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새22.5.9 창19:1 소돔 성문의 롯, 환경이 아니라 내용이 후퇴, 최소 자기 신앙 의지 각오의 기본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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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2.5.9 창19:1 소돔 성문의 롯, 환경이 아니라 내용이 후퇴, 최소 자기 신앙 의지 각오의 기본 지킬 것.

관리1 0 84 05.0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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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9 월새
 
제목 : 소돔 성문의 롯, 환경이 아니라 내용이 후퇴, 최소 자기 신앙 의지 각오의 기본 지킬 것.
 
찬송 : 91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창세기 19장 1절 -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한 주간의 단위로 우리를 돌아보며 주일로 또 한 주간 이어지며 단속하고 주님을 향하도록 날짜의 은혜를 주신 주님 주일을 평일에 주님 동행을 생각하고 필요한 은혜와 변화의 능력을 받는 저들 되게 하시고 평일에 한 주간 어떠하든지 주일의 은혜와 주님 동행이 계속되는 저희들 되도록 복잡한 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 교인들 좌절 속에서도 또는 너무 좋은 환경 속에 취해 있는 가정들이라도 함께 깨워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성문이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입니다. 왜 소돔으로 갔는데 왜 소돔에 성 안에 있지 아니하고 또 집에 있지 아니하고 성 바깥으로 오고 가는 성문에 앉았을까, 아브라함과 지역을 나누어야 할 만큼 부자였습니다. 종업원들은 어디 갔을까, 흔적이 없고 맡은 식구들 맡은 양 떼는 어디 갔을까, 흔적도 없고 식구는 어디 갔을까, 그냥 보이는 게 없습니다.
 
우선 편한 길, 우선 넓은 길, 우선 세상에 좋은 길 택하면 우선은 좋고 뒤는 좋지 않으냐, 또는 우선 좋아 보일 뿐이지 그 순간부터 전부가 다 망하는 길인가 죽어야? 죽은 줄 알지 죽을병을 걸린 것을 쉽게 생각하면 건강 문제, 또 국제관계의 전쟁 문제 가면 갈수록 앞날을 예측하고 저러면 안 된다 저러면 된다 다 미리 계산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은 그 계산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탁월하고 미개한 시대는 그런 게 없는 줄 아는데 사람의 생존의 본능의 감각은 과거로 올라갈수록 더 뛰어납니다. 지금도 몽고 벌판 분들은 눈이 좋다 그럽니다. 텔레비 없지, 휴대폰 쳐다보지 않지, 책 들여다보지 않지 목축이나 사냥을 해야 되니 또 들판이 넓으니 그 멀리 있는 것을 잘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시력은 무조건 다 좋을 겁니다. 후각도 그렇고 청각도 다 그렇습니다. 원래 북한 올라가는 사람들 훈련시킬 때 담배 냄새 껌 냄새까지 그런데 바르는 로션 냄새를 100m 주변까지 맡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한 인공적인 걸 떼 놔버리면 자연의 생존의 감각이 뛰어납니다. 실력 냄새 청각이 지금은 음악을 즐기고 뭐 그림을 즐기지만은 이게 원래 정글 속에 자연 속에 적을 탐지하거나 먹이를 찾아야 되기 때문에 시력이 좋아야 되고 청력이 좋아야 되고 후각이 좋아야 됩니다.
 
먹고 사는 그 면으로만 좋은가, 전 인류가 자기 생애를 바치고 따라가는 그 정도가 될 때 종교라고 그럽니다. 불교 유교가 2천 5백, 3천 년 전에 생겼습니다. 뭐 같은 종교지만 그래도 종교 이름을 건 이슬람이 한 800년, 아마 그럴 겁니다. 800년? 1200년? 800년 되니까 한 1200년, 제일 막내가 나온 게 한 1200 년입니다. 천 년 이내에는 종교라는 것이 출발한 것도 없습니다. 종교를 몇 천 년 전에 만들었던 그 미개한 시절의 그 사람들보다 얼마나 자료가 넘치고 얼마나 학문이 발달했는데 좁고, 좁고, 좁은 세포 속은 들여다보나 웅대하고 원대한 우주를 이야기하여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런 종교는 갈수록 없습니다. 철학도 전부 몇 천 년 전에 그거 우려먹고 있습니다. 좁게 보면 발달한 것 같아도 발달하는 만큼 근본적인 걸 다 망치고 있습니다.
 
여기 롯이 소돔으로 갈 때는 아브라함과 맞설 만한 사람이었는데 자기 맡은 산업 그걸 분깃이라 그러고 그게 롯의 영원한 자기의 사명입니다. 미리 다 떨어 먹고 이걸 관리해야 되는 자기 천사와 같은 이 땅위에 자기 심부름 꾼 사환들 보이지 않고, 뒤에 딸들 보니 곧 딸들의 훗날은 기록이 잘 돼 있으나 딸들의 소돔의 생활은 사위 보면 딱 나옵니다. 둘이 같으니까 사귀었겠지, 결혼을 약속했겠지요? 장인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더라” 결혼을 약속하기까지 서로 오고가고 대화를 할 때 백 목사님 자녀들이 아버지 원하는 신앙은 갖지 않고 살았으나 아버지 무슨 말이 나오면 그 말 안 들으면 뭐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떨어져 죽을까 봐 깜짝 놀라고 떱니다. 당신 아버지는 어떠냐? 아 뭐 교회에 뭐 그냥 얼마나 그런지, 그 정도가 아니라 뭐 말 안 들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길을 안 가도 겁이라도 먹어야 되는데 바로 봤다면 아버지 말 그 우스운 거 그 농담 삼아, 이렇게 딸들을 통해 건너갔고 똑같으니까 같이 만나서, 다른 것은 만나면서 계속 같아졌기 때문에 성중에 사위 둘의 자세를 보니 딸들이 보입니다.
 
아내를 보니 아내는 소돔 밖에 없고 남편은 소돔을 초월했을까? 피난을 가는데 피난을 가는 것도 제 멋 대로입니다. 선악과는 타락한 천사가 뒤흔들어 그렇게 되었다 치고 가인부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섬기면 상대는 어른이고 높은 분이니 뭘 원하실까 기본적으로 이렇게 눈치를 봐야 될 건데 내가 주는 대로 받아 가, 그게 섬기는 겁니까? 그게 부려먹고 그게 무시하는 겁니까? 귀한 손님 모셔놓고 혹시 뭘 원하시는지 또는 뭘 피하시는지 두루미 불러놓고 늑대가 접시에 수프 깔아가지고 핥아 먹으라 하듯이 그건 손님 초청의 겉모습에 속에는 멸시고 이까짓 것이야 뭐 마음 안 맞으면 그대로 잡아먹으면 되는데 이리 보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가인의 제사가 나 세상 살아가는 데 편리하고 그 끝에 그 과정에 그로 인하여 내가 마음먹은 대로 원하면 하나님은 따라 나오지 주는 대로 받아 가시라, 가인의 자기중심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것은 당연한데 안 받았다고 또 성을 내고 난리입니다. 영감 주는 대로 먹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젊은 아들들 말을 안 들어가지고 이렇게 젊은 것들 돈 벌고 세상 사는데 불편하게 하느냐고, 부모가 애들한테 어릴 때 젊은 부부 둘 사는데 이건 맞췄지 이거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으로 주셔서 어떻게 인도하는 걸 원하느냐, 하나님 중심의 하나님이 주시고 맡긴 숙제라 이리 보고 풀지 않고 둘 좋으니까 웃고 가지고 놀고 둘 일정에 따라 이거 뗐다 붙였다. 이래 놓으니 이게 청년 되고 부모가 이제 늙어놓으니 아, 주면 먹고 그냥 앉아 있으라면 앉아 있지 왜 밖에 나왔냐, 이제 그대로 가는 겁니다.
 
주는 대로 하나님 받으시라, 안 받아? 안색이 변하고 분하여 난리가 납니다. 그다음, 옆에 하나님의 하나님 중심에 맞춰 제사 드린 아벨을 처치해 버립니다. 없애 버려야 내 거라고 먹지. 그다음, 죄 안 지었다고 잡아뗍니다. 들키니 그 다음, 줄여달라고 그럽니다. 진행 과정이 이번 집회 때 가인입니다. 그리고 소돔에 들어간 롯을 보면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 근본 인생의 방향을 자기가 결정하고 그리고 여기 소돔 땅에 들어간 이후에 만난 걸 보니까 그렇게 원했던 땅의 것이라도 가졌다면 그거라도 성공인데 그마저도 없습니다. 그 진행 과정에 점점 이리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면 떠나는 순간 좀 놨다가 뒤에 어찌 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어찌 된다 싶으니 일단 먹고 보자 이리 되는데 떠난 순간 끊어진 가지라 그때부터 끝난 겁니다. 끝나야 끝난다는데 신앙의 문제는 방향 틀면 이미 끝난 겁니다. 수에 헤아릴 가치가 없어집니다.
 
신앙의 타락의 과정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상대방을 건져내야 될 때 어디까지 가서 건져내야 되는지 이거 연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또 하나님과 끊어지면 어떻게 병이 짙어지는지 이걸 가르치는 거지 아직까지 신앙은 있는데 후퇴하는 중이다? 제3의 길이 있고 제4의 길이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최종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마지막에는 두 길밖에 없습니다. 셈, 함, 야벳의 세 길이라 그러는데 세상을 기준 잡으면 셈과 야벳은 성공, 함 만 실패입니다. 신앙을 기준으로 잡으면 샘 외에는 둘 다 똑같습니다. 백인들로 내려온 2천년의 신학이 자기들이 야벳 족속이니까 뭐 야벳은 그래도 괜찮다고 밀어대는데 그러니 세상 기준이고 그러니 세상 속에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은 민족적인 한계를 넘겨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나의 신앙이 셈 적인 것만이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 이래야 될 건데 자기들이 야벳이라고 될 수 있으면 야벳을 자꾸 이쪽으로 갖다가 셈 쪽으로 밀어 넣으니 밀어낸다고 밀어 들어갑니까? 자기들의 생각을 바꿔야지. 이 이방인, 이 야벳의 족속, 함이야 보이는 것도 실패니 보이지 않는 것 실패를 짐작하기가 더 좋으나 야벳은 세상으로 너무 잘났고 미꿈하니 천국까지 해결된 걸로 착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고 더 다져야 될 민족이 그 흑인들이나 쥐 박고 자기들은 뭐 구약의 택한 백성처럼 이스라엘 직통의 자손처럼 그러고 있으니 저렇게 겉은 멀쩡하고 속은 없어지는 겁니다.
 
“저물 때” 롯이 소돔, 죄악의 도시, 성문은 출입하는 곳입니다. 멀리서 들어올 때 먼저 접하는 곳 안에서 밖으로 나갈 때 마지막 접하는 곳 성문이다.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 곳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 지나가면 그 복을 배우고 박수 치고 복 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경계하고 나도 저리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믿음의 사람으로 바꾸도록 노력을 하고 이럴 터인데 복이 없는 인간들은 복은 피해 가고 망할 것만 스펀지 물 흡수하듯이 짝짝 빨아들입니다. 시골에 있어도 도시보다 더 큰 죄 진뜩 뒤집어쓰는 사람, 도심 한복판에 살면서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 무조건 그렇게 쉽게 나누는 거 아닙니다.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늘 조심해야 됩니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천사를 알아봤습니다. 이분들이 어느 지경까지 들어있는지는 몰랐으나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아봤습니다. 롯 속의 신앙이 아주 다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그건 다행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기회는 다시 줍니다. 그렇다고 롯 속에 없는 신앙을 이식하지는 못합니다. 롯과 롯의 가족을 설득을 시켜 이들의 믿음이 자라가며 우리가 죄송합니다, 잘못됐습니다, 새로 출발합니다, 이러고 멸망 소식을 들었을 때 뭐 앞뒤 돌아보지 않고 마구 튀어야 될 건데 전부 다 미적거립니다. 딸 둘은 남자까지 있으니 아내야 뭐 원래 이쪽이니 롯은 가족을 사랑하여 신앙으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잡은 손에 신앙까지 다 투자하고 다 갖다 바쳤고 그래서 가족 때문에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새 출발 자체가 보니까 이건 희망이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렇게 되면 나든 너든 일찍 가는 게 좋습니다. 고쳐 소망이 있으면 당연히 어떤 소망이라도 잡아야 되지만 히스기야 15년 꼴처럼 가인이 제 목숨 부지하려다가 그리 된 것처럼 여기 소돔도 가인이 범죄 후에 처벌과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자기가 정하는 바람에 그리 된 것처럼 소돔의 유황 불비는 결정이 됐는데 이 시간도, 그 방법도 전부 소돔에 붙들려 있는 롯이 소돔 기준으로 챙기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새 출발의 신앙의 새 씨앗이 다 여기서 끝나는 겁니다.
 
박해 없이 오랜 세월 좋다 보니까 그냥 어떻게 해야 믿는 것인지 눈으로는 뻔하고 몸이 무거워 모두들 롯이 롯의 가족에 붙들리고 롯의 가족이 소돔에 붙들리듯이 오늘 우리는 그렇게 붙들리지 않았을까, 신앙 없는 가족 가족들은 세상에 다 붙들렸고 세상 일정, 세상의 모든 생활에 붙들려 납을 몸에 매면 물속에 빠진답니다. 이렇게 침몰하고. 롯은 가족들 붙들다가 그 끈으로 같이 내려앉고 난 그렇지 않은가? 기가 막히고 이거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신앙이란 이런데 그 소리만 하고 앉았으면 그 말만 가지고도 신앙은 있는 듯합니다. 천하를 상대로 탄식을 하지, 주변을 상대로 탄식을 하지 아, 목사들까지도 이래서 되겠느냐, 교회가 이렇게까지 되겠느냐, 공회까지도 이렇게 됐느냐, 그 사람도 그리 됐느냐 그럴 때마다 자기는 돋보이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그 속을 들여다볼 때 기회를 주지 않아 그렇지 기회만 주시면 언제든지 주를 향한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의지라도 불에 타고 그러다가 천사가 오니까 이미 뭐 아이나 여자는 소돔 안에 잠겨 버렸으니 원치 않는 걸 손목을 잡아다가 끌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머리채를 끌고 막 눈 마개를 가로막아서 억지로, 억지로, 억지로 끌고 가서라도 마지막에 된다면 그래야 되겠지 만은 그건 될 수가 없는 길이다 는 것을 보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도 내 신앙의 의지와 각오와 자세와 기본까지를 침몰시키고 던져 버리는 데까지는 나가지 마십시오. 그게 바로 요즘 잘 표현하는 극단적 행위입니다. 뭐 그냥 자살이라 그러지 뭔 표현, 자살까지도 또 이제 화장을 시켜서 예쁘게 만들면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 자살이라는 말을 갖다가 흉악스럽게 만들어야 깜짝 놀라서 피해갈 연구라도 하지 롯의 신앙 정도가 되면 탄식하며 시대를 뭔, 그런 것 같지만은 이 인간 자기 손으로 자기 신앙 끝낸 사람입니다.
 
왜 그런 걸 기록했느냐? 다니엘 같은 환란 때의 신앙은 다니엘 같은 기록으로 가르치고 그런 환란 그런 외부적인 위협이 없는 오늘 좋은 때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이런 때는 마음껏 할 수 있는데 마음껏 세상에 “스스로 팔려” 아합은 누가 그러지도 않고 떠밀려서도 아니고 스스로 팔려 자기중심으로 끝장이 났더라, 오늘 우리는 롯, 아니면 아합 둘 사이를 오고 갈 우리 되기가 쉽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좋은 게 쏟아져도 다 누려 보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쌓여져도 그 안에서 절제, 조심, 구별이 살아있어야 남 보기는 소돔이라도 자기 속은 그렇지 않아야 됩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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