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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새21.9.1 잠15:10-12 자기 위치 어기면 교만, 주님 모신 하나 만드는 목적이 사명일 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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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요약-khs
1. 목적
-분명한 목적
-목적을 위하여
-늘 깨어 있지 않으면
2. 사명
-지혜 개념 상기
-사명 감당하는 자라야
-사명을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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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1 수새
제목 : 자기 위치 어기면 교만, 주님 모신 하나 만드는 목적이 사명일 때 지혜
찬송 : 122장(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본문 : 잠언 15장 10절 -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도를 배반하는 자라, 주님 머리로 한 몸으로 주신 자기를 넓혀 가고 위로 주님과 하나 되는 길, 주님과 하나 되는 길은 생사 문제고 옆으로 주신 식구들과 하나 되는 일은 넓혀 가는 길입니다. 도를 배반하는 자라, 이 길에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고치기 위해 징계를 주시게 되어 집니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하고 변경시킬 수 있어도 하나님과의 연결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이건 더 이상 양보가 없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모신 주님을 머리로 삼는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죽어도 살았고 살아도 죽은 겁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문제는 기어코 고쳐 가기 위해 알려주시고 그다음, 경고 하시고 마지막에는 매를 들어 서라도 고쳐 냅니다. 또 주님 모신 내가 되어 진다 해도 옆으로 주신, 하나 된 식구를 하나로 만들어 가는 길은 그거는 목적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은 생명이고 한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적 완성이기 때문에 목적에 관련 되는 것이라, 이거는 후퇴가 없고 잘못되면 고쳐 가고 바꿔 가는 겁니다. 이 길을 향해서 날 바꾸지 목적 자체를 바꾸지는 아니합니다. 그래서 이도를 배반하는 자는 험한 징계를 받게 되니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지 이 길을 포기하거나 이 길에 손해 보는 사람 되지 말아라.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그 이 목적 때문에 끌어가시는데, 붙들고 가시는데 필요하면 혼을 내서라도 그렇게 가는 길인데 기어코 버티고 그것조차 싫어하면 그러면 하나님과 끊어진 자가 되든지 아니면 그 부분은 잃어버리게 되어 집니다. 11절 “음부와 유명도” 천국은 빛의 세계, 밝은 세계 천국은 하나님께 붙들린 이면에 어두운 것이 없는 곳이 빛의 세계 천국입니다. 음부란 어두운 것인데, 어둡다니요?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하나님의 붙듦이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이 면으로 어두운 곳입니다. 뭐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살지, 그게 아니라 건강에도 어둡고 은혜에도 어둡고 지혜도 어둡고 모든 면에 다 어려우면 참 어떻게 따로 하나를 적지를 못해 그렇지 이건 사망의 세계입니다. 유명이란 보통 무저갱 하고 같이 쓰는 말입니다. 음부와 유명도 음부를 더 강조한 것이 명유입니다.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 앞에 드러나거니와 아무리 도망가고 아무리 멀어지고 진리에서 아무리 멀어 이 세계는 알겠느냐 할지라도 밝은 천국과 어두운 지옥 여기에서 좀 더 가까운 것이 낙원과 음부, 그 모든 것을 섞어 놓은 것이 세상인데 세상, 세상이란 진리 없는 어두움으로 혹독한 세상, 주님 모시고 진리의 밝은 세계로 살 수 있는 이런 밝음이 뒤섞여 있습니다.
마음 속에 무조건 진리로 어두워지면 금방 우리 마음이 음부 되고 또 우리 마음이 진리를 붙들고 돌아서면 바로 그 자리에서 밝아지고 이 둘이 섞여 있는 곳이 세상인데 이 세상에서도 주님이 우리를 다 들여다보고 계시고 이 세상을 천국과 지옥으로, 음부와 낙원으로 완전히 갈라놓았을 때 그 음부와 유명에 버려진 그 세계 밑바닥까지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영원 미래까지를 다 보고 계시는데 그걸 만드는 준비가 되는 인생의 마음을 살펴보지 못하겠는가?
12절입니다. “거만한 자는” 하나님 주신 제 자리를 벗어나는 게 거만입니다. 교만입니다. “거만한 자는” 하나님은 필요해서 손발을 주셨고 주변에 사람을 손발로 서로 서로 한 몸으로 주셨는데 너 없이 산다, 너 없이 불편할 거 없다, 너무 똑똑하고, 너무 잘 나고, 너무 위대하게 되면, 그리 되어 지면 주변에 도움이 없어도 불편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이게 바로 교만입니다. 손이 발이 없이 살 수 있다? 눈이 손 없어도 불편함이 없다? 그런 것이 아닌데,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혼자라도 되는 사람, 그 간섭 옆에 말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 잘못된 겁니다. 이거 고치기 위해서 평생을 하나님의 손을 댑니다.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 하느니라” 거만하니, 혼자라도 되니, 혼자라도 되어 진다면 그에게 갈 지혜는 없습니다. 지혜란 ‘어떡해야 주님 모시고 주신 식구들이 하나 되며 주신 교인이 주님모시고 전체가 하나 되어 옳고 바른 길을 걸어가며 서로 고쳐 볼까‘ 이게 지혜인데 혼자라도 살아가는데 불편이 없다면 그때부터는 지혜는 다 없어지는 겁니다.
혼자 살면 뭐 혼자야 요즘 어떻게 못 살겠습니까? 아이를 가지면 나는 괜찮은데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할까? 우리 세대는 얼마든지 쓰고 이렇게 살아도 되겠는데 없어도 견딜 줄을 아는데 커 나오는 이 어린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될 건가, 그래서 좀 더 줄일 때가 있고 그래서 좀 더 조심 할 때가 있고 이게 모성애고, 이게 부모 된 사람의 자녀 모르는 지혜인데 하나님의 한 몸으로 주신 자기 사람을 알고 상대하는 요 인식, 요 자세, 이 노력에서 모든 종류의 지혜는 다 생겨집니다, 지혜란 머리가 좋아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주신 위치에서 자기 사명을 알게 되면 저절로 지혜라는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지혜롭고 머리가 좋아도 자기 책임, 자기 위치, 자기 사명을 망각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망할 미련한 사람으로 돌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만한자는” 오늘 하루 하나님이 내게 둘려준 내게 주변에 둘러 모아둔 나의 식구들 한 몸이다, 두 몸이 아닙니다. 너는 절에 가서 잘 살고 나는 교회 가서 잘 살고 그리고도 우리는 집에서 한 몸 되어 잘 산다, 이게 거만입니다. 이게 거만. 이게 착각입니다. 그게 동물적 사랑입니다. 주님 모르는 너도 주님은 알아야 되겠는데 말을 하면 더 멀어지니까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거고 또 좋은 얼굴이라야 자꾸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얼굴로 하는 거지, 넌 절가고 난 교회 가고 그래도 한 몸에 문제가 없다, 그거야 짐승적인 사랑이지요?
주님 모신 우리가 되는 게 목적이고 아 이건 양보할 수 없고 이거는 내어 줄 수가 없는데 주님 모신 하나 되는 이 길에는 강제가 없고 억지가 없고 힘으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고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라, 이것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이라, 이것 때문에 하나가 다 된 것처럼 지내기는 하지만은 실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라. 주님 모신 하나 된 하나만 하나고, 주님 모신 하나가 되기까지 하나 아닌 사람을 하나 만드는데 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요게 지혜입니다. 이게 지혜.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교정-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