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2.1.16 눅22:22 오늘의 가룟유다, 신앙양심 가책 꺽고 세상을 향할 때 예정대로 자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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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2.1.16 눅22:22 오늘의 가룟유다, 신앙양심 가책 꺽고 세상을 향할 때 예정대로 자유의 책임

서기1 1 214 2022.01.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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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6 주전

(* 설교에 참고할 교안은 제일 아래에 있습니다)

제목 : 오늘의 가룟 유다, 신앙양심 가책을 꺾고 세상으로 향할 때 예정대로 자유의 책임

사회 : 안응규
찬송 : 16장(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176장(이 몸의 소망 무엔가)

본문 : 누가복음 22장 22절 -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다 같이 묵도 드리므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불완전한 저희들인데 완전하신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으로 삼아 주시고, 한줌에 흙으로 돌아갈 인생을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주님의 사활의 대속에 사랑에 만만 감사함을 드립니다. 소돔보다 심한 롯보다 못한 우리를 이 시간 불러 주셨사오니, 우리의 세상에 모든 때 묻은 것들을 다 털어 버려 주시 사, 이 시간 주님의 뜻을 찾는 귀한시간 되어 지도록, 우리의 닫혀 있는 마음의 문들을 열어 주옵소서. 아무리 외쳐도 우리의 마음이 심히 철판대기와 같이 막혀 있어 들어오지 못하고 있사오니, 주님의 권능의 손을 빌어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지난 한해 귀한 종을 통하여 많은 양식으로 먹여 주신 은혜를 이 시간 감사함을 드립니다. 새해를 통째로 주신 주님, 우리가 잘나서 주신 한해가 아니라 복된 신앙의 기회로 만들어 주셨사오니, 주신 한해를 주님의 긍휼에 힘입어 한해를 복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옵소서. 이 시간도 세우신 주의 종을 기억하여 주시 사 오늘도 복된 말씀으로 인도하실 때에, 졸지 않게 하시고 깨어 이 말씀으로 굳세게 나아가는 귀한 저희들 되게 해 주옵소서. 결혼과 출산이 없는 때에 노아의 시대와 같이 우리에게 노아의 방주처럼, 대체의 방안으로 내려놓으신 결혼을 우리 교회도 많이 허락하여 주시고, 모두가 다 복된 가정교회 출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많은 복으로 동행해 주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하시며 여러 형편 여러 모양 어느 곳에 있든지, 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의 뜻만을 복되게 찾아 나아가는 귀한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온종일 주일을 거룩하게 복되게 지키는 오늘이 되게 해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월 첫 주 성찬 주일로, 주님의 몸 주님의 생명 우리 위해 바치셨고, 그 사실 기억하라고 떡과 잔으로 성찬을 부탁하셔서, 2000년 내려오는 여러 역사와 내용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2장은 그 예수님의 성찬에 관련되는 역사적인 말씀입니다. 22장 전체를 잠깐 좀 살펴 보겠습니다. 22장 1절입니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예수님이 죽으신 때가 유월절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정월 초하루 설날에 붙들려 처형당한 겁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한해의 시작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설날입니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대제사장은 교회에 책임자들이고 서기관들은 요즘 말로 말하면 신학자 정도 되어 집니다. 교회 지도자와 교회의 이론과 교리를 뒷받침하는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죽일꼬? 무슨 방책으로 죽여야 좋을까? 연구를 하더라. 화가 나서 우연히 사람을 치면 그건 실수라 사람을 죽여도 죄가 훨씬 덜 합니다. 작정하고 계획하고 고의로 이렇게 연구를 해서 죽이면 이것은 죄가 아주 커져 버립니다.

누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나라에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자기들 구주를 죽일 연구를 했을까? 모두들 그때를 비판하고 이 문제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 국가다보니, 예수님 죽인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이스라엘 유대인이라고, 몇 천 년 동안 복수하느라고 수도 없는 사람들을 시도 때도 없이 죽이고 그랬습니다. 근데 여기 대 제사장 서기관들이란 그때의 신앙의 지도자들이고, 오늘로 말하면 신문 뉴스에 나오는 기독교 한국에 제일 유명한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냐? 그럴 수도 있고 확실한 것은 여기 주님을 죽인 이 대제사장 서기관들이란? 내가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볼 때, 신앙으로 뻔히 알면서 잘 믿던 못 믿던 나름대로 신앙으로 확실하게 아는 게 있는데, 확실히 알면서도 자기 신앙 꺾어버리면, 오신 주님을 연구해서 처형해 버린 그들과 꼭 같은 사람 되어 집니다. 아 그때는 예수님이 몸으로 오셨는데 몸을 죽였으니, 지금은 뭐 마음으로 그렇고 정신으로 그렇지,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직접죽인 죄와는 다르지 않을까? 아닙니다. 그때는 몸으로 오셨고 지금은 부활을 해서 볼 수 없는 주님입니다. 그 볼 수 없는 주님이 우리 신앙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계시는데, 아무리 네가 신앙이 없어도 적어도 이거는 이래야 되지 않느냐? 주님 이렇게 말씀하실 때 뻔히 알면서 확실히 알면서, 두고 갈 세상 때문에 자기 여러 이유 때문에 주님의 그 부탁을 꺾어버리면, 내 속에 있는 대제사장과 같은 내 마음, 내 속에 서기관과 같이 잘 아는 내가.

(저 뒤에 안 되는데 100번도 더 말씀을 드리지 않았나요? 그 강단에서 좋게 한 열 번도 아니고 한 백 번 좀 부탁하면 다른 분들 때문에 입장을 생각해서 웬만하면 좀 따라 주는 겁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저보다 연세가 많은 분들도 계십니다. 근데 전체를 위해서 제가 부탁하면 그 좀 웬만하면 따라 주는 게 좋고, 요즘 뭐 어린 애들 10대들이 누구 말 듣습니까? 그래도 이런 모임에서 부탁하면 이럴 때는 좀 들어 주는 게 좋습니다. 여기 지금 안 믿는 가정에 열 살 안팎도 와 가지고, 어른들하고 예배드리는데 지금 가만히 앉아 있지 않습니까? 좋아서가 아니라 경우를 봐서 그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일수록,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부탁은 좀 그 들어 주시는 겁니다. 확실하게 틀렸으면 예배 때 손들고라도 발표 하시면 됩니다. 이전에도 그런 거 기억하십니까? 주일 오전 예배 때 저 36가지 거짓말했다고 교인들 전체한테 일일이 나누고 계셔서, 얼마든지 나누시라고 저 빠진 사람 제가 불러 드리면서 저기도 전하시고 저기도 전하시고 다 읽어 보라 그랬습니다. 목사 틀린 거는 연구를 해야지, 근데 내용 중에 오해가 있으면 좀 설명도 드리는 거고, 그 강단에 부탁은 웬만하면 좀 들어 주시는 게 좋습니다. 그 예배당 뒤편에 앉는 분들은 바쁘든지 뭔가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다 차서 꼭 예배가 안 될 정도면 몰라도, 그 안내 서시는 분은 그냥 눈치 봐 가지고 대충 하시지, 극장처럼 어디 다른 데처럼 그 일일이 좀 그렇게 안 내하면 곤란해집니다. 그냥 이 정도면 지금 잘 앉아계시는 겁니다. 안내 때문에 말씀 드렸습니다. 또 안 내가 지나치게 부탁을 해도 또 그런가 보다 해가지고 교회에서는 순종해 주시면 좋고, 안내는 최대한 움직이지를 마셔야 됩니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이스라엘의 새해 첫 명절에, 이스라엘의 신앙의 지도자 대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교리와 성경을 맡은 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까? 이걸 연구를 해야 되는 첫날 새해인데,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어떻게 잡아 죽일까? 이걸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바람에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죽었다고 기독교 선진국 서양에서는, 몇 천 년 간 이스라엘 사람들을 시도 때도 없이 죽였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학살이 입에 담지도 못하도록 2000년 내려 왔습니다. 2000년 세계 전부해서. 그 이런 역사를 가지고 신학교마다 또는 다른 교회에서는, 한쪽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니 저들은 저주를 받아야 된다! 당해도 싸다! 이런 쪽이 하나있고, 천주교가 주로 그런데 입니다. 또 천주교가 아닌 우리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을 죽인 이 인간들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 꼴 당하지 않았을 텐데, 이래서 유대인들 쥐 박는 데는 기독교도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 믿는 신앙은,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그들은 오신 예수님의 몸을 처형했지만은 오늘 우리는, 내 속에 부활의 주님이 들어오시는데 부활의 주님이 오셔서 이러자 저러자 그러는데, 부활의 주님을 뿌리치는 사람, 쥐어박는 사람, 영 밟아 그냥 거반 죽이는 사람. 아닌 사람 있습니까? 나는 내 양심에 확실히 아는 일은 평생에 한 번도 어겨 본 적이 없다! 그런 분이 계시면 여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보다는 나은 분입니다. 잘 믿던 못 믿던 내 양심에, 저도 믿는 사람이 이건 좀 곤란하겠다! 그걸 느끼는 순간 그 느낌을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속에서 넣어 주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런가?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그리 생각을 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속에서, 너 말씀으로 살고 너 주의 뜻으로 살라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죽고 끝나도 되는 걸 부활하여 신령한 주님으로 너 속에서 오늘도 말씀으로 살자! 너 맘대로 살지 말아라! 내 마음속에 말씀과 내가 내 맘대로 살아서 안 되겠다! 그 느낌은 주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을 쥐어박으면 주님의 입을 쥐어박는 게 되고, 저 소리 다시는 나오지 않게 영 아주 밀봉을 해 버려야 되겠다! 그러면 주님 잡아다가 처형하고 묘지에 집어넣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죽은 부모의 부탁을 뿌리치는 사람은, 부탁을 뿌리친 거지 죽은 부모를 쥐어박거나 매장 하는 일은 아닌데, 부활하신 주님의 부활 때문에, 내 신앙에 양심에 확실한 것을 뿌리치는 것은 주님을 뿌리치는 것이 되고, 실제 그렇고 자꾸 양심이 찔리니까 아예 이런 양심은 없애 버려야 되겠다! 해가지고 끝을 내버리면, 그 오늘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2000년 전에 주님십자가 못 박았다고 2000년 비판하면서, 나는 내 속에 오신 주님을 오늘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 않는가? 그 이면을 생각하면 신앙의 사람은 날 위해 죽으시고 천국가게 만들어 놓은 주님을, 오늘도 배신하고 오늘도 쥐어박으니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새 명절 새해가 시작되는 초기에 예수 죽일 연구를 하고 앉았을까? 어떤 방법이라야 죽이며 어떤 방법이라야 딱 끌어다가 꼼짝없이 목표를 달성하나? 요렇게 짜고 앉았는데, 오늘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활이 알고 보면 다 그렇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이라는 이름입니다. 이미 믿게 된 우리는 구원은 받았으나 우리의 마음 우리의 행동은, 매일매일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를 이길 수도 있습니다. 요 마음의 생각하나 행동 하나하나도, 주님이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다시 말씀으로 살고 주의  뜻대로 살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를 못 박는 것이 주님 못 박는 것과 같다. 그리 생각하면 무거운 말씀입니다. 3절 “제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출신” 이 출신 중요한 겁니다. 유다라는 제자가 주님을 팔았는데 그 유다 이름만 적지 않고, 유다? 이 유다가 가룟 사람이라. 집안까지 이름을 붙여 놨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자기 본 적 잊지 마셔야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주소지 어딘지 알아야 됩니다. 여기가 밀림인지 동물원인지 안전한 곳인지 위험한 곳인지, 우리는 지구상에 한국의 사람들입니다. 한국 사람의 역사적인 장점은 뭐며 단점은 뭔가? 피하기 어렵습니다. 알아야 대체가 되지.

가룟인 이라는 유다라는 제자 12 중에 “유다라는 제자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귀신 중에 제일 두목귀신, 악령 중에 제일 대장 악령의 이름이 사단입니다. 요즘은 사탄, 사탄 하는데 성경은 사단이라고 이렇게 적어 놓으셨습니다.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성경에 적기는 솔로몬, 솔로몬 이렇게 적어 놨는데 모두들 영어를 많이 하시다 보니까 쏠로몬 이러는데, 성경에는 솔로몬, 성경에는 사단입니다. 귀신 중에 제일 두목 귀신이 유다 속에 들어갔습니다. 큰일을 해야 되니까, 예수님을 잡아다가 처형을 해 버려야 되니까, 별의별 귀신 중에 제일 대장 귀신 사단이 유다에게 들어가고, 예수님의 12제자라도 귀신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영은 중생이 되어 손을 못 대고 무조건 천국이나,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우리의 욕심 우리의 행동 속에는, 죽는 날까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실수할 수 있고, 또 돌이킬 수 있고 그렇습니다. 가룟 유다 속에 사단이 들어가서 유다를 데리고, 대제사장들과 로마 군인들 군관들에게 가가지고, 너희들은 예수가 원수고 귀찮고 나는 돈이 필요하니 서로 바꾸자고 흥정을 합니다. 의논하매 서로 짜는 겁니다.

아이!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모르면 이리 됩니다. 그리고 돈 없으면 이리 되는 겁니다. 뭐 별 수 있습니까? 부모를 산채로 갖다 묻어버리는 고려장이, 요즘도 아니고 600년 700년 전의 일입니다. 임금이 그랬겠습니까? 부자가 그랬겠습니까? 먹을 것이 없어 산 사람이 죽어 나가면 부모라도 할 수 없는 겁니다. 첫째는 모르면 돈이 있어도 그렇게 하게 되어 있고, 알아도 돈 없고 힘 딸리면 별거 없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요? 한 100년 200년 전 담배가 우리나라 처음 들어올 때 약이라고 임금님부터 전부 빨아 댔답니다. 약이라고 몸에 좋다고. 몰랐으니까 그렇지 그거 암 걸린다고 그랬으면 임금님이 그 짓 했겠습니까? 모르면 그리 되는 겁니다. 근데 아무리 알아도 돈 없으면 병원 못 갑니다. 수술 못 받습니다. 알아도 당하는 겁니다. 그래서 알기도 알고 실력도 갖추고 두 개가 평소에 있어야 됩니다.

유다 속에 귀신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이 돈으로 보인 겁니다. 오늘도 뭐 신풍이야 그렇지 않지만은 시내는 시청에 국장님 둘 나오는 교회, 그런데 가면 덕 좀 보겠지요? 사업하는 사람들 국가사업 하나 따 놓으면 부자 되겠지요? 거기 교육청 고위 간부 들어가면 교사들 인사건 있기 때문에 기웃거릴 걸요? 직원 한 1, 2,000명 중소기업 사장님 계시면 아 수의 하나라도 얻을 만하면 가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문제는 교회 간판을 걸고 두고 갈 땅에 돈이나 두고 갈 세상 걸 연구하면, 그 예수 처형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여기 대제사장 그리고 가룟 유다 꼴 납니다. 그 우리나라 제일 부자들이 많이 모이는 교파 중에 하나가 대구에서 시작할 때, 한 60년 됐습니다. 한 60년 전에 대구에서 시작하면서 좋을 길을 알았는데 전하면 많은 사람이 따를 것 같은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교회에 돈이 많이 모이겠는가? 대구에 제일 부자들을 상대로 첫 전도를 했습니다. 부자가 먼저 들어오니까 그다음 친구도 부자입니다. 그래서 줄줄이 다 대구 쪽에 부자들, 저 전 대통령 쪽 이렇게 다 그쪽이 그쪽으로 많이 몰렸습니다. 그 바람에 뉴스도 많이 나고 돈은 많습니다.

첫 자리를 어디에 택하느냐? 어디에 개척하느냐? 어느 교인에게 주력하느냐? 돈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시골 이런데 들어가 놓으면, 이건 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들어오는 거는, 거지 동네 들어가서 첫 전도 해 놓으면 그 다음 거지가 들어오지, 깨끗한 사람이 들어오겠습니까? 전도도 교회 개척도 이리 되면 돈 받고 예수님 넘긴 가룟 유다하고 다르지 않게 됩니다, 그 유다가 원래 예수님의 연보를 맡은 경리 담당자입니다. 오늘도 그렇고 성경도 그렇고 구약도 그렇고 주님도 그렇고, 돈은 이 땅위에 제일 중요한 것이라. 하나님 빼놓고 세상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물질이기 때문에, 그 제자 중에 제일 든든한 사람한테 맡겼습니다. 근데 돈을 자꾸 접하다 보니까 결국 돈맛을 알아버렸습니다. 절 믿는 사람이 화내겠지마는 중이 고기 맛 알아놓으면 벽에 빈대도 남기지 않더라. 그러면 이제 중이 교회 목사들한테 너희들은 돈 맛 알면 예수 팔아먹지 않냐? 가룟 유다부터 그랬는데, 이럴 때 우리가 할 말이 있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뭐 신문에 저 서울 이야기, 여수 시내 이야기, 멀리 갈 거 없이 우리는 돈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신앙의 양심을 꺾어 본 적 없습니까? 꺾어 본 적 없습니까? 돈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으면 돈 가지고 장난치고 그런 사람이야 그렇겠지, 제대로 일해 보고 제대로 돈을 벌어 보고 돈이 뭔지를 아는 돈 맛이 들리면, 중은 고기 맛 알면 빈대도 먹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돈 맛을 알고 보면 그 주일 팔아버립니다. 주님 십자가에 죽음도 팔고 부활도 팝니다. 목사만 파는 게 아닙니다. 가룟 유다와 목사는 교회 돈을 제일 가깝게 접하기 때문에 제일 큰 도둑이 되기가 쉽고, 큰 도둑만 도둑이고 나머지는 잔챙이 도둑은 괜찮습니까? 똑같지. 좀도둑도 기회 되면 대도가 되겠지. 큰 도둑. 큰 도둑도 큰 걸 훔칠 기회를 놓치면 좀 도둑 되겠지. 호랑이도 배고파 놓으면 쥐 잡는다고 슬프게도 그럽니다.

성경에 가룟 유다 같은 성경에 여러 가지 큰 죄인이 나올 때마다, 아이 그런 인간이 다 있을까? 돈 30에 자기 예수님을 팔아? 그러다보면 마치 자기는 그러지 않을 것처럼, 안 그런 사람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겁니다. 성경에 가룟 유다를 기록해 놓은 거는, 역사에 이런 죄인도 있다 구경 하거라가 아닙니다. 이런 죄인도 있다! 구경해라 너도 이런 인간이다! 는 말입니다. 다윗 같은 너무 위대한 인물을 적어 놓은 것은, 그 하늘의 해처럼 부러우니 좀 참고 해라 그 정도가 아니라, 네가 바로 그 자리에 갈 수 있다! 성경에 가장 큰 죄인이 나고 성경에 가장 위대한 의인이 바로 내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학교 교사가 한해 대학입학시험 수석 한 학생을 소개하며 이 사람은 뭐 예습을 했다! 복습을 했다! 뭐 필기장을 이렇게 했다! 선전해 봐야,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수석을 뭐 시골에서 하겠습니까? 그러면 참고 된다! 그 정도지. 아이 다윗 같은 사람을 기록했는데 내가 다윗이 되겠느냐? 내가 싫으면 버릴 수 있으나 내가 마음먹으면 될 수도 있도록, 주님이 돈을 내놓고 길을 마련하시고 지금도 손을 붙들고 가자 그러십니다. 따라만 가면 됩니다. 근데 전부 돈 안 된다고 뿌리칩니다. 세상 친구 떨어진다고 뿌리칩니다. 사업에 바쁘다고 그럴 시간이 없답니다. 주님 따라갈 시간. 내가 포기해서 다윗과 같은 신앙 다윗보다 나은 신앙을 걸어가지 못 하는 거지, 타고나기를 못 나서 뭐 나 같은 사람이야 시골 면장 하나도 안 되는데, 그 세상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첫 번째 말씀 유월절, 한해의 언제와 같다고요? 설날 한해의 시작과 같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이 새해를 주셨으니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곱게 복되게 쓸까? 이걸 연구해도 작심삼일이고 늘 아쉬운데, 새해 한해가 시작되는 이 좋은 기회에 저 예수를 죽일 연구 하나. 예수를 죽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도자고 위대한 사람들이니, 그들한테 돈 받고 팔 연구 하나. 교회 안에서. 지금도 우리 생애 우리 하루 해 속에 내 마음 속에는, 죽어도 잘 믿어 봐야 되겠다! 그 정도는 안 된다면 이왕이면 좀 잘 믿어봤으면 좋지 않겠느냐? 아 믿어지지 않으니까 못 믿는 것이지, 정말로 좋아서 잘 믿는 마음이 생기면 그 나쁠 게 뭐 있겠습니까? 그 잘 믿어 봤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대제사장입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이 세상 사는데 불편해서 이거 좀 떼 내 버려야 되겠다! 그 마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귀신이 들어간 겁니다. 내 마음속에 귀신과 성령 둘이 부딪혀 싸우는 겁니다. 이럴까? 저럴까? 내일 시험 날인데 공부 할까? 말까? 내일 시험 날이라고 하루 전날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일찍 보내 줍니다. 그 일찍 왔으니 마저 놀고 밤에 공부할까? 지금부터라도 좀 할까? 두 마음 없는 사람 없습니다. 동물도 그렇습니다. 동물도 이럴까? 저럴까? 선택에 자유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근데 성경이 말하는 선택의 자유, 성경이 말하는 자유란 신앙만을 두고 신앙으로 살까? 신앙 포기할까? 이 선택과 이 자유만 말하기 때문에, 동물도 일반 사람도 이 자유에는 상관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람 되어 날 위해, 하룻밤 나그네 땅위에서 영원한 영생의 기회를 주셨으니, 이게 뭔가 좀 알아보고 여기에 맞추어 좀 잘 살아 볼까? 이게 대제사장입니다. 아이 뭐 그런 생각을 해? 바쁜데, 이게 내 속에 가룟 유다입니다. 이 두 마음이 서로 싸우다가 내일 시험 날 또 성적 내려가면 집안이 난리겠지? 또 뭐 오늘 특별히 놀러 갈 만한데도 없고 아이 뭐 앉아 공부나 하지! 그래도 이제 하루 전날 공부에 주력을 했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에이 놀아 버리자! 이랬다면 선택의 결과는 각자가 지는 겁니다. 내 속에 성령과 악령 사탄이 싸웁니다. 내 마음을 두고 이러자 저러자, 그래서 믿는 사람은 믿기 전에는 신앙을 두고 고민은 없는데, 신앙 문제를 두고 양심의 가책이 생기면 그게 중생이 됐다는 뜻입니다. 다른 걸로는 알듯 해도 잘 모릅니다. 교회를 갈까 말까 이 고민은 안 믿는 사람 중생 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생기지를 않습니다. 그 뭐하는 데지? 왜 가지? 이렇지. 교회를 갈까? 말까? 말씀은 이러니 말씀으로 살까? 말까? 아무래도 환경이 이런 걸 보니 주님은 이걸 기뻐하시겠는데, 저러는 거는 좀 신앙의 양심의 가책이 되는데, 말씀과 신앙을 두고 망설이는 것은 양심이 있다는 말이고, 그 신앙의 양심은 중생된 교인에게만 주시는 겁니다. 천국 갈 사람의 가장 확실한 표시는 이겁니다.

안 믿는 사람이 교회 연보 크게 할 수 있습니다. 선교도 갈 수 있습니다. 그거 가지고는 긴지 민지 알기가 참 어렵습니다. 본인만 아는 것, 정말로 신앙의 갈등이 없었냐? 신앙의 갈등을 정말로 느껴 봤느냐? 느꼈다는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느낀 겁니다. 예수님을 돈으로 바꿔 버려? 그래도 주님인데, 구원의 주님인데, 그래도 돈이 너무 큰데, 가룟 유다가 처음부터 그리 된 거 아닙니다. 돈을 자꾸 접하다 보니까 돈이 뭔지 알아 버렸습니다. 여기 대부분 군대 잘 모르시죠? 그 별 하나 다나 뭐 소위 다나 뭐 작대기 두 개 다 나 군인은 똑같이 보이지, 아 고속도로 휴게소에 별 세 개 달린 거 오면, 한 개 더 달았네! 싶지 뭐 지금 인사를 할 겁니까? 우리가 뭘 할 겁니까? 그냥 보지. 근데 군에 갔다 온 사람, 현직 군인 이런 사람들은, 별 하면 그냥 대통령보다 더 무섭습니다. 아니까. 

12월 말이 되면 여수 순천에 길을 닦습니다. 건설 사업을 아는 사람은 어 저건 오천만 원 짜리 저건 한 3억짜리 저건 한 20억짜리, 한겨울에 지금 마지막 공사하는 거 보니까 막 눈먼 돈 풀어서 그냥 집행 하느라고 바쁘니 저건 한 50% 남겠다. 저거 적어도 20% 남겠다. 건설을 해 본 사람은 도로 건축 딱 보면 돈이 보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아이 겨울에 세면을 하면 저게 잘 얼까? 이것만 보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이 또 길을 잘 닦아 줄런가 보다. 제 돈인 줄도 모르고 누구 돈 먹는 것도 모르고, 예수님의 제 1의 제자가 유다고 그래서 예수님의 돈을 다 맡겨 놨더니만, 처음에는 그 돈을 복되게 쓰고 관리하다가 자꾸만 돈을 상대하다 보니까 돈이 점점 얼마짜리인지 돈 맛을 알고, 돈이 얼마나 센지를 알아버렸습니다. 어느 정도? 예수님 하고도 바꿀 만큼. 아이 돈 가지고 부모를 팔아? 고려장은 돈 가지고 부모 판 거 아닌가요? 이래 말하면 남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예수님까지 돈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바로 그렇게 되었을까요? 세월 속에 조금 조금 가다가 보니까 그렇게 되어져 버렸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이 맡긴 돈을 하나 둘 손댈 때는, 사탄 밑에 졸병들 귀신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가룟 유다한테 이 돈이면 뭐가 되는데 이 돈이면 뭐가 되는데, 이때 악령을 귀신이라 그럽니다. 작은 죄를 짓게 하는 것, 그래서 돈 맛을 많이 알고 보니까 이제 예수를 팔아서라도 일을 내야 되겠다 싶을 때는, 밑에 졸병 귀신이 아니라 대장 귀신 사탄이 와서 직접 가룟 유다를 붙들고, 가자! 하나님 나라에 제일 두목들을 만나서, 아예 예수를 통째로 그냥 팔아 버리자.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사람은 고종입니다. 이런 역사는 유치원이라도 가르치고 알아야 되는데, 뭐 이완용이 팔았다? 그 고종이 판 겁니다. 임금이 제나라 파는데 어떡할 겁니까? 아니면 고종이 자살을 했던지 난리를 했어야지, 일본 밑에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이제 와 가지고 비겁하게 이 소리 저 소리. 저그나라라고 우리 조상들은 생고생 했더니마는 백성과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었습니다. 욕을 해도 욕을 할 때 해야지요? 엉뚱한데 욕을 해요? 고종 욕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고종은 왜놈들에게 억울하게 그냥 속은 거다. 당한 거다. 협박을 받은 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조선은 임금의 나라입니다. 이완용의 나라가 아닙니다. 임금이 팔았지. 예수님은 누가 팔았냐? 가룟 유다가 팔았습니다. 오늘의 가롯 유다는 누군가? 내 속에 욕심입니다. 내 속에 무지입니다. 내 속에 자존심입니다. 주로 자기 속에 장점입니다. 난 남들보다 머리가 탁월하다. 그 머리가 대개 주님을 팝니다. 난 남들보다 자존심이 세다. 그 자존심이 반드시 주님 팔 겁니다. 난 한 번 마음먹으면 뚝심이 있어 뭐 옳든 그르든 난 끝을 본다. 그 끝을 보는 강단이 예수님을 언젠가는 팔 겁니다. 귀신이 그거 다 알고 잡고 들어갑니다. 큰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홍수를 120년 전에 노아에게 미리 알려 줘서 기회는 많이 주시 듯이, 평소에 미리 잘 생각하고 따져 보고 연구하고 비교하고 느껴보고, 그러면 조용한 사람입니다. 조용한 사람이 무서운 겁니다. 평소에는 그냥 주는 밥 먹고 자다가, 아 임진왜란이 생겼단다! 아 국가가 그러면 내가 한번 나가 봐야 되겠다! 이런 사람을 보통 영웅호걸이라 그러는데, 영웅호걸이 대개는 유명하지만은 그 영웅호걸이 그 별로 그렇게 좋지는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인생이 뭔가? 주일이 뭔가? 예배란 뭔가? 예배가 하필 왜 이런 식인가? 저런 식인가? 왜 기독교인은 교파가 여러 가지일까? 우리는 왜 하필 또 간판이 이렇고 이런 식인가? 시간 있을 때 지금 평소에 하나 둘 물어보고 비교해보고 따져보고 생각해 보고, 아 이게 이렇구나! 느껴지고, 느껴지고 느껴지는 것이 반복이 되고 깊어지고 강해지게 되면, 깊이 박히는 못처럼 깊이 박혀서 빠지지 않는 못처럼, 이렇게 서서히 밀고 들어가니 이게 무섭습니다.

냄비에 라면 끓이려고 불 넣어 놓으면, 불 넣자 막 바르르 그냥 생난리입니다. 아이고 뜨겁구나! 그거가지고 오늘 라면 하나 게워 때웁니다. 닭 삶지도 못할걸요? 냄비에 끓어가지고는? 가마솥에 불을 때 놓으면 하루저녁 때 놓으면, 이건 시시해 보이나 그 속에는 소를 잡아넣어도 소 곰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의 무서운 열량이 있습니다. 이런 걸 좀 보셔야 됩니다. 여반이 민첩해서 남자하고 달리기 시켜 놓으면, 여자들이 먼저 다 먹고 먼저 말하고 대개 그럴걸요? 혹시 여자는 냄비 쪽이 아닐까? 생각하셔야 됩니다. 남자 저것들은 멍청해 가지고, 멍청해요? 소처럼 또는 가마솥처럼 그러면 그건 단점이 아니라 무서운 장점이 되는 겁니다. 가룟 유다를 사단이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아치울 때, 그 사탄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지켜보다가 그 중에 가장 잘 믿고 예수님의 신임을 가장 받는 사람, 그리고 돈이 들어갑니다. 이제 돈이 맡겨지는 순간 돈을 타고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를 않습니다.

유리면을 그냥 손으로 잡으면 잘 잡히지 않지 않습니까? 근데 유리에 울퉁불퉁한 게 있으면 잡히지 않습니까? 돈을 맡겼다? 돈을 관리한다? 돈을 받고 보관하고 계산하고 돈을 지출한다? 한번 두 번 한 달 두 달? 그 틈에 이제 자잘한 귀신들을 보내 가지고, 뭐 이건 계산하면 하겠지마는 내가 뭐 양심 있으니까 계산 안 해도 이거 알아주시겠지! 이렇게 하나씩 둘씩 슬금슬금. 옛날에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저 뭐, 뭐라 그러지요? 쌀뒤주, 쌀뒤주 쌀 빼낼 때 다 보셨나요? 친정 빼낼 때, 또 산업사회 되면서 남편 벌어 온 돈 손댈 때, 뭐 해 본 분들이야 다 알겠지. 깨끗하게 커 가지고 그게 뭔가 모르는 사람들은 착해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날 귀신이 통째로 들고 갑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뱀은 아니 나 뱀의 죄 짓게 하는 지혜는 알기는 해야 속지를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뱀과 똑같은 죄인이 되는데 내 인격은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 나는 성령의 사람의 깨끗함을 가지고 죄인의 죄짓는 작정과 단계와, 그런 절차는 잘 알아서 속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 오늘 주일마다 한 주간 마다 또 지난 1년을 요즘 회고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한해 전체를 통해 나는 주님이 꼭 이걸 원했던 거 같다. 한 해를 돌아보면 좀 알기가 쉬우니까. 범위를 좁히면 이게 그 선도 그렇습니다. 종이에 직선을 그어놓고 종이에 직선을 1cm 그어놓고 이게 직선인지 곡선인지 알기는 어렵습니다. 근데 종이에 1m선을 그어라 해 놓고 이게 직선인지 곡선인지 아는 것은 쉽습니다. 직선인지 곡선인지 10리를 걸어봐라 여지없이 나와 버립니다. 하루하루를 두고 계산해 보면 그래도 오늘 성실하게 산 거 같다. 부족하지만은 말씀으로 산 거 같다. 주님을 팔아넘기고 그런 일은 안 한 거 같다. 그 웬만한 사람이면 하루해를 정리해도 나오고, 하루해를 정리해보면 별것 없는 분들이 대개입니다. 그런데 1년을 되돌아보며 지난 한해 어찌 살았던가? 생각 없이 살면 올해도 또 작년처럼 됩니다. 어려 망나니가 어려 망나니라 문제가 아니라, 어려 망나니가 철들어 망나니로 계속 이어질지 이어지지 아니할지 이게 문제입니다. 학교 보내 놓으면 선생님 말하는 것은 어쨌든 안 듣는 이것이, 나중에 회사를 들어가서 어떤 회사든 회사 시킬 때는 이제 말을 듣겠는가? 이게 된다면 뭐 학교 공부 되면 되고 말면 마는데, 이건 어른이 말하고 체계가 말하고 집단이 말을 하면 어쨌든지 빠져나가지 고분고분하지는 못하다. 이건 회사 들어가서 그래 놓으면 어떡할 겁니까? 가정을 그렇게 해놓으면 어떡할 겁니까?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공부해서 뒤에 못 쓸지라도 하기 싫은 걸 견뎌내고, 하기 싫은 걸 단계를 밟고 앉아있기 어려운 시간에 집중을 해 보는 자체라는 것은, 그걸로 공부가 잘 되면 더 좋지만은 그걸로 공부가 안 되도, 이건 회사에 사회생활에 가정생활에 신앙생활에 근본이 되는 인격 문제가 따릅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자기를 여지없이 점수 내는 데는 참 좋습니다. 1년 점수를 내어 가지고 50점이면, 자기의 평생과 자기라는 인간이 50점일 가능성은 대단히 많습니다. 하루하루 가지고는 어렵지만은. 아 물론 10년 50년을 가지고 평가하면 더 쉽지만은, 기회를 다 떠내려 보내니 1년 단위로 결산을 한 다음, 괜찮으면 이대로만 가자! 됐다! 좋지 않으면 더 이상은 또 이럴 수는 없다! 요렇게만 방향을 바꾸면, 하나님 없는 인간이라도 새해에는 굉장히 좋은 한 해가 될 거고, 믿는 사람은 방향을 이렇게 잡으면 위에서 더하기를 해 주십니다. 인간이 작년에 50점 살았는데 그래도 60점 과락은 넘겨야 되지 않겠냐? 해서 올해 60점으로 발전을 했다면,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은 50점이 60점으로 발전한 게 전부입니다.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지켜보면서, 그 50점을 한탄하고 60점으로 출발을 하고 이어지네! 10점, 인간은 10점을 더 노력하는 걸, 하나님은 네가 10점을 노력했으니 나는 너한테 한 200점 500점 1,000점을 얹어 주마! 이렇게 다윗은 올라갔습니다. 다윗이 올라가고 밟아간 순서는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한 계단 두 계단 밟아 올라가다가 하늘로 뛰어 버렸습니다. 그 다윗의 전투력이 아닙니다. 돌아보며 노력하는 다윗을 보면서 하나님의 보너스가 간 겁니다.

뭐 일반적으로 100만 원이면 보너스가 10만 원 붙거나 많아봐야 30만 원 붙고 그렇겠지. 본봉보다 보너스가 많으면 말이 안 되겠지요? 인간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인간의 노력을 보시다가, 좀 살펴 줘야 되겠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면 100만 원짜리가 10억이 되듯이 100억이 되듯이, 필요한대로 알아서 위에서 다 내려 보내십니다. 이걸 불신자들은 기독교의 기적이라 그럽니다. 믿는 사람들은 능력의 체험이라 그럽니다. 이걸 교리적으로 말하면, 인적 요소가 충성을 할 때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대신하고 함께 해 주신다고 요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주로 살펴볼 것이 하나님이 작정한 대로 세상은 흘러갑니다. 가룟 유다는 원래 예수님을 팔도록 하나님이 만들었고, 제자로 넣었고 그다음 때가 되니까 돈 받고 판 겁니다. 가룟 유다는 몰랐는데 가룟 유다는 나기 전부터 그렇게 시간표가 되어 있었습니다. 못 빠져 나갑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그렇습니다. 이걸 한번 따라해 보십시다. 하나님의 주권(하나님의 주권) 주권예정(주권예정) 주권섭리(주권섭리)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서인 따라 하셨나요? 안 따라 한 거 같은데, 옆에 형아 잘 봐요 따라 하는가. 하나님이 세상이 있기 전 영원 전에 세상을 만들 날짜, 세상이 돌아가는 일정을 일점일획도 가감 없이 다 짜놓고 만들어 뒀습니다. 이걸 하나님의 예정이라 그럽니다. 못 벗어납니다. 그냥 무식하게, 3층짜리 집 지으면서 예산 없이 그냥 되는대로 뚝딱뚝딱 지어 올라가는 사람 보셨습니까? 뭐 이번 광주처럼 내려앉습니다. 세계 최대의 회사라는 현대건설조차도, 하나 삐꺽하면 저렇게 무너져서 저거 어떻게 될 겁니까? 이걸 계산하고 계산 있고 따라가는 겁니다. 사람이 부족해서 계산대로 못가는 수가 있지, 계산 없이 덮어놓고 하는 거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드시고 인간의 지혜를 만드시고 정확무오하신 하나님이, 그냥 하다가 불쑥불쑥 이렇게 세상을 운영하고 계실까?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 5절 예정대로 딱 못을 박아 두셨습니다. 또 성경을 읽어보면 예정입니다. 뭐 따져 볼 것도 없이 하나님의 작정한대로 가고, 오늘 말씀도 22장 22절 예수님은 작정 된 대로 십자가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는 이 순간 누가 팔아서 누가 죽일 건가? 여기에 내가 해당되면 내가 거부를 해도 그 사람이 되어 집니다. 가룟 유다가 그렇게 결정이 되어졌고 가룟 유다는 피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 가룟 유다를 기계처럼 막대기처럼 쓴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에게 돈이 좋으냐? 예수가 좋으냐? 세상이 좋으냐? 천국이 좋으냐? 사람이기 때문에 기회를 줬고 물어보셨습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지만은, 그래도 돈이 예수보다 낫겠는데? 그래? 아예 예수와 돈은 어떠냐? 아 뭐 예 돈이라면 예수보다 낫겠습니다. 그리고 팔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룟 유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영원무궁한 책임이 떨어지는 겁니다.

예수님을 못 박았던 그 쇠로 된 못, 예수님이 매달렸던 그 나무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나무와 못은 사람들이 끌어다가 세우고 박으니까 박힌 거지, 느낌도 없고 자기 선택의 자유 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압니다. 느낍니다.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인자는 작정된 대로 간다. 그러나 예수를 파는 가룟 유다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여기 화를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단어로 표현을 해야 되는데, 영원한 지옥의 참혹함을 담을 수가 없고 기록할 수가 없어 딱 줄여서 화가 있다! 좋지 않다! 안 좋은 겁니다.

뒷골목에 할머니가 너 재미없어! 이러면 아이들이 웃고 지나갑니다. 순천시내 조폭이 너 손 봐 줘? 손금 본다말 아니지요? 너 손 봐 줘 그러면 심장이 뚝 멎을 겁니다.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끝난 겁니다. 이번 한 주간 예고 없이 기회주지 않고 주님은 우리를 기계처럼 짐승처럼 막대기처럼 그렇게 무시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기회주고 충분히 알 수 있고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하십니다. 많은 기회를 통해 그렇게까지 예수님과 돈을 바꾸고 싶으냐? 바꿔라 그리 되어 집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장 어려운 교리입니다. 지금 설명 드린 오늘 아침에 이 설명은 삼위일체 하나님만큼 어렵다 할 만큼 그렇게 어려운 교리입니다. 양심으로 차분하게 생각하며 한 주간 공부 해 보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신 주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 지금 다시 살아 한 번 더 그러라면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때는 작정하고 했습니다. 우리 하루 우리 한 주간 그리되지 않도록, 각자 자기의 신앙과 자기의 세상 잘 살펴 봐 보십시다.


(기도)
자기 속에 자기 신앙의 양심을 통해, 오늘도 한 주간도 또 지난해를 돌아보며 한해를 출발하는 이 시점. 양심의 가책 되는 것은 내 양심에 내가 느끼는 것이나, 그 양심에 외치는 분은 부활하신 주님의 실체 주님의 내면에 오신 주님의 말씀이오니, 이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요. 이 양심의 소리를 꺾는 것이 주님을 꺾어 버리는 것이며, 자주 거부하므로 다시는 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 쯤에는, 그 면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된 것이고, 그 이유가 세상이면 세상 때문에 경제면 경제 때문에 주님을 판 것이 된다는, 누가복음 22장에 이 말씀 가지고 우리 모두 내면을 잘 돌아보아, 내 속에 신앙의 강한 점이 주도를 하고, 내 속에 신앙으로 반대되는 부분을 꺾으며, 주님을 기쁘시게 오늘도 한 주간도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어, 우리 속에 주님을 판 가룟 유다와 같은 자기는, 미리 배제하고 미리 물리치는 저들이 되어, 복된 주님으로 사는 성찬의 주의 것, 주의 형상 주님이 기뻐하는 주의 사람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수술 후 또는 치료를 두고 주님 앞에 호소하는 우리 모든 교인들, 또 세상 여러 걱정 근심 인하여 주님께 은혜를 구하는 우리 가정들, 또는 만사 너무 행복하여 세상에 깊이 묻혀있는 우리 교인들까지, 모두들 자기를 살펴 복된 한 주간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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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
교안은 장년반에 참석하는 주일학생을 위해 요약했고, 선생님의 지도를 위한 것입니다.
교안대로 설교하지 않으나 본문에 대한 한 주간 정도의 설교의 방향입니다.


22.1.16주전    눅22:22          충성과 주권            예장총공 신풍교회

■ 주권 교리
① 주권
주권 : 주인의 (권리)
예정 : 주인의 (계획),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섭리 : 예정의 (운영)
절대 : 예외가 (없는), 마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② 충성
자유 : 충성은 (선택)
성경 : 계2:10 죽도록 (충성)하라
충성 : (다하)는 순종
성화 : (충성)만 천국

■ 주권과 충성
① 누가복음 22:22
예정 :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자유 :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주권 : 예수님은 (예정)한 대로 십자가
유다 : 충성을 버리고 배신하여 (멸망)

② 에스더 4:16
예정 : (죽으)면 자유 : (죽으)리이다

주권 : 생사는 하나님의 (예정)충성 : 죽으면 죽으리이다, (구원)

■ 자유성을 주신 이유
① 하나님의 형상
  자유 : (절대)자 하나님만
  인간 : 하나님의 (모형)

② 선택의 체험
  순종 : 복을 (누려) 보고
  거역 : 화를 (당해) 보고

③ 주권 속의 자유
  필연 : 목적은 무조건 (성취)
  참여 : 우리는 (느끼)며 동행

■ 깨닫는 방법
① 실행
  이론 : (지식)으로 깨닫지 못하는 세계
  행함 : (실행)해 보면 비로소 알게 됨

② 성장
  생명 : 세월 속에 (자라) 감
  이해 : 자라 봐야 (알게) 됨

③ 계시
  은혜 : 사람에 따라 (열어) 알려 줌
  시기 : (충성)으로 보면 대개 보여짐

단4:17,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①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②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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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서기 2022.01.16 19:57
화면의 16분 30초 ~ 19분 20초에 '예배 시간의 안내'와 관련하여 '교인의 예배 생활'에 대해 3분 정도 설명이 있었습니다.
예배 때, 실내 안내는 없는 듯 조용히 그리고 최소한만 움직여야 하고, 교인은 안내의 부탁은 전체를 위해 존중하셨으면.
전체 예배가 곤란할 만큼 좌석이 복잡할 때는 양해를 구해도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냥 지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뒤 쪽에 앉는 분들은 무슨 사정이 있거나 신앙을 출발하는 분들인데 우리 교회의 전체 분위기로 볼 때 자연스러우니
안내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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