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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7 주전
(* 설교에 참고할 교안은 제일 아래에 있습니다)
제목 : 말씀의 은혜와 능력, ①깨닫게②새롭게③전능 실제 역사, 자기 현실에 효력 볼 것
사회 : 김희락
찬송 : 3장(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4장(찬송하는 소리 있어))/ 45장(달고 오묘한 그 말씀)
본문 : 사도행전 20장 32절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이 되어 예수님의 사활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아무 노력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고, 이 은혜로 지난 한 주간도 영육의 무한한 건설의 기회를 받아 가졌는데, 이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가야 할 자기 방향을 잃은 채, 헤매고 있는 저희들을 주님께서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말씀으로 친히 인도하여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다시 말씀으로 저들의 폐부를 찌르며, 양심을 두들기며 훈계 하실 때에 그 말씀에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시고,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므로 어떤 낭비나 방심이 없는, 복된 길을 가는 저들이 될 수 있도록 이 시간도 주님께서 친히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동일한 은혜로 역사하여 주옵시고, 더욱 부족함으로 은혜를 구하는 이 자리에 저희들에게, 더욱 크신 은혜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세우신 주의 종 영육 간에 강건함을 붙들어 주시오며, 한 노선을 가는 우리 교인들 어느 형편 어느 위치에 있든 안보 하여 주옵소서. 실시간에 은혜도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도행전 20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직전에 아시아 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는 아시아라 하면 그냥 우리 기준으로 아시아라고 그러는데, 2000년 전에 성경에 아시아는 유럽과 가까운 아시아를 아시아라 그럽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 그 아시아 지방의 에베소라는 곳이 있었고, 에베소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이 마지막 부탁한 말씀이 사도행전 20장 말씀입니다. 31절 먼저 보겠습니다.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말씀에, 3년 밤낮 눈물로 훈계를 했다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요 선생님입니다. 3년간 밤낮 교인들을 눈물로 가르쳤으니 잘 가르친 겁니다. 바울은 3년을 밤낮 가르쳤고 여기 우리 대부분 교인들은 목사 아니요 선생이 아니니 뭐 3년이나 가르칠 것이 있겠는가? 가족들에게 3년 밤낮으로 눈물로 부탁한 것이 있어야 부모입니다. 자녀 된 분들, 밤낮으로 부모님이 부탁한 게 있습니까? 좋은 부모 만나신 겁니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면 잔소리라 그럽니다. 그 잔소리 속에 자기 성공 있는데 잔소리 속에 좋은 말을 뽑아내면, 희망 있는 청년이고 같은 말 반복 한다고 속에서 거부감이 나오면, 세상 살다가 한번 되게 당할 사람입니다. 그건 각자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특별히 10대의 후반이 되면 같은 말 반복 하면 못 견딘다 그럽니다. 같은 말을 반복할 때는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는 겁니다. 같은 말을 중요해도 잘 알아들으면 두 번 말할게 없는데, 사람이 복된 것은 잘 잊어 먹고 안 좋은 것만 귀가 밝기 때문에, 경험 있고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마음 가진 부모는, 좋은 말을 자기도 모르게 두 번 세 번 반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뭐든지 두 번 세 번 반복 할 때는 아 중요하구나! 근데 내가 아직까지 느끼질 못 했구나! 하고 곱게 받으시면, 아이큐는 낮아도 돈이 없어 가난해도 지금은 성적이 밑바닥이라도, 자세가 그런 사람은 가면 갈수록 굉장히 발전 할 겁니다. 세상이 불리하게 돌아가도 자세가 복 된 사람은, 세상이 불리할수록 자기 앞날은 더 좋게 열어 갑니다.
사도 바울이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해라” 3년간 다 다른 말로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꼭 같은 말입니다. 뭔 할 말이 없어 3년이나 했을까? 어쨌든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 이게 부모며 이게 선생님이며, 저도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나는 나한테 나를 가르치고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선생님이 별 볼 일이 없어 잘 배우지를 못했다. 그건 핑계고. 내가 나를 잘 가르치면 그러면 세상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특별히 믿는 사람은 주님이 계시니, 주님의 은혜에 말씀이계시니 32절입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떠나며 나는 떠난다. 나는 떠나지만은 주님이 계신다. 나는 떠나는데 내가 주님의 말씀을 전했으니, 주님은 계시고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 에베소교회에 늘 지켜보며, 그 교인들 마음속에 함께 있어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 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란 하나님 앞에 설 교인들입니다.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너희 한 명 한 명도 기업이 있게 하리라. 너의 몫이네 몫이 영원토록 있게 되리라. 사도 바울이 죽기 전 또 특별히 에베소교회에 유언으로 남긴 말입니다.
오늘 아침 말씀은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에 남기는 말을 유언이라 그럽니다. 주님 가시며 마지막 남긴 말씀도 있고, 여기 사도행전 20장에는 사도 바울이 3년이나 눈물로 밤낮 없이 가르친 에베소 교인들에게 마지막 떠나며, 바울이 떠나버리면 부모 초상 쳐버리면 이제 뭐 좋은 세상 내 맘 대로다. 보통은 그리 됩니다. 임금님 밑에 세자가 임금이 죽어야 왕이 되는데, 임금 죽기 전에 자기가 먼저 죽을 수도 있고 세자 바꿔 버릴 수도 있습니다. 세자 된 사람은 그토록 효자 노릇을 다 해도 속으로는, 아버지 딱 죽어 버려야 내가 왕이 되고 왕만 되면 내 마음 대로인데, 그 인간이라 그건 마음속에 떨쳐 버릴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떠나는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나는 떠난다. 아이 선생님 떠나버리면 이젠 눈물을 짜며 했던 말 또 하고 밤낮으로 잔소리 하던, 저 부모 저 선생님 저 바울 없으면 좀 마음 편히 살겠구나! 이게 우리 마음이고 이게 에베소 교인의 마음이고, 세상 살아가는 인간의 일반적인 마음입니다. 근데 바울이 떠나며 한마디를 붙이기를, 나는 떠나는데 주님께 부탁한다. 바울은 떠나는데 바울 대신에 주님이 너희들을 맡아 가르칠 거다. 바울 보다 주님은 잔소리가 더 많으신 분입니다. 바울이야 바울 있는 집 옆집으로 가면 벽이 있어 잔소리를 못 하겠지마는, 사도행전의 주님은 부활하신 주님이라. 시공을 초월하여 천하 모든 교회 모든 교인 마음속에, 주님이 그 마음속에 별도로 다 들어 가셔서 말씀 할 수 있는 주님이십니다.
바울이 떠나면서 주님께 부탁한다. 주님께 부탁 한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 잘 살핀 말씀이고 오늘은 “주와 및”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그 은혜의 말씀”(그 은혜의 말씀) 바울이 가르친 그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므로, 그 말씀께 부탁을 한다. 아이 말이란 듣고 지나가면 끝이 아닌가? 말을 배웠는데 지나가면 말이라는 것은 지나가면 끝인데, 뭔 말씀께 부탁을 하는가? 주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달라 주님의 말씀은 전해 놓으면, 씨앗처럼 이게 뿌리를 박고 싹을 피우며 열매를 맺습니다.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바울은 떠나는데 바울이 던져 놓은 그 말씀이, 바울은 떠났는데 너희를 든든하게 세워나갈 것이라. 길러 갈 것이며 고쳐 갈 것이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세워 나갈 것이라. 이게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기어코 하나님 앞에 너희들을 든든하게 기업까지 마련 해 주시리라. 기업이라 말은 요즘 말로 말하면 취업입니다. 취업보다 더 좋은 내 사업입니다. 폐업이 잘 되는 작은 사업이 아니라 아예 망할 수 없는 사업, 하늘나라에 나에게 하나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맡겨놓는 일 그런 위치가 있을 것이라. 바울이 가르쳐 놓은 바울의 말씀이, 바울에게 말씀들은 교인들을 든든하게 가르쳐 든든하게 세우고,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서는 날 바울이 가르쳐 놓은 그 말씀이 들어, 하나님 앞에 든든히 영원토록 감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리라. 바울은 떠나지마는 바울이 던져 놓은 말씀 때문에 바울은 든든하게, 에베소 교인들에게 작별하고 떠납니다. 이제 얼굴로는 두 번 볼 수 없다. 그러나 가르쳐 놓은 말씀이 있어 이 말씀이 바울보다 더욱 에베소 교인들을 복되게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 할 것이라. 이게 오늘 사도행전 20장 말씀에 전체 말씀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말씀을 좀 살펴봅니다. 32절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주님께 맡긴다. 주님께 부탁한다. 평소에 많이 살폈습니다. 오늘은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어떤 말씀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첫 번째 은혜의 말씀입니다. 한 번 기억하십시다. 은혜의 말씀(은혜의 말씀). 은혜의 말씀이 아닌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은혜의 말씀 이라니 뭐가 은혜의 말씀인가? 도둑이 도둑질하는데 안 잡히게 비법을 알려 주면 은혜의 말이라. 그 참 고마운 말이라. 그런 것도 은혜 말씀일까요? 아니겠지요? 학생이 공부는 안 했는데 컨닝을 해서 합격을 하면 아 그 참 고마운 말이다! 그런 좋은 말이 있느냐? 그 모두들 은혜 말이라고 들을 겁니다. 이런 거 빼 버리고 공부하기 싫고 돈 벌기 싫고 땀 흘리기 싫고, 어떻게 돈 100만원 빌려서 주식을 했는데 10억 100억이 들어오면, 아 그 참 그 사람 시키는 대로 주식투자 했더니마는 돈벌이가 되네, 은혜의 말씀이다. 그런 도둑의 은혜의 말 도박하는 노름의 은혜의 말 이런 거 다 빼고, 은혜의 말씀의 뜻이란 첫 번째로, 값없는 말씀이 은혜의 말씀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주시는 것을 은혜라 그럽니다.
여기우리 학생들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출산비용 지출 하고 나오셨습니까? 고속도로 지나가면 1,000원씩 받고 서울까지 가면 만 원씩 받습니다. 이 김 선달이, 왜 내가 돈 내가 낸 돈으로 나라가 운영되는데 내가 내 길을 가는데 왜 돈을 받지요? 거기는 군소리 없이 돈을 딱딱 냅니다. 톨게이트 지나가다가 통행료 받는다고 싸우는 사람 보셨습니까? 저 순천 서 순천 IC지나 가다가 돈을 받아서 제가 차를 돌려 가지고, 영업소 소장한테 따져서 돈 돌려 받았습니다. 어떤 돈은 돌려받는 돈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르고 돈만 내시지요? 하루에 수만 대가 지나가는데 천원이든 만원이든, 통행세는 또박또박 내면서 인사까지 하고 수고하십시오! 그러면서 가면서,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한테 돈도 안 내고 나왔습니까? 근데도 부모한테 대들고 그냥 부모한테 인상을 그리고 그래요? 그러시면 안 되는 겁니다. 은혜라는 것은 값없이 주고 값없이 받을 때, 값이 없다 공짜라는 말을 은혜라고 그럽니다. 말씀 은혜의 말씀 무엇이 공짜였는가? 깨닫게 하는데 공짜였습니다.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 잘 들어 보는 것이 좋겠구나! 이런 마음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이게 바로 은혜의 말씀입니다. 깨달을 때마다 돈을 받았더라면 돈 없어 성경 읽겠습니까? 학원은 가면 10만 원씩 내지요? 두세 과목 합하면 20만원 30만원도 내고 가고 그럴 걸요? 무선에 두세 시간 학원 다니면 얼마 받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10만 원 이하는 아닐 겁니다. 아마.
하나를 배우고 하나를 깨달으면 하나를 알아들으면 전부 다 거기에 값이 있습니다. 병원에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가지고 몸이 이렇습니다. 저렇습니다. 이 약 드십시오!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 오고 갈 때 전부 다 보험공단에서 돈이 현금으로 떨어집니다. 공짜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은 값이 없습니다. 값없는 말씀이라. 그럴 때 뭐라고 한다고요? 은혜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값없이? 값없이 어떻게? 내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신 은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받아졌으면 아 그렇겠다! 그래야 되겠다! 이렇게 느껴졌으면, 이걸 만약에 값으로 따진다면 이거는 100만원이 아니고 1000만원이 아니라, 우리 몸을 팔아서라도 이거는 못 갚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말씀은 비싸기를 어느 정도냐? 말씀 한 마디가 없는 가운데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현대자동차 차 한대 사려면, 일반적으로 한 2,000만원은 줘야 차 한 대 사지 않습니까? 2,000만원은 줘야 차 한대를 사는데 현대자동차 공장 통째로 사려면 얼마쯤 할까? 그 현대자동차가 있는 울산시를 사려면 얼마쯤 될까? 대한민국을 다 사 들이려면 돈으로 말하면 얼마쯤 될까? 지구가 수박만 하다면 대한민국은 손톱만큼 붙어 있습니다. 지구 하나 전부를 돈으로 따진다면 얼마쯤 될까? 말씀이 없는 가운데 만든 것이 지구입니다. 지구 다 팔아도 말씀 한 마디보다는 비싸지를 않습니다.
태양계가 우리 예배당만 하다면 지구는 강단에 점 한 개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 태양계가 이 강단에 점 하나라면, 은하계라는 것은 이 강단 보다 더 큽니다. 이 예배당 보다 더 넓다 그럽니다. 끝도 없다는 한량없는 그 큰 우주를 말씀이 한 마디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우주보다 말씀 하나가 더 비싼 겁니다. 여기도 이전에 다 절 다녀 보신 분들 많지요? 어느 절에는 어느 부처가 용하더라. 어느 절에는 어느 석가가 병 낫게 한다더라. 다 있습니다. 그 돌부처 누가 만들었습니까? 중이 만들었습니다. 돌부처를 만든 중이 효험이 더 세야 되겠습니까? 중이 만들어 놓은 돌이 복을 더 많이 줘야 되겠습니까?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 중에 비싼 거는 1억도 합니다. 근데 1억짜리 그림을 그리는 화가하고 1억짜리 그림하고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비싸겠습니까? 그거 알잖습니까? 우주를 없는 가운데서 만든 분이 하나님,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 때 말씀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말씀이 만들어 놓은 우주, 말씀이 만들어 놓은 지구, 말씀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살다 보니까 자꾸 잊어버리는데 뭘 잊어버리느냐? 사람이 말씀보다 위에인 줄 압니다.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으니까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성경을 읽고 있으니까, 말씀 위에 인간인 줄 아는데 인간 위에 말씀입니다. 인간보다 지구보다 우주보다 만물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더 무겁다 더 비싸다. 그래서 이 말씀은 돈을 주고는 살 수 없고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게 값이 싸기 때문에 돈 없이 값없이 준 것이 아닙니다.
학원은 한 과목에 10만원 세 과목에 30만원을 받고 가르치는 것은, 그 30만원을 받으면 값이 되기 때문에 값을 부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값이 없는 이유가 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거는 너무 비싸서 돈 주고도 못 사는 겁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한테 몸값을 주고 나오려 한다면, 한 명도 세상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비싸서 공짜로 나오는 겁니다. 그 태어난 부모한테는 그냥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는 것이지, 밥 그릇 놓고 앉아서 대들고 용돈 가지고 눈에 힘을 놓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뭐 수십 년 이 말하니까 이 말 듣기 싫은 아이들은, 교회 아예 안 나오겠지만 어떡합니까? 말을 듣던 안 듣던 말은 바른 말을 해야지. 부모한테 감사합니다! 돈으로 치려면 돈으로 헤아리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만들고 우주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기 때문에, 너무 비싸기 때문에 값없이 주셨습니다. 값없이 받은 말씀이 우리 안에 와서 하는 일이 뭐냐? 깨닫게 해 주시는데, 내 마음에 말씀이 깨닫게 해주는 순간 깨닫게 되면 내 마음이 새롭게 되어 집니다. 깨닫게 해 주셨고 새롭게 하신 것이 말씀입니다. 이거는 돈으로 헤아리지를 못 합니다.
말씀이 우주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으니 그래서 말씀은 너무 비싼 거고,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오셔서 깨닫게 해주신다면, 가르쳐 주셨다는 말인데 말씀이 내 마음을 열어 깨닫게 했다면, 이 깨닫게 된 것은 값으로 칠 수가 없습니다. 어디 가면 금광이 묻혀 있는지 알기만 아니면 돈 벼락 아닙니까? 어느 주식을 사면 돈 버는지 알기만 알면 이거는 뭐, 놀고 먹고 재벌 되지 않습니까? 그걸 가르쳐 줬다면 그걸 돈으로 헤아리겠습니까? 말씀이 깨닫게 해 준 것. 깨닫고 나면 그다음 우리의 마음은 새롭게 됩니다. 이 마음이 새롭게 돼 가지고 신앙생활 잘 하면 그게 뭐 그리 좋을 거냐? 너무 좋아서 그거는 다 표현을 못 합니다. 일단 서론의 말씀에 사도 바울이 떠나면서, 나는 떠나지만은 내가 가르쳐 놓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께 너희를 부탁한다. 그러면서 그 말씀을 이름을 붙이기를 은혜에 말씀이다. 왜 하필 이름을 은혜의 말씀이라고 했을까? 값이 없으니, 새롭게 만드니,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만드니, 값없는 말씀이 내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니 그 정도면 은혜의 말씀이 되겠구나! 그런 은혜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 사” 능히 든든히 세우 사, 능히 든든히 세우 사 이 말을 능력의 말씀이라고 그럽니다. 능력의 말씀. 말씀은 종이호랑이처럼 그려 놓은 거 아닙니다. 종이호랑이 100마리 있어 봐야 휴지로 쓰면 됩니다. 호랑이가 종이호랑이가 아니고 뛰어 돌아다니는 호랑이면 큰일 납니다. 무시무시합니다.
모든 말은 말일 뿐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능력의 말씀입니다.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능력인가? 전능의 능력을 가진 것이 말씀입니다. 전능의 능력. 어느 정도 힘이 있는가? 어느 정도 전능인가? 창조의 말씀입니다.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만든 것도 말씀이고, 만들어 놓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도 말씀이 지금 끄집어 내니까 정확하게 6천년 돌아가고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 처음 만든 것도 창조의 능력이고, 오늘 아침 죽지 않고 건강하게 이렇게 또 하루를 사는, 우리 한사람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전부 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어제 서산에 진태양을 오늘도 동쪽에 끄집어 올리는 창조의 능력, 있는 것을 있도록 존재케 하는 능력도 창조의 능력입니다. 없는 것을 처음 만든 것을 보통 창조라 그럽니다. 만들어 놓은 것이 사라지지 않고 변동 없이 그대로 유지 되게 하는 것도 창조의 능력입니다. 자동차 공장에 쇠붙이를 가지고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가나, 돈 주고 차를 운전하는 제가 차를 타고 가나, 차 기술자나 저나 똑같이 운전하면 똑같아 보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가 날 때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고장이 나서 덜컥 서 버리면, 우리 같은 사람은 서면 그다음 몰고 가지를 못합니다. 근데 차를 만든 사람은 차를 타고 갈 때는 우리 하고 똑같은데, 차가 주저앉고 움직이지 않으면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고쳐서 또 갈 수가 있습니다. 이게 창조의 능력의 특별한 점입니다. 없는 가운데 처음 만들었고, 만들어 놓은 것이 늘 새롭게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그렇다고 자꾸 알아야 되겠는가? 알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떠나며 바울이 부탁한 말씀.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의 이름이 첫 번째는 은혜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말씀께 부탁을 했는데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세우고 모든 해결을 하겠다. 말씀이란 능력의 말씀이구나! 말씀은 힘이 있는 말씀이구나! 종이호랑이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가? 못 하는 것이 없다 할 때 전능이라고 합니다. 말씀은 전능의 말씀입니다. 전능의 능력으로 무엇을 했던가? 첫 번째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었으니 말씀의 능력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창조. 창조 해 놓은 걸 보호 하는 능력이, 보호의 능력이 보호의 능력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입니다. 왜 말씀을 이렇게 연구를 해야 되느냐?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땅 고향을 향해 가다가 홍해바다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냇가라면 발 걷고 지나가겠는데, 아이들은 없고 지나 가겠는데, 이거는 바다고 200여만 명의 남녀노소가 준비 없이 맨손으로 바닷가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나안으로 가자 그럽니다. 바다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이럴 때에 바다가 가로막는데 가자는 것이 모세의 말이면 그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의 말 책이라면 그건 허무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가자 그러면, 아 이 말씀이 이 바다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지. 없는 가운데서 홍해바다를 만드신 말씀이 가자 그러면, 따라갈 때 바다를 없애 버릴 수도 있고 바다를 치워 버릴 수도 있고, 바다 속에 길을 만들어 놓을 수도 있고 아예 바다 속으로 걸어갔는데, 물고기처럼 빠져죽지 않고 숨 쉬고 걸어가게도 할 수가 있구나! 말씀은 전능이니까, 말씀은 이 홍해바다를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홍해바다를 건너가자 할 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의 능력이 있으니까. 이걸 값없이 주셨으니 은혜의 말씀이요.
말씀이 만든 홍해바다니, 그리고 홍해바다를 가로질러 구원의 땅 가나안으로 가자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자하니, 따라 가다보면 해결이 나겠지, 이게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시 홍해바다를 보니까 없는 가운데서 홍해바다를 만드신 말씀이, 우리가 순종함으로 걸어가면, 바다를 치워 버리든지 잠깐 길을 내 주시든지 아니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숨을 쉬게 해 주시든지, 말씀은 전능인데 없는 가운데서 만든 창조의 능력이고, 보호의 능력이 있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값이 없고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바꿔버리니 모든 것은 다 되어 지겠구나!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말씀이며 능력의 말씀인 이유입니다. 서론이 길고 성경의 말씀으로 설명을 하니 너무 좀 겉돌고 그런 거 같지요? 그래도 성경의 말씀을 진리라. 어떤 현실을 만났든지 다 해당이 됩니다. 내 힘으로 넘어 갈 수 없는 취업의 문이 앞을 가로막을 때, 요즘 세상이 뭐 잘 돌아가서 그런지 엉뚱하게 돌아가서 그런지, 남자랑 결혼을 못 하는 이런 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내 입장을 볼 때는 도무지 결혼에 벽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는 뚫고 들어가지는 못 하겠다. 이것도 오늘의 홍해바다입니다. 요즘 여자 분들은 결혼 안 해 주는 게 여자의 뭐 그 뭐 쟁끼라면서요? 마음껏 그리 하십시오. 여자가 결혼을 해? 결혼 안 하는 게 여자에 권리지. 어느 놈의 인간이 가르쳐 놨는지 근데 뭐 천하가 다 그렇다니까 놔두고, 남자는 결혼 할 여자가 없으니까, 마음에 드는 것들은 뭐 너무 높아서 나를 안쳐다 보니까, 남자는 하고 싶은데 해 줄 여자가 없으니까, 이게 이제 홍해의 바다처럼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장벽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향 가나안을 가는데 홍해 바다가 떡 가로막고 있는데, 맨손으로는 지나가다 다 죽겠습니다. 이게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홍해 바다는 장벽이 없고, 오늘 남자 분들은 결혼을 하고 싶으면 결혼해줄 여자가 없으니, 결혼 못하는 이 벽도 이것도 보통 벽은 아닙니다. 홍해바다 정도 될 겁니다. 뭐 여자 장벽은 없을 줄 압니까? 옛날에는 남자가 골치가 아파서 남자 때문에 여자가 애를 먹어, 남자가 여자의 장벽이었다면 지금은 뭐 남자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니, 남자의 장벽은 없는데 아 이게 인물이 고와야 되는데, 나 같은, 나정도 되는 인물은 흔하니 돋보여야 되니까 이것도 또 이제 골치가 아플 겁니다. 그 어떤 고민이든지 하나님께서는 돌은 돌에게 새는 새에게, 사자는 사자에게 부자는 부자에게 거지는 거지에게, 하나님께서 알맞은 짐을 하나씩 다 얹어 놓았습니다. 고민 좀 하라고. 인간이 죄 지으면 만물이 고통을 하고 모든 인간은 다 짐을 하나씩 지고 가게 되어 있습니다. 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짐을 지느냐 하는 것만 문제입니다.
세끼 밥을 잘 먹는 세상이 되어 이제는 밥걱정이 없다. 천국일 줄 알았는데 세끼 밥을 잘 먹는 세상이 되고 보니까 뭘 먹어야 행복할까? 이것 때문에 또 짐입니다. 나는 돈이 많아 나 먹고 싶은 거는 매일 외식하면서 먹을 수 있다 그러고 나니까, 외식에서 먹은 몸이 심장에 뇌에 성인병에 전부 다 좋지 않고 암이 된다. 그래 가지고 또 이제 안 먹기를 난리 하고 또 그러고 앉았습니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하든지 하나님은 짐을 하나씩 얹어 놓습니다. 꾀 많은 사람은 이왕 짐을 질 바에는 남자는 땀 흘리는 짐을 지고, 여자는 그냥 결혼해서 아이 낳는 짐 지는 것이 그래도 짐 중에서는 제일 낫지 않을까? 요렇게 눈치를 챘다면 지혜로운 사람일 거고, 그런 짐 필요 없다 그러면 맘대로 알아서 하십시오! 만은 하나님이 사람사람 따라다니며, 네가 이 짐을 벗어나? 그러면 더 무거운 짐 져봐라. 더 무거운 짐을 쏙 컴퓨터로 빠져나가면 컴퓨터로 해결 못하는 더 큰 짐 또 줍니다. 의학이 발달해서 웬만한 암을 다 처리하고 이제 암을 정복했다. 큰소리치니까 암 보다 더 센 거 한번 맛볼래? 하나님께서 암 보다 더 센 걸 집어넣습니다. 또 피해 보지요? 더 센 거옵니다. 뭐 그냥 대충 살고 말지. 하나님이 죄악의 세상에 죄지어서 사는 인간에게 땀 흘려 고생하면서, 하나님 앞에 좀 조심해 살라고 짐을 하나씩 맡겨 놨는데, 그 짐을 뿌리치고 그 짐을 피해 나가면, 더 센 짐 더 무서운 짐이 따라다닌다는 것만은 잊지를 마셔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종살이 하다가,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순종하고 나왔는데, 하나님 말씀이 가자해서 따라 나오다 보니까 홍해바다가 가로 막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자해서 따라 나왔는데 웬 바다가 앞을 가로막고 있을까? 그럴 때 말씀은 생명이니까 이것도 해결해 주시겠지. 말씀이 홍해바다를 없는 가운데서 만들었으니 이 정도 받아야 통과를 시켜 주시겠지. 통과를 할 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 보호를 해 주시겠지. 근데 이 말씀이 값없는 말씀이요. 이 말씀이 내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시고 나를 새롭게 했으니, 말씀 때문에 든든하게 걸어가면 되겠구나! 그러면 홍해 바다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걱정할 것 없고 염려할 것 없고, 홍해 바다가 가로 막는데도 이걸 통과하게 한다. 신기하겠구나! 큰 구경 하겠구나!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겠구나! 궁금하니 팔 걷어 부치고 잘 들어보자. 그러면 홍해바다라는 재앙과 홍해 바다라는 건너갈 수 없는 불행이라는 것이, 은혜의 말씀이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복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이게 구약의 말씀이고 오늘로 말을 하면, 암 진단이 떨어져 6개월 이상 못 삽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이거 이 좋은 세상에 6개월 살다 가려니 이거 참 억울해 죽겠구나! 그리고 이거는 해결이 없다는데 어떡하지? 이것도 홍해바다와 같습니다. 이럴 때에 사도 바울이 던져놓은 말씀 그 말씀이 은혜의 말씀 능력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돈 없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 나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요 나를 바꿔 줄 수 있는 말씀이니 은혜의 말씀인데, 이 말씀으로 내 앞을 가로막는 이 죽음이 뭔지 좀 들여다보자. 생명도 말씀이 만들었지만은 죽음도 말씀이 만들었습니다. 세상도 말씀이 만들었지만은 천국도 말씀이 만들었습니다. 내게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도 말씀이 만들어 주셨지마는, 내가 딱 보기 싫어 그냥 꼴 보기 싫어서 피하고 싶은 원수도 말씀이 만들어 놨습니다. 건강도 말씀이 만들어 주셨고 암도 말씀이 만들어 놨습니다. 대낮도 말씀이 만들었고 흑암의 밤도 하나님의 말씀이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면 낮은 좋고 밤은 싫다. 건강은 좋고 질병은 싫다. 사랑하는 사람은 좋고 원수는 싫다 그럴 것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것은 맞습니다마는, 좋지 않은 것도 말씀이 만들어 놨으니 말씀이 만들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사탕만 주면 친 엄마고 회초리를 들면 전부 계모입니까? 옛날에는 그렇게 무식해 가지고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부자면 자자손손 먹을 게 있으니 너 공부할 거 없다. 네 멋대로 살아라. 이래가지고 부자들이 아이들을 갔다가 사탕만 주고 떡만 주고, 노름할 돈만 줘 놓으니까 부자 3대 못 가서 망한다 말이 그렇게 들렸습니다.
요즘 부자는 3대 가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더 부자가 되지요? 요즘 부자는 옛날 부자는 돈만 많았지, 아이들에게 돈을 관리하고 벌어가는 인격과 인간의 못 만들어서 그렇다. 지금 부자는 많은 돈을 가지고 이 아이가 아버지 보다 더 부자가 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연구를 하고 노력을 해 가지고, 칭찬 일곱을 하고 여덟을 하지만은 혼내는 것도 두 셋이 들어가야 사람이 되더라. 이런 것까지 알아 가지고 부잣집 일수록 요즘은 더 아이들을 야단을 칩니다. 신풍 시골에 살며 이런 걸 대개 잘 모르시지요? 미국의 망할 중산층 밑에 애들은 애들 눈도 찔끔 안합니다. 총 들까봐. 미국의 중산층이 아니라 미국의 상류층은 지금도 혁대 풀어서 아이들 깔겨 버립니다. 뭐 어디 자식이 이런 말을 해? 어중간하게 못 나서 희망 없는 집은 아이들을 사랑을 하고 그냥, 비벼 주고 그냥 화장에 뭐든지 다 줘야 그게 좋은 거지. 이래 가지고 그냥 초등학교 애들이 몸무게가 80킬로 100킬로 나가 가지고 그냥, 다 찌그러 앉도록 사랑을 베풉니다. 이게 아동학대지 이게 아동 사랑입니까?
돈이 많을수록 저처럼 살 딱 빼 가지고 이렇게 지성인들은 체중이 없습니다. 옛날 같으면 먹어 댈수록 지성인이고 먹어 댈수록 고관대작이었는데, 아 이거 먹는 거 조절 안하면 큰일 나겠구나! 이를 깨물고도 몸무게를 줄입니다. 운동을 힘들어도 해냅니다. 하기 싫은 이 공부 못 하면 네 회사 지금 망한다 해서, 재벌 아이들은 공부를 두 배 세배 10배 더 시켜버립니다. 매까지 듭니다. 뭣도 아니고 망할 어중간한 것들이 뭔 아이가 울면 불행해 진다고, 마구 이 아이 좋도록 그냥 온 집이 벌벌 떨면서 이리.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그런 거. 내 마음이 아픕니다. 나한테 좋은 말만 하십시오. 좋은 말만 하면 사탕만 먹이고 그거는 초콜릿만 먹이고 꿀만 먹이는데 그거 애 건강이 견뎌 나겠습니까? 더울 때도 있고 추율 때도 있는 거고, 먹을 때도 있고 먹은 걸 좀 절제 할 때도 있고, 놀 때 쉴 때도 있지만은 공부 이를 악물고 해야 될 때도 있는 거지. 써야 될 돈 쓸 때도 있는 것이고 쓰고 싶은데 아낄 때도 있는 것이지. 지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놓으면 나무는 너도밤나무라고, 마구 가지가 번성해 놓으면 멀리서 보면 저 밤나무는, 알밤을 한 열 가마는 따겠구나 싶었는데, 가지가 너무 뻗어 놓으면 알밤 한 개도 안 열립니다. 가지를 좀 쳐야 열매가 좀 맺어지지. 가지를 잘 쳐야 사과 한 개 만 원이니 뭔 사과 하나 요즘 10만 원짜리도 있답니다. 그 가지치기 굉장히 잘 한 겁니다. 나무가 뻗고 싶은 대로 다 뻗고 입에서 나오는 말 다 해버리고, 놀러 가고 싶은 대로 다 놀러 가고 듣기 싫은 거 다 잘라 버리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그거 죽도 밥도 안 되고 완전히 폐인 됩니다. 이래 놓고는 세상 욕을 합니다. 네가 잘 못 살았으니 네가 네 욕을 해야 되지 왜 남을 욕을 해?
세상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눈앞에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느냐? 그 홍해 바다가 들어가면 죽는 사망의 길인 줄 보이지? 다시 생각해 봐라. 홍해바다를 없는 가운데 만든 것이 말씀이다. 그 말씀이 가자 할 때는 길이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살아가는 법이 있겠지. 없는 가운데 홍해바다를 만든 말씀이 홍해바다를 지나가자 그러면, 날라 가든지 걸어가든지 잠수를 해도 안 죽던지 수가 있겠지, 순종 하거라. 말씀은 허깨비가 아니다. 종이호랑이가 아니다. 말씀은 전능의 말씀이다. 없는 가운데 만든 창조의 말씀이다. 창조한 이 말씀이 홍해바다를 창조만 하고 손을 뗀 것이 아니라, 이 홍해바다를 지나가는 너희들을 보호하는 보호의 능력으로도 함께 할 거다. 뭔 결혼의 벽이니 뭐 건강의 벽이니 뭐 남한은 북한에 때문에 안보의 벽이니, 기업은 IMF때 자본의 벽이니 코로나에 뭐 영세 장사들 장사 못 해서 다 문을 닫니, 이런 홍해바다, 저런 장벽, 이런 위험, 이렇게 꼬이고 헷갈리는 것이 있을 때에 믿는 사람은, 나를 가로막는 저 취업의 문도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든 것이겠지, 나는 타고 나기는 건강한데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나, 이 나쁜 머리도 말씀이 필요해서 그렇게 만들었겠지. 나는 머리는 돌아가는데 건강이 약한데 약한 건강도 말씀이 만들어 주셨겠지. 말씀이 만들어주셨으면 이 약한 건강 때문에 그 속에 더 나은 것도 준비를 하고 계시겠지.
바울이 3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그렇게 가르쳤고 떠나면서, 가르칠 사람으로서는 눈물로 밤낮 없이 가르쳤고 가르치는 분으로서는 떠나면서, 바울은 잊어라 잊어도 된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다. 바울이 없을 때 너희들이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없는 가운데서 만든 말씀이 그 어려움도 만들어 주셨고, 그 어려움 속에 말씀이 인도를 할 때 그 인도를 따라 가다보면, 말씀이 책임지고 마지막에, 아 말씀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좋구나! 이래서 말씀이 좋은 말씀이고 은혜의 말씀이고 능력의 말씀이구나!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그렇게 적었고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는 것은, 2022년 2월 27일 오늘의 아이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 오늘의 학생 청년들의 앞에 있는 자기의 장벽, 오늘 오전 예배드리는 우리의 앞을 막는 모든 종류의 장벽, 장벽. 어떤 어려움 환란 골치 아픈 일이라도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말씀이 만들지 않은 것이 있을까? 말씀이 만들었는데 말씀이 만들었다면 말씀은 전능이니, 말씀은 나를 인도할 때 나를 보호까지 하시겠지. 내 생각 내 주관대로 살면서 말씀 보고 해결을 해 주시라가 아니라, 말씀이 나를 어디로 인도를 하시나? 그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말씀으로 좀 자기 앞을 살펴보면, 철벽이 가로막아도 말씀은 철벽 속에 길을 내고 나의 구원의 길, 나의 은혜의 길, 나의 복된 길로 인도를 하십니다.
최근에 장례식이 많아서 장례식마다 갈 때마다, 목사가 장례식에 가면 뭐라고 그럴까요? 아이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슬픕니까? 같이 죽으십시오. 그러겠습니까? 가신 분은 가셨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라고 이렇게 설교를 하겠지요? 그럴 때마다 듣는 교인이, 목사 네 가족 죽어봐라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겠다고 그럴 거고, 미운 인간이 죽으면 겉으로는 울어도 속으로는 아이 잘 갔다! 그럴 거고. 뭐 인간이 똑같지, 사람은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이란 살아생전 세상에 문을 열고 영생의 죽지 않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문이라 그 문을 열면 안 믿는 사람은 지옥이라 죽으면 큰일 나는데, 믿는 사람의 죽음은 그 문을 여는 순간, 이 땅위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영생이 열리는 거다. 이게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말씀 때문에 상가에 가가지고, 참 아직까지 그 말씀은 드려 본 적이 없는데, 아 이 집에도 돌아가셨으니 축하합니다! 좋은 천국 가셨으니 우리 박수 칩시다. 이래야 이게 정상적인데 그 말했다가는 상가에서 맞아 죽지 그냥 나오겠습니까? 아니 이놈의 교회는 두 번 다시 가나봐라. 다 그렇게 마음이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남한테는 그리 말을 해 놓고 목사 너 죽으면 자신 있느냐? 남한테는 믿는 사람의 죽음은 천국을 향하여 문을 여는 겁니다. 좋은 겁니다. 넌 마음속에 그 마음으로 남 집에는 가가지고 설교를 해놓고, 너 죽을 때 너의 죽음은 너에게 복이라고 자신 있느냐? 인간이 똑같지 뭐 인간이 다르겠습니까?
인간으로 누구든지 죽음이 슬픈 거고 두려운 거고 다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두고, 그 말씀에게 직접 자꾸 물어봐보면, 인간 말 말고 인간 책 말 말고, 내가들은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붙들고, 그 말씀에게 귀를 기울여 보면, 아 지금까지는 죽음은 싫은 거고 불행이고 두려운 건데, 아 이게 값진 보배였구나! 참 보배로운 선물이었구나! 이게 말씀이 새롭게 해주고 말씀이 깨닫게 해 주고 말씀이 우리 마음을 바꿔서, 과거에 두렵던 죽음이 이제는 기다려지고 언제라도 주시면 반갑게 그 문을 열고 하나님 앞에 서겠습니다. 우리 그렇게까지 되도록 제 설득 제 설교는 치워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과 사망 믿는 사람의 죽음 뭐라고 가르쳤느냐? 예를 들어 하나를 마음속에 두고 그리고 각자 자기의 숙제를 비교해보면, 뭐 죽음보다 더 큰 숙제야 있겠습니까? 죽음조차도 반갑도록 내 마음이 깨달아지고 새롭게 되어지는 능력의 말씀을 받았는데, 죽음의 10분의1 죽음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문제를 가지고, 그 앞에 울고 웃고 마음이 흔들어져 버리면 안 믿는 사람과 같아집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잘 모시고 사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좋은 게 있어도 이게 말씀으로 정말 좋은가? 살펴보셔야 됩니다. 쉽게 좋아하면 큰일 납니다. 어떤 슬픈 거 두려운 것도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작은 걸 자꾸 이렇게 반복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죽음이 내 손을 턱 잡아도, 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반갑게 출발 하는군요!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자기가 되었는지 돌아보십시다.
(기도)
하나님 앞에 설날이 가까워 그때를 기다리는 연세 많은 우리 모든 교인들, 어느 날 죽음이 닥칠 때 천국을 향한 문을 잡고, 감사하고 기다린 마음으로 문을 열 수가 있을는지, 안 믿는 사람처럼 두려워 떨며 슬픔으로 버틸는지, 또 여기 살 날이 많아 보이는 청년들 학생들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으나, 오늘 세상에 좋아 보이는 속에 별별 장벽과 어려움이, 순식간에 자기를 찾아와 앞을 가로막을 때, 연로한 분들은 사망을 젊은이들은 자기 앞에 가로 막히는 장벽을 볼 때마다, 은혜의 말씀이 없는 가운데 만든 현실세상 이런 장벽 이런 불행이니, 이 말씀이 이걸 만들고 나에게 어떤 인도를 원하시는지를 깨달아, 인간이 불행 앞에 불행해질 때 은혜의 말씀 때문에 능력의 말씀 따라, 찬송하며 감사하며 세상을 초월하고 자기의 슬픔과 불행을 초월하여 사는, 실제 말씀이 생활 말씀으로 바뀐 자기가 되도록 늘 마음속에 심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주간을 돌아보며 비교해보며 자기를 자꾸 세워나가는 복된 우리 교인들 되도록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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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2.27주전 행20:22 말씀으로 담대할 것 예장총공 신풍교회
■ 말씀의 4대 능력
행20:2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 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1. 은혜의 말씀
① (값)없이 주셨고
② (깨닫)게 하셨고
③ (새롭)게 하셨고
2. 능력의 말씀
① (전능)의 능력
② (창조)의 능력
③ (보호)의 능력
3. 세우는 말씀
① (하나)님 앞에 롬2:21, 다른 사람만 가르쳤는가?
② 온전한 (사람)과 요일3:21, 우리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는가?
③ 온전한 (행위)로 빌3: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했는데!
롬2:24,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4. 기업의 말씀
① 영원한 나의 (위치)
② 영원한 나의 (사명)
③ 영원한 나의 (영생)
롬2:21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요일3:21, O 마음이 O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G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 말씀의 성질
1. 생명성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② 말씀에는 하나님 (내재)
③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
2. 활동성
히1:2,3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① 말씀은 만물을 (창조) 히11:3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② 말씀은 만물을 (운영) 지으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③ 말씀은 죄악을 (정결)
3. 심판성
요12:48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① 말씀이 최후에 (심판)
② 오늘의 (행동)이 심판
③ 말씀이 모든 것의 (기준)
4. 적대성
요8:31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 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7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① 말씀을 모시면 참 (제자)가 되고
②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③ 말씀을 거부하면 (주님)과 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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