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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8 주전
제목 : 말씀의 양심을 통한 성령의 은밀한 인도, 늦어도 그 인도를 찾아 순종할 것.
사회 : 김희락
찬송 : 5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38장(성령이여 강림하사) / 115장(나의 갈길 다가도록)
본문 : 요한일서 2장 27절-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다 같이 묵도 드림으로 예배 시작하겠습니다.
(기도)
보혜사 성령 곧 내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인간이라면 한두 번 말하고 듣지 아니하면 버릴 텐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목적하신 성부의 불변의 목적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성자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혀 변치 않고 흔들림 없는 당신의 아들로 자라가게 하시기 위하여, 매 순간마다 우리의 신앙의 양심 속에 두들기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데, 저희의 부족한 행위로는 주님 앞에 나올 수 없사오나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오늘 이 귀하고 복된 주의 날에 주님 앞에 나왔사오니, 저희들 마음을 모으고 주님 앞에 정돈하여 오늘 나에게 알려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그렇게 자라가는, 귀하고 복된 이시간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동행하여 주옵소서. 세우신 주의 종 영육 간에 강건함을 더하시오며 우리 교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건강을 구합니다. 아직 길을 모르고 자라지 못한 어린 신앙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곳곳마다 세우신 주의 종들에게도 동행하여 주옵소서. 실시간의 은혜에도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오늘 찬송가 2장, 첫 번째 몇 장인지 기억하십니까? 학생들? 5장이었습니다. 또 두 번째 찬송 다 같이 몇 장이었나요? 38장이었습니다. 우리찬송 5장, 38장 이런 찬송들은 우리나라 100여년 교회 역사에 이 찬송을 모르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근데 한 2, 30년, 3, 40년부터 이런 찬송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부르지를 않아서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옛날 거라고. 근데 이런 5장, 38장 같은 찬송은 좀 기억을 하고 불러 본다는 그 자체가 이거 참 굉장한 겁니다. 희망 없는 아이들은 놀이터를 갑니다. 희망 있는 아이들은 도서관을 갑니다. 아이, 다섯 살 여섯 살 때 놀아야지요? 근데 10살 20살쯤 되어 지면 놀이터 가던 애들이 만화방을 갑니다. 그 놀이터에 놀다가도 이제 10살 20살이 되면 도서관을 가면 이 아이는 뭔가 있는 아이입니다. 나쁜 거 아닙니다. 놀이터 다니다가 만화방 다니는 아이들이 아이 뭐 도서관을 가느냐? 이렇게 놀리면 왕따를 시켜 버리면, 도서관을 가고 싶은데 친구들이 전부 놀이터 갔다가 만화방을 가고 PC방을 가고 게임방을 가는 바람에, 왕따 당할 까봐 할 수 없이 그쪽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이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요건 못난 것들입니다. 잘난 아이들은 너희들은 놀이터 가고 너희들은 만화 방 가고 PC방 가고 게임 방 가고, 여기 연세 많은 분들 PC방 게임방 가면 그다음에 무슨 방 가는지 혹시 아십니까? 도박장을 갑니다. 노름판을 갑니다. 돈 많고 자유로운 세상이니까 한쪽은 놀이터만, 놀이터만 부모들이 돌아 댕겨서 그쪽을 길러 놓으면, 자꾸 노는 것만 어릴 때부터 길러 놓으면 공부한다고 조용하게 앉는 것은 구경도 못 했고 체질도 아니고 앉아 보지를 못 하니까, 이거 세 살짜리 다섯 살짜리 하나 낳아 놓으면 온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몇 십 명이 돼 가지고, 자꾸 흔들고 자꾸 노는데 돌아 댕기면, 자꾸 반복을 하면 연습이 돼 가지고 늘게 되어 있습니다.
노는 걸로만 자꾸 흔들어 놓으면 그 다음 만화방 가고 PC방 가고 게임방 가고 어른 되면 도박장 갑니다. 노름판으로 가버립니다. 거 그리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중간에 이걸 바꾸려면 애를 먹습니다. 그렇다고 5살 10살 아이를 도서관에 하루 종일 눌러나서 또 되겠습니까? 그러나 부모가 그 자라나는 아이를 잘 보며 놀아도 좀 건전한 거, 놀아도 좀 학습에 도움이 되는 걸로 살살 끌다가, 10살에서 20살 사이에 도서관에 자꾸 앉혀 가지고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뭔가 좀 앉아 있고 진득하게 붙어 있는 사람이 되어 지면, 요즘 같은 세상에는 진로 취업 돈벌이 걱정할 것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참 좋지 않게 길러 가지고 그 다음 아이를 영 바꿀 수가 없는 때가 되면, 그때 사 뭐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못했니? 세상에 이러니? 남들이 이러니? 그러는데 남 핑계 댈 거 없이 이렇게 넘치는 좋은 세상에, 조금만 신경 쓰고 조금만 어머니들이 좀 아이들의 훗날을 보며 조금씩, 조금씩 유도하고 잘 길러 났다면, 지금처럼 넘치는 세상에 좋은 거 배우고 좋은 거 익혀서 마음껏 세상 좋게 살아갈 방법은 천지에 널려 있습니다.
그 이런 이야기를 서울 강남에서 하면, 잘난 것들 데리고 앉아서 벌 소리 한다 그러겠지마는, 여기는 대한민국 제일 남쪽 여수 바닷가 소외 지역 아닙니까? 여기서 33년 지켜보고 다 그렇게 만들어 본 경험입니다. 그 예배당에도 한 주간 제일 소중한 주일 날 오전에, 강단에서 뛰고 굴리고 박수를 치고 뭔 막 그냥 생 발버둥을 치는 것을, 그 좋은 교회 아니냐? 노래방이 더 좋지! 술집은 더 잘 할 걸요 그런 거? 한 주간 별의별대 별의별걸 다 해도 주일만은 주님의 날, 주의 날, 내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이니까 그날은 나 하고 싶은 걸 조금 다독거려 줄여서, 이렇게 10시 예배에 앉아 찬송도 유행가 보다 더 나쁜 찬송부터 별별 찬송이 있습니다마는, 한 주간의 첫 주일 날 찬송 한두 장 정도를, 이왕이면 200곡 안에서 좀 더 좋은 찬송을 드린다고 그거 못 알아들어도 그 정도 5분, 10분은 견딜 수 있어야 그래야 나중에 직장도 견디고, 사업을 하다가 어려울 때도 견디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기분 내키는 대로 치워버리고 가버리고 이러면, 뒤에 손해 봅니다. 좀 앉아있고 좀 자기를 누를 수가 있어야 좋은 세상에 좋은 것이 모여지고 쌓이는 법입니다.
우리 찬송가는 만개가 넘는다는 찬송가 중에, 일반적으로는 줄여서 한 600개를 찬송가를 가지고 다닙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200곡 정도로 줄였습니다. 그 저처럼 신앙생활 전문 하는 사람들이야 뭐 몇 백곡을 부르지만은, 세상 살며 이 200곡을 다 알기도 어려울 건데 요 200곡은 찬송가 중에 진주고 보배 같은 찬송만 딱 모아 놓은 겁니다. 이 200곡 안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많은데 오늘 아침 5장 38장 이런 찬송들은. 요즘은 신학교 교수들도 모르는 찬송들입니다. 알기는 아는데 불러 보질 않아서 요즘도 그런 찬송을 부르냐? 그러는 찬송 들입니다. 근데 연세 많은 분들은 험악한 세월을 지내며 마음에 맞지 않아도 자기를 좀 누를 수 있는 분들이고, 견디기 어려워도 좀 주저앉힐 수 있는 분들이 연세 많은 분들입니다. 요즘 애들은 마음에 안 들면 엎어 버립니다. 결혼도 잘라 버리고 불 질러 버립니다. 요즘은. 연세 많은 분들은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좀 들어 주고, 기다려 주고 벌떡 일어나고 싶어도 좀 주저앉는, 이런 세월을 지내온 분들인데 그런 걸 도인이라 그럽니다. 그런 걸 수양이라 그럽니다. 그런 걸 인격이라 그럽니다. 그런 사람을 인간이라고 그럽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글은 짧고 돈은 들 벌어봤지만은, 지나온 세월 속에 나 하고 싶은 걸 좀 눌렀고 참았고 기다렸고, 그러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자기 속에 인격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런 인격이라는 것이 되어지는 과정을 수양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도덕 수양 인격 이런 걸 가진 사람은 인간답다. 비로소 인간답다. 라고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초등학교부터 이런 거를 가르쳤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1년을 가르치고 2년을 가르쳐 놓으면 뭔가 좀 다릅니다. 근데 요즘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할 거 아니라 온 나라가, 교수 아니라 박사 아니라 온 나라가 막 그냥 요들 방정을 해 가지고, 머리가 천장으로 갔다가 마루로 박치기를 하면, 어따 뉴욕에가 가지고 K-POP이 돼 가지고 세계를 흔들겠다. 세계 제일 미친 짓 잘하는 사람들이 막 그냥 온 나라와 세계가 박수를 치니까, 그게 지금 꼴값 인 줄 모르고 그게 지금 술 한 잔 먹고 발광 발동, 마약 먹고 생난리, 그게 인격이고 그게 저 자식이 그래가지고 어떡하라고 그게 그 가정 되겠습니까? 그 인간 되겠습니까? 그건 기계가 더 잘 합니다. 직업상 그런 분도 있지만은 또 살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한 번씩 그거 뭐, 보는 것도 좋고 따라 하는 것도 좋지만은, 기본적으로 앉을 때 안고 그 다음 해야 될 일을 하고 듣기 싫은 것도 좀 참고, 견디기 어려운 추위에도 직장을 나가고 이게 쌓여질 때, 이게 가정을 지키고 이게 아이를 기르고 그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자라 가고, 이런 걸 지금도 견딜 수 있고 이런 것을 마음먹고 걸어 갈 수 있으면 아직도 좋은 직장은 널려 있습니다. 근데 그 좋은 직장을 좋은 줄 모르니 이게 참 애가 터지는 겁니다.
지금도 이 나라의 여자가 2,500만 명 아닙니까? 아이들 노인들 빼버리고, 이 나라에 결혼하기 좋은 여자들이 천 만 명이 넘고, 결혼하기 좋은 왕자 같은 남자들이 천 만 명이 넘는데, 눈을 하늘에 달고 세계 최고 제일 잘 난 남자 제일 예쁜 여자를 서로 구해 싸니, 그 결혼이 될 리가 없지요? 그 결혼이 안 되는 이유는 눈이 높아 안 됩니다. 눈이 높다는 걸 정신과에서는 과대망상이라 그럽니다. 옛날에는 이걸 미쳤다 그럽니다. 근데 요즘은 미친 걸 정상이라 그러니 세상이 미쳐 버려서, 제정신 제소리 하면 잡아가고 미친 세상에 함께 미친 말을 해야 정상인 줄 아는데, 요즘 한 달간 11월 달 계속 설교 하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 잘 날 연구까지 필요가 없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면 요즘 세상은 먹을 거 입을 거 넘치고 직장도 분명히 넘칩니다. 직장, 직업, 직종 많습니다. 좋은 줄 모르고 전부 안 쳐다보니까 그런 겁니다. 좋은 남자 많은데 눈에 안 든다고 안쳐다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만하면 좋은 여자인데 안쳐다보니 어떡합니까? 직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있는데 들어가질 않아서 탈이고, 남자 많은데 안 쳐다보니 결혼 못 하는 거고, 여자 많은데 안 한다니까 어떡하겠습니까? 마는 거지. 세상이 그렇다면 주일날 교회 안에 첫 시간 이번 주간 첫 시간, 5장 찬송 38장 찬송은 보배 중에서도 보배인데, 이거는 일반 금보다 잡 금, 14k 뭐 18k 이런 금이 아니라 정금, 순금, 황금이라 할 만한 이런 찬송들인데, 여기우리 안 믿는 가정에서 나오는 우리 열 살 안팎에 어린 주일학생들, 십대들까지 포함이 돼 가지고 우리 학생들은 다른 교회 시내교회 가면 막 그냥 좋아서, 또 오고 싶고 또 오고 싶은 찬송도 많이 가르치고 율동도 많이 가르치고, 남학생 여학생 애매하게 그냥 섞어 놓으면 또 가고 또 가고 또 가고 싶을 건데, 남반 여반 이렇게 떼어놓고 그냥 남녀들 사이에는 또 할머니들만 한 줄을 앉혀놓으니까 기가 막혀서 어떻게 오겠습니까마는, 그 선생님들 정성 때문에 와주시니 감사하고 그런데, 이왕 교회를 다니려면 교회는 교회답게 다니는 것이 훗날 어느 날 돌아보면 좋을 겁니다.
5장, 38장 이런 찬송을 뭔 나많은 사람들은 뭔, 노인당에서도 요즘은 안 부른다던데 그러지 말고, 요즘은 노인들도 안 부르는 찬송인데 이런 찬송이 참 좋다더라 하고, 좀 정성을 들여 보고 정을 붙여보려고 하면, 이거 보배 중에 보배라 이거 좋은 겁니다. 어느 정도 좋은 거냐? 아이들이 놀이터도 가지만은 도서관도 알아야 되고, 열 살이 되면 만화방보다는 도서관을 더 가야 되고, 스무 살이 되면 도서관 정도가 아니라 박물관 전시관을 갖다가 가가지고, 이것과 이것은 뭐가 다른고? 이 정도로 연구적으로 들어가야 그게 좋은데, 이건 어머니들이 마음먹으면 되는 일입니다. 옛날은 불가능한데 지금은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가 마음먹으면 되는 길인데, 이 나라에 여자는 있어도 엄마가 있습니까? 어머니가 없으니까 이런 좋은 세상에 안 좋은 것만 자꾸 보고 자꾸 봐 가지고, 뉴스 보는 눈이 미안하고 뉴스를 듣는 귀가 미안해서, 뉴스를 듣고 보지도 못 할 이런 세상이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 5장의 찬송, 이건 수준이 엄청 높은 좋은 찬송입니다. 영어도 영재교육 한다고 조기 교육한다고 심지어 뱃속에 있는 아이들한테, 영어 테이프를 들어서 태아교육을 한다고 그 어려운 영어를 들려주며, 자랑을 하면서 찬송 중에 찬송, 보배로운 찬송, 최고의 이런 찬송은 그냥 모두들 다 외면을 해 가지고 그런 찬송도 있나? 가끔 우리 교회 서울이나 외부에서 오시는 손님들은 한국 교회의 손꼽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오셔서, 아이! 이런 찬송이 보배인데 우리는 잊어버렸는데 아직까지 이런 찬송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라고 아는 사람들은 이 정도로 알아줍니다. 그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철이 없고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이해를 하시고, 어 찬송 이라는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한 번 두번 마음먹고 따라 부르려고 하면 저절로 이거는 읽혀지고 들어 가버리는 묘한 음악입니다. 다른 거는 배우려면 애를 써야 되는데 찬송은 마음 기울여 해 보자 하면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그만 1절 2절 가다보면 3절부터는 글 읽으면 되고 글 못 읽는 분들은, 주변 분들이 다 함께 합창을 하니까 귀로 들으면서 하면 되어 지는 것이 찬송입니다.
참 오묘한 세계인데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오기가 어려운데 애써 나오는 저, 고개를 숙여 지금 마이크까지 마스크까지 써서 잘 모르는데 저 이민지 있나요 손 좀 들어 보시지요? 얼굴 좀 봅시다! 민지, 거기 있고 또? 장민지? 또 민경이 어디 있죠? 지원이 오셨나요? 아 예,예. 모두 이 어려운 가운데 오는 학생들에게, 요즘 우리 학생들이 좋아하는 거 보다 pc 방에 가면 많습니다. 게임방 노름방 어른들은 도박 질 하는데 가면 좋은 거 많습니다. 그건 뭐 세상 살다 보면 다 구경 할 거고 주일 날 예배 때는, 이렇게 앉아 가지고 이런 분위기로 예배드린 걸 이걸 예배라 합니다. 이거 비슷하면 예배고 이게 움찔움찔 들썩들썩 하면 노래방입니다. 노래방 좋으면 아예 노래방을 찾아 가고,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았든지 하나님 앞에 주일 오전 예배는, 왔으니 예배당은 예배답고 찬송은 찬송다운 것이 좋겠다. 그렇게 마음을 가지시면 신앙에도 생각 못한 큰 좋은 날 올 것이고, 신앙을 떠나 요즘 세상에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좋은 일들이 많아 질 겁니다, 박물관을 알고 박물관에 전시물을 한번 봐 두고 어 그거 국보 몇 호냐? 이 정도가 될 때 이거 제대로 공부 한 사람이고 이거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박물관 그 어느 짝에 쓰지 그거? 뭐 그냥 고물 많던데 엿 바꿔먹으면 안 돼? 이거 자기에게 부터 불행해지는 때입니다. 주일 오전 예배당에 예배는 예배답게 기억하십시다.
여기 요한일서 2장 27절 “너희는” 믿는 우리를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는” 믿는 우리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27절에 “너희는” 하는 여기 우리입니다. “주께 받은바” 하나님이 사람 되어 날 구원하러 오셨으니 다 같이 그 이름이 뭐라고 그러죠?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답니다. 뭘 주셨지? 용돈일까? 뭘까? 예수님이 믿는 우리에게는 전부 다 주신 것이 있습니다. 무얼 줬는지 한번 따라 해 보십시다. 기름부음(기름부음) 기름부음을 주셨다니, 기름을 부어 버렸다니, 기름을 붓다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오셔서 감화와 감동으로 나를 가르칠 때의 하나님을 성령이라 한다고 그랬습니다. 성령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세상을 만드시고 운영하시고 넓게 보실 때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부릅니다. 근데 내가 죄를 지어 이 죄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님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까지 들어오셔서, 그 예배 때 뭔 말씀이든지 좀 들어보자! 이런 마음이 내 마음속에 움직일 때, 그건 내 결심 같은데 성령이 내 속에서 내 마음을 가르쳐서 생기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 속에 오신 하나님 뭐라고 한다고요? 성령 하나님이라 그럽니다.
성령하나님을 성령하나님이라고 그냥 적어 주면 좋겠는데, 성령하나님을 요한1서 2장 27절에서는 기름부음이라 이렇게 해놨습니다. 뭔 말이지요? 이게? 기름부음이라. 성령하나님, 성령님, 성령하나님 그러면 쉬울 건데 왜 기름부음이라고 그랬을까? 뭐 아빠를 아빠, 아빠 하면 좋은데, 학교 교장 선생님이 자기 아버지 저 90먹은 아버지를 아빠 그러면 초등학생들이 볼 때 좀 이상할걸요? 뭐 아빠를 아빠라 그러는데 아빠를 아빠 그런다고 이상할까요? 아이들이 아빠하면 그 아빠라는 말이 예쁘게 들리고, 60 아들이 90 아버지한테 아빠 그러면 근데 그것도 교장선생님이, 시장님이,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이전에 대통령 지금 대통령도 아마 부모님이 뭐 한 90 그런 다 그러지요 아마? 6, 70 대통령이 90 모친한테 아빠 엄마 그리고 텔레비 앞에 그러고 앉았으면, 그 좀 대통령 품위에는 좀 그렇다 그럴 겁니다.
결혼하기 위해서 둘이 오고 갈 때는 오빠, 오빠 그럽니다. 결혼해서도 1년 2년 오빠, 오빠 그럽니다. 근데 딸이 스무 살 됐는데 45살 엄마가 50살 아빠한테 오빠 그러면, 아이 뭐, 부르는 거야 자유지요! 그 좀 이상할걸요? 성령, 성령, 성령으로 적어주시다가 기름부음으로 적어 줄 때는 아, 이유가 있겠지! 왜 성령 하나님을 기름부음이라 그럴까? 기름은 뭘까? 기름은 소리 없이 은밀하게 퍼져 나가는 걸 기름이라 그럽니다. 소리 없이 퍼져 나가는 것, 그다음 기름이라 할 때는 상처가 났을 때 수건으로 닦는 거보다 물로 씻으면 훨씬 낫지요? 그런데 물도 계속 씻다보면 이거 상처가 헤져버립니다. 아시지요? 기름으로 바르면 이건 탈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름이란 부드럽게, 상처 나지 않게 부드럽게, 그걸 기름이라 그럽니다. 부모들이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야’그래도 됩니다. 근데 옆에 있는 엄마는 예, 이러면 좀 부드러워 지지요? 그리고 뒤로 돌아 앉아서 아이, 출근하다가 바쁘니까 그냥 급해서 그냥 ‘야’ 그런 거지 미워 그런 거 아니니까 이해해라. 너 지금 등록금 때문에 아빠가 하루 종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아빠의 고생을 많이 설명하고 그 다음 앞뒤 상황을 이야기하면 아, 그럴만하구나! 요렇게 부드럽게 탈나지 않게 마무리 하는 걸 무얼 붓는다고요? 기름 부음이라고 그럽니다. 화가 나는데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서 그냥 휘발유 기름을 부어서 불을 싸 지른다 그 뜻이 아니라, 식용유처럼, 식용유처럼, 요즘처럼 병원이 없던 옛날에 상처를 가장 부드럽게 해결하는 걸 기름이라 그럽니다. 기름.
성경에서 나오는 기름은 약으로 씁니다. 주로 먹는 약보다는 상처를 바르는 약, 상처란 피부에 문제가 생겼지요? 그냥 이래버리면 상처가 심해집니다. 아픕니다. 덧나버립니다. 물은 손보다는 낫지만은 그래도 물도 계속 이래버리면 상처를 헤져버립니다. 근데 기름으로 발라 버리면 이거는 매끄러워지고 부드러워지고 요것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좋습니다. 상처를 나지 않도록 마무리 하는 기름, 그 기름부음, 기름이라는 거 자체가 은밀하게 조용하게라는 뜻입니다. 소리 없이. 물 부어 보셨습니까? 기름 부어 보셨습니까? 기름이란 우선 많지를 않아서 물이야 많으니까 한 동이 물을 부어서, 물로 난리가 나는 수가 있고 홍수가 나는 수가 있지만은 뭔 기름이 홍수처럼 많을 것이며, 기름을 갖다 한 말을 들이붓고 그러겠습니까? 생활 속의 물도 부드러우나 기름이란 일단 양이 적습니다. 그리고 상처에 쓰고 조심해 씁니다. 그러다가 기름을 흘려 보면 기름은 소리 없이 번져 나갑니다. 한 번 기억해 보십시다. 은밀성(은밀성) 은밀하게, 은밀하게, 그럼 은밀하게 남몰래 도둑질하자고요? 그런 거 아닌 것은 아시지요?
옳은데 좋은데 정말로 귀한 것은, 떠들고 오지 않고 난리 나고 오질 않습니다. 예배당 뒷마당에 뭔 주먹만 한 황금이 있어서 이게 한 10억이라 치고, 그걸 발견하면 조용히 가져가야 되지 막 그냥 떠들어 놓으면, 몇 백 명이 가서 난리가 날 거 아닙니까? 정말로 귀한 것은 조용하게 은밀하게 고요하게 그런 겁니다. 중요한 시험에 치는 방법도 비법도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화 감동 하시고 가르쳐 주는 하나님, 다 같이 그 이름을 뭐라고 한다고요? 성령이라 그럽니다. 좀 입에 익지 않는 분을 위해서 다같이? 성령하나님(성령하나님) 예, 천지를 운영하시고 날 위해서 책임지시고 든든하게 버텨 주는 이런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성부 하나님. 내 죄 때문에 오셔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모든 고생 모든 해결을 다하신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이라 그럽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까지 들어 오셔서 중요한 걸 알려 주시고, 이끌어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성령. 근데 성령 하나님을 성령님이라 그러면 되는데 왜 기름부음이라 그러느냐?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할 때 조용하게 은밀하게 표시 내지 않고 해결해버립니다.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달랩니다. 너 그 도둑질 아니야? 그 아무리 화가 난다고 그렇게 내다질러 되겠어? 이게 내 양심의 가책이 될 때 마이크로 떠들어 놓으면 얼굴이 화끈 거리고, 화가 나고 창피해서 그냥 듣고 있겠습니까? 남들은 다 조용하게 알아주지만은 내 마음속에 오셔서, 너, 너 좀 나쁜 사람 아니야? 이제 좀 고쳐 봐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내 마음에 오셔서 조용하게 알려 주시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이제 나쁜 버릇 고쳐 볼까? 이거 끊어 볼까? 살아가는 생각을 좀 바꿔 볼까? 요렇게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내 마음을 소곤소곤 대화하고 그다음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성령, 성령은 조용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기름이라 그럽니다. 조용하게 때문에 기름, 은밀하기 때문에 기름, 책상위에 기름 한 숟갈 슬쩍 부어 봐 보십시오. 아, 기가 막히게 그냥 쫙 번져서 소리 없이 스며들어 가버립니다. 물은 붓고 나서 닦으면 닦이는데 기름은 번져가 버립니다. 베어 들어가 버립니다. 물이 못 들어가는데 기름은 들어갑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하는 모습을 가지고 기름부음이구나! 이정도 설명 드리면 좀 아셔야 됩니다.
기름부음 또 하나는 상처를 낫게 하는, 상처를 싸매주는, 상처를 해결하는, 어떻게 상처를 해결할 때 좋을까? 성경은 상처가 있으면 기름을 부어 기름으로 가지고 딱 해결을 해 버립니다. 내 마음에 상처, 내 마음에 고통, 내 마음에 억울, 내 마음의 분노, 막 그냥 화가 나서 치밀어 오르는데 거기다 대고 가서 몽둥이로 그냥 패버리면 시원치 않겠냐? 아, 패고나면 시원하기야 시원하지요? 맞은 사람이 그냥 있습니까? 그쪽도 또 몽둥이 들고 들어오겠지! 그럼 칼싸움이 벌어지겠지! 그건 귀신이 시키는 방법이고 성령의 방법은, 억울하냐? 억울해? 그 안 갈 데를 가서 생긴 일 아닐까? 그걸 가서 뚜드려서 욕을 해서 이겨서 눌러 놓으면 넌 속이 시원하겠지! 그럼 네가 힘이 있어 눌러 놓으면 당한 거는 또 그냥 조용하겠어? 언젠가를 위해서 기다리겠지! 5년을 기다렸다가 또 욕을 하겠지! 그런 짓 하지 말고 네가 네 잘못을 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너를 고쳐 보거라. 안갈 때를 갔으니 그렇지!
그래서 내 마음에 오셔서 내 속에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으로 조용하게 깨닫게 해 주시니 은밀하고, 그리고 상처가 났는데 남이 욕을 해서 내가 억울한 게 있어서, 상처가 난데 이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을 뭐 수술하는 방법, 이런저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성령의 역사는 조용하게 마무리 지어버립니다. 이번일은 그 사람 분명히 잘못했다. 잘못한 사람한테 따져서 법으로 싸움으로 전쟁으로 가는 날에는, 적을 이겨도 네 상처는 더 커지는데 그래봐야 너한테 손해 아니냐? 조용하게 해결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네 잘못은 뭔가? 그래서 자기 잘못을 살펴보고 고쳐보고 자기 잘못을 딱 눌러버리고, 밤길을 돌아다니니 당했고 주먹 들고 가는데 가가지고 같이 주먹질을 했으니 그리 된 거고, 안갈 때는 아예 가지를 말고 해야 될 일만 하다 보면, 그런 것은 해결이 되겠구나! 그리고 자기를 고치고 나가다 보니까, 우선은 억울하고 우선은 분한 걸 풀지 못 해서 열이 더 받쳐졌는데, 듣고 보고 생각을 해 보니까 내가 건강에도 좋지 않고 내 정신에도 좋지 않고 내 성격에도 좋지 않고 남 보기에 좋지 않고, 마지막 결과를 보면 나한테 좋지 않을 테니 이번일은 근본 원인을 찾아 고쳐보는 것이 좋겠다! 요렇게 딱 고쳐 버리니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상처를 좋게 소리 없이 마무리 지어 버리니, 성령의 역사는 이런 역사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오늘 2021년 11월 마지막 주일 날, 우리가 성령을 쉽게 알아들을까? 성령 이름은 됐고 평소에 알았고, 성령의 역사는 은밀하게 치료하는 기름부음이라.
기름이면 기름이지 왜 또 기름 부음입니까? 퍼부었단 말인데 우리는 잘 몰라서 하나 쓸 때 열을 쓰고, 한 바가지 쓸 때 한 바케스를 붓고 그러지만은 성령의 역사는 그렇게 무조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적당한 정도에는 모자라지 않도록 충분히 주시지, 그 아끼다가 모자라서 탈나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성령부음을 기름 부음이라고 했습니다. 필요 없는 걸 많이 부어서 넘쳐서 철철 흐르고 그러지 않습니다. 딱 정확하게 그 정확한 걸 다시 돌아보니까 참 넘치게 부어 주셨구나! 27절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믿는 사람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차고 들어와서, 우리 마음에다 대고 이러자 저러자 그러고 계십니다. 이걸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요렇게 기록한 겁니다. 아이, 지금 설교를 쉽게 하듯이 성경을 이렇게 쉽게 적지, 뭐 할라고 이렇게 어렵게 적었을까요? 믿는 사람은 성령 하나님이 마음속에 조용히 오셔서 잘 인도하시고 감화 감동으로 가르쳐 준다. 아 그래 적으시지 왜 이렇게 적었을까요?
쉽게 적을 줄 몰라서 이렇게 쉽게 적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건 뒤에 또는 다른 때 살펴보고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믿는 사람 마음 안에는 성령이 은밀하게 그리고 모든 치료로, 모든 역사를 다해 주시는구나! 됐습니다. 그다음,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믿는 사람은 누구한테 배울 거 없다. 학교 가지 말라는 말인가요? 학교 공부는 가서 배우고, 기술 교육도 배우고 뭐 운전도 배우고,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며. 믿는 사람 자기만이 꼭 필요한 것, 이건 성령만 가르치고 성령이 가르치지 다른 사람은 못 가르칩니다. 글은 학교가 가르칩니다. 기술은 공장에서 가르칩니다. 다른 것은 다 다른데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운 글, 배운 기술 배운 처세술을 가지고 저 사람하고 대화할 때 한 마디 이래 버릴까? 저래 버릴까? 이 직장 이리 들어갈까? 치워 버릴까? 집을 요쪽에 살까 저쪽에 살까? 뭐 부동산 가격이고 뭔 모든 세법이고 이런 것은 뉴스에 다 나와 있어서 모든 사람이 다 압니다. 그거 말고, 그런 세상 그런 현실에 넌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번에 제주도에 집 한 채 사면 뭐 10배 번다더라. 그런데 제주도 10배 번다고 집사 놨다가 비행기 타고 들락날락 하다가, 비행기 남해에 떨어져 죽으면 어떡할까? 아이고 돈 많이 벌어도 위험하니까 그냥 말자. 또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다가 그렇게 많이 오른 걸 보니 또 어느 날 또 떨어지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손해가 보겠다. 나 사는데 내가 둘러볼 수 있는 주변에서 뭐 한 푼 더 벌면 더 벌지. 강원도 골짝에 제주도까지 중국의 미국의 일본의 인도의 돈이 아무리 많이 벌린다 해도, 웬만하면 멀리멀리 많은 돈은 그 사람들한테 맡겨 놓고, 난 내가 사는 주변, 내가 할 수 있는 주변, 이 주변에서 찾아보자. 이게 좋을 건가? 어느 것이 좋을 건가? 내 현실에 살아가며 내 마음의 마지막 딱 결정해야 되는 것은, 믿는 사람은 성령이 신앙 양심 속에서 다 가르쳐 줍니다.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부부가 괜히 이말 저말 시비하다가 한 마디 싸울 수도 있는 거고, 이해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럴 때에, 참았는데 한 마디 해 버려? 참았는데 한 번 더 참아? 요건 교과서에 없습니다. 그거는 남이 가르쳐 주지를 못 합니다. 이건 믿는 사람의 이런 순간에 이런 결정은 하나님만 내 마음속에서 가르쳐 줄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오셔서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이름 성령이라 그럽니다. 그 성령은 내 맘속에 오셔서 가르쳐 줄 때는 은밀하게 가르쳐 주고, 그리고 내 마음을 해결을 해 주기 때문에 기름이라. 기름부음처럼 성령은 우리를 역사하신다. 믿는 사람은 그게 다 있으니까 남한테 배울 거 없습니다. 주일 날 성경을 읽고 이 성경은 이런 뜻입니다. 이건 제가 설명하고 온 교인들이 함께 배웁니다마는,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내일 아침 출근 하는 마음에, 손님을 상대하는 자세에 공부하는 순간순간 내 마음을 어떻게 먹고 내가 어떻게 결정을 해야 되느냐? 이건 믿는 사람은 성령이 항상 마음속에서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요즘 친구들 돈 많으면 한 달에 한 번씩 휴대폰을 간다 해도, 아무리 한 달에 한 번씩 휴대폰을 갈고 나도 그럴 돈이 있더라도, 한 달에 한 번씩 백만 원짜리 기계를 바꾸는 것은, 그건 뭔 재벌도 아니고 재벌이라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건 할 수 있지만은 이건 좀 쓸 수 있는데 까지 오래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것은 믿는 사람 마음속에 늘 성령이 역사를 하십니다. 그다음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가르칠 필요 도 없으니 배울 필요도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성령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모르는 것은 전부 다 성령이 가르칩니다. 가르치며. 뭐 나는 뭐 성령이 내 마음속에 오셔서 가르쳐 준 거 한 번도 없는데? 아이, 들어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 가르치지도 않은 줄로 잘 못 아는 거지!
한 30 40대 가지고 공부 못 해 가지고 억울하면 아이! 부모가 공부도 안 시키고 그 소리 예사로 합니다. 아이, 설마 어느 부모인들 공부해라 소리 안 했겠습니까? 부모가 없으면 선생님이래도 했겠지? 그때는 귀를 막고 제 멋대로 해 놓고 30대 40대 돼 가지고 공부 못해서 억울하고 당하고 서러우니까, 그때서야 ‘응! 좀 공부를 시키지! 야 이놈아 몽둥이 가지고 뚜드리고 공부 시킬 때 도망은 잘 가더니 만은, 자꾸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니까 오기 반발심이 나서 그때 안 했지! 너 그때 그랬지 않냐?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공연히 억지소리지. 믿는 사람은 성령이 마음속에서 다 가르친다. 배울 것도 없다. 나는 성령이 한 번도 가르쳐 주지 않던데? 안 가르쳐 줘? 안 가르쳐 줘? 너는 양심에 가책 되는 일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어? 양심 가책 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양심의 가책이 바로 성령이 가르쳤던 겁니다. 지금 스피커 끊어버리면 안 들릴 겁니다. 지금 들리고 있다는 말은 전기가 마이크 스피커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눈에 안 보여도 생각을 못해도 자동적으로,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이면 양심을 통해 성령은 자기에게 뭔가 말을 해도 합니다.
강도한테는 벌어먹고 살게 없어 남의 걸 가져와도 칼 들고 가지는 말고 훔쳐 나오거라. 강도한테는 그래도 도둑질이 낫지 칼 들고 그 위험해 되겠냐? 그럼 도둑놈한테는 잘 한다 그러겠습니까? 칼 대신 몰래 훔치니 강도보다 낫기는 낫다, 그렇다고 도둑질하니 개운 하더냐 좋더냐? 땀 흘려 일해서 벌어먹어라. 땀 흘려 일하면 건강에도 좋을 걸요? 심장, 뇌, 요즘 뭐 땀 흘려 운동하라고 생난리인데, 남이 땀 흘려 벌어 놓은 것 쏙 빼오는 도둑질이 우선은 쉬운 거 같아도, 나중에 보면 그 건강에도 좋지 않다. 네 건강을 위해서 돈 주고 헬스클럽도 가는데 그 남들은 땀 흘려 일하는 거 싫다고 현장 직에서 다 물러나지만은, 이왕이면 땀 더 흘리는 직장 찾아 봐라. 직장이 있는가? 없는가? 아직도 넘칩니다. 전부 앉아 가지고 펜대나 굴리고 도장 몇 개 찍고 차나 몇 잔 마시고 오면서, 넥타이 매고 좋은 직장입니다 이러니까, 남들은 알아주지, 자기는 편하지, 건강 없으면 큰일 납니다. 앉아서 돈 버는 사람도 점심시간에 퇴근 후에 뭐 돈 주고 저 운동 다니느라고 정신도 없습니다.
이왕이면 땀 흘려 일하면 건강에도 좋다. 아, 그리 생각하고 찾아봐라. 강도 보다는 도둑놈이 낫고 도둑질 보다는 남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간에 땀 흘려 일하는 게 낫고, 땀 흘려 일을 하려고 했는데 더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날 오라, 오라 그러면 또 기어코 또 안갈 거 있습니까? 가면되지, 운동이야 다른 때 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한 걸음씩 살아가 봐라 공부? 직장? 진로? 아무 염려 없이 말세라 하나님이 넘치게 해 놨으니까, 요렇게 모르는 것은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분명히 양심으로 가르쳤는데, 문제는 옳은 소리 좋은 소리를 하면 내가 내 양심이 괴로워서 안들은 척, 모른 척 무시를 해 버립니다. 양심이 기계 같으면 주인이 듣기 좋아하던지 싫어하든지 녹음기는 계속 움직일 건데, 요 양심은 생명성이 있고 인격성이 있기 때문에 양심이 주인한테 한번 두 번 세 번 하는데 안 들으면 횟수를 줄여 버립니다. 양심이 자꾸 반대를 하는데 발로 밟아 버리고 모른 척해버리고 쥐 박아 버리면 양심이 그 다음에는 말을 해야 되는데 입을 닫아버립니다. 그래서 양심을 어기다 보면 처음에는 양심을 어긴다 말은, 거짓말 해 보면 처음에는 입이 타야 됩니다. 거짓말을 하려면 머리를 돌려야 되고 머리를 돌리면 머리에 피가 돌기 때문에 뜨거워서 그냥 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근데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이 술술 나옵니다. 이게 아주 잘 나올 때쯤 되면 국회의원 쯤 됩니다. 그리고 아주 기름칠을 해서 더 잘 하면 이제 대통령 선거 나섭니다. 신풍에서 나가면 대통령이 거짓말 안 하나요? 저 동네 그럼 대통령 나면 참말만 합니까? 믿는 사람은 양심 때문에 손해 보고 양심 때문에 늦어져도, 늦어지고 손해 보는 거 하나님이 책임지겠지! 이게 아버지께서 보내는 성령의 뜻입니다. 아버지 책임집니다.
예전에는 못 먹어 정말로 굶어죽는 정도가 되니까 일단 먹고 보자 이랬지만은, 지금은 옛날 얘기 하지 말고 지금은 먹고 사는데 지장 없지 않습니까? 이정도 되었는데 좀 덜 먹으면 다이어트 성공 한다고 뭐 텔레비도 나오고 다 알아 주고 뻐기는 세상이 되었는데, 70년대까지는 몸이 많이 이렇게 나면 어이구! 사장이다 위대하다! 다 그랬습니다. 70년대까지는. 90년대 이후는 저처럼 이렇게 빼빼해야 지성인이지 몸 나면 곤란해집니다. 아 양심대로 살다가 늦게 먹고 덜 먹으면 체중 줄 것이고 체중 줄면 다이어트 성공 했으니까 됐지! 나라가 굶어 죽도록 나둡니까? 내년에 이 뭐시기 대통령 되면 뭐라더라 저한테 내년부터 한 달에 100만 원 준다는데, 내년부터 저한테 한 달에 100만 원 준다고 지금 광고가 지금 도배 칠 하고 있습니다. 30만 원 받아도 30만 원 다 먹으면 심장병에 이거 뭐 뇌졸중 걸릴 건데, 100만 원 준답니다. 제 돈 줄는지 누구 돈 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굶는 사람은 없도록 나라가 지금 법을 만들어줬습니다. 좀 늦게 먹고 덜 먹는 거 염려 마시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에 양심의 귀를 기울여 또박또박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은 뭐 이러니 저러니 그래도 양심에 귀 기울이고 살려는 나하나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집니다.
배울 게 필요하냐? 신앙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배워라. 그런데 알고 보면 알고 보면,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가르칩니다.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배웠으면 배운 대로 그냥 그만, 그대로 묵묵하게 걸어가 봐라. 처음에는 손해 같고, 늦어서 안 된 것 같고, 애가 타지고, 나만 낙오자 되지 않느냐 그러는 거 같아도, 역사이후에 성경의 말씀으로 살고 말씀 속에 성령의 감화와 감동의 양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뒤에 보면 나중에 보면 다 계산해 보면 너무 잘 돼서 부럽지 못 되서 탈나는 수는 없습니다. 노루 사슴은 풀만 먹습니다. 치아 자체가 그렇습니다. 사자 호랑이는 노루 사슴 잡아먹는 것만 이 친구들은 전문입니다.
대한민국에 호랑이 있습니까? 아프리카 바닥에 노루 사슴은 꽉 찼는데 사자는 갈수록 숫자가 줄어서 이거 멸종 될까봐 난리입니다. 잡아만 먹는 사자는 마지막에 보니까 10년 겨우 채웁니다. 10년 겨우. 대부분 굶어죽습니다. 아이! 잡아만 먹는 사자는 아프리카에 짐승이 많으니 숫자가 많아 가지고 그냥 사자 떼거리로 해야 되는데, 사자는 줄어서 멸종 될까봐 생난리이고 잡아먹히는 노루 사슴은 온 아프리카 들판을 다 채워 버리고, 우리나라 산에 멧돼지도 기본적으로 채식입니다. 육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채식입니다. 멧돼지는 너무 많아 가지고 그냥 농사를 못 짓겠다고 생난리이고, 멧돼지 잡아먹는 호랑이는 한 마리가 없어서 그거 찾는다고 온 나라가 몇 십 년 뒤져도 없습니다. 왜 그렇지요? 잡아만 먹는데? 남의 눈물과 남의 피와 남의 슬픔과 남의 실패를 뜯어 먹고 살려고 설치면 우선은 속도가 빠르고 우선은 잘 되는 거 같은데, 마지막에 보고 마지막에, 마지막에 보면 호랑이 사자는 새끼가 없어서 대를 이어 가지를 못합니다. 먹히니까 바보 같지만은 노루 사슴 보다 더 잘 막히는 것이 채소입니다. 풀입니다. 풀은 천지를 다 뒤엎고 있습니다. 그냥 식물을 통해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의 자연계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되셔서 위에서 지켜본다. 성령이 내 맘속에 오셔서 신앙의 양심을 따라 부탁하고 인도 하거든 그만 예하고 졸졸 졸 졸 따라가 보거라. 그 다섯 살짜리한테 그 동생 쥐 박는 거 아니다 이럴 때 그만 예하면 얼마나 예쁩니까? 그 예쁜 거 누구한테 갑니까? 저한테 가지. 근데 다섯 살짜리가 동생 부모 안 볼 때 쥐 박아 싸면 저놈 어릴 때 저러다 말겠느냐? 저놈의 버릇이 나이가 많아 가지고도 지 동생 착취를 하는 착취자가 될 거냐? 벌써 싹수를 보면 할아버지들은 걱정이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저 어릴 때 저놈의 손버릇 저러니까 나중에 뒤가 좋지 않던데, 열 살 좀 되가지고 그 공부하는 거 재밌는 것이 아니라, 어려우니까 배우고 배워두면 그거 많이 써먹는 거다. 쉽게 들리는 것은 써먹지도 못한다. 배울 때 좀 어려운 것이 뒤에 많이 써 먹는 거다. 그러니 안 되는 것은 할 수 없어도 이왕이면 좀 하도록 해 봐라 그럴 때, 예 해 보겠습니다하고 할 만큼 해보면 얼마나 그거 예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회사 가면 윗사람이 지금 경기가 그래 그런데 좀 더 참고 그다음 좋은 날 함께 봅시다. 이럴 때 좀 참아주고 기다리면 회사가 되고 이런 사람을 사장들은 뽑고 싶습니다. 머리는 좋고 날래기는 날랜데 급하면 그냥 언제 배신할지 언제 어디로 도망갈지 모르는 이런 사람들은, 뽑아다가 몇 달 1년 단타로 써먹고 그다음 내 버립니다. 지금 좀 부족해도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요런 사람들이 다 측근 되고 그러는 겁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30년 전 90년대 초반 기억하십니까? 재벌들 국회 나와 가지고 줄줄이 전부 다 처벌 받을 때, 뭐 현대니 다른 쪽은 뭐 회계 이사 무슨 비서실장 전부 줄줄이 다 불어 가지고 사장 교도소 보냈는데, 삼성 저 인간들은 내가 교도소 갑니다. 해가지고 입 닫아버리고 끝까지 자기주인 끝까지 다 지켰습니다. 그 삼성 이 사람들은 60년대 70년대 그때도 그 직원선발 할 때 시험도 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다하는데 마지막 면접시험에, 관상 보는 사람을 이병철 회장이 옆에 두고, 관상 보는 사람이 안 돼 하면 무조건 다 떨어버립니다. 이건 나중에 배신할 사람이라. 등신을 쓰지 머리 좋은데 배신할 사람, 요랬다 저랬다 변동하는 사람은 아예 삼성이 안 썼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삼성은 배신이 거의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이 관상쟁이를 갖다가도 뒤를 보는데 그러니까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요? 시장 통에 물건 한번 팔고 하나팔고 도망갈 사람, 이런 사람을 옛날에 장돌뱅이라 그럽니다. 이 시장 저 시장 5일장을 돌아다니면서 한 번 팔면 전국을 다니니까, 내가 한번 팔았는데 저 사람 두 번 봐? 이 사람한테 뭐 어떤 말을 하던지 돈 벌 연구만합니다. 그 장돌뱅이 해 가지고 돈 크게 버는 사람 없습니다. 묵묵하게 꾸준하게 좀 쳐다 볼 수 있어야 되는데 지금은 학교도 시대도 부모도, 심지어 연세가 많은 사람들까지도 이런 개념이 없어서, 그래서 세상이 지금 복잡한 겁니다. 먹을 것이 없어 복잡한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이런 것은 좀 믿는 사람은 오래 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세상 이야기가 아니고 믿는 사람은 성령이 내 양심 속에 가르치는 게 있고 인도하는 게 있고 끌어가시는 방향이 있습니다. 순종이 뒤에 보면 복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양심 속에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역사 이후에 이렇게 좋은 넘치는 세상을 주신 일이 없음을 감사하며 말씀과 말씀 속의 성령의 인도만을 따르는 한 주간 되도록 남녀노소 우리 모든 교인들 병원에도 요양에도 학교에도 직장과 모든 생활 속에도 함께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1차: k.y.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