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4.6 왕상19:13 하나님의 산 호렙, 노력 절정의 지금까지가 아니라 완전 자기 부인의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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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4.6 왕상19:13 하나님의 산 호렙, 노력 절정의 지금까지가 아니라 완전 자기 부인의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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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6 수새

 

제목 하나님의 산 호렙, 노력 절정의 지금까지가 아니라 완전 자기 부인의 이제부터

 

찬송 : 118(예수 나를 오라 하네)

 

본문 열왕기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4절의 말씀은 위에 있는 10절의 말씀과 꼭 같습니다. 절중에서 짧은 절은 아닙니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3절에. 그리고 9절에도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이 말씀의 여기는 호렙에 이르니라” 8절에 호렙 산 입니다. “호렙은 하나님의 산이라” 출애굽기 2장에 모세가 미디안 광야 사십년 망명 생활 끝에 양을 데리고 가다가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신발을 벗으라지금까지 걸어 다닌, 지금까지 걸어온, 지금까지의 생활을 벗어버리라. 신발을 신고 걸어갑니다. 살아 온 생애 그 신발에 얹힌 살아 온 모든 것을 말합니다. 무엇까지를 말 하느냐? 모세의 신앙생활까지를 다 포함합니다.

 

신앙생활이 정말 신앙생활이라면 왜 신앙생활을 정리하라고 그러겠습니까? 사십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그냥 둘 수 없어 나섰다가 그 한명도 구원하지 못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입니다.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을 구원이라고 그럽니다. 죄악의 물에 빠져 백 프로 죽은 인생을 죄악의 물에서 건지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 밖에 없습니다. 물에 던져 죽을 모세를 살려낸 것은 그 어머니 요게벳이 갈상자로 역청을 칠하여 방수를 잘하고 띄우고 미리암 딸을 달려 보내 어찌하든지 봤다가 그렇게 구원한 거냐? 겉모습은 어머니의 지혜 같습니다. 또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건져냈습니다. 바로의 공주가 살린 듯합니다. 미리암을 통해 바로의 공주를 통해 실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전적 역사 하셨습니다. 모세를 구원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미리암이 반대한다고 바로 공주가 거부한다고 모세가 물에 빠져 죽고 그러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의 주권대로 모세를 건지게 되어 집니다.

 

인자는 기록 된대로 가거니와 나를 파는 그 사람은 화가 있으리로다모세는 구원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를 위하여 만에 하나 생각하고 갈상자를 마련하고 역청까지 칠하여 정성을 다한 그 모세의 부모가 복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공주의 그 자비가 복이 있는 겁니다. 모세는 어떻게 해도 구원 받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지도자가 되어 집니다. 그 모세를 도운 사람 모세의 편이 된 사람이 복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복된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예정이 복 되게 되어 있다 이걸 증명하는 길입니다.

 

모세의 사십년, 그런데 그 사십년의 결말을 보니까 한 명은커녕 자기 목숨도 부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보다는 잘 믿었고 당대 모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는 가장 용감하고 가장 실력 있고 가장 자기 민족을 위해 나선 신앙의 사람이나 그거 가지고는 구원은 되지를 아니합니다. 남보다는 낫지만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일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사십년 미디안 광야에 도피 생활이 있었습니다이제는 양을 치며 인간적인 호기와 용기와 계산을 전부 다 접어두고, 모세 가지고는 아니 된다. 바로 궁전 사십년으로도 아니 된다. 요게벳의 유모로 가정교육, 신앙교육 아무리 해봐야 그걸로도 아니 된다. 사십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바로 궁전의 교육도, 그 여건도, 그 실력도, 그 나이도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의 모든 여건 다 합해도, 그게 좋기는 한량없이 좋은 거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는 그거 가지고는 아니 된다. 이걸 사십 년 동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맡긴 양을 치는 그 생활의 끝자락 마지막 끝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이 들었고 이제 신앙이 들었고 이제는 되었는가? “신발을 벗으라모세의 철 든 팔십까지의 또 다시 사십년, 회개의 사십년, 하나님과 동행의 광야의 사십년. 우리가 보면 이만하면 백점 일듯한데 하나님이 전적 역사하기 위한 그 기준에서는 그거가지고도 아니 되고, 다시 신발을 벗어라,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 다 정리하고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로만 순종하는 자기를 백 프로 부인하고 자기를 백 프로 부정하는, 이 단계에 이르러라. 신발을 벗고 호렙산에서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께 붙들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다시 사십년 구원의 초인간적인 초자연적인 구원의 길을 걸어가게 되어 집니다.

 

여기 세월이 많이 지나, 모세 사십년 이후의 사사기 삼, 사백년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가 또 다시 그만한 세월이 지나 모세가 출애굽의 시기 때 호렙산을 갔고 여기 엘리야가 호렙에 이르른 시간이 아마 한 천 년 안팎이 되어 질 겁니다. 일천 년 세월이 흘러도 그만한 세월이 흐르면 우리 생각에는 신앙의 환경이 달라졌고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에 모세의 구원의 방법과 엘리야의 구원의 방법은 그 구원의 방법이 시대가 너무 지났기 때문에 아주 다르지 않겠는가? 엘리야는 모세가 아닙니다. 또 바로는 이방의 왕입니다. 엘리야 때 아합은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입니다. 그때는 이방이고 그때는 광야였고, 지금은 약속의 땅 가나안 안입니다. 만사 모든 것이 전부 다 달라졌는데, 이런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꼭 같겠는가?

 

여기서는 신발을 벗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호렙까지 온 엘리야에게 그냥 물어보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나만 남았나이다” 14절에 다시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그 하나 남은 엘리야. 그 엘리야가 4절에서 넉넉하오니 이제는 저를 데려 가소서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운동, 엘리야가 설쳐봐야 목숨 걸고 나서봐야 엘리야 가지고는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는 도무지 소용이 없겠나이다, 어떤 은혜를 줘도 아니 되겠나이다, 여기까지 하나님이 밀어붙여놓고 또는 엘리야의 신앙의 발전이 단계 단계 올라가다가 마지막에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성경 전체를 통해 가장 극적인 그런 기적들이 그런 능력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하늘의 그런 능력이 역사를 한다 해도 또 다시 한 걸음 더 걸어가야 되는 단계가 있었습니다. 어떤 단계인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하나님이 몰라서 묻겠습니까? 모를 하나님입니까? 제가 열심히 특심합니다, 18장까지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구원 운동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늘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가 이 교계가 제 주변 안팎이 도무지 안 되겠나이다, 나만 남았나이다, 그런데 나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보호하여 아합이 죽이지 못하도록 막아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막아 살려준 엘리야 그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자살은 하지 말아라, 또 너를 죽여 데려가지도 아니하겠다, 그러나 너까지 없어져야 되겠다, 살았으나육체는 살아 있고 나는 살아 있으나, 나는 목회를 하고 나는 교인 생활을 하고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고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겠으나, 산몸입니다. 엘리야 속에 있는 것은 마저 있는 대로 다 죽여라.

 

뭘 죽일까요? 네 생각을 너의 사상을 심지어 네가 복음 운동을 하겠다는 그 생각까지도. 네가 하나님께 붙들려 갈멜산에서 크나큰 역사를 했던 그 과거까지도. 엘리야 몸은 살려놓고 엘리야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백 프로 완전하게 다 버려라. 그리고 백 프로 하나님이 엘리야를 붙들고 역사하시겠다어린 기준에서 보면 갈멜산의 엘리야는 인간을 초월한 자기를 다 부정하고 하나님께 붙들린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완전자 하나님 목표에 두고 보면 아직도 아합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 시대를 이기고 극복하고 완전하게 구원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단계가 더 진행dl 되려면 이제는 정말로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려면 지금까지가 아니라 이제부터가 하나님의 직접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방에 하사엘을 세워 단 바깥 주변을 다 정리하고 예후를 세워 이스라엘 담장 안을 전부 다 정리하고 그리고 엘리야 너 말고 엘리사 너를 잇는 너를 대신한 엘리사를 붙들고 마지막 이스라엘의 신앙까지도 다시 다 재구성을 한다, 새 세계를 열어간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날의 엘리야 신앙의 엘리야 선지자 중의 선지 엘리야, 절정과 최고의 엘리야 너를 다시 돌아보고 너 안에 남아 있는 아직도 엘리야적인, 인간적인 그 면을 다 바꾸거라, 없애거라, 부인하거라이게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세미한 음성을 통해 깨달아지는 그 말씀 붙들고 새 출발을 하고야 엘리야는 그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큰 역사 대신 별 것 아닌 것 같은 몇 사람을 세웠는데,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시 해나가고 계십니다


새벽마다, 또 오늘 새벽도 어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손 치더라도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주님이 날 어떻게 원하시는지? 나는 자꾸만 줄이고 나는 자꾸만 벗어나고 내 바탕에 깔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하고 있는 본능, 잠재의식, 내 생활 속에 깔려 있고 배어 있는 나도 못 보는 내 속의 나를 철저하게 끝까지 완벽하게 털어내고 씻어낼 때 역사적인 하나님이 더 뜨겁게 더 가까이 더 크게 역사를 하는데 앞의 역사는 불신자들이 알고 남들이 아는 큰 역사나 뒤의 역사는 하나님의 직접 역사기 때문에 별로이 그렇게 한 거 같지 않은데, 그런데 18장의 그런 천지가 진동하는 역사보다 더 좋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그거보다 주님이 뭘 원하시나? 고요히 이 면을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다음 단계입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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