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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배치)
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3. 설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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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08 주후
제목 : 아브라함과 롯의 두 길, 소돔의 롯, 건설구원의 실패 과정을 모두 보여줌, 오늘 우리
사회 : 오영근
찬송 : 100장(예수 앞에 나오면), 153장(임마누엘) / 59장(피난처 있으니)
본문 : 창세기 19장 1절 -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롯의 길을 가르쳐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아브라함의 길을 택하면 생명이요. 롯의 길을 택하면 멸망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사오니, 우리 자신 우리의 힘이 있는 한 아브라함의 길을 택하고 롯의 길을 단절하는 이 지혜를 배워서, 남은 시간은 얼마가 될는지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이 길에서 중단하지 아니하도록, 주님 우리의 약한 마음을 강하게 하시고, 부러져 있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행위를 고쳐, 주님 앞으로 달려가는 복된 길을 주님 원하시니, 이 길에서 게으르지 아니하도록 주님 우리 자신의 마음 마음을 친히 주장하시고, 우리 자신은 복 있는 귀가 되고 복 있는 눈이 되고 복 있는 우리 자신이 되어 질 수 있도록, 주님의 인도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걸어가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날이 저물 때” 해가 있으면 모든 것이 보이고 파악이 되고, 신앙의 사람의 파악은 말씀으로 옳고 바르게 보는 것이니, 해는 주님이며 타락 전의 해는 하나님입니다. 죄를 지음으로, 주님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접할 수가 없어, 늘 하나님이라 해도 주님이고 주님이라 해도 하나님이 있는 겁니다. 차를 몰고 서울까지 갔다. 바퀴 말이 없어도 바퀴 네 짝 붙이고 갔다. 그 뜻입니다. 차를 몰고 갔지 그 바퀴가 있냐없냐 소리는 없지 않느냐? 바퀴 없으면 못 갑니다. 죄 없을 때는 하나님과 우리, 그때도 성령과 성자는 계셨습니다. 죄 짓기 전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죄를 지은 이후부터는 주님 없이 하나님과의 연결은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라고 기록이 될 때, 이게 불택자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 처벌이 아니라, 믿는 사람을 인도하는 그런 기록일 때는 말하지 않아도 주님으로 다 되어지는 겁니다.
“날이 저물 때” 그 해가 있으면 모든 것이 밝혀집니다. 진리의 햇빛 진리의 불빛을 늘 기억하십시다. 근데 날이 저물면 해가 서산에 떨어져 버리면, 서산에 떨어지기 전부터 점점 날이 흐려집니다. 그리고 서산으로 떨어져 버리면 어두워집니다. 교회에 이건 말씀이 이렇다 이건 신앙의 상식이다. 이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회는 해가 중천에 뜬 교회입니다. 이게 죄인지 이게 의인지 이게 이건지 저건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왼쪽으로 가니까, 그걸 보니 왼쪽이 맞는 것 같고 근데 성경을 읽어보니 또 아닌 것 같고, 또 이번에는 한국의 모든 교회가 우측으로 돌아서면, 하도 많은 교회들이 위대하게 지도자들을 따라가니, 설마 뭐 그렇게까지 야 속았겠나 싶은데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이게 저물 때입니다.
진리가 어두워집니까? 진리는 진리인데. 교회의 눈이 어두워졌고 가정의 식구들의 신앙의 눈이 어두워졌고, 천하가 어둡고 가족이 다 어두워져도 나 하나의 심령이 주를 향하여 말씀에 밝으면, 그러면 나는 저물 때가 아닙니다. 하필 날이 저물었더라. 롯의 신앙이 후퇴를 하고 이 사람 지금, 이건지 저건지 지금 혼선이 되었다고 이렇게 읽힙니다. 아주 밤중은 아니니 뭐 죄가 좋은 거라고 떠들고 짓지는 않는 정도, 그렇다고 예전처럼 신앙과 양심이 살아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도, 나의 형편에 이것이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또 살펴보고 이렇게 따질 때가 해가 중천에 있을 때입니다. “날이 저물 때에” 하필 왔던 그날만 저문 것이 아니라, 지금 소돔의 문제는 원래 소돔의 문제인데, 롯이 들어간 후에도 소돔은 소돔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소돔에 천사가 들어온 겁니다. “날이 저물 때에” 롯의 신앙의 형편을 이렇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전부 새카매 져도 전부 불교 유교라도, 신풍교회 하나가 불을 높이 치켜들면, 70년 전에 손양원 목사님 계실 때 그분이 한분 밝혀버리니, 온 나라가 어두워져도 신풍의 밝은 빛 때문에, 어두운 데도 있고 밝은 데도 있지 전부가 새카매지지는 않았습니다. 전쟁 후에 전쟁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두려워 이랬다저랬다 이랬는데, 뭐 구사일생 도망가다가 산걸 신앙이 있다고 모두 떠들었는데, 손 목사님의 신풍 1번지의 이야기를 들은 분들이 그게 신앙이다. 우리는 어둡구나! 빛이 있으니 어두움이 어둠인 줄 압니다. 그 빛마저 어두워지면 뭐가 문제냐? 어두움이 어둠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큰 소리를 칩니다. 빛이 빛으로 빛을 비추고 있으면, 어두운 사람도 내가 이거는 어두운 거다. 그리고 다음에는 준비를 잘해야 되겠다.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날이 저물 때 그 두 천사가” 이때 이 시기가 그다음 “소돔에 이르니” 장소는 소돔이었습니다. 소돔은 13장에 세상으로 좋은 곳, 세상으로 좋다 적어 놓으면 안 봐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쁜 곳입니다. 죄악이 넘치는 곳. 아예 13장에 큰 죄인들 이었더라 이렇게까지 굳이 적어 놓았을 때는, 그러면 뒤를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살기 좋은 데더라. 물도 많고 풀도 많은 데더라. 사람들이 모여 큰 성을 이루고 잘 나가는 데더라.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응 하나님은 없구나! 뭐 하나님 없는 것이 등치가 좋으면 썩을, 썩을 육체가 많겠지 별 거 있겠습니까? 죄가 있으면 심판이 따라가는 건데 큰 죄인들 이었더라. 아 큰 심판이 있겠구나!
그 사이에 회개가 있었더라. 이런 말이 들리지 않으면 뭐 그냥 한 길입니다.
차가 낭떠러지를 향하여 돌진 했더라 여기까지만 적으면, 뒤는 적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낭떠러지 마지막에 차를 막아주는 가드레일이 튼튼하게 지키고 있었다면, 그러면 이제 낭떠러지를 향해서 달려갔는데, 죽어야 되는데 죽지 않았구나. 이런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다른 길을 갔더라. 다른 길을 간 이유는 세상 살기에 좋은 데였더라. 세상이 좋으니 큰 죄인이었더라. 큰 죄인이면 하나님의 큰 심판이 따르겠구나. 그리고 읽어가며 마지막 끝장나기 전 혹시 회개가 있는가? 이게 있는가? 봐야 되는데 그게 없이 지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심판이 예정된 곳을 소동이라 그럽니다.
여수신풍 우리를 기준으로 설교를 한다면, 여기는 하나님이 복주는 광야지만 신앙생활에 좋은 곳이다. 여기는 가나안. 우리하고 제일 먼 서울의 강남 저 분당은 소돔 한가운데다. 우리는 그렇게 떠들어도 됩니다. 그곳에 사는 분들은 그리 보이나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만 사모한다. 그리고 여수 너희들은 시골이라 살기가 어려우니, 죄가 적고 죄가 적으니 의가 많은 줄 착각을 하는데 그거 재봐야 된다. 하나님이 겉보고 심판 하냐? 속을 들여다보지. 그리고 다시 들여다보십시오. 대한민국에 제일 놀기 좋은 데를 여수라 그럽니다. 그걸 해양 엑스포라고 그럽니다. 멋모르고 그냥 해양 엑스포 티켓 10장씩 받아서 열 번 오고 가고 그렇게 활성화됐다고 매상 올려주고 그랬지요? 그리고 이제 중앙 돈 전국에 돈을 끌어오는 겁니다. 펴놓고 사기 칠 때 그러는 겁니다. 펴놓고 사기 치는 사람들.
여수 해양 엑스포에 뭐 6백만 명이 왔다갔다나? 동네마다 티켓을 열 번 주고 열한 번 주고 또 가시라 또 가시라. 공무원들 출근하면서 티켓 한 번 하고 가고 퇴근하면서 하고 가고 뭐, 다 그런 얘기 다 아시지요? 다 그러는 겁니다. 또 여수에서 엑스포 하면서 세상 속을 제대로 한번 들여다보는 거고, 그런 사람은 세상에 두 번 다시 휘청거리면 안 됩니다. 도둑질 횡령 다 해놓고 뭔 남한테다 대고 몰랐다고 뭐 큰소리 치고, 서울 강남 분당 우리가 보면 소돔보다 더한데 그러지만은, 그 안에서 더 위험하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는 광야에 성도가 있을 수 있고, 여수는 소외계층이라 신앙생활은 좋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데가 산 좋고 물 좋아 번 돈 가지고 이런 데 와서 흥청망청 돈 쓰고 가는 데라. 여수 해양 엑스포 좋게 해놓은 데마다 뭐, 밤 문화 이루 말도 못 할 겁니다. 그 구약은 소돔은 죄악의 도시, 빈 들판 가나안은 광야지만은 주의 은혜가 있는데, 이렇게 1학년들한테는 쉽게 눈에 보이도록 딱 구별을 해 주셨는데, 신약이 되면 세월도 지났고 우리에게 준 자유성으로 시험 문제를 좀 어렵게 냅니다.
죄악 한가운데 의를 만드는 더 나은 의인도 있고, 신앙에 좋은 여건 다 만들어 놨는데 이 안에 죄인 중의 괴수는,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신풍에 아이 가지면 돈 이만큼 주지요? 태어나면 이만큼 주지요? 막 두 배 세 배 섞어서 그냥 설교 때, 이렇게 유아가 되고 유치원 때 되면 이런 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것밖에 모르셨습니까? 이중으로 8살 때까지 이중으로 20만 원씩 매달 또 따로 나온 게 있습니다. 별별 게 소복합니다. 이걸 가지고 믿는 데만 열심을 내려면 정말 가나안보다 나은 가나안 될 거고, 이것까지 박박 긁어서 우리는 뭐 어렵습니다. 하면서, 속으로는 알짜배기 딱 챙겨 세상 속으로 다이빙하면, 서울 중앙의 돈보다 여수 바다가 돌아 댕기며 죄 지으려면 최고급 죄를 지을 겁니다.
역사의 최고의 놀이 문화는 바닷가입니다. 산꼭대기가 아니고 해양문화라 그럽니다. 여수 해양 엑스포, 어 최고급 죄악을 다 가져와가지고 여수 25만 명은 다 소돔 안에서 삼켜버리겠구나! 다 25만 명 죄 지으러 갈 때 혼자 쏙 빠져나와 달리기 하면, 전국에서는 몰라도 여수에서 신앙 1등 하는 것은 쉬울 겁니다. 이렇게 이럴 수 있고 저럴 수 있게 인도를 하셔야 진짜배기가 나오는 겁니다. 이번 집회 때 양면으로 인도하신다. 양면. 좌우. 알고 보니까 양면 좌우만이 아니라 전면 360도, 온전하고 거룩하여 조금 더 부족함이 없게 만드시는데, 가장 간단하게 말할 때 둘을 말합니다. 두 천사다. 아이 천사 하나만 보내도 뭐 충분한데 왜 둘을 보냈지요? 미개한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왜 천사가 둘일까? 그러고 나서 차분하게 성경을 읽어보시면, 무조건 둘은 아닌데 둘이 필요 없는데 왜 둘일까? 왜 둘일까 가 많이 나옵니다.
왜 둘일까?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70에 최고의 제자들을 사방에 보낼 때도 보면 둘씩, 둘씩 짜 매서 보냈습니다. 이게 기독교 참 사회주의입니다. 가짜배기 사회주의 망하는 사회주의 말고, 내가 형제의 티를 살펴 고쳐주고, 그걸 보며 내 속에 더 깊은 걸 나는 고치고 서로 서로 그러라고, 그래서 하나로 만들어도 되는 부부를 둘로 만들어 붙였고, 부모 세대만 가지고도 넉넉한데 부모 자녀를 엮어주며 아래위로, 아래위로 못 본 면을 살피게 했고, 천사는 하나만 가도 하나님은 전능이고 천사는 심부름을 잘하기 때문에 충분한데, 소돔에 보내는 천사는 둘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양면 역사구나. 두 천사의 둘이란 하나님의 양면의 역사구나. 천사는 존재적으로 우리가 볼 수가 없어 그렇지, 신령한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천사라 그럽니다. 천사의 천은 하늘의 ‘천’자입니다. 저 우주 공간 하늘 저거 말고 하나님의 세계, 신령한 세계, 시공의 물질을 초월한 세계, 간단하게 하늘의 세계 ‘천’ ‘사’자는 사신, 사절, 심부름꾼 ‘사’자입니다. 심부름꾼.
하나님이 하늘에서 육체를 벗어나고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참된 심부름을 시키는 하나님의 종. 이렇게 천사의 이름을 적어놔도, 돈 얼마 줍니까? 사고 날 때 천사가 와서 이렇게 딱 안아주고 몇 번 구출해 줍니까? 죽을 육체, 쓰고 없어질 돈, 이게 한 번 물질에 박혀 놓으면 뭐 죽어도 끝까지 그냥 돈, 돈. 하늘나라 가서도 돈 노래 부르면, 돈 좋아하는 마음과 돈 말하는 그 언어력을 쏙 빼고 보내기 때문에, 이 땅 위에 평생 돈 노래만 부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 천국은 가는데, 마음속에 돈이라는 생각이 움직여야 될 건데, 이게 안 움직이니 이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고장 난 기계처럼 멍하고. 뭐 설사 그런 마음을 먹는 다 쳐도 입이 따라가지를 않습니다. 생각이 가고 입으로 돈 소리를 해도 만물이 전부 외면해 버립니다. 오늘은 돈을 끌면 지가 오지 안 따라올 겁니까? 쓰면 쓰여 지는 거지. 금반지가 욕을 하든지 말든지 빼다가 그냥 팔면 돈이 들어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만 자유성을 주셨습니다. 생명이 없으면 최소한의 자유도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만 자유도 아니고, 우리만 자유도 아니고 천사만의 자유도 아니고, 하나님은 하나님 멋대로 천사는 천사 멋대로 우리는 우리 멋대로 입니다. 근데 하나님과 천사와 우리의 각각의 멋대로가 정확하게 일치가 되기 때문에, 자유와 자유의 충돌이 없습니다. 이 땅 위의 자유는, 여당이 3분의 2가 되니까 뭐 법 만들고 싶으면 욕을 하든지 말든지 법대로 다 만듭니다. 법대로 하는데 누가 욕을 합니까? 반대쪽에서는,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게 진정한 자유다. 두 자유가 떠들어봐야 끊임없이 그러고 있는 겁니다. 하늘의 자유는, 여당의 자유에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야당도 우리도 그걸 원했다고 난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마음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마음 천사의 마음, 저항이 제로 상태에서 영원히 돌아가는 겁니다.
저항이 제로라는 말은, 발전소에서 전기를 100개를 만들어 내면, 여수까지 보내는데 이게 전선을 타고 오다가 전선에 걸려서 몇 개를 떼놓고 오다보면, 한 80%나 오지 20은 중간에 다 새버립니다. 그런 걸 저항이라고 그럽니다. 100을 보냈는데 여기 온 것은 80입니다. 휘발유를 100리터 넣었는데, 실제 차가 움직이는 데는 한 90%는 쓰이고 10%는 엉뚱한 데 나가버립니다. 이런 걸 저항이라 그럽니다. 물질계 죄악 세상은 죄악의 저항이 있어, 자유가 별별 불편과 고장을 다 생기는데,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자유 우리의 자유는 정확하게 일치입니다. 천사야 원래 그렇고. 문제는 영계의 만물 피조물 끝없이 전부가 똑같습니다. 이러니 뭐 영계의 영혼이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부으면, 100% 우리를 통해 천군 천사를 통해, 이건 끝없는 피조물에게 쫙쫙 다 뻗어 나가니, 일점일획의 흐림도 없고 착오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다 들고 나면 더 자라고, 더 자라고 끊임없이 자라가는 그 완전의 세계가 하늘나라입니다.
중학교 아마 한 1학년 물리 정도에서 이런 게 나올 겁니다. 에너지를 넣었는데 그 실제 쓰다 보면 얼마가 중간에 새버린다. 이것도 영계를 연구하는데 이렇게 편리한 비유가 있겠습니까? 뭐 다 감사합니다. 천사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원래는 신령한 심부름을 한다. 그게 천사인데 딱 줄이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 아이 직접 하시지? 하나님이 직접 할 것 같으면 우리 만들 것도 없습니다. 안 만든다고 불편도 없습니다. 왜 만드셨느냐? 완전자니 우리를 만들어 우리를 완전 자처럼 길러보는 게 하나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이런 자유성으로 길러 가기 위해서 심부름꾼도 천사를 넣어, 하나님의 직접 역사보다는 천사를 통해 전달이 되어져야 우리가 자라 가는데 더 낫습니다.
이 신하들이 임금을 정말 존경하는지? 겉으로만 그러는지? 임금이 눈 뜨고 시키면 전부 꼼빡꼼빡 이렇게 심부름을 하는데, 어설픈 걸 암행어사로 보내가지고 심부름을 보내니까, 암행어사를 그냥 쥐 박아버리고 죽여 버리면, 이것들이 임금님께 100프로 충성을 한다고 말은 했지만은 속에는 벌 마음을 먹었구나! 충성심을 알기 위해서는, 임금이 직접 설치는 것보다는 심부름꾼을 보내보면 그거 속마음을 알아내는 게 있습니다. 이런 역할이 천사입니다. 근데 “두 천사가” 두 천사가 하나님의 역사가 양면으로 역사를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역사는 외부로도 있고, 천사의 역사는 외부적으로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런데 내부적으로는 하나님의 협력의 역사를 말합니다. 둘이라는 것은, 혼자 하면 다 간단한데 천사를 통하니 불편하시고, 천사도 하나만 보내놓으면 미가엘 천사 혼자 다 해버리면 좋은데, 천사도 또 여러 종류입니다. 아이 쉽게 하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나? 쉽게야 뭐 두 발로 걸어댕기면 가장 쉽습니다. 차살 돈 필요 없고, 교통신호 필요 없고, 사고 날 필요 없고, 목표가 다르고 좀 크다 보니까 바퀴가 있고 엔진이 있고, 그러다 보니 뭐 교통법이 있고 사고도 나고 보험을 넣고 별별 게 복잡해집니다.
아이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은데? 남자 그것들 떼 내고 여반들 혼자 살아보십시오! 더 편하지. 남자야 뭐 여자 없으면 빨래 때문에 불편했는데, 지금은 스위치 누르면 말 한 마디 하면 자동으로 다 돌아갑니다. 이제는 여자 없어도 좋은 남자 시대가 또 돼버렸습니다. 편한 걸로만 보면, 먹고 살기 어려울 때는 돈 벌어주는 머슴이 필요했고, 이놈의 머슴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는지, 빨래 해줘야 되지, 돈 벌었다고 막 남자 노릇 하면서 성을 내면 그것도 다 슬슬 기고 또 들어줘야지, 그러다가 이제 먹고 살만하니까, 이제 여자 힘든 일을 다 해결해 주는 기계가 나와서, 부엌에 설거지에 뭐 오만 게 다 좋아져버렸습니다. 여자는 살판났고 이걸 사다줘야 되는 남자만 죽어 나가는데, 오래 갈 줄 알았더니만 이 편의시설이 더 발전을 하고 나니까, 뭐 같은 여자들보다 돈만 있으면 더 맛있는 요리, 더 편리한 세상 여자가 할 거 돈과 기계가 다 해줍니다. 남자도 여자 필요 없습니다. 인간과 인격과 사랑과 모든 자유적인 거는 다 빼버리고, 기계적인 고장 편의만 생각하면 기계들이, 인간 네 것들 다 없어지면 우리는 더 좋겠다. 그렇게까지 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내막을 지금 다 설명하는 겁니다. 너 없으면 더 편하다 아이 없으면 우리 편했다. 그 무식한 소리 하지 마시고 그러면 하나님은 네놈 없었으면 내가 더 편했다. 그 소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내 뒤 꼭지에다대고 너 없었으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꼴도 없었다. 그런 말이 떨어지게 하지 않으려면,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복합니다. 그것만 자꾸 연구하시고 아 당신이 있어서 내가 편리했습니다. 또 부모가 되었으면, 너희들 커나가는 게 내 기쁨이었고 삶의 목적이었다. 기쁨이었다. 말이라도 그리 하시고. 아이들은 알고 보니 우리 기르느라고 애만 먹었던데요? 그러면, 아니다. 그게 바로 인생의 재미란다. 이렇게 주고받고 주고받기만 하면 그냥 남을 배려하는 신사들의 그 다 인사말이고, 위에 계신 하나님을 눈치 보고 의식을 하려면, 네가 애를 먹여도 그걸 또 해결하면서 아이 기르는 재미를 보고 나는 즐거웠다. 행복했다. 하나님이 나를 쳐다보는 걸 보면서 마음 자세와 행동이 이래나가면 하나님께서, 저거한테는 주는 것마다 전부 저렇게 감사를 하니 저기다 대고 다 쏟아 부으라 이리되고, 이 말 저 말 삐딱하면 저거한테 준 거 천사를 보내서 다 걷어와 버리면, 은혜로운 걸 거둬오면 나머지는 유황 불비만 남게 됩니다. 그게 소돔이고 그게 바로 롯입니다. 이렇게까지 신앙이 후퇴된 상태가 저물 때입니다. 그리고 희망 없어 죄를 해결하러 온 장소가 소돔입니다.
저물 때 소돔을 찾은 천사의 이야기는 삼천 년도 더 됐습니다. 근데 오늘은 내 마음이, 오늘은 나의 한 주간이 소돔 성 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이 소돔성의 나를 고쳐서 자꾸 회개해서 교회가 개척되고 좀 이렇게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들어갈 때는 교인이 많았는데 솔솔 다 줄어들어서 하나만 남았는데, 그 하나의 믿음조차 소망조차 후퇴를 해서 나도 적당할 때 발 뺄까? 이리 되면 이제 성문에 앉아 있는 롯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게 성과 성문의 해석입니다. “날이 저물 때에 두 천사가” 소돔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롯은 소돔 안에 사는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문 밖에 나와서 앉아 있었더라. 성문 밖에, 성문에 앉았더라. 천사란 하나님의 역사라 그랬습니다. 두 천사의 둘은 성경에 양면의 역사, 둘의 동행의 역사, 내부적으로는 서로의 협력의 역사. 부부도 목회자와 교인도 공회의 교회와 교회들도. 우리 공회 교회는 적지만 그래도 두 개는 넘는데, 두 개는 넘지만은 크게 말하면 협력, 어떤 면으로든지 양면의 협력, 그리 되면 결과적으로 온전해집니다.
많은 것을 담아가지고 “두 천사가” 그 찾아왔을 때 롯의 행동을 보겠습니다. “앉았다가” 뭐 피곤하니까 좀 앉아 있을 수 있지. 섰다가 앉았다가 하필 앉아 있을 때 천사가 온 거지. 이렇게 성경을 우연의 일치로만 적을 분들은 그래 적습니다. 우연의 일치로. 그 성경을 우연히 일치로 자꾸 연구하다 보면, 진화론을 제일 먼저 세계에 알린 사람? 학생들만? 두 글자 이름 다 같이 누구라고요? 다윈? 영국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도 우연일치 저것도 우연일치, 뭐 하다 보니까 이리저리 뭐 환경 적응이 된 거지. 하나님이 있어? 아니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어? 무식하게. 자연을 관찰하고 따져봐라. 우연히 이러고 저러다가 그냥, 그냥 좋아진 거지. 원숭이가 원숭이로 사는 것과 사람으로 사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냐? 사람으로 사는 게 낫지. 그 많은 원숭이 중에 한 마리가 사람처럼 오늘의 사람처럼 해보니까 훨씬 나으니까, 쭉쭉 따라가다가 그냥 그것들은 적응해 살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신풍교회 신앙 식으로, 뭐 어지간하면 우리 옛날식으로 하겠다고 버틴 것들은 전부 도태 되어 버렸지. 철장 속에 원숭이 구경시키든지 아니면 도태되든지, 그 원숭이 중에 똑똑한 것들이 창조적으로 그냥 개척해 나갔는데, 저것들이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고, 우연의 일치로 그리 되고 그리 되고 그리 된 거다. 그리고 성경을 그리 읽어보면 전부다 우연의 일치입니다.
우리는 읽는 방식이 이렇습니다.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더라” 아이 서기도 하고 앉아도 있고 눕기도 했겠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인데 하나님이 주인인데, 또 하나님이 예정을 한다고 그거는 기록이 돼 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주저앉히면 제까짓 게 앉는 것이고 그리고 기록을 할 때는, 앉았을 때 천사가 보이게 하고 그다음 그걸 성경에 기록했으니, 이건 하나님이 의도를 하고 이렇게 만들고 기록을 했으니, 우리한테 뭘 알아 라고 지금 원하시는 것인가?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여자는 안 보입니다. 18장에 아브라함을 찾아간 천사, 아브라함과 대화를 했는데 천사가 아브라함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근데 바로 옆에 사라가 있습니다. 사라가. 한번 볼까요? 18장 1절 “마므레상수리 수풀” 소돔 성안과 이 들판은 반대입니다.
그 다음 “오정 즈음에” 오정에, 저쪽은 저물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디 있었지요? 장막, 살고 있는 천막 문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맞이합니다. 천막, 장막, 천막, 텐트, 문 쪽에 있다가 천사를 영접해야 되니까 안에 있는 사라에게 얼른 준비하시라. 바로바로 딱딱 맞아 떨어지는데 보니까, 아브라함은 사라와 늘 보이는데 들리는데, 바로바로 연락이 이렇게 동행이 되고 있습니다. 롯은 천사와 뭔 긴긴 얘기를 다 해봐야, 지금 아내는 뭐 뒷집에 갔는지 앞집에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 생활공간 따로, 여자 철학 취미생활 따로, 서로 가끔 한 번씩 전화하면 요즘, 아내한테 요즘 어디 다니더라? 아 그렇지 참 지난번에 말했는데. 또 남편한테는 사업 때문에 요즘 어디 가 계시더라? 미국? 영국? 달나라? 이 정도가 지성입니까? 발전입니까? 망할 놈의 집구석입니까?
어떻게 부부가 미련하게 그냥 늘 붙어 있으면 짜증도 안 나냐? 화딱지도 안 나냐? 부부 아니라는 그 말입니다. 부부 아니라. 서로 가끔 보고 싶을 때나 만나지. 호랑이는 백리 길을 돌아다닌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리. 반드시 혼자입니다. 새끼 놓을 때만 한 번 잠깐 만나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철학이 다른데, 아 그러니까 천하를 움켜쥔 호랑이지, 제왕이지. 임금님이 왕비하고 손잡고 팔짱끼고 돌아 댕깁니까? 천하를 지도해야 되는데, 왕비는 저 경희궁 저쪽 골짜기에 집하나 져주고 임금님은 이쪽에 경복궁이 있고, 얼굴 보고 싶으면 심부름 군한테 부르면, 그래도 옷 입는 절차 있고 다 하던 일이 있어서, 예 내년 이맘때 쯤 가보겠습니다. 이제 이럴수록 좋은 나라랍니다. 어떻게 부부가 둘이 손잡고 돌아다닐까? 에덴동산 안에서 아담하와 탈날 때부터, 뱀이 하와를 데리고 이리저리 지금 다 홀까 먹는데, 아담은 흔적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니까 바로 옆에 사라가 맴돌고 있습니다. 뭐 음식을 차리는 것 때문에 사라를 불렀고 사라가 그냥 요리를 했겠지. 요리를 했겠지.
9절입니다. 천사들이 대접을 받고 천사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장막에 있나이다” 아 크게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 장막도 여기 있고 저기 있고 뭐 그럴 수 있겠구나. 어쨌든 “기한이 이를 때에” 네게로 돌아온다. 기한이 이를 때 정녕 너한테 돌아온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은 아무리 훌륭해도 계통을 이어가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아들, 신약의 자녀, 신앙으로 말하면 신앙의 식구가 없다는 말은, 오늘의 자기는 있고 내일의 자기는 없다는 말입니다. 평생 신앙에도 자기의 신앙으로 자기의 신앙을 뒤따르는 신앙의 식구가 없으면, 오늘의 자기만 있고 내일의 자기는 처형해버린 사람입니다. 처형. 그냥 없다하면 실감이 안 나니까. 자기가 걸어가는 길이 복된 길이고 영광의 길이면, 그 복된 길 영광의 길을 이어오도록 자기의 훗날을 만들어야 되는 거는, 그건 상식입니다.
한식당하는 요리사가가 한식에 대해서, 돈 벌이가 목적이 아니라 나는 한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그러면 자자손손 한식당을 이어나가게 해야 그게 철학이지. 자기는 한식 싫어하고 자손들에게는, 아이 식당하지 마라 귀찮다. 목수해라. 목수는 공무원 해라. 공무원은 더러워서 공무원 하기 싫다. 자영업 하거라. 한 번 해먹고 뺑 돌고 한 번 해먹고 뺑 돌고, 우리나라의 장점은 많은데 우리나라의 잘 모르는 크고 큰 단점이, 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자식한테는 너는 이 길 걷지 말라고 그럽니다. 뭐 아버지 직업 아니고는 다 좋은 겁니까? 철대기가 없어 그렇습니다. 어떤 직업도 그 직업에 남모르는 고난 없는 직업은 없다. 왕부터 신하까지. 종류가 달라 그렇지. 그 어딘들 어려움 없고 고통 없고 원망 없고 불편 없는 데는 없다.
모르는 사람은 직업을 바꾸고 아는 사람은, 이왕 가진 직업의 장단점을 파악했으니 독소는 빼버리고 장점을 살리면, 예방주사도 만들고 남몰래 좋은 게 나옵니다. 이렇게 자기 생애를 바쳐 귀한 보배를 다듬었으면 이걸 남 줘야 되겠습니까? 자기 아들한테 줘야 되겠습니까? 아들한테 줘야지.
세습 욕하는 사회는 어느 사회든지 무식하고 망할 사회. 그 세습을 잘하면 아름다운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알면 생명의 원리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 아브라함을 찾으니까 항상 사라가 옆에 붙어 있습니다. 손님 오셔서 접대하고 어디 갔는 줄 알았더니 만은,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시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니 손님과 지금 바깥어른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여자가 장막 문 뒤에서 천막 뒤에서 커튼 뒤에서 딱 듣고 있어? 남편 아는 걸 알아야 여자가 도와주지요. 천사처럼 왔는데 이게 귀신이면 나가가지고 떼 말려야지요. 남자 말하는데 여자가 끼어들어? 여자가 끼어들어 죄를 짓고 잘못한 것은 안 됩니다. 남자가 완전 자가 아니니 멍청한 것이 친구 의리 따지고 도장 찍어대면, 여자가 들어 가가지고 얼른 떼놔야지 그러라고 만들어놨는데. 아담을 만들 때 아담만 만들었습니까? 하와를 만들면서 이게 아담이 죄는 없고 좋은데 죄는 없는데 이것이 탈나기 좋으니까, 여자 네가 옆에 붙어서 보필을 하라고 그래서 배필, 돕는 자라. 이렇게 갖다 붙여놨습니다. 알아듣기 좋게 심부름 하거라. 조수 하거라. 해놨는데 바로 보면 조수가 아니라 감독이고 선생입니다.
자기 남자 지가 들여다보고 앉아가지고, 거꾸로 가는지 옳게 가는지 봐야 되는데 뭐 남자가 뭐 자존심이 있을 것이고, 남자가 그래도 어디 가면 한 소리 하는 것이고 지가 알아서 할 테니까 떼놓고, 나는 남자를 믿습니다. 믿어요? 하나님 말고 인간은 인간을 믿는 게 아닙니다. 내가 나를 믿어서도 안 됩니다. 건방지게. 자기가 자기를 믿어요? 영원불변의 하나님만 자기중심 자기를 믿을 수 있고, 우리가 믿을 분은 하나님은 믿고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부모님께 있는 힘은 다하지만은, 부모님을 하나님처럼 죄를 안 짓는다 온전하다 무조건 따라가면 된다? 아닙니다. 남편도 마찬가지. 이제 뭐 자식들이 다 자랐으니 저것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뭐. 믿고 그냥 맡깁니다. 그렇게 자율성을 기르고 책임을 얹어서 길러 가기 위해서, 나는 너를 믿는다. 알아서 하거라. 말은 해도 속으로는, 부뚜막에 애지 그게 뭔 어른입니까? 실패를 해본 만큼 철이 드는데, 길 가는 방법입니다.
아브라함을 찾아보면 사라가 바로 옆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같이 있든지 아니면 맴돌고 있든지. 그러니 아브라함을 따라 사라가 닮고, 아브라함의 실수가 있을 때는 사라가 개입해가지고 그냥 전부 바로 잡아 버렸습니다. 이 아브라함이 또 남자라고 그냥 여자 눈이 떨어져가지고, 지 눈에 좋으니까 몸종을 갖다 붙여줬는데 거기에 팔려서 그냥, 그쪽으로 줄줄 따라갑니다. 그 사라가 바로 개입해가지고, 하갈과 하갈이 낳아놓은 이스마엘 당장 쫓아 내 버렸습니다. 집 안에서 굶어죽으면 문제가 되니까, 좀 며칠 가다가 굶어 죽을 만큼 쬐끔 떼 주고 갖다 내버렸습니다. 이런 걸 공자님이 봤으면 아 여자가 질투가 있구나. 남자가 여자를 몇 데리고 살든 누구를 좋아하든 여자는 남자 좋은 대로 밀어줘야 되는데, 저것이 시기 질투심이 강하구나. 공자는 그리 가르칠 겁니다. 그 공자가 가르친 걸 끝까지 버티다가 다 굶어 죽을 뻔한 나라가 중국입니다. 천하의 아브라함이라도 아브라함의 단점이 발견되고, 이 단점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통이 내려가다가 옆으로 셀 때는, 그 핸들 때 잘 못 잡았습니다. 그리 가면 엉뚱한 내려갑니다. 이쪽이 바른 길입니다. 이게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낼 때의 이게 중심이고 방향입니다. 그러느라고 뭔 조금 떼 줬니, 뭐 싸웠니 쫓아냈니 구박을 했니 말았니 이런 것은, 가르쳐 가는 과정에 흔하고 있는 그런 일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이야기를 하는데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내가 늙었고 주인도 늙었으니,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인이라 그랬습니다. 주인을 줄이면 주님. 주. 주인도 늙었으니 뭔 아이가 있을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왜 아들을 낳으리오. 의심하느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 아닌데요. 웃지 않았는데요. 펄쩍 뛰었습니다. 그건 신앙의 밝은 앞날의 작은 흠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옆에 붙어 있으니 아브라함이 지도가 되기 때문에, 사라가 뒤흔들려 봐야 아브라함이 굳건하면 붙들리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와가 휘청하니까 아담이 따라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관계는 다릅니다.
여기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났더라” 앉았다가.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걸어가기 위해서 쉬고, 또 쉬고 나면 벌떡 일어나서 씩씩하고 용감하게 걸어 다니는, 그런 실행에 필요한 휴식이었느냐? 아내도 보이지 않고 딸들 어디 갔는지 없고, 나중에 이 소돔이 유황불비에 난리가 난다고 그러니까, 사위 둘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이런 걸 보니 딸 사위 아내 전부다 신앙으로 멀어지고 없어지고, 어디 말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지. 소돔 안에서 전도를 했든지 뭐 사업을 했든지, 또 아니면 사람을 갖다가 기르든지 이렇게 바빠야 될 건데, 세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다 떨어져 나가고 혼자 앉아 있었더라. 세상 사업으로도 보니까 포기한 모양입니다. 신앙으로도 더 이상 전도할 힘도 없고. 뒤에 보면 모두 뭐 롯 이건 그냥 아무 짝도 아닙니다. 딸 둘을 내던져준다 그래도 그거 싫고 너부터 그냥 요절을 낸다고 달려드는 걸 보니까, 사업도 인심도 모든 면 다 버렸고 뭐 신앙 말할 것도 없고. 앉았다가 신앙으로 주저앉은 상태입니다. 앉았다가 포기 정도 하면 됩니다. 자포자기입니다. 그런데 영 신앙이 죽지는 않았기 때문에 천사를 알아는 봤습니다.
주일날은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 알기는 압니다. 근데 어떡합니까? 뭐 얽히고 설켜서 자기도 모르게 몸은 자꾸 그리 갑니다. 근데 아예 주일날 시내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아 진작 이렇게 좋은 복이 있는데 이제 이 정도 되면 죽은 신앙인데, 뒷골목으로 슬슬 피해 다니는 거 보니까 아직은 신앙의 양심이 찔러대니까 양심은 살아있습니다. 근데 이제 술독에 빠져서 끊지를 못합니다. 뭐 노름도 그런 게 있고 죄악에 물들 때 과정입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죄를 지어도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으면 신앙으로 죽었다. 그렇다고 신앙으로 열심이 있으면 살았는데 그건 아니다. 그 가운데 마음의 고통은 있고 몸은 따라가지 않고, 아 예전에 내가 반사도 했는데 주일날이 되면 6시부터 집집마다 돌아 댕겼고 막, 설교를 했고 내가 그냥 이랬고 저랬고 이랬고 저랬고, 그럼 지금도 그리 하시지요. 아이들이 없는데? 아이들이 없으면 여덟시 반에 나와서 연경을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을 주지 않으시니 반사는 못하지만은 저는 언제든지 주일 8시 반에 별관에서, 기회만 주면 반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라도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래야 되는 걸 들으니 알긴 알겠습니다. 근데 이제 일어나려니까 10시 예배도 뭐 시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몸이 얼마나 천근만근. 돈 벌러 갈 때는 뭐 제비처럼 날아가고 죄 지으러 갈 때는 뭐 빛의 속도로 가다가, 옳은 길 의의 길은 저게 맞기는 맞는데 몸이 따라가지 않고, 그냥 천근만근이 돼가지고 푹 쳐져버립니다. 이렇게 주저앉은 상태, 그 상태가 뭐라고요?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천사를 알아보기는 본 걸 보니까 여기 롯이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그들을 눈으로 본 겁니다. 눈으로 보고 알아봤습니다. 알아보고. 알아보고 그래도 생명은 있습니다. 신앙의 생명. 그런데 이 신앙의 생명이 꺼져가고 후퇴를 하기 때문에 뒤에 문제가 생깁니다.
“천사를 보고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성경에 일어나고 앉는 걸 봐보면, 어른 앞에 지도자 앞에 존중할 때는 일어섭니다. 항상 보면 일어나 존중이 담겨 있습니다. 영접하더라. 그 모셔드리더라.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과 앞날이 있습니다. 이럴 때가 모시는 겁니다. “일어나 영접하고” 영접해놓고 자기는 땅에 엎드립니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더 내려갈 수도 있지만, 그건 특별한 거 아니고 생활 속에 땅에 엎드릴 때 자기를 가장 낮추는 겁니다. 얼마나 낮추느냐? 당신은 높습니다. 저는 낮습니다. 당신의 인격 당신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깝습니다. 저는 멉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도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면, 어른 앞에 고개를 빳빳하게 들 수도 있습니다. 그 어느 신학교를 가니까 손꼽는 국가의 손꼽는 세계적인 지도자인데, 80에 가까운 양반을 스무 살짜리가 어깨에 턱 얹어놓고, 스무 살이 80 총장 어깨에 손을 턱 대고 형제요 그러면서 두드리고 앉아서, 참 이놈 나라는 어지간히 예절도 없고 참 막간다 싶었는데, 속의 존경의 마음은 우리보다 더 합니다. 그 뭐 문화가 다르니까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땅에 엎드려” 문화 차이가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과 이렇게 멉니다. 저는 죄악 세상에 이렇게 뒹구는 인간입니다. “땅에 엎드려” 자기를 낮췄습니다. 그게 겸손입니다. 정확한 자기의 위치를 아는 겁니다.
“절하고” 절하여 존재의 차이입니다. 성경의 절은 일반적인 절도 있지만은, 국기에 대하여 절, 배례는 안 한다. 국기는 우리가 달고 있는 그림인데, 거기다가 대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우리 잘 봐주시고 저를 지켜주시고, 이게 일제 때 내려온 그 영향 때문에 예전에는 다 끊었습니다. 지금은 태극기를 가지고 그냥 요거는 없애고 불태워야 된다고 오독오독 찢고 난리가 난 세상이라. 지금 국기에 대한 절은 죄다 제가 그러지 않습니다. 일본 사람은 일장기가 나를 지켜 적과 싸우고 내가 총알을 피해가게 한다. 일장기는 신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절을 해라. 그건 아예 절에 석가 부처한테 절하는 것과 같아서, 그건 목숨 걸고 믿는 사람은 못한다. 해방 뒤에 태극기가 이번에 일장기 대신이다. 그래서 태극기 절하는 걸 무조건 싸우고 던지지도 못한다. 이랬습니다. 공회는.
그런데 이제 세월이 지나 민주화가 되고 나니까 태극기를 불을 지르면서, 이놈의 태극기 때문에 수령님이 남한을 점령 못해서 우리가 굶어 죽지 않고 있으니, 이놈의 태극기를 없애자. 온 나라가 태극기 없애는 운동을 지금 한 87년부터 했으니까 근 30년이 넘습니다. 아무리 없애려 그래도 이놈의 태극기가 잘 안 없어지니까 이제, 한반도 국기 해가지고 태극기를 없애는 운동 대신, 대신 바꿔가지고 이 푸른색에 한반도 국기가 더 좋지 않냐 이러고 앉았습니다. 그 태극기 두르고 전쟁했던 할아버지 다 역적으로 처형을 하지. 뭔 놈의 돌아서면 다 까먹는 조삼모사의 뭔 원숭이 꼴인지? 우린 그런 세상 편드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얘기 아니고 “절하더라” 사람이 머리와 몸 이걸 숙일 때는, 이거는 성경이나 자연이나 역사나 세계 어느 나라나 이거는 본능적으로, 또 성경이 규정해 놓기를 절이란 머리 몸을 숙일 때만 절입니다. 그 절은 사람이 존경을 표하는 사람한테 하지. 절을 못 알아듣고 못 받는 돌한테가 대고 절을 할 때는, 돌을 사람 위에 신으로 올려놓은 대접이 되는 겁니다. 그게 죄가 되는 겁니다. 돌이 죄가 아니라 돌한테 절을 하는 그 행위가 죄입니다.
태극기는 뭐 우리나라에 그냥 쓰레기 뭔 걸레가 돼 있으니까, 우리나라 절반에게 걸레가 돼 있으니까, 그게 이제 상식이 돼 있으니까 요즘 태극기에 총을 들고 받들어 총. 또 주목 심지어 이렇게 모자에 경례하면서, 나는 우리나라를 하나님이 주셨으니 사랑하고 이 나라에서 귀하게 앞날을 열어 나가야 되겠다. 그 뜻으로 내가 속한 우리나라 우리를 존경하고 마음을 다지는 표시는 상관없습니다. 그거는 양심껏 알아서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 천사를 향하여 땅에 엎드려 절을 한 것은, 내가 신앙의 아브라함에 동지였는데 후퇴하고 돈에 팔려 신앙 다 팔아먹고, 신앙에 자라야 되는 식구들 다 세상사람 돼 버렸고, 소돔 안에 내 말 듣는 사람 하나도 없고, 사업도 인간관계도 사회도 심지어 나의 신앙까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다. 땅에 엎드리는 겁니다. 근데 오신 천사를 딱 보니까 사람처럼 보이는데, 하나님이 붙들고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 죽을 죄인입니다.
이게 망할 소돔에서 살아나는 방법이고, 이게 롯 하나 때문에 몇 명 살아나는 길이었습니다. 죄는 지을 수 있고 신앙은 후퇴할 수 있으나, 아무리 내려앉아도 천사를 알아볼 정도는 돼야 됩니다. 이건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다. 이건 하나님이 기회를 주는 역사다. 이거는 심판의 역사다. 이것까지 보이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전부 끝이 납니다. “엎드려 절하여” 그다음 집으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집으로. 자기 생활 안으로 자기 인격 안으로. 이게 롯에게 준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준 롯의 기회는, 천사를 모시고 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기회까지지, 아브라함의 때문에 죄인 롯이 구원 받은 거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롯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준 겁니다. 그 기회까지 그 기회까지 놓치면 살았으나 죽은 것만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적으로 좀 깊고 어려운 문제. 오늘 우리와 자기 가정과 자기를 지금 어느 지경까지 와있는지, 어느 정도 희망이 있는지, 어느 정도 빨리 돌아서야 되는지를, 이렇게 좌표를 찍을 만한 말씀드립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소망의 생명의 말씀으로 늘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소망의 생명은 주의 인도를 따라 어디든지 순종할 때만 해당되는 것이므로, 소망의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고 이탈될까 조심하며 두려워하는, 이 좋은 자세 복된 마음을 늘 가지는 저희들이 되어, 아브라함이 걸어간 이 길이 우리 앞에 있는데, 롯의 길로 주저앉았다가 소돔이 되고 소돔에서까지 피하여, 소돔에서 끝나는 것보다 더 참혹한 앞날이 이어지는 이런 우리가 되지 않도록, 양극단의 세상을 혼재시켜 말세 마지막 우리를 시험하시고 길러 가시는 주님. 삼가 조심하고 세상 어떤 깊은 속에서도 어두움으로 더욱 빛을 사모하고, 빛으로 사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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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5.8주전 창19:1 구원의 성, 멸망의 성 총공신풍
■ 본문
1. 시기
날이 : (해)가 있을 때 악4:6, 해가 기울고
(알) 수 있을 때
(진리)가 있을 때 마25:1~ 밤중에
저물 : (어두)워 질 때 요13:30 곧 나가니 밤이러라
때 : (시기)
2. 장소
소돔 : (세상)으로 좋은 곳
(죄악)이 넘치는 곳
(심판)이 예정 된 곳
성문 : (출입)하는 곳
먼저 (접)하는 곳
3. 인물
롯 : 신앙의 (후퇴)
(양심)이 역사
천사 : 하나님의 (역사)
두 : 의미, (양면)의 역사
외부, (동행)의 역사
내부, (협력)의 역사
결과적으로, (온전)
4. 행동
앉았다가 : (포기) 벧후2:8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보고 : (알아) 보고
일어나 : (존중)
영접 : (모심)
엎드려 : (낮춤)
절하여 : (존재) 차이
집으로 : (생활) 안으로
5. 하나님의 역사
거리에서 : 소돔 사람 (모두)에게
경야하리라 : (죄악) 행위를 확인
■ 소돔 백성
1. 모두가
사방 : (별별) 형편
노소 : (경험) 유무
2. 상관하리라
상대 : (처리)하리라
차지 : 죄악으로 (삼킬) 것
3. 롯에게
해하리라 : (침해)
밀치며 : (협박)
문을 깨치려 : (침해)
■ 구원의 기회
1. 항상 (두) 길
2. 오직 (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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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요약-khr)
정확하게, 오늘 소돔같은 세상 속 우리의 모습
1. 아브라함과 결별
2. 자신만만 소돔으로 들어가는 롯의 심리, 목적, 포부
3. 그러나 하나님 떠난 선택, 소돔에서의 완전 실패
4. 이도저도 안되도록 홀로 남아 있는 처량한 롯의 자포자기
5. 그래도 신앙 양심은 살아 있어 한없이 괴로우나
6. 끊고 결단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여전히 몸이 무거운 상태
7.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소돔에서 구원을 받으나
8. 끝까지 정리하지 못함으로
9. 두 딸로 천추에 한이 남는 건설 구원 실패의 대명사가 되었음
오늘 우리의 모습, 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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