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새22.4.23 사49:10 말씀의 기갈, 바로 돌아올 때 예정된 은혜와 책임, 자기 한 사람부터

설교 다시보기
동영상이 준비 중이면 '제목'란에 요일만 표시, 설교 타이핑이 준비 중이면 제목 앞에 별(*)을 표시, 타이핑이 첨부되면 점(.) 표시 

.토새22.4.23 사49:10 말씀의 기갈, 바로 돌아올 때 예정된 은혜와 책임, 자기 한 사람부터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220423 토새

 

제목 말씀의 기갈, 바로 돌아올 때 예정된 은혜와 책임, 자기 한 사람부터 

 

찬송 : 148(이 죄인을 완전케 하옵시고)

 

본문 : 이사야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말씀으로 살고 주를 향하여 살아야 될 우리들을 외부의 어떤 것이 붙들고 있든 내 속에 잘못된 내 생각이 생활이 붙들고 있든 말씀으로 살아야 되는데 말씀으로 살지 못하게 붙잡은 것이 있으면 이걸 풀어 버려라, 벗어나라, 말씀으로 돌아오라 9절입니다. 흑암에 있는 자라, 말씀을 떠나면 빛이 없어 뭐가 뭔지를 모릅니다. 뭐가 뭔지를 알아야 걸어가고 걸어가야 갈 길을 가는데 옳게 배우고 바르게 걸어가는 것이 옳은 줄은 알지만은 죄악의 세상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이 운영하는 세상에서 말씀으로 살고 주를 향하여 살아가려면 먹고 사는 세상 생활이 문제가 아닌가? 말씀의 생활 시작을 해 보면 뒷날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 알아서 해결해 주실 것이고 모든 자산에도 걸어가는 길 신앙의 생활, 말씀의 생활, 사방에 풀이 있겠나? 살아갈 수가 있겠나? 그 염려 없도록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깔아 환경을 형성해 주리라.

 

10절에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얼마 되지 않은 세월 90년대부터는 적어도 그런 일이 없었고 80년대까지만 생각을 해도 말씀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면 세끼 밥 먹기가 어렵지 않느냐? 현실적으로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살 건가? 남자가 담배만 피우지 않아도 선배들이 사회생활 하겠냐? 이건 뭐 상식적으로 그 말 다 했습니다. 많이 마시진 않아도 윗사람이, 주변에서 술 한 잔 권 하는 그 술 한 잔 하지 않고 술 한 잔 권하는 거 담배 한 대, 술 담배 없이 사회생활 어찌 할 거냐? 직장 들어가도 그거는 견디지 못한다, 여기에다 대고 주일 문제 들이대면 뭐 그냥 파탄 나는 겁니다.

 

그러나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80년대에서 30년이 지난 오늘은 술 안 마신다면 술 안 마신다면 더 지성인으로 보고 술 안 마신다는 사람한테 한 번 더 권했다가는 노동법, 형법 잡아가는 문제 생깁니다. 윗사람 정도가 아니라 장관도 목 날아가고 모두들 난리고 군대에서 별 네 개짜리 그냥 교도소 가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괜찮은 군인인데 별 네 개짜리 교도소간 이유를 보니까 밑에 군인한테 감나무 감 따라 그랬다고, 세상에 이렇게까지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말씀으로 산다고 뭔 못 먹고 못 살 일이 있습니까? 더 편하고 더 좋은데.

 

그런데 이사야 49장에서 몇 장을 넘겨 아모스 8111283 페이지로 가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성경에 날이 이를찌라이렇게 되면 말세 마지막이 되어 지면, 이라는 말이 되어 집니다. 누구에게나 시대적으로 최종은 다 여기에 해당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사는 오늘을 딱 찍어 오늘 우리는 오늘로 읽으면 됩니다.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하나님이 굶는 세상을 보내는데 누가 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굶는 사람이 있는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라,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입으로 먹고 입으로 마시는 그 문제로 적었으나 구약에서도 그 문제 보다 더 큰 문제가 있구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이 양식이며 말씀이 그 갈증을 해소해 주는 그런 시원한 물이 되어 지는구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납니다. 한 며칠 못 먹어 놓으면 일도 못 하고 일어나서 걷지도 못하게 되어 집니다. 그러다가 먹으면 일어나고 먹으면 움직이고 먹으면 일을 합니다. 물이라는 것은 애 터지는 것, 아무리 움직여도 한 20년 공부에 매진을 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애 터질 일이 아닙니까? 20년 공부하게 하는 힘 그건 양식이고 20년 공부를 했으면 만족한 결과가 나와야 그게 속이 시원한 건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애 터지는 일입니다. 그걸 해결한다는 뜻이 물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말씀으로 살아 보면 신앙의 힘이 나오고 그 말씀인하여 이게 인생길인데 아 이건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구나, 이것이 맞구나, 이제는 이 길에서 죽어도 감사하다, 속에서 감사와 만족과 기쁨이 솟구치면 이게 마치 물 없어 갈한 사람에게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되어 집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넘치는데 입으로 마시는 물은 어디든지 요즘은 흔한데 신앙의 양식, 신앙의 만족이 있겠는가? 그건 말씀 외에는 없다. 그런데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먹을 것 마실 것도 줄여 버릴 수가 있지만은 먹을 거 마실 것이 넘치는데 말씀으로 신앙의 양식과 신앙의 만족을 가져야 되는 이면을 차단해 놓으면 먹이 주니 좋아 마음껏 먹고 마시는 축사의 돼지나 소나 요즘 먹을 것이 넘치는 2022년에 인류 오늘 우리들이나 뭐가 그렇게 다를까? 돼지는 사랑이 없습니까? 돼지는 먹으면 뭐 배고픕니까? 배부르지. 돼지 우울증 걸려 자살 한 돼지 보셨습니까? 인간이 문제지. 분석해 보면 한 말씀 뺀 인간, 하나님 모르는 인간 자기들끼리는 짐승보다 낫다는데 짐승이 볼 때는 글쎄 사람이 짐승보다 나을지 우울증 걸린 짐승 보셨습니까? 자살한 짐승 보셨습니까? 가끔 있긴 있다 그럽니다. 사람하고 비교해 보면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말씀 때문에 사람이고 하나님 때문에 사람인데 왜 말씀을 주지 않으셨는가?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믿는 사람이라도 믿는 그 자세 믿는 방향 믿음의 가치를 찾는 그 생각이 잘못되면 성경을 다 외워도 하나님이 은혜는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그 음식에서 영양분을 뺄 수 없다면 먹어 봐야 고생만 하는 것처럼 설사가 그런 겁니다. 구토 설사. 먹으면 여기에서 피와 살을 빼야 되는데 먹었는데 토해 버리면 먹느라고 고생, 토하느라고 고생 몇 번 토하고 몇 번 설사해놓으면 그대로 쪽 말라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며칠이면 죽어버립니다. 말씀 속에 말씀다운 영양이 없으면 아무리 영양을 담아 놔도 하나님이 감동을 시켜 주지 않으면 그림의 떡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수성찬 그림으로 봐 봐야 폭포수 그림으로 봐 봐야 나 먹고 마시는 것하고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림의 떡. 그림의 폭포수. 그래도 내가 각오 하고 결심 하면 되지 하고 설쳤다가는 토해내고 설사 꼴 납니다. 자유주의 신학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 예수님이 실제 물위를 걸어 갔겠느냐?갈릴리바다가 안개가 잘 낀다고 그러니 바닷가를 거닐어 가셨는데 안개가 끼어 멀리서 본 제자들이 물위를 걸어오는 걸로 봤겠지, 성경을 뭐든지 이렇게 해석하는 게 자유주의신학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그 자유라는 말은 참 얼마나 밉상인지. 우리가 쓰는 좋은 자유는 원하고 원하므로 충성하는 소원의 충성을 자유라고 그럽니다. 말씀 그대로 그때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자유만 자유고 난 내 멋대로 믿는다? 그 자유는 구토 설사입니다. 그림의 떡보다는 그거는 사람을 더 잡아 아주 엉망을 만들어 버립니다. 말씀으로 돌아오고 말씀으로 살아 보려는 이들,

 

10절에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입으로 들어가는 음식과 물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고 내가 이렇게 어둡게 이렇게 신앙생활을 많이 떠나 세상에 빠졌었는데 이런 내게도 말씀의 은혜를 주시고 깨달음의 은혜를 주시고 다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은혜의 세계를 주실까? 자세가 바로 되고 진정 돌아서면 그다음, 깨닫는 은혜를 주십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 오니 송아지 잡아 먹였고, 송아지 잡아 먹였고 그다음, 아버지의 환대 위로 따뜻한 모든 앞날을 보며 참 제가 못났는데 이렇게까지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머슴으로 살겠습니다, 제가 아들이라니요? 그 말 속에 벌써 감사와 소망의 기갈 해소가 넘치지 않습니까?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더위와 볕이, 못 먹고 못 마셨는데 햇볕이 내리 쬐이면 더 죽을 지경입니다. 똑같은 해가 양초에 내리 쬐면 양초가 녹아내리고 똑같은 햇볕이 진흙 밭에 내리쬐면 진흙 밭이 단단해져서 강철처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이 똑같이 들어가도 이게 기갈의 해소가 되어 양식이 되고 말씀이 해소가 되는 기갈, 해소가 되는 사람이 있고 말씀이 들어가면 더 강퍅해져 가지고 더 악인이 되고 더 나쁜 사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앞에 말씀 드린 자유도 성경에 자유를 읽고 아, 말씀으로 그냥 살 것이 아니라 좋아서 살라는 말이구나, 좋고 좋아서 사는 그런 충성이 어디 있을까? 그러면 자기 마음을 찾아내면 믿어 갈수록 더 행복하게 되고 그 자유를 잘못 읽어 놓으면 아, 하나님 안 믿는 자유도 주셨는데 왜 교회를 나오라고 그러냐고? 성질을 더 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해는 하나님, 햇빛은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은혜면을 가르치는데 이게 잘못되면 뜨거워 죽을 지경 사람을 태워 죽이는 재앙이 되어 집니다. 양면을 가졌습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것이 상하지 않게 한다,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않게 한다. 말씀을 찾아 말씀으로 살고 이제는 말씀 생활에 빛을 보고 바르게 살아 갈 때 이제는 그들을 더위와 또 햇볕으로 애 터지게 만들던 그런 일들이 다 은혜와 하나님의 인도로 바뀌어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 할 것임이니라, 더워 죽겠는데 샘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햇볕은 뜨겁고 물이 제공되면 뭐 식물이고 동물이고 사람이고 전부 다 좋은 세상 되어 집니다. 온도가 높아지는데 물이 제공이 되면 식물이 번성하게 되고 식물이 주는 그늘과 양식으로 초식동물이 살고 그러면 육식이 살고 그 속에 사람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모든 것을 다 하는 겁니다.

 

11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이전에 산이란 올라가기 어려운 그건 다 절벽이었는데, 고난이었는데 산을 길로 삼는다?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높은 것은 깎아 버리고 낮은 것은 채워서 시온의 대로를 만든다. 좀 믿어 보려니 부모가 박해를 해 가지고 집에서도 어렵고 부모의 협조와 양해를 구해서 이제 좀 믿어 보려니까 직장에서 눈치를 주고 말하자면 이런 것이 산입니다. 그 반대가 골짜기입니다. 이래서 탈, 저래서 신앙생활 못 하는 높고 낮고, 높고 낮아 말씀으로 살고 싶어 출발을 했는데 이거 환경의 모든 장애가 양면에서 내리 쬘 때 높은 것은 깎아 버리고 낮은 것은 돋아 버려 평탄한 시온의 대로가 펼쳐지면 고속도로가 놓여진다, 그 말이 됩니다. 강원도 골짝에 고속도로가 펼쳐진다. 그러면 산이고 골짝이고 다 구경거리가 되지. 말씀으로 살아가는 내 생활에는 아무 지장이 없게 되어 집니다.

 

그러면 12절에 원방에 있던 사람들은 원방에서 오고북방 추운 혹독한 환경에 고생하던 이들은 그쪽에서 오고 서방에서 오고 혹자는 시님땅에서 오리라사방천지 어디가 북방이며 어디가 남방이며 어디가 서방이며 어디가 시님인가? 오늘 우리에게는 부부가 행복에 좋아서 주말만 되면 금요일 오후까지 일하고 금요일 오후부터 23일 동남아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 배낭여행 다니는 사람, 친구끼리 만나 23일 먹고 마시고 그냥 마음대로 웃고 생난리가 나는 파티장, 별의별 일정과 사로잡힌 것 사로잡아 갈 것이 많은데 이것도 끊고 저것도 해결하고 주말이 되면 주일을 향하고 주일이 되면 이 날이 생명이고 이 날이 복이라, 이렇게 하루 한 주간, 한 주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13하늘아 노래하라 땅아 기뻐하라 산들아 즐거이 노래하라산천초목 주변 환경 전부가 알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는데 말씀 떠나니까 산은 산이라 원수고 골짝은 골짝이라 원수고 강은 강이라 강이었고 왜 사방천지가 원수라는데 왜 사방이 원수입니까? 알고 보니까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이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말씀 떠나 세상에서 고생하던 모든 고난 고생을 말씀으로 돌아오니 뭐 멀리 갈 것도 없고 그 자리가 다 바로 지상낙원이었습니다. 신풍에서 순천으로 광주로 서울로 미국을 향하여 마구 가야 행복이 펼쳐진다는 사람들 신풍 삼거리 신풍교회에 살아도 아 여기에 미국이 와 있고 일본 보다 나은 것도 있고 서울 보다 나은 것도 있고 서울 살던 사람은 왜 또 시골에 펜션 짓는다고 생난리입니까? 여기 있는 우리 집이 다 펜션 아닙니까? 말씀으로 생각을 씻고 새로 가져보면 행복을 찾아 산 넘어 갈 것도 없이 내 속에 말씀 떠난 내 생각과 사욕과 정욕과 잘못된 생각 습관 이게 바로 천하의 원수였습니다.

 

생각 좀 바로 잡아 이런 저런 형편 때문에 아마 집회도 이전에 10년 전의 집회는 여름에 500명이 넘었고 또 5월에도 350명이 넘었고 그랬는데 이제 바쁜 사람 뭐 화가 난 사람 좀 빠지고 또 코로나에 핑계대고 그냥 슬쩍 발 빼고 지금은 집회, 그러면 저 주변에 놀러 왔다가 한번 얼굴 휘 휘둘고 내 얼굴 모두 보셨지요? 나 집회 온 겁니다, 그리고 속 빠져버립니다. 집회 침 뱉으러 오는 사람들이지. 아 그렇게까지 이 좋은 현실을 그렇게까지 써먹으면 그런 걸 얄밉다 그럽니다. 인간 눈에도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이제 그런 사람 하나 때문에 이래라 저래라 그러다 보면 잘 믿으려고 출발하는 사람들은 또 너무 들볶여 또 문제라 그런 거 별 없이 그냥 지나 갑니다. 그 대신에 아, 강단에 은혜가 없으니까 한 번 두 번 들어 보면 다 알지 뭐 그거 열 번 듣고 몇 십 년 들으러 올 일입니까? 네가 애 터지게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오지 말라고 저 내계 집회 장소 앞에 탱크를 갖다 놔도 저 부산에 이 머시기 처럼 둘러서라도 들어올 건데, 쥐가 먹을 것이 있으면 목숨 걸고 연구를 해서 마지막에는 기어 들어옵니다. 땅을 파고라도 들어옵니다. 네 설교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데 손님 오라 그러면 너 같으면 그런데 가겠냐? 이리 생각해 보면 알지. 은혜가 없어도 살아가는 이치는 있기 때문에 열쇠가 있어야 열고 갈 것이니 이 가치를 아는 몇 사람, 그런 사람 백 명은 되겠지요? 그 백 명과 머리 맞대고 세상은 어떤가?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백 명이면 세계를 구원합니다. 백 명이면. 열 명이면 이 나라를 구원합니다. 두 세 명이면 공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두 세 명이면 네 가정식구만 해도 되겠네. 목회자 회의만 해도 되겠네.

 

원래 집회는 목사님을 따르던 목회자들이 목회자들만 모여 성경을 배우던 교역자 회의에서 출발한 겁니다. 교역자들만 배우던데 교역자들이 아, 이 좋은 걸 내가 배워 잘 가르치면 되는데 이 좋은 걸 내가 배워서 전해 보니까 나는 열만큼 좋았는데 내가 전해 보니까 교인들은 두 셋 밖에 좋아하지 않으니 아예 교인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앉으면 나도 열 배우고 교인도 열 배우면 더 좋겠냐? 더 나쁘겠냐? 진정한 선생은, 진정한 부모는 내가 먹고 젖이 안 나와 아이가 젖이 약해 애를 먹으면 아이 그 집 데려다가 그냥 같이 먹어 버리는 게 낫지, 잔칫집에 일하고 내가 먹고 주는 떡 한 조각 갖다가 집에 애들 대 여섯 명한테 풀어 놓으면 몇 입이나 되겠습니까? 이제 그 잔칫집에 들어 온 사람은 다 잘 먹여 준다면 애들을 달고 와서 잔칫집에서 함께 먹어 버리는 것이 낫지, 그래서 입소문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그리 되어진 겁니다.

 

원래 집회는 처음부터 모이자, 가자가 아닙니다. 나 어디 좀 몰래 갔다 옵니다, 그리고 한 사람 갔다 왔고, 갔다 오고 나서 달라진걸 보고 어디 가서 처먹어서 저렇게 얼굴이 번들번들 저렇게 1년을 펄펄 신앙이 날까? 삼봉산꼭대기에만 가면 저 인간이 사람이 달라져 버리는데 부러우니 나도 한번 가 보자, 너도 한번 와 봐라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되어 진 겁니다. 우리의 집회에 이번 집회부터 마음이 그렇습니다. 다시 강단이 바로 되고 다시 교역자 몇 명이 정신 차리는 집회, 여기에 구경 온 분들이 커튼으로 가둬 놓고 목회자들끼리 성경 공부하는데 그 커튼으로 나오는 빛을 보고 아, 참 세상이 모르는 잔치판이구나, 하고 끼어 들어와서 하나 둘, 하나 둘 이렇게 자라가는 것이 생명이 자라가는 바로 된 선순환이고 막 사은품 주며 북 치고 장구 치며 한 판 걸치게 그냥 술을 돌리고 발광을 하고 그냥 이렇게 홍보를 해 가지고 끌어 모으고 돈 거두고 실적 올리고 사진 찍고 원래부터 다른 데는 그리하고 우리는 반대로 해왔었습니다. 준비는 하고 하던 대로는 하고 굳이 불편한 분들 오라 해서 불편한 분들이 와 놓으면 고요히 말씀 배우는 분위기에 못 앉아 있는 분들 때문에 자꾸 시간을 줄이고 그러다 보면 배울 사람 배우지를 못하면 죽도 밥도 되질 않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그냥 1시간 1시간 집회마다 한 서너 시간씩 설교를 해 버릴까, 양성원 교역자 회의 때는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지금 5시간 6시간도 설교합니다. 양성원 오는 분들 한 4, 50명과 집회한다면 새벽 예배 서너 시간, 오전 예배 서너 시간, 오후 예배 서너 시간 하루에 한 열 댓 시간은 설교를 해야 좀 제대로 배워서 한번만 제대로 배우면 신학자고 뭔 교계 지도자고 세상 어느 누구고 불교고 뭐고 인생이 다 밝혀지고 모자랄 것이 없는 이런 사람이 될 건데 그 어중간하게 여러 사람들이 섞여 놓으니 그 사람들 애 터질까 싶어서 자꾸 줄이다 보니까 좀 고민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한 사람 바로 믿으면 주변이 전부 샘물로 해결이 됩니다. 그 뜻입니다. 그리고 나면 저절로 슬슬 그냥 어느 날 되어 집니다. 가정도 경제도 다 그리 됩시다.

 

(오늘 새벽에 저 설교 마지막 뒷부분 집회 관련 되는 부분은 이거는 비공개가 아니고 공개인데 원래 거는 그대로 두시고 그 밑에 그 부분만 딱 떼 가지고 제목을 따로 좀 붙여 주십시오. 위의 것은 원래 본문으로 하고 뒷부분은 넣기는 넣지만 원래 본문 올리는 데는 제목에도 모든 것이 들어오는 포함을 시키지 말고 집어넣고 뒷부분은 떼서 따로 넣으면서 요약이나 주제, 요약은 집회 운영, 제목에는 신앙과 공회의 집회와 성장의 성경적 신앙적 과정 그 정도로)

 

 

 

1-khs




 

Comments

Category
State
171,084 since 2005
144,010 since 2020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