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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16 화새
제목: 예배 본문 반복하는 이유 3가지( 깊이, 계속, 암송)생활과 신앙에 변덕성 조심
찬송: 92장(내 주여 뜻대로)
본문: 마태복음 7장 13절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같은 본문을 반복하는 여러 이유 중에 첫 번째는 한 말씀으로 깊이 바르게 살피게 되면 읽지 않았던 다른 말씀을 처음 접할 때 처음 접하는 말씀을 바로 깊이 대할 수가 있어 그렇습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믿는다는 말은 모두가 다 하고, 또 마음도 그렇지만은 그 방법이 거튼거튼 이렇게 넘어가면 겉보기는 많이 아는 거 같은데 속을 들여다보는 그 습관 자세가 없어져 버립니다. 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되어 집니다. 한 성구를 여러 면으로 좀 깊이 들여다보며는 다른 것도 그렇게 깊이 들여다보다가 평생에 몇 절 살펴보겠느냐, 그리 싶은데 따라하십시다. 성경의 단일성(성경의 단일성) 하나님이 한분 단일성이 있는 것처럼 단일의 하나님이 주신 성경도 단일성이 있어서 하나를 깊게 깨달으면 다른 말씀도 단일의 말씀이라 쉬워집니다.
그다음, 두 번째로 한 성구를 반복하는 이유는, 지금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은 아니 된다, 넓은 문 좁은 문, 넓은 길 좁은 길을 살펴보고 있는데 어떤 말씀이든지 단일성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두길, 오직 한길로만 걸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이 말씀도 주셨지마는 또 이 말씀에 더욱 그런 면이 특별하지마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2장에 선악과를 주셨는데 3장에 바로 선악과를 먹는 일이 생깁니다. 선악과를 먹는 길 하나, 먹지 않는 길 하나, 두길. 4장에 가면 가인과 아벨의 또 두길 입니다. 5장에 가면 하나님과 동행 했던 에녹의 영생의 길과 일반 조상들의 걸어 간 길이 있습니다. 6장에 가면 당연히 노아의 홍수의 두 길이 있고 계시록까지 항상 두 길에 오직 한길만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에 좁은 문, 넓은 문은 특별히 그 면으로 잘 기록했지만은 내용적으로 보면 성경 전부가 다 이걸 가르칩니다. 한번 읽은 본문으로 한번 들어보고 또 본문을 바꾸면 새로 들어보고 그러다 보면 사람은 호기심이라는 게 있고 반복되면 누구든지 본능적으로 지겨운 게 있고 다 그런 법인데 그래서 이왕이면 같은 말씀을 다른 본문으로 바꿔가며 보는 수가 있고, 이왕이면 한 본문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이 있고 두 가지 방법 중에 타락 후 사람의 자기중심의 악습은, 자꾸만 바꾸고 싶은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대통령이 잘해도 잘 한다 쳐도 오년 뒤에는 바꿔 봤으면, 묘하게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예전에 아이들 많이 낳을 때 며느리 처음 봐 놓으면 좋아서 온 집에서 들여다보고 난리고, 둘째 며느리 들어오면 전부 분위기 또 바뀌어 버리고, 셋째 나오면 바뀌고, 넷째 놓으면 바뀌고 그러다가 손주도 하나 놓으면 전부 쳐다보다가 또 나오면 또 그거 쳐다보다가 이것이 새 것에 대한 호기심이기도하고 한편으로는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원리를 알면 유혹하기가 어려워 악령이 이거 주고, 저거 주고 자꾸 바꾸고 바꿔버려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깊이 들여다보지 못해야 악령이 이리저리 흔들다가 데려 가기가 쉬워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는 것이 이왕이면 똑같으면 다홍치마라고 이왕 꼭 같으면 변화, 새것을 찾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어 진리, 단일에 들어가는 것을 흔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이란, 꼭 같으면 이전 것, 알던 것을 붙들고 그 하나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깨닫고 나면 몇 가지를 상대하던 그 모든 것 위에 올라서서 속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신앙의 걸음이라. 모든 교회들은 찬송도 자꾸 새 것, 새 것으로 바꿔 부르고 다 바꿔 부르다가 다 불러 다 알면 새로운 찬송으로 계속 넣고 있고, 성경 본문도 한 말씀으로 계속 가는 교회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교회 이름도 바꾸고, 뭐든지 다 새로 바꿈으로 더 나아지려고 한다, 그 마음은 인정을 합니다. 바꾸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후퇴가 있고 손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넓은 문, 넓은 길,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길로 가게 돼 있고 저도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백목사님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도 바꿔보자, 저것도 바꿔보자 공회 안에 바꿔보자는 말은 백목사님 앞에는 제가 제일 많이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속에 바꾸고 싶은데 바꾸자 그랬다가는 야단맞을까봐 속으로는 바꾸고 싶고 밖으로는 표시를 덜 냈고, 뒤로 말을 했고 저는 다른 면은 다 부족해도 솔직한 면이 있어서 야단을 맞더라도 가 가지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 보고 이해가 될 때 까지 물어 봐서 세례학습문답 같은 거, 결혼문답 같은 거 별의별 거 또 찬송가. 성경, 성경 찬송가 다 바꿔 보자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똑같은 걸 또 묻고 또 바꾸자 그러고 또 바꾸자 그러니까 이 말씀하시고 저 말씀 하는데 그 이유를 한번 들어 보고, 두 번 들어보고 그 눈치가 있으면 한 번에 끝날 건데 중요한 것은 바꿔야 되지 않겠는가? 이게 뿌리가 깊다 보니까,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어떤 것은 한 번에 알아 들었고, 찬송가 바꿔보고, 성경 바꿔보자는 이런 말씀은 여러 번 하다가 여러 번이 쌓이고 그다음에 느껴보니까 마음속에 아, 바꾸지 않아야만 더 좋겠다는 것이 확정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데 다 바꿔도 못 바꿉니다. 알았기 때문에. 모를 때야 사람이 본능적으로 더 좋은 거, 새 것, 이왕이면 좋은 걸 찾게 되어 있지.
그러다 보니까 입맛도 까다로와서 어릴 때부터 건강이 별로 좋지도 못 했는데 바꾸는 게 좋지 않다는 걸 확정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음식 하나 먹으면 죽는 날까지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이렇게 바꿔버렸습니다. 다른 것이 아무리 부족해도 이렇게 옳은 걸 하나 찾고 이해가 되면 그다음, 인내로 끝까지 갈 수 있으면 이 하나의 장점은 다른 우수한 거 열 개, 백 개를 다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장점이 되어 집니다. 성경의 본문을 잘 바꾸지 않는 이유 잠깐 설명 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에 단일성이 있다. 그래서 한 말씀으로 깊이 깨달아야 모든 말씀을 동시에 깊이 깨닫게 되어 진다. 그래서 최대한 한 말씀으로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 두 번째는 사람의 마음은 이왕이면 바꿔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바꿔 보는 그 마음은 옳은 걸 찾는데 손해를 보게 되어 있어 이왕이면 하나 붙들고 끝까지 가는 인내가 있어야 신앙의 뒷날이 좋아 진다. 둘. 그다음, 본문을 바꾸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항상 두 길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길로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며 신앙이다. 이걸 지금 살피기 위해서 이 본문을 택했지만은 이왕이면 그 말씀 중에 대표적인 말씀 하나를 자꾸 반복을 하다 보면 본문을 외우는데 도움이 됩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각자 창세기로 계시록까지 꾸준하게 다 읽는 것이 필요하고 그다음, 특별히 기도 할 때나 성경을 연구하는 연경 때나, 이런 함께 모이는 설교 때는 한 말씀으로 깊이 들여다보되 한 본문을 자꾸 반복하는 것은 그 본문을 좀 외우시라고, 모르는 성경 없고 아는 성구가 있냐고 딱 들여다보면 막상 외울 줄 아는 성구가 적어 놓으면 이거 굉장히 좋지를 못 합니다. 늘 마음속에 외우는 말씀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야 급할 때, 아플 때, 평안한 때, 이런 안정된 때가 아니라 성경을 베껴 성경을 찾고자 해도 없어질 수 있는 것이고, 독방 교도소 갈 수도 있는 거고 눈을 다쳐 성경을 못 읽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그럴 때, 생각을 해 보면 잘 믿어서 모르는 말씀은 없는 거 같은데 막상 성경 말씀 그대로 기억을 해보려면 아는 게 없어 놓으면 이거 뿌리 뽑힌 나무처럼, 줄 끊어진 연처럼 그만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 육년 교도소 들어간 분들이 공통적으로 보니까 환란이 다가오니까 성경을 많이 외워 가지고 육년 동안 교도소에서 성경 없이도 성경연구 하고, 기도를 깊이 하는데 불편이 없었더라, 선배들의 그런 절감했던 경험 이런 게 있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 이왕이면 한 주간 이 본문으로 자꾸 반복을 할 때 마태복음 7장 13절, 그러면 첫 번째는 읽지마는 세 번, 네 번 반복이 될 때는 제가 ‘마태복음’ 그러면 7장, 부르기 전에 ‘7장 13절’ 말하기 전에 마음속에 ‘13절’ 안 보고 이렇게 자꾸 읽어 나가야 되는 겁니다. ‘13절’ 그러면 제가 읽기 전에 속으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성경을 못 외운 분은 보고 같이 읽으면서 외울 마음으로 읽으면 외워집니다.
똑같이 읽어도 읽으라니 읽고, 남의 읽으니 그냥 읽는다, 이래 버리면 마음이 풀어져서 백번 들어도 외워지지 않고 ‘귀한 이 말씀 외워 놔야 되겠다’ 보배니까, 다이아몬드 보배 반지 선물 받으면 차고 댕기지 않습니까? 집에 어디 처박아 놓지 않고 그러니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 본문을 읽을 때 외울 마음으로 읽으시면 본문을 한 번 읽고 이 본문으로 한 시간 설교를 하기 때문에 한번 본문을 외울 마음으로 봉독할 때 들여다보면 두 번째는 거의 외우게 되고, 세 번째는 외워야 정상입니다. 그래 해보고 경험으로 말씀 드리는 겁니다. 기억력이 좋으니까 그렇지 않느냐? 제 기억력은 그냥 반에서 한 10등이 평생 늘 제 머리입니다. 초등학교도 사십 명 중에 10등, 중학교도 육 십 명 중에 10등, 고등학교도 사십 명중에 10등, 제 기억력은 중 상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두세 번에 외우면 저보다 못한 사람은 서 너 번이면 외울 거고 더 못하면 네댓 번이면 외울 거 아닙니까? 그래서 본문 하나로 대개 열 번 정도를 반복하는데 그거 어린 학생들, 부모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 나오는 분들, 또 양심가책 때문에 교회 꼬박꼬박 나오는 분들, 한 본문 두 번 세 번 읽을 때에 속이 어떤 불만과 어떤 불편이 생기는지 잘 압니다. 전 교회가 싫었고 예배면 지겨워 그냥 몸서리를 쳐가지고 한 시간 예배를 다 의자 밑만 기어 돌아다니고 다 그랬었습니다. 유별나게 못 견디면 성격이 못 견디는 성격이라 설교 앉아있는 분들만 봐도 저보다는 다 낫다 싶습니다.
같은 본문을 이왕이면 한 번 더 읽는데 이유가 있고, 철학이 있고, 경험이 있고 너무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귀하게 교회를 한 번 더 온 분들에게 이왕이면 더 좋은 보배를 드리는 것이, 이왕이면 본문을 잘 바꾸지 않는 것이라, 그런 이유가 많아서 이아침에 바꾸기를 좋아해서 맨날 바꿔대고, 바꿔대고, 바꿔대는 세상에 자기 얼굴까지 병원에 들락날락 해서 전부 뜯어 고치고 나이가 많아도 모든 걸 다 고치다가 자꾸 바꾸고, 자꾸 고치면 나중에 제 남자, 제 여자도 바꿔야 저거 하나 데리고 오래 못 삽니다. 달지 않습니까? 얼마나 그런 게 많은지? 밥상에 반찬 하나 바꿔서 이 반찬 먹었는데 또 주냐? 이 밥 먹었는데 또 주냐? 우리도 한번 이사가 보자 또 이 집에 사냐? 저 집에 사냐? 이것이 교회 오면 찬송도 새 찬송, 성경 본문도 새로운 본문, 설교도 한번 들은 거는 치우고 그다음, 또 새로운 내용 이래서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다 보면 인생이 관광하는 인생이 되어 하나를 꾸준하게 붙드는 면을 잃어버리면 그때는 인격도. 신앙도 모든 것도 다 무너지기 때문에, 맨날 남자하고 여자만 육천 년 동안 결혼해 대니 이제 남자끼리도 여자끼리 해보자! 이런 판이 돼 버렸고 이게 나라에 지금 정치의 주제가 돼버리는 데까지 나와 버렸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대통령은 하나 붙들었으면 웬만하면 그 인간 죽을 때까지 고쳐가며 쓰는 게 맞고 또 한 인간 죽으면 또 그 다음 거 하나 잘 골라서 어지간하면 하나 붙들고 가는 것이 그래도 낫지, 새 거 뽑아놓으면 전부 새 맛에 이제 새롭지 않겠느냐? 해아래 새것이 없다고 해 놨는데 해 아래 새 것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또 속을 사람이 되는 겁니다. 거 대통령 하나 그냥 지금 문대통령 하나 붙들었으니 이 인간 붙들고 나가면 더 속지는 않을 거 아니겠습니까? 바꿔 놓으면 또 그 사람 보다 나은 사람이 있는가요?
또 시행착오 해 보고 오년 지나서 이제 정신 차리고 나면 또 바꾸고, 또 바꾸고, 그리고도 나라가 견디니까 이 나라가 대통령만 바꾸지 않아도 세계 2등 가진 않겠다 싶은데, 제가 나라운영 할 수는 없고 우리 교인들 새벽 기도까지 나온 오늘 이 아침에 우리들은 꼭 바꾸는 걸 좋아하는 세상과 내 마음을 돌아봐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거는 가차 없이 바꾸시되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 싶은 것은 옷도, 습관도, 음식도, 사람도 웬만하면 하나를 붙들고 꾸준하게 잡고 늘어져야 뭐가 되어도 되어 지고 특별히 신앙이라는 것은 옳고 그런 걸 따진 다음 옳은 것만은 이거는 생사문제니 꼭 바꾸지 말아야 된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좁은 문, 좁은 길의 또 한 길을 안내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