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5.6 창18:33 소돔의 의인의 숫자 계산, 내 안에 의의 방향이 전진인지 후퇴인지 살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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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5.6 창18:33 소돔의 의인의 숫자 계산, 내 안에 의의 방향이 전진인지 후퇴인지 살필 것

관리1 0 125 2022.05.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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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06 금밤
 
제목 : 소돔의 의인의 숫자 계산, 내 안에 의의 방향이 전진인지 후퇴인지 살필 것
 
찬송 : 10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문 : 창세기 18장 33절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찌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개별적으로 죄를 물으시고 개별적으로 의의를 살펴 인도하시는 주님, 그러나 개통으로 내려오는 의와 죄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셨으니, 개통적으로 위에서 죄가 내려오고 시대가 죄악에 깊어질 때 인간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줄 알고 있는 힘 다하여 의의를 붙들고 의인으로 살기를 노력하고 마음의 중심을 가다듬어 우리의 이런 노력이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세 이 노력 그 정성을 보시고 위에서 우리를 직접 붙들어 의롭게 깨끗하게 인도해 주시면 건설의 구원도 전적 은혜이오니 이 밤도 잊지 아니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연휴 오가는 차량들 지켜주시되, 좋은 세상을 더욱 즐겁게 살려다 보면 넘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오니 세상이 넘칠 때마다 좀 줄이고 그것으로 주님께 더욱 바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밤에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집회 일정 집회 은혜 감사옵고 주신 은혜 붙들고 이어져 8월로 또 한 해를 또다시 한 해로 이어가며 험악한 때 사람의 의와 노력으로 이길 수 없는 때 주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 되게 해 주옵소서. 이 밤도 곳곳마다 세우신 모든 주의 강단들 위에 은혜를 내려주시되 이 길을 사모함으로 이 시간을 기억하는 해외까지 두신 우리 교회들 위에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금번 집회의 말씀은 창세기 4장, 가인 그 후손들이 자자손손 내려오면서 처음은 비슷해 보였으나 가다 보니까 점점 차이가 나게 되었고 차이가 나게 되면 그때가 마지막인데 그때가 돌아설 수 있는 마지막인데 그때를 넘겨버리면 그냥 희망 없는 때가 되어 집니다.
 
롯을 구하려 천사를 보냈고 손을 잡고 끌어냈으니 이게 홍수 때로 말하면 홍수를 들이붓는 그날에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오늘 들이 부으니 지금이라도 들어 가자라고 했다면 120년 무시한 사람들이 120년을 속았는데 뭐 비라는 것은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 120년 속은 사람이 그날 말 들을 리가 있겠습니까? 홍수 내리던 그날까지 기회를 열어 주셔도 열어 주셔도 안 될 사람은 120년 더 줘도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역사를 되돌려 내가 그때 있었더라면 그리고 홍수 그날까지 만약에 기회 주신다면 아 나 같으면 당연히 그날이라도 막차를 타지 않겠는가, 남 말은 다 쉽게 하는데 이런 걸 좀 마음속에 오늘 내 형편 주변 형편을 가지고 그려보면 갈 수 없고 조사할 수 없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은 별로이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에 적어준 몇 말씀, 역사의 여러 가지 사건 그리고 주변 내 형편과 나를 이렇게 맞춰보면 그 뭐 빠진 부분 다 재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면 ‘작년에도 폭우가 쏟아졌지 아마.’ 기억력이 좀 좋은 사람들은 2002년에 내계 사고 그 다음 해에 루사 태풍인가 와 가지고 들어오는 진입로 다리가 떠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럼 10년, 20년마다 한 번씩 엄청 폭우가 쏟아지는 거 아니야 그러고 그냥 넘어가게 돼 있습니다. 겁 많은 사람은 100년간 홍수가 나지 않아도 101년째 만약에 무서운 폭우가 쏟아지면 120년이 아니라 노아 저것이 계산을 잘못해가지고 100년, 101년을 120년으로 잘못 전한 거 아닐까? 지만 살려고 또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사람이란 그렇게 의심해 가며 그걸 먹어야 되는데, 될 사람은 위험한 걸 끌어다가 더 조심하고 미리 피하는데 그 꼭 망해봐야 아는 사람들은 ‘불조심 안 하면 집 다 태웁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마지막에 불을 놔야 정신 차리지 그전에는 정신을 못 차립니다.
 
음주운전에 한 가정이 다 내려앉는 것은 한없이 보는데 왜 오늘 또 음주운전 하다가 문제 생기는 사람이 늘 발각이 되어 집니까? 뭐 담배 하나에 암이 40까지 50까지 밀고 들어온다고 국가에서 발행하는 담뱃갑에다 대고 흉악한 그림을 다 그려놓는데 마음 먹고 끊으면 끊는 거지 뭘 못 끊을 게 있습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를 못하니까 덜 급하니까 그런 겁니다. 대학 졸업 때까지 16년을 공부할 기회가 있는데 마지막 시험 들이닥칠 때까지는 내년에 하지 다음 달에 하지. 준비한 사람의 성공의 소식 준비 안 하고 땅을 치는 사람 가족 안에 주변에 다 보면서도 또 그날 공부 안 하고 하루를 넘어가는 것은 덜 급해서 그렇습니다. 급하지를 않아서. 정말 다급하면 담배 끊는 거 끊지. 공부하는 것 그까짓 거 주는 돈 가지고 앉아 책 보는 걸 못 하겠습니까, 머리가 안 따라가면 몰라도.
 
120년에 홍수가 들어 강퍅한 사람들은 더 강퍅해집니다. 120년 하늘이 문을 열고 마구 쏟아 붓는데 사라호 태풍이 기억하십니까? 사라호 태풍? 저는 기억 못 합니다. 아마 칠순 넘는 분들은 기억하지 않을까, 사라호 태풍. 여수에서 부산까지 다 쓸어버렸습니다. 그 60년 전에야 뭐 그렇게 그렇더니만 또 그런가 이러지, 이게 천하를 다 물로 뒤덮을 줄이야. 당하기 전에는 못 느끼는 것이 이게 자유성을 주신 생명성의 인간의 단점입니다.
 
자유성처럼 좋은 것이 없는데 자유성이란, 좌로 우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면이 단점입니다. 우리의 등이 이 등뼈가 그 정강이처럼 이 팔뼈처럼 통뼈라면 디스크도 없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디스크가 없는 겁니다. 그건 장점인데 풀 뽑느라고 풀 뽑으려고 등을 숙이려면 등이 이렇게 뻣뻣하면 이게 절을 하겠습니까, 풀 꼽느라고 등을 또 구부리겠습니까? 그래서 통뼈도 있고 등뼈는 디스크로 이렇게 잘 휘어집니다. 잘 휘어지니까 좋은데 자꾸 휘이다 보면 이게 디스크가 걸려서 또 허리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양면을 주십니다. 항상 두길. 양면을 보고 지혜롭게 복되게 골라잡으면 얼마나 좋은지, 팔뼈 다리뼈 통뼈로는 버티고 나긋나긋한 목뼈 등뼈로는 인사도 꼬박꼬박 잘하고 등을 숙여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도 건강관리도 하고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체 구조를 만들 듯이 그 자유성이라는 것은 잘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어디를 향하든지 시간 따라 사건 따라 하루에 열두 번 하나님이 인도를 해도 따라가는 자며 어디든지 따라가는 자며 그러라고 자유성을 줘놨더만 이걸로 가지고 선악과를 먹는 배신, 소돔 고모라로 가서 그냥 거기에 적응해버리는 여기다 쓰는 바람에 가인 성을 쌓아 내려오던 사람들 실패했고 홍수의 바벨탑 또 그다음 성경 기록의 18장에 주일부터 공부하고 있는 소돔성 멸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몇 천년 전에 없어진 소동 고모라 그게 몇 천년 전에 한 번 있고 말 것 같으면 상관도 없는데 오늘도 내 생애가 소돔 될 수 있습니다. 나 정도 건강하지, 나 정도 가족이 단결하지, 나 정도 모아놓은 돈이 튼튼하지, 이 정도 되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여 주면 더 좋고 안 주시면 말고, 이만하면 난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살아가는데 적어도 지장 없다, 그러면 이게 가인이 쌓은 성의 목표고 그 성을 잘 완성시켜 놓은 게 소돔입니다. 여기에 기 들어간 롯이 아무리 좋아도 여호와의 동산 같아도 위에서 주는 은혜 아니면 아니 된다,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된다. 이걸 가지고 들어간 게 롯이고 이걸 롯의 의라고 그러는데 아무리 말을 해봐야 먹히는 사람이 없고 데려간 식구들끼리 까지 전부 소돔에 슬슬 물이 들어 의가 줄어들고 줄어들고 마지막에 롯 하나조차도 그 의로운 심정이 다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습니다.
 
이번 집회의 말씀은 이번 지난 주일에 소돔의 말씀의 본론입니다. 주일날 서론에 준 말씀이었고, 우리 교회는 집회의 말씀 교재로 재독 할런지 보충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좀 넓은 말씀이 창세기 18장 소돔의 말씀입니다. 너무나 심각하게 느껴지는 시대라 애매하면 그러지 않겠는데 피할 수 없는 소돔 같은 소돔보다 더한 세상이라. 근데 이 소돔이 누가 시작을 했고 누가 처음부터 이런 걸 만들었을까? 소돔을 건설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근데 홍수전까지 올라가면 가인성이 나옵니다. 홍수의 대청소를 했는데도 이게 어떻게 홍수에서 살아남아 또 홍수 후에 이렇게 소돔을 만들었을까? 육상 동물, 물에 들어가면 바로 죽는 날짐승은 전부 방주 안에 데리고 들어와서 홍수를 1년 견뎠습니다. 근데 물고기야 방주 안에 수족관 마련해서 데리고 들어올 것 없습니다. 놔둬도 괜찮습니다. 식물은 1년간 다 덮었는데 식물은 물을 좋아하는 종류라, 물이 많아 죽을 거는 죽어도 필요한 것은 살려 오늘까지 끌어오고 있습니다. 식물은 방주 안에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물고기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폐병 바이러스 같은 것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죄악의 나쁜 것은 보호해 줄 것도 없이 그 다 살아납니다, 오히려 더 번창합니다, 홍수나면 전염병이 창궐합니다. 가물면 있던 병도 없어지지만 병은 없어지는데 가물면 굶어 죽습니다. 물이 넘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물도 많고 물이 많으니까 번성할 것 같은데 썩어 다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니 홍수 때에 이 땅 위에 병균이라는 병균은 아마 그때 새로 개발하고 홍수 이후를 다 준비했을 겁니다.
 
홍수 전에 가인의 성을 하나님께서 정리를 하셨는데 홍수로, 하나님의 아들들 믿음생활 해야 되는 인간들 잘못된 행위는 청소했으나 이 잘못을 만든 배후가 악령인데 이 악령은 홍수 뒤에 또 새로운 사업을 하느라고 지켜보다가, 6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1년의 홍수를 혼자 성공한 이 노아를 “노아는 당대의 당시의 의인이라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 600세까지는 에녹과 같은 정도의 노아인데 홍수 1년 동안 얼마나 믿음이 더 좋아졌겠습니까? 눈으로 봤으니, 홍수 끝나자 바로 죄져버렸습니다. 천하 다른 사람은 일반의 죄로 다 죄인을 만들었는데 노아의 의의는 너무 강한 의라 너무 강할 때 쥐 박으면 면역력만 커져서 믿음이 더 강해져 버립니다. 노아 빼고는 전부 노아 홍수 이전의 죄로 전부 다 홍수에 끝나게 만들어 놓고 홍수 심판에 홀로 살은 여덟의 주인 여덟의 지도자 노아, 노아 이게 문제인데 세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노아가 문제인데, 그 노아는 600년간 일반 사람을 탈선시키며 홍수 후에 낚아버렸습니다. 천하가 다 멸망 받고 나 혼자 살았으니 나 때문에 세 아들 부부가 함께 살았으니, 인제 됐다 이제 집회도 갔다 왔고 이제 큰 행사 했으니 좀 쉬자. 집회 전에 끌어 당겨버리고, 웬만하면 집회까지 간 사람들은 집회 내 자리가 좋다 안 좋다 이것 때문에 또 싸움 붙이고, 그걸 다 넘어서고 은혜 받은 사람들은 아따 독한 것들 이거는 뭐 어지간한 시험 가지고는 못 이기겠네, 은혜 실컷 받아버려라. 은혜를 많이 받도록 귀신까지 도와 줘 놓으면, 뭐 귀신이 도운다고 깨닫게 해 주시겠습니까, 깨닫게 해주겠습니까? 그냥 미혹시험 놔두고, 은혜 많이 받고 나면 참 감사하다, 이제 깨달았다, 이제 이 결심이면 앞으로는 믿음 생활 잘하겠다. 이렇게 딱 방심할 때 집에 갔다 와서 그냥 당겨버리면 다 된 밥에 똑 빠집니다.
 
귀신은 역사 이후로 하나님께서 영원한 지옥에 가둬 놓기까지는 우리처럼 쉬거나 우리처럼 자만하다가 지고 그러지 않습니다. 이건 영계에서 내려온 천사 중에서도 두목들이라 민첩하기를 말도 못하고 계획도 말도 못하고 끈질기기를 말도 못합니다. 악령이 이 땅 위에 끝까지 그리고 우리가 숨 멎는 순간 끝까지 우리를 늘 관찰합니다. 신앙이 대충 별 것 없는 사람은 일찍 흔들어 뽑아버리고 좀 강한 것은 좀 센 걸로 밀고 신앙이 너무 강하여 이거 손 못 대겠다 할 때는 그냥 좀 놔둬 버립니다. 그러면 식물로 말하면 웃자람이라는 게 있습니다. 뿌리가 내려가고 영양분이 있는 만큼 조금 조금 이렇게 자라야 바람도 이기고 건강한데 그냥 다른 작물과 꼭 같이 심었는데 혼자 쑥 자라버리면 ‘어이쿠 실력이 있고 고속이고 아주 경쟁력이 있구나!’ 경쟁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돋보이게 쑥 자라버리면 웃자람이라 그럽니다. 너무 위로 올라가면 뿌리가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이거 바람 쳐버리면 산들 바람에도 뿌리가 뽑혀버립니다. 악령은 이렇게 다양하게 한 개인 개인에 따라 교파의 성격에 따라 교회의 위치와 내용에 따라 맞춤 죄로 때와 종류와 방법을 다 연구하는데 500년 전 천년의 천주교 죄악을 연구하고 오늘 대비하면 되지 않겠느냐? 뭐 철도 없는 소리입니다. 천 년 전에 귀신이 천 년이 지났는데 방법을 안 바꾸겠습니까? 교회 들어오기 전에 불교가 세상을 시험 들게 하고 흔들었을 때 그 방법으로 미신만 안 믿으면 복 받지. 안 믿는 사람도 미신을 안 믿는데 뭔 새 귀신이 미신 가지고 우리를 시험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렇게 머리 좋고 힘 있고 끈질긴 타락한 천사가 끝까지 나를 흔들면 아 옆집 사람 하나 이기기도 버겁고 10명이 달라 들면 아무리 강해도 못 이기는데 천하의 악령이 달라 들면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악령이 천하에 다 깔려도 날 시험 들게 할 때 대드는 것은 그중에 대표 하나입니다. 그건 천사의 도움이 있고 그건 주님이 상대할 수 있도록 알아서 먼저 길도 주시고 못 이길 악령이면 “피할 길을 내사” 받은 은혜와 정성만 다하면 무조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시험은 지면 준비를 잘 못한 겁니다. 준비가 바로 되었으면 자기 실력 백배 천배의 귀신이 와도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이 이기게 해 놓아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데도 준비가 부족했구나, 이렇게 고치면 다음에는 이깁니다. 그래서 진 것이 다음에는 큰 걸 이기게 만듭니다. 지나간 진거는 할 수가 없고. 이겨도 더 조심 또 지면 소망이 있는데 소망을 버리는 것도 문제, 이런 면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말씀을 다시 창세기 18장 끝절을 봉독한 것은 의인 롯이 소돔에 갔는데 갈 때는 여러 명을 데리고 갔는데 여러 의인이 갈수록 줄어들고 하나 남은 롯마저도 “심령이 상하였더라” 상한 심령. 그 말만 있지, 근데 왜 롯의 자기의 의까지 줄어들고 그렇게 상처를 받았다고 그러느냐, 뒤에 딸들한테 방심하다가 넘어간 걸 보니까 이 의가 그 수준이 그렇습니다. 롯 하나의 내적인 의가 강하여 이게 활동을 하면 딸이든 아내든 하나씩 둘씩 좀 더 끌어와 늦어도 하나씩 둘씩 자라가야 되고 자라가지를 못하면 때를 주시면 잘하겠습니다, 준비라도 해야 되는데 주변을 놓쳤고 다 놓쳤고 가족 다 놓쳤고 롯 속에 들어있는 롯의 의는 어느 정도냐, 신약에서 이 의인이 심령이 상하더라. 롯의 내면이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자기 신앙은 강한데 시대를 주지 않아서 통탄하며 외친 그런 상한 마음이 아니라, 롯 자기를 지탱해주는 자기 속의 의까지 흔들어져버리고 헷갈려버렸습니다, 내상을 입었습니다. 때리는 매에 겉이 부러지고 피가 나면 외상이라 그럽니다. 외상센터라고 다 아시지요? 겉 보면 아는 거, 외상. 자동차가 사람을 슬쩍 치고 가면 그 뭐 멍도 안 들고 멀쩡한데 1톤짜리 자가용이 한 1톤 됩니다, 대충. 1톤짜리 차가 사람을 슬쩍 건드리면 상처가 없어 외상은 없습니다. 외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1톤의 에너지가 슬쩍 이렇게 쓰다듬으면 1톤의 힘이 이 몸 안에 곳곳을 쳐버립니다. 이게 이제 주로 피가 응혈이 생겨 돌아다니다가 뒤에 이제 고장을 내고 한의학 적으로는 그리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걸 내상이라 그럽니다, 내상. 겉보기에는 증상이 없는데 피도 나지 않고 멍도 들지 않았는데 또 멍이 들어도 멍 조금 들었는데 안에는 심각하게 그냥 금을 주고 찢어놓는 걸 내상이라 그럽니다.
 
소돔에 간 롯이 한탄했더라. 이 죄인들을 어떻게야 좀 더 의인을 만들어야 되는데 이 참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회를 보자. 이런 롯이었던가, 여자가 말을 듣나 딸이 말을 듣나 뭐 사위는 말할 것도 없고, 이 흉악한 것들. 그러면 1년, 10년 연구하고 때를 주시면 그때라도, 이것까지 물러나 버렸습니다. 이것들은 희망도 없는 것들이라. 이리 되면 절망의 죄가 되어집니다. 그 표시가 도망간 곳에서 일을 내는 걸 보니까 아이 딸 둘이 그냥 그렇게 민첩하고 재주가 좋고 단합이 되어 술을 퍼마시고 술 먹은 상태에 일어난 일인데 뭔 말이냐? 딸들이 그런 딸인지 아닌지 남은 몰라도 롯은 알지 않습니까, 알아야 됩니다. 그것까지 몰랐으면 이미 이 의인의 의는 소경의 의입니다, 눈먼 의.
 
오늘 저녁의 말씀은 그렇습니다. 주일부터 이 소돔에 의인 50은 되어야 되는데 아무리 계산해 봐도 50이 안 됩니다. 그러면 다섯을 빼면 어떤가? 열을 빼면 어떤가? 그러다가 30, 20, 10까지 내려오고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 중단된 10까지는 오늘 새벽에 살폈고. 줄어드는 의는 의는 의인데 그 남은 의를 넓게 보면 죄라고 그럽니다, 줄어드는 의. 목회자가 교인이 되어 제일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를 하면 모르는 사람은 밖에서 와서 어 제일 앞자리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니 아주 신앙이 있구나 그러고, 이전에 목회자인데 후퇴해서 앞자리에 앉으면 저 사람 탈락했다, 그리 되는 겁니다. 오늘도 중요하고 이것이 흘러가는 방향이 어딘가? 큰 의가 중간 의로 중간 의가 작은 의로 내려오면 죄를 지어야 죄인이라 그러기 전에 이미 죄를 향하여 달려가니 겉은 아직도 의인이고 속은 이미 죄인이 된 겁니다.
 
품안의 아이가 한 살 때는 나를 엄청 좋아하고 나 시키는 대로 했는데 다섯 살이 되니까 이것이 밖으로 돌면서 엄마 말을 이렇게 안 듣고 좀 애를 먹인다, 그러나 내가 이놈 하면 딱 들어온다, 엄마들이 아직도 안심합니다, 이건 내 손아귀라고. 한 살짜리가 다섯 살 때 까지 진행의 방향을 볼 때 돌이 아니면 그 다음 5년은 어찌 되겠으며 그 다음 10년 후에는 어찌 되겠는가? 이걸 예측 못 한다면 그건 돌 같은 사람입니다. 경과 과정을 보니 이게 갈수록 심해지겠구나! 그리고 지금 다섯 살 좀 틀어질 때 열심히 일이 난 것처럼 끝장이 난 것처럼 3살, 5살, 7살 때 있는 힘 다하고 있는 정성 다하면 뒤에 그렇게 큰 탈은 막을 겁니다. 막지 못하면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사 달리 역사하고 인도하십니다. 한 살 때 생각하고 다섯 때 생각하고 다섯 살 생각하고 10살 뭐 아직도 내가 한 번 딱 신호 보내면 탁 들어오는데.
 
이미 큰 의인이 중간 의인이 되고 작은 의가 됐단 말은 지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죄악의 세력이 마구 치고 올라오면서 이 사람의 의를 점령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50, 40, 30, 20, 10까지 쭉 줄어들다가 10에서 중단한 것은 아무리 롯이 형편이 그렇고 아무리 신앙이 어려도 롯의 소돔 들어갈 때의 과정과 진행을 보면 10명 이하로 내려왔으면 뭐 9명이 있다, 뭐 아직 3명이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롯 속에 있는 롯을 의인으로 유지하는 롯 안에 있는 엔진이 지금 식어가고 심장이 지금 고장 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거는 해결을 하려면 약속을 따라 의인은 어떤 의든지 죄와 함께 불사르지 않습니다. 이건 빼다가 소돔에서 구원하고, 이 고장의 원인이 딸이나 아내가 아니라 롯입니다. 그 중심이 되는 롯은 그 다음 세상이 열리면서 모압과 암몬이라는 열매 이 민족적인 죄악이 펼쳐지며 그 다음 롯이 이게 바로 내 속에 있는 죄다.
 
다윗을 수술할 때 회개할 때 전부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데려 간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데려가고 솔로몬을 주셨기 때문에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 뭐 그냥 통 큰 사람들 술 한 잔 먹고 없던 걸로 하지. 귀신은 그렇게 그냥 과거를 다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또 죄를 짓게 할 때 필요한데 하나님은 다윗의 그 면을 놔뒀다가 뒤에 압살롬을 풀어놓아 압살롬이 전무후무한 짓을 다 하게 만들었습니다. 압살롬이 한 죄는 역사의 이스라엘의 가장 못된 죄인 아합하고 나란히 놔도 아합보다 더하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압살롬으로 하여금 온갖 짓을 다 하게 하시고 다윗에게 잘 봐라, 네가 회개했기 때문에 그 죄 때문에 부끄러울 것은 없다마는 너의 행동 하나 결심하나 결정하나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되는지 잘 구경을 해라.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할수록 사랑하는 사람의 실수는 그 작은 실수 하나라도 얼마나 크게 상대한다는 것을 압살롬을 통해서 환하게 딱 눈에 보여줬습니다. 사울은 10개, 100개 죄를 지어도 그냥 대충 한 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더욱 크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장수들이 요압이 압살롬을 토벌하러 나갈 때 내 아들 압살롬을 날 봐서 좀 부탁한다, 그 너무 그러지 말아라. 이렇게 부탁을 해놨습니다. 압살롬의 한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인을 위하여 요압은 확실하게 그냥 죽여 없앴습니다.
 
요압은 그 속에 보복심 이걸 가졌고, 다윗은 저 압살롬은 압살롬이 아니다. 저 압살롬은 누구지요? 내가 지은 나의 그때 그 행위다, 나의 불순종이었다, 이건 나의 티며 나의 흠이며 그건 나의 잘못이다. 요압이 압살롬을 죽여 버린 것은 다윗을 위해서 압살롬을 죽인 걸로 보이는데 다윗 속을 찔러버린 겁니다. 다윗 속에 맹장 수술을 해주느라고 칼을 들고 이걸 딱 빼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윗이 아프다 그러니까 어 배가 아프구나, 뱃속에 뭐가 들었는가 보다, 배를 그냥 눈 감고 아무 데나 찔러버리면 그건 수술이 아니라 그건 보응법입니다. 그래서 뒤에 요압은 솔로몬 때 또 그런 식으로 정리합니다. 차분하게 성경을 하나 둘 이렇게 맞춰 봐 보면 쉽게 그냥 몇 가지 적은 것 같아도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우리 생활 속에 딱딱 맞춰가며 평생을 재구성할 수가 있습니다. 롯은 하나였으나 그래도 따르는 몇이 있었으므로 소돔 정도에 가서라도 늘려 나갔어야 되고 지켜냈다 해도 10까지는 돼야 되는데 10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9은 있었지 않냐, 8은 있었지 않냐, 이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줄어드는 의인데 줄어드는 이 의가 롯 하나를 지켜주지 못할 의가 되어진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저녁 내 내면을 내가 들여다보며 난 내 속에 신앙생활을 출발할 때 그래도 교회는 가야 되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 하나로 나왔다면 내 속의 의인이 하나입니다. 근데 이왕 믿으려면 이 뭔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좀 읽어보자 이러면 의가 두 개가 되는 겁니다. 교회가 운영이 되려면 전기세도 있겠는데 100원이라도 보태드려야 되겠다.
그러면 의가 3개가 되는 겁니다. 저처럼 의가 천 개가 되고 만 개가 되는 사람은 그 뭐 하나 둘 셋 그게 뭐 그것도 부자야 그거 아무것도 없는 거. 인간끼리는 계산을 그리 합니다. 재벌 회장님이 신풍 부자를 보면서 아이 제법 부자입니다, 그러겠습니까? 아이 그런 거 다 치우십시오, 우리 집 강아지도 그만큼 있습니다. 그러겠습니까? 죽은 이건희 회장 집에 개가 있다는데 그 개를 직접 봐주러 간 분이 계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2008년까지 10년 와 계셨던 정형인 집사님, 이건희 회장이 개를 워낙 좋아해서 그 개 하나의 정성이 너무 지극해서 그 개 때문에 한번 그 집에 직접 방문해서 했던 이야기를 이야기해요. 개 한 마리 저고 3억, 저거 5억, 다 그렇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에. 우리 교인 3억, 5억 세운 사람 몇 없지 않습니까? 재벌 집 강아지 한 마리도 그만큼 부자인데. 신풍부자 돈 얼마 가지고 거기서 부자라고 좀 돈 적은 사람 옆구리 막 쥐 박고 식모처럼 부려 먹고 졸장부라 그렇습니다. 이제 저처럼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면 그렇습니다.
 
경남의 거창이라는 데는 대한민국 중에서도 좀 유독 심한 산 속의 분지라 그럽니다. 높은 산 속에 마을. 분지는 더러 들어 있는데 대구도 분지입니다. 그런데 대구는 큰 분지가 되다보니까 분지라도 우물이 크다 보니까 제법 넓습니다. 그 창은 좁은데 분지가 되어 놓으니까 그 안에서 자라면 세계에서 몇 등 하는 줄 압니다, 이 인간들이. 저도 그렇게 자라다 보니까 이 집 저 집 여러 집 앞에서 부자면 우리 집이 세계 제일 부자였습니다, 이 소리가 나오는데 별 불편이 없습니다. 좀 어디서 놀던 사람 본 사람들이 보면 저게 거짓말은 아니지만은 어지간히 우물 안의 개구리, 우물도 어지간히 요강보다 더 작은 우물인가 보다, 저러니 저렇게 큰소리치지. 본 게 그거니 그리 되어지는 겁니다.
 
줄어드는 의냐, 하나님은 죄인으로 보십니다. 죄를 딱 지었을 때 죄 그러면 이미 늦었습니다. 줄어드는 걸 볼 때 하나님이 형편을 주지 않으니 전도할 기회가 없어 줄어든다, 그 내면을 보면 신앙은 그대로인데 내가 준 환경에 따라 넓고 주는 거다, 이렇게 보십니다. 이게 줄어든 것은 이건 이 사람 내면의 한 신앙 자체가 지금 50은 돼야 되는데 10까지 내려왔다, 이때 계량기 숫자를 보면서 하나만 더 내려가면 넌 소돔에 롯 된다. 다른 사람 셋 넷인데 저는 아홉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넌 열이 마지막인데 열에서 한 걸음 더 내려가면 넌 타락이다. 이게 사람마다 다릅니다. 소돔에 간 롯을 두고 아브라함은 보이는 머리 숫자를 헤아렸습니다. 몇 명은 그래도 의인이라야 되는데 큰 의인은 아니더라도 죄인은 아니라야 되는데 그 속에 확장되는 의의를 말한 겁니다. 연약한 롯이 연약하니 또 애매한 거 하나 전도하고 둘 전도하고 그래서 별 것 없는 열이 되면 하나가 열이나 되었어? 그렇다면 기다려야지 또 은혜도 줘야지 이리 되어지고, 천하를 뒤흔들 사울 같은 의인이 이게 숫자가 줄어들면 숫자가 줄어들지도 않았는데 이게 마음을 딱 바꾸면 내가 버렸노라, 이미 심판은 떨어져버린 겁니다. 소돔과 창세기 18장의 기록은 보이는 의인의 숫자를 가지고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난 내가 내 속에 나의 신앙을 볼 때 처음 신앙생활을 하던 첫 몇 년, 그리고 중간쯤 되었을 때 그때 그리고 지금을 살펴보면, 신앙생활 할 때 처음보다는 중간이 그래도 좀 나았다, 지금은 당연히 좀 더 낫다. 우리 전체 교회로 보면 뭐 중간도 안 되지만 그래도 조금 조금 나아진다. 교회로 봐서는 한 수십 년 믿고도 저 모양인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그 말을 하지만은 주님은 자라 가는 신앙이니 여기에 소망이 있고 이 끝을 들고 무엇으로 바꿀는지 그 참 기대해볼 만한 이런 신앙이 되어집니다. 유명한 신앙가가 한 발 딱 빼면 그 한 발 뺀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과 사명 때문에 그냥 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근데 주님은 “중심을 보시느니라” 내면을 봅니다. 넌 너의 속에 의가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줄어드는 것만큼 네 속의 옛사람이 의를 하나 둘 자꾸 자꾸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몇 명까지 자기편이 되었느냐? 6월 1일인가 투표합니까? 시장 둘이 팽팽한데
 
내 편은 꽉 붙들고 저쪽 편 하나 데리고 둘 데리고 오면 이제 시장되는 거고, 여수시 다 날 시장으로 믿고 있는데 싶었는데 하나 둘 슬금슬금슬금 빠지는데 이쪽 게 저쪽 가고 가다 보면 잠깐 그냥 바뀔 수 있는 겁니다. 그런 걸 볼 때도 내가 미는 쪽이 되라 말라 그런 것은 좀 외면해 놓으시고, 내가 내 마음속에 나의 죄와 나의 의, 나의 장점과 단점을 계산하면서 어려서보다 지금은 철도 참 많이 들었다. 어려서는 참 불효자인데 이제는 효도도 좀 생겼다. 젊어 결혼하고 아이 때문에 아내가 힘들 때는 뭐 친구들하고 낚시 가니 등산가니 그러다가 아이 아이 때문에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40대 50대가 돼서 애도 업어주고 뭐 설거지도 해주고 그러면 이 사람은 팔푼이라 그런 게 아니라 이 지금 철이 들고 있는 겁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고 의로운 것은 의고 의는 의고 죄는 죄고 딱딱 잘라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의가 자라 가느냐? 죄가 자라 가느냐? 롯이 간 소돔은 소돔이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죄가 자꾸 더 힘을 얻고 있었고 오늘 나는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볼 때 뭐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도 이겼는데 중학교 가서는 선배만 이기고 고등학교 가서는 친구한테도 양보하고 사회생활 하면서는 그 돈 버느라고 모두들 얼마나 애쓰면서 나한테 월급을 주니 월급 받고 일당을 받는 입장에서는 주인한테 돈만큼은 극진히 해야 되겠구나, 그러면 첫 직장에 가 가지고 뭐 버릇없니 예의 없니 뭔 말이 저 따위라 그 소리는 듣지 말아야 됩니다.
 
아직까지는 제가 여기 있고 우리 청년들 소년들 사회 직장 처음 나가 가지고 10의 8, 9은 그래도 좀 괜찮네, 이런 말 들었습니다. 근데 여기가 천국이 아닌데 100점이겠습니까? 한 두 사람은? 뭐 저래 소리도 듣는 거지. 그런 말 듣고 어 집하고 틀리는구나, 교회와 다르는구나. 그리고 그 한 번의 경험은 평생에 다시 두 번 하면 안 됩니다. 저 방송실 안에 지금 잘 기억하고 듣고 계시지요? 한 번은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제 선배 저 가르친 사람한테 칭찬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은 좀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다가 나아지는 거지. 착한 사람이 늘 착한 것하고 안 착한 사람이 착한 걸로 자라가는 것하고 하나님은 이걸 더 기뻐하십니다. 한 번은 그래도 두 번은 안 됩니다. 한 번 그러고 두 번 그러는 사람은 대개는 죽는 날까지 그 짓 합니다. 혹시 지금 두 번 세 번까지 간 사람들, 안중근 의사 이 손가락을 자르고 결심하듯이 이 손가락 중에 이 끝 하나는 저 잘라내도 괜찮답니다. 정형외과 가면 마취해서 안 아프게 딱 잘라줄 겁니다. 이거 하나 잘라내면 안중근이 되는 겁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착한 사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취직할 때도 써먹고 전 애국자라 이렇습니다. 오늘의 안중근입니다 그래 취직도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는 한 번으로 알아야 되는데 두 번 세 번 제가 실수했습니다, 더 하다가는 노아 홍수 꼴 나고 소돔 꼴 나겠는데 이제 이것으로 제가 마지막에 배수진을 치고 돌아서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평생 잘한 사람이나 이 사람이나 똑같이 봅니다. 이 사람을 더 기뻐합니다. ‘그래? 너도 사람이라 잘못한 게 있는데 사람이 잘못한 것을 해놓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아는 사람이 적고 알아도 돌아서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넌 알았고 돌아섰느냐? 그러면 내가 네 편 되어서 마음껏 밀어줄게.’ 이리 됩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다윗은 착하게 태어나 죽을 때까지 착한 사람 아닙니다. 사무엘은 착하게 나서 착하게 갔습니다. 근데 그 사무엘도 역사를 넓혀보면 뭐 같은 엄마 때문에 말도 못하는 데서 출발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길러가는 역사입니다.
 
오늘 이 밤에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며 예전보다는 요 근래가 좀 나아야 됩니다. 요 근래보다는 오늘이 좀 나아야 됩니다. 늘 그러지는 못해도 올라가다 내려가다 올라가다 내려가다 그게 사람이나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씩 조금씩 기 올라가면 하나님이 도우셔서 하늘 꼭대기까지 올려주십니다. 한 사람 사람 다 그리 되시도록, 창세기 19장 32절, 33절에 소돔의 의인의 숫자를 헤아린 것은 오늘 내 속에 너의 장점 너의 좋은 점이 자꾸 나아지는 쪽이냐? 슬금슬금 줄어들고 있느냐? 심각하게 계산해 봐야 됩니다.
 
양쪽 집안이 다 이해할 집안이니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부산의 동천교회 이치영 목사님 집안은 일제 때 해방 후에 이 사람도 좀 문제 저 사람도 문제, 줄어드는 의인의 집이었습니다. 그 이치영 목사님 집에 작은 집은 뭐 비슷한데 좀 더 못 났는데 하나 둘 좀 괜찮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차이가 많아졌습니다. 근데 이제 부모 세대 뒤에 자녀 세대에 오니까 그 작은 집 좀 괜찮은 집은 하나 둘 하나 둘 슬금슬금 밑으로 후퇴를 하고 이치영 목사님 형제간들은 부모 때문에 참 어려웠는데 한 사람 결심하고 한 사람 나아지고 그래봐야 뭐 시골에서 밑바닥인데 얼마나 밥 세 끼나 먹으면 다행이지 이래 싶었는데 아 좀 지나고 나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 돼?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신앙이 있어? 뭐 그냥 목회할 만한 괜찮은 분들이 그냥 막 여기저기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이쪽은 싹 다 쓸고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불신자들은 그래 말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오르막만 올려 영원토록 올라가도록 하나님이 위에서 끌어주십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피할 수는 없지만은 전반적으로 할아버지 시대보다는 부모의 시대가 좀 신앙은 있어야 된다.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이니까 나하고 별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나, 할아버지보다는 아버지가 나아야 되는데 못 그랬으면 나 대에서는 어떤 세상에 손해가 있어도 한 걸음 더 전진한다. 이럴 때 이 집안 전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희망이 있네, 그 은혜를 좀 밀어줘야 되겠네. 이렇게 되어집니다. 할아버지는 온 공회에 최고의 신앙으로 알려져 있고 앉아 계신 분 중에 지금 한 분입니다. 자녀들은 아 저기서도 잘 믿고 저기서도 잘 믿고 저기서도 잘 믿는데 뭐 그냥 그만 그만 그만이고, 그러면 손주 때에는 아이 그렇게 잘 믿은 할아버지 밑에 자녀분들이 한 칸 내려왔으면 나라도 올라가든지 적어도 더 이상 후퇴는 없다 이렇게 돼야 되는데 위에서 한 칸 내려왔으니 뭐 나야 뭐 한 칸 더 내려오는 그때, 바로 여기 소돔 됩니다. 이걸 심각하게 듣고 마음먹으면 내려오던 게 방향이 바뀌면서 다시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자라가는 의가 되도록 교회도 우리 공회도 우리 공회도 집회에 몇 명이 오냐 안 오냐 누가 검사하며 누가 어디 놓고 뭐 하겠습니까? 왜 그런 걸 살펴보느냐, 추운 한겨울 석 달을 공회에 주셨으니 누구 말에 의하면 다 흩어지고 하나도 없을 걸 했는데 아직도 유지가 되고 있느냐, 그렇게까지 안팎에서 몇 백 건이 들어오는데도 견디느냐,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환란을 마치면 굉장하겠다. 이렇게 보기도 하는 겁니다. 그냥 이 풍랑 인하여 아야 침몰을 합니다, 그리 되는 건지. 출렁이니까 이 풍랑 인연하여 아예 배가 그냥 잠수함으로 쑥 들어가렵니다. 이렇게 되었는가, 저렇게 되었는가. 이런 흐름을 보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시고 10대 정도면 10대 후반이면 뭐 아직도 어리니까 뭐 20대 되면 그때부터 잘할게요. 그런 소리 꿈에도 생각 마시고 10대에 돌아서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 나가지 못하시면 안 봐도 그 인생 끝은 뻔합니다. 10대 때 돌아서고 제정신 못 차린 사람이 뒤에 돌아섰다면 하나님께서 죽을 고비를 두 번 줬던 세 번 줬던 영 담갔다가 꺼내면 꺼내지 좋게는 방향 바꾸지 않습니다. 10대 후반 돌아서셔야 됩니다. 20대, 달려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집안도 보시고 내 가족도 보시고 나도 보시고, 자꾸 보다 보면 밝혀지고 힘이 날 겁니다.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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