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밤22.4.29 마7:12 본문 12절에서 27절 마7장 전체 해석, 자타를 고치는 순서 방법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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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22.4.29 마7:12 본문 12절에서 27절 마7장 전체 해석, 자타를 고치는 순서 방법 그 결과

관리1 0 33 04.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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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9 금밤

제목 : 본문 12절에서 27절, 마7장 전체 해석, 자타를 고치는 순서, 방법, 그 결과

찬송 : 28장(갈보리 산위에 십자가 섰으니)

본문 : 마태복음 7장 12절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침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듣고 배워 전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처럼 지식의 전달의 끝나는 저들이 되지 아니하고 배운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는 능력의 말씀, 고쳐 본 자기의 능력으로 또 맡은 주변을 고쳐 보는 인격의 변화, 행위의 변화, 우리의 생애와 우리의 지식과 우리 사람 자체가 세상을 향하다가 천국을 향하고 자기를 중심으로 하다가 하나님의 중심으로 심신이 근본적으로 바뀌므로 능력의 말씀이 날 통하여 능력으로 역사를 하고 이 능력의 역사가 전해지는 이 밤의 저희들 되게 하시고, 그렇게 만드시려고 세상을 오늘처럼 운영해 오시고 조성해 주시는 주님, 창조의 주요 섭리의 주요 역사의 주요 공간계 활동계 우리의 심리계까지 주권 섭리하사, 세상의 경험을 통해 하늘의 영생을, 중생된 우리에게 다 덧입히시려는 큰 사랑인줄 알고 만 가지를 감사하며 세상을 초월하는 이 밤의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입원 중인 이들 주님 앞에 설 날을 기다리는 노년의 요양 중인 종들 곳곳에 두신 모든 우리 교인들 어려도 젊어도 주변에서 흔드는 세상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복된 길 생명의 길 걸어가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7장 1절로 29절까지를 전체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5월 집회 때,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를 준비를 했다가 6장으로 마치고 7장은 끝내지를 못했습니다. 7장은 평소에 부분적으로 많이 또 깊이 살폈습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말씀이고, 특별히 작년 5월 집회 교재의 7장에 해당되는 것은 다 그냥 성경공부 정도로 돌리고 이번주간 말씀으로 대신해야 될 내용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신앙의 영향 받지 말아라. 이게 6장입니다. 신앙의 문제란 뭐가 신앙의 문제냐? 주의 뜻이 뭔지를 찾아라. 그 뜻만 찾으면 해결은 다 된다. 주의 뜻 찾는 것이 의라고 그럽니다. 뜻을 알고 발견을 했으면 그대로 순종하고 살면 그게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그의 나라 그의 의를 구해라”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그만 이어가면 주님은 왕이 되고 나는 백성이 된 하나님의 나라가 되니 여기에 주력을 하고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은 맡겨 놓으면 이 일에 필요한 만큼 조절하신다. 이게 6장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뜻을 찾는 방법을 7장에 시작하고 계십니다. 주의 뜻을 알아야 순종을 하지. 주의 뜻을 어떻게 찾는가, 뭐 믿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성경말씀이 주의 뜻입니다. 근데 성경말씀은 모두에게 다 해당이 되는데, 자세하지를 못해서 이게 인제 어렵습니다. 성경은 주의 뜻이다. 그냥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이것만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 제가 다르고 교인이 다르고 부부도 서로 다 다를 수가 있는데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넘어가지는 말아라.’ ‘이 선 밖에는 가지 말아라.’ 이렇게 간단하게 적어 놓은 것이고, 이 안에서 성경 말씀 안에서 나는 오늘 너는 어제 매 현실마다 말, 행동, 생각 하나까지 주의 뜻을 찾으려면, 그 성경공부 한다고 되지를 않는데 그건 어떻게 하느냐? 성경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 보면 성령이 내 양심에 오셔서 ‘너는 건강, 신앙, 가정, 여러 형편으로 볼 때 너의 주일은 출근 안 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 너는 이 사람 저 사람을 그 주일에 은혜 받도록 가르치거나 노력해야 되지 않겠는가?’ 사람마다 각자에게 원하는 그 현실의 뜻을 세밀하게 성령이 우리 신앙의 양심을 통해 알려주고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1차, 말씀으로 대충, 말씀 속에 성령의 인도를 신앙의 양심으로 세세하게 찾아가면 주의 뜻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어리고 심령이 둔탁하고 강퍅해 놓으면 선생님이 가르쳐줘도 딴 짓하고, 개인 과외교사를 붙여놓아도 엉뚱한 짓을 하니, 이게 고장이 생겨서 한 가지 더 방법을 주신 것이 첫째는 말씀으로, 두 번째는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이게 정식이며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면 그만 다 되어야 되는데 둔탁하지, 강퍅하지, 어리지, 막가지, 세상은 흔들어대지. 이런 전쟁판에 이런 밀림 정글 속에 우리를 던져놓고 잘 기르시려고 한 가지 특별한 방법, 너무 쉬운데 너무 특별한 방법, 발람 선지가 말씀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반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양심에도 다 아는 사람입니다. 근데 돈을 너무 많이 준다니까 그냥 하나님의 구원 운동 저주한다고 가는 길을 이런 미련한 강퍅한 선지자를 이걸 말로, 이걸 영감으로 가르쳐도 안 되니까 타고 다니던 나귀의 입을 통해서 성경에서는 “이 미친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아 이 선지자가 하나님께 좋은 길, 복된 길, 구원의 길에 축복을 해야 선지자인데 왕에게 돈 받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 저주하러 간다고 지금 꾸역꾸역 나귀를 타고 가니까 그 나귀 입을 하나님이 열게 해 가지고 이 미친 선지자를 가르쳤습니다. 이건 영감도 아니고 말씀도 아닙니다. 그 현실에 이 선지자의 제일 옆에 붙어 있는 제일 가까운 입을 열어서 지적을 한 겁니다.
 
성경의 말씀, 진리는 모든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자세하지를 못해서 불편할까봐 성령이 신앙의 양심에다 대고 ‘넌 예배 시간이니 너 정도 되면 필기도 해야 되지 않을까, 너는 필기를 몇 자가 아니라 좀 많이 적어야 되지 않을까, 넌 적을 것 없이 잘 들으면 요약이 되니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어떤 교인은 예배당에 오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줄 만큼 또 그렇게 다 각각 달리 역사를 하는데 그게 신앙의 양심의 인도입니다. 진리와 신앙의 양심 둘. 도무지 안 되는 사람, 말로 안 되는 사람, 진리의 말씀으로 안 되고 성령의 감화로 도무지 안 되면 나귀의 입을 열어 선지자를 가르치듯이 믿는 우리 주변 우리 함께 사는 가족 주변 사람의 입과 귀와 행동을 동원해 가지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뺨을 날리든지, 욕을 하든지, 뒤로 비판을 하든지.

성경의 말씀으로 자기를 잘 고쳐 버리면 남이 말하거나 말거나 나는 상처 받지 않습니다. 성령의 신앙의 양심을 잘 따라가면 남들에게 배울 것도 없고 남들이 뭐라 한다 해도 모르고 하는 소리니까 별 상관할 것 없습니다. 근데 이게 사람이 다 부족하니 말씀과 성령으로 주의 인도를 앞에서 끌어가면서 옆에다 대고 남편의 입, 아내의 귀, 자녀의 행동, 부모의 잔소리, 교인, 이웃, 세상, 뉴스까지 하나님이 들쑤셔 동원을 해서 미친 선지자는 나귀의 입까지 열어서 하는 말도 있고. 또 그 정도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씀과 신앙의 양심으로 산다고 사는데 도무지 자기가 자기를 모르면 아내의 눈을 통해 아내의 입을 빌려 한 마디를 하는 겁니다. ‘당신 교회 가서는 잘 믿는 것 같은데 집에서는 영 엉망이더라.’ ‘아내 당신은 입은 똑똑한데 하나님 본 흔적도 없더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리는 게 7장입니다. 

비판 받기 싫으냐? 받기 싫겠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아라” 네가 비판하니까 상대방도 너를 욕을 하지. 남을 뒷조사하고 세무조사하고 자꾸 희비 파니까 남들도 너 뒤를 자꾸 희비 파지. 그래서 비판하지 말고 남을 헤아리지 말고 ‘그냥 놔두라’ 처럼 적어 놨는데 그 말 아닙니다. 성경을 좀 조심스럽게 읽어 보면 비판하라 했고 세세하게 한 달란트 줬는데 몇 달란트 남겼는지 이자 계산까지 다 하시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계산하면 끝나니까 ‘미리 계산해서 준비하라.’ 성경은 비판, 성경은 헤아리고 계산하고 결산 회계 세밀하게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요약해서 근데 여기서는 왜 비판하지 말라고 헤아리지 말라 했는가? 순서가 잘못된 비판, 심보 동기와 목적과 순서가 잘못된 비판과 남 조사를 막아놓은 겁니다.

너는 네 속에 잘못을 뒤져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남만 뒤져가면서 이러네 저러네 이러네 저러네 해 가지고 쥐 박고, 웃고, 훼방하고, 그 사람 신앙을 고쳐서 잘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롱하기 위해서, 비판하기 위해서, 까뭉개기 위해서, 뒷발 걸어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신앙에 도움 되고 바로 되는 목적과 방법이 아닌 비판과 헤아리는 것은 어떤 것도 전부 다 범죄다, 하지 말아라.

만약에 그리 하면 주님이 너를 뒷조사 해버린다. 마태복음 18장에. 계산할 수 없이 많은 빚을 진 사람 일만 달란트를 탕감 해줬더니만 돌아가는 길에 백 데나리온 얼마 안 되는 돈 자기에게서 빌려 간 사람 목을 잡고 전부 다 일일이 계산을 하고 앉았으니까 ‘네가 그렇게 계산하면 나도 너를 계산하자.’ 다시 불러다가 ‘일만 달란트 다 갚아라.’ 호리도 갚기 전에는 마태복음 5장, 절대로 영원한 옥에서 못 나옵니다. 그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8장을 가지고 7장을 읽어 보면, 너무 큰 죄를 지어 계산 할 수가 없어 주님이 오셔서 해결 해 주면서 이제 남은 여생 너 있는 힘 다하여 네가 노력해서 다른 사람 말씀 어긴 길, 주의 뜻 모르는 길 잘 알려서 그 사람들을 신앙으로 배우고 자라가고 고치는데 네가 있는 힘을 다 하거라. 주님이 너한테 그랬다 이래 놨는데, 다른 사람의 허점, 단점, 잘못을 고쳐서 좋게 바꾸는 구원의 목적,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야 되는데 이러니 저러니 비판하고 웃고 남 신앙생활 하는데 훼방만 지기는 이런 구원 운동의 반대 신앙의 도움 되는 반대의 비판, 조사, 이 소리, 저 소리 하면 그러면 주님이 너를 조사할 거다. 내가 다른 사람 비판한다고 다른 사람이 나 비판 하고말고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그건 여론인데 그것은 무시해 버리면 됩니다. 귀머거리야 남 욕한다고 들립니까, 소경이야 남이 삿대질 한다고 보입니까, 열 받을 것 없지. 남들이 너를 비판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주님이 너를 비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3절에, 네 눈에 형제의 잘못이 보이거든, 큰 잘못 말고 숨겨놓은 작은 잘못까지 다 보이지 않느냐? 왜 다른 사람 눈 안에 티, 볼 수도 없는 감춰진 작은 실수를 네가 잘 발견하느냐? 네 눈이 밝아서가 아니라 자기중심의 악인이 되니까 망할 것만 잘 보이는 거다. 남이 말하지 않고 남이 생활 속에, 과거 속에, 숨겨 놓은 것이 잘 보이는 사람이 똑똑한 줄 아는데 이거는 망할 눈이고 이거는 자기중심의 악인이 되면 그것이 그렇게 잘 보입니다.

남의 눈 속에 티끌이 보이거든 ‘아 나는 자기중심이 되니까 이런 복 없는 죄악의 면으로만 밝아졌구나. 이거 내가 지금 귀신에게 붙들려 귀신의 눈을 가졌구나.’ 그 눈 가지고는 자기 망합니다. 그 시각 그 자세는 회개하고 뽑아버리고, 자기중심을 뽑으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의 눈을 가지면 ‘저 사람 속에 감춰놓은 작은 티가 있구나.’ 하나님 중심이 되면 자기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들여다보니 당연히 자기 속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나 중심이 되어 남이 감춰놓은 남 속에 작은 잘못을 발견했는데 이 눈을 가지고 남들의 자기중심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면 ‘나한테 이거 이거 다 흠으로 잡겠구나.’ 그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이걸 보면서 남이 이말 저말 한다고 열 받을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보이는 그 눈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 ‘내 속에 나를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구나.’ 악인이 된 나의 눈으로 남 단점을 본 다음 하나님 중심으로 날 바꾸어 내 속에 있는 내 단점을 같은 방법으로 찾아버리면 다 찾아집니다. 그 사람도 십 원짜리 잘못, 나도 십 원짜리 잘못이면 그 사람의 십 원짜리 잘못은 눈 속의 티지만은 내 속에 있는 십 원짜리 단점은 날 잡는 사망이 됩니다. 그래서 이거는 들보가 되는 겁니다. 큰 것도 못 봐서 들보지만은 작은 것도 나에게는 들보가 됩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면 이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의 잘못을 하나씩 둘씩 고쳐버리면 그러면 나는 보배가 됩니다, 깨끗해집니다. 그러면 내가 거룩해 지고 내가 보배로운 사람이 안 될 수가 있습니까? 단점을 고쳤는데. 학생이 틀린 문제를 자꾸 고쳐 버리면 그 성적이 보배롭게 되고 그 100점을 향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중심의 악이 남의 잘못을 보고 중심을 바꿔버리면 나를 고치고, 나를 고치면 내가 좋아지고 내가 깨끗해지고 내가 보배로워지면 그런 나의 눈을 가지고 그 다음 나 중심으로 봤던 다른 사람을 다시 보면 너도 너 중심, 나도 나 중심, 이래 사는 것이 악한 사람들인데 그러니 서로 남 욕을 하고 물고 뜯고 싸웠는데,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나를 고치고 나니까 감추어진 보이지 않던 단점 고치는 게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 체험을 했으니 그런 체험과 그런 밝아진 내가 그 다음 내 주변에 이 소리 저 소리 한 다른 사람을 다시 쳐다보며 ‘이전의 그거 너 단점이었는데, 너를 보면서 내 속의 나를 보니까 나는 더 하더라. 그래서 나 고쳐봤다. 내가 나를 고쳐보니까 이렇게 어렵더라. 이렇게 이게 안 되더라. 고친 줄 알았는데 결국 안 되더라. 어렵게 어렵게 어떻게 해서 하나 고쳐보니까 이렇게 좋더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너보다 더 큰 죄인이었다.’ ‘너는 티끌이지만 나는 들보 같은 죄인이었다.’ ‘이거 고치느니라고 이렇게 애를 먹었다. 너도 그 단점 고치려면 애를 먹을 거다. 많은 사연이 있을 거다. 그래도 고치면 좋아질 것 같다.’

나를 고쳐 본 다음 다른 사람을 다시 고치려고 시작하면 어디부터 고쳐야 이게 바로 되는지, 그것을 고칠 때에 어떤 방법으로 들어가야 이게 좋게 고쳐질지, 또 그 사람이 그것을 고치려 할 때 얼마나 여러 가지 고비가 있을지를 다 알려주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고쳐 본 사람만 남을 조금씩이라도 고칠 때에 도움이 됩니다. 남의 잘못을 보고 나를 고치고 나를 고친 다음 남을 고치는 순서로 나가는 이건 사람을 치료 하는 거고, 교육 하는 거고, 도와주고, 구원 운동의 신앙의 유익이기 때문에 이거는 하나님이 복을 주지 1절부터 금지 해 놓은 비판과 헤아림이 아닙니다.

그 다음 5절에 “외식하는 자여” 너는 속에 고칠 게 많은데 네 속에는 고칠 게 많은데 고칠 것도 없는 것처럼, 이게 외식입니다. 속을 좋게 하고 속을 좋게 하기 위해서 겉도 좋게 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이 틀렸을 때에, 이게 외식입니다. 외식은 밖을 꾸민다는 말인데, 밖을 꾸미는 게 잘못 된 거 아닙니다. 속은 놔두고 밖만 꾸미니까 말하는 겁니다. 겉을 꾸미기 위해서 속을 희생을 시키니까 이거는 잘못된 거라는 말입니다. 내 속의 단점을 내가 고치면 이 사람은 외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 잘못 보고 이것 틀렸다, 저것 틀렸다, 남만 틀렸다고 자꾸 떠드니까 남들은 다 죄인이고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 선생님 같은데 자기는 자기 속을 고치지 않았으니까 더 더러운데, 그 외식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그 말은 ‘너는 너를 고쳐보지 않았지. 너는 선생이 되어서 천하를 가르치려 들고 남만 가르치려고 들었지. 그러니 남이 보면 너는 깨끗한 것 같고 남들은 더러운 것 같은데 너나 남이나 똑같지 않냐, 남은 네가 욕을 해서 더러운 줄은 아는데 너는 너를 욕하지 않으니까 남들이 너는 깨끗하다고 보는데 그게 바로 외식이다.’ ‘외식하는 자여 너부터 고치거라.’

너를 고쳐보면 깨끗해지고 밝아지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고쳐주는 사람이 된다. 인간이 저런 단점을 고칠 리가 있는가? 그 사람의 그 단점까지도 고치는 사람이 되면 천하의 명의가 된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이 고치라니까 이해가 되고, 그래야 되겠다 싶고, 고치고 나니까 좋아지더라. 그러면 병원이 밀려들 것이고 그러면 그 손님들이 줄을 서지 않겠냐. 잘 고쳐주기는 하지만 욕을 하면 손님이 오겠냐? 잘 고쳐주는데 돈이 비싸면 손님이 많이 오겠냐? 싸기는 싸고 친절한데 고치지를 못하면 또 오겠냐? 친절한데 잘 고치는데 값까지 싸면 얼마나 밀어 닥치겠느냐, 네가 너를 고칠 때 그리 된다. “외식하는 자여” 너는 고쳐보지도 않고 남부터 고치려는 돌팔이야, 사기꾼아, 거짓 선지자야. 뒤에 보면 그렇습니다. 너를 먼저 고쳐라. 나를 고치면 외식이 아닙니다. 속을 고쳤으니. 밝아지고 깨끗해졌으니 남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이게 6절에 거룩입니다. 자기를 고쳐본 자기 속의 안의 것을 고쳐본 것, 고치니까 거룩입니다. 안 고치면 더럽지. 고친 자기는 당연히 그것은 진주입니다. 진주 같은 보배입니다. 보배 중에 보배 중에 변치 않는 보배 할 때는 금이고,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되어 반짝일 때에는 보석이라 그러고, 보배 보석 중에 진주라고 그럴 때에는 특별히 이것은 깨끗한 보배, 그 뜻입니다. 진주. 네가 너를 먼저 보고 너를 고치니 너는 거룩을 가졌다. 너는 너를 보배로 만들었다. 이 거룩과 이 보배를 가진 네가 이것으로 다른 사람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보배롭게 만들어야 되는데 개, 돼지한테 보배와 진주를 던지면 뭔지 모르니까 그걸 밟아버리고 와서 찢어버리고 너를 받아 버리고 너를 짓밟아 버린다. 보배도 더러워지고 너도 당하게 된다. 그러면 도망갈 것이냐? 그러지도 말아라. 네가 너를 고쳐본 그 경험으로 가지고, 아픔을 가지고, 방법을 가지고, 그 다음 네 눈에 잘 보이는 분들의 단점을 고칠 때에 ‘저 사람이 저것만 고치면 보배가 되겠는데 저 사람이 저것만 고치면 거룩해지겠는데 어떻게 해야 저것을 고칠까? 어떻게 해야 저것을 고칠까?’ 배가 아프다고 배를 칼로 찔러 놓고 보면 사람을 잡지 그게 수술이 되겠습니까? 링겔 치고, 금식 시키고, 의사 서너 명 불러다가 그 다음 장비를 다 해서 절차를 밟아야 깨끗하게 좋게 잘 고쳐서 그 사람도 좋고 소문도 나고 그렇지. 아이 머릿속에 이상이 있다고 머리를 도끼를 갖다가 그냥 때려 놓고 수술부터 하면 사람이 죽지 그게 치료겠습니까? 너를 고쳐본 이 거룩, 이 보배를 가지고 다른 사람 속에 있는 단점을 고칠 때에 말부터 하지 말아라. 행동부터 하지 말아라. 기도부터 하거라.

7절, “구하라”, “구하라” ‘주여 내 속의 단점도 고치니 이리 좋아집니다. 이것은 내 속에 있는 것이라 내가 무조건 고치면 됩니다. 그래도 어려웠습니다.’ 문제는 이 여자 속의 있는 단점을 고치려니 이 여자가 내 말을 듣겠습니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 남자 속에 이런 단점이 들어 앉았는데 이 단점을 지적했다가는 부부 싸움이 나고 생 발버둥을 할 겁니다. 오기로 더 튈 겁니다. 부부 둘이 이 아이들을 좀 가르쳐야 되겠는데 요즘 애들한테 말 몇마디 하면 교회도 안 나오고 집 나가 버립니다. 경찰이 이기겠습니까, 뭐 교장이 이기겠습니까, 단점은 분명히 보이는데 이것만 고치면 이 시대의 요즘 애들 치고 이것만 고치면 뭐 완전히 거룩해지고 보배가 되어 값나가는 진주가 되겠는데,

10대들 말투! 못된 말투. 그건 그 말투는 자기 머리에 똥바가지를 뒤집어 쓰는 건데 전부 그러고 앉았으니, 저놈의 말 한마디만 조심해도 보배가 되겠는데 천사가 되겠는데, 아이 저것이 결혼만 해도 그냥 천사가 아니라 천사장이 될 것인데. 압니까 말했다간 난리가 날 건데, 말하면 더 튀어버리니까. 요즘 애들 하고 있는 짓, 머리, 옷, 양말, 여자 배꼽을 이만큼 내놓고 시내 기 돌아다니는 거 뭐 온갖 것이 많은데 저것을 말하면 더 튈 것이지 그냥 둘 수는 없지. 어떤 방법으로 저것을 고쳐야 되겠나이까? 어떤 방법이 있겠으며 어떤 길이 있겠으며 어떤 말 어떤 기회가 있어야 되겠나이까? 그것을 구하라, 그것을 찾으라. 없는 것은 구하고, 가졌는데 잊어버린 것은 찾아서라도 노력해 봐라. 그리고 들여다보면 길이 있을 겁니다. 없지는 않습니다.

근데 이 10대의 마음의 벽은 철벽이라 아무리 길을 알아도 열라고 해 봐야 열리지를 않습니다. 20대는 또 쉽게 열립니까? 또 30대는 더 쉽게 열립니까? 마찬가지지. 모르면 찾아라, 잊었으면 다시 찾도록 기도해라. 구하라, 찾아라. 그랬는데도 막히면 주님께 열어달라고 간구를 해라.

구하는 이에게 주실 것이고 찾는 이가 찾게 될 것이고 막혔다고 두드리면 결국은 주님이 문을 열어 해결을 해 주실 거다. 기도 하면 애를 쓰다 보면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육의 부모도 좋은 것으로 주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뭐 도덕이고 말투고 그냥 뭐 뭐고 뭐고 다 치우고 ‘우리 애 공부만 잘하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니까 참 더러운 것도 구한다. 다 버려 놓은 딸년한테 공부까지 1등 해 놓으면 광주 시내까지 가서 난리하겠구만. 이만해도 영 인생 인간 다 버려 놨는데 거기 다 대고 인물까지 좋아 놓으면 서울까지 가서 생 발버둥을 칠 건데, 그런 걸 기도해? 그런 더러운 것, 아이에게 나쁜 것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더러운 것 기도 하지 말아라. 너 아이, 너의 신앙의 사람, 영 희망 없이 망쳐 버리는 거다. 좋은 것을 구하라.’ 기다리십니다. 좋은 것을 바꾸어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고 기다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작스럽게 무조건 성적만 좋고, 돈만 많고, 인물만 좋고. 결혼에 그냥 사위만 미꿈한 놈 데리고 오고 여자만 좋은 것 들어오면 됐지 뭐 뭐 믿든지 말든지 무조건 이렇게 미친 선지자 발람처럼 돌진을 하면,

그런데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고 주님께 달라고 기도를 하면 ‘어쨌든 기도는 했으니까 주기는 줄게 단, 너 달라는 대로 주면 더 불행해지니 달라고 노력한 노력은 됐다, 구하는 것은 잘못됐다. 좋은 것으로 바꿔 줄께.’ ‘너는 먹겠다고 돌 달라 그랬지. 돌 줘서 돌 먹으면 큰일 난다. 떡으로 줄께. 너 지금 먹겠다고 뱀 달라 그랬지. 독사 먹으려 했다가는 너 죽는다. 생선으로 바꿔줄게.’ 돌을 밥으로 먹고 독사를 반찬으로 먹겠다는 사람이 밤새도록 기도했는데, 돌을 주고 독사를 주면 좋은 하나님이라고 전부 그렇게 가르칩니다.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칩니까? 안 하면서. 어쨌든지 하나님께 달라니까 주기는 준다. 주는데 좋은 것 달라면 빨리 주고 더 주고 서로가 좋다. 잘못 구했을 때는 좋은 것으로 바꿔 준다. 부모도 그렇지 않느냐? 하나님도 그렇다. 11절입니다.

그리고 12절에, 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지? 네가 너 먼저 남을 대접해라. 여기 남은 이웃을 말합니다. 이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웃 뒤에 그 이웃을 붙든 하나님을 여기 남이라 했습니다. 너 하나님께 좋은 것 받고 싶지? 너는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되겠냐? 너의 말, 너의 생활, 너의 행동은 하나님 말씀만 어기며 죄를 다 지으며 ‘좋은 것 주십시오.’ 너 같으면 그러겠냐? 너는 네 말만 반대하고 너한테다 대고 곁길만 나가는 것 인간한테 넌 도와주고 싶더냐? 안 그렇지 않더냐? 대접을 받고자 하느냐? 너는 어떻게 했느냐? 네 말 잘 듣고 너 시키는 대로 잘하고, 너 위해서 살고, 네 눈에 곱게 보이면 너도 좋은 것으로 주고 싶지 않더냐?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접해야 좋겠느냐? 그 하나님 말씀 고분고분 순종 잘하고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는 대로 잘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너를 ‘그 말 잘 듣고 이쁘니 참 주고 싶다.’ 그래야 주지 않겠느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게 구약의 율법 전부다.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 읽어 봐라. 그 말씀에 이래라 저래라고 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의 전부가 율법인데 구약 율법 전부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너한테 원하는 뜻이 있었지 않느냐? 그 뜻대로 순종하라, 세상은 맡겨 놔라. 이게 6장 마지막이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율법과 선지자니라” 모든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 전부의 율법과 선지자. 구약이 율법과 선지자인데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 전부가 주님이 너한테 이랬으면 이랬으면. 이렇게 살아야 옳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도와준다. 그거 아니냐? 너는 네 말 듣고 너 좋아 사람을 대접하고 싶더냐? 너를 쥐 박고 너를 원수로 삼는 사람에게 너 인심을 더 쓰고 싶더냐? 하나님은 너한테 어떻겠느냐? 하나님이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법을 가르쳐놨으니, 그것을 찾아 순종하면 하나님이 너를 마음껏 대접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겠지. 12절입니다.

13절, 나는 안 고치고 성경 말씀, 진리 말씀 배워서 나는 안 고치고 성경 말씀 가지고 남 욕만 하면, 남 욕만 하면, 그게 넓은 길입니다.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길, 누구든지 갈 수 있는 길. 절의 중들도 ‘기독교인 너희들은 원수를 사랑하라 했다며 기독의 원수는 불교 아니더냐. 예배당 팔아서 불교에 시주 좀 해라.’ 제가 중 같으면 그리 말하겠습니다. ‘예수쟁이들아! 너희 교주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 했지. 불교는 기독교 원수지. 예배당 팔아 절에 시주를 해라. 너희 교주가 그리 가르치지 않더냐?’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남 가르치려면 절의 중들도 말하고 누구도 말하고 아무나 다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 왔을 때에 그 면회를 주님이 받았다 그랬습니다. 도둑질하다가 서면 교도소에 들어 앉아가지고, ‘아니 내가 서면 교도소 들어 앉았으면 여수 순천 천개 교회 목사들이 심방을 와서 모두 돈을 밀어줘야 되는데 한 인간도 안와? 마태복음 25장에 너희 교주가 어떻게 시켰어?’ 아이 뭐 목사 설교하다가 예를 너무 극단적으로 드는 것 같다 그런 마음 드십니까? 이 옆에 장전 분 하나 교도소 들락날락하는 분이 저한테 와서 맨날 하는 소리입니다. 맨날 하는 소리. 저보다 성경을 교도소에서 읽어서 더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예배당에만 와 가지고 돈 내놓으라고 하면서 성경 가지고 맨날 그럽니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날 고치려면 어렵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남 가르치려면 쉽습니다. 그래서 넓은 문은 말씀으로 자기는 실행하지 않고 자기는 고치지 않고 남 욕만 하는 사람, 그 말 그 길, 그 신앙, 그 생활이 편하게 갈 수 있는 넓은 길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앉았습니다. 그러면 망한다. 그 끝은 사망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좁은 문은 좁습니다. 들어 가기가 어렵습니다. 까다롭습니다. 애를 먹습니다. 아이 문이 좁으면 들어가기 어렵겠지. 요즘은 그냥 포크레인으로 밀고 들어가면 되는데 그런 문이면 쉬운데 앞에서부터 말씀을 읽어 보니 주의 뜻, 주님 소원, 알았냐? 주의 말씀으로 나를 고쳐보려면 이거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러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래서 이게 어렵고 좁고 가시밭길입니다. 그래도 그 끝은 생명이니라, 그리 걸어가거라.

아는 성경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남편 욕하고, 애들 가르치고, 부모 가르치려고, 남들 가르치려면 뭐 얼마나 쉬운지, 그거 넓은 길이다. 남들이 볼 때에는 깨끗해 보이는데 속은 외식이다, 더럽다, 그러지 말아라. 말씀으로 너를 고쳐 보거라. 네가 실행해 보거라.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좁은 길이라고 그런다, 좁은 문이라고 그런다. 시작도 모두들 안 하지만은 그 끝이 생명이니라.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예수를 가르치지 않는 선지자만 거짓 선지자 이단만 거짓 선지자라고 설교를 해 쌌는데 그래 쌌는데 앞에서부터 차분하게 읽어 보면 말씀을 알았는데 그 말씀 가지고 너는 고치지 않고, 너는 너를 가르치지 않고, 남만 가르치는 인간아! 네가 거짓 선지자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보배롭더냐? 보배로운 말씀 가지고 너는 가르쳤느냐? 너는 실행했냐? 보배로운 말씀으로 자기는 배우지 않고, 자기는 고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보배의 복음을 가지고 남만 가르치고 다니니까 가르치니까 선지자인데 자기는 그 말씀으로 실행해 보지 않고, 가르쳐 보지 않고, 고쳐보지를 않았으니 거짓말 사기꾼이지. 외식자야, 고쳐보지 않은 자야, 넓은 문으로 넓은 길로 걸어가는 자야. 진리의 말씀으로 자기는 고치지 않고 남만 그것으로 가지고 욕을 하니 쉽지. 그런 선생님이 되니 그게 거짓 선지자이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겉은 양의 옷을 입었다. 똑같은 교인이고 똑같은 믿는 사람인데 말씀으로 자기를 가르치지 않으니 겉보기는 양이고 속에는 양 잡아 먹는 이리입니다. 나는 저 사람한테 피해를 입었으니 나는 억울한 양이고 저 사람은 늑대다 그렇게만 보는데 말씀을 듣고 아는 네가 너를 가르치지 않으면 네 속의 양은 네가 잡아 먹었다. 신앙의 기회 고칠 기회를 누가 잡아 먹고 누가 없앴습니까? 내 속의 옛사람이 잡아 먹었지. 내 속의 양심이 내 속에 있는 욕심이 뭉갰고 잡아 먹었지, 남 속에 있는 욕심이 내 양심을 먹는 수가 있습니까? 내 속의 진리, 내 속의 깨달음, 내 속의 양심, 내 속의 진실을 북쪽에서 총 들고 와서 뺏어갈 수 있습니까? 옆집에서 뺏어갈 수 있습니까? 양심에는 맞는데 돈 욕심이 들어서 눌러버렸지. 이게 양 잡아 먹는 이리입니다.

그렇게 하니 겉은 양처럼 보이나 속에는 양 잡아 먹는 이리다. 그러나 배운 말씀으로 자기를 가르치고, 배운 말씀으로 자기가 행하고, 배운 말씀으로 자기를 고쳤는지 말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 열매 보면 안다. 사과나무인지 감나무인지 열매를 보면 알지.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생활을 보고 훗날을 보니까 포도가 열렸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포도, 구원의 열매를 포도라 합니다. 무화과라는 것은 영광 없는 헌신을 무화과라 그럽니다. 그 사람의 생애를 보고 훗날을 보고 그 사람의 결과를 보니까 자기 유익을 구치 않았구나. 주님의 구원, 주님의 신앙, 주님의 소원을 이루려고 전력을 다했구나. 그 열매를 보니까 이 사람 속에서 자기를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알겠습니다. 속을 고친 사람은 좋은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17절. 속에 나쁜 나무인데 속의 나무가 나쁜 나무인데 좋은 열매를 맺겠느냐? 속을 고쳤느냐? 좋은 나무입니다. 속을 안 고쳤느냐? 나쁜 나무입니다.

좋은 나무마다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면 거룩한 보배로운 진주 같은 나무입니다. 그러면 열매가 아름답게 열리겠지, 주님 보실 때.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지 않았다면 못된 나무겠지. 자기는 좋은 나무라 하지만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고치지 않은 내 속을 보면서 좋은 나무라 그러겠느냐? 못된 나무라 그러지, 말씀으로 자기를 안 고치니까 자기는 점점 더 나쁜 나무가 되는데 자기 생애, 자기 열매, 자기 세월 속에 열리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아이 청년 때에는 잘 믿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까 영 그렇네. 10년 전에는 뭐 그냥 천사더니 만 10년 지나니까 상다구가 영 귀신 다 됐네. 20년 전에는 설교도 하더니만 요즘은 술집 돌아 다니네? 뭐 이것을 가지고 따져야 되겠습니까, 말아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더 잘 알지. 속을 고쳤느냐, 좋은 나무입니다. 그건 뒤에 열매가 언제든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속에 나쁜 나무인가, 아무리 포장해도 그것은 나쁜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19절, “아름다운 나무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안 고쳤느니 나쁜 나무고 남만 지적하고 거짓 선지자고 외식 쟁이니까 이건 찍어 불에 던져버리겠지. 한번 현실에 기회 주고 안 되면 두 번 기회는 없습니다.

20절,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현재는 다음에 봐야 압니다. 10년 전의 것은 오늘을 보면 압니다. 20년 전의 것은 오늘 보면 압니다. 30년 전의 것도 오늘 보면 압니다. 오늘의 나를 가지고 나는 지난 날 나를 고쳤냐? 고치기는 고쳤는데 경제는 고쳤으나 성격은 못 고쳤느냐? 성격은 고쳤는데 경제를 못 고쳤느냐? 성격, 욕심, 야망 다 고쳤는데 가족 관계를 고치지 못 했느냐? 가족사랑은 다 고쳤는데 인내는 고치지 못 했느냐? 현재 상태로 가지고 지난 날 고쳤느냐 안 고쳤느냐를 딱 봐가지고 오늘 못 고치면 다음에 또 고치지 못하니 지난 날을 봐서 이제는 고치고 좋은 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겠구나.

21절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기본 구원으로만 자꾸 해석하니까 전부 엉망이 됩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 22절에 보니까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뭐 이 사람 저 사람 다 가르쳤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별별 일을 다 했습니다. 남들이 못하는 큰일도 하고, 유명한 일도 하고, 깨끗한 일도 하고, 봉사도 하고, 뭔 그냥 은혜도 끼치고 전도도 많이 했는데, 물어 봅니다. 그런데 너는 너를 고쳤냐? 너는 그 말씀으로 너를 고쳤냐? 안 고쳤으면 나쁜 나무입니다. 외식입니다.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 행위는 다 찍어버립니다.

23절, “그때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나는 구원 받았니 천국 가는데 아는 말씀으로 나를 고칠 기회에 고치지 못한 그 시간, 그 마음, 그 기회는 주님이 ‘나하고 상관없다. 지옥에 던지라.’ 그리 됩니다.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모든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행하는 자라니요? 너부터 고치는 자는. 남의 잘못이 보이거든, 남의 단점이 보이거든, 남의 잘못 남의 단점이 보이거든, 얼른 나를 고쳐라. 이게 행하는 자입니다, 그게 좋은 나무입니다, 그게 참 선지자입니다.
이게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고 자기 눈을 자꾸 씻고 닦는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행위, 그 노력, 자기부터 고친 그 행위와 노력, 만든 인격은 천하가 떠나가고 난리가 나고 비바람이 불고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꼼짝없다. 말씀으로 자기를 고쳤는데 말씀이 중심인데 말씀이 세상을 만들었는데 세상이 흔들린다고 흔들리겠습니까?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지 않은 행위, 직책, 명성, 어떤 것이라도 바람 불고 비오고 흔들면 다 뿌리가 뽑힙니다.

7장 1절로 끝까지 다 설명을 했습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고치자, 결론입니다. 그리고 7장 전부입니다. 6장부터 이어집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고쳐 본 사람, 정말 고쳐 봤으면 남들에게 쉽게 말을 못 합니다. 너무 어려워서, 너무 어려워서, 너무 어려워서. 인공 관절 수술을 해 본 사람, 수술해서 좋아지니까 좋기는 좋은데 너무 몇 년 고생을 해서 ‘수술해 봐라’ 말이 쉽게 안 나온다 그럽니다. 좋기는 좋은데, 실행해 본 사람.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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