 기회를 받는 바람에 롯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됩니다. 둘이기 때문에 딸 둘을 딱 찍었지만은 결국은 이 둘의 위에는 롯입니다. 모압과 암몬은 잘못된 세상에 결과가 맺어낸 신앙의 곁길, 신앙의 자기중심의 두 모습입니다. 이것의 원조와 이것의 뿌리는 롯입니다. 그걸 한 번 더 깊이 들어가니까 소돔으로 들어간 이야기인데 소돔으로 들어간 이야기에서 할 말은 다 하셨습니다.
 
두 번 기회를 줬는데 피난 나오고 구원받아 나오면서까지 롯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주여, 이러시고 저러시고. 일반 사람이 아닌 줄 아는 정도입니다. 자기의 모든 형편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납작 엎드려 오늘까지 내 생각 인본, 자기중심이 들어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게 돌아서는 건데 돌아설 부분이 돌아선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인이 죄를 짓고 그 뒤에 보니 돌아설 마음도 없고 오히려 열심이 하나님이 없으면 내 힘으로 자구행위 자립한다고 열심히 나가버렸습니다. 그것을 좀 깊이 살펴볼 한 주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실수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 실수를 딛고 발전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뼈아픈 경험이고 자기의 지나온 날들이니까 자기 당한 걸 다시 당에서 해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걸어 복된 걸 잃어버릴 수 있습니까?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롯을 통해 소돔에 구원 그 이유가 어찌 되었는가, 그 지금 빠져나오는 딱 그 상황의 심리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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