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2.5.1 창18:32 전진과 후퇴, 의의 진행방향에 따른 기회, 롯의 최소 기회 50인, 소돔의 자기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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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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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501 주후
 
제목 : 전진과 후퇴, 의의 진행방향에 따른 기회, 롯의 최소 기회 50인, 소돔의 자기 기회
 
찬송 : 12장(예수의 이름 권세여),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 87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 창세기 18장 32절 -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소돔보다 더 악한 오늘 세상에 롯보다 못한 저희들이 시대를 읽으며, 주의 마음 주의 앞 날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들고 계신 복과 화를 살펴보나이다. 아무리 돌아봐도 저희들의 살아 온 걸음으로는 복을 원하나 복을 기대할 수 없고, 시대와 우리를 돌아볼 때 감당 못 할 재앙을 예견하는 것은, 자연의 양심과 특별의 계시로 알 수가 있는데, 오늘도 날 중에 귀한 주일 날 시간 중에 귀한 예배 시간으로, 창세기 18장에 소돔을 다시 돌아보게 하심은, 그런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복된 앞날을 주고자, 소원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주의 사랑이오니 삼가 각자 자기 마음을 살펴 시대를 통해 자기를 읽으며, 자기 속에 주님이 원하는 잘못된 것 정리하고 깨끗하게 돌아봄으로, 지난날의 부족한 만큼 더욱 앞날에 성결과 충성으로 달려, 주님은 기회로 열어 주시고 우리는 복되게 자라가는 앞날이 되어, 홍수 속에 노아의 새 출발이 있고, 소돔 후에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앞날을 더욱 열어 주셨듯이, 소망 속에 귀한 이 길을 달려 이 길 끝에 준비하고 계시는 열매와 복된 영생을 받아가지도록, 오후에도 저희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변화의 능력으로 함께 해 주옵소서. 평생을 이 한 길에 전력 기울인 이강준 집사님 유덕업 집사님 부부, 그 생애의 중심과 쏟은 충성 돌아 보사, 주님 앞에 서야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 시점에, 부족한 저들을 위하여 더욱 충성할 수 있도록 생존의 은혜를 열어 주시고, 불러 가셔야 된다면 그 가정에 지난날을 생각하고 소망의 앞날을 열어, 한 종을 데려감으로 남은 모든 이들이 더욱 충성하여, 주님을 향한 소망이 불일 듯 일어나게 인도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소돔을 두고 하나님께서 정리를 하실는지 기회를 주실는지,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과 오간 대화를 기록하셨습니다. 이 대화의 내용이 자세합니다. 위에 20절을 보시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다.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다. 소돔 사람은 전부가 다 죄인입니다. 그러니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따로 부르짖을 일이 없습니다. 누가 부르짖었겠는가? 소돔 근처에 소돔을 두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브라함 밖에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물이 봐도 하늘이 보고 땅이 봐도 강이 보고 들판이 봐도, 이 소돔이 먹고 살기 좋으므로 홍수 이전처럼 일반적인 죄악도 넘치는데, 여기에 더하여 소돔에만 쏟아지는 이 음란의 죄악이 너무 중대하여, 하늘도 땅도 동물도 두고 보지 못하는 만물의 탄식 만물의 호소가 위로 올라갔습니다. 품꾼의 주지 않는 삯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주인이 줘야 될 일당을 주지 않으면 그 일당이 하나님께 호소를 합니다. 일했는데 주지 않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이런 세밀한 계산까지가 다 올라가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그 부르짖음이 크다. 이건 천하가 봐도 이거는 누가 봐도 자연이 봐도 그냥 둘 수가 없는 지경이 되면, 그러면 하나님이 개입을 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세밀하게 개입하시고 잘 믿는 사람은 모르는 것까지 더 세밀하게 개입 하시고, 안 믿는 세상은 세상 정도로 던져두지마는 안 믿는 세상도 도가 지나치면, 하나님의 우주 경영 역사를 위해서라도 손을 댑니다.
 
소돔은 노아 때와 달리 한 지역의 문제였습니다. 노아 홍수는 시대적 전부의 문제였고 시대 전부가 차고 넘치니, 전반적으로 모든 죄악이 발달했고 일반적으로 손댈 정도가 아니라, 아래 위에 홍수로 싹 대청소를 해 버렸고, 소돔 때는 세상이 깨끗해서가 아니라 소돔이 지역적으로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이 소돔만 하나님이 특별히 손을 보고 계십니다. 그 부르짖음이 크다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그 모든 심한 죄, 부르짖음을 직접 조사하고 직접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이 몰라서 와야 되고 조사해야 된다는 말씀처럼 적었으나, 하나님이 모를 리는 없는 것이고 우리에게 계산해보고 우리에게 알라고 이렇게 기록해 주신 겁니다. 소돔을 통해 역사의 소돔 같은 그런 참화를 살펴보며 모든 것을 마지막에 내 속으로 가지고 와서, 나는 내 속에 하나님께서 이면, 이 아이, 이런 산, 이런 애착에 대해서 기다리고 계실런가? 복을 주실런가? 아니면 이 한 부분을 요절을 내 버리는 이런 하나님의 진노가 올 것인가? 시대적인 죄악은 홍수로 살피면 되고 한 지역적인 것은 소돔을 통해 살피면 되고, 소돔만 가지고 어려우면 소돔은 성경이니까, 오전에 원자탄이 떨어졌던 일본의 두 도시를 역사적으로 연구해보면, 불신자들도 다 하는 이야기고 상식이 있습니다.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습니다.
 
서양은 독일이 지나쳤다 그러는데 그 독일하고 일본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몰라 그렇지. 그래서 역사에 없는 유황불비로 가지고 쏟았습니다. 유황불비보다 더 발전되고 더 참혹한 것으로, 그리고 세월이 한 50년 지났을까? 지금부터 한 30여 년 전, 지금 소련 전쟁 한 곳 중에 하나가 체르노빌이라는 데인데, 여기 일본 보다 더 큰 게 터져서 한 번 쓸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으로 편리한 것이 좋으나 편리한 것이 너무 지나치니까 그것도 참 문제다. 일반적으로 이정도 되어 있습니다. 근데 왜 하필 그곳일까?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 이후에 소련의 한 50년 70년 했던 그 일을 보면, 그분들에게는 안 되었지만은 그 피할 수가 없겠구나! 너무 지나치면 불신자들도 하늘이 천벌을 내리더라고 그러는데, 믿는 우리는 이런저런 몇 가지를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을 아는데 별로 불편이 없습니다. 이 모든 지식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며, 우리 가정 안에 하나님이 이 한 면을 두고 이런 때 이런 점을 두고, 특별히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 있겠는가? 그렇게 살펴 이 소돔 땅 막 바로 유황불비가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천사가 롯을 데리고 나와 버리는 바람에 롯은 그 자리를 피합니다. 잠깐이라도 먼저 알면 피합니다. 쏟아지기 시작하면 피하는 법은 없습니다. 아직 큰 문제가 없으면, 지금은 잘 믿을 때요 밀어 주시니, 얼마든지 순풍에 돛 달고 하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되는 때고, 조짐이 심각하면 바로 자기를 살펴보면 믿는 우리에게는, 어느 지경에서라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그걸 깨달으라고 이렇게 많은 말씀으로 적어주셨습니다.
 
22절, 천사들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을 향하여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가는 뒷모습을 보고 아브라함이 결정, 결판을 지을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합니다. 23절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비록 죄 많은 비록 한 인간이지만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로 진리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의인이 하나 있다면 악인과 함께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 진리의 공의에 맞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넘길 수 있는 분은 에스겔 14장 14절을 봅니다. 1168 쪽입니다. “비록 노아” 천하가 물바다 될 때 구원받은 노아 “다니엘” 사자 굴속에 들어갔다가 살아 나온 다니엘입니다. 그래서 노아 다니엘을 헤아리고 있는 겁니다. 천하가 심판받을 때 구원 받은 노아, 사자 굴속에 살아나온 다니엘, 사탄이 하나님께 허락을 받고 쓸어버린 욥, 그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사람들인데, 그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자기 의로 자기 생명만 건지지,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천하의 의인이니, 옆에 있는 죄인 하나 데리고 나오지 않겠는가? 안 됩니다. 자기 의로 자기 생명 하나만 건지리라 이게 성경입니다. 다니엘 때문에 새 친구가 구원을 받았다면, 다니엘은 의인이고 새 친구는 죄인인데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의인 다니엘이 새 친구를 전도해서 의인을 만들었기 때문에, 다니엘이 새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이리 되는 거지, 멸망 받을 죄를 끝까지 버티고 있으면 그건 멸망이지 의로 바꾸지를 못합니다.
 
노아는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나왔지 않느냐? 노아의 방주 준비에 따라붙은 가족만 방주에 탔지, 노아 자기 직계 식구 중에서도 노아의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한 명도 살리기를 못 했습니다. 노아 나이를 계산해 보면 그렇게 나옵니다. 이번 집회에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노아 480살에 600살 120년 후에 홍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셈, 함, 야벳은 500세 이후에 태어납니다. 그리고 며느리들은 당연히 몇 십 년 더 뒤에 입니다. 비록 뒤에라도 노아의 길에 합류한 사람, 돌이 킨 사람은 방주 속이고, 노아의 방주 예언 이전부터 있었어도 부모든 그 누구든 또 다른 자녀라도 안 됩니다. 노아가 의인인데 의인 노아 때문에 자기 죄를 의로 바꾼 의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다음 에스겔 14장 이번에는 20절입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자녀도 건지지 못한다. 노아도 세 자녀는 의로 돌아섰기 때문에 방주 구원이나, 다른 자녀 다른 가족은 데리고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자기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14절에 말씀을 20절에 반복하면서 한 번 더 깊이 강조를 하고 그렇게 계십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소돔이 구원 받지는 못합니다. 대신에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그 소돔을 멸하시려나이까” 거기에는 의인이 있는데 아무리 많아도 죄인 속에 의인을 섞어 멸망시켜서야 되겠나이까? 하나님께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배웠으면 그렇게 질문을 하도록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24절 창세기 18장 25절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 합니다” 하나님이라도 이것은 아니 됩니다. 하나님을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요렇게 질문하고 요렇게 발전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이게 유기적인 관계라 그렇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평균이 똑같이 처리하면 그건 평등이 아닙니다. 불평등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신다 했으니 공의로 행하셔야 됩니다. 소돔에 의인이 있다면 의인은 벌하지 못하십니다. 26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소돔 성중에서 의인 50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소돔과 소돔 지경을 용서하리라. 있는 죄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롯 한 가정이 갔는데 롯 한 가정이 가가지고 의인 50을 만들어가고 있다면, 기다리면 100이 되고 200이 되는데 왜 뿌리를 뽑고 왜 낫을 들겠습니까? 바로 이게 구원 운동이니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기다릴 일이지. 그 용서란 죄인이 의인으로 하나씩 돌아서는 걸 용서라 그럽니다. 죄의 사슬 죄에 묶인 걸 해방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용서는 죄로부터 해방입니다.
 
죄지은 죄인에게 합의 해줘서 그다음 더 큰 죄 지으라. 이거는 죄를 죄 속으로 밀어 넣는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저 사람이 죄로부터 해방이 될까? 쥐 박는 게 좋을까? 봐 주는 게 좋을까?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26절 여호와께서 50인을 찾으라. 그리고 아브라함이 손꼽아 헤아려 봅니다. 욥이란 사람은 원래. 교안 앞입니다. 아브라함의 동지입니다. 조카고 후배고 교인이지만은 신앙의 출발을 함께한 아브라함의 신앙의 동지입니다. 그냥 롯은 그냥 롯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동지입니다. 근데 창세기 20장에 가보면 아비멜렉 문제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집안을 묶어 놨다가, 아브라함을 소개하면서 그는 선지자라. 선지자 제도는 모세 이후에 나오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는 선지자라. 안 믿는 팔레스타인, 안 믿는 가나안, 안 믿는 세상에 하나님을 모신 아브라함은, 그 아브라함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살펴 전하는 선지입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의 동지며 예삿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조상입니다. 신앙의 출발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전부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동지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선지입니다. 그리고 롯은 아브라함과 재산을 동서로 나눈 사람입니다. 역량이 같습니다. 실력이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동쪽으로 가면 내가 서쪽 가겠다. 네가 서쪽 가면 내가 동쪽 가겠다. 좌우를 택하라. 아브라함과 동등에 이런 롯입니다. 물론 죄 지을 때 핑계 대고 숨을 때는 아브라함은 삼촌이고 아브라함은 먼저고 아브라함은 위대하고, 난 뒤따라 그 밑에 따라다니는 어린 양입니다. 그러고 싶지만은, 죄지을 때는 그렇게 모두 뒤에 숨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지도자가 있는데 아 교회에 당회가 있고 장로가 있고 목사가 있으니, 그들이 시대를 상대하고 죄를 이기고 난 뭐 별 거 없으니 뒤따라가는 사람인데 이러는데, 하나님은 한 명 한명을 찍어 아브라함의 의로 너 구원받는 거 아니고, 노아의 의로 죄인이 구원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은 일대입니다. 자기 의로 자기하나 구원 받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배우고 아브라함 때문에 신세지고 아브라함 때문에 지켜 보는 것은 다행이나,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입장이 꼭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동지, 시대를 향하여 아브라함과 함께 선지, 그리고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과 받은 복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나누는 문제를 생깁니다.
 
아브라함의 절반이 소돔을 들어간 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수제자가 소돔에 들어간 겁니다. 아브라함이 갔으면 소돔 전부가 다 회개 했을 것이고, 아브라함이 아니라 롯이 갔기 때문에 롯이라도 50인의 의인은 만들었어야 됩니다. 13장부터 읽어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나뉘기 전의 형편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 아브라함도 롯도 양떼가 많아지니까, 한 지역에 함께 있을 수가 없어 둘이 나뉘게 되어 집니다. 이때 아브라함과 롯의 분쟁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종들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하는데, 롯의 종들도 롯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했기 때문에 종과 종들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일을 보니까 롯도 의인, 롯의 아내, 롯에게는 딸 둘이 있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그리고 롯이 데리고 있던 종의 숫자가 적지를 않았는데, 이 종들의 충성이 롯을 위하여 아브라함의 종들과 전쟁을 벌이는 분쟁을 하는 정도입니다. 주인을 위하여 충성하는 종들, 그 주인이 돈하면 돈이고 그 주인이 양보하면 양보고 그 주인을 위한 종들인데, 롯의 마음이 종들을 향하여 주님 밖에 없다, 천국 밖에 없다, 구원 밖에 없다 이렇게 되었으면, 앞서며 뒤서며 아내도 돌아섰을 것이고, 딸 둘은 소유기 때문에 구약에 부모가 마음먹으면 되어지는 딸 둘입니다. 넷. 그리고 종들이 몇 명인지 모르나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서 점점 소돔에 바로 믿는 사람들을 늘려 50은 되어야 된다. 하나님께서 50을 먼저 말씀하심은 50으로 아브라함과 대화하심은, 아브라함이 생각해도 50인 이하일 리가 없고, 하나님도 50이면 늘어 나가는 의기 때문에 그렇다면 기다리지, 이게 50명입니다.
 
여호와께서 소돔 성중에 의인 50을 찾아라. 그러면 기다린다, 용서한다. 죄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인이 늘어나가며 죄가 자꾸 없어지니까, 죄로부터 해방 죄로부터 해방이 이어지면, 그 죄로부터 해방을 기다리는 게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50을 놨습니다. 위를 부른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다 알고 소돔을 알기 때문에, 롯의 약함도 알기 때문에 50은 되어야하고 아브라함도 헤아려 볼 때 50은 되어야 됩니다. 되지 않았을까 헤아려 봅니다. 그뭐 종까지 그렇게 되겠는가? 뒤에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데리고 올 때, 아브라함이 가지 않고 이삭을 보내지 않고 종 사환을 불러다가,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너라. 여긴 안 된다. 밧단 아람으로 가거라. 장소를 정합니다. 그리고 온다면 데리고 와라. 이삭을 데려가는 조건은 아니 된다. 몇 가지 이렇게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의 그 지시를 가지고 출발 하는 사환이, 시키면 무조건 기계적으로 하는 종이었으면 그대로만 갔을 건데, 배웠고 신앙이 점점 자라가 하나님과 직접 대화가 되는 사환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지도를 받고 출발해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그 기도를 보니, 아브라함이 가르쳐 주지 않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있고 직접 대화가 있고, 그게 다 이루어지면서 리브가를 데리고 옵니다. 아브라함의 종을 보니까 말만 종이지 옮겨진 아브라함, 종을 보냈는데 이 종이 가서 마지막까지 오는 걸 보니까 아브라함이 가서 데리고 오는 것과 꼭 같습니다. 나무는 이 나무인데 열매를 맺어 열매를 따다가 심으면, 이 나무가 똑같은 나무가 자꾸 이렇게 뻗어 나가는 것이 생명의 본질입니다. 살아있으면 생명이 있는 것이고 생명은 자라야 되고 생명이 자라면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심겨지면 원래 나무와 같은 이렇게 반복이 되어 지면서 늘어나가는 것을 생명이라 그럽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동지, 아브라함과 같은 선지가 소돔에 갔으면 큰 죄악을 작은 죄로 돌리고, 작은 죄를 벗어나 의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게 만들고, 작은 의가 큰 의로 이렇게 점점 나아져서, 아브라함만큼 갑작스럽게 큰 복을 받지는 못해도 자꾸만 좋아지는 발전만은 있어야 됩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다. 전진하는 의(전진하는 의), 후퇴하는 의(후퇴하는 의). 죄와 의를 성경에 많이 말씀하시는데 이 죄와 의는, 죄는 죄고 의는 의기 때문에 죄와 의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죄가 죄만큼 중요하고 의가 의만큼 중요한 것은 이게 진행을 보셔야 됩니다. 큰 죄가 작은 죄로 줄어들면 하나님은 의로 보십니다. 큰 죄가 작은 죄로 줄어들면 작은 죄가 없어질 것이고, 작은 의로 발전 할 것이고 큰 의로 나갈 거고 이걸 반대로 뒤집으면, 아무리 큰 의인이라도 큰 의인이 후퇴를 하면, 아직도 중간정도 의인이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하나님은 후퇴하는 이 면을 보고 죄인의 길에 섰다. 이래 보십니다. 후퇴하는 의, 회개하며 나아지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더 귀하게 보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기도를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의인 바리새인과 죄인 세리가 하나님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바리새인 의인은 7일에 이틀 금식합니다. 십일조 합니다. 자기 의로운 걸 펼쳐 놨습니다. 십일조가 틀리고 금식기도가 틀렸겠습니까? 옳은 게 틀렸겠습니까? 의는 전부 다 좋은 겁니다. 근데 이 의는 더 이상 고칠 죄가 없는 가 봅니다. 중단된 의입니다.
 
자라가는 의가 다 고쳤고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으면, 자기 눈에는 더 이상 고칠 것이 없으니 자랑할 게 많은데,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 몸과 마음 안에 고칠 것은 늘 새롭게 나오게 되어 있는데, 지난날 것은 다 고쳤는데 현재 더 고칠게 없으니, 하나님 앞에 잘한 것은 내놓을게 있고 더 이상 고칠게 없다는 것은, 자라가는 의인의 의가 성장을 중단을 해버렸습니다. 뭐 100점이 100점 유지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기계는 세워 두면 세워두고 돌은 세워두면 세워 두는데, 생명이란 자라가다가 더 이상 성장이 없고 더 이상 발전이 없으면, 그 다음 내려갑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 기도하러 와서 옳은 거 좋은 거 잘한 장점만 쭉 펼쳐 놨습니다. 새로운 죄를 회개하고 씻는 새로운 발전이 없고 새 출발이 없습니다. 성장이 멈췄습니다. 성장만 멈춘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밑으로 내려갑니다.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타락이라 그럽니다. 하나님 볼 때. 인간이 볼 때는 아직도 아득한 의인인데 하나님이 볼 때는 올라오다가 중단했습니다. 그러면 내려가고 있는 겁니다. 본인이 몰라서 그렇지.
 
의인 바리새인 기도하는데 저 한 구석에 죄인 세리는, 죄인 중에 괴수를 세리라하는데 죄인 세리는, 하늘을 향하여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죄가 너무 많아 이죄 저죄 헤아리지도 못 해서, 그냥 죄인이로소이다 이게 뭐 고칠게 한두 가지 입니까? 고장 난 게 한두 가지입니까? 한두 가지라야 지적하고 내 놓겠는데 너무 많아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세리는 자기 속에 문제점을 봤습니다. 아이 참 엉망이구나!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인간으로는 못 고친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은혜를 주셔야 이게 또 새로 하나씩 고쳐 나가겠나이다. 하늘을 향한 은혜의 출발이고 바리새인은 더 이상 주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늘의 하나님만큼 자기가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합니다. 이게 죄 중에 제일 큰 죄인데,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쪽으로 갑니다. 의인인데 왜 진노가 가느냐? 왜 죄인인데 긍휼이 가느냐? 귀신은 요런 것도 해석을 살짝 돌려, 죄를 많이 지어야 하나님이 복 주신다. 그러고 죄를 짓게 합니다. 큰 죄를 줄였느냐? 많은 죄를 쪼개어 점점 약화를 시켰느냐? 요게 하나님 보시는 죄와 의인데,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해서 죄를 많이 지어야 나한테 온다. 죄를 안 지으면 의인되고 하나님께 버림받는다. 귀신은 어쨌든 말 한마디 가지고 천하를 다 삼킵니다. 세상도 그렇고 어려도 그런 것은 눈치가 있으면 파악합니다. 그런데 현혹되지 마십시다.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작은 의가 점점 커져 가면 이죄로 해방 저 죄로 해방, 이 동네 저 골목 자꾸 죄로부터 해방, 해방 이걸 원하시고 이걸 기다리시고 이걸 밀어 주시는데 왜 중단을 시키겠습니까? 그 롯의 출발은 아브라함의 동기였고 선지자였고 선지였으니 이게 아브라함 옆에 있을 때는, 아브라함의 빛이 강하니 롯의 빛은 따로 켤 것도 없습니다. 대낮에 태양이 내리 쬐이니, 호롱불이 있지만은 호롱불 덕 볼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없는 곳에 가면 작은 호롱불이 태양 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 옆에 따라 다닐 때는 롯의 의, 롯의 선지는 그냥 아브라함께 순종만 하면 되는데, 헤어져 소돔 큰 죄인들이 사는 곳으로 갔으니, 이 새카만데 갔으면 작은 등불이 빛이 되어 아내를 더욱 챙겨, 딸 둘을 바로 길러 종들을 더 야물게 다 잡아, 아브라함의 빛 가운데서는 돈만 벌면 되었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해결하니까. 아브라함이 없는 죄인의 이 소돔 안에 와서는 이제는 돈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죄악에 잘못 물들면 천벌 받는다. 아브라함 있을 때는 그냥 성실하게 돈만 많이 벌면 되기 때문에, 롯과 주변까지 생각하며 의인의 등대 역할을 했던 아브라함의 재산이나, 아브라함의 빛 밑에서 돈만 번 롯이나 비슷했습니다.
 
소돔으로 갔으면 이제는 소돔의 아브라함은 롯입니다.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빛을 들어야 됩니다. 죄악에 물들지를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머슴들에게도 아브라함이 책임졌던 그 시절은, 열심히 우리가 하루하루 충성해서 돈만 벌어도, 나머지는 아브라함이 해결했으나 여기서는 우리가 주님 붙들고 주의 복 받아야 된다. 돈이 급한 것이 아니다. 이리 되었을 터인데, 아브라함 밑에 돈만 벌면 되던 시절 그 심보 그 자세, 그대로 소돔 죄인 속에 들어가 돈 세상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니까, 이 종들이 전부 다 소돔 속에 흩어져 죄인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뒤에 천사가 소돔을 찾았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옆에 종들이 없었습니다. 산업은 벌써 다 없어졌고, 산업은 없어졌고 종들은 떠났고 그래도 가족이라 딸 둘은 제 마음대로 가야 되는데, 이 딸 둘은 벌써 불신 정혼을 해 버렸습니다. 신앙 신앙해봐야 먹고 사는데 불편한데 이 좋은 세상을 즐겨야 되는데, 신앙은 쓸데없는 시집살이에 잔소리 같고 공연히 이거는 가시 같고, 몸도 안 아픈데 주사바늘이 들어오면 그건 고문 아닙니까? 아주 편하게 딸 둘은 그냥 세상으로 정혼 해버렸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 따라 천국과 한 편 할래? 아버지와 끊어지고 세상과 한 편 할래? 근데 이 세상은 보통 세상이 아니다. 소돔과의 하나입니다. 딸 둘은 완전히 소돔이 돼 버렸습니다.
 
딸이야 그렇다 치고 부부는 한 몸이니, 아내는 나의 절반이고 내 속에 있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니, 이거는 더 붙들어야 되는데 소돔에 재앙이 떨어질 때, 천사가 가족을 데리고 나올 때 보니까, 이 안에는 재앙, 죄악의 도시 소돔을 떠나 지금 살아나려고 도망가는데, 가면서도 소돔을 버리지를 못해 그 시선이 소돔을 향합니다. 돌아보지 말라 했는데 몸은 끌려 떠나면서, 마음은 소돔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소돔의 생활 속에 아내의 마음의 소돔이 되었고, 가치관이 소돔이 되었고 체질이 소돔이 되었고, 자기의 전부가 소돔이기 때문에 소돔으로부터 끌려 도망을 가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저게 내 건데, 그러면 몸이 떠났으나 하나님은 소돔에 재앙으로 그 아내도 심판 하는 것이 맞습니다. 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 한번 돌아봤다고 그렇게까지 화난다고 하나님도 그냥 화가 나서 분풀이를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우리처럼 분풀이로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대로 해 준 겁니다.
 
천사가 손목을 잡고 끌어내는데도 너는 소돔 밖에 없느냐? 소돔을 두고는 빈껍데기만 나가지 너 알맹이는 소돔을 떠날 수가 없더냐? 그러면 소돔 안에 벌어지는 상황으로 너 원하는 대로 다 하라. 그렇게 되어 진 것이 아내의 애착이 소돔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집회를 앞두고 창세기 18장 19장을 공부 하는 이유는 그렇습니다. 시대가 어떠냐? 상황이 어떠냐? 여기 따라 대처가 달라집니다. 온 들판에 장마 비가 오면 비가 오니 비를 피할 수 없으니, 빗물을 담고 논물을 보고 시대가 온 세월 속에 추수할 때를 주시면, 너도나도 나가서 겨울을 향하여 가을걷이를 하면 됩니다. 봄이 되면 나가서 심으면 뭐든지 봄이 자라게 하지, 자기의 힘이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는 시대는 넓게 보면 흥수 때고 노아, 좁힌다면 이거 지금 소돔으로 봐야 되겠느냐? 저 순천은 소돔이나 여수는 소돔에서 벗어났다. 뭐 소돔 걱정할 건 없습니다. 서울만 소돔 같은 데지, 지방은 아직까지 건전하냐?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실 때지, 이거 넘쳤다 그냥 두지 못 하겠다 그 정도는 아닐 거 같으면, 좀 더 여유 있게 믿어도 될 듯합니다.
 
구약은 홍수 때라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소돔이라는 지역이 따로 있었으나, 이게 신약으로 오면 시공을 초월해 버리므로, 믿는 사람의 평생은 항상 홍수전입니다. 믿는 사람의 자기 장소는 항상 소돔과 같은 지역 안에 살고 있습니다. 뭐 주변 환경 볼 것 없이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보면, 나 같은 신앙도 신앙이라 할 수 있는가? 참 창피하지, 이래야 소망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중간은 가는데? 이 정도면 중간은 가는 데 이정도면 괜찮은데 가 아니라, 이 정이정도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라고 큰 소리 친 바리새인을 향하여 주님은, 바로 빵점을 내려 버렸습니다. 넌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다. 그게 이스라엘이 구약 교회 마지막 끝나 버린 이유입니다. 내 속을 들여다보며, 아 이래 좋은 시절에 냉난방이 마구 돌아가는 이런 시골에, 주변 환경이 우리는 전부다 산 속에 자연 아닙니까? 자연 속에 냉난방이 돌아가고 시골이면 어렵고 불편해야 되는데,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하게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다 주셨는데, 주시는 게 많으면 찾는 것도 많다 했습니다. 많이 준 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요.
 
손양원 목사님이 여기서 심방 다니실 때는 걸어 다녔습니다. 잘하면 자전거는 타고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자가용 탑니다. 같은 신풍 1번지에 목회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은 걸어 다녔고, 서울까지 하루 종일 걸리는 완행열차를 타셨는데 저는 자가용 탑니다. 손 목사님 보다 10배 이상의 교통과 편리와, 모든 문화와 모든 먹을 것과 모든 좋은 옷을 지금 다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한테 묻는 겁니다. 너보다 10분1, 100분의 1 가지고 손양원은 손양원 되었는데 너는 어느 정도 되느냐? 손 목사님 10배 이상을 받고 그 분의 10분의 1밖에 안되면 10 곱하기 10은 100분의 1입니다. 100분의 1. 손양원 100분의 1이면 우리나라 한 두 손가락 꼽을 겁니다. 일제 말 해방 초기를 산 손양원 보다 오늘은, 시간도 돈도 음식도 속도도 집에 가치도 편리 시설도, 10배가 아니라 100배 좋은 때 아닌가요? 100배 나은 환경을 영육 간에 받아 놓고 그분에게 100분의 1 밖에 안 되면, 100 곱하기 100은 1만분의 1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 가져왔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대로 영원한 영생이 펼쳐진다. 둘 받은 사람에게는 주지 않은 것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둘이니 둘 가져왔을 때 됐다 같다. 하나 받은 사람에게는 영영한 불로 들어가라 그랬는데, 하나 받은 사람은 본전은 가지고 왔습니다. 이자를 못 가지고 와서 그렇지. 그러면 10배 나은 환경을 받고 100배 나은 환경을 받았으면, 본전은 가지고 와야 되는데 본전을 유지했냐? 본전까지를 까먹었느냐? 이걸 물어 보고 계십니다. 적게 받고 환경에 환란을 이겼으면 그분들입니다. 좋게 많은 것을 받았는데 환란을 이기지는 못했어도, 환란이 없어 평안하다면 본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많이 받았는데 환란도 없는데 본전 가지고 전부 까먹고 세상을 기 돌아 댕기느냐? 한 달란트 받았는데 한 달란트 다 까먹고 한 달란트도 남기지 못했느냐? 이자 없는 걸 꾸중하셨는데 본전까지 다 까먹으면, 이건 어떤 계산이라야 공정한 공의로운 계산이겠습니까? 소돔의 환경을 두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조카를 위한 자기 양떼를 위한 사랑의 마음으로 계산을 하고, 하나님도 진노에 하나님의 긍휼의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으로 살펴 주려고 해도, 의인 50은 만들만큼 환경과 여건과 시간이 되었다. 의인 50입니다.
 
이게 쉽습니까? 그 아브라함이 여기에서 5인을 빼고 45인을 찾으면 어떻겠습니까? 그거까지 기다려주마, 헤아려봐야 45인이 나오지를 안 합니다. 서로 먼 곳이 아니라 연락은 되는 데입니다. 의인이 40명쯤이면 어떻겠습니까? 부부 둘, 딸 둘, 딸 둘의 나이를 볼 때 사위 될 둘 여섯, 사돈집이 둘이고 본토박이니까 사돈집에 부부, 형제, 40인은 충분하겠다. 계산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다음 또 깎고 내려갑니다. 30이면 어떻겠나이까? 20. 마지막에 읽은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32절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한 번만 더 말씀을 드립니다. 10명이면 어떻겠나이까? 10명이라도 소돔을 희망을 두시고 한 명이 10명까지 갔으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되겠나이까? 10명까지만 말하고 더 이상은 말을 못 했습니다.용서의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용서를 가지고, 이죄 짓고 1년 죄짓고 10년 죄짓고 몇 십 년 더 기다려 주소서. 이거는 용서를 악용해서 하나님을 전당포에 잡혀 먹는 일입니다. 아무리 악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 정도까지 나가면 그다음 유황불비가 청소를 해 버려야 맞는 때입니다.
 
세상이 정도가 너무 지나쳐 끓어 넘쳤습니다. 우리 주변도 보면 다 그렇게 느끼실 겁니다. 나이가 많지를 못해도 요즘 이것들은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말들을 쉽게 합니다. 10살이 20살한테 나이 먹었으면 네 나이 먹었지 나한테 네가 뭐 그래? 그러고 달라 드는데 또 10살 요것들이 9살한테는 선배라고 선배 짓은 또 다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선배 하나도 빠짐없이 나이 경험 가지고 말하지 말라고 다 불도저로 밀어 놓고, 하루 늦은 것들한테는 지가 선배라고 또 오만 짓은 다 해 버립니다. 그 인간의 그 입과 행동을 가지고 봐도 이것은, 도무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는 정도가 넘어간 겁니다. 20살이 20살 이상은 늙었으니까 다 제쳐버리고 20살부터 새 출발하겠다. 뭐 그럴 수 있지 더 나을 수 있지. 그럼 20살 지는 열아홉한테는 선배노릇을 안해야 옳을 것 아니겠습니까? 하루 때문에 생난리를 하다니요? 여자 분들은 이말, 하루 차이로 이런 일 실감 잘 못하시지요? 남자애들 군대 가면 하루 가지고 그냥 하늘과 땅차이로 쥐어박습니다. 지보다 50년 먼저된 것들은 전부 필요가 없고 저보다 하루 늦은 거한테는 순서를 따지자 그럽니다. 네 말로 너를 봐도 넌 인간도 아니라 이거는 짐승도 서열이 있는데 이거 안 되겠네. 뭐 이면을 봐도 그렇고 저 면을 봐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이건 소돔이지, 소돔보다는 그래도 좀 낫지 않은가라는 곳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 속을 들여다보면, 역사 이후에 하나님이 영육의 넘치는 은혜를 함께 이만큼 준적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 잠깐 있었고, 시대마다 잠깐 잠깐은 있었던 적이 있었으나 오늘처럼 이렇게 장시간 장기간 모든 면으로 주신 때가 없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종교인이라면 하늘이 두렵다 그 말은 해야 종교가 아닐까? 기독교인이라면 종교면 다 종교냐? 종교도 구별하여 하나님만이 생명의 도다, 라는 말은 그래도 말로는 해야 되지 않느냐? 어떤 정도도 종교가 도덕이라 그러지, 종교가 종교라는 말을 떼버린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기독교만큼은 우리는 종교다 이래야 되는데, 기독교 입에서 종교는 다 같다 이 소리를 하고 앉아있습니다. 너무 넘쳐 버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래도 잘 믿어보자는 교회들만은, 못 믿어도 잘 믿는 걸 알아는 두고 지켜는 놔야 언제라도 그리 걸어 갈거니, 올바른 길을 없애지는 말자 이랬는데 그건 따지지도 말자, 이래 되어 버렸습니다. 따지면 오히려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쭉 내려오다 보니까 내가 내 속을 들여다봐도,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 성의 표시가 이 정도 되면, 그건 나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 그 이 면으로는 하나님 앞에 두렵다 느껴야, 방향을 잡고 자세를 바꾸고 생각이라도 좀 바꾸지, 방향만 바꾸면 하나님은 일단 기다리십니다. 자라가는 의라야 좋고 내려가는 후퇴는 멸망인데, 적어도 중간에서 자라가도록 마음의 결심만이라도 있다면, 속고 또 속아도 한 번 더 기다릴 수 있는 주님입니다.
 
한 사람이 마음먹으면, 자기 주변 하나님이 맡긴 나 마음먹으면 되는 가족만은, 밀고 당기고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나, 이게 가족 하나라도 붙들고 밀고 당기는 걸 하나님이 보면서, 살아보려는 생명의 운동이 있으니 그걸 희망으로 보신다 그 말입니다. 이게 있을 동안에는 함께 살다 보니 말도 많이 했고 세월이 오래다보니, 도무지 이제 더 이상 말을 해도 안 되겠고 그냥 포기를 하자. 내 마음에 포기가 되면 하나님의 소망이 물러가십니다. 좀 소란이 있어도 좀 분쟁이 있어도 정도 이상 것 해서, 상대방이 작은 죄인이 큰 죄인으로 악과 독을 나오게까지 자급하지는 못해도, 약간은 좀 시끄러운 게 그게 정상입니다. 정말 교사라면 아이들을 좀 가르쳐 보려고 한다면, 숙제 때문에 민원이 오고 학교 찾아오는 부모들이, 가르치는 거는 좋지만은 그래도 애들의 정도도 좀 생각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런 말이 그래도 한 번씩 들리는 게 인간이지, 아예 부모도 아이들도 뭐 그 선생님 싫다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으면 완벽한 교육이 아니고 지금, 교사가 교사이기를 포기했을 겁니다. 경찰이 경찰이면 누구를 뚜드려 잡는다고 담을 뛰어 넘어가고, 총소리가 한 번은 나야 그래도 경찰이 있고 그래야 도둑과 강도들이 조심을 할 건데, 여수 바닥에 10년 이래 경찰 볼 것 없다 그러면 이건 도둑놈 소굴이 된 겁니다. 어느 가정이든지 신앙으로 앞서 믿는 사람이, 뭐 그냥 이대로 가면 서로 자기생활 자기대로 하고 나는 나대로 하고 서로 존중해 주고, 내가 볼 때 그 가정은 평화가 온 거 같지? 하나님이 멸망의 계산을 할 때 그 10명도 안 된다. 됐다 넌 죄인이 아니니까 뽑아내고 나머지는 전부 정리하자 이렇게 되어 집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 가면 롯은 의인이라 했습니다. 상한심령을 가졌다 그랬습니다. 롯 외에 아내와 딸들은 죄인입니다. 그걸 두고 왔어야 되는데 그걸 붙들어 냈기 때문에 죄악의 씨가 그다음 소돔 모압과 암몬으로 이사회 역사와 오늘 우리에게까지 옵니다. 그 딸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그동안 지은 죄로 하나님 앞에 벌 받아 해결한 것이 불행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 때 살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압과 암몬 족속이 우리 자녀들입니다. 이 자랑스러운 자녀 보시라 그러지 못 할 겁니다. 오늘 나의 소원은 한 10년 더 살게 해 주옵소서. 히스기야는 15년을 더 살게 해 주옵소서 응답을 받았다고 그렇게 좋아서 난리를 했습니다. 그 히스기야 15년 한 사람 때문에 말도 못하는 참화가 일어납니다. 오래 사는 게 좋고 건강이 좋고 은혜 받는 게 좋고 좋은 게 좋지 만은, 하나 좋자고 하나 둘이 아니라 하나 좋자고 서너 개가 아니라, 하나 좋다고 천과 만이 불행하게 된다면 심각하게 돌이켜, 좀 소리가 나도 자기가 감당 못할 일을 벌이지는 말고, 믿는 사람이 직장가면 믿는 믿음 때문에 뭔가 좀 불편해 지는 겁니다.
 
장애자 한 사람을 회사에 취업 시키면 이사람 때문에 오르막을 만들고, 문을 만들고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드느라고 돈이 들고 좀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아이가 한 집에 태어나면 기저귀가 나오고 우는 소리가 나오고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아이 없으면 말끔하고 깨끗한데 문제는 훗날이 문제 아닙니까?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 들어가면 그 주변 직장에도 그 가정에도 그 부부에도, 발전적이고 회계 적이고 하나님의 축복이 따라오기 위한 사전에 건설에 준비는 좀 있는 거지, 아예 주변 인간들 내 마음 속에 아무 불편도 없이 말끔하게 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소돔 고모라가 돼야 되겠냐? 그러면 그리 해라. 그러면 그리해라. 그 문제가 생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지 않은 것까지 과욕을 부리다가 의도 지나치면 기한 전에 죽는다. 이것도 문제고 세상을 향하여 너무 몸을 사리다가 귀신이 전부 내거다. 요즘은 뭐 소리도 안 나니까 평화로운 때다. 그것도 큰일입니다.
 
(기도)
고요한 한때를 주셔서 모든 면에 평안한 때, 주일과 예배와 말씀의 은혜로 소망 속에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 나를 돌아볼 때며 내 속에 많은 면 중에, 주님 앞에 내가 생각해도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중대한 문제 그 하나를 과제로 두고, 주의 대속 사활의 은혜를 생각함으로, 자기가 자기를 향하여 싸워보는 대 내전, 이 모습을 향하여 주님은 긍휼의 손으로 은혜를 더하시고, 모든 진노나 섭섭함을 뒤로 미루실 것이니, 우리 각자 자기와 자기 가정과 주변을 자기하나 깨어 주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나로 인하여 주변까지 복이 되고 기회가 되도록 우리의 심령을 깨워 주옵소서. 이미 여러 어려움 가운데 주의 은혜를 구하는 가정에는 그 어려움 속에 주의 또 다시 주시는 은혜를 소망하며, 이전과 다른 더 큰 은혜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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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5.1주전            창18:32               시대의 소망은 의                      예장총공   신풍교회

■ 소돔
1. 말세의 범위
노아 : (시대)적인 말세
소돔 : (지역)적인 말세
 
2. 죄악의 성격
노아 : 넘침으로 (전반)적 탈선 넘치는 홍수로 치신 것을 보니
소돔 : 남녀 (음란)이 파행적 천사와 소알을 볼 때
 
3. 롯의 소돔 이주
가족 : 롯, 아내, 딸 (둘)
주변 : 충성하는 (종)들
 
 
■ 롯의 신앙
1. 출발
아브라함의 (동지) 창13,8
아브라함과 (선지) 창20:7, 그는 선지자라
아브라함과 (분할)
 
2. 소돔 생활
산업 : (없어) 졌고 분깃 산업 사명 기업
종들 : (떠나) 갔고 신앙의 협조자들
딸들 : (불신) 정혼 신앙의 생산자들
아내 : 소돔 (애착) 자기의 거울, 한몸
 
 
■​ 롯의 최종, 벧후2:8
벧후2: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1. 의인
소돔의 죄악에 (물)들지 않음
 
2. 상한 심령
소돔의 죄악을 (탄식)
 
* 엘리도 아들들을 (책망), 삼상2:25
아비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사무엘은 자녀를 구원하지 못했으나 사울과 다윗을 통해 시대를 구원
3. 의인의 증감
가족과 종들만 지켰어도 소돔을 (구원)
하나님은 (10) 명이면 소돔에 소망
롯 한 명으로 줄어 드니 (정리)
 
■ 시대의 소망
1. 나 (한) 사람이 버티고
2. 주변에 (의)를 늘리고 기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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