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2.4.22 사49:7 죄사함의 개념, 참 동행일 때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과 그 결과, *사49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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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2.4.22 사49:7 죄사함의 개념, 참 동행일 때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과 그 결과, *사49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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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2 금새

 

제목 : 죄 사함의 개념, 참 동행일 때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면과 그 결과, *49 주해

 

찬송 : 51(너희 죄 흉악하나)

 

본문 : 이사야 49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외부적으로는 육체의 이스라엘이니 항상 구약을 읽을 때는 있는 그대로 외부를 먼저 살펴놓고 오늘 우리는 신령한 이스라엘이니 내속의 어떤 면을 말씀 하셨을까? 둘을 겹치면서 나아가야 바르게 읽어나가게 되어 집니다. 사방 천지로 흩어지고 붙들어간 이스라엘, 잘 살기 위해 나오미 가족처럼 흩어진 이스라엘, 포로 잡혀간 이스라엘 별별 일들이 다 있었는데 오늘도 중생된 자기 속에 중생이 되었으면 시선도 관심도 욕심도 야망도 행위도 전부 다 말씀 안에 성령 안에 사활의 대속 안에서만 활동을 해야 되는데 세상을 향해 흩어 진 시선, 또는 세상이 뒤 흔드느라고 흔들어져 버린 생활 생애, 그게 다 어디에 가 있던지 불러 원래대로 갖다 놓아야 됩니다.

 

그리고 나와 세상 가운데 있는 우리 교회, 공회로 말하면 어쩌다가 이 노선 어쩌다가 우리 교회를 출석한 분이면 뭐 그럴 수 있지만은 이 길이 옳고 이 교회가 하나님이 붙여준 자기 교회라면 그러면 신풍교인은 먹을 것 때문에 직장 때문에 출장은 갈 수 있고 전근은 갈 수가 있을지라도, 신앙의 마음과 신앙의 걸음은 공회나 교회를 떠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 목포까지 전근 간사람. 꼬박꼬박 주일을 지키기 때문에 멀어도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루도 빠짐없이 실시간으로 연결이 되고 그리고 언젠가 예배당 옆으로 출퇴근 거리로 오는 걸 목표로 단기간에 지금 과도기를 보내고 있으니 목포 아니라 서울이든 어디든 갈 수는 있습니다. 목회 급으로 신앙을 가져야 될 분이면, 한 달이면 몰라도 1년이면 대통령하라 해도 못 하겠다, 이 정도 되면 더 낫겠지마는 모세나 요셉도 주시는 사명 때문에 평생을 외국에서 보낸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건 각자에 따라 조절하면 되어 집니다. 마음만은 틀림이 없어야 됩니다.

 

요셉이 애굽에 80년을 총리를 했고 93년을 있었지만은, 단 한 번도 애굽에 마음을 둔 적이 없어서 마지막 죽을 때에 언젠가 하나님이 고향으로 다 데려갈 터인데 그때가 되면 내 해골이라도 쓰던 것 죽어 남겨 놓은 먼지 하나라도 여기 남겨 두지 말고 가져가라, 이 정도가 되어야 신앙입니다. 뭐 별 것 없는 이 나라 독립운동 위해서 젊음을 바친 이들, 죽어 해방이 되거든 내 뼈라도 고국으로, 마음을 이리 먹어야 그게 애국자 축에 들어가는 겁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 위에 사상이 있고 그 위에 종교가 있고 종교 위에 신앙이 있습니다. 잘 믿지는 못해도 근본의 방향과 자세가 뭔지는 알아야 그게 신앙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이스라엘의 구속자,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해결하신 하나님, 지은 죄만 해결했다, 그리 나오는 분들, 한 절반 있고. 좀 보는 사람은 죄 해결이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가 문제가 아니냐? 이것까지 보는 게 구속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죄 안 지었다고 자랑할 수 있겠는가? 저 신풍 삼거리에 플래카드를 걸어서 신풍교회 목사는 살인한 적 없다, 그렇게 플래카드 걸어놓고 제가 도장을 찍어놓으면 아, 목사라 살인도 안 했는가보다, 그러고 지나가겠습니까, 그럼 평생 강도란 말 아니냐 이놈, 그렇게 읽겠습니까? 그걸 읽을 줄을 몰라 놓으니 이렇게 세상이 휘청거립니다. 테레비가 많고 학교 공부를 거꾸로 해 놓으니까 그렇습니다. 학교 없을 때는 이런 거는 통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플래카드 치우고 신풍교회 목사는 살인도 안했지만 강도도 아니다, 그렇게 적어 놓으면 교회 돈 다 들어먹은 도둑놈이네, 그럴 것 아닙니까? 신풍 목사는 야밤에 아무도 없을 때도 신호등 하나 차선 하나 다 지킨 사람이다, 그러면 법은 어기지 않았다는 말인데 월급 주고 법 지키라고 갖다놨냐? 목사 같으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다든지 등, 그게 문제지, 그리 볼 거 아닙니까?

 

지금 뭐 장관할 사람 줄줄이 다 갖다놔도 저는 주민등록 하나도 가짜한적 없습니다, 애들 사기 친 적도 없습니다, 이것만 가지고 뭐 그냥 수 십 년 나라가 이 짓을 하고 앉았는데 그거 어느 인간들이 처음부터 했는지 또 다 까먹었습니다. 나라를 복지에 행정에 외교에 한 분야에 나라를 다 책임질 장관 같으면 교통신호 몇 번 어겼냐? 애들을 사기 몇 번 쳤냐? 그건 놔두고 네가 이 나라를 맡았으면 얼마나 잘 할거냐? 능력은 보지도 않고 30년 전에 이 짓 했습니다, 저 짓 했습니다, 이 짓 했습니다, 저 짓 했습니다, 나라 망쳐 먹으려고 작정한 인간들입니다. 이거 한 1990년대부터니까 30년 전부터 시작한 겁니다. 원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발바닥에 무좀이 몇 개냐? 장관할 인간이 발바닥에 무좀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고 자기 분야를 책임져야지. 선보러 간 아가씨가 커피 마시는데 잔을 잡아 입에 가는데 속도가 어찌 되며, 그러고 앉았으면 기생오라비들한테 평생을 털리는 거지, 털려도 싸지. 이 인간은 책임성이 어떠냐?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느냐? 소가 일을 하는가? 그걸 봐야지. 소가 얼마나 예쁘냐, 면도를 잘 했냐, 화장을 잘 했냐, 소 데리고 살 겁니까? 소는 부려 먹을 거지. 또 여자는 뭘 볼까요 그럼? 옛날 분들은 전부 다 아들을 잘 낳을란가? 족보에 아들이 몇인가? 그거부터 다 봤지 않습니까? 왕궁에 며느리 들일 때 왕자가 며느리를 찍다니 큰일 날 일이지요. 집안 족보에 아들을 얼마나 낳았는가, 양반인가? 이런 거는 뭐 말할 거도 없는 거고.

 

죄만 안 지으면 된다, 참 어지간히 몹쓸 교파구나, 그런데 그 교파가 뭐 저것들이 더 정통이라고 악쓰고 난리입니다. 당연히 죄는 해결해야 된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 해야 될 의무도 봐야 됩니다, 이게 사죄 칭의 입니다. 할 일만 하면 됐지, 여기까지 간 사람은 남자가 여자 안 두드리고 남자가 돈 벌어 주고 성실하게 가족 먹여 살리면 됐지, 남자의 마음은 어디에 가있는데? 마음이야 돈 벌어주면 됐지 뭐, 마음도 늘 부부니 하나라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눈 팔지 않는 남자, 그런 여자. 재벌 집에 인물 좋아서 시집가는 여자들, 돈한테 갔는지 남자한테 갔는지 줄줄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 당연히 해결해야지. 해야 할 의무와 책임 당연히 잘 해야지. 끝인가, 그 마음이 하나인가, 이게 동행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이라는 말이 그런 겁니다. 화친, 하나. 한 팀. 여기다 대고 하나 더 나아가면 이 상태로 영원히 변치 않는 이게 영생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사죄 칭의 화친 소망. 네 가지를 잡는 이유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네 면으로 해결하신 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한 길만 열어 놓은 하나님, 하나님이 이사야를 왜 붙들었는가,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니까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 안 해 가지고 멸시 당하는 자, 게을러 얻어먹고 돌아다니는 자, 그래서 거지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째려보고 무시를 하니까 그 멸시를 받으면 정신을 차리라고 하나님이 지금 이렇게 옆구리를 치면 이제 부지런하게 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살면 좋겠는데 이사야 497절을 벽에 걸어놓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그를 보고 열 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게 만든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그렇게 만들겠다, 그러고 앉았으면 이 인간은 회개할 희망도 없는 사람 됩니다.

 

이사야가 게을러 멸시를 받고, 이사야가 얻어먹고 다니니까 사람들이 멸시를 했는가? 좁은 길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가니, 좀 편하게 넓은 길 세상을 향해 걸어가자는 사람들이 아니 뭔 저런 천국도 안 가보고 천국을 외치는 인간이 있나? 미치지 않았나? 잘못된 멸시 그 멸시를 받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옳은 소리를 하니까 듣기가 싫어 아, 저놈의 선지자 좀 입 좀 닫으면 좋겠는데 25년 전에 실수한 걸 가지고 저렇게 난리라, 좀 잊어버리지. 날 미워 그런가? 나도 네가 밉다, 옳고 바른데 대해서 저항하고 나오는 그런 미움을 받는 자. 사람에게 멸시를 받는 자, 하나님만 귀한 줄 아니 하나님만 귀하게 보면 사람을 귀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멸시를 하는 거고, 하나님만 사랑하면 인간의 잘못된 걸 지적하기 때문에 인간의 잘못된 걸 지적한다고 미워하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 위에 공무원 관원 높은 사람을 세워놓으니 하나님 때문에 순종을 합니다. 틀려도. 남들이 볼 때는 선지자라 그래 봐야 관원들에게 종이 되어 왕과 공무원이 이래라 저래라 그러면 권력이 없어서 절절 매는 주제에, 겉보기는 그렇게 보이느냐?

 

1절에서 6절까지의 걸음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그런 이사야에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사야를 붙들고 역사하는 이 네 면을 모르기 때문에 멋모르고 멸시하고 무시하고 마음대로 잡아 부린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 붙들린 하나님의 종의 걸음걸음, 그 걸음걸음에다대고 하나님이 존귀하게 붙들어 높이 들어 올릴 터이니 멋모르고 이사야를 멸시하고 미워하고 부려먹은 모든 임금과 모든 관원들이, 이사야의 뒷날을 보고 하나님이 붙든 이사야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이스라엘의 왕 하나뿐이 아니라 천하 만방에 저 대로 잘났다는 것이 왕인데 왕들이 일어서서, 이사야가 가는데 앉아 있다니 누워 있다니 벌떡 일어서서그 말은 존경을 표하며

 

왕 밑에 최고 책임자들 도지사 장관들을 방백이라 그럽니다. 관원은 저 밑에 하급 관리, 저 위에 고위 관리들을 방백이라 그럽니다. 꼭대기의 왕들이 벌떡 일어나서 존경하고 그 밑의 방백들은 엎드려 경배하리니 이사야 인물이 좋아? 이사야 주먹이 쌔서? 이사야 말발에 걸렸다가는 창피 당할까봐?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너를 택한바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이 12절에서 이사야는 이사야 자체를 그 존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했고 그 역사 그 사명을 하나님이 해오셨으니 그 과정을 보며 그 결과를 보며 열왕이 일어서고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사야 너를 택한 신실한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때문이라. , 그 이스라엘은 약소국이라 쥐어박아 끌어가면 된 줄 알았는데 그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지켜보니 만유주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사야는 그 중에서도 지도자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종이었구나, 멋모르고 그랬구나, 참 존경할 분이구나, 그리 되리라.

 

8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은혜 주실, 기회 주실 평소에 꼬박꼬박 말씀으로 살아 주님 주시는 은혜를 받아놨으니 구원의 날에하나님의 은혜 능력 아니고 인간으로는 절대로 통과 할 수 없는 그런 위기 그런 환란 그런 시험의 때에 하나님이 나서서 보호하여 이사야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봐라! 이사야의 걸음을 봐라, 이사야 하나만 원하면 되겠냐? 하나님의 백성 전부가 다 이사야다워야 되고 이사야 같았어야 된다. 이사야를 들어 언약을 삼으며 이사야를 봐라, 이게 하나님의 약속이며 이게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이 아니냐.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망한 이스라엘 흩어진 이스라엘 이제 끝장난 이스라엘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순종하는 종들 그 밑에 짜여 진 백성들로 참 놀랍다, 과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순종한 믿는 사람이 부럽고 믿는 그 행위가 부럽고 자기 마음속에 신앙으로 자기를 다 다스리고 붙든 신앙의 사람들이 참 귀하구나.

 

9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어디에 붙들려 있느냐? 구약은 애굽에 붙들려 있고 앗수르에 붙들려 있고 두로와 시돈에 붙잡혀 있는데 오늘 우리 신약 우리들은 돈에 붙잡힌 사람, 학교 성적에 붙들려 주일도 없는 사람, 연애에 붙들려 뭐 그냥 목숨 걸겠다고 생 미쳐 정신도 없는 사람, 취미에 붙들려 등산 가는 사람, 취미에 붙들려 바둑 두는 사람, 취미에 붙들려 도박하는 인간, 주로 예술 문학 하는 사람들은 전부 거기 붙들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잡혀 있는 자에게 나오라취미도 좋다마는 취미에 붙들려 신앙의 사람이 신앙의 사람으로 걸어가는데 불편한 것은 털털 털어라. 대통령 아니라 뭘 시켜 준다 해도 신앙에 도움 되지 않을 땐 딱 잘라버려라. 지방에 붙들린 사람, 가족에 붙들린 사람,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에 다 뺏긴 사람 그 어떤 것도 주님 따라가는 길에 영향 미치고 붙들린 거는 다 붙잡힌 겁니다. 구약은 이 나라 저 나라에 잡힌 자들이 돌아오라,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이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 갈 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우리 내면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면 막 전교 1등인데, 2등인데, 몇 등인데 이래 가면 어느 대학, 무슨 전공, 어떻게 되는데? 그 밝은 길이 눈앞에 보인다고 쫓아가는데 하나님이 마음에서 멀어지고 진리의 말씀이 마음에서 멀어졌으면 흑암 속에 지금 뭐 뒤죽박죽 죽을 길인지 살 길인지 낭떠러지 뛰어가고 난리입니다. 지뢰밭을 밟고 다니고,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나타나라세상에 붙들렸고 진리의 어두움 속에서 밝은 길로 돌아 오는 것은 말은 좋지만은 먹고 사는 거는 어떡하겠느냐? 돌아서는 순간, 그때부터가 길에서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먹일 것이고. 길에서 먹을 것이고. 너희들이 볼 때는 이렇게 신앙으로 살아 어떻게 먹고 살거냐, 보이지만은 너 눈에 걱정되는 그 모든 황무지가 자산입니다. 농사 짓지 못하는 땅, 목축하지 못하는 땅, 그런 자산에도 풀밭이 있을 것인즉하나님이 다 예비하실 터이니 세상 염려 근심 붙들어 매놓고 진리에 자유하고 신앙의 밝은 길로 네 마음 네 생각 네 야망 너 가치관 너 염려 근심 전부 다 털어버리고 라는 말씀으로, 9절 이하는 밤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겁니다. 저도 배워서 이제 좀 알고 있습니다. 알면 함께 가져야 좋고 함께 좋아져야 이게 하늘나라인데 마음속에, 한 말씀 듣고 마음속에 자기의 과거도 비추어 보고 자기의 오늘의 가치관도 비춰보고 자꾸 그러면 밝아지고 그러면 바른 길 걸어가고 그렇게 하다보면 먹고 사는 게 어찌 되느냐? 그리고 다시 보면 하나님이 챙겨 먹고 사는 것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열왕이 일어서며나름대로 세상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 저래 사는 것이 그게 옳겠구나, 참 부럽구나, 저것만 맞겠구나, 이게 신앙의 걸음입니다.

 

 

 

1-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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