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2.4.3 왕상19:10 진실은 홀로 남기고, 말씀과 자기포기와 신앙양심을 버린 시대, 엘리야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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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2.4.3 왕상19:10 진실은 홀로 남기고, 말씀과 자기포기와 신앙양심을 버린 시대, 엘리야의 심정

관리1 0 159 2022.04.0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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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타이핑 
2. 설교 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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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이핑)


220403 주후
 
제목 : 진실은 홀로 남기고, 말씀과 자기 포기와 신앙 양심을 버린 시대, 엘리야의 심정
 
찬송 : 192장(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191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 59장(피난처 있으니)
 
본문 : 왕상 19장 10절 -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은 짐승을 잡아 제단 위에 제사로 드렸고, 신약에 오늘 저희들은 날 중에 귀한 주일 날 예배시간에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내속에 잘못된 자기 내 인격 속에 세상을 향하는 요소들, 하나님 앞에 잘못된 마음과 지식과 행위를 잡아, 주의 뜻에 복종하는 자기가 됨으로 오늘의 예배가 되고 구약의 제사가 되며, 아합이 당대를 악으로 장악 한 것처럼 오늘도 자기 중심의 세상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주셨으나,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인간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의 은혜로, 오늘도 내일도 또 주시는 날들이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되겠사오니, 사모하고 준비하는 5월의 집회에도 또 험악한 시대가 열리는 연년이, 어떤 환경 어떤 소식이 들려도 하늘을 향한 우리의 걸음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활은, 끝까지 동행하여 엘리야가 인간으로 무릎 꿇은 로뎀나무를 지나, 세미한 음성 속에 진리의 사람들이 되도록 이 시간도 친히 동행해 주시되, 불편하여 병석에서 예배를 향한 마음 또 눈과 귀를 기울이는 실시간 모든 예배 위에, 성령의 은혜로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구약에 제일 유명한 엘리야 선지자가 시절, 왕은 가장 혹독하고 나쁜 아합 시절입니다. 엘리야 말 한마디에 3년 6개월 하늘이 비를 닫아, 왕으로 부터 모든 백성이 다 살아남을 수 없도록 까지, 이렇게 엘리야는 능력 있게 역사를 했습니다마는, 사람이 열심히 움직여 복음 운동을 하면 사람이 생각할 때 위대한 일들도 하기는 하지만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인간이라 그 인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19장 1절에 엘리야가 아합 왕의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전부 다 척결을 해 버렸는데, 아합 왕의아내 이세벨이 엘리야 너도 죽을 것이라. 그냥 두지 않겠다. 하루 기간을 주자 더 이상 엘리야가 견딜 수 없어, 이스라엘 남쪽 유다 나라 유다 가장 남쪽 브엘세바, 그 브엘세바를 지나면 이제 유대광야 모래나 돌밖에 없는 그런 광야에 들어가는데, 브엘세바에 사환을 머물러 놓고 홀로이 하룻길 광야를 걸어가다가, 로뎀 나무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 쓰러져 누워 인간으로 할 일은 다 했습니다. 불러 가소서. 여기까지가 엘리야가 걸어 간 길입니다. 우리야 엘리야 10분의 1, 100분의 1도 안 되지만은 시대에 가장 위대한 엘리야도, 인간으로는 결국 인간에 한계까지만 갈 뿐이었습니다. 죽여 달라 할 때 그 로뎀나무 아래 천사를 보내어, 두 번이나 먹이며 마시며 다시 걸어가라. 그리고 40일 밤낮으로 걸어가서 도착한 산, 오전에 다 같이 산 이름이 뭐였던가요? 호렙 산이었습니다. 호렙산. 호렙이라는 뜻은 무엇이었던가요? 하나님의 산이었습니다. 몇 절에 있었나요? 8절에 있었습니다. 8절.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주 40년 밤낮을 주야라 그럽니다. 걸어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성경 전체를 읽다가 호렙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열왕기상 19장 8절에 아, 하나님의 산 호렙 이랬으니까 이걸로 가지고, 이제 다른 성경을 하나씩 둘씩 풀어나가면 다 풀려집니다. 전기나 기계 기술자들 보면 손에 그냥 연장 몇 개 가지고 다 해결을 해 버립니다. 호렙은 하나님의 산이구나! 요거 하나를 가지고 성경에 한글에 없는 그런 단어가 나올 때, 이게 언제 어디서 쓰였는지 앞뒤를 읽어보면 해결이 되겠구나! 그러면 성경을 아는 사람이고, 호렙이라는 말이 나올 때 성경 덮어놓고 도서관에 가가지고, 영어 사전 히브리어 사전 백과사전 신학 책 뒤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 태평양에 다이빙해서 바늘 하나 찾기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돈 많고 바다 속 유람 하고 싶은 사람이야 그래도 되지만은, 돈 없는 신풍 시골 사는 우리가 그리 할 힘도 없고 시간도 없고 그리고 효과도 좋지 못합니다. 그냥은 한글로 된 성경 차분하게 읽어가면서 읽어 가다가 눈에 띄면 하나 기억하고,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면 이런 게 있구나 하고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 둘 하나 둘 쌓여 가다가, 태어난 아이가 한 마디 두 마디 하다가 어느 날 말을 하는 것처럼, 태어난 아이가 뒤뚱거리며 한번 넘어지고 두 번 넘어지다가 그다음 쫓아다니는 것처럼, 그 어느 날 그렇게 되는 겁니다. 태어난 아이 한 달짜리 데리고 말 가르치려고 고액과외 한번 해 보십시오 마는, 돈으로 해결할런가? 특강으로 해결할런가?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을 넣어서 해결이 될런가? 한 달짜리 말 가르치는 거는 아예 안 됩니다. 근데 경험 있는 나 많은 분들은 그 젊은 새댁들한테 내년쯤 되면 말할 거다. 경우 없는 사람은 영재교육에 한시라도 빨리 가르치고 싶어 난리지마는, 경험 많은 할머니는 그 집안이 내력이 말 잘한다. 그 1년이 되면 말을 너무 싸서 말을 많이 너무해서 귀찮을 거다. 이런 게 역사와 경험에서 나오는 힘입니다.
 
컴퓨터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고 자연과학도 필요하고, 성경에 기록한 말씀도 고루고루 필요한데 성경은 읽어 가시다가 보이는 것, 눈에 이상하게 좀 보이는 것은 성령이 마음을 열어 일부러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몇 개 주워 담다보면 그러면 신앙생활에 불편이 없게 되어 집니다. 호렙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동산입니다. 이 땅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세가 40년을 바로 왕궁에 최고의 학문을 배우며, 이 힘으로 이 칼로 이 머리로 천하 뭐든지 다 안다고 큰 소리 치다가, 제 민족 한 명을 구하지 못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40년을 더 세월 보내 80이 되었을 때야, 양 몇 마리 치다가 양 데리고 가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이 호렙산입니다. 신발을 벗어라. 80년 걸어 온 인생 걸음, 80년 생각한 그 지식, 그 생활 다 내려놓고 이게 신발을 벗은 겁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 지금까지 살아온 지식, 지금까지 80년 형성된 모세 식은 다 내버리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웠을 때, 이제 출애굽 하러 출발하자. 젊어 팔팔 40년 그다음 40년 80년 허송하고 뭔 80에 출발을 하다니요. 모세가 자기가 자기를 볼 때 자기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 때, 됐다 이제 가 보자. 인간이 좀 뭐 있다고 이렇게 뻗치면 이거 붙들고 일을 못 하십니다. 좀 나은 사람이 시키는 예예 하면 빨리 배울 건데, 나름대로 안다고 버티면 버티는 만큼 배우는데 늦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일할 때 제가 좀 배운 게 있습니다. 졸업장도 있습니다. 제가 깡도 있고 오기도 있고 뭐 어디 가든지 저는 큰 소리 합니다. 이런 게 깔려 있으면, 그 생각 그 사고방식 다 녹아 나올 때까지는 그냥 좀 내버려둡니다. 그 풀이 죽고 인간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그때야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겁니다.
 
모세 손에 들린 지팡이로 때리면 반석에서 물이 나오지, 이게 움직이면 못 하는 일이 없는데 이 막대기로 가지고 반석을 때려 물이 나오게 하려고, 이 막대기를 들려고 할 때 막대기가, 나무를 치면 물이 나와도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겠습니까? 하고 막대기가 버티면 일이 안 되는 겁니다. 모세가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예예하고 뭐, 쇠든지 반석이든지 때리면 가서 부딪히면 될 건데, 이거는 될 거 같습니다. 이거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거는 학교에서 이래 말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요즘은 저래 말합니다. 막 우리 주변은 요즘 분위기가 이렇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이말 저말 이말 저말 갖다 내 놓으면, 그 놈의 인간 그 주관 그 자율 그 경험 다 없어질 때까지는 그냥 좀 당하라고 던져 놔버립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사업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고 주먹도 휘둘러보고 뭐 별의별거 다 해 보고, 마지막 인생 정리하면서 제힘 가지고는 안되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안 돼? 좀 더 해 보지? 아니요. 모세는 80년 해 봤는데 안되겠습니다. 안 돼? 그러면 내가 해 볼게. 여기 엘리야는 제가 말 한마디 하면 천지가 난리가 나고 아합 왕에 측근 850을 척결하고 뭐, 그냥 저는 이렇게 재주가 많습니다. 옳은 일 복음의 일을 해도 제가 개척해서 교회가 커졌고, 제가 목회해서 교회가 대형이 됐고 이러고저러고, 이러고저러고 갖다 대면 그 인간 잘났다 참 잘났다 해봐라. 더 해 봐라 이게 짐승이면 코를 꾀서 당기면 되지만은 인간은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알아서 포기하기까지는 하나님이 강제로 개입을 못합니다.
 
그 모세 80년과 여기 엘리야는 아합 왕의 측근 850을 척결하고 끝나자, 역시 인간으로는 안 되는구나! 그리고 드디어 이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절, 엘리야가 호렙산 어느 굴에 들어가, 굴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아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아이 하나님이 몰라서 지금 이제 묻고 계십니까? 천사를 보내서 인도를 하신 하나님이, 호렙은 여호와의 산 하나님의 산인데 몰라서 묻겠습니까? 알면서 물어보는 겁니다. 여기가 어디냐? 하나님의 산입니다. 뭐 하나님의 산까지 와? 너는 선지자라 재주가 좋은데, 선지자고 재주고 능력이고 뭐고 인간이 노력해서 되는 거는 없습니다. 내 목숨 하나도 살리지를 못하겠나이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인간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게 말로 괜히 그 말 하는 인사 아니고 느껴지고, 느껴지고, 느껴지고 느껴져, 숨 한 번 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물 한 모금이 넘어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돈 1원 벌어오는 것도 남이 보면 내가 노동을 해서 하루 종일 일당을 받은 거 같아도, 그 발 한 발 잘 못 디뎌 죽으면 어떡할 겁니까, 하루 종일 일하고 일당 못 받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요즘은 일당이 잘 나와서 모두들 그런 걱정은 하시지 않는가요? 일해 놓고 일한 돈 받아내는 재주가 일하는 재주 보다 더 뛰어나야 된다는 것도 알아야 세상을 삽니다.
 
12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모두 문제 생깁니까? 안 할 공부했지 엉뚱한 공부했지 시험에 나오는 문제 다 피해 갔지, 공부한다 해 놓고 엉뚱한 짓 했지, 실제 공부는 하겠는데 마음은 다른 데 가있었지, 뭐 별의별게 다 그리 되어 진겁니다.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리고 이제 오늘 봉독한 열왕기상 19장 10절 본문입니다. 엘리야가 대답하되 “저가 대답하되” 엘리야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정말로 하나님을 위하여 저는 사심이 정말 없습니다. “열심히 특심하오니” 열심히 특심하오니, 나름대로 열심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제 열심은 특심한 특별한 열심입니다. 열심이 특별하면 그 말은 진실하게 믿어 보려면, 나름대로 열심히 해 본 단 말은 안 하는 사람 없습니다. 누구든지 다 합니다. 이 나라 애국자 아닌 사람 있던가요?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이도 제 스스로는 애국자라 그럽니다. 제가 그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영 다 망할 거 절반이라도 건졌습니다. 할 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평양에 김 씨가 아마 애국자 중에서는 최고의 애국자라 그럴걸요? 마음으로는 전부 다 열심이 있습니다. 근데 정말 열심히 제대로 있다면 따라 하십시다. 진실(진실). 이걸로 딱 조사해 보면 압니다.
 
진실이라 말은 하나밖에 없는 걸 찾았을 때 진실이라 그럽니다. 금반지 하나 끼고 이게 세상에 제일 비싼 보물입니다. 뭐 그 소리야 할 수 있지, 이게 정말 최고의 비싼 거라면 시내 금은방 가가지고 흥정을 해 보면 압니다. 이거 얼마입니까? 다이아몬드 1캐럿, 뭐 말하자면 1000만원입니다. 이 금반지는 얼마입니까? 50만 원 주겠습니다. 이게 50만 원짜리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천만 원짜리도 있구나, 이거는 2천만 원짜리입니다. 그거는 값 묻지도 마십시오. 대봐야 알지. 열심이 있습니다. 열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말이야 잘하지. 정말로 열심히 특심하다면 비교를 해보고 따져보면 압니다. 열심이 특심합니다. 진실하게 믿어 보면 그러면 10절에 끝입니다. 따라하십시다. “나만 남았거늘”(나만 남았거늘) “오직 나만 남았거늘”(오직 나만 남았거늘), 예 그럼 이제 특별히 잘 믿은 겁니다. 저밖에 없어야. 이 정도 되어야 일반 열심이 아니라 특별한 열심이구나.
 
우리나라 애국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쪽 땅에 가면 만 명, 저쪽 땅에 가면 10만 명, 만 명 10만 명 이런 거는 다 거짓말이고, 그 안에 또 들어가고 그 안에 또 들어가고 또 열고 또 열고 들어가 보면, 아 이 나라 사람이 많고 애국자가 많아도 저 말고는 믿을 인간 하나도 없나이다. 이 정도까지 가야 틀렸던 말았던 진실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 하나밖에 없는 길을 찾았을 때 진실입니다. 엘리야가 전국을 다 훑어봐도, 엘리야 한 명 말고는 아합 왕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선지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밑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뭐 이쪽저쪽 할 것 없이 광화문에 가면 어쩔 때는 100만 명씩 애국자들이 모인다는데, 그 100만 명 헤아릴 것도 없이 아마 애국자 그 안에 한 명이나 있을는지 두 명이나 있을는지, 과거의 행적을 뒤져봐 보면 그 애국자라는 게 그게 500년 전에 임진왜란 때 신풍 앞바다에 떠다니는 배가 바로 거북선입니다. 이순신 같은 사람 하나 정도나 애국자 축에 들어가지, 그 옆에 둘 셋 그렇게 애국자란 뒤져보면 그렇게 많지는 못합니다. 전부 입으로 다 떠들고 앉았지. 입으로 떠드는 애국자는 사기꾼일수록 더 큰 소리칩니다. 거짓말쟁이가 말은 더 큰 소리 합니다.
 
그 남녀 선볼 때 봐보면 남자 놈이 큰소리치는 건 사기꾼입니다. 남의 집 귀한 딸을 평생에 정말로 50년 60년 책임을 질 사람은, 정말 책임을 질 사람은 뭐 저한테 주시면 뭐 돈은 얼마 아파트는 언제 어떻게, 어떻게 줄줄 줄 줄 이렇게 갖다 대지를 못 하는 겁니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10년 30년 얼마나 인격을 기울이고 인간을 다 기울여야 되는데, 사기꾼이야 뭐 잡아가면 그만이니까 이 말하든 저 말하든 들고튀면 되니까 온갖 소리 다하지. 100번도 더 말씀을 드렸지요. 남자는 이렇게 큰소리를 치면 도둑놈 아니면 사기꾼인데, 근데 여자가 그 큰소리를 좋아하는 또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큰소리를 빵빵 쳐야 또 거기 빠져서 또 기어가고 따라가니, 하나는 도둑놈이고 하나는 도둑년이고 그렇지 뭐, 둘이 동업하고 앉아 있는 거지. 저 인간 큰 소리 말고 사회생활 몇 년 했는데 한 달에 얼마씩 모았는고? 뒷조사 해보면 근면성실 다 나옵니다. 학교 졸업하고 10년은 이러고 저래서 돈을 못 모았으나 당신만 결혼해주면 앞으로는 이렇고 저렇고, 야 이놈아 지나간 10년을 놀고먹고, 식모하나 데려다 놓으면 더 개길 걸? 봐도 이렇게 봐야 그게 맞겠지. 큰 소리는 다 치워 놓고 진실이란 비교해서 따져서 하나밖에 없을 때 진실이라 그런 겁니다.
 
엘리야 네가 어찌하여 어디 여기 있느냐? 여기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세계인데, 하나님만 계시는 곳에 어떻게 인간 네가 있느냐? 인간으로 다해 봐도 안 되겠습디다. 얼마나 안 되겠더냐? 나 하나 남았나이다. 하나? 하나라도 남더냐? 너는 그러면 사람 축에 들어가느냐?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나까지 죽을 판입니다. 마지막에 나하나 남았는데 그거 하나조차도 쓸모가 없어, 포기하려다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여기 왔나이다. 이럴 때 특심한 열심이라고 그럽니다. 국가를 두고 말하기 전에 우리 가정들 우리 교회들, 한 사람 사람 자기 주변을 먼저 살펴봐 보십시다. 우리 가정에 똑바로 정말로 믿어 보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 가정에 둘 주고 셋 주고 그러지를 않습니다. 손 목사님 생전에 가족이 많았으나 그냥 손 목사님 때문에 가족이 붙어 있는 거지, 뭐 손 목사님 아니면 그 자녀들이나 신앙을 늘 지킬까 할 만큼 원래 그렇습니다. 또 손 목사님 가고 나니까 사모님 한분이 신앙을 지켜 나머지가 믿는 것처럼 그리 되었고, 어느 가정도 그렇고 어느 교회도 그렇고 어느 교단도 그렇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동지들이 몇 명모이면 힘이 되지 않겠느냐? 그 동지 몇 명으로 모아서 힘을 삼으려는 것을 시스템이라 그럽니다. 그걸 조직이라 그럽니다. 이미 삼켜버렸습니다. 그 시작도 못 해 봅니다. 다윗이 따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 사울 밑에 다윗의 새 나라를 건설한 거 아닙니다. 소년다윗 하나로 시작한 겁니다.
 
사무엘의 후원회가 많아서 사무엘이 엘리제사장을 제치고 새로 길을 열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알아주는 형제 아버지 하나라도 알아 줬냐? 아무도 몰랐습니다. 모세 가는 길에는 아론이 끝까지 함께 했지 않느냐? 아론 이 인간이 제일 나쁜 짓은 또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도 열둘의 제자가 받쳐 주지를 않았냐? 열둘이 예수님 팔아먹었지. 원래 나쁜 사람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말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가 보려고 작심하면, 아 혼자 걸어가는 길이구나 요렇게 밖에 느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00명 들어가는 문보다 두 명 들어가는 문이 좁기는 마찬가지 아닙니까? 두 명 말고 너 하나 들어가면 겨우 될까 말까 한 길, 너 하나도 빠듯이 들어가는 길. 둘이 더 낫고 셋이 더 낫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틀림이 없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노아 여덟 식구도 노아 한 명 때문에 일곱이 붙어 여덟 된 거지, 여덟 명이 원래 짜고 120년을 간 길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정말 신앙의 길이란 나 혼자 갈 수 밖에 없다. 이건 기본적으로 각오를 하셔야 됩니다. 혼자 가는데 만약에 옆에 10명이 있고 만약에 100명이 있고, 오늘 코로나에 이런 오후 예배에도 백 몇 십 명이 이렇게 한 자리에 함께 한다면, 이거야 기적이고 횡재고 좋은 거지만은 각오로 말한다면 혼자라도 가야 되는 길, 이건 잊지를 마셔야 됩니다.
 
“열심이 특심하오니” 진실 되게 믿어보려면 부부 둘만은 끝까지 간다. 공회 목회자 몇 명은 동지가 되어 끝까지 간다. 그런 거 없습니다. 혼자 갈 각오 잊지 마셔야 됩니다. 혼자만 남게 되어 집니다. 신앙이 성질이 그렇습니다. 그럼 나하나 옳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말이냐?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보는 것은 눈에게만 시킵니다. 귀한테는 시키지 않습니다. 듣는 것은 귀한테만 시키지 눈한테는 맡기지를 않습니다. 걸어가는 것은 발한테 그 사명을 맡기지 손한테 걸어가라고 사명을 맡기지를 않습니다. 내가 눈이면 보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근데 앞을 볼 때도 귀가 들어주면서 눈이 앞을 보면 훨씬 낫습니다. 잘 테스트를 안 해 보셨지요? 온 몸이 알게 모르게 도와 줘서 눈이 보는 겁니다. 근데 정확하게 보는 것만 말하면 눈은 마지막에 나밖에 없다. 내가 안보면 내 몸은 끝난다. 알기는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어떻게 되었는가? 10절을 계속 봅니다.
 
엘리야가 대답하되,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진실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결국 나 하나만 남았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첫 번째는, 이스라엘 자손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주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습니다. 주의 언약을 버리고, 언약이라는 말은 그 언자가 말씀 언자, 말로 하는 약속을 언약이라 그러는데 성경에 언약은 말로 하는 약속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약속입니다. 약속. 중학교 영어정도 하면, 그 성경에 우리는 보면 성경전서 이렇게 적어 놨는데, 그 성경을 보면 테스터먼트라고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게 약속이란 단어입니다. 우리도 약속, 계약, 언약, 맹세 뭐 별의별 그런 단어가 비슷비슷한 게 많은데, 성경에 나오는 언약은 말로 하는 약속이라고 단어는 되어 있는데, 말로하든 글로하든 누가 하든 어떻게 하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약속을 언약이라고 그럽니다. 언약. 주의 언약을 버리고,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지키면 복 받는다? 어기면 너 책임지고 망하거라.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아이 뭔 하나님이 그렇게 야박한가? 그럼 자기 자녀들하고 약속할 때 그러십시오. 공부 열심히 해라 잘 될 수도 있다. 안 해도 잘 될 수가 있다. 해도 잘 될 수 있고 안 해도 잘 될 수 있으면 둘 중에 하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려운 길로 가겠습니까? 쉬운 길로 가겠습니까? 돈 펑펑 쓰고도 남아놔서 쓸 돈이 넘치는 사람도 있다. 마음대로 쓰거라. 아껴봐야 또 뒤에 엉망 되는 사람 있더라. 뭐든지 그렇게 슬금슬금 해 놓으면 뒤가 잘 될지 안 될지 그것도 연구 좀 해 보셔야 됩니다.
 
주의 언약이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 전부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공통 약속입니다. 그리고 내 신앙의 양심의 감화와 감동은 나에게 대해서만 특별한 개별 약속입니다. 모든 성경은 모든 믿는 사람 전부에게 똑같은 공통 약속, 내 양심의 가책은 성령이 나하고만 단둘이 맺은 약속입니다. 집, 구하는 분들 전세든 월세든 주인하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우리 1년 계약하고 도장 찍으면 그 헛일입니다. 신풍 시골은 육법이 헌법보다 높은 신풍 시골에 인신 법이 있어서 맘대로 입니다마는, 2년 이하 계약은 다 무효입니다. 부부끼리 계약을 해도. 근데 50년 100년 계약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우리나라 전세 계약법이 2년 이하의 주택 계약은 무효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든지 다 무효입니다. 이런 것이 진리라 그럽니다. 근데 2년을 넘기면서 너하고 나 사이는 3년이다. 너하고 나하고는 50년이다. 그거는 각각 도장 찍는 데로 가는 겁니다. 성경에 말씀은 역사의 모든 교회 모든 믿는 사람이 어떤 경우에라도 전부 다 해당이 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근데 내 신앙에 양심의 가책은 하나님이 나하고 단둘만 맺는 약속입니다. 우리 신풍 교인은 10시 예배니까 10시까지만 오셔도, 다른 교회 다니는 분들과 비교해 보면 열심히 다녀야 10시에 오기도 어렵습니다. 근데 저는 강단에 서기 때문에 이전에는 30분 전에는 와야 되지 않겠느냐? 그건 목사로서 하나님이 제 양심에 주시는 말씀이라. 저하고 하나님하고 단둘의 계약입니다. 지금은 대충 한 20분 전에 보통 옵니다.
 
10시 예배다. 10시는 모든 교인에게 공통적인 계약이 되는 겁니다. 근데 오다가 그만 발이 삐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하고 같이 오려다 보니까 늦었습니다. 그건 다 개별적으로 다른 겁니다. 모든 교인에게 해당되면 진리라 그럽니다. 그게 성경 말씀입니다. 그 말씀 중에 어느 말씀이 급하며 어느 말씀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은 개별 약속입니다. 이거든 저거든 언약은 언약인데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이 주의 언약은 개별, 개별 개별적으로 약속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면 무조건 지켜야 되는 십계명, 1계명 하나님만 하나님이다. 이건 개별적으로 틀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두 번째로 생사화복은 하나님만 준다. 귀신은 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이런 법이 성경 계약입니다. 근데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만 하나님이냐 하나님만 복을 주느냐, 이스라엘 자손 전부가 주의 언약을 이렇게 다 어겨버렸습니다. 첫 번째로 주의 언약을 버리고 말씀을 떠난 것, 두 번째는 “주의 단을 헐며”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 제단이 있는데 여기서만 제사를 드려야 되는데, 다른데 가서 귀신 섬기는 것도 죄는 죄지만은, 다른데 가서 귀신을 섬기다가 이제 성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 여호와의 단까지 헐어버립니다. 거슬린다고. 성전의 단, 단은 한 글자, 단을 두 글자로 하면 제단입니다. 성전을 한글자로 줄이면? 전. 두 글자가 되면? 성전. 단, 늘리면 제단이 됩니다.
 
주에 제단을 헐며, 제단이라는 곳은 살다 보면 우리가 죄를 짓습니다. 근데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를 지으면 죽어야 됩니다. 죄지을 때마다 죽으면 100% 지옥입니다. 이걸 어떻게 구원을 할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를 짓는데, 믿는 사람 택자, 믿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지을 모든 죄를,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내 죽을 때까지 모든 죄를 대신 죽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처벌을 받지 않고 천국을 가는 이유가, 제단 위에 나 대신 죽은 주님 때문입니다. 근데 주님이 오시기 전 구약에는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에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그때마다 양을 잡아 성전의 제단 위에 태우면서, 죄는 제가 지었습니다. 근데 저는 살아야 되기 때문에 죄 없는 양을 대신 죽였습니다. 이 양을 받아 주시고 제가 지은 죄는 용서해 주옵소서. 이게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근데 이 단을 헐어 버렸습니다. 뭔 그런 제도를, 뭔 그런 귀찮은 일을, 돈이나 드는데. “주의 단을 헐며” 그 제단 위에 짐승을 잡아 올릴 때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 대신에 이 양이 대신 죽습니다. 양이 죽는다고 내가 용서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데, 이 양을 잡을 때마다 오실 주님이 훗날에 오셔서 나 지은 죄를 용서 한다는 표시로 양을 잡는 겁니다. 이게 구약에 제사입니다. 미리 약속 어음, 외상을 하는 겁니다.
 
요즘 학생들은 외상도 잘 모르지요? 참 무식한 시대라 부모들이 다 좀 가르쳐 되는데, 아이들이 외상도 알도록 좀 경제교육도 시키시고, 무조건 감춰서 모르면 능사가 아닙니다. 자라가면서 하나씩 둘씩 알거는 알고 비교하고 평가를 해야지, 무조건 모르고 무조건 편리하면 나중에 한꺼번에 망합니다. 외상. 물건 가져오고 돈은 뒤에 갖다 주는 겁니다. 요새는 뭐 카드 안에서 그냥 오고 가니까 뭔 아이들이 알겠습니까마는, 이 카드에 돈 하나도 없다. 근데 이걸 긁으면 카드가, 이 가게에다 대고 연락을 하고 내 은행에다 대고 연락을 해 가지고, 돈이 없는데 이 카드로 결제를 하면 이 마트에서 내 은행에다대고, 내 돈을 받아 가면서 이자까지 받아 간다. 누가 공짜로 하겠냐? 근데 그 이자가 센 이자다. 그리고 그 이자가 얼마나 센지 느끼도록 하면 경제교육을 하는 가정이고, 경제교육을 하는 가정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교육이 없으면 부모입니까? 낳아 줬으니까 먹여 줬으니까 부모지. 애양원에 닭들도 나아줬고 먹여줬다는 소리 할걸요 아마. 그 짐승 지금 사육하는 겁니다. 경제를 가르쳐야 부모가 경제적으로도 부모지, 인격을 가르쳐야 육체 플러스 인격의 부모지. 잘못했을 때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느끼게 해야 아이의 잘못까지를 책임지고 가르치는 부모가 되지. 이렇게 다양한 부모가 되려면, 그 아버지는 돈 벌어 오는데 전력하고 엄마는 아이들하고 하루 종일 쳐다봐도 아마 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근데 여자가 부엌에 매여? 내가 노예야? 나도 기 돌아다녀야 되지. 기 돌아 댕기지 말고 댕기십시오. 그래 놓으니 아들 같은 아들이 없고 딸 같은 딸이 없고, 어릴 때는 아들 딸 자녀 같은 자녀가 없지만은, 자라면 훌륭한 국가의 뭔 인재가 됩니까? 싹수가 노란데. 싹수란 말이 뭐 그냥 하는 말입니까? 싹이 나는데 보면 콩 싹이 나왔으면 안 봐도 콩이 열릴 거고, 팥 열리지는 않습니다. 어린 것이 딱 보니까 어린 것이 어린 거답지 못하면 이게 커 놓으면 그 다음 괴물 되겠지. 5천만 명 중에 몇 명 빼고는 제 눈에 괴물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 이래 보입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제가 알기로는 저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 엘리야의 심정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다시 예배드리는 우리교인 전부는, 하기 사 나도 내 주변에 보니 내가 훌륭하지는 못해도 나 외에 참 사람 같은 사람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고민이다. 이런 고민 좀 하시라고 지금 함께 읽고 있는 겁니다.
 
구약의 성전은 제단이 있어 성전이 성전 됩니다. 제단이 있어 성전에 하나님을 모시는 겁니다. 제단이 없으면 하나님을 못 모십니다. 죄인이라.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나는 죄인인데 이 죄를 제단에서 해결을 해 버리기 때문에, 죄 없는 내가 하는 거 하나 되는 겁니다. 나의 죄를 없애는데 구약은 양 잡으면 됩니다. 왜 양 잡았는데 사람이 깨끗해지는가? 오실 예수님을 표시했기 때문입니다. 오실 예수님. 그분은 얼마나 죄인이 길래 수도 없이 죽어야 했던가? 오실 예수님은 하나님이라. 원래 죄가 없으신데 내 죄 때문에 대신 죽는 겁니다. 양 잡을 때마다 내가 죄를 지어 양을 잡을 때마다, 난 내가 예수님을 늘 죽이고 있는 거다. 이걸 느꼈어야 제단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사고치고 합의금 100만원 지출하면 부모 카드가 왔다 갔다 하고 전화 한통화로 해결을 하는데, 그 100만원을 벌기 위해서 부모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를, 이게 돈을 벌어보고 당해보고 교도소를 한 며칠 갔다 오고 나서, 아이 내가 화난다고 주먹질 한 번 하고나니까 아버지가 100만원 합의금을 주는데, 그 100만원 벌기 위해서 아버지는 놀고먹는 것 같아도,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 일을 치고 사고를 내도 돈 계산을 해 가면서, 이거는 100만원이라도 이거는 더 억울한 것이라서 주먹질을 해야 되겠다든지, 계산이 나올 거 아닙니까? 부모가 소리 없이 다 해결해 주니까 어린 것이 주먹질 하는데, 그 주먹질 하는 것이 나중에 크면 뭐가 되겠습니까? 더 나쁜 사람 되지.
 
아이들이 사고를 칠 때, 이리 되면 이리 되는 거다. 또박또박 가르치고 느끼게 하고,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반복은 안 된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잘 느끼게 해서 그다음에 반복이 되면, 봐라 이게 반복이 되니까 그다음 커진다. 네가 더 나쁜 사람 되면 내 능력으로 막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한 번 더 반복할 때는 매 같이 맞기로 하자. 애만 패면 요즘 폭행으로 잡아 가니까, 다음에 너 이 일 또 하면 회초리 두 개 날라 간다. 그 대신에 못 가르친 날 너도 회초리로 두 개 패라. 쌍방폭행이 되면 고발 못합니다. 계산 머리가 나올 테니까. 뭐 세상이 그러니까 어떡하겠습니까? 또 유기적으로 교육적으로 봐도 부모가 제 종아리 맞아 가면서 같이 때리면, 반감이 좀 덜할 겁니다. 부모 지는 더 나쁜 놈일 건데. 아들이 보면 부모 지는 더 나쁜 짓 하면서, 지꺼는 누구처럼 없는 걸로 하고 애들 잘못한 것만 쥐 박으니까, 뭐 부모보다야 아이들이 더 나쁘겠지마는 애들 눈에 부모 당하는 거 못 봤으니까 반발심이 생겨서, 아버지는 더 나쁜 놈인데 아버지라고 그냥 넘어가고, 나는 힘이 없으니까 두드려 맞고, 아이 세상 더럽다. 기회만 되거라. 뒤집어 엎어버리지. 이 이렇게 밖에 더 되겠습니까?
 
애들 잘못할 때 두 개치고 자기 종아리도 두 개 맞고, 같이 나가면 고발도 못하겠지. 또 양심이 있으니까 좀 고쳐지겠지. 그게 교육일겁니다. 뭐 교육 강의 합니까?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내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시고 우리한테 요구하는 겁니다. 이게 대속의 원리입니다. 너희들이 죄지었으니 너들이 두드려 맞고 너들이 알아서 해! 구경할게! 이런 공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이라 잘못된 거는 가차 없이 처벌하면서 사랑의 하나님이라. 우리가 지은 죄 하나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고 전부 해결을 했습니다. 알고 보면 할 말이 없어야 이게 정상입니다. 죄는 내가 짓고, 이게 구약에 단입니다. 구약의 단.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 짓고, 죄 지을 때마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대신 죽고, 이걸 눈에 보라고 제단 위에 양을 잡게 했습니다. 죄 짓고 양을 죽일 때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없는 양 네가 죽는구나! 양, 너 죽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너 죽는 이 모습을 모아서, 앞으로 하나님이 사람 되어 우주적인 고난으로 영원한 그 고난을 다 받아야 되는데, 지금 내가 죄 짓는 것이 예수님 십자가에 못을 두드려 박고 있는 거다. 이게 느껴지고 이게 깨달아져야 죄를 짓고 양을 잡을 때마다, 아 이렇게 양을 잡으니 양이 아파하는 구나! 안 됐다. 내가 좀 참으면 될 건데. 이걸 자꾸 모아서 죄를 짓지 않으면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도 줄어듭니다. 그리고 나는 손해 봅니까? 죄를 덜 지으면? 이러라고 제단을 주셔 놨더니마는, 성전에 제단이 있으니까 양심의 가책이 된다고 제단을 다 헐어서 없애 버렸습니다.
 
이 나라의 십자가가 넘쳐 놓으니까 십자가 붉은 십자가만 봐도 공산당들이 그냥 괘씸해서, 저놈의 십자가를 어떻게 없애나 이를 갈다가 전국에 지금 십자가 없애는 운동하는 저 꼴 좀 봐보십시오. 광고, 간판, 법에 의해서 위험물이라 철거합니다. 말이야 좋지. 위험물이라 철거한다? 평양에 위험물은 왜 철거하지 않는고? 몇 천만 명, 재를 만들 평양의 핵은 없앨까봐 돈 들여가면서 더 만들어라 그러고, 예배당 종탑 철 무너지면 지나가는 다칠라. 이거는 벌벌 떨고 막 정권차원에서 생난리를 부리고, 이런 뻔한 사기를 갖다가 잘한다고 또 교인들이 도장 찍어주고 그러라고. 이게 제정신입니까 이게? 중이 고기를 먹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법을 만들면 그게 중입니까 그게? 십자가만 골라서 못 밟아서 환장한 사람들을 갖다가 막 우리 편이라고 밀어주고 앉았으면, 예수 떼어놓고 밀어 줘야지, 한국에 교회 전부가 한 짓입니다. 한국에 교회 전부가 똘똘 뭉쳐서 몇 십 년간을 키워 놓으니까 드디어 이 짓을 하는 겁니다.
 
배를 타고 일본에서 우리나라까지 오는 것은 옛날에는 하늘의 별따기인데, 오라 해도 죽을까 봐 안 오던 거리인데, 조선의 임금이 얼마나 나쁜 짓 못된 짓을 해 놨으면 저 바다 건너 도둑놈들이 여기까지 오도록 되었으니, 오는 도둑놈들이 잘못되었습니까? 바다 건너 도둑놈이 오도록 만든 이 나라 왕들이 모두 다 문제입니까? 원인을 잡아야 그다음에 일을 당하지 않지. 여호와의 전에 제단을 헐어 버렸나이다. 누가? 이방인이? 이방인이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 죄를 해결하고, 하늘의 복을 받는 제단 자체를 헐어 버렸습니다. 제단은 놔두고 다른데 가서 제사 드리고 다른 귀신 섬기고, 두 번째는 아예 단을 헐어 버렸습니다. 이렇게까지 나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내가 잘 믿지를 못 하면, 나는 신앙이 없어 잘 믿지 못 하지만은 그래도 열심히 믿으려는 교회가 있어 다행이다. 내가 교회를 자주 못가 주는데 이 코로나 어려운 때도 목숨 걸고 교회를 가는 분들이 계시니, 나야 건강 문제가 있어서 빠지지마는 또 열심히 가는 분들은 잘한다. 아이 후원회라도 한 번 좀 도와줬으면 싶다. 이리 돼야 될 건데, 아니 저것들이 코로나에 교회를 가? 예배를 모여? 이놈의 이단들을 갖다가 그냥, 우리 저 내계 집회한다고 거창군청에다 대고 계속 고발을 넣어가지고, 이 이단들을 가서 조사해라 해가지고 집회 때 다 조사하고 갔지 않습니까?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시지요? 다른 교단 아닙니다. 불신자도 아닙니다. 공회 제일 핵심들.
 
이 정도가 되기 때문에 정말로 바로 믿어보려 그러면, 아 두 사람도 함께 가기가 어렵겠구나! 요렇게 느낄 때 이게 잘 믿는 다는 말은 아니고 그렇게 느낄 때, 아 진실한 신앙이구나! 그렇게 진실한 신앙이 되는 데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느냐? 전부 하나님과의 약속 다 어겨 버렸고 말씀 떠났고 주의 단을 헐어버렸고, 주의 단을 헐다니요? 오늘은 주의 단이 없는데. 이 강단 이거 주의 단 아닙니다. “구약의 단을 헐고” 그 위에 자기를 바쳐야 되는데, 말씀에 틀린 자기를 잡아 올리는 게 단인데, 자기가 왜 자기를 잡습니까? 네가 죽지, 네가 손해 보지, 왜 내가 손해를 봐? 난 머리털 하나도 손해 보기 싫고, 나 말고 너들이 주변이 다른 사람들이 손해보고, 이게 주의 단을 허는 일이 되어 집니다. 주의 단을 헐고. 세 번째, 주의 선지자는 전부 죽여 버렸나이다. 선지자라고는 다 죽였나이다. 지금 선지자가 따로 있습니까? 교회 목사들 손댔다가는 UN이 개입할 건데, 어느 선지자? 내 양심 속에 나한테다 대고 외치는 내속에 양심의 가책 이게 자기 선지자입니다. 내 양심에 뻔히 알면서, 이건 안 되는데 이건 곤란한데, 자기 속에 양심에 소리를 똑 꺾어 버리는 것이 구약의 선지자를 죽이는 죄입니다. 그 말씀으로 나를 바쳐야 되는데 나를 못 바친다고 버티는 것이 단을 헐어버리는 겁니다.
 
아는 말씀 어기고 그 말씀으로 자기를 꺾어야 되는데 거부하고, 이게 단을 허는 거고, 그리고 자기 속에다 대고 양심의 가책을 주는데 그 양심의 가책까지 꺾어 버리면 선지자들을 죽인 죄가 됩니다. 이거 세상도 문제지만은 세상이 험악해 질수록, 모세처럼 하나가 바로 되면 많은 사람을 살릴 건데, 나 하나가 어려운 때 바로 믿고 바로 신앙을 지켜 나가려면, 10절에 말씀 다시 기억해서, 나밖에 없는 거 아닌가 할 만큼 느껴야 되고, 아는 대로 말씀 지키려 노력하시면서 그 말씀 때문에 나 손해 볼 때 그 날을 꺾으면 단을 지키는 거고, 그 말씀으로 날 꺾기 싫어서 거부하면 단을 헐어 버리는 것이 되고, 그리고 그 말 자체를 꺾어 버리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나이다. 나는 아합과 아합 편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다 같이 자기 현실에 자기가 다 엘리야 되도록 한 주간 살펴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시대는 어려우나 시대를 탓하지 않는 저들 되게 해 주옵소서. 교계가 어두워지나 교계를 탓하지 않는 저들 되게 해주옵소서. 공회도 교회도 주변도 답답한 것은 많아도, 정말 답답한 것은 내 속에 신앙 양심을 살리며 따라가며 밝혀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모든 면에 원인이며 내 양심을 통해 인도하시는 주의 인도에 자기를 꺾고 순종하는 여기에서, 엘리야가 다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 생전에 이루지 못한 모든 복음 운동에 사명을, 바르게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이루었던 것처럼,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환경을 이미 주셨으니, 갈수록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고 말씀 붙들고 각자에 대한 주의 인도에 귀를 기울여, 열심히 자기를 밝히며 자기를 말씀으로 꺾으며, 한 주간 충성하는 종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불편하여 가정에서 또는 병원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든 교인들, 육체가 강건함으로 더욱 주님을 열심히 섬길 수 있는 종들이 되도록, 생존에 은혜를 더하시되 강건함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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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4.3주전 왕상19:10                      신앙의 새출발                         총공 신풍
왕상19:10,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 특심한 열심 :10
    (진실)하게 믿어 보려면
    (혼자)만 남게 되는 신앙
 
2. 주변의 상황
① 주의 언약을 버리고
     (말씀)을 떠났고
② 주의 단을 헐고
     (자기)를 바치지 않고
③ 주의 선지자들을 죽임
    주의 (뜻)을 꺾는 시대
 
3. 절망의 상황 :4
① 광야로 들어가
     (생명)이 살 수 없는 환경
② 죽기를 구하여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③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
     (사람)의 한계에 절망
 
4. 천사의 도움 :5
① 로뎀나무
    (생존)력, 거친 환경의 나무
    (침엽)수, 측백나무 종류 노간주, 도끼자루
 
② 누워 자더니
   만사 (포기)
   자기 (부인)
③ 천사가 어루만지며
    (하늘)의 도움
   하나님의 (인도)
④ 일어나서 먹으라
   숯불에 구운 떡, (성령)의 양식
   한 병 물, 성령의 (감화)
⑤ 호렙에 이르니라
    (하나)님의 세계
 
5. 하나님의 역사 :11
① 크고 강한 바람
   세상을 뒤흔드는 (운동) ② 지진
   천하의 (변동)
③ 세미한 소리 :12
     (가는) 말씀
 
6. 하나님의 새역사 :15
① 세상 나라
   아람 왕, (세상) 국가를 역사
② 타락한 교회
   이스라엘 왕, (교계)를 이용
③ 이어 지는 복음
   엘리사의 시대, 복음의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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