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2.20 빌3:7 목적 위한 절제는 상식, 넘치는 모든 것을 온전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간추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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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2.20 빌3:7 목적 위한 절제는 상식, 넘치는 모든 것을 온전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간추릴 것

관리1 0 213 2022.02.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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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0 주전

(* 설교에 참고할 교안은 제일 아래에 있습니다)   
 
제목 : 목적 위한 절제는 상식, 넘치는 모든 것을 온전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간추릴 것
 
사회: 안 응규
찬송 : 142장(저 좋은 낙원 이르니), 171장 (세월이 여류 하는데) / 137장 (내 평생소원 이것 뿐)
 
본문 : 빌립보서 3장 7절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 지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저희들인데, 영원한 영광의 위치까지 우리를 세워 주시 사 사활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 영광을 위하여 오늘도 부단히 충성할 수 있는 소망의 닻으로 열어 놓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귀한 주일을 허락하여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함을 드립니다. 한번 주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지혜로운 저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올해 성찬에 이어 귀한 말씀으로 복되게 출발시켜 주시는 주님, 우리의 단점인 길가와 같은 우리의 심령 돌밭과 같은 우리의 심령, 가시떨기와 같은 우리의 심령을 일깨워 주시 사, 열매 없이 자라가는 우리의 한탄함을 보시고, 올해 주신 새해를 복되게 출발하며 많은 열매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마음에 밭을 개간하여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긍휼의 은혜를 구합니다. 은혜를 받아 저희들도 자라가야 되겠고 무엇보다 금생뿐만 아니라, 영원히 있을 우리의 모습이 오늘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알 때에, 참으로 주님 앞에 충성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이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주님, 오늘도 오전 말씀 잘 듣게 해 주시고 잘 깨닫게 해 주시 사, 이 말씀으로 복되게 걸어 나아가는 귀한 저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세우신 주의 종을 통하여 옳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은혜를,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이 시간 졸지 않게 하시고 여러 형편 여러 모양에 있는 우리 교인들, 어디에 있든지 모두가 다 함께 주시는 말씀으로 잘 듣고 잘 깨닫고, 이 말씀으로 실천 실행의 사람으로 복된 열매를 많이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친히 역사하여 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하여 주시며, 온종일 주일을 거룩하게 복된 주일이 되어 지도록 끝까지 동행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빌립보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붙들려갔다가, 그날 밤 지진이 나고 묶였던 차꼬가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며, 바울이 교도소 밖으로 천사에 인도를 따라 나오게 되고, 그리고 간 수 장이 그 모든 것을 보고, 그 다음 교도소 안에서 감옥 안에서 차고가 풀어지고까지 입니다. 그 모든 것을 보고 간수가 바울을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그 날 그 가족이 모두가 믿고 그리고 출발한 교회가 빌립보 교회입니다. 빌립보라는 곳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 가는 첫 지역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는 이스라엘에서 시작한 교회가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는 첫 교회 첫 지역이 빌립보입니다. 유럽으로 넘어간 교회가 영국 미국을 통해 우리 한국까지 오는데, 약 1900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이 전한 말씀입니다.
 
7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안 믿을 때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것 건강. 오래 사는 장수, 요즘은 다 오래 사니까 장수 대신에 건강하게, 이렇게 줄여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예측 못 하게 모두들 일찍 가는 분들이 많아 오래 살았으면, 장수를 먼저 꼽았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다 오래 살아 고민을 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냥 건강,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것, 또 부자로 사는 넉넉한 경제, 이거 좋아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겁니다. 건강하고 경제 넉넉하고 그리고 좋은 가정 뒤따라가면, 뭐 이만하면 중요한 것은 다 갖추었고 사람에 따라 그 외에 다른 거 이거 저거 챙기는 것은 뭐 한도 없이 많을 겁니다. 무엇이든지간에 안 믿을 때 세상 사람이 좋아하던 것, 우리도 안 믿을 때 세상사람 좋아하던 것. 그다음 두 번째는 믿은 이후라도 믿은 이후에 교인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은 이후라도 세상 살기에 좋아 보이는 것, 교회는 다니고 신앙생활은 해도 세상 살아가는데 이게 필요하겠다! 저게 필요하겠다! 그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믿기 전에 안 믿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전부와, 믿은 이후에라도 세상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따져보면 그 결국은 다 같습니다.
 
건강하게 살고 싶고 넉넉하게 살고 싶고 좋은 가정 좋은 가족 살고 싶고, 이것은 기본일 것이고 그 이런 것들이 다 모든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바울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좋은 걸 좋아하지 좋은 걸 싫어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학생으로 말하면 공부를 안 했을지라도 성적이 잘 나오면 좋아하는 거고, 공부를 하는 이유도 성적 잘 받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할 겁니다. 대부분은. 공부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면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알 거는 좀 알아야 되겠다. 알고 살아야지 모르고 살아서는 너무 그렇겠다. 제대로 좀 알아 봤으면 좋겠다. 이게 학생으로 말하면 더 중요한 건데, 그 예전에는 알 걸 알아야 되겠다! 이런 학생이 좀 많았고 가면 갈수록 성적만 좋으면 되지 다 이렇게 바뀌어 있는 거 같습니다. 학생이면 성적 좋은 거 당연히 좋고 시험 쳤으면 합격증 좋은 것이고, 직장 잡았으면 회사야 망하든지 말든지 돈 많이 주면 좋겠다! 다 그런 겁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 건강 가정 넉넉한 경제 뭐 이런저런 무엇이든지 안 믿는 사람이 좋아하고, 믿은 사람도 믿고 나서도 세상 살기에 이건 필요하겠다 싶은, 그런 모든 유익한 것을 바울은 생각을 바꿔 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롭다. 손해다. 나쁜 거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버렸습니다.
 
좋은 거면 좋은 거지 왜 좋은 게 나쁘게 바뀌어 버렸을까? 나쁘게 바뀌어 버렸을까? 공부가 목적이면 정말로 공부를 마음먹고 해보려면, 학교 없어 학교 못 갑니까? 선생님 없어 못 배웁니까? 등록금 없어 학교 못 가는 사람 있습니까? 컴퓨터에 놀기 좋지, 노는 친구 많지, 이것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자꾸 마음이 뺏깁니다. 멋모르고 친구 따라 놀고 좋은 걸 가지고 놀고 놀던 학생이, 그 뭔가 좀 배워 봐야 되겠다! 마음을 딱 먹고 나면 가장 친한 친구가 놀러 가자는 통에 놀자는 바람에 놀 것이 많아서, 아이 아이들이면 놀 것이야 좋은 건데 유익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공부에 마음을 딱 먹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노는 친구 놀 거리가 전부 다 원수가 됩니다. 이게 전부가 다 원수가 됩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듯합니다. 한 15년 20년 전에 그 서울 강남에 우리 교회 목사님이 그때 10대 중 고등학생들 지켜보면서 그런 말씀합니다. 남자애들은 전부 컴퓨터에 빠져서 컴퓨터 게임 하느라고 공부 끝, 여자애들은 전부 다 휴대폰 쳐다보느라고 끝. 그래서 남자애는 컴퓨터 게임 안하고 요즘 휴대폰 아닙니다. 남자애들은 컴퓨터 게임 안하고 여자애들은 휴대폰 들여다보지 않으면, 공부 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는 이렇게 좋은 세상이 없는 거 같다! 라고 그럽니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겠지요? 아이 휴대폰 같이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유리하고 유익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할머니들까지. 초등학교도 여기 신풍초등학교 아마 학생 한 명도 안 빠지고 휴대폰 다 나눠 줬을걸요? 공짜로? 유치원 아이들까지 휴대폰 하나씩 전부 공짜로 다 나눠줍니다. 얼마나 좋은 건데. 그 나쁜 겁니까? 저도 가지고 있는데. 학생이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는 친한 친구 놀 거리 재밌는 거 전부가 다 원수가 됩니다. 공부 때문에. 남자가 돈을 벌려고 마음을 먹으면 돈 가지고 돈 쓰고 돌아 댕기는 데가 자꾸 돈을 쓰자고 그러니, 놀음판 끊어야지 안 믿는 사람들 술집 가는 거 끊어야지, 친구 만나면 결국은 돈이 움직여야 되니까 끊어야지, 돈 벌려면 친구와 좋은 거는 다 끊어버려야 됩니다. 좋은 게 좋지 왜 좋은 게 나쁩니까? 돈 벌려고 목적을 삼았으면 돈 쓰는 거는 끊어야 되는 거고, 돈 버는데 지장 되는 거는 끊어야 되는 거고, 공부를 목적 한다면 공부에 필요 없는 것, 돈 벌려고 생각하면 돈 벌이에 필요 없는 것, 이게 목적과 방법의 차이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님 구주 예수님을 모를 때는, 뭐든지 세상에 좋은 것 남들이 좋아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똑같았습니다. 별로 다르지를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건강 좋은 것이고 시간 좋은 것이고 넉넉한 경제 있으면 좋은 것이고, 좋은 친구 주변에 많으면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 한도 없이 많은데, 학생이 공부 때문에 다 제쳐 둔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 좋은 걸 다 물리칠 수가 있다면,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과거에 좋던 것을 접어두고 물리칠 수가 있겠는가? 모든 유익한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롭다, 손해 본다, 나쁜 거다, 물려 차버렸다, 이게 7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위하여 학교도 공부도 그러면 돈 벌이도 다 해롭다 그렇게 말할 것인가? 믿는데 방해되는 것만, 믿는데 방해되는 것만. 돈 있고 차가 있으니까 멀리서도 이 추운 겨울에 모두들 불편 없이 예배당으로 오지 않습니까? 그 돈이 왜 나쁩니까? 이 시골까지도 여름에 에어컨이 마음껏 돌아가지, 이 추운 오늘 날 전기로 지금 히터 켜 놓으라고 연기도 안 나지, 돈 없어 돌아갈 일입니까? 따뜻하고 시원하니까 또 차로 모시고 오니까 신앙생활이 뭔고? 궁금한 분들이 와서 앉아 볼 수 있고, 그리고 오고 가시다가 믿을 마음이 생기면 얼마든지 열심히 믿을 기회가 생기는 거, 그 돈, 그 경제, 그 건강, 이런 오고 가는데 필요한 연락. 오늘도 오전 정도면 예배당에 못 오시는 먼 곳에서, 요즘은 군대 군인들까지도 방송으로 지금 함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몇 십 명이 아마 함께 예배를 드릴 건데 한 50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방송 이 방송 때문에 들어가는 돈 이거 없으면 예배를 못 볼 뿐인데 얼마나 귀한 게 돈 인데, 돈은 다 나쁘다 그 말이 아닙니다. 믿는데 방해되는 돈, 돈이 많으니 이 돈을 다 쓰느라고 언제 교회를 다닐 거냐? 이리되면 이 돈은 좀 문제가 생깁니다. 이 돈을 쓰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냐? 그러면 학생으로서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돈이 이렇게 많으니까 이 돈을 다 쓰느라고 아직까지 한 몇 년은 회사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 이러면 돈 버는 데는 문제가 생깁니다. 돈 벌기 위해서도 좋아하는 거 밀어버리고 접어두고 끊어 버리지 않느냐? 공부하기 위해서도 좋아하는 거 제쳐 놓지 않느냐? 예수 믿는데 뭔가 세상에 좋던 거 좋아하던 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거, 그거 밀쳐놓을 수 있고 그거 접어 버릴 수 있는 거지. 당연한 겁니다.
 
세상 다른 걸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위해서 좀 애쓰시라 그럴 때, 뭐 그렇게 갑갑하게 그렇게 빡빡하게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할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건강위해서 먹고 싶은 거 끊지 않습니까? 공부 위해서 끊는 거 끊는 거 아닙니까? 장사가 돈 벌기 위해서 보기 싫은 사람한테 싹싹하게 웃으며 몸을 굽히지 않습니까? 장사가 보기 싫은 사람 안 판다고 가라 그럽니까? 옆집으로? 얼마든지 자기 속에 미움도 꺾을 수 있고 미움도 참을 수 있고 하고 싶은 마음도 말도 눌러 버릴 수 있는 게 장사입니다. 공부입니다, 사업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신부 하나 구하려고 요즘은 남자들이 10년은 참으면서 뭐 그냥 오만 것 사다 들이고 정신도 없을 건데 다 좋아서 그렇습니까? 맞지 않는 게 있어도 신부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참고 돈도 쓰고 그러는 거지. 그렇다면 건강보다 공부보다 돈벌이 보다 신부보다 신앙이라는 것은 영생이라는 것은, 천국 구원이라는 것은 그거보다 더 고상하고 그거보다 더 높은 것이니, 당연히 뭔가 좋아하는 걸 좀 밀어 버릴 수 있고 접어 버릴 수가 있는 것이지, 이렇게 둘러말하면 알아듣기가 쉬울 수 있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은 성경이라 간단하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명한 사람입니다. 원래 잘난 사람입니다. 굉장히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맞지 않은 것은 다 밀쳐 버리고 접어 버렸다. 근데 그것이 옛날에는 그렇게 유익하여 그렇게 가지려고 했던 것인데,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그리스도에게 방해가 되면 다 제쳐 버리고 밀어버리고, 이건 해로운 거다 그렇게 마음먹게 되었다는 거 7절입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그렇게 친한 친구와 만나지 않게 되었다. 뭐 부모들이야 이 말씀 드리면 다 이해가 되겠죠? 우리 애가 공부하려고 정신 차리고부터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친구를 다 끊어버렸다 그러면, 부모들이 아 노는 친구들 데리고 공부하지 왜 그렇게 매정하게 끊었냐? 놀아 가면서 그다음 공부하는 거다. 그러는 부모 혹시 계시겠습니까? 머리가 타고난 머리가 너무 우수한 사람들은 그렇게 여유도 있습니다. 놀아가며 공부해라 그래도 1등 한다. 넉넉한 사람들은 그런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설교 듣는 우리 일반인들 같으면 우수하던 못 하던 간에 성공하고 돈 벌고 나면 친구는 무디기로 들어온다. 네가 놀아 주지 않았다고 멀어진 친구, 네가 돈 벌고 네가 성공하고 네가 잘 되고 나면 막 옛날에 너하고 친했다고 밀고 들어온다. 학생이면 공부할 때 공부 하는 것이 맞다. 공부에 불편하면 휴대폰 없앨 수 있다. 컴퓨터 끌 수 있다. 친구 끊을 수도 있다. 부모 같으면 이 말을 다 이해합니다. 근데 이해하는 부모들도 공부하던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반대로 돈 없어 애 터지는 아이들이 돈 버는 아버지한테, 왜 집에 돈이 적어 공부하는데 이렇게 불편 합니까? 야! 돈벌이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추운데 얼마나 어려운데. 아버지 월급 얼마입니까? 요즘 300이야 대충 다 되겠지요? 300에 1년이면 3,600만 원. 3,600만 원에 2천만 원 쓰고 한 2천만 원 저금 했으면 10년이면 한 2억이 될 것이고, 2억이면 나도 미국 유학 4, 5년 갔다 올 건데 그 돈 어떻게 했습니까? 회사 마치면 그냥 오냐? 친구들하고 노름도 하고 오지, 1차 2차술도 먹고 오지 그게 인생이지. 아빠는 돈 벌면서 뭐 인생살 재미가 없냐? 담뱃값이 얼마고 술값이 얼마고 하느라고 친구들하고 등산 가는데 얼마고 동창회 때 낸 회비가 얼마고, 이렇게 쓰다 보니까 1년에 3,600 벌어 600 적금하기도 어렵지. 이렇게 말하면 10대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할까요? 아이, 아이를 낳아 놓고 공부를 시키려면 친구 좀 접을 수 있고 덜 만날 수 있고 그렇지, 그 돈 다 쓰고 그러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 소리 하지 않겠습니까?
 
입장을 조금 바꿔 놓고 생각하면 전부 정확한 말 옳은 말, 마치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하고 해 주실 말을 그 못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귀신도 아는 거는 다 안다 그랬습니다. 알기 때문에 뜬다고 그랬습니다. 귀신도 믿고 알고 뜨느니라. 귀신이 귀신 노릇하면 영원한 지옥에 어찌 될지 다 알기는 알고 있습니다. 남자가 노름 끊고 술 끊는 거 그거 좋지 그 나쁠 거 없습니다. 처자식한테 다 물어보십시오. 그거 다 끊으면 건강에 좋고 더 훌륭해진다 그러지 안 끊어지니까 못 끊는 거지. 또 이제 남편과 아이들이 여반에 어머니들한테 말을 하면, 아이 그만하면 예쁘신데 자꾸 미장원에 가서 10만 원짜리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50만 원씩 미장원에 가면 돈 언제 모읍니까? 만약에 이리 말을 한다면 뭐 그 말도 틀렸다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아빠에게 대해서 아내와 딸들이 하는 말이 맞을 거고, 어머니에 대해서 아빠와 아들들이 하는 말이 맞을 거고, 학생에 대해서 부모의 말이 맞을 거고, 부모에 대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이 맞을 겁니다. 여기 교인들을 위해서는 제가 하는 말이 아마 대부분 맞을 거고, 또 교인들이 적는 말씀을 가지고 제가 들어 보면 뭐 대부분 맞지 별 틀린 말은 없을 겁니다. 교리를 바꾸자 이런 거는 못 바꿔드리고 절로 가자 그거는 곤란하고 여기는 교회니까, 그 외에 다른 말씀 하는 것은 거의 맞지 별 틀리는 것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제대로 자라기위해서 하고 싶은 걸 참고 꺾어야 될 게 있는 겁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걸 참고 끊어야 되는 게 있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이 참아야 될 때도 있고 그럴 겁니다. 하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과거에 좋아하던 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거, 이것 때문에 내가 살맛이 난다는 것, 그 전부를 다 그건 좋지 못하다. 제쳐 버렸습니다. 이번 주간 첫 말씀입니다. 나는 신앙생활을 위하여 좀 참고 제쳐 놓을게 뭐가 있는가? 그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먹을 것 있고 입을 것 있으면 그만하면 세상사는 데는 족하지 않느냐? 세상을 만든 하나님은 우리한테 그리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만하면 만족이 아닐까? 더 잘 먹어야 되겠는데요? 더 잘 먹으면 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나면 더 잘 먹은 것이 별 맛이 없어져 버리고, 또 더 새롭고 더 좋은 걸 또 먹으러 또 찾으러 댕겨야 됩니다.
 
쌀밥 한 그릇이면 온 나라가 다 좋아서 환장을 하던 때가 70년대 초반까지였습니다. 세끼 밥만 먹으면 무조건 행복하다 한 것이 60년대. 먹기는 먹는데 만약에 쌀밥이라면 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고, 반찬도 필요 없다는 데가 70년대입니다. 서울과 지방은 좀 다르지만은 80년대가 되니까 외식이라는 것이 생겨서, 짜장면 먹으러 다니고 뷔페 먹으러 다닌다는 사람들이 부자들 중에 하나 둘 나타났었습니다. 예전에 외식이란 출장을 가다가 굶지 못하니까 먹는 것이고, 여행을 가다가 할 수 없이 밥을 싸 갈 수 없으니까 먹는 것을 외식이라 그랬습니다. 내 집에 밥 세끼를 두고 돈 들고 밖에 가서 집에서 못 먹는 것을 먹어 보는 때가, 우리나라는 80년대가 일반인들이 이제 시작이 되던 때입니다. 보리를 먹든 뭘 먹든 세끼만 먹으면 이 땅위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게 먹어도 쌀밥을 먹어야지 이러다가, 밖에 나가서 먹어야 그게 사는 맛이 나지 집에서만 먹는 건 그게 뭐냐? 90년대가 되니까 흰쌀밥 먹으면 심혈관 성인병 별별 병이 다 몰려오니까, 흰쌀밥 버리고 보리밥을 먹어야 건강하다 그래가지고 그때부터는 이제 옛날로 돌아가고, 보리 먹고 뭔 호밀 먹고 뭐든지 거칠거칠 한 것 먹느라고 옛날로 또 돌아가 버렸습니다.
 
“해아래 새것이 없나니” 3000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전도서에 시대의 역사에, 가장 잘 먹고 잘 살았던 솔로몬 왕을 통하여 “해아래 새것이 없다” 좀 더 맛있는 거, 좀 더 좋은 옷, 좀 더 좋은 집, 그 쪽에 눈이 열리고 그쪽을 향해서 찾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이제 끝이 없는 무저갱으로 여행을 출발하는 겁니다. 요즘은 전기가 많아서 무지개 딴다고 달 따러 간다고 뒷동산 올라가는 아이가 없겠지마는, 60년대까지는 전기 없는 마을이 많다보니까, 사방에 전기가 없고 어두워지면 뒷동산에 걸린 달이 그렇게 그게 신기하게 보입니다. 열댓 살 되는 애들은 달 따러간다고 나서는 애들이 없습니다. 5살밑에는 어려서 못 가고 10살 안팎 되는 것들이 장대 들고 이제 저 언덕만 넘으면 달 딴다고 갔다가, 넘어 가면 그 다음 달은 그다음 산등에 또 걸려있고 넘으면 또 걸려있고, 눈치 있는 애들은 한 언덕 딱 올라가 보고 아 저거는 못 따는구나! 이렇게 아는데, 인내심이 있는데 그 미련한 것들은 그게 한 능선 두 능선 세 능선 갔다가 길 못 찾아가지고 미아 되고 생난리가 나고 그렇습니다.
 
눈치가 좀 있는 사람들은 세끼 밥 먹으면 세끼 먹으면 행복하다 그러다가, 쌀밥이 나오고 나니까 먹어도 쌀밥을 먹어야 행복하지 쯤 되었을 때, 그리고 쌀밥이 별로 맛이 없어질 때 아, 아무리 좋은 걸 좋은 걸 아무리 좋은 걸 평생 갖다 대도, 또 애 터지고 또 애 터지고 또 애 터지고 짧은 인생 애 터지게 돌아다니다가 끝이 나겠구나! 그리고 지혜롭게 먹는 식사의 양을 좀 줄여 버리니까 먹을 식사의 양을 한 10% 줄여 버리면 뭐든지 다 맛있습니다. 자기 먹을 밥에 10%만 떼 놓으면 안 맛있는 밥이 없습니다. 건강에도 좋을 겁니다. 그러면 먹는 것은 늘 맛있으니, 새것을 먹으면서 맛있는 걸 찾아 애 터지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나, 10% 줄여 버리고 밥이 맛이 있어서 항상 밥에 대해서는 행복하고 더 찾을 것이 없는 사람이나 무엇이 다를까? 입으면 떨어지는 옷, 안 떨어지는 옷, 안 떨어지는 옷 계속 그렇게 발전해 왔었습니다. 60년대까지는 옷을 사면 빤다고 한번 물에 냅다놓으면 색깔이 바뀌어 버립니다. 70년대가 되니까 물에 세탁을 해도 색깔이 빠지지 않는 옷도 있다더라. 이래서 잘 사는 사람들은 그런 옷 입고 자랑을 했습니다. 80년대가 되니까 잘 떨어지지 않는 옷이라 낡아지지 않는 옷이라. 오래가는 옷 때문에 또 모두들 난리였습니다.
 
그다음 90년대가 되니까 그 다음 무슨 일 있었는지는 다 아시겠지요? 안 떨어지고 좋은 옷, 멋진 옷, 괜찮은 옷인데 2번 3번 보니까 지겨워서 다 내 버리기 시작하겠습니다. 90년대부터는 입을 옷을 내 버리는 재주, 또 사 입고 또 바꿔 입고. 제가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이 미국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갔다 온 사람이라, 한국 독립 되고 나서 미국을 먼저 갔다 온 사람이라 미국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느 부자 집에 가니까 양복이 한 300벌 되더랍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우리 같은 꼬마들이 속으로, 에이 거짓말도, 아무리 미국인들 아무리 잘 산다 한들 뭔 옷을 300벌? 현재 우리 교회 지금 옷 50벌 안 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요? 신발 하나 가지고 사철을 신다가 지금 신발 하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철따라 다르고 이래 다르고 저래 다를 건데, 돈이 더 많고 집이 더 많으면 300 벌도 필요할 겁니다. 맞춰야 되니까. “해아래 새것은 없다” 솔로몬은 3천 년 전에 입어 볼 옷 다 입어봤고 먹을 거 다 먹어 봤고, 그때 정원에 나무 심고 과목 심고 새 갖다 놓고 동물 갖다 놓고, 모든 인간이 해 볼 거는 그때 다 해 보고 그리고 오늘 우리를 위하여 적어주셨습니다. “해아래 새것은 없다” 모르는 사람은 여기 가보면 좋지 않냐? 이걸 가져보면 좋지 않냐? 이걸 먹어보면 좋지 않냐? 집안에 대학을 아무도 가지 않았으니 한 아이는 대학을 가 봐야 되지 않느냐? 모두들 대학을 다 가고 나니까 지금은 대학 안가는 게 또 이제 유행이 되어 버렸지요? 해 보고 나서 뭐 별거 없구나! 그러면 그 동안의 세월 그 동안의 인생 너무 아까운 겁니다. 해보기 전에 알면 참 좋은데 미리 아는 것. 성경은 해보기 전에 실수하기 전에 미리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공부하려면, 공부에 불편한 것은 다 제쳐놓고 일단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원리다. 그렇습니다. 건강이 중요하면 돈이 있고 먹을 것이 넘쳐도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을 딱딱 절제합니다. 당연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것은 당연히 신앙생활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되는 것, 당연히 가지고 싶은 거 유익하던 거 이거 없으면 안 된다던 것들을, 하나씩 둘씩 이것도 필요 없고 이것도 해로운 것이고 이렇게 정리를 해 나갈 수 있어야 믿는 사람입니다. 배고프던 시절에 이런 말씀 드리면, 지는 먹고 산다고 배고픈 사람 신세도 모르고 저런 말을 해? 속에서 반항심이 나와 버리면 뭐 평생 믿어봐야 그게 신앙으로 별로 좋지를 못합니다. 또 공부를 하고 싶어도 대학을 못 가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에, 대학 가서 뭘 배운다고 가려고 그러십니까? 이래 놓으면 지는 가봤다고 저렇게 남의 속사정 모르고 나쁜 말을 할까? 이렇게 섭섭해 놓으면 그 교회에 섭섭해 놓으면 평생 믿어봐야 늘 뚜껑 닫힌 항아리에 물 붓기입니다. 헛일 됩니다, 지금은 마음껏 먹고 마음껏 입고 마음껏 쓰고 마음껏 다니고, 공항에 차들이 넘치고 넘쳐서 이 시골 골목골목에 다 대고 대로에다 대고, 공항입구 진입로 고가도로에다 대고 양쪽에 차를 빽빽하게 대가지고,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그냥 사방을 다니는 사람이 온 나라에 넘쳐서 이정도가 되었으니까, 그만 이정도 해 봤으면 전부들 좀 그만 하시는 게 지혜로울 거다. 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6000년 역사에 오늘처럼 이렇게 음식이 넘쳤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어느 나라든지 아무리 굶어도 왕은 잘 먹었습니다. 지금은 길바닥에 그냥 버리는 음식이 차고 넘쳐서 고양이들도 쥐 봐야 사냥을 안 합니다. 그리고 전부 고양이들도 지금 비만에 걸려서 지금 고양이들 보십시오. 그 잘 날라 댕기지도 못합니다. 원래 고양이는 뭐 날아가는 참새도 잡는 것들인데 전부 비만에 걸려서 이렇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돌아 댕기는 고양이 있으면 나둡니까? 잡아먹지 전부. 이만큼 먹을 것이 넘치면 먹는 것은 줄이는 게 지성인이고 줄이는 것이 문화인이고, 줄이는 것이 인격적으로 보일 때가 되었습니다. 자기 품위를 위해서 줄이라는 말보다는 주님을 위해서 좀 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다가 들 먹는 거 요즘은 비참하지 않은 겁니다. 예전에는 기도하다가 금식하면 옆에 사람들이 가난하니까 기도하고 가난하니까 저렇게 금식 기도 하는가 보다. 그 말 듣는 것도 비참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밥 먹는 시간 좀 미룰 수 있고 늦을 수 있고 못 먹어도 요즘은 건강에도 좋으니, 먹는 거 좀 줄이시고 성경을 읽다가 세상 공부를 못 해도 지금은 전부 다 대학 나오고, 대학을 다 나와도 직장 잡기가 어려운 때니 염려 마시고 공부 좀 미뤄놓고 성경 좀 더 보시고, 공항에 진입하는 진입로 고가도로에 차가 꽉꽉 재서 밀고 들어갈 틈도 없는데, 기어코 가겠다고 밀고 들어가는 거보다 저렇게 가야 된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양보하고, 나는 좀 안전하게 예배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 그런다면 양보 정신이 있다고 아마 그럴 겁니다.
 
주일 날 비행장에 진입로 들어가는데 나오는 데가 토요일부터 저렇게 빡빡한데, 4차선 대로를 다 채우고 있는데 밀고 들어와서 이 예배당 주변까지 모든 밀어서, 이전에는 차 움직이기도 어려웠는데 이 정도 될 때, 주일날 놀고 놀러 갈 때가 그렇게 많으면 그분들에게 전부 양보하고, 난 비행기 티켓 전쟁 하는 거보다 그냥 교회 가겠다. 이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과거에 유익하게 생각한 것을 다 해로 여겼다 이 말씀의 해석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세상이 봐도 우리가 그런다면, 우리가 비행기 덜 타니까 비행기 티켓 구하기 쉬워서 고맙다 그러지, 너희들 때문에 구경 갔는데 손해 봤다 그러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오늘 한 가지만 더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란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하고는 그리스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예수,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입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은 예수 구원, 예수 구원으로 믿은 사람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어가는 주님, 믿는 사람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주님의 이름을 한 번 기억해 봅시다. 그리스도(그리스도).
 
교회는 다니고 믿기는 믿었는데 남이 하는 말은 좀 제쳐 두고, 내가 나를 봐도 부족한 것은 모두가 많지 않습니까? 성경 아는 부분은 조금이고 모르는 부분은 너무 많아서 얼마나 모르는지도 모르잖습니까? 조금씩 더 알아 가면 그게 그리스도입니다. 또 말씀을 조금씩 더 알아 가면 아 내가 이렇게 착하구나! 이렇게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알아갈수록 아 나 이게 참 잘못된 게 많구나! 자기 속에 부족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이걸 자꾸 고치는 게 그리스도입니다. 한마디로 믿는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 온전하시게 하시는 주님, 우리를 온전하게. 몰랐던 걸 알려 점점 알게 온전하게, 잘못된 것을 점점 고치도록 온전하게 그리고 이제 바로 알기는 알았는데 바로 아는 길을 걸어가려니, 힘들 때 인도하고 위험할 때 막아주는 보호 그 이런 면으로 점점 온전하게 길러가는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그럽니다.
 
원래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세 가지 뜻입니다. 우리 찬양대 학생들만 그리스도의 첫 번째 뜻은요? 제사장, 둘째는요? 선지자, 세 번째는? 왕. 제사장 선지자 왕 셋을 합하면 그리스도라고 그럽니다. 뭐 굳이 예를 들면, 국가란 법을 만드는 국회가 있어야 국가입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놓으면 법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는 정부가 있어야 그게 국가입니다. 국회가 만든 법을 가지고 정부가 운영을 하다 보면, 도둑도 있고 싸우기도 하고 별의 별 일이 다 생깁니다, 그러면 법원이 들어서 마지막에 정리를 합니다. 예를 들면 법을 만드는 국회,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 그다음 문제가 생기면 마지막 결정을 하는 법원, 이 셋을 다 합하면 국가다 그럽니다. 이 셋 중에 하나가 없으면 그건 뭐 국가라 치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제사장 적이며 선지자 적이며 왕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할 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제사장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걸 죄라고 그럽니다. 나는 내 눈빛, 내 마음씨, 내 욕심, 내 말투, 아무리 조사해도 하나님 앞에 100점이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워 놓으면 전부 죄 문제가 있습니다. 이 죄 문제를 자꾸 해결해서 적게, 적게 죄를 줄이고 자꾸만 죄가 없도록 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 그럽니다.
 
두 번째 선지자라는 말은, 하나님이 뭘 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알려 주는 분을 선지자라 그럽니다. 선지자. 몰랐던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면 선지자,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보니까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잘못됐구나! 잘못된 죄를 자꾸 해결하는 분을 제사장이라 그럽니다. 바로 배웠고 잘못된 걸 고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바른 길로 걸어갈 때 앞에서 인도해 주는 분 인도! 또 원수가 오고 위험할 때 막아주는 보호! 하나님 앞으로 인도 보호를 할 때 왕이라 그럽니다. 세상에 왕은 백성들한테 세금 거두고 전쟁이나 시키고 자기는 놀고먹고 이게 세상에 왕이라. 그래서 대부분 나라가 왕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있어도 이름만 왕 해놓고 실은 왕국은 이제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왕국을 버티는 나라가 몇 개 있기는 있는데, 참 모두가 세계가 쳐다보면서 참 괴상하다 다 그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법도 만들고 한쪽에서는 법으로 운영도 하고, 한쪽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재판도 하고 정상적인 국가는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 것처럼, 주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데 주님이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가는 방법이 세 가지입니다.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 주시고, 그리고 옳고 바른 길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보호를 합니다. 간추리면 예수님의 이름에 예수는 안 믿던 사람을 믿게 하는 주님, 믿기는 믿었는데 참 모두가 부족한데 이 부족한 걸 자꾸 온전하게 만들어가는 주님의 이름은 다 같이요? 그리스도입니다, 어떻게 몇 가지로 온전하게 만들어 가느냐? 세 가지 중요합니다. 세 가지 방법입니다. 모르는 것은 알려 주시니 선지자처럼, 알았는데 틀린 게 많으니까 이걸 해결하는 죄 문제는 제사장으로, 그리고 옳고 바른길로 걸어 갈 때 인도하고 보호하는 이 주님은 바로 왕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말은 옳은 길로 인도하고 우리를 보호하는 좋은 면에 왕이고, 나쁜 면의 왕 착취의 왕 포갑의 왕 폭군의 왕은 아닌 겁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보호하는 왕 노릇을 하는 주님, 내가 잘못해서 생긴 모든 문제는 대신 해결해주시는 제사장 적인 주님, 아예 몰라서 일이 생겼으니 모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면으로 자꾸만 해결해주시는 선지자적인 주님, 알려주고 해결해 주고 그리고 인도해주시는 이 세 가지의 방법을 통해, 어린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청년이 되고 소년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좋은 장년이 되는 것처럼, 유치원에 간 아이가 초등학교에 글을 배우고 고등 대학에 많은 걸 배워, 다시초등학교 와서 이제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면 공부 적으로는 온전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멋모르고 세상을 살며 뭘 먹지? 어떻게 먹지? 뭘 입지? 어디를 댕기지? 어떻게 살지? 두고 갈 세상 이래 먹으나 저래 입으나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하룻밤 지나고 나면 다 묘지로 가야 되는데, 뭘 몰라 놓으니까 더 먹는다고 뭘 먹는다고 사방 돌아다니는데 전부 다 헛일이다. 바울이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 다 헛일이다.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다 그만 안 좋다고 다 내버려라. 친구든 뭐든 뭐 오락이든 취미든 컴퓨터든 뭐든, 공부 하는 학생은 일단 공부하고 공부 해 놓고 나면 그다음 좋은 일 많을 테니까 일단 순서를 좀 바꾸거라. 이런 원리처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알아가고 알아갈수록 내 안에 있는 문제를 자꾸 해결해 가고,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점점 자라가는 이면으로 온전해지는 이 한 가지에 방해되고 필요 없는 것은 전부 다 떼어 놔버리라. 제쳐 버리고 떼버리고 다 뒤로 밀쳐버려라.
 
몸을 가볍게 해서 학생은 공부에 주력하는 게 좋고, 아빠들은 돈 벌고 가족을 책임지는데 주력하는 것이 나쁘고? 알기는 다 알 겁니다. 좋고. 그럼 여성들은요? 돈 버는 남편 고생하는데 아이들 길러야 되니 가정 지키는 게 요즘은 좋다! 그러면 인권위원회에서 잡아 간답니다. 이 망할 것들이 그냥 욕을 해 버리고 싶은데. 넌 느그 엄마가 그러면 너희 아빠 냅두고 돌아 댕기는 거를 좋아했냐? 그건 또 그건 안 된다 그럴 겁니다. 양심은 있지. 네가 여자냐? 네 남자가 널 위해서 돈벌이 하나만 열심히 한다면 넌 분명히 좋아 할 거 아니냐? 그다음 남자 고생해서 벌어주는 돈으로 아이들 잘 기르면, 그게 좋은 거라고 그래야 되느냐? 그런 여자는 나쁜 여자라고 그런 여자 만들지는 마라고 그러는 것이 좋겠냐? 좀 생각 좀 해 보셔야 됩니다. 뭐 그러든 말든 그건 세상이니까 놔두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뭘까? 선지자 적으로 점점 자라가고, 하나님의 뜻은 이런데 내게 잘못된 것이 뭐냐? 뭐든지 고쳐 가고 그리고 옳고 바른 걸 알았으면 옳고 바른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세상 적으로 위대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를 위하여, 이 일에 필요 없는 것은 다 버렸다! 다 끊어버렸다! 이 일에 필요 한 것만 추려서 나가게 되었다. 빌립보교회에 주신 말씀이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목적의식이라 그럽니다. 넌 목적이 뭐냐? 목적도 없이 결혼했냐? 목적도 없이 학교 다니느냐? 목적도 없이 전공 잡았느냐? 좋은 세상이니까 살다 보니까 휩쓸려 이러다 저러다보니까 어느 날 그냥 쏠려 가고 있느냐? 현재 너는 누구냐? 현재 너는 어디를 향하느냐? 너는 현재 어떤 사람이냐? 생각해 보십시다.
 
 
(축도)
목적 잊어버리면 세상도 헛되이 고생하고 헛일 많이 하는데, 그리스도를 위하여 과거 세상 살며 필요했고 주력했던 것, 전부를 버리고 전부를 해로 여기기까지 깨달은 바울을 통해, 오늘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게 하신 주님, 만사가 넘치는 세상을 주신 이유가 뭔지, 세상을 더 누리라고 세상을 이렇게까지 넘치게 하셨는지, 세상은 차고 넘쳐 주체할 수가 없을 만큼 되었으니 일체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님 내게 대한 뜻이 무엇이며 주의 뜻에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살피고, 하나님 앞으로 걸어가는 인도와 보호에 주력하며, 이 하나에 목적을 잊지 아니하는 우리 학생들 됨으로 학생시절이 복되게 하시고, 이 시절이 오래주지 아니함으로 청년 장년에 모든 분들에게, 바쁘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일에 주력하는 오늘이 되게 하시고, 이미 세월이 많이 흘러 주님 앞에 설날이 가까운 연로한 우리 모든 남녀 주의 종들에게, 갈 길을 바쁘게 그리스도를 위해 재촉하는 모든 우리 교인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추운 날씨에 훈련소 중에 있는 두 아들들 군무에 있는 청년들, 해외든 병원이든 요양이든 곳곳에 있는 우리 모든 교인들, 형편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위한 한 가지에 마음을 다 기울이는 복 된 한 주간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새 아이 심방예배)
새 아기 나왔습니다. 아기 가운데 앉으시고 예 옆에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이 되면 교회 처음 나오는 날, 모두들 복잡 게 심방도 다니고 그럴까 봐 전체 주일 오전 예배 때, 새로운 아이 심방 예배 잠깐 드리는 겁니다. 또 개인적으로 가실 분들은 가셔도 좋고.
 
하나님의 말씀 사무엘상 9장 25절입니다.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성경에 담자라는 말이 한두 군데 나옵니다. 사무엘상에만 나옵니다. 담화, 담론, 담자라 말은 말한다는 뜻입니다. 말한다는 담, 말씀 언변에 불화자 두 개를 붙이면 대화할 말할 담자입니다. 대통령 담화문발표 그 담 자입니다. 요즘은 담화문 할 때만 담자 쓰지, 그 외에는 잘 안 쓰던데 예전에는 담화, 담론, 담자를 많이 썼었습니다. 말하다. 라는 단어가 다른 데는 그냥 말씀 언 으로 대개 끝이 나는데, 담자는 보면 말씀 언변에 불 화자가 두 개입니다. 좀 부지런히 열심히 말한다는 뜻입니다. 듣는다. 청취한다. 좀 어감이 다르지요? 느낀다. 즐감한다. 좀 달라지지요? 담자는 좀 뜨겁게 좀 제대로 말 이런 뜻을 담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이담입니다. 담화함으로 대화로. 아이 세상 대화 많아서 시끄러워 죽겠는데 언론이 많아서 복잡하지 않습니까? 그런 그 재잘거리는 그런 소리 말고 해야 할 말, 필요한 말. 여기 사무엘이 사울과 더불어 담화는 하나님 앞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사는 거다. 가르쳐 주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말씀으로 두 사람이 진심으로, 정성을 모아 뜨겁게 좀 열심히, 라는 뜻입니다. 필요 없는 말은 너무 많아서 시끄러운 세상, 필요한 말은 도무지 듣지를 못하는 세상, 세상만 그러면 상관이 없는데 세상이 그러다 보면 교회까지 세상을 닮아 가지고, 아이! 교회에서 할 말은 안 하고 안 할 말만 자꾸 해 대니까 교회까지 시끄러워져 버렸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대화로, 하나님은 뭘 원할까? 하나님은 뭘 기뻐하실까? 아이를 위해 부부가 신앙의 대화 좀 깊이 하시고, 또 아이 때문에 두 분이 아이에게 뭐 일반적으로 아이 기르면서 하는 말이야 다 하겠지마는, 네가 살 세상은 참 어두운 세상이다. 미리부터 좀 정신 차려야 된다. 야! 너 살아가는데 친구라는 친구는 모두 괴상한 친구밖에 없을 건데 이걸 어떻게 하나? 뭐 아이가 알아듣던 그 젖먹이는 엄마가 품에 있는 엄마가 아빠가 들여다보며, 예쁜 거는 예쁜 것이고 근데 마음을 이렇게 담아 한마디씩 할 때, 알게 모르게 그게 다 들어갑니다.
 
콩나물 길러 봐 보셨습니까? 여기 우리 찬양대 학생들 콩나물 길러본 사람? 뭐 요즘은 길러 보기도 하고 그러나요? 콩나물은 맹물을 붓는데 이게 자랍니다. 식물이 흙이 있으면 물을 붓거나 그러면 이게 빨아 먹고 자란다 싶은데, 콩나물 콩은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내려가 버리거든요. 그런데도 자라요? 그 제가 설교를 하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 10년 해봐야 수 십 년 해봐야, 뭐 듣기나 하시겠나 싶으면서 설교를 할 때는 낙담이 되다가도, 하기야 콩나물 콩 물 부으면 물주는 대로 다 빠져 나가는데 나중에 보면 자랍니다. 알게 모르게. 물론 뭐 더 잘 자라면 더 좋겠지마는 그래서 옳고 바른 길로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어디서 돋아나도 다 돋아납니다. 오늘 오전 말씀처럼 먹을 거 넘치니 이 아이의 평생에 먹을 것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세상이고, 예전에는 아이를 낳아 놓으면 이게 또 이제 입이니 여기에 또 밥이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굶어야 되니 이게 이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골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우리 집은 먹을 게 있어도 잘 들어야 돼요! 우리 집은 먹을 게 있어도 동네 쳐다보는 눈을 봐서, 우리 집에는 먹을 게 있어서 다섯 열을 기를 수 있지마는, 동네 눈치가 보여서 태어난 아이를 엄마가 그대로 그냥 질식을 시켜서 갖다 내버린 나라 이름을 혹시 아십니까? 최 지연 선생님? 그런 나라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김 진아 선생님? 뭐 선생님들이 좀 알아야 가서 좋은 걸 가르칠 건데. 일본 나라. 그 이 나라 이거 얼마 전까지도 이런 짓 했습니다. 독한나라 지요? 우리는 놓으면 함께 못 먹으면 가족이 함께 굶다가 죽어도 함께 죽지, 부모가 야! 숫자 많은데 너까지 태어나면 넌 죽어라 해가지고 엄마가 세상에, 태어난 애를 그대로 그냥 갖다 버리고 질식시키는 경우는 우리나라는 없습니다.
 
근데 일본 애들은 그냥 마을에서 딱 눈치 봐 가지고, 저 집에 하나 더 나온 것은 좀 그렇다 싶으면 알아서 처치해 버립니다. 아이를. 얼마 전까지도 그 습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근데 먹을 염려 없지요? 입을 염려 없지요? 그냥 그림 같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이에게 세상은 좋을 때 태어났다. 근데 맹수가 많고 이놈의 세상이 참 이상한 세상이 됐다. 깨끗하게 자라자! 하나님 복 받도록 자라자! 그 마음을 자꾸 먹으면 가끔 한 마디씩 하면, 그 아이가 뭘 듣겠습니까마는 이상하게 그게 쌓여지고, 나중에 여기 있는 우리 아이의 엄마 아빠처럼 좋은 분들이 됩니다.
 
자 우리 찬양대 축송이 있겠습니다. 몇 장이지요? 106장.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생명이 적은 때 귀한 생명 주셨고, 생명들이 곁길 가고 어두워 혼란 혼동의 세상이 극심한데, 좋은 길 바른길 밝은 길에 출발할 수 있도록, 좋은 부모 신앙의 가정 주시고 외가 친가 전부 다 신앙의 온 가정이 되어, 이담에 출발하는 이 순간을 위해 기도한 신앙의 가족이 많고, 또 우리 온 교회 이 아이를 기다리며 기도한 기도와 환영이 많사오니, 세상은 차고 넘쳐도 신앙과 하나님의 복이 찾아보기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선지자적인 뜻을 깨닫는 아이가 되고, 자라가며 말씀으로 고쳐 가고 온전해져감으로, 이 아이가 점점 하나님 앞에 인도되고 보호가 온전해짐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참 교인되고 신앙의 사람 되어, 아이로 인하여 부부가 더욱 신앙으로 기도하고 기울이는 가정 되게 하시고, 또 바라보며 부러운 우리 모두에게 앞서 수고하는 가정을 뒤 따르며, 주님 앞에 오시는 날까지 주신 귀한 강단의 새 생명 차고 넘치도록,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저희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신앙을 위하여 건강 허락하시고 헛 세상 소비하지 않도록,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여 옳고 바른 길로만 걸어가는 아이 되게 하시고,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복이 주시고 인도할 수 있도록, 믿음의 아이 신앙의 교인 되도록 두루두루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 축하하며 찬양한 우리 찬양대 모든 학생들에게도 같은 은혜로 동행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동천 교회는 올해만 아이가 다섯입니다. 1월 1일부터. 우리는 하나가 전부입니다. 우리 다섯 보다 나은 하나가 되어야 될 건데, 다섯보다 나은 하나도 좋고 또 다섯보다 나은 하나가 또 다섯 되면 5*5=25니까 더 좋고 그렇습니다. 자 아이 모두들 좀 소개 좀 쭉 뒤로 가시면서 아이 소개 좀 시키십시오. 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잘 못 만지게 한답니다. 이해하십시오. 섭섭하게 생각 마시고 쳐다만 보시고. 쳐다만 보시고. 아이를 이쪽 가운데 가운데로 가셔야 되는데, 가운데로. 나이가 많아지면 아이가 더 예뻐 진답니다. 쳐다만 보십시오. 만지지 마시고, 마스크 끼고 보시고, 조리는 석 달 하는 겁니다. 원래. 한 달은 방문도 열지 않는 한 달, 석 달 동안은 손이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두고두고 고생하는 엄마 됩니다.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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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2.20주전   빌3:7     두고 갈 것, 가져 갈 것     예장총공신풍교회
■ 본문
1. 내게 유익한 것
안믿을 때 : 세상 (사람)이 좋아 하는 것
믿은 이후 : 세상 (살기)에 좋아 보이는 것
2. 그리스도
⑴ 뜻 : 믿는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주님
 
⑵ 역할
① 제사장
하나님 앞에 (죄) 문제를 해결
② 선지자
하나님의 (뜻)을 찾아 전달
③ 왕
하나님 앞으로 (인도) (보호)
 
3. 모든 것을 해로 여김
① (신앙)에 필요 없으면 손해
② 내게 (유익)한 것도 손해
③ 나와 관계 (없는) 것도 손해
 
4. 가질 지식은 오직 하나
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① 그리스도 : 제사장, 선지자, 왕
② 예수
사죄 : 말씀 어긴 (죄)를 해결
칭의 : 하나님의 (뜻)을 순종
화친 : 하나님과 (동행)
소망 : 영생을 (소망)
 
⑵ 지식이란
① 인지 : (알게)된 것
② 감지 : (느끼)는 것
③ 인정 : (확인)하는 것
④ 시도 : (실행)하는 것
⑤ 본능 : (익숙)해 진 것

■ 결론
1. 모든 것을 잃을 것
그리스도 하나만 목적이면, 다른 것은 저절로 잃는 법
① 목표를 위해
목적과 (방편)을 구별할 것
② 최고를 위해
더 나은 것을 (선택)할 것
 
2. 세상 모든 것을 버릴 것
목적을 달성하면 쓰레기는 버리는 법
① 영생을 위해 (세상)을 버릴 것
② 쓰고 남은 것은 (배설)물이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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