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22.3.23 전3:19 외부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로 섬기나, 실제는 양식과 능력을 받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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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2.3.23 전3:19 외부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로 섬기나, 실제는 양식과 능력을 받는 기회

서기 0 77 2022.03.23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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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교리    * 예배 의미와 실시간

220323 수새 
 
제목 : 외부는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로 섬기나, 실제는 양식과 능력을 받는 기회
 
찬송 : 87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본문 : 전도서 3장 19절 -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코로나 확진 기간의 실시간은 출석으로 계산을 해도 그냥 좀 나오기가 불편하고 맞지 않아서 실시간 켜는 분들은 서기가 여쭤보고 출석에서 뺍니다. 실시간이라는 것이 우리 한국 교회적으로는 2020년 코로나 시작하던 3년 전에 처음으로 인정된 예배지만은 기독교의 교리가 2020년에 정립이 됐다, 또 새로 고쳤다 그리 되면 그건 뭐 그건 교리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공회만은 실시간 예배를 벌써 1989년, 34년 전에 미리 정해 놨었고 또 그 이전에도 미리 정해 놨었습니다. 그러면 천 구백년 만에 바꿨으면 교리가 되고 이 천년에 바꾸면 교리가 아니냐?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예를 들면 불교 믿는 사람들이 동물은, 곤충 벌레까지 동물은, 곤충 벌레까지 사람이 죽으면 벌레도 되고, 사람이 죽으면 짐승도 되고, 짐승이 또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고 그렇다, 이게 불교의 기본 교리입니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태어날 거고 아니면 양으로 태어날 거고 살아생전에 독한 인간, 못 된 인간은 뱀으로 지네로 태어난다, 이게 인제 불교의 환생 교리의 기본이기 때문에 살아생전 나쁜 짓 하면 나중에 독사로 태어난다, 지네로 태어난다, 더러운 행위를 하면 지렁이로 태어난다, 이래 놓으니 살아생전에 나쁜 짓 좀 못 하도록 사람을 협박을 해 가지고 자제를 시킨 것이 불교의 환생 교리입니다. 그런 교리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그 육고기 동물을 먹으면 사람 먹는 거다, 너 조상일수도 있다, 이렇게 금지를 시켜 놨는데 지금은 불교인들 고기를 다 먹거든요? 그러면 식인종이 되는 겁니다. 교리를 바꾸지 않으면 만약에 어느 불교의 종파가 사람의 인체는 단백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백질섭취는 괜찮다, 그렇게 처음부터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동물은 먹어서 안 되지만은, 동물이 죽어서 남긴 양식으로서의 단백질은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이제 빠져나가면 그쪽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어지겠지요? 불교가 살생을 하지 않는 이유가 먹는 것은 두 번째 문제고 사람이 그리 되면 어떻게 되느냐? 사람이 양이 되고 사람이 벼룩으로 나왔는데, 이렇게까지 되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겁니다.
 
우리는 원래 예배가 뭐냐? 공회 아닌 교회들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사람이 이렇게 엎드리는 거다, 벌벌 떨고 가서 엎드리는 거자, 그걸 예배라고 그랬습니다. 공회 예배는 벌벌 떨고 몸을 이렇게 엎드리면 예배다, 그렇게 보지를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예배의 예배라는 뜻은 주인한테 머슴이, 또는 노예가 와가지고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서 물 떠다 드리고. 시키는 대로 이렇게 심부름을 한다, 그걸 예배라고 그럽니다. 예배. 배구하는 사람들이 보면 시작할 때 상대방한테 먼저 공격을 하라고 공을 던져줍니다. 그걸 써브라 그러던가요? 써브라고 그럴걸요 아마. 배구하는 쪽이 이쪽에서 공을 이렇게 던져주면 상대방이 그걸 받아가지고 이제 공격을 하느라고 이렇게 두드려 칩니다. 이렇게 갖다 바치는 거, 그걸 서브라 그럽니다. 그게 써비스가 그래 되는 겁니다. 써브, 써비스. 써비스한다고. 하나님 앞에 봉사한다고, 섬긴다고. 뭔 원합니까? 벌벌 떨면서 이렇게, 인간이 위대한데 하나님 앞에만 벌벌 떱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숙이고 하나님이 물이 필요하신가? 하나님이 찬송듣기를 좋아 하시는가? 하나님이 뭘 요구하시는가? 갖다가 드리고 바치는 것이 예배다. 왕의 나라 임금이 있는 나라에 왕이 앉아 있으면 신하라는 것은 무슨 심부름을 해드릴까요? 무엇을 갖다 드릴까요? 무엇이 필요합니까? 모든 궁궐에 있는 궁녀들도 신하들도 내시들도 모든 만백성들도 임금님 앞에는 고개를 숙이고 뭔 시키면 해 드리려고 이렇게 모두들 하는 걸 갖다가 섬긴다, 그게 종교적으로 말 하면 예배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원래 단어도 그래 돼 있습니다.

그런데 공회는 처음부터 예배란 뭐이냐? 하나님은 완전자시다. 완전자라 인간이 물 떠다 드릴 수도 없고 연보한다고 하늘나라 송금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허리 숙인다고 그거 하나님이 받아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대우되는 것이 아니다. 젖먹이 두 달, 석 달 짜리가 뭘 한다고 그게 엄마한테 도움이 되겠냐? 귀찮기만 하지. 엄마가 이 아이를 사랑함으로 엄마가 이 아이를 위해서 할 일은 한도 없이 많지만은, 두 달짜리 석 달 짜리가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젖 주면 젖 잘 받아먹는 것이나 그거나 고마우면 고맙지. 그것도 엄마의 진액이 쫙쫙 빠져나가는 건데 엄마가 사랑으로 주고 싶으니 주고 싶을 때에 잘 받는 것이 아이가 기특한 거지. 두 달, 석 달짜리 아이의 엄마는 그래도 그 아이한테 뭐 신세지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젖을 빨지 않으면 젖몸살을 앓고 뭐 엄마가 이제 몸이 안 좋아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없다고 불편한 분도 아니고, 또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하나님은 도움 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전자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섬김을 받아야 기분이 좋고 뭐 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우리가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쉽게 되고 문제가 생기느냐? 완전자라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섬기라 그랬느냐? 가르치기 위해서. 왜 두려워하라, 섬겨라, 이래라 저래라 그러셨느냐 우리 사람 되라고. 사람인데 뭔 사람이 되느냐? 하나님을 닮는 사람 되라고. 귀신에게 떨면 귀신같은 사람이 될 거고 도둑놈 두목한테 떨고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잘 하고 심부름하다 보면 두목 도둑놈 따라 도둑놈 될 것이고. 좋은 군인의 밑에서 시키는 대로 심부름하고 열심히 뒹굴다 보면 좋은 군인이 될 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고 하나님 앞에 몸을 숙이고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다보면, 하나님을 닮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을 닮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덕을 보느냐? 그런 건 없습니다. 다 완전자라. 덕 보지를 않습니다. 한 줌의 흙을, 죄를 지어 지옥 갈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려면 하나님 애만 먹지.
 
불교의 돌부처든 이 땅위의 어느 황제든, 재벌이든 우리가 뭐 섬긴다고 열심히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이 덕을 보나? 하나님은 덕 보는 게 없습니다. 오히려, 예배를 잘 드리라고 이런 저런 말씀은 했는데 그 말씀 때문에 예배를 잘 드리려고 우리가 애를 쓰면 약속에 따라 은혜를 주시고, 한 줌의 흙인데 죄인이 자꾸만 의인 되고 하나님을 닮아 자라갈 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야 되니 겉으로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허리를 숙이고 섬기는 것 같은데,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좋게 길러 가시느라고, 하나님이 죽을 지경입니다. 인간 말로 말하면. 두 달 짜리든 두 살 짜리든, 어린 것이 설거지 도와준다고 설거지 도움이 됩니까? 옆에 있으면 귀찮지 혼자 후딱 하는 게 빠르지. 그런데도 두 살 짜리 다섯 살짜리한테 씻어봐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는 사람 되라고. 설거지하는데 옆에 세 살짜리가 씻어준다고 도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다 해야 되는데, 엄마가 설거지를 끝내야 그게 설거지가 되는데 엄마는 설거지할 때 기름때 묻은 거, 고추장 묻은 거 이렇게 순서가 있는데 옆에 애들이 그릇을 들고 씻는다고 이러고, 저러고 물이 튀고 그러면 일이 더 많아 지고 일도 안 되고 고생을 하나 이게 두 살, 세 살, 다섯 살에 그렇게 자꾸 치대 싸야 이게 사람이 되니까.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설거지 할 때는 옆에서 이거해라 저거 해라 그러는 겁니다. 아무리 해봐야 마지막에 엄마가 다 해야 됩니다. 일 한 것만큼 내가 오히려 귀찮지. 그게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것은, 내용을 정확하게 말을 하면 나는 무엇이 틀렸고, 나는 무엇을 더 배워야 되며, 내가 노력할 방향이 뭔가? 이걸 하나님께 듣고 배워서 하나는 지식으로 듣고, 배우고 학교 수업과 같은 겁니다. 학교 수업. 듣고 배워서 그것만이면, 아 성경이 있으니 집에서 읽으면 되는 거고. 또 성경을 혼자 읽어 해석이 어려우면 방송으로 듣던, 주석 책을 보든 뭐 여기저기 다 뒤적거리면 됩니다. 그런데 정한 때 정한 장소에 한 교회 교인들은 한 자리에 모여라 이게 예배의 원칙입니다. 물론 시공 초월하여 올 수 없는 거리나 또 병원에 계신 분들 그런 분들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 신령한 예배니까, 신약의 예배는 신령한 예배라 했습니다. 시공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예배란, 하나님은 다 아시고, 전지.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는 전능입니다. 우리는 무지의 무능입니다. 무지 무능한 것이 전지 전능자에게 도움 되는 것이란 아예 처음부터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왜 섬기라 했는가? 지 딴에 섬긴다고 움직이고 노력을 해야 얼마나 섬길 수가 없는지 얼마나 탈을 만드는지, 몰라도 얼마나 모르는지 못해도 얼마나 못하고 엉망이 되는지를 아니까! 그런데 그러는 그 노력 속에 하나님은 이러는 것이 아니고 저러는 거다, 전도서 3장의 뜻은 세상의 허물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영원불변의 하늘나라만 우리의 나라다, 이걸 말한다, 전도서가 허무만 말할 것 같으면야 세상의 유행가도 술 먹고 허무를 노래한 게 한 두 가지인줄 아십니까? 전도서는 인생이 허무하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허무하다, 천국밖에 없다, 천국을 안내하는 말씀입니다. 천국이 목적이며 천국을 향해야 된다, 이 향방 이 목적에 세상은 이용이나 하는 거지, 거기에 마음 두면 안 된다. 그게 전도서이고 전도서 3장입니다. 이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섬긴다, 그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한지 안한지 압니까? 그거야 섬겨보면 압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를 써보면, 아 택도 없구나. 오히려 하나님 귀찮게 했구나, 이리 됩니다. 그러면 다시 묻는 겁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불가능한데 있을 수가 없는데 왜 섬기라고 말씀 하셨는가?
 
그럼 이제 생각을 해 보는 겁니다. 안 되는 걸 왜 하라고 그러셨을까? 인간은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하라고 했다. 인간은 안 된다는 것을 알라는 뜻이구나, 그리고 하나님이 하게 해주시면 되는구나, 알아야 하지요. 그래서 알려주는 겁니다. 알려주는 것 만이면 교육이고, 그건 책으로 해도 되고 방법이 많지 않느냐, 왜 정한 때, 정한 장소라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모이기를 애쓰라, 힘쓰라, 왜 하필이면 모이라고 했는가? 한 몸을 만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주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한 몸이 되려면 부대껴보고 모여 봐야 싸우고 안 맞고 고장이 나고 이걸 나쁘게 말하면 엉망진창인데 좋게 말하면 이제 그러다가 점점 익숙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한 자리에 일부러 모아 놓는 거고. 더 중요한 것은 섬길 수 없는 인간인데 섬기라는 말씀 때문에 섬기려다 보니 인간은 섬길 수 가 없구나, 자각하고, 그런데도 모이라 했고 섬기라 했으니 그래도 모였고 그래도 섬기려고 하다 보니 그 정성을 보고 그 순종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 깨닫게 해서,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마음과 그리고 이제는 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변화! 변화의 능력을 주시는 그 실상, 실체가 예배 때에 주어집니다. 옛날에 현장에 한 달 일하고 월급을 수표로 받던 때, 한 달 일 실컷 다하고 대기업이라 사방에서 모아놓은 노동자들한테 출석표 확인하고 이름 불러서 이제 50만원씩 쭉 수표를 주는데 한 달 일 다 하고 딱 그 시간에 오지 않은 사람 그럼 공사는 끝나고 사장은 가 버리고 돈은 못 받습니다.
 
예배 시간이 예배 시간인 이유는 하나님은 전지전능이라 언제든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역사 할 수 있는데 날 중에는 주일날에만 말하자면 변화의 기회를 가지고 계십니다. 월요일이든 토요일이든 하나님은 원하면 다 하는데 하필이면 주일을 주일로 만들어놓은 이유가 날 중에서는 주일날, 일 년에 비가 오는데 장마철에만 오는데 장마철에 뚜껑 열어놓으면 뚜껑만 열어 놔도 비가 모입니다. 장마철 끝나고 나면 물 뚜껑 열어놓으면 있던 물도 날라 가 버립니다. 장마철에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열어 두면 되고 습기가 많아서 물도 안 날라 가지, 시도 때도 없이 물이 잠깁니다. 장마가 끝났습니다, 말이 나오면 뚜껑을 닫아놓으면 수증기가 되어서 증발 되더라도 뚜껑에 맺히면 또 물이 되어 또 내려옵니다. 때가 있는 겁니다. 날 중에는 주일입니다. 뭐 집회라든지 또 개인에 따라 다른 기회에 변화의 큰 능력을 줄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6일 준비했다가 주일날 배식 받아라, 한 주간 준비했다가 주일 날 변화의 능력을 받아라. 그래서 주일 하루를 빼면 6일이 날라 가는 겁니다. 총 7일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주일을 붙들면 7일에 하루는 붙든 겁니다. 그런데 이 하루 속에는 6일 것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자기하기 따라 주일 하루가 바로 되면 7일이 바로 되고, 말하자면 주일이 절반이 되면 7일의 절반이 날아갑니다. 이걸 주일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주일의 개념이 있으면 잘 믿는다가 아니고 주일의 개념이 있으면 노력이 있으면, 아 가능이 있겠구나. 주일은 대충이고 주일은 뭐 그럴 수 있고 6일은 뭐 세상 어디를 가도 믿는 사람으로서 정직하고 덕이 되고 모범이 된다? 그건 볼 것도 없이 삶아 놓은 씨나락 처럼, 볍씨를 삶아 놓으면 그다음, 보기는 볍씨인데 아무리 뿌려봐야 거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삶지 않은 볍씨는 못나도 이거는 언제든지 100배가 되든 30배가 되든 뭐가 되도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그게 주일입니다. 그래서 날 중에, 주일에 하나 더 들어갑니다. 시간 중에는 예배 시간입니다. 예배 시간이 바로 되면, 모든 시간들은 바로 될 출발을 가졌고 바로 될 열쇠를 가졌고, 바로 될 에너지를 다 가진 겁니다. 신풍서 서울로 출발하는 차들이 쭉 대기하다가 기름을 완전히 채운 차들은 가다가 둘러가든 놀고 가든 그건 자유지만은 일단 갈 수 있는 서울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을 다 채웠으면 이거는 갈 수가 있는 차입니다. 그런데, 여수에서 출발하라고 기름을 만 땅 채워줬는데, 기름 한 절반 팔아서 식사하고 나머지 절반 가지고 출반한다? 그거 대전까지 밖에 못갑니다. 볼 것도 없습니다. 보면 알지. 이거는 기름 탱크에 구멍이 나버렸습니다. 채울 때는 만탱크가 찼는데 보니까 기름이 샙니다. 이건 순천도 못갑니다. 보면 아는 겁니다.
 
그래서 날 중에 주일이요, 시간 중에 예배 시간이라, 우리가 주님을 섬기느라고 애를 먹습니다, 돈을 벌다가 쫓아왔습니다, 두 살짜리가 엄마 설거지 도와주느라고 내가 땀을 흘렸습니다, 그것과 같습니다. ‘애 쓴다’ 그래서 어머니가 덕을 봤냐? 너 지금 인간 되어가는 길이다. 이렇게 정한 예배 시간. 이 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지식을 하나 배우고, 두 번째는 일반지식과 신학의 강좌와 다른 것은 예배 때에 말씀 속에는, 지식 속에는 생명의 능력이 이게 움직입니다. 예배가 잘못되면, 나머지는 그냥 착한 사람은 착하게 살고, 이런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런 사람은 저렇게 살 뿐입니다. 건강, 거리, 여러 가지 형편상, 시공을 초월하는 신약의 예배는 얼마든지 시공을 초월하여 실시간 예배가 됩니다. 공회는 뭐 원래부터 그렇게 인식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그 마음은 주님이 속을 다 읽고 있습니다. 너 핑계대고 지금 편하자 그러는 거냐? 사람은 몰라서 출석으로 매기고, 하나님은 그거 결석은커녕 아주 하나님 무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는 참 신앙이 없는 것 같은데 주님은 귀하게 보는 신앙도 있고 모든 사람들이 모범이라고 우러러 보는데 하나님은 저 다윗 잡으러 댕기는 사울 비슷하다, 그리 볼 수가 있습니다. 예배의 자세, 의미를 아침에 잠깐 살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일이 주일이며 예배가 예배인 이유를 모르고, 그냥 예배당 마련해놓고 여러 가지로 예배 시간 촥! 이렇게 마트에 가면 물건 선전하듯이, 어디 회관에 가면 다양한 프로그램 딱 전시 됐듯이 전시된 것만 봐도 이쪽은 그냥 놀이터구나, 이쪽은 하나님을 아는 곳이구나, 예배당 입구에 예배시간 적어 놓은 것 봐도 예배다, 예배 아니다 이미 다 나오는 겁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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