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4.10 약1:14 하나님과 말씀 떠나서라도 가지려는 육체의 욕심, 오늘날 죄와 사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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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4.10 약1:14 하나님과 말씀 떠나서라도 가지려는 육체의 욕심, 오늘날 죄와 사망의 원인

관리1 0 142 2022.04.1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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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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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410 주전
 
제목 : 하나님과 말씀 떠나서라도 가지려는 육체의 욕심, 오늘날 죄와 사망의 원인
 
사회 : 오영근
찬송 : 16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97장 (내 주의 보혈은)
 
본문 : 야고보서 1장 14절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 위에 오시기까지 우리를 위하여 크신 대속의 완성을 시켜 주신 이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또한 복된 날 복된 시간을 허락해 주신 주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와 죄송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 이 시간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의 각 사람 마음 마음을 친히 주장하사,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 지는 이 시간 예배가 되게 하시고, 또한 앞서간 선진들과 같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들의 단점을 보며 우리 속에는 죄를 물 먹듯이 먹고 마시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며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저희들인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알려 주셨사오니, 이 말씀을 따라 신앙 양심을 우리의 말씀의 무기로 삼아 주님과의 관계가 흐려지지 아니하도록 항상 우리 자신이 깨어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다가오는 5월 집회도 주님께서 친히 동행 하사 관민의 협조와 지극히 적은 풀 벌레 하나까지라도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오니 주님께서 친히 인도 하사 어둠에 속한 우리 자신을 말씀의 빛 가운데로 더욱더 인도하시기 위하여 이 모든 행사를 주님께서 열어 주셨사오니, 다 은혜 받고 주님 앞에 바른 길을 걸어가는 우리 자신이 될지언정 주님과 멀어지지 아니하도록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기 시험이라 말은, 학생이 학교 가서 치는 시험과 같은 말입니다. 학생 치고 시험 어려워 하지 않는 학생은 없습니다. 학교의 시험뿐이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으면 건강의 시험, 친구 관계가 틀어져 어려우면 그것도 시험, 취업 직장 사업 가정 요즘 같은 이런 코로나방역 때문에 어려운 것도 전부 다 시험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학생 치고 시험 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또 세상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이든 어려움은 한 번씩 거칩니다.
 
그런데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라” 내 속에 욕심이 들어가지고 어려움을 가져오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라. 그 뭔 말일까? 15절에, 욕심이 아이를 낳으면, 말이 아이를 낳으면 망아지가 되고 소가 아이를 낳으면 송아지가 됩니다. 욕심이 아이를 낳으면, 죄가 태어납니다. 죄의 엄마가 욕심이구나, 욕심이 지나가고 나면 죄가 태어나는구나. 그 죄가 무럭무럭 자라고 나면 따라 합시다. “사망을 낳느니라”(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또 죄가 손주를 낳아 그 손주 얼굴을 보니까 사망입니다. 죽는 것도 사망이고, 사업이 망하는 것도 사망이고, 시험을 영 잘 못 치는 것도 사망이고, 모든 종류의 어려움과 모든 종류의 불행은 전부가 사망인데, 사망의 원인이 뭐냐? 죄고, 죄의 원인이 뭐냐? 내 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이라. 자기 속의 욕심만 잘 구별하고 정리를 하면 자기에게 죄를 다 뿌리 뽑아 없앨 수가 있고 죄만 다 뽑아놓으면 사망이라는 어려움과 불행은 오지 아니한다. 이게 오늘 본문에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 살피기 위해서 학생들은 교안 보시고.
 
하나님이 원래 만든 세상은 좋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매일매일 세상을 만드시고 다 만드신 다음 제일 마지막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어 놓으시고 하나님이 딱 볼 때 ‘그 참 잘 만들었다. 보기에 좋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원래 세상을 처음 만들 때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두 눈, 하나님은 좋게 만들어 놓고 “보기에 좋았더라” 우리의 발, 하나님은 만들어 놓고 “보기에 좋았더라.” 생쥐도, 코끼리도, 꽃도, 잡풀도, 하늘의 태양도, 하늘의 별도, 구름도, 비와 바람까지도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이 만든 걸 하나님이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오늘 첫 말씀으로 하나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이 좋게 만든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일단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단정을 해 놓으시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은 내 마음에 미운 인간은, 저게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그다음 생각하시되, 하나님은 세상을 좋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상식으로 지식으로 알고 계셔야 됩니다.
 
그런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을 인간이 죄를 지어 가지고 엉망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원래는 좋았는데 이제는 망가진 세상, 잘못된 세상이 아니냐? 그렇게 보입니다. 코로나로 2년 반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거 뭐 좋아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픈 거는 다 싫지. 뭐든지 좋은 세상을 뭐든지 망가뜨려 놓은 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 그렇습니다. 그랬든 말았든 원래 만든 원래의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나 보기에 좋으면 나하고 미운 사람은 좋지 않게 볼 것이고, 맹수들이 좋은 세상은 맹수에게 먹히는 동물들이 싫어 할 거고, 식물이 좋아하면 동물이 싫어 할 거고, 별의별게 다 있는데.
 
요즘 살기에 여성들 다 좋으시지요? 안 봐도 그냥 남성들은 살기가 어려울 겁니다. 50년 100년 전에는 남자로 태어나면 놀고먹어도 남자라 별로 아쉬울 게 없었습니다. 여자 살기가 어렵지. 남자 살기 좋은 세상이면 여자 살기 불편할 거고 여자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남자가 불편할 거고. 월급이 적어도 학교 가면 선생님은 마음대로 다 했습니다. 요즘은 애들이 마음대로 다 하고 선생님들이 슬슬 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누가 좋아하면 누구는 싫고 누가 좋아하면 누구는 싫고 이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랬으니 원래 세상은 좋았던 세상입니다. 근데 사람이 죄를 지어 가지고 오늘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오늘의 세상도 잘 들여다보면 한번 따라 하십시다. “감사함으로 받으면”(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버릴 것이 없느니라) 죄 짓기 전에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으니까 원래는 좋았겠다. 그런데 지금은 좋지 않다. 안 좋은 게 많습니다. 이런 망한 세상, 복잡한 세상, 참 엉망이 된 세상도 디모데전서 4장 4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가 세상을 그냥 살면 누구든지 세상을 그냥 살다 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별의별 일이 많은데 ‘살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참 어렵다. 참 골치가 아프다. 마지막에 죽어야 되지, 늙어야지.’ 별의별 일을 다 봐야 되기 때문에 철들어서 세상을 제대로 보면 ‘사니까 살지 좋아서 살만한 세상은 아닐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세상을 그리 봅니다. 근데 원래 만든 세상은 어떠했더라고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만들어 놨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이 모양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들에게는 해결의 방법을 하나 주셨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이게 좋은 걸로 주셨다는데 왜 나쁠까? 원래는 좋은 걸로 주셨다는데, 원래는 좋게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 좋지 않은 걸 다시 보면 ‘이거 괜찮네, 이거 쓸 만하네, 이것도 다 이유가 있고 좋은 것이었네.’ 전부가 다 이렇게 풀어지는데,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단 하나도 타락한 세상, 망가진 세상에서도 버릴 것은 없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오전에 두 가지를 먼저 살펴보고 있습니다. 원래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백점짜리 세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세상을 망가트려 세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1번.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짓기 전 에덴동산 좋았던 세상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 골치 아픈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지 않느냐? 엉망이 된 세상 복잡한 세상이라도 감사만 가지면 그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감사라는 것이 해독제입니다. 감사라는 것이 문을 열 수 있는 만능열쇠입니다. 어딜 가든지 문이 열려서 어딜 가든지 형통하면 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늘 건강하고, 늘 재밌고, 늘 좋고, 늘 좋은 일만 있으면 누구든지 좋습니다. 근데 가다보면 막히고 가다보면 막히고 막히는 것이 많으니까 이게 힘든 겁니다.
 
어릴 때 젊을 때야 건강 문제 있습니까? 나이 들어가며 건강 문제 안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이 첫사랑에 안 좋은 남녀가 어디 있습니까? 첫사랑이 석 달 갑니까, 3년 갑니까? 저 어릴 때는 첫사랑을 3년이라 그랬습니다. 3년은 살만하다 그 말입니다. 좀 나이가 들어가니까 첫사랑은 석 달이라고 10배를 땡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보니까 한 석 달은 좋은 거 같고 3년까지 좋은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그냥 사니까 살지. 세월이 더 지나가다 보니까 신혼여행 3일 좋지 그다음 끝까지 좋더냐? 신혼여행에 뭐 이 가정 저 가정 그냥 뭐 엉망 된 것이 벌써 한 20년, 30년 소리가 나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처음은 좋은데 가다가 보니까 막힙니다. 막힌 문이 있습니다. 열리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이든지 다 열수 있는 열쇠만 있다면야 문이 없으면 없어서 시원스럽게 가고 막히면 막힐 때마다 열쇠로 열어 버리면 다 해결이 된다면야, 하나님이 만든 좋은 세상이 인간이 죄를 지어 엉망이 되었을지라도 전부 다 고칠 수 있고, 전부 다 해결할 수 있고, 전부 다 열어젖힐 수만 있다면 그러면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죽음이란 피할 수가 없는 문이었는데, 죽음이라는 것도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말씀을 가지고 죽음을 다시 한 번 더 해결을 해 보니까 100년 안팎을 사는 인생에게 영원을 주시는 그 문이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도 무조건 나쁘다 할 것이 아니라 ‘그것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을 해야 되겠네’ 그리고 나서 죽음을 연구해보면 죽음이 싫은 분들, ‘한 오백년 사십시오.’ 요즘 인사하면 요양원에 갔다 가는 ‘오백년 더 살아라.’ 그랬다가는 몸 성하게 나올 순 없을 겁니다. 이왕 버린 몸, 늙었지 힘도 없지 정신도 오고가지 죽을 순 없지 옆에 사람 고생은 하지. 죽는 것도 싫고 두렵지만은 이렇게 십년이 아니라 백년 오백년을 살라면 그 저주 중의 저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한 번 넓게 생각해 보니 ‘사는 게 좋다.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는 것도 필요하다. 근데 죽음 넘어 영생이 있다면 살아 좋고 죽으면 영생으로 바꾼다면 그거는 좋겠구나!’ 이게 감사함으로 받으면 죽음도 버릴 것이 없느니라.
 
죽음 앞에 평소에 살다가 병이 드는 문제, 요즘 코로나는 뭐 가정마다 없는 사람 없고 다 한 번씩 거쳐 갔을 테니까. 2년 전에 코로나는 뭐 그냥 생 죽는 줄 알고 온 나라와 세계가 벌벌 떨었습니다. 근데 2년을 지켜보니까 지나가는 감기 몸살 정도입니다. 한 해 감기로 죽고 몸살로 죽는 사람, 독감으로 죽는 사람, 폐렴으로 죽는 사람보다는 코로나로 죽는 사람이 숫자가 좀 적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이제 코로나 2년을 다시 되돌아 봅니다. 돈 벌데 많지, 국가에서 공짜로 주는 돈은 쌓여 가지. 주는 돈 다 먹으면 체중 관리가 안 돼서 당뇨에 전부 혈압에 병원에 다 드러누워야 됩니다. 주는 돈과 먹을 것은 많은데 아껴 먹고 아껴 써야 몸도 좋지. 근데 먹을 것이 많고 돈이 쌓이는데 어떻게 안 먹고 어떻게 안 쓰겠습니까? 세상이 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코로나로 가지고 한 2년간을 갖다가 10분 쉬는 시간을 주셨다 그리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영어도 배워야 되고 수학도 배워야 되고 하루 종일 공부는 해야 되는 것은 맞습니다마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오전 공부, 오후 공부, 방과 후 공부, 과외에 학원까지 12시간을 안 쉬고 계속 하면 제 아무리 학습력 있고 건강해도 큰일 납니다. 아무리 중요한 수학도 10분 쉬어가며, 영어도 10분 쉬어가며, 재미있는 체육도 10분 쉬어가며 그리고 공부를 해 보면 해 볼만 한 것이라고 10분 쉬는 시간을 계속 준겁니다. 또 점심시간 1시간도 넣어 두셨고. 체육 음악 미술이 좋아 정신없어도 종을 울리고 10분 쉬고 또 하거라.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점심은 먹고 쉬고 오후 공부 하거라. 세상에 돈이 많고 돈 벌 데가 많고 놀러 다닐 때가 많고 먹을 게 많고 좋은 게 한도 없지만은, 그냥 두니 입는 대로 다 입지 먹는 대로 다 먹지 다니는 대로 다 다니고 있는데, 이거 이대로 뒀다가는 말세 오기 전에 세상이 잘 못 붕괴 될까 봐, 코로나로 한 2년 온 세상에 다 대고 쉬는 시간 무조건 쉬는 2년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좋아도 쉬어야 되고 싫어도 쉬어야 되고.
 
그리고 코로나를 다시 점검해 보면 인류 역사의 발전이 몇 천 년 발전이 되었다 해도 그 발전은 서서히 발전을 했는데, 이 발전이 한 백여 년 전 부터 가파르게 발전을 해 버리는 바람에 발전을 따라갈 수가 없어 숨 가쁘고 발전을 배워야 되고 이용 하느라고 사람들이 맨 정신으로 살 수 없이 그리 되어 버렸습니다. 부부가 얼굴 보기 어렵고, 부모가 아이들을 밥상에 앉혀 놓고 대화하기가 어려울 만큼 세상이 너무 발전하고 너무 좋아지고. 아 휴대폰 하나가 얼마나 필요하고 안전하고 좋은 겁니까? 해외 나가 있는 가족들하고 그냥 논에 나가서 잡초 뽑다가도 휴대폰을 보고 얼굴을 보고 공짜로 대화를 하는 이게 요술이고 이게 천국이지, 생각이나 했습니까? 근데 이걸 그렇게 하려면 뭐 비밀번호를 알아야 되고 손가락으로 몇 번 눌러야 되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도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시시각각 좋은 게 나오지 좋은 거마다 배워야 되지 익혀야 되지. 젊은 사람은 발명을 하느라고 나이든 사람은 남이 발명 해 놓은 것 사서 쓰느라고. 나이 많은 이들은 남들이 다 아는 것 제일 뒤에 손가락 하나 누르는 거 그거 배우느라고, 전부들 바쁘고 좋고 누리고 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대로 뒀다가는 낭떠러지에 온 인류가 떨어져 끝장이 날 판입니다. 코로나로 한 2년 브레키를 딱 잡아 버렸습니다. 부부끼리 얼굴도 좀 보고 살아라. ‘직장을 맞벌이 가야 되기 때문에 볼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직장 가면 돈이 얼만데.’ ‘그래도 부부가 얼굴 좀 보고 사는 것이 좋지 않겠냐?’ ‘직장이 바쁘고 돈 벌기가 바빠 볼 시간이 없습니다.’ 코로나로 2년 바깥출입을 못 하도록 막아 놓으니까 할 수 없이 얼굴 봐야 됩니다. 미워도 봐야 되고 좋아도 봐야 되고. 부모가 아이들을 좀 봐야 그게 가정이고 교육이지, 아무리 학교가 좋고 사회복지가 좋고 아무리 부모가 다닐 때가 많아도. 부모가 아이들하고 앉아서 조용하게 좀 차분하게 생각하고 대화할 기회가 없는 이게 가정이냐? 이게 교육이냐? 뭐 어느 날 그냥 낳아 놓으니까 보육시설 가고, 낳아 놓으니까 유치원 가고, 낳아 놓으니까 학교 가고, 어느 날 아이들이 좀 이상한 말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뭔 한마디 하니까 대들고, 그러다 보니까 부모의 가치와 아이들의 사상이 서로 오랜 세월 엇박자가 나가지고 이제는 힘으로 주먹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내가 낳아 내가 길러 놨는데 이 아이는 이미 나하고 인류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고 살아가는 가치관과 모든 것이 다 달라져 버렸으니, 남 보기에 부모 자녀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남남만큼 멀어져 버렸습니다.
 
코로나 2년에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 꼼짝도 못 하도록 막아 놓고 집집마다 주저앉아 ‘부부끼리 얼굴도 좀 보거라.’ ‘부모 자녀도 얼굴도 보고 대화도 좀 하거라.’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우리 가정이 지난날 어떻게 살아왔는지 뒤져도 보고 생각도 해보고 좀 차분하게 되돌아보는 거 그거 나쁜 거 아니다.’ 코로나 2년이 전부 세계적인 재앙이며 인류역사에 처음 만난, 참으라고 모두들 그래 쌓는데, 믿는 사람은 고요하게 디모데전서 4장 4절의 말씀, 버릴 것이 없도록 주셨으니 코로나도 버릴 것이 없도록 주신 좋은 선물인가? 어떻게 받으면 좋은 거라고요? “감사함으로 받으면”,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말은 무조건 좋은 거다 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필요해서 주지 않으셨겠느냐? 하나님을 앞에 놓고 하나님이 알고 일부러 좋게 해주지 않았겠느냐? 그러고 나서 들여다봐라. 그냥 ‘감사합니다.’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아 진정 하나님은 좋은 걸 주셨구나!’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이렇게 받으면 여기 있는 14절의 말씀처럼 어떤 현실, 어떤 어려움, 어떤 생활을 살아도 사람이 ‘참 감사하다, 참 오늘도 기쁘다, 감사하다. 이렇게 좋을 리가 있나? 그런데 참 감사하다.’ 이렇게 살 수 있는데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아이 오늘 놀러 가기로 했는데 왜 비가 온다.’ 오늘은 좀 비가 와서 밭농사 짓도록 돼야 되는데 왜 오늘은 또 온다는 비는 안 오고 이렇게 햇볕이 맑아서 고생을 시킨다. 별의별 불편, 별의별 어려움, 어려움을 쉽게 말하면 시험이라 그럽니다. 시험은 어렵다는 말입니다. 시험은 어려움입니다. 왜 건강이 어렵고 왜 살아가는 게 어렵고 왜 뭐가 어렵고 어렵고 모든 종류의 어려움은 시험입니다.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네 욕심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사람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 고생한다고 불만 불평을 하는 것은 원인이 어디 있느냐? 욕심한테 붙들려 욕심한테 끌려서 욕심이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거다. 욕심이. 원래 만들어 놓은 하나님 원래 하나님이 만든 원래의 세상은 전부 다 좋은 세상이었다. 이 좋은 세상을 망가트린 것이 인간의 욕심이 들어서 죄를 짓고 죄 때문에 세상을 망가뜨려 엉망이 되어 버려서 세상이 어려운거다. 세상이 어렵다는 것은 맞는데 믿는 사람은 원래 좋게 만들어 놓은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망가뜨려 나쁜 세상이 되었는고? 인간이 안 먹을 욕심, 안 품을 욕심을 많이 가지고 욕심을 넘치게 가지고 욕심을 강하게 가지는 바람에 죄를 짓고 죄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나쁜 세상이 되었다. 나쁜 세상이 되었으면 이제 희망이 없느냐? 죄송하나 안 믿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뭐 이래도 저래도 해결은 안 됩니다. 부자가 되어도 해결은 안 됩니다. 다 부자 돼 보셨지요? 집집마다 자가용 없는 가정 있습니까? 신풍 시골에. 집집마다 자가용이 한 대냐, 두 대냐 차이지. 일하러 갈 때 쓰는 트럭 하나, 승용차 하나. 한 대냐, 두 대냐 차이지 신풍 시골에 차 없는 집 없습니다. 이만하면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전에는 부자만 되면 자가용 시대만 오면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느냐 했는데 부자가 되고 자가용 시대가 되고 보니까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아 돈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구나’ 알아차렸어야 됩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습니다.
 
원래는 좋은 세상이었는데 죄를 지어 망가트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망가진 세상에 안 믿는 사람은 피할 길이 없이 불행 밖에 없습니다. 근데 믿는 사람은 망가진 세상, 망가진 내 가정, 망가진 내 주변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그냥 들여다보지 말고, 하나님이 왜 세상을 망가트리도록 그냥 두셨을까? 그리고 내게는 왜 이렇게 망가진 세상을 주셨는가? 그러고 나서 자기 형편, 자기 가정, 자기 인생을 ‘왜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을까?’ ‘하나님은 아버지라 좋은 걸로 주셨을 건데’ 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건 이렇게 망가져 좋고 이거는 이렇게 어려워 좋고 이거는 좋아서 좋고 이거는 안 좋아서 좋고 좋은 거 밖에 없구나,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망가진 세상도 내게 맞춰 좋게 망가트려 놓았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해결이 없습니다. 믿는 우리에게는 망가진 세상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이 좋게 만들어 주셨다. 근데 좋게 주셨는데 왜 좋지 않으냐?
 
14절,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각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남의 욕심, 부모 욕심, 다른 사람의 욕심, 원수의 욕심. 남한으로 말하면 일본의 야욕, 평양의 야욕, 중국의 야욕, 주변의 강대국의 야욕, 욕심 때문에 나만 이렇게 어려우냐, 노동자의 어려움은 사장 재벌의 공격 때문에 어려우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따라 하십시다. “자기 욕심에”(자기 욕심에) 네가 어려운 것은 네 욕심 때문에 그렇다. 옆집이 어렵다면 옆집에 어려움은 옆집의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다. 요즘은 남자 살기 어려운 세상 아니냐? 남자 너 것들의 욕심 때문에 남자 너 것들 어려움 당하는 거다. 여자의 욕심 때문에 남자들이 맞춰 주느라고 어렵다. 세상은 그리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욕심을 채우느라고 남자들이 죽을 판이 됐다, 그러냐? 그런 거 같지? 다시 들여다 보거라. 남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남자 너희들 속에 욕심이 너들을 어렵게 한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안 갈 길을 가게 된 겁니다.
 
잠깐 좀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또 학교로 예를 듭니다. 여기 시험이 다 학교에서 보는 시험입니다. 학생이 학교 가서 첫 시간이 게임 하라면 좋겠지. 둘째 시간, 간식 먹으라면 좋겠지. 세 번째 시간, 그냥 밖에 나가서 마음대로 놀으라면 더 좋겠지. 그런데 첫 시간이 국어입니다. 국어야 하면 하지 않겠습니까? 둘째 시간 수학입니다. ‘아이 뭔 수학 같을 걸 가지고 사람을 애를 먹이지, 이거 아동학대 아니야?’ 세 번째 시간은 화학입니다. 네 번째 시간은 물리입니다. ‘아니 다른 시간은 체육 미술 음악이더니만 오늘은 영어 수학 과학 생물 물리? 이거 뭐 사람 잡으려고 그냥 작정을 했어, 이거?’ ‘아동학대 아니야, 이거?’ ‘학교가 이렇게 어려우니 이게 학교냐?’ 아이들 좋아하는 대로 학교를 놀이터로 바꿔줘야 되겠습니까? 아이들이 싫어서 펄펄뛰는데 매로 다스리겠습니까? 옛날은 매로 다스리는데 요즘은 매로 다스리지를 못 합니다. 또 매로 다스리면 물가까지는 끌고 가는데 뚜드린다고 물가까지 데리고 간 말이 물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 그건 버티면 마시게 하는 재주는 없습니다. 아이들 하자는 대로 다 풀어 놓는다고 해결 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지요? 그렇다고 소 끌어다가 그냥 끌고 가듯이 강제로 하면 다 되느냐, 되는 거 같은데 마지막에 안 되는 것은 똑같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국어도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이 영어로 되어 있어 네가 법 몰라 당하는 줄 아냐? 건축 설계도고 법이고 뭐고 전부 한글이다. 근데 국어를 몰라 놓으면 말 뜻을 몰라 당하니 국어도 좀 알아야 된다.’ 왜 국어를 알아야 좋은지를 설명을 좀 많이 해서 진도는 늦어도 ‘그 국어도 그게 필요하구나.’ 아이가 이해가 되고 느껴지면 진도가 좀 늦어도 이게 필요하구나 하면 속도가 빨라집니다. 수학을 왜 배워야 되느냐? ‘구멍가게를 해도 수학 모르면 손님은 미어터지는데 만 원짜리 받고 5천원 내주고 얼마를 받아야 되겠냐? 돈 계산 몰라야 되겠냐? 산수 몰라 놓으면 돈 못 번다. 일하고도 돈 계산 못 한다. 하루 일당 10만 원, 30일 하면 얼마? 300 이겠구나. 그걸 손가락 발가락으로 헤아릴래? 아이로 하여금 숫자가 수월하게 되고 좋게 되는 거지, 이걸 아이들을 들들 볶아서 애를 먹이는 것이 아니다.’ 이해를 시키고 그다음 방법을 찾아 가고 과학도 수학도 영어도 국어도 이렇게 이해가 되어 지면 출발은 좀 늦은 거 같아도 이해가 되고 좋아서 하면 그다음부터는 인간은 잠재력이 있어 속도가 가속도로 따라갑니다.
 
다시 돌아와서 학교는 왜 이렇게 어렵 다냐. 가기도 어렵고 가기도 귀찮고 공부도 어렵고 시험 날은 더 어렵고. 그 아이 입에서 학교 다니는 것이 어렵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자기 속에 놀고 싶은 욕심, 잘못된 길로 걸어가고 싶은 오판의 욕심이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까, 나쁜 짓 못 하게 한다고 지금 난리를 내는 겁니다. 만약에 학교에 과목이 수업이 내용이 가르치는 선생님과 모든 학교에 제도에 들어간 돈과 모든 걸 다 제대로 바르게 잘 계산해서 깨닫고 이해가 돼 놓으면 ‘아 옛날에 초등학교도 돈 없어 못 갔다는데 대학까지 공짜로 갈 수 있도록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부어 이런 귀한 20년을 내 인생의 꼭 필요하고 하나 배워 놓으면 10배를 써먹고 100배를 써먹을 수 있는 걸, 이렇게 단계별로 다 애를 쓰고 전문 교사들을 선발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는구나.’ 그렇다면 공부는 어렵지만은 일단 학교와 수업이 나쁜 거다. 이건 나를 골탕을 쥐 먹고, 나를 아동학대를 하려고 작정한 나쁜 생지옥이다. 그 소리는 안 할 거 아니겠습니까? ‘아 이거 좋을 수는 있구나.’ 좋기는 좋은데 ‘이걸 내 것으로 가지는데 이게 어려운 거구나.’ 좋은 줄 알았으면 그다음 학교를 자기에게 맞는 학교로 뭐 실업계로 바꾸든지 공부를 좀 쉽게 가르치는 학교로 바꾸든지.
 
광주 한복판 서울 한복판에 가서 머리도 나쁜 것이 공부 잘하는 것들하고 시달리려니까 그게 되겠습니까? 그럼 학교를 이 신풍 시골 같은데 오면, 올해 신풍 시골에 입학생이 3명 이랍니다. 놀고먹어도 학년 3등을 합니다. 학생 많은 학년이 한 6명 된다나요? 일 년 열두 달 학교 안 가고 빵점을 내도 학년 6등을 합니다. 3명의 1등, 6명의 1등 하는 걸 서울 강남에 갖다 놓으니 강남에서 3등, 6등이 그게 쉽게 나오겠습니까? 서울에 우리 잘 아는 공회 교회가 몇 개 있는데, 두 분이 다 부산에서 이사를 갔고 부산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1등 한다고 서울 강남에 갔습니다. 그 목회자들이 그래요, 부산 대 도시에서 서울 강남에 와 가지고 그 첫해에 10등 안에 반에서 10등 안에 들어 온 아이 없답니다. 1등이 가 봐야 10등 안에 못 들어간답니다. 근데 이 아이가 부산에서 전학을 했는데 전학 한 첫해에 10등 안에 들어 왔다고 대단하다고 그래서, 아 그렇게 서울하고 부산 차이가 많이 나더냐. 신풍 하고야 차이가 더 많이 나겠지.
 
학교는 필요하다. 나에게 좋은 걸로 돈을 많이 들여서 만든 선물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내 것을 만드는데 어렵다. 그럼 내게 만들고 내게 좋은 그런 학교 그런 지역 그런 방법을 찾아보면 있겠지. 신풍서 공부해서 3명 중에 3등 하면 그만하면, 중학교 진학할 때 불편하지 않을 건데, 또 율촌에 중학교 가면 중간은 갈 거고 신풍에서 오고가는데 고등학교 졸업하면 내신으로 가지고 웬만한 대학은 다 들어갈 건데, 서울 강남에가 가지고 꼴찌한 성적 가지고 그 다음 중, 고, 대학을 가려니까 받아 주는 학교가 없어서 투덜거리고 있으면, 이런 좋은 학교제도, 이런 좋은 사회제도, 이렇게 이상적으로 만들어 놨는데 왜 네가 어려우냐? 너한테 맞는 초중고대를 갔으면 좋았을 건데, 욕심을 내 가지고 택도 없이 율촌 중학교 가도 중간 밖에 못 하는 것이 뭐 광주일고를 간다, 서울에 경기고등학교를 간다, 빽을 써서 간다, 뒤로 들어간다, 커닝을 해서 간다, 들어가기는 들어갔는데 천재들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꼴찌고 꼴찌 성적을 가지고 가니까 어디도 안 받으려고 그러지. 네 욕심이 들어서 망할 길, 어려운 길, 고생길을 사서 사서 해서 그렇지 그 학교가 틀리고 세상이 틀려 그러냐? 이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좀 되겠습니까?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어려움을 느꼈다면 어려움 느낀 그 양반이 지금 욕심을 너무 지나치게 냈고 잘못된 욕심을 내서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다시 처음부터 복습합니다. 세상은 원래 만들 때,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만들어 놨더라고요? 좋게 만들어 놨습니다. 애먹으라고 만들지 않았습니다. 좋게 만든 세상을 뿌사 놓고 엉망으로 만든 원인이 뭐였지요? 우리가 죄를 지어서 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겁니다. 엉망이 된 세상인데도 믿는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으니, 무엇만 가지면 엉망이 된 세상도 우리에게는 다 좋아진다고요? 감사만 가지면 그리고 다시 들여다보면, 기침도 ‘기침’, 기침도. 기침을 해야 허파가 지켜진답니다. 허파가 고장이 났는데 기침이 안 나오면 ‘멀쩡하네.’ 그러다가 나중에 허파가 다 고장 나서 초상 치고 해부를 해 보니까, ‘아이 허파가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도록 이 사람이 왜 병원을 안 갔던고?’ 멀쩡하니까, 기침이 안 나니까 멀쩡하니까. 경운기도 아닌데 이 약한 뼈로 가지고 80년 신풍 바닥에 농사를 짓는다고 땅을 헤벼 팠으니 무릎이고 관절이 내려앉아야 그만 일을 할 건데, 이게 멀쩡하다고 안 아프면 논바닥에 이게 헤어져 떨어지도록 일을 할 거 아닙니까? 몸이 아픈 것도 아프니까 싫은데 아프도록 일을 해서 그렇답니다. 아프도록 관리를 잘 못해 그렇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아파야 당신이 일을 안 하고 일은 안 해야 이게 회복이 되고 회복이 돼야 건강할 거 아닙니까? 안에는 고장이 나고 허파고 간이고 전부 엉망이 되어 버렸는데, 통증을 못 느끼면 멀쩡한 줄 알고 계속 그러다가 어느 날 초상 칩니다.
 
어제 아래 참 가까이 잘 아시는 분, 연세 90에 돌아가셨는데 그 90이라도 아마 뭐 마라톤을 했을 겁니다. 40km, 100리를 뛰는 게 마라톤인데. 엄청 건강한 분입니다. 그렇게 건강한 분이 90인데 엄청 건강한 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나 그러니까, 간으로 가셨답니다. 술도 안 먹는 분입니다. 교회 장로님입니다. ‘간암입니다.’ 말 떨어지고 한 달 만에 가셨답니다, 너무 건강해 놓으니까. 아무리 건강해도 간은 아플 수 있고 간이 아프면, 간이 처음에 아플 때 간에 들어와 있는 신경 쪽을 건드려서 빨리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얼른 고치는데, 이렇게 큰 간에 신경 없는 것만 계속해서 고장을 내다가 간이 다 망가트린 다음에 마지막에 신경을 건드리니까 ‘아야’ 하고 병원 가니까, 간이 이미 다 끝장나고 ‘초상 칠 준비하십시오.’ 말하자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픈 거는 싫습니다.
 
근데 우리가 죄를 지어 세상에 아픈 것도 죽음도 여러 가지 불행도 들어와 버렸습니다. 근데 믿는 우리에게는 불행도, 아픔도, 모든 어려움도. 그 어려움을 주시면서 ‘요거를 가지고 빨리 고치거라.’, ‘이걸 가지고 빨리 준비를 하거라.’, ‘이걸 가지고 빨리 복으로 만들거라.’ 미리 주시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아픈 것은 싫은데 아픈 거 하나를 통해서 건강에 10, 100을 얻을 수 있으니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농사짓는 사람은 24시간 일을 해도 안 아프고 잠도 안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농번기에, 그게 좋은 겁니까? 그래서 손발이 다 닳아 버려서 없어져도 좋습니까? 관절이 아파야 ‘아야’ 하고 좀 쉬지, 허리가 아파야 들어가서 좀 쉬지. 허리가 뭉개져서 먼지가 되도록 까지 안 아프면 전부다 뭐 먼지가 되었을 겁니다, 신풍 연세 많은 분들. 왜 허리가 아픈고? 너무 많이 썼지. 잘 못 썼지. 지나치게 썼지. 왜 잘못 쓰고 왜 지나치게 썼던가? 욕심에 끌려.
 
밭이 100평이면 100평 갈아 먹고 말건데 밭이 천 평이 되어 놓으니 천 평을 눈에 보고 그걸 놔두겠습니까, 천 평을 다 돌아다니면서 손발로 다 일구지. 만평이 되어 놓으면 만평을 다 일구려고 돌아 댕기겠지. 그래서 손발이 다 닳고 시간도 다 닳고. 교회 올 시간도 없고, 하나님 기도 할 시간도 없고, 성경 읽을 시간도 없고. ‘1만평 논밭을 백년 갈아먹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그러면, ‘너의 인생, 너의 시간, 너의 건강, 1만평 논밭 가느라고 다 거기에 소비했냐? 요즘 젊은 학생들은 영어 공부하느라고 거기에 들여다보고 앉았느냐? 수학 시간에 수학 들여다보고 앉았고 그걸로 돈 버느라고 네 평생을 다 들여다봤느냐?’ 수학학자, 영문학 박사, 직장인, 시골에 농사짓는 분. 부부 둘이 첫사랑도 조금 몇 달 좋고 말아야지 이게 몇 십 년 가 놓으면 첫사랑이 한 50년 가 놓으면, 스물에 첫사랑이 70 되도록 둘이 얼굴만 쳐다보고 앉았을 터이니 돈은 누가 벌며, 애는 누가 기를 것이며. 식을 때는 좀 식어야 되고 서로 싸울 때는 좀 싸워야 맨 정신을 차리고 인생을 뒤돌아보고 좋지.
 
하나님이 우리 믿는 사람 학교에, 생활에, 건강에, 부부에, 심지어 교회 안에도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어려움을 주실 때 ‘저거 때문에 어렵다, 저게 반대해서 어렵다, 몸이 아파 어렵다, 내 마음을 몰라줘서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네가 네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너무 좀 심하게 너무 과하게 잘못 생각하고 잘 못 가져서 생긴 것이 아닌지 원인을 좀 쳐다봐라.’
 
그래서 큰 2번에 “사람이 시험을 만나거든”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다.” 시험은 다 같이 무슨 뜻이라고요? 어려움이라는 뜻입니다. 어려움인데 이게 성경에 여러 가지 단어로 쓰였습니다. 따라 하십시다. 시련(시련), 연단(연단), 단련(단련), 환란(환란), 난리(난리) 이거 전부 다 불 속에 집어넣으면 일어나는 일입니다, 불속에 집어넣으면. 막 불에 타서 녹아지고 타느라고 그냥 뜨겁고 아프고 정신이 없는 것을 시험이라 어려움이라. 이걸 한자로 말하면 ‘시련’ 쇠를 갖다가 불속에 넣어서 굽어버리고 녹여 버리는 걸 ‘시련’이라 그럽니다. 그걸 ‘연단’이라 그럽니다. 그걸 ‘단련’이라 그럽니다. 아야 온 나라를 불 가운데 집어넣으려면 총알을 쏘고 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쏘면 그거 다 불구덩이가 되는데,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 다 불구덩이 아닙니까? 그럴 때에 그게 전쟁을 환란이라 그럽니다. 그런 환란을 난리라 그럽니다. 국가와 국가의 전쟁이 나서 폭탄이 터지는 불바다가 되던, 내 마음의 화딱지가 나서 내 마음이 끓어오르는 분노로 참기가 어렵던, 시험 문제지를 보니까 모르는 문제만 가득 차 가지고 그냥 골머리가 아프든, 부부끼리 마음이 안 맞아 가지고 그냥 마음에 상처가 나든 어떤 것이든지, 시험은 전부 다 어려움이며 어려움을 시련, 연단, 단련, 환란 또는 난리라고 성경에 기록하며 우리를 가르칩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느냐? 누구 욕심에 끌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잘못 따라 갔으니, 욕심이 자꾸 자라 놓으면 욕심은 뭘 낳지요? 죄를 낳습니다. 송아지를 자꾸 먹여 놓으면 소가 되고 송아지를 놓는 것처럼. 병아리를 자꾸 먹여 놓으면 닭이 돼 가지고 알을 낳아 병아리가 되는 것처럼. 욕심이라는 놈은 자꾸 먹여 놓으면 이게 죄를 자꾸 출산을 합니다. 죄를 하나 낳고, 죄를 두 개 만들고, 죄를 세 개 만들고, 이 죄는 점점 덩치가 커지고 굵어지면 “사망을 낳느니라.” 죽을 지경을 만드는 겁니다.
 
욕심은 가지고 싶은 마음, 가지려는 마음을 욕심이라 그러는데 가질려는 걸 욕심이라 그래서 전부 욕심을 버리라고 그러는데,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분은 ‘잘못된 욕심은 버리고 바로된 욕심은 가지라고 가르치는구나.’ 이렇게 발견을 할 겁니다. 하나만 더 하고 끝냅니다. 욕심은 가지려는 마음을 욕심이라 그럽니다. 근데 죄가 되고 망하는 욕심은 하나님이 주지 않는데 하나님이 주지 않는데, 가지려는 그 욕심만 죄가 되고 망하게 하는 잘못된 욕심입니다. 인간의 첫 욕심은 선악과를 먹은 원죄가 되고, 모든 인간은 평생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말씀이 그 많은 걸 가지려는 그 마음이 잘못된 욕심이고 그 욕심이 들어 가지고 시험에 들고 그 욕심이 들어 모든 불행을 다 가져옵니다.
 
코로나 다 끝나는 세상이라, 뭐 요즘은 어디가도 온도도 안 재고 뭐 적으라고도 안 하는데, 믿는 사람은 한 발짝 일찍 이런 것은 눈치 채고 좀 파악을 했어야 됩니다. 그동안 2년간 코로나 걸린 분이 없어서 교회는 늘 예배드리는데 지장이 없었다가, 올해 들어 한 두 달 만에 지금 우리 교인들 전부 한 주에 1~20명, 2~30명씩 코로나 하느라고 예배당 자리가 좀 비었지만은, 그래도 마당까지 오셔서 차 안에서 예배드리고 또 집에서도 예배를 드려서 감사하고 오늘은 인제 코로나 거의 다 끝이 나다 보니까 예배당이 거의 다 찼습니다. 코로나 2년에 기대어 교회 두 번 올 분이 한번 빼 버리고, 4번은 와야 하나님께서 ‘내가 복을 주지 않겠느냐’ 그랬는데 하나 빼고 두 개 빼고 장사 물건 살 때 자꾸 깎는 것처럼, 장사 물건 살 때는 얼마든지 깎아도 좋은데 하나님 앞에 예배와 복을 자꾸 깎아 쌓으면 ‘그 깎으면 너한테 손해를 볼 건데, 깎아 봐라. 깎을게 따로 있지, 복을 깎고 은혜를 깎고 주일을 깎고 예배 시간을 자꾸 깎아 대면 그게 바로 잘못된 욕심이 들어 가지고 나중에 너 시험 들고 나중에 시험 들면 골치가 아프니까 그러지 말아라.’ 이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코로나 겁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며, 나는 코로나 때문에 못 읽던 성경을 한 번 더 읽고, 못 나오던 예배당이나 한 번 더 나왔던가, 아니면 거기에 숨어 거기에 기대어 하나님과 나 사이가 멀어졌던가. 얼른 제자리로 돌아오십시다.
 
(기도)
좋은 세상 만들어 한량없는 영생을 다 가지게 하셨는데 사람의 죄악으로 좋은 세상이 엉망이 되어졌고 좋아보여도 알고 보면 어려움 많은 세상이 되었나이다. 믿는 우리에게는 사활의 대속 인하여 좋은 세상도 좋고, 좋지 않은 세상도 감사함으로 좋게 살 수 있도록 건강도 가정도 경제도 사회도 신앙도 교회도 만 가지를 다 은혜로 주셨는데, 오늘도 하나님이 주지 않은 욕심 말씀을 떠난 잘못된 나의 욕심으로 좋게 주신 세상이 나에게 어려운 시험으로 오게 되어 있으니,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환경을 바꿔 주시라 기도하지 말고, 내 속에 잘못된 욕심을 내가 살펴 하나님 중심의 말씀대로의 바른 욕심을 가져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이 주신 각종 은사며 큰 선물인지를 깨닫는 한 주간 되고 앞날이 되어 지도록 지난 2년의 모든 방역의 환경을 돌아보며, 각자 어떻게 복되게 살았으며 어떻게 허송을 했는지 바로 살펴 복되게 사는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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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4.10주전            약1:14                고통을 초월                     총공 신풍

■ 세상
1. 복 되게 만든 세상
 ① 창조 때 : 창1:31,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② 타락 후 : 딤전4:4,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음 
 ③ 중생 후 : 요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 근심과 두려움의 원인
 ① 시험 : 어려움 = (시련) (연단) (단련) (환란) (난리) 
 ② 배경 :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느니라
 ③ 욕심 : (가지)려는 마음
            (하나님)이 주지 않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
            첫 욕심은 (선악)과 먹은 원죄, 본죄는 각자 평생 (욕심)의 죄
   

■ 욕심
3. 두 욕심
 ① 성령의 욕심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싶은 마음
    (말씀)으로 살고 싶은 마음
 ② 육체의 욕심
    (자기) 중심으로 살고 싶은 마음
    (세상)을 가지고 싶은 마음

4. 욕심의 결과
 ① 육신의 생각은
    (사망)과 (근심)
 ②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고통을 초월하려면
1. 육체의 욕심을 버릴 것
 ① (자기) 중심의 욕심 
 ② (세상)에 대한 욕심
 
2. 육체의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름 
 ② 마지막에는 (죽음)으로 결산
 
3. 성령의 소욕으로 살면
 ① 근심과 사망이 없어지고
 ② (생명)과 (평안)으로 살게됨
 
4. 할 일과 순서를 바로 할 것
 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마6:33
 ② 먹고 사는 문제는 (주님)께 맡길 것
 
 
■ 오늘의 엘리야가 되어, 왕상19:15
1. 세상 근심과 환란을 벗고
 ① 세상 박해는 (타락)한 교회를 징계
 ② 신앙 박해는 (연단)의 복을 만들고
 
2. 교회의 탈선을 바로 잡고
 ① 바른 제도는 교회 (탈선)을 방지
 ② 바른 제도는 바른 (신앙)을 도움
 
3. 현재와 다음 사명에 충성할 것
 ① 바른 신앙은 (근심)과 (두려)움을 초월
 ② 바른 신앙은 생명의 역사를 (이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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