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2 금밤
제목 : 신앙의 두 길, 돌아와야 할 길 가야 할 길, 해방 자유하기를 간곡한 부탁
찬송 : 121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본문 : 이사야 49장 9절 -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먹을 것은 넘치는데, 마실 것도 넘쳐 주체하지를 못하겠는데, 여호와의 말씀은 희귀하여 성경 속에 지식은 넘치나, 그 말씀 속에 내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을 발견하여 깨닫고, 이것이 내의 생활이 되며 나를 고쳐야 내 속에서 멈추지 않고 솟구치는 영생에 생명에 샘물이 되겠사오니, 이 밤도 5일 예배로 다시 불러주심은 한 주간 한번으로 충분해야 될 이 예배에, 저희 정성과 시대의 악함 인하여 두 번 세 번 네 번의 대예배와 새벽예배를 더하여, 세심하게 우리에게 배려를 주시고, 좋을 때 기름을 마련하여 흑암을 준비하게 하신 사랑인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 다행스러운 복된 마음으로 이 밤도 마음을 모으고, 주님 험악한 때이오니 마음 마음을 열어, 아이들도 청년들도 노년의 주의 종들도, 깨달음으로 복된 앞날을 보는 저들 되게 해주옵소서. 더욱 부족하여 집회까지 마련하고 준비하는 정성위에 주님 마음을 밝혀 주시고, 준비로 오고가는 종들에게 갈 때마다 올 때마다 더욱 감사만 넘치게 하시고, 시대와 역항하여 빛을 향하는 현 집회 되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이 밤도 병원에서 또는 요양 중에 또는 해외나 여러 형편에 있는 우리 교인들, 군무에 있는 아들들까지 돌아보아 주옵소서. 세상과 맞서 결혼과 출산으로 어두움 속에 빛을 발하는 청년들 되도록, 기회 주실 때 은혜 받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이사야 49장, 성경 전체 중에 중간쯤에 주셨습니다. 이런 것도 생각 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에 살고 하나님은 그 은혜에 복주시고 왜적을 막아주시고, 그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구약의 백성의 정식입니다. 가정에 아빠가 있어 돈 벌어 오고 가정에 엄마가 있어 살림 살고 아이를 돌아보고, 담이 있어 안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 뭐 이런 것은 기본입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은 신약은 보이지 않는 내면 신령한 면을 봐야 되고, 겉이 필요 없다 말은 아닙니다. 내용, 신령한 면을 먼저 보고, 내용, 신령한 면을 위해서 겉도 보고, 구약은 겉을 보고 겉이 먼저고 그리고 겉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구약입니다. 구약의 오해는 겉만 좋으면 다인 줄 압니다. 좋은 겉으로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신약의 오해는, 중심만 좋고 소가지만 좋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피부 없이, 피부 없이 심장만 가지고 달리기 할 수가 있습니까? 피부가 있고 갈비뼈가 보호해 주니까 안에서 심장이 심장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신약은 내용과 신령한 내면을 보는 건데 이런 신령한 내면을 위해 더 줄일 수 없는 외형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밤 예배를 굳이 교회로 오는 이유도, 웬만하면 멀리 계시는 분은 몰라도 또 뭔 불편한 일이 있으면 몰라도 웬만하면 미련하다 싶을 만큼 이렇게 모여 않는 이유가, 아 어디든지 하나님은 계시는데 뭔 꼭 예배당이라야 하나? 천하 어디 던져놔도 상관없는 신앙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고, 또 그런 높은 신앙이 되기까지는 보이는 교회에서 보이는 예배를 드리며 점점 자라가서 그리 되는 겁니다. 신약과 구약.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이사야가, 하나님 나라가 영 망해서 끝날 정도의 위기에 나타나서 다시 살린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중간, 침체기에 이스라엘을 살렸는데 그 이사야 시기가 되면, 몇 백 년 나라가 내려오면서 먹고 살겠다고 외국으로 나간 사람, 잡혀간 사람, 별의별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밖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밖에 떠도는 사람은 안으로 데리고 와야 됩니다. 신약은 세계 어디를 가도 신앙만 지켜지면 일단 되어 집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은 불러 오기라도 좋은데 아예 섬나라에 잡혀 가있다든지,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 연락도 모르고 돌아오는 길도 모를 만큼 떨어져 있는데 가 버렸다든지, 섬들아 원방백성들아. 거기까지 가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붙들려 있으니, 나오미 집안은 붙들려 있지는 않았는데 먹고 살기 위한 생활 대책이 붙들고 있었고, 또 포로 잡혀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붙들렸던지 잡혀있는 자들아 돌아오라. 1차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 불러 모으고 그들 주변에 있는 불신자 안 믿는 이방도 때가 되면 회개하고 돌아 와야 됩니다.
지금 유대교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에서 기독교를 제일 안 믿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구약만 믿습니다. 구약만 믿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혈통 자기들만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지, 아브라함의 혈통 유대교 믿는 사람이 아니면 전부 지옥 가라고, 그거는 전도도 안 합니다. 근데 여기에도 이방인데도 6절에 하나님이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45장 22절에 지난번에도 한번 봤지요, 또 한 번 좋은 말씀입니까 두 장 앞으로 돌아와서, 이사야 45장 22절 “땅 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는 없다, 다른 신은 없다. 다른 이는 없다? 그리고 21절 뒤에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이방 구원도 말씀을 하셨는데, 구약은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1차입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다음 주님이 오시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 구약에도 미리 말씀하셨고 신약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내 마음속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이 밤에 믿어봐야 되겠다는 이 마음 이 자세는, 이스라엘 안에 잘 믿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또 내 마음 속에도 아직도 창조와 진화는 어느 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게 의심이 되어 있으면 이거 지금 요단강 넘어 동쪽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창조가 맞고 하나님의 복이 맞고 그건 다 맞다. 근데 연보는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경제를 떼 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다 이해가 되는데 저 원수 저건 천국 오면 안 되겠다. 이렇게 미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지 현재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봐도 요거는 좋은 마음 좋은 신앙도 있고, 이전에는 뭐 경제든지 과학이든지 어떤 면이든지 괜찮았는데, 학교를 다니다가 사회생활 하다가 허물어져 버려, 예전에는 이게 맞다 했는데 지금은 이게 밖으로 나간 게 있습니다. 적어도 대예배 4번은 기본이 아니냐? 이전에는 그러다가 아이 뭐 성경에 보면 주일 예배만 예배지 뭔 평일이야? 가도 되고 안 가도 되지. 그걸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네 번이라고 너는 말을 했지 않냐? 네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지금 입장을 바꾼 것은, 그 입장 바뀐 네가 지금 이스라엘 밖에 지금 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 한국의 모든 교회는 주일은 목숨 걸고 지킨다. 그건 상식이었습니다. 절에 중들이 고기 안 먹는다. 그게 상식이었듯이 교회의 주일은 철칙이었는데, 다른 교회 다른 교단의 기록을 보면 다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분들이 주일을 옛날처럼 지키지 않은 우리를 이단으로 쥐 박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하고 제가 대화할 때 그 어느 교회 다니십니까? 교회가 1, 20년밖에 안 됐으면 어느 교단입니까? 교단을 묻습니다. 교단을 물은 다음 그 교단 저 설립에 위로 올라가면 우리처럼 가르쳤을 겁니다. 우리는 어른이 가르치는 걸 지켜오고 그쪽은 그게 옳다고 그러다가 입장을 바꾼 겁니다. 이 종교인데 신앙은 지켜 오는 게 낫지, 다른 것도 아니고 교리인데. 그 입장을 바꿨으면 그쪽에서 미안해야 되지, 그 어려워도 지키겠다는 쪽을 그렇게 쥐 박으면 그게 좋은 거겠습니까? 이래 말해가지고 화내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뭐라 그러겠습니까, 현재 자기 다니는 교회가 오래된 교회는 그 교회 초기 역사가 전부 주일을 다 접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 교회 주일 지키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의 당신 교회와 과거에 당신 교회, 둘 중에 누가 틀렸는지 당신들이 먼저 한번 토론 해 보시지요.
여수 순천에는 100년 된 교회들이 더러 있습니다. 100년까지 갈 것도 없고 50년만 된 교회라도, 50년 전에 당신교회 개척하는 사람들은 주일은 법이다! 목숨 걸고 지키자! 그랬지 않느냐? 지금은 그게 틀렸다 그러지 않냐? 오늘에 당신 교회와 과거에 당신 교회는 어느 쪽이 틀렸는지, 당신들이 입장을 정리해 주라. 당신 교회에 옛날이 옳으면 우리가 옳은 거고 당신 교회에 오늘이 틀렸으면 우리를 틀렸다 하기 전에, 당신 교회는 회개부터 하십시오. 과거 가르친 사람 다 틀려 먹었습니다. 라고 하고 오셔야지 뭔 말의 순서도. 그 애양원 교회가 지금 100년이 넘었는데 그 교회 비밀 장부가 있습니다. 당회 록이라고 함부로 안 보여 주는 겁니다. 교회 장로님들만 딱 보는 겁니다. 그걸 아마 한 20년, 한 20년 전에 제가 그 목사님이 보여줘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 보니까 그런 말이 있어요. 애양원 교회 집사님 둘이 주일 날 오후에 논에 물 보러 나갔습니다. 논에 물 보러, 갑자기 급해 놓으니까. 논에 물 보러 갔다고 집사 둘을 치리를 해버렸습니다. 집사 떼버렸습니다. 3년간.
지금은 애양원 교회 주일 날 뭐 식당도 가고 다 댕기지 않습니까? 그 애양원 교회에 옛날이 맞았냐? 그럼 지금은 다 처벌해버려야 됩니다. 지금 애양원이 옳으냐? 그럼 옛날에 처벌한 그 목사 장로 다 멀쩡한 사람을 처형한 나쁜 판사입니다. 그 너희끼리 옛날이 옳으냐? 지금이 옳으냐? 입장을 하나로 밝히고 그다음 옆집 우리한테 와 가지고, 아 우리도 옛날에는 주일이 옳은 줄 알았는데 제멋대로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따라오시죠. 이래 말을 해야 말이 되는 거지, 어제 떠들어놓고 오늘은 안 했던 것처럼 벌 소리 하고, 뭐 우리 쪽 비판 하는 쪽은 예외 없이 다 그렇습니다. 그 눈치가 있는 사람은 아예 묻지를 안하고 피해 버립니다. 물어보는 사람은 눈치가 없어 물어 보든지 아니면 믿은 지가 얼마 안 돼서 멋모르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런 분들한테 그냥 문건 하나 딱 내 줘 보면, 그 입 닫은 사람은 할 말이 없어 그런 겁니다. 아직까지 설명해서 한 번 더 대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부근 사람들은 다 양반들이고 지성 지성인인가 봅니다.
여기 교인이 5일 예배 이만큼 모였으면 주변에 뭔 소리를 하면, 그 요거 딱 들어보며 어 그렇겠다! 어려운 말입니까? 너 할아버지는 제사 안지내면 조상이 집에 불 지른다고 제사 지냈잖아? 근데 요즘 제사 지내는 집 하나도 없잖아? 그럼 옛날이 틀렸어? 요즘이 틀렸어? 옛날이 맞으면 지금 우리나라 제사가 다 없으니 이 나라가 다 굶어 죽어야 되겠네? 지금이 맞으면 옛날은 오해를 했겠네. 그 옛날은 미신이야. 기독교는 수천 년 바뀐 적이 없어. 그 안 믿는 사람하고는 대화를 이리 하는 겁니다. 같은 교회 애들끼리 우리 비판할 때는, 그 교회는 뭐라 그랬던가? 뭐라고 가르쳤든가? 물어보면 끝나버립니다.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어디에 잡혔느냐? 구약은 레바논에 잡혀 있고, 앗수르에 잡혀 있고, 헬라에 잡혀 있고, 바벨론에 잡혀 갔고, 애굽에 잡혀갔고, 일단 이걸 하나님 나라로 데려 오는 것이 이사야의 첫 번째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북한에 납치된 사람 없지 않습니까? 중국에 납치된 사람 없지 않습니까? 그 우리야 뭐 어디 붙들린 데가 있어야 송환을 위해서 기도하지, 뭐 선교하러 어디 북한 간 사람도 없고, 내 마음 속에 잘 믿고 있는 부분이 이사야입니다. 내 마음 속에 예전에는 잘 믿었는데 입장을 바꿔 버렸으면, 이게 지금 세상으로 빠져 나간 자기입니다. 그 달래고 토론하고 잘 설명을 해서 나가는 게 맞으면 따라 나가고, 들어오는 게 맞으면 달래서 데리고 들어와야 됩니다.
예전에는 딱 그냥 하나하나 예를 들면 좋은데, 예를 들어도 좀 이해를 하십시오. 예전에는 예배당 청소는 나 혼자 다한다. 일 년 열두 달 예배당 청소를 다하던 사람이, 요즘은 회비 내 놨으니까 교회에서 청소부사서 청소 하겠지 뭐. 옛날에 예배당 청소를 혼자 다 할 때 그때 마음이 신앙의 옳았었는가? 지금은 건강 때문에 하지 않는가? 아니면 뭔 교회만 가줘도 고맙지 뭔 청소까지 시켜. 지금 이 마음이 옳은가? 청소 하고 싶었던 마음이 옳은가? 둘 중에 어느 마음이 옳은지를 잘 살펴서 그 힘이 없고 시간이 없어 못 하지, 아 예배당 청소 내가 했으면 좋았었는데, 그때는 했었는데 왜 지금은 안했던가? 그 마음을 바꿔야 되겠다. 이게 흩어진 민족 잡혀간 나를 데리고 오는 겁니다. 구약은 남의 나라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을 데리고 오는 거고, 오늘은 내 속에 과거의 좋은 신앙이, 이상하게 줄어들고 후퇴하고 나가버려서 흩어진 걸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그게 옳은 신앙입니다.
듣기 싫어도 이전 말을 안 할 수가 없는데 이전에는 예배당에 밤에 교회 기도하는 집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신풍교회 집사님들은 대게 예배당에 저녁에 와서 기도하셨습니다. 또 대부분 교회에서 철야기도 했습니다. 요즘 집사님 중에 밤에 예배당 기도하러 오는 분 한 2분 됩니까? 문 집사님하고 조말순 집사님하고. 문 집사님 조말순 집사님 보다 더 먼저 집사님 된 분들은, 이제 뭐 간부가 되고 목사 위에 선배가 돼서 뭐, 안 와도 하나님이 날 찾아오는데 그리 되었을까? 몸이 따라 가지 않으니 밤에 기도하러 가다 넘어져놓으면, 온 교회에 걱정이 될까 싶어 교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애만 터지고 있는가? 이런 것도 생각을 해 봐야 됩니다. 예전에는 반사를 했는데 지금은 왜 반사 안 하냐? 아이가 없어서 못하지. 아이가 없어 못하면 8시 반 주일학교 오전시간에 텔레비 보고 있습니까? 잠자고 있습니까? 설거지하고 있습니까? 반사를 해야 되는데 아이가 없는 시대라 반사를 못하면, 별관에 와서 성경 읽기라도 하고 있는가? 여기 오는 사람은 그래도 신앙후퇴는 없는 사람입니다.
10시 예배 뭐 그냥 몇 시간 남았는데 놀다가도 넉넉한데, 그 신앙에 신사가 되고 하나님 앞에 높은 사람이 되고 귀족이 되어버리면, 널 위해서 고난당한 나는 헛고생했다. 주님이 그러실 겁니다. 그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겁니다. 어떤 마음을 주님이 기뻐하실까? 세상으로 나간 마음 세상을 돌아다니는 마음, 옛날에는 내가 너무 열심히 믿었는데 그때는 내가 아마 좀 철이 없었던가봐. 이런 마음은 데리고 와야 되는 마음이지, 그 마음이 옳아서 부추겨 자꾸 밖으로 내보낼 마음은 아닐 겁니다. 아예 이제 얼마나 교회와 멀어졌는지, 교회 오는 길을 잊어 가지고 교회 오다가 저 신호등을 지나쳐서 옆 교회로 가고 율촌으로 갔다가, 우리 교회가 여기든가 저기던가 이제 이 정도가 되면 섬으로 간 사람입니다. 섬으로 간사람. 우리 교회 저쪽 공항 앞이 맞기는 맞는데, 영 뭐 바빠서 사업하느라고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언제 예배당에 눈길 하나를 줄 시간이 없어 참 뭐, 몇 십 년 전에 고향 생각하듯이 자기 교회 생각하는 사람, 간부가 되어 그렇고 잘 믿어 그렇고 졸업해 그런 것이 아니라, 원방 백성들아 섬들아, 그 귀를 그 기울이고 이제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들어가니, 내 마음 속에 믿음의 신앙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은 살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돌아볼 때 흐려진 마음, 후퇴한 마음 데리고 와야 되고, 영 신앙을 잊어버린 그런 것도 좀 불러오고 그러셔야 됩니다.
그 하나하나 다 설명하자면 뭐 양심가책이 되어, 그만 미안해서 교회도 못나오고 그럴까봐 뭐 대충 이 정도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한 말씀 드리면 그 말씀으로 저는 저를 생각하며, 나는 잃어버린 것이 없는가, 저는 그런 걸 생각하고 우리 모두 그러십시다.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어느 섬나라에 잡혀 있고 어느 원방나라에 잡혀있고 어느 섬나라 어느 원방나라에서 잡지도 않는데, 거기서 아이 나아서 거기서 재미 붙여 사느라고 올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도 원방입니다. 아브라함 이삭의 아들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원하다가 야반도주를 해서 밧단아람으로 가기는 갔으나, 나 살 곳은 벧엘이며 가나안이라. 이건 20년 동안 변해본 적이 없는데, 어느 날 도망갔다가 거기서 아이 낳고 거기에서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살다가보니까, 가기는 고향을 가야 되는데 그런데 형님 저 에서가, 저놈의 성격이 뱃속에서부터 살아봤지만은 저건 바뀌었을 리가 없고, 돌아가면 위험하고 여기는 좋으니까 누가 붙들지도 않는데, 영 밧단아람에 피난 갔다가 영 그냥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아주 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밧단아람은 이스라엘과 먼 나라가 아니라 주변 나라입니다. 근데 신앙적으로는 원방백성이 되었습니다. 멀리 간 야곱아 거기는 우리나라 아니다. 돌아 오거라. 섬이라도 오고 원방이라도 오거라.
야곱은 외삼촌이 붙들어서 붙들린 거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돈 벌이에 아내에 아들 기르는 재미에 폭 빠져 있었지. 아내의 사랑이 너를 붙들고 앉았구나, 그간은 자식이 귀한 토끼 새끼 같아 자녀 사랑이 너를 붙들고 있구나, 하나님의 약속은 오라 하지만은 에서 형님의 성깔이 무서워 지금 피난 가있구나, 그러지 말고 돌아오너라. 어디에 잡혀도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초등학교 중학교 남자 아이들에게는, 게임에 중독된 게임으로부터 사로 잡혀 있는데 거기서 나오라. 요즘 거기서 나오라 했다가는 경찰 고발 들어갈 겁니다. 아동의 즐거운 시간을 막는다면 이게 아동학대 아니냐? 논리가 그렇고 경찰도 요즘 잡아 갈 겁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휴대폰 꺼내고 게임 하고 앉아 있는데, 그거 뺏었다가 머리 하나 쥐 박았다가 교사들 전과자 됩니다. 남의 자식 망하든지 말든지. 모두들 수업 시간에 주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성의 표시로 한 마디 하고, 네놈들 망하든지 말든지 내 알 것 뭐냐 내 월급 나오는데. 너 하나 인간 만들려고 말 한마디 했다가 뭐 폭언을 했니 뭘 했니, 중학교 애들한테 했다가는, 여선생 머리끄덩이를 끌고 질질 끌었다나요? 그러라고 부추기는 그런 사람을 지지하면 나쁜 사람입니다.
내가 여교사 머리끄덩이를 끌고 질질 끌고 다니진 않았을지라도 나는 안 그랬을지라도, 선생 성질이 더러워 그런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되는데 하도 문제가 되니까, 그 그러는 거 아니다 좋게 말을 했는데, 애들이 선생님 머리끄덩이를 끌고 선생 뺨을 치고 생 그럴 때, 우리 교인들은 뭐 그러지 않았겠지요? 근데 아이들이 그럴 때에 그런 선생들은 전부 교도소를 보내라. 애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 나라를 다스려야 된다고 막 밀어주고 난리하고 그러면, 참 유치원을 새로 댕겨야 될는지, 나중에 자기아들 자기 딸이 교사 돼 가지고 그런 꼴 당하면 그때는 더 펄펄 뛸 겁니다. 어!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당신 평소에 누구를 지지했냐? 당신 평소에 그런 거 잘했다 그랬으니까 선생 뚜드려 패는 그런 인간들, 교도소 집은 넣어야 된다. 그랬으면, 아니지 교사들 머리끄덩이 끄는 사람들을 잘했다 그랬으니, 네 아들이 교사하다가 뚜드려 맞아도 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나올 건데.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남자애들 뭐 게임 여자애들 뭐 또 뭔지 그쪽 세계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연령에 따라 나이에 따라 지방에 따라, 직업에 따라 취향에 따라 미술에 붙들려 포로 된 사람, 미술에 포로 된 사람 압니까? 만화 그림에 폭 빠져 가지고 이것만 쳐다보고 있는 것들, 그건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많더만요? 영화보다 만화로 그려 가지고 그냥 시선을 딱 틀어쥐면 여기는 더 빠져버린답니다. 아이 그렇게까지 그럴까? 공회 안에도 있던데? 그 공회 안에 그런 사건이 있어서 보고가 들어 와가지고 그렇게 알았습니다. 아이 만화 그거 뭐 뭔 홍길동이 만화 그런 거 아니야? 하이고 100년 전에 그거는 옛날이야기랍니다. 별의별것에게 한 번 마음 뺏겨, 한 번 정신 뺏겨, 세월 뺏겨, 진로 뺏겨, 공부 뺏겨, 돈 뺏겨, 건강 뺏겨, 인생 다 뺏겨. 여기 붙들린 사람, 저기 붙들린 사람, 별의별 데 다 붙들린 사람. 구약은 원수의 나라에 잡혀갔다면 신약은, 뭐 휴대폰 안에 여기 뺏긴 사람, 컴퓨터 저기 뺏긴 사람, 별의별군데 다 붙들려 있는데, 그게 하나님이 복을 주는 데면 그게 붙들린 게 아니고 좋아서 들어갔으니 순교 하시면 되고, 저는 성경과 이 신앙에 길에 저는 붙들린 사람입니다. 이 길에서 죽으면서 더 좋고 안 죽으면 그러면 되고, 또 다른 길도 그러면 그리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사로잡힌 데서 나오거라. 해방이 되거라. 자유 좀 하거라. 그 붙들리는 거 아니다.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흑암은 뭐가 뭔지 모르는 게 흑암입니다.
요즘이야 형광등을 갖다가 산꼭대기 대로에 다 켜놨는데, 어디 어두운 데가 있습니까? 다 불을 밝혀 놨는데. 그런 흑암 말고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뭐가 옳은지 모르는 지식, 모르는 세계, 사상의 어두움, 판별의 어두움, 시대의 어두움, 가치의 어두움. 남여를 나누는 게 옳은 건지 뒤섞는 거 옳은지 모든 종류의 이런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아, 진리의 말씀으로 불을 켜면 이건 짐승, 이거는 사람, 이거는 가야 될 길, 이거는 안 가야 될 길. 모든 것이 환하게 되도록 하거라.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건 벌어도 되는 돈, 이거는 주는데도 거절할 돈, 이건 들어가면 연봉 1억인데 믿는 사람으로서는 들어가면 안 되는 직장, 그런데도 있습니다. 이건 내가 가지 않아도 되는 험악한 직장인데, 주님 때문에 가야 되는 직장도 있습니다. 이걸 알면 흑암에서 드러나는 것이고, 거기 빠져 있던 사람은 나와 버리면 사로잡힌 자가 자유로 나오는 것인데, 말은 쉬운데 그러면 먹고 사는 걸 어떻게 할 거냐? 직장과 벌이가 시원치 않은데 누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주겠느냐, 먹고 살고 세상사는 게 문제가 아니겠느냐? 여기에 대해서 9절 하반 절에, 빠져 나오는 자, 회개하는 자, 올바른 길을 향하여 걸어가는 자, 오기 전에 길에서 먹게 했고, 바벨론에서 포로 되어 갔다가 돌아오면 돌아오는 거는 좋은데 오는 길이 위험하고 멀어서 먹고 살겠느냐? 온다고 방향을 잡고 출발하면 오는 과정에 하나님이 먹여 살릴 거다. 회개란 회개하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누가복음 15장, 잃은 양을 데리고 올 때 목자가 어깨에 메고 왔습니다. 고생했다고. 집을 잃어 미아로 고생하던 아이를 엄마가 찾으면, 업고 오고 안고 오지, 길 찾아오라 주소 주고 말겠습니까?
진리에서 벗어났고 신앙에서 떠나 세상에 얽혀 헤매던 사람이, 그래도 말씀으로 이게 옳은데 나의 행동과 길이 이게 옳은데, 방향을 잡으면 직장문제, 가정문제, 결혼문제, 취업문제 별의별 문제가 앞을 쫙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래? 먹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겠지, 새도 먹이시는데. 들에 핀 백합화 옷도 입히는데 하나님의 자녀 돌아 오라해서 돌아 돌아오는데 먹는 것? 아 그거 뭐 요즘 같으면 다이어트라 생각하지 뭐. 제가 요즘 하루 몇 끼 먹는다고요? 하루 두 끼 먹습니다. 세끼 먹는 사람이 아침 거르고 두 끼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상식인데, 배가고파 못 참는데 어떡합니까? 저는 목사니까 그 정도는 참습니다. 고문은 못 참을지 몰라도 교회에 짐 되지 않도록 나이 들어가는데 건강 주의해야 되겠다. 뭐 아침 안 먹고 두 끼 먹으면 더 건강에 좋겠다. 아침 먹어야 건강하다, 두 끼가 건강하다 뭐, 한 몇 십 년 동안 논쟁이 많았는데 이거 다 정리가 되었습니다. 두 끼를 먹는데 두 끼가, 두 끼든 세끼든 6시간 안에 먹으면 건강에 제일 좋다. 뭐 이거 반대 하는 건 못 찾아 봤습니다. 덜 먹으면 뭐 교회 운영비 덜 들 거고 교인들이 월급도 안 주려 그러는데, 목사 월급이 싸서 저 데리고 있지 말 잘해서 저 데리고 있습니까? 저보다 목회 잘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런데 월급이 셉니다. 200 이하는 안 받으려 그럴걸요? 저 데리고 있으면 월급은 최저생계비입니다. 아마 저보다 적게 받을 사람 없을 겁니다. 싸니까 데리고 있지. 그래서 듣기 싫은 소리 맨날 해도 할 수 없이 들어주지. 싸니까 돈이 되니까.
그 하루 6시간 또는 많으면 8시간 안에 그래서 제가 점심은 첫 번째는 12시에 먹고, 두 번째는 6시 전에 숟가락을 놓습니다. 그러면 건강에 제일 좋다 그러는데 테스트를 해보니까 그게 좋아요. 돈 아껴 좋지, 먹는 시간 아껴 좋지, 건강에 좋지, 먹고 싶은 욕심 하나가 문제인데 먹고 싶은 욕심 그놈한테는 제가 이겨야 그래도 목사 흉내라도 낼 거 아닙니까? 그거 오랫동안 해보고 지금 그러는 겁니다. 알게 모르게 모두들 따라 하시면 좋을 거라고, 많이 연구해 보고 하는 말입니다. 좋기는 좋지만은 배고픈 거, 아이 배고픈 게 잡는다고 그거한테 내가 붙들려? 먹는 게 하나님께 좋고 건강에 좋아 주를 위하여 좋으면 그건 좋아서 내가 잡지만은, 돈 아끼고 건강에 좋고 주님 믿는데 좋다면 그걸 못 해? 딱 잘라 버리지. 잡힌 자에게서 나오면, 그러면 이런 말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좋다마는 이론으로 좋다마는 먹고 사는 것 어떡할래? 하나님 책임지겠지. 하나님 책임지겠지. 길에서 먹을 것이요. 옳은 길로 돌아서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그 동안 미뤄났던 복을 부어주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좋은지.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모든 자산에도 풀밭이 있을 것이라. 자산이라는 것은 물은 없고 온 땅이 그러니까 성경에 광야라 그러면, 돌이나 모래로 되어 식물도 살지 못하는 곳을 주로 광야 사막 땅이라 그럽니다. 성경에 자산이라는 말이 몇 군데 나오는데, 성경에 자산이 나오면 ‘자’자는 붉을 ‘자’자입니다. 왜 붉은색인가? 비는 안 오고 흙먼지만 진흙, 메 말라빠진 진흙, 흙먼지만 폴폴 날려서 그래서 자산이라 그럽니다. 풀이 없는 곳. 근데 이게 광야하고 다른 것은, 광야는 비가 오래 와야 풀이 나지만은, 뭐 한번 온다고 다 없어지지. 자산이라는 것은 비 오면 막 바로 풀이 날 수 있는 땅입니다. 네가 돌아오면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살아갈 일 책임진다. 네 눈에 풀 없는 빨간 자산 황무지가 보여도, 돌아오는 길에 보면 벌써 이 붉은 자산에 풀밭이 되어, 벌써 양떼가 먹고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한 20년 전부터 공들여서 10년 전까지, 한 10년 우리 학부형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교회 청년들 가진 자격증들은, 로스쿨 들어가는 데는 다 뭐 거의 다 들어가도록 그렇게 해놓은 자격증들입니다. 내면 거의 다 들어가도록 그때는. 근데 로스쿨 들어가려면 로스쿨 시험 이 주일날입니다. 그 지금까지도 주일입니다. 그래서 전부 포기를 시킨 겁, 포기를 시킨 게 아니라 포기를 했을 겁니다. 주일 한 번만 시험 치면 로스쿨 들어가 로스쿨은 웬만하면 우리 식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자격증 따고 변호사 되고 그럴 건데, 뭐 몇 십 명까지는 몰라도 10명 이상은 만들 건데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주일 시험 한번 때문에 로스쿨 변호사 법조인 되는 길을 포기 한다? 그리고 노가다 한다? 그 포기한 사람들 대부분 노가다 하든지 그냥 일당 받고 다 반 거치 되어 있지 않습니까?
“잡혀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주일 시험보고라도 들어가야 되냐? 택도 없는 소리. 말이야 쉬운데 그러면 먹고 사는 것 어떡할래? 못 먹고 살면 가정은 어떻게 이룰래? 평생에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불안한 마음, 못난 마음, 괜히 남들이 그러지도 않는데 혼자서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들다보면 나중에 신앙에 시험까지 들어갑니다. 그래 주일 시험 치는 사람 저는 막지 않습니다. 볼 사람은 보고 말 사람은 말고, 대신에 안 볼 사람은 죽는 날까지 후회 안 할 자신 있거든 보지 말고, 아 그때 시험 치고 그냥 할 걸 후회할 것 같으면 하고, 여러 가지가 많다 보니까 여러 가지가 많으면, 좋은 데로 가고 쉬운 데로 가고 편한 데로 사람은 가는 거지. 연애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그러면 사람은 하는 데로 가지. 술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이왕이면 먹는 거지. 군대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면 누가 가겠습니까? 이왕이면 안가지. 근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자율성이라는 것이. 죄 짓고 싶으냐? 선악과 먹어라. 먹기 싫으냐? 생명과만 먹어라. 자유성을 주신 것이 하나님이라. 애는 터져 죽을 지경이나 강제는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대신에 설명은 충분히 하는 겁니다.
왼쪽 길 오른쪽 길 선택하면 열매는 네가 먹는다. 알기는 알아라. 마음대로 해라. 보통 젊은 사람 망할 사람은,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아서 우선 좋은 걸 가지면서, 뭐 이러고 저러고 이러고저러고 그래서 그런 거지 그럽니다. 귀신은 말 잘한다. 너 내편 되었다. 평생 데리고 다닙니다. 이제 이런 설교를 듣다보면 잡힌 자에게서 나와야 되겠고 밝게 살아야 되겠고, 그런데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냐? 아 길에서 먹게 했고 책임진다 했고, 모든 자산에도 풀밭이 있을 것이며, 좋은 게 있다 했고 좋을 꼴이 있냐? 바로 살면 하나님께서 그러면 변호사 된 거 보다 더 좋은 길로 그러면 신풍에 준 게 있냐? 제 눈에는 더 좋은 게 많은데 모두들 안 보인다. 그러니까 이게 이제 문제인겁니다. 지금 같이 사육하는 강아지 말고, 옛날에 낳아 기르는 강아지를 데리고 논 뜰 산을 가보면, 개는 어디 숨어있어도 숨어있는 대변만 다 찾아냅니다. 어떻게 찾아낼까? 개는 대소변 눈 것만 다 찾아냅니다. 개 눈과 개 코는 그쪽입니다. 개라서 그렇습니다. 식물학자는 길을 가면 식물보고 동물학자는 동물 보고, 토목 학자는 토목 사장님은 어디를 가도 토목 하는데 돈벌이만 보고, 차 파는 사람은 누구를 봐도 차를 이제 바꿀 때가 됐네, 그것만 보이고, 그건 직업 아닙니까?
49장 9절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고 먹고사는 것 어떡할 겁니까? 흑암 속에 있지 말고 드러나 밝은 가운데 살아라. 밝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생 책임을 질 겁니까? 제 얘기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돌아 서거라, 밝게 살아 보거라, 시작하는 순간부터 먹고 사는 거 하나님이 책임지고, 그다음에 그런 사람을 위하여 목축, 사업 할 자리, 빨간 자산에도 푸른 풀밭을 하나님이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이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안내만 하고. 제가 살아온 평생은 이 말씀 다 해당됩니다. 안 그런 사람 못 봤습니다. 그래서 뭐 죽을 값에 큰 소리 칩니다. 이 말씀이 맞다고. 맞을까? 한 사람을 붙들고 시간만 한 서너 시간 너 댓 시간 주면 이해는 시키겠습니다. 하나 붙들고 몇 시간 이해시켜서 몇 명을 붙들고 이야기하겠습니까? 근데 이제 그거보다는 10시간 설명해서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되더라도, 돌아가면서 참 말은 딱 맞아떨어진다! 말은! 근데 말대로 세상이 되나? 그리고 가버리니까 마지막에 헛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애가 터지고 얘가 터지고 애가 참 터져서, 더 이상 눌러 놓을 수 없을 때 이제 모든 교인들 있는 곳에서 간단하게 줄여, 말씀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 붙들려 있는 것이 뭐든지 거기서 나오시라. 뭐가 옳은지 뭐가 옳지 않는지 모를 때 말씀으로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알고사시라. 세상문제 어떡할 것이냐? 하나님이 책임진다 하셨으니 맡겨 놓고 출발하시라. 여기까지가 교리입니다. 여기다 대고 이제 설교로 사례를 하나 더 하면, 아니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해가지고 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이러면 이제 신풍교회 설교가 됩니다.
그 이 설교를 하고 나면 교인 연보하는 사람도 없는데, 도시교회 같으면 한 교인이 십일조를 해도 몇 천 만원 한다더만, 몇 백 명이 십일조 한 것 다 모아봐야 뭐 천만 원도 안 되는 것, 다 거지들 아니야? 뭔 복을 받았다고 그래? 선동 선전술이지. 이제 그렇게 듣는 분들은 그렇게 들으실 거고, 저는 계산을 이리 빼보고 저리 빼 봐도 참 감당 못 할 복을 소복소복 쌓아 주셨구나! 여기 이사야 49장에 9절에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이 말씀은 창세기 몇 장에 대한 해석인지 혹시 설교 록을 좀 아는 분들은 기억하시는지요? 장현주 선생님 하나나 알면 알란가? 원방 백성이 돼서 요즘은 모르실 란가? 이 49장 9절 백 목사님 설교 록에 이 앞에 구약에 누구 예들 때 꼬박꼬박 나오는지 기억하십니까? 저 쳐다보시고 압니까? 잊었습니까? 다른 분 아시는 분 손 들어 보시죠? 누구 얘기 때 나오죠? 이거? 크게? 요셉 아닌데? 창세기 13장,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다가 바로 왕에게 많은 재산 얻어서 롯과 함께 돌아왔다가 6절, 갑자기 부자가 되는 바람에 한 골짝에 함께 있을 수가 없을 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의 다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다가, 삼촌하고 조카끼리 돈 문제 가지고 이러는 거 아니다. 네가 동쪽가면 나 서쪽 갈게, 너 서쪽 갈래? 나 동쪽 갈게. 그때 동서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그때 동쪽은 요단강 물이 넘쳐흐르고 온 풀밭이 에덴동산 같아서, 가기만 가면 떼돈 버는 곳입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가면 빨간 자산 밖에 없어, 목축하는 아브라함이 그쪽으로 가면 다 죽는 길입니다. 하나는 횡재 하나는 죽는 길, 둘 중에 아브라함이 어른이니까 나 좋은데 갈 거니까 젊은 네가 저쪽 가라 그래도 되는데, 롯에게 알아서 해라. 롯은 아내와 딸 둘이 들볶아서 좋은데 갔습니다. 그게 소돔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하지 않고 12절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이쪽 가나안 쪽이 풀 없는 곳 그 당시는 목축을 못하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이 이쪽으로 방향을 딱 잡고 죽을 값에 순종 한다고, 가다 보니까 먹을 것이 생기고 가다 보니까 비가 오고 가다 보니까 벌써 풀이 나고, 풀이 나다 보니까 벌써 뭐 양떼가 많아지기 시작하는데 감당 못할 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롯은 알다시피 소돔에서 모조리 끝나버렸습니다. 창세기 13장 아브람 롯에 갈래 길에 아브라함 택한 길이, 이사야 49장 9절에서 해석한 바로 이 말씀입니다.
공부도 진학도 진로도 결혼도 신앙생활도 만사도, 우선 먹기 좋아 곶감 빼먹고 뒤에 소돔 고생하시든지 말든지, 하시든지 말든지 그 말이 아니라 그러지 마시라. 애 터지게 이제 말만 하는 겁니다. 말 이상은 못하니까. 또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어려워 보이나, 어려워 보이는 속에 복이라는 복은 소복하니 복 받으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이론은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가 아니라, 제 평생에 살아 보니까 다 그렇던데 제가 어디서 살았습니까? 여기서 살았지. 여기 오기 전에는 공부밖에 안 했습니다. 교회 직원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세상생활 처음 했지. 여러분들 가정은 제가 다 알지 않습니까? 하나님 복을 위에서 퍼 부어 대는데 수도꼭지 틀어놓고 다 빼 버려서 물이 없지. 핑계는 어디다 핑계를? 또 부어주시는데 잘 모아놓고 뚜껑을 닫아 놓으니까 물이 썩어 버렸지. 주시면 받고 쓰랄 때 쓰고, 받고 쓰고 받고 쓰고 하면 벌써 얼마나 더 잘 되었을 터인데, 자기 그릇대로 가는 겁니다. 그릇대로.
폭우가 쏟아져도 자기의 그릇이 한 컵이면 마지막에 한 컵만 딱 담깁니다. 아이 하나님이 위에서 퍼부어 주는데 말만 퍼줬지 한 컵 밖에 안 주대. 하나님이 한 컵 밖에 안 줬습니까? 네가 한 컵만 열어 놨으니 한 컵만 담기지. 네가 산곡 저수지를 한번 문 닫아 놓고 기다려 봐라 저수지를 다 채우지. 그 인생 살아가는 게 그렇습니다. 간곡한 부탁을 빙빙 둘러 그냥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한 가정 한 가정 이름을 불러 그 가정에 수도꼭지 잘못 튼 것, 길 잘못 간 것, 전부다 그냥 공개를 해버렸으면 참 좋겠는데,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학교 교육, 세상 얘기하는 거 아닙니다. 신앙의 두길, 뭐든지 좋은 것은 땀이 가고 시간이 좀 가는 겁니다. 그리고 좋아지니까 남들이 도둑질을 못해가고 못 따라 가는 겁니다. 베끼지도 못하는 겁니다. 좋은 길, 복된 길, 좋게 좋게 소복소복 쌓아 복 받으라는 이게 축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