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5.8 창19:1 나뉜 뒤 18장 아브라함 19장 롯을 비교. 심령의 상태 * 특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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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5.8 창19:1 나뉜 뒤 18장 아브라함 19장 롯을 비교. 심령의 상태 * 특송

서기 0 277 2022.05.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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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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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08 주전
 
제목 : 나뉜 뒤 18장 아브라함 19장 롯을 비교. 심령의 상태 * 특송
 
사회 : 오영근
찬송 : 110장 (아침 해가 돋을 때), 132장(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본문 : 창세기 19장 1절 -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완전자이시며 전지 전능자이시며, 우리를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천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 위에 오시기까지, 또한 우리에게 크신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이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 자신이 어려워도 걷기 힘들어도 앞서가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고 우리의 양식이 되어 그 힘과 그 양식을 먹고 자랄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주님과의 관계가 비뚤어지지 아니하도록 항상 인도하여 주사,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의 길과 아벨의 길이 항상 대립되고, 그 요소로 말미암아 늘 가인의 요소가 더 힘 있고 더 우리와 가까워져, 생명으로 인도하는 아벨의 길을 멀리하고 자기를 위하여 사는, 이러한 저희들의 참 안타까움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친히 주장하사, 어두울수록 힘들수록 주님 한 분의 뜻을 따라 나아가는 복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항상 지켜주시고, 주님의 인도 따라 걸어갈 수 있는 욕망을 주사, 주님으로 인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가는 복된 저희들이 다 되어 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예배 순서 순서마다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사 우리 속에 모든 가인의 요소를 잘라버리고, 힘이 들어도 아벨의 요소를 걸어가는 이 시간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일날은, 2009년에 어느 다른 교단 교회를 한 번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주일날은 멀리 가는 길에 휴게소와 같다. 갈 길이 바쁘다고 기름 채우지 않고 물 음식 준비하지 않으면, 길 가다가 큰일이 난다는 말씀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쉽고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딱 맞는 좋은 그런 참 말씀이다 싶었습니다. 살기가 바빠, 살기 바쁘다 말은 놀기도 바쁘고 또 공부도 바쁘고 돈 벌 일도 바쁘고, 만사 모두들 좋아서 바쁘고 어려워 바쁘다 보니까, 눈앞에 바쁘다 보면 준비할 일을 깜빡 잊어 버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급해야 정신을 차리지. 좋을 때 넉넉할 때 휴게소 들러 물, 기름 모든 것을 잘 준비하고 잘 처리를 하면, 멀리 가면서도 만사 좋게 가게 됩니다.
 
학생으로 말하면 방학을 그렇게 잘 쓰는 사람, 주말을 잘 쓰는 학생, 꼭 같이 노력하고 가면서도 굉장히 차이가 많을 겁니다. 건강은 40세가 되면 2년마다 한 번씩 국가에서 공짜로 전부를 갖다가 조사를 해줍니다. 미리 조금 살피면 좋을 걸 뒤에 탈나면 너무 늦습니다. 주일은 근본적으로 그것과 다르지만은 굳이 예를 들면, 아무리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공부에 주말이 있고 수업에 휴식 시간이 있고 노동의 휴일이 있는데, 주일이야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나 그러다 보면, 여기 19장 1절에 롯이라는 실패자처럼, 그 저물 때에 할 일은 없이 그 우두커니 성문에 앉아 있는 이런 실패자, 이런 낙오자 이런 낙심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세끼 밥 먹고 살면 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두지 않으시고 이 소돔을 청소하고, 소돔을 청소할 때라도 완전 바뀌면 그날부터 새 출발을 할 수가 있는데, 소돔을 유항불비로 청소하는 걸 보고도, 구원은 받았으나 과거의 자세 신앙을 바꾸지 않으니까, 빠져나오고 살아 나옴으로 더 큰 불행을 만나게 되어 집니다.
 
금 번 집회의 주제로 공부했던 가인의 길이 정리될 때, 홍수 심판으로 정리했고 여기까지만 살폈습니다. 노아 때문에 셈, 함, 야벳은 따라가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재수가 좋고 줄을 잘 서면, 부모 때문에 세상 쉽게 사는 친구들 주변에 많고 뉴스에 많지요? 노아의 셋 아들들도 아버지 잘 만나가지고, 그냥 천하가 멸망 받는데 구원받은 셈, 함, 야벳이 되었습니다. 천하가 세 쪼가리로 자기들 것이 되었는데 그들이 하나 잊은 것은, 노아 이전의 모든 시대의 멸망에서 노아가 구원받을 때, 세 아들들이 도움 받은 것은 아버지는 120년 다 준비를 했고, 아들들은 뒤늦게 합류하면서 순종하고 따라가다 보니까 노아와 같은 기회를 받았습니다. 노아는 1차 합격이나 아들들은 홍수에 2차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1차 합격으로 평생 합격할 수가 있는데 방심하다가 주저앉았다면, 셋 아들들은 아버지 뒤따라가면서 1차 시험은 패스를 했습니다. 그다음 아버지 없는 시험이 다시 세 아들들에게 닥쳐졌고, 셈은 100점 합격, 막내는 절반 합격, 실은 절반이 아닙니다. 세상은 합격 신앙은 불합격, 셈은 영육 간에 합격, 둘째 아들 함은 영육에 다 실패해 버렸습니다.
 
차라리 함이 그냥 홍수 때 죽었더라면, 함이 홍수에 살아남아 자기 시험을 새로 만날 때에 실패함으로, 함의 자손은 끝없는 또 역사 이후에 가장 큰 실패자가 되어 집니다. 아담은 실패하고 가죽 옷을 입고, 또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택자는 건졌습니다. 가인의 실패는 홍수로 끝이 났습니다. 함은 홍수 이후 그날부터 오늘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지는 모든 멸망은 함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면은 잘 살피지를 못하는데 어떡하다가 함은 그리 되었느냐? 아버지의 혜택만 받아 뒤따라 누렸지,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고 아버지에게 고장이 있을 때 이걸 고쳐야, 아버지에게 본 혜택이 자기에게 혜택이 되는 줄을 몰랐습니다. 좋을 때 부모 걸 빼먹었고 튀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해도 되지만은 하나님은 위에서 지켜보다가 남의 좋은 것, 선배의 좋은 것, 스승의 좋은 것, 부모의 좋은 것, 쏙 빼다가 좋은 것은 덕을 보고 부모에게 문제가 있을 때, 이때 자녀가 부모를 위해서 할 일이 있어 이렇게 앞뒤 순서를 주셨는데, 혜택은 받고 혜택 받은 것으로 해야 될 때 쏙 빠져버린 것이 함입니다. 노아가 천하의 의인이라 더만 노아 아버지도 실수하네? 아이 창피해라. 이런 꼴도 있네! 자녀 눈에는 부모의 잘못 단점이 그렇게 잘 보입니다.
 
지난 주간에 마태복음 7장,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란, 어떻게 그게 안과 의사나 되면 몰라도 보이겠습니까? 눈 안에 티는 남이 못 보는 건데, 남의 눈 속에 티는 모두가 잘 보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엑스레이처럼 CT처럼 주셨습니다. 하물며 자기 부모의 단점이겠습니까? 어떤 사람도 부모로부터 좋은 걸 받습니다. 조건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부모 속에 있는 티, 부모 속에 있는 잘못, 네가 부모에게 혜택 받았으면 부모의 잘못, 그거 네가 들어 좀 보충하고 해결해 줘야 한다. 먹는 것은 먹고 주는 것은 싫어서 밖으로 빠져나가면, 이게 노아 홍수 뒤에 함이라는 이름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프리카 흑인들은 전부다 함의 자손입니다. 10년이 아니라 천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이 가도 변치를 않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은 우리보다 복음을 3천 년 정도 전에 받았습니다. 3천 년 정도 전에. 좀 더 계산을 하면 3천 년이 아니라 3500년까지 올라가며, 아프리카 흑인들 토인들은 우리보다 3천 년 3천500년 전에 복음을 받았는데, 지금도 저 모양입니다.
 
우리는 불과 100년 전에 지구의 제일 마지막에 전도 받아, 복음 때문에 오늘 이렇게까지 되어졌습니다. 미국보다 더 좋은 나라,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알 겁니다.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한민족은 부지런해 그렇다. 이가 거짓말입니다. 지금 20대가 부지런 합니까? 80대가 부지런 했습니까? 80대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더 부지런 했습니까? 올라갈수록 한민족은 더 부지런했습니다. 그런데 굶어 죽도록 되었습니다. 한민족은 머리가 좋아 그렇다? 그 머리 일제입니까? 미제입니까? 수입했습니까? 조상 대대로 오는 그 머리입니다. 다 부모들 머리 좋고 부지런했습니다. 그런데 나라도 유지 못하고 끝장날 뻔한 걸,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아무리 연구해 봐도. 선교 받아 믿는 교회가 많아진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늘 이런 것은 기본 상식으로 알고 교회를 찾으면, 한 시간 주무시다 가든 설교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으로 욕을 해도, 이런 거 하나만 딱 건져 가면 세상사는 데는 엄청 좋을 겁니다.
 
오늘 봉독한 여기 창세기 19장 1절 잠깐 먼저 휴게소 말씀 드렸고, 그래서 학생은 수업시간 중에 10분의 휴식 시간을 잘 이용하면 엄청 좋고 방학도 좋고, 일하는 사람은 휴일을 잘 사용하면 좋다 이런 말씀 드렸습니다. 신앙이 없으면 주일이 신앙과 인생에 정말로 좋은 휴식이며 방학이며 휴일이라. 이걸 잘 이용하면 늦었던 거 따라가고 모자란 거 보충해서 잘 살 수 있으니, 신앙이 마지막으로 쳐질 때에 기억하시라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또 아직 신앙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은, 이 정도면 주일과 교회에 열심히 다녀도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좋은 겁니다.
 
수업 시간시간 중에 휴식시간 10분을 집어넣는 것은, 놀기도 좋고 죄 짓기도 좋고 정말 공부를 해보려면 중요한 정리가 필요한 겁니다. 방학이 있어 한 학기 배운 걸 제대로 정리하고 엄청 따라내고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1년 12달 일만 하다 보면 어느 날 무너집니다. 그런데 중간중간 휴일이 들어, 가족과 여행도 하고 이 가족 좋아하는 이런 걸 보고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지, 그러고 몸을 쉬어주므로 돈벌이에도 좋습니다. 주일이라는 것이 불편하고 예배가 불편할 때는 그냥 이렇게라도 생각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1년 전체를 두고 보면 5월과 8월의 집회가 그렇습니다. 휴일 날 날이 좋아 멀리 돌아다니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휴일이 하필 코로나라. 아니면 휴일 날 비가 오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그 휴일은 잘 보면 좋게 쓸 수 있는 귀한 기회입니다. 집회가 좀 어렵고 일정이 맞지 않고 과거 복습할 때 같으면, 제가 세계를 향해서 이런 은혜를 받으라고 그러겠는데, 지금은 어느 날 그런 기회가 없어지고 그냥 일반적으로 그냥 집회가 지나가고 있습니다마는, 휴게소처럼 휴식시간처럼 방학처럼 휴일처럼, 이거 잘 활용하면 휴게소가 아무리 시시해도, 그게 있으면 필수 장거리 여행에는 굉장히 좋습니다. 5월 집회는 지나갔고 8월과 이후에 시간이 다가오면 강조하기가 죄송해서, 신앙의 기본 상식을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세기 19장, 롯의 상황은 창세기 12장으로 잠깐 돌아와서, 안 믿던 아브라함 삼촌과 안 믿던 조카 롯이 하나님은 그냥 대충 알고 그냥 따라다녔는데, 제대로 하나님을 알고 따라 출발하게 되는 신앙의 정식 출발이 창세기 12장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모든 불편을 다 감당하고 주님만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고 출발을 했다가. 여러 가지 일을 단기간에 다 겪고 그 다음 하나님의 크신 복을 받아, 한 지방의 조카와 삼촌이 함께 살 수가 없을 만큼 재산이 많아졌습니다. 이 아브라함과 조카는, 농사일이나 장사일이 아니라 양을 기르는 정성을 기르는 목축업자들이라. 양들이 풀을 먹으면 또 저리 가야 되고 저리 가야 되고, 이렇게 움직이다보니까 터가 넓어야 되는데 그 일대에서 양을 기를 수 없도록 너무 가축이 많아지니까, 아예 둘이 땅을 나눠 버려야 되겠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는가?
 
아브라함은 삼촌이라 나이가 있어 불리하지만은 조카를 불러다가, 한 곳에 살다가 자꾸 가족끼리 부딪히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뭐라고 그러겠는가? 세상 살아가는데 어떤 것이 불리해도 주님 생각하고 서로 방향을 나누어 나가자. 조카 네가 좋은 것 해라. 조카 네가 좋은 것 해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삼촌이 되는 겁니다. 삼촌 그거 어느 짝에 쓰지요? 어른이 되는 겁니다. 어른? 어른은 고려장해버리고 전부 적패라. 다 없애버리고 젊은 애들만 있어야 세상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10대들 그렇지요? 20대들은 눈치가 있어 말 못할 것이고, 학생들은 나 많은 것들만 싹 없애버리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는데 그러십니까? 용돈은 누구한테 받으시나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다섯 살 애들이, 십대들 저것들이 없으면 내가 선배 되는데 그 말이 그 말 됩니다. 그래서 앞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불편해도 위에도 있어야 되겠구나! 그게 불신자도 세상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원래 삼촌이고 지도자입니다. 롯은 조카였습니다. 근데 형편이 함께 할 수 없으니 나눠야 되겠는데, 한쪽은 풀 좋고 물 좋고, 사람이 모여 사는 서울 분당 같은 좋은 데입니다. 한쪽은 우리 신풍 같은 데고 신풍보다 더 험악한 저 무슨, 어 섬 이름이 어디지요? 거문도 같은 데입니다. 여수시청에서 거문도 가라 발령 내면 전부 사표 내 버린답니다. 이렇게 두 곳을 나눠야 되겠는데 둘 다 좋으면 문제가 없는데, 처음부터 한쪽은 좋고 한 쪽은 안 좋으니 삼촌이 조카를 불러, 좋은 대로 결정을 해라 이렇게 배려를 하면, 배려를 하면 손해를 보는데. 장사가 잘 되는 가게하고 장사가 안 되는 가게하고, 장사가 되는 업종하고 사양 산업하고, 성적에 유리한 학교와 성적에 불리한 학교와, 둘 중에 상대방에게 너 먼저 선택하라고 그러면 그건 말이 됩니까? 세상 살 때는 뭐 그렇게 쉽게 양보할 것은 아닙니다. 함부로 양보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지켜보는 신앙의 문제가 될 때는, 근데 이 신앙 문제를 두고 세상 문제로 서로 부딪힐 때는 부부끼리도, 조카 삼촌은 놔두고 부부끼리도 상대방에게, 신앙생활에 유리하기 위해서는 두고 갈 세상 것은 대폭 양보해버리는 것이 마지막에 좋습니다. 그게 진리가 아니고 그게 다 맞지 않으면, 기독교는 벌써 없어지고 성경은 저부터 그냥 내버리겠습니다. 이게 다 맞고 항상 맞기 때문에, 열심히 오늘도 이 말씀을 첫 말씀으로 소개하는 겁니다. 주님 앞에 신앙 문제가 걸렸는데, 세상 걸 양보하면 신앙으로 더 좋아질 때 그럴 때는 가차 없이 세상 걸 밀어버리고, 신앙에 유리한 쪽으로 가는 것이 세상에도 지혜롭고 하나님 앞에 좋고 늘 좋은 법입니다. 우선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그거는 착각입니다. 착각.
 
아브라함이 조카를 불러, 한 곳에 살기 어려우니 조카 너 좋은 대로 먼저 하거라. 그 하나님이 예쁠 거 아닙니까? 형이 동생에게 양보하면 친구들은 양보하지 마라! 동생한테 양보하면 이 녀석이 끝까지 그런다! 이럴 거고. 부모의 마음은 그거 참 예쁘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원리가 그렇습니다. 형제끼리 주고받고 싸워봐야 몇 푼 되겠습니까? 세 살짜리 다섯 살짜리 장난감 하나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 부모가 볼 때, 저 큰 것이 참 사람이 됐다 싶으면 부모께 다 오는 그런 길이 열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롯에게 맡겼고 양보를 했습니다. 그러면 어른 되는 겁니다. 삼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기뻐하며, 네가 호적의 삼촌 정도가 아니라 네가 바로 하나님의 오른팔이며, 네가 바로 하나님의 2인자 되겠구나 이리 되는 겁니다.
 
조카는 조카지만은, 삼촌이 양보를 하니까 얼른 챙겨서 가버렸습니다. 그런 걸 족제비라 그럽니다. 족제비 말부터가 좀 그렇지요? 그리고 족제비를 한번 그려봐 보십시오. 안 봐도 그냥 남의 거 틀어다가 도망만 다니는 그런 인생, 그런 생활을 족제비라 그럽니다. 또는 생쥐라 그럽니다. 더 심하면 두더지라 그럽니다. 레위기 11장에서 이런 거는 줘도 먹지 말아라. 누가 두더지 요리를 하고 누가 족제비 요리를 하고 누가 생쥐 요리를 하겠습니까? 그런 인격이 되지 말고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지 말아라. 믿는 사람의 신앙의 생활은 순종하는 양처럼, 주님이 부탁하는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소처럼 살아라. 이게 구약의 음식의 법인데, 신약 우리에게는 생활과 인격과 신앙이 이런 사람이 되라.
 
롯은 삼촌이 양보하니까 얼른 챙겨 가버렸습니다. 뭐 가서 잘 되면 야, 잘 되면 야 뭐 미안한 것은 잠깐이고 잘 되면 괜찮은데, 아브라함은 뒤에 보니까 감당 못할 거부가 되어졌습니다. 아홉 나라 재산이 손에 다 들어와 버렸습니다. 근데 아홉 나라의 재산을 다 가졌는데 그대로 가지고 있다 보면, 아브라함이 부자 된 것은, 우리 아홉 나라의 재산을 다 가져갔기 때문에 부자 된 것이 아닐까? 그런 말이 들리면 하나님 앞에 죄송할까 봐서, 비용은 빼고 나머지는 다 돌려줘 버렸습니다. 하나님 한 분 모시면 세상 사는데도 넘치고 부족함이 없다! 자신이 있으니까. 자만의 용기가 아니라 경험이 있으니까. 경험은 산지식이라 그럽니다.
오승환 경험은 무슨 지식이라고요? 놓쳤지 금방? 산지식이라 그래요. 경험하지 않고 써먹어보지 않은 지식은, 지식은 지식인데 죽은 지식. 들었고 아는 걸 써먹어보고 경험을 가진 지식이 되면 무슨 지식이라고요? 산지식이 되어 집니다.
 
하나님께 순종은 복이다. 아브라함은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써먹어봤습니다. 그러니 롯과 나뉘는 문제가 생길 때 얼른 양보를 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볼까봐. 보나마나 하나님이 계산하고 계시니까 하나님 때문에 얼른 다 양보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뭐 먹고 살라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 하면 주시겠지 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이럴 때에 성경에 이런 아브라함의 행동을 다 같이 뭐라고 하지요? 믿음, 이 정도 될 때 믿음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복줄 걸 제가 믿어줄 테니까 복 주십시오. 이건 잉어 낚는 낚싯밥이고 그건 거짓말이고 이중삼중의 사기고, 이리 계산하면 믿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믿음 중에 99.9%는 대개 다 가짜배기입니다.
 
진짜 믿음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 기뻐하는 이 일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주시는 대로 받겠다. 이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반대가 롯입니다. 그 반대가 롯인데 창세기 13장 1절, 복 받은 아람 아브라함 엄청 복 받은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롯과 나뉘는 기록이 13장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19장인데 19장 1절 “날이 저물 때에” 하루 중에 지금 언제라고요? 저녁 해질 때입니다. 아 어두울 때구나! 항상 어둡습니까? 밝은 하루가 지나가며 어두워질 때에 “날이 저물 때에” 그리고 한 장만 앞에 넘겨서 18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여기는 소돔 같은 성이 없습니다. 성문도 없습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야지구나, 들판이구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니라” 언제 나타나셨습니까? 다 같이? “오정 즈음에” 오정 즈음에, 오정은 언제지요? 대낮입니다. 오정. 오전이 아닙니다. 오정, 해가 중천 가장 높이 떠서 환하게 비칠 때, 아 밝을 때 참 밝을 때, 모든 것이 잘 보일 때 그러고 나서 이제 19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날이 저물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왔습니다.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 18장은 아브라함을 찾아간 하나님, 19장은 롯을 찾아간 하나님. 속에는 하나님인데 밖으로는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를 보내면 알아보지 못할까봐 천사인데 사람처럼 보이도록 나타났습니다. 때가 다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12시에 가시고 롯에게는 해가 저 어둑어둑한데 저물 때에 들어갔습니다. “날이 저물 때에” 여기 날이라는 것은 해가 있을 때를 말합니다. 아직 해가 있기는 있습니다. 해가 져도 햇빛은 남아 있으니까. 해가 있을 때, 해가 있으면 뭐든지 알 수가 있지요? 이건 산, 이건 사람, 저기가 시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는 때입니다.
 
“날이 저물 때에” 날이란 낮을 말하고 낮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면 다 알 수 있는 때. 안 믿는 사람도 해 있으면 다 압니다. 그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알 것을 알아야 될 때. 믿는 사람이 알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은, 진리로 알아야 되는 때. 오늘은 무슨 날이더라? 주일날 교회 가야지 그러면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화창하게 구름 없고 좋다 하고 그냥 지리산 꼭대기로 냅다 달려가면, 넌 대낮에 주일날 지리산 꼭대기로 가면 그건 모르고 가는 거다. 떨어져 죽으면 어떡할래? 로프가 있어서 뭐 요즘 휴대폰이 있어서 끄떡없습니다. 그 로프 그 휴대폰을 하나님께서 뺏어가지 못할까봐? 눈으로 햇빛을 보고 모든 걸 아는 것은 강아지가 더 잘 알고 짐승이 더 잘 압니다. 그렇게 아는 것 말고 믿는 사람이 알아야 되는 것. 날이 저물었더라. 날이란 해가 있을 때고 모든 걸 알 때를 말하는 거고. 알기는 뭘 아는데요? 진리가 있을 때, 믿는 사람이 알아야 될 걸 알 때를 날이라 그러는데 “날이 저물 때” 저물어버렸습니다. 어두워질 때. 저쪽이 아직도 산 같기는 산 같은데 저게 산등성 같기는 같은데 더 어두워지면 나중에 그것도 헷갈립니다. 저쪽은 물에 빛이 살짝 비치는 거 보니까, 저쪽이 강이고 저쪽이 산이지 아마? 이제 더 어두워지면 그리 됩니다. 더 어두워져 버리면 산인지 강인지 낭떠러지 인지 고속도로인지, 짐승인지 사람인지도 모르고 멧돼지 사냥하러 갔다가 움직이니까, 저게 멧돼지다. 멧돼지는 등치는 느린 것 같은데 아주 민첩합니다. 그래서 그냥 멧돼지 같으니까 쏘아놓고 봐버렸습니다. 쐈는데 쏴놓고 보니까 멧돼지인 줄 알고 가보니까 누가 맞았더라고요? 한 며칠 전에? 택시 기사가 맞았더랍니다. 아 뭔 택시기사가 뭔 길을 가지, 멧돼지 다니는데 갔을까요? 가다가 아무 데나 그냥 쉬하다가 그냥 맞아버렸습니다.
 
모범택시 말고 회사 택시 기사들은 민주노총입니다. 민주주의 인권을 지키는 정의의 사도들입니다. 그 멧돼지 맞은 사람 직업을 보고, 세상에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전부 민노총 핵심이 돼가지고, 대한민국을 그냥 내려 앉혀도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더니만, 2022년 요즘도, 고속도로 여기 지방도로 가다보면, 요즘도 대로에서 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럴 땐 제가 뒤 꼭지에다대고, 이놈의 자식 한 다리라도 들면 괜찮겠구만. 강아지는 한 다리 들고 나는 개입니다, 하고 그렇게 쉬합니다. 사람이라는 놈이. 저런 것들이 민주주의를 말하니까 저것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거꾸로 해야 진짜 민주주의일 건데, 저것들이 인권? 저 인간들 거꾸로 하면 아마 진짜 인권일 걸? 그리고 구시렁거립니다. 이거 지금 세상 말이지요? 이 한마디에 세상을 읽어보면, 뉴스고 뭐고 사방 천지 다 물밀듯 와도 파악이 다 될 겁니다. 딱 눈치 보면 다 나오는 거지. 뉴스 보고 연구하는 거 아니고 대학 교재 강의 듣고 아는 것 아닙니다. 이런 걸 눈치라 그럽니다. 안 배워도 딱 보면 알지 그거 갖다 또 뭔.
 
“날이 저물 때에” 18장으로 다시 넘어옵니다. 18장 19장을 계속 비교합니다. 딱 이렇게 맞물려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다 같이 언제 나타나셨다고요? “오정 즈음에” 오정 즈음에. 하루 중에 가장 햇빛이 밝을 때. 햇빛이 밝으니 하나님이 사람처럼 다가와도 멀리서부터 딱 알아보고 이렇게 모셨구나! 그 말이 아니라, 진리로 신앙의 사람이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볼 수 있는, 아브라함은 그런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구나! 아브라함에게도 저녁에 갈 수 있고 새벽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왜 18장에 아브라함을 찾아갈 때는 햇빛이 가장 강하고 모든 것이 잘 보이는 때에 갔을까? 그리고 19장을 읽어보니까, 롯을 찾아갔는데 롯을 찾아갈 때는 저물 때 어두워질 때, 이건지 저건지 알기 어려운 때 찾아갔습니다. 해석은 각자 마음대로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필이면 오정에 찾아가시고 그걸 성경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읽어보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아 아이가 없어 어렵지? 네가 나이가 많아 인간적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으나 아이를 주겠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아브라함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계통을 이어주겠다. 그 계통이 쭉 내려오다가 다윗이 나타나고 주님이 오시고 신약이 되며,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그 호적과 상관이 없는데도, 아브라함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든 것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에게도 그냥 다 쏟아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보고 있는 겁니다.
 
한반도 사는,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 우리들은 자부심이 있기를, 우리 조상은 저 위로 가면 백두산에서 시작을 했다고 그러지요? 백두산 소리만 나오면 저는 좀 괘씸합니다. 백두산 굴 속에, 아이 호랑이가 우리 할머니가 되었으면 우리가 이러고 앉았겠습니까? 세계를 다 잡아먹었지. 하필이면 호랑이도 아니고 백두산 굴속에 우리 할머니가 누가 되었더라고요? 곰이랍니다. 곰. 곰탱이. 아이 그 이야기를 쓴 인간이 왜 써도 저런 걸 썼을까? 실제로는 호랑이가 우리 할머니였다 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 호랑이가 우리 할머니라고 이렇게 자랑을 해야, 자손들이 기를 펴고 막 사방 천지를 다 잡아먹고 미국처럼 세계를 점령하고 좀 호통을 칠 건데, 못난 것들이. 전설이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인데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자기 속마음을 전설로 꾸며놓기 때문에, 전설을 거짓말이라고 치울 게 아니고 전설 속에 그 인간의 심리를 읽어봐 보면, 한반도 사는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꿈을 꾸고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게 나옵니다. 계통의 부모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알기를 알아야 발전을 하지.
 
성경 전체의 시작이 창세기입니다. 창세기 18장 19장은 창세기 중에서도 아주 시작입니다.
천지를 만든 것은 1장이나 신앙이 제대로 출발하는 계통성을 창세기 12장에 기록하고, 그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있다. 그 말은 아브라함 식의 신앙도 있다. 그리고 롯도 믿는 사람인데 롯 식으로 믿는 길도 있다. 그래서 길은 항상 몇 가지 길이라고요? 찬양대만 항상 두 길이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하십시오. 세 길도 있다. 네길도 있다. 그거는 착각입니다. 그건 안경 끼고 다시 바로 보면, 우리 찬양대 학생들만 신앙의 길은 항상 몇 가지 길이라고요? 두 길 밖에 없습니다. 두 길이 나뉘는데 두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한 번에 한 길밖에 못 갑니다. 한 길은 아브라함, 한 길은 롯. 집회 때는 한 길은 가인, 한 길은 아벨의 길입니다. 그 아벨의 길이 바로 아브라함의 길이고 가인의 길이 바로 이 시대에는 롯의 길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복 받는 길 하나는 망하는 길 말릴 수 없으니, 하나님이 주신 자유성으로 자유하시지만은, 가인의 길 그 다음 롯의 길을 걸어가면, 그 롯이 망한 것만큼은 그렇게 망해야 됩니다. 이거는 못 피합니다. 길은 네가 선택해라 그 길 끝은 네 맘대로 안 된다.
 
우리 여수에서 위로 가면 순천입니다. 밑으로 가면 저 향일암 바다입니다. 바다에 빠져 죽든지 순천으로 가든지 알아서 해라. 그런데 북쪽으로 순천으로 가면서, 수영하고 싶다 그 생각은 말아라. 남쪽으로 가면 향일암이 나오는데 남쪽으로 가면서, 순천이 나오고 서울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생각은 네 마음대로 안 된다. 길은 두 길이며 두 길 중의 선택은 네가 해라. 결과는 하나님이 못 피하도록 딱 밀어붙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나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갑니다. 롯은 우선 먹고 살기 좋은 길을 잡고 갑니다. 18장에 오니까 아브라함에게는 마므레 수풀 상수리에 하나님이 오셔서 아브라함과 대화하는 그 시간, 그 장소, 그 내용을 보니까, 아브라함아 복을 받고 영원무궁토록 너를 통하여 이 땅위뿐 아니라, 하늘나라도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가득 차야 되겠다. 이 말씀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어지지 않았지만은, 믿어라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19장이 되니까 나눠진 롯의 길을 설명하면서 “저물 때” 저물 때. 뭐 이럴 때 만날 수도 있고 저럴 때 만날 수도 있고, 우연히 가다가 그냥 그때 마주친 것이 아니냐? 성경의 기록은 그렇지 않고 반드시 따지고 살피고 이 토시 하나까지도 조정해서 주십니다. “날이 저물 때” 연구해 보거라 “소돔에 이르니” 소돔에 이르니. 아까 말씀드린 13장에 소돔을 표현하기를, 먹고 살고 양치고 돈벌이 하는 데는 최고다. 그런데 뒤에 딱 하나 갖다 붙여놓기를,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니까 죄인 중에 괴수 죄인들 큰 죄인들만 있더라. 이렇게 딱 적어놨습니다. 물 좋고 살기 좋은데 악인이 가서 먼저 차지하겠습니까? 착한 사람이 먼저 차지하겠습니까? 새치기를 해도 그렇고 잡아먹어도 그렇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죄인들 악인들이 먼저 좋은데 차지하겠지. 뭐 안 봐도 압니다.
 
“소돔에 이르니” 멸망 받을 소돔이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19장. 거기에 두 천사가 갔으니. 의사 선생님이 건강한 10대들한테 가면 심장도 건강합니다. 발도 건강합니다. 이 아이들 자라다 보면 기침하니까 걱정 마십시오. 아이들은 다 좋습니다. 10대들한테 가가지고 청진기고 먹고 조사해봐야 다 좋습니다. 소리밖에 안 할 겁니다. 80대들을 줄 세워 놓고 청진기를 갖다 대면, 잘 먹으시고 그냥 포기하시고 행복하게 살다가 가십시오. 그 소리 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80인데 청년처럼 건강하면, 예 80이 청년처럼 건강하다가 자다가 가는 수도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의사는 똑같은 의사인데 아이들한테 가면 좋은 얘기밖에 안 하고, 나 많은 이들한테 가면 죽는 얘기밖에 안 합니다. 의사를 욕을 해야 되겠습니까? 상황이 그런데 어떡하겠습니까?
 
소돔은 큰 죄인들 이었더라 이래놨는데 천사가 들어가 버렸습니다. 천사가 가서 뭐, 좀 더 봐줄 테니까 죄 더 지어라 그러겠습니까?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그러겠습니까? 천사 둘이 들이닥친 걸 보니 이제 소돔은 죄의 끝, 결판을 보러 들어갔겠습니까? 그래도 소돔의 큰 죄인들 중에 롯은 의인입니다. 후퇴는 했으나 위로 식을 해도 성 안에서 이 집 저 집 돌아가지 않고, 성문 밖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이 정도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겁니다. 성 안을 들여다보면 이게 지탱될 리가 없는데 그러니 불안하고, 성문에 앉았다가. 앉은 위치가 그렇기 때문에 오는 천사를 먼저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주일 오전 예배는 한 10분을 좀 당겨 마치겠다고 우리 저 안 믿는 가정에서 오는 학생들 때문에 약속을 했지요. 몇 주나 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약속은 보통 한 2~3 주 가는데 좀 오래 가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 줄로 요약합니다. 아브라함의 길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무조건. 롯의 길 못 피합니다. 이쪽으로 서는 게 났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길 중에 처음 믿을 때의 첫 길이, 주일을 기억하고 주일 예배를 기억하면 좋습니다. 몰라도. 그리고 일 년 단위로는 집회 두 번을 생각하면 좋은 겁니다. 신앙이 없어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눈치 안 보고 세상 살기 좋은 데로 갔다가 롯은, 소돔 고모라라는 유황 불비를 맞습니다. 엄청 잘 나갔는데 마지막에 보니까 영 끝이 났습니다. 그 길만은 가지 마십시다. 한 주간. 아브라함은 하나님 눈치 때문에 좋은 것도 양보하고 그런 것 같다. 라고 했지만은 뒤에 보니까 감당 못할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때문에 늘 두 길을 보며 선택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특송)
특송이 있겠습니다. 찬송가 99장입니다. 99장. 찬송으로 설교가 되는 겁니다. 또 찬송으로 기도가 되는 겁니다. 기도로 또 설교로 들으시면 됩니다.
 
(기도)
소돔보다 더한 오늘 현실 속에, 롯보다 더 신앙이 못한 저들이, 아브라함의 길을 소원할 때, 지금부터라도 아브라함을 동행하시고, 인도하신 주의 은혜가 약속되어 창세기 18장을 알게 하시고, 그러나 늘 창세기 19장의 소돔의 결말로 가지 않도록 적어주셨으니, 진리의 밝은 길을 찾는 저들 되게 하시고, 당연히 주의 뜻을 따라 주변의 세상을 정리하고 제쳐 놓을 수 있는 저들이 되도록, 오늘도 한 주간도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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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5.8주전               창19:1               구원의 성, 멸망의 성                              총공신풍

■ 본문
1. 시기
날이 : (해)가 있을 때 악4:6, 해가 기울고
(알) 수 있을 때
(진리)가 있을 때 마25:1~ 밤중에
저물 : (어두)워 질 때 요13:30 곧 나가니 밤이러라
때 : (시기)
 
2. 장소
소돔 : (세상)으로 좋은 곳
(죄악)이 넘치는 곳
(심판)이 예정 된 곳
성문 : (출입)하는 곳
먼저 (접)하는 곳
 
3. 인물
롯 : 신앙의 (후퇴)
(양심)이 역사
천사 : 하나님의 (역사)
두 : 의미, (양면)의 역사
외부, (동행)의 역사
내부, (협력)의 역사
결과적으로, (온전)
 
4. 행동
앉았다가 : (포기) 벧후2:8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보고 : (알아) 보고
 
일어나 : (존중)
영접 : (모심)
엎드려 : (낮춤)
절하여 : (존재) 차이
집으로 : (생활) 안으로
 
5. 하나님의 역사
거리에서 : 소돔 사람 (모두)에게
경야하리라 : (죄악) 행위를 확인
 
■ 소돔 백성
1. 모두가
사방 : (별별) 형편
노소 : (경험) 유무
2. 상관하리라
상대 : (처리)하리라
차지 : 죄악으로 (삼킬) 것
 
3. 롯에게
해하리라 : (침해)
밀치며 : (협박)
문을 깨치려 : (침해)
 
■ 구원의 기회
1. 항상 (두) 길
2. 오직 (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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