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새21.12.10 신28:3 후대의 복, 믿음의 선진 가족, 예정대로 불변양면으로 이어져 최종 복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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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21.12.10 신28:3 후대의 복, 믿음의 선진 가족, 예정대로 불변양면으로 이어져 최종 복이 됨

서기 0 60 2021.12.1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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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0 금새

제목 : 후대의 복, 믿음의 선진들의 가족, 예정대로 불변양면으로 이어져 최종 복이 됨

찬송 : 122장(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신명기 28장3절 -

성읍에서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내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3절은 환경의 복을 말합니다. 이런 환경이든 저런 형편이든 믿는 사람은 환경, 입장, 주소, 주변, 이웃, 사회, 자기 몸 밖으로 문제를 자기 몸 밖을 문제 삼지 말라,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나라는 존재는 환경에 복의 발원지와 같고 수도꼭지와 같으니 하나님의 은혜는 저수지처럼 한량이 없고 내가 하나님께 바로 연결이 되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수도관에 막힌 게 없으니 나를 통해 필요한 물은 얼마든지 흘러나오게 돼 있습니다. 전기만 들어오면 수돗물만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는 주변으로, 사방으로 밝혀 주고 생명의 운동이 얼마든지 역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도 수도 끊어 버리면 그러면 사막화가 되는 것이고 전기 차단 해버리면 흑암의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밝은 곳에 가서 불을 켜면 불의 혜택이 적습니다. 없습니다. 모든 것이 넉넉한데 거기다 대고 또 물을 흘려 놓으면 물도 많으면 은혜도 정도 이상 껏 넘치면 썪습니다.

초대교회가 한 삼백년 고생을 많이 했는데 믿는다고 마구 죽어 나가던 그런 어려운 때 그때는 교회가 폭발적으로 늘어 나갔습니다. 믿는 사람은 뭐 따로 말할 것 없이 전부 순교를 할 순교자거나 아니면 순교의 각오가 섰을 때에 교회를 비로소 다니게 되었습니다. 목숨 걸고 첫 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 북한 땅에서 믿겠습니다, 하는 순간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는 생명 걸어야 됩니다. 초대교회 주후 삼백년까지가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주후 313년 로마제국의 황제가 마음껏 믿어라 믿을수록 좋다, 라고 되어 지자 그 순간부터 교회 안에는 돈은 가졌는데 믿음은 없는 사람, 실력은 넘고 넘치고 정치력도 있고 재주는 많은데 주님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이런 사람들이 그냥 중생도 없이 예배당 안으로 밀려들어왔습니다. 왜 밀려들어 왔겠습니까? 지금 대통령이 불교 좋아하면 불교에 교인이 늘 것이고, 지금 대통령이 그냥이 아니고 열심히 천주교를 다니면 전국 곳곳에 성당에 좋은 사람들이 밀고 들어갈 겁니다.

그게 정치고 그게 날랜 사람들인데 로마의 황제가 삼백 년 만에 기독교의 자유를 선언 해 놓았으니 그냥 믿을 사람 믿어라 말이 아니라, 온 세계에다 대고 믿거라, 이 정도의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이곳으로 밀고 들어와야 앞날이 있지 않겠냐? 이래 놓으니 세상에 날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 예배당 안으로 그냥 들어오게 되고 그때부터 교회는 연보는 넘치고 회원은 많아지고 예배당은 마구 성당?으로 솟구쳐 오르는데 말씀으로 사는 사람, 말씀 아니면 안 되는 사람, 말씀으로 살다가 생명을 거는 사람들은 묻혀서 그냥 다 없어졌다 할 만큼 되어져 버렸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실력도 되지 아니 하는데 희생이니, 봉사니, 선교니, 순교니 그러는 것도 고장이고 그러나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께 붙들리는 만큼 나는 생명이며 내 주변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통해서 번져 나가므로 믿는 사람은 환경에 신세지고 덕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이 하나님과 가까운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혜택 보는 것이 기본적입니다.

4절에 너 몸의 소생과 너 토지의 소산과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육체적으로 너를 통해 태어난 사람, 환경이 복을 받는데 육체를 통해 태어난 사람에게 복이 가지 않겠느냐? 아닌 거 같아도 그거는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무엘의 두 아들이 사무엘 같은 신령한 선지자, 사무엘로 인하여 시대가 복을 받았는데 정작 아들 둘은 그 죄인이 되어 이스라엘의 파탄의 원인이 되지 않았느냐? 따로 좀 살펴 볼 일 있습니다. 뭐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바로 아는 한국교회에 누가 봐도 신앙으로 출중한 분들, 그분들 자녀들이 우리는 생활 속에 섞여 있습니다. 제대로 신앙생활 잘 하는 분들이 없어 보입니다. 공회 여러 조각으로 전부 산산조각 난 것도 다 그분들의 손이었고 서울까지 나락에 떨어진 것도 백, 대구 공회 쪽에 나간 것도 백, 부산 공회 하나, 둘, 셋, 넷 단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목사님 직계나 바로 직손들입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로 이스라엘은 왕정 국가가 시작이 됩니다. 그 왕정국가가 이래 보면 좋아 보이나 그 좋은 것이 아니고 또 우선 보면 하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 자리에서 끌어내 버리고 인간을 대신 그 자리에 올려놨으니 에덴동산 선악과 먹는 집과 국가 형편으로서는 꼭 같습니다.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한 것은 에덴동산에 선악과 먹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선악과 때문에 인간은 마음먹고 죄를 지었으나 하나님은 그것까지 예정에 다 포함을 시키고 그 너머 이 위 성자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 되시고 우리는 만들어 놓은 인간에서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차원이 그냥 말도 못 하게 높아져 버렸습니다. 왕정의 그 역사 때문에 이스라엘은 보이는 면으로는 늘 불행했고 인간적으로는 영 끝장이 났고 그걸 넘어서는 하늘나라를 소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건강할 때와 몸이 불편할 때와 아예 불치병에 난치병에 걸렸을 때와 인간 볼 때는 다르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신앙은 깨끗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양면을 보셔야 됩니다.

너 몸의 소생이 복을 받는다, 너 토지의 소산이 복을 받는다,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는다. 여기 자녀, 또는 열매, 또는 새끼라는 말은 결실, 결과, 다음을 말합니다. 오늘은 내가 살고 내일은 나를 이어 다음의 내가 나를 이어 삽니다. 이게 내 몸의 소생입니다. 토지의 소산이란, 땀 흘려 토지를 갈고 토지를 움직였는데 그 결과가 열매로 열립니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라, 짐승을 먹여 세월이 지나가면 그 열매가 생기는 법입니다. 지금도 좋아야 되고, 지금도 좋아야 되고. 쌀 몇 가마니 농사를 지으면 가족이 생존하지 않습니까?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되박을 하다가 그마저 먹어도 되는데 한 되박을 퍼다가 이건 종자로 심습니다. 이건 불행인데, 뺏기는 건데 모르는 사람은 그게 불행이고 뺏기는 것이나 아는 사람이 보면 이게 뿌려지므로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이 돌아오게 됩니다. 백배라는 말이 보통 말입니까? 옛날 벼는 모르겠고 요즘 벼는 벼 이삭 하나 꺾어 헤아려 보면 백 스무 개, 백 삼십 개 밑으로는 거의 없습니다. 웬만하면 백오십 개 씩 열립니다. 백배, 육십 배, 삼십 배가 아니라 백 몇 십 배의 결실을 이루어내는 내일 때문에 이것은 투자를 하는 겁니다. 저금을 하는 거고. 말하자면 횡재를 하는 거고, 내 목숨이 이어지는 것이며 내 생애가, 내 몸이 죽어도 자녀로 인하여 그다음, 뻗어 나가는 겁니다. 당장만 보지 말고 그 뒤를, 그 훗날을, 멀리까지를 넓ㄱ, 넓게 계산을 해 보면 하나님께 연결된 그 행위는 그 사람은 말 할 것 없고 그 행위의 결과, 그 열매, 그 훗날, 그 뒷날까지를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훌륭했더라면 다윗이 없었을 겁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들이 사무엘이 일반 신앙이었다면 보이는 복을 받고, 보이는 신앙생활을 잘 했을 겁니다. 사무엘이 사무엘이 었기 때문에 사무엘의 그 자녀가 복을 받을 것이며, 아 복을 받을 것이며 있으며 했으면 틀림없이 복은 갔을 건데 그 복이 어디 있냐? 다윗을 찾아 봐 보시지요. 여기에 그 복이 다 소복하게 쌓여 담겨 있는 겁니다. 현재까지 봐 가지고는 손양원 목사님 같은 위대한 인물이 한국교회 역사에는 없었는데 손양원 목사님의 일곱 자녀 그 밑에 손주들까지는 지금 파악이 다 되고 있습니다. 우리만. 손양원 목사님의 복이 흘러 내려갔다 싶을 만 한 분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네 몸의 소생이 복을 받는다 했는데 어디 갔습니까? 다시 들여다보면 그렇게 위대 하지는 못해도 이 복이 쌓여 있고, 모여 있고, 지금 마구 돋아 나오고 있구나 하는 곳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으면 복이고 못 보면 할 수가 없고! 황금 밭에 가 지고도 ‘금 쪼가리가 없네’ 그러고 잡석, 채석장에 가 가지고 자갈돌이나 몇 개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주남선 목사님 그 쪽은 자녀들이 세상적으로는 참 크나큰 복을 받았다는 분들이 좀 계십니다. 그런데 신앙의 부모 밑에 신앙의 자녀들이 신앙의 열매가 맺어야 되는데 신앙으로는 아직까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신지가 칠십 이년인데. 이쪽에 없네, 하고 없을 리는 없는데 성경에 말씀 하셨으니까 그리고 들여다보면 아, 공회 쪽으로 그 열매가 다 쏟아 졌구나, 그리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손양원도 그렇습니다, 주기철도 그렇습니다.) 아, 손양원도 그렇고 주남선도 그렇습니다. 다른 분은 다른 곳으로 달리 그렇게 내려가고 있을 겁니다.

말씀은 결단코 허공에 돌다가 열매 없이 사라지는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가 반드시 땅을 적시어 열매를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뒷조사 할 연구하지 말고 말씀이니까 오늘의 나의 길은 나의 복이며, 오늘의 나의 길은 나를 통한 사람도, 내가 한 일도, 내가 수고한 수고의 뒤도 전부 다 소복소복하게 쌓이는 이걸 보는 눈을 먼저 가지도록 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복은 좋아하는데 복을 줘 봐야 복을 모르면 결국은 그 복은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가치를 모르면 가치 모르는데 그 가치는 있지를 않습니다. 금반지가 뭔지 모르는 아이한테 줘 놓으면 가지고 놀다가 잊어버리지 그렇게 챙기지는 못합니다. 좋은 거는 반드시 틀어쥐게 돼 있습니다. 무엇이 좋은 거냐? 무엇이 복이냐? 이 복이 어떻게 흘러가며 어떻게 솟구치느냐? 깨달아야 복을 받게 되고 주실 때 가지게 됩니다.


1차-k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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