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21.6.6 행2:42 성령의 은혜는 첫째 주님을 믿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배우고 고치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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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1.6.6 행2:42 성령의 은혜는 첫째 주님을 믿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배우고 고치는 역사

서기 1 218 2021.06.0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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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21.6.6 행2:42 성령의 은혜는 첫째 주님을 믿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배우고 고치는 역사


* 현장 초타본입니다.


210606 주전

제목 : 성령의 은혜는 첫째 주님을 믿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배우고 고치는 역사

찬송 : 43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55장 (귀하신 주여) / 158장 (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 사도행전 2장 42절 -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 은혜 상고

1. 매 주일의 은혜
주일마다 지난 날 가장 오늘이 비교 못할 감격의 날이라 그리고 주일을 매주 받고 계신지 모르겠음. 역사 공부를 좀 해본다면 한반도 5천년 역사 중에 오늘처럼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까? 늘 이러면서 매일 매일을 특별히 주일을 맡고 계신지. 적어도 저는 그러함. 매일이 매 주일이 평소에 가장 절정의 날 가장 기쁜 날 역사에 가장 좋은 날이 된다면, 실은 그렇지 않을찌라도 내 마음이 좋으면 좋을 것 아닌가? 건강에 좋을 것이 아닌가? 인류 역사의 오늘 주일처럼 이렇게 하나님이 제일 큰 은혜로 베푼 때가 있었던가? 제가 공부하고 연구한대로는 없었음. 괜한 말이 아니라 구구절절이 수치적으로까지 그렇다. 이 말씀 속에는 오늘 아침의 사회의 기도도 감사, 준비 찬송도 이렇게 좋은 노래가 이 땅 위에서도 있을 수 있겠는가 저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찬양을 하셨는지, 찬양대의 준비도 찬양대의 찬송도.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단단히 최면이 걸리고 단단히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이라고 그럴찌라도 제일 좋은 것만 다 쌓아놓으면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예를 들어 남들은 못난 아들이라 해도 내 눈에 제일 이쁜 아들이면 부모로서야 그 만하면 좋은 것이지 나쁜 것인가? 반대로 별 것 없는 부모인데 아이들이 제 부모를 제일로 안다면 착각인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인가? 그냥 계산이 쉽게 나오지 않는가. 결혼한 부부가 자기 여자가 천하에 제일 이쁘게 보인다면 미친 것인가 바보인가 착오인가 좋은 것인가? 여반들에게 말하면 다 맞다고 할 것을. 반대로 제 남자가 천하에 제일 멋있고 제일 좋다고 한다면 등신 같은 바보 천치 오판인가 아니면 정확하게 바로 안 것인가? 성경을 차분하게 읽어본 사람은 이 설교가 교리며 성경이라는 것을 알 것이고, 성경 안 읽어본 사람 성경 읽어도 요약 정리를 안해 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완전자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는 자기도 주변도 가족도 교회도 매일 매일도 역사에 최고 둘도 없는 바꿀 수도 없는 이런 보배롭고 보배로운 것으로만 만들어주셨다. 범죄 전 에덴동산만 에덴인줄 아는데,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에는 매 순간이 처음 창조한 그런 에덴과 꼭 같다.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이 눈이 삐고 귀신에게 점령을 당해 세뇌를 당해가지고 문제이다.

2. 이 가치를 알기를
오늘도 사회의 기도의 감사, 찬송 준비의 감사, 찬양대 찬양의 감사, 참 감사한 마음으로. 이게 감사할수록 속으로는 갈등이 하나 있다. 이렇게 좋은 것을 교인들은 지금 알아 들었을까? 뭔 저놈의 찬송가만 그냥 몇 십년 계속하니 숨이 막혀서 어떻게 교회를 다닐 것인가 그런 분들도 더러 계시지 않을까, 생각 없이 그냥 그러러니 하고 대개는 그렇지 않으실까. 저철머 그렇게 매 순간이 그렇게 감격스러운 분은 한 두 분이나 계시는지 모르겠음. 그런 예배 전, 예배 시작의 감동 때문에 이런 감동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감동이 아니다 성령이 주셔야 가지는 감동이다.

3. 공회의 예배 분위기
원래 저는 교회 다닐 때에 이런 교회 이런 예배 이런 분위기가 그렇게 싫어서, 기회만 있으면 이런 교회 이런 예배를 제일 지구 끝가지 가버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 갈등이 이 불만이 좀 아주 그냥 심했었다. 왜 다른 사람은 대충 다니는데 저만 그렇게 반발심이 거부감이 극심했을까 오늘 같은 이런 은혜를 이런 좋은 날을 받아 감사할 때마다 이런 보배를 몰라보는 분들이 더러 많을 것인데, 그 분들보다 더 이런 분위기 이런 교회 이런 교파가 싫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시려고 그런 성장 과정의 극단적인 반발심을 주셨던 것 같다 싶음. 술이 먹어서 많이 버려본 사람이라야 술 먹은 청년들한테 아서라 건강에 안좋다 그런 말을 하기에 낮지 않을까. 인생을 허송하고 땅을 쳐본 사람이 지금 그러는게 아닌데 이런 말을 할 때에 더 진심을 담고 더 애 타는 심정으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영물이라 그런 애 터지는 마음이 좀 있어야 그게 설득에 도움이 될 것이다.

89년 3월 18일 주일날 신풍 강단 처음 섰을 때에, 앞에는 전부 공부 못한 사람들 안한 사람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는데, 33살 젖먹이 데리고 온 전도사가 설교하고 나니까 예배 마치고 밖에 나가니까 고등 학생 청년들이 얼굴이 얼마나 좋아가지고 여러명이 와서 드디어 우리 교회고 남반 여반 섞어서 행복하게 교회 운영하시겠지요 첫 인사를 그리 받았다. 나이 많은 목사님들 숨막히는 분들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밑도 끝도 없는 케케 묵은 시골 예배당에 공부했고 미국 갔다왔다고 하니까 이제 교회 분위기를 확 혁신해서 섞어줄줄 알고 교회가 개혁이 되고 새로운 교회가 될줄 알고 얼마나 반갑게 쫓아왔는지, 제가 지난 모든 분보다 제가 더 보수라. 더 극심하게 옛날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두 세주 겪어보더니만은 이제 이 교회에서는 희망이 없겠다 하고 줄줄이 다 안나오셔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음. 그 분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중국집 한식집이 있는 것처럼 맞는게 있고 안 맞는게 있는 것처럼. 그러나 예전에는 미개한 한국 음식이라 햇는데 발달될 만큼 고도로 발달되고 나니까 짜고 매운 것만 조금 조절하면 한식처럼 건강식은 없다 이것은 통계로 그리 되는 것 같다. 짜고 매운 것만 조심하면 한식만큼 건강식은 없다 이것은 어디든지 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 안에 문제 많다. 무뚝뚝한 것, 또 같은 말이라도 좀 독하게 하는 것, 이것은 신풍이라 그런지 집안이 그래서 그런 것인지 원래 인격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교회에서 그러라고 부추겨서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몇가지 단점만 좀 빼면 어느날 역사와 시대가 바뀌며 그래도 신풍 삼거리 손 목사님 가족이 개척한 이 교회의 분위기와 방식이 그래도 맞다는 분들이 아마 거의 결론은 그리 난 것 같다. 우리와 아주 다른 쪽의 머리 될 만한 분들하고 많은 접촉이 제가 교인 알지 못하게 있는데, 그 분들이 괜히 인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니 세월이 지나가고 보니 세상이 이렇게 되고보니 남녀가 떨어져 앉는 것이 그게 지혜롭고 교회답습니다 그러고 있다. 요즘 뭐 군대 여군들 손댄 이야기 봇물처럼 떨어져서 못 피하도록 들어오고 있다. 우리처럼 떼어놨으면 좀 덜했을 것이다. 비빔밥으로 뒤섞어놓으니 필연이지 건강한 것들이 안 그러고 배길까? 그 정도인가? 집 안의 사고가 막 쏟아지는데 예전에는 남남이라 그랬는데 안 그러니, 이 정도가 되니 무뚝뚝하다고 해도 조금 띄우는게 낫을 것. 코로나, 냉각기 합리적 언론, 아이들 입도 닫아야 인간되겠고. 너무 똑똑한 여자들의 입도 좀 자제해야 좋겠고. 빠른 차 좋다고 하다가 한 가족 일시에 무너지는 것 보며. 못났을 때에는 빠른게 뒤집어 업는 것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인간 하고 싶은데로 다 해보니까 우리도 그때는 너무 심했다. 인간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지막은 하나님 품 안에서 조절되는 것.

4. 오해와 착각
오늘 사회와 찬양대의 순서가 너무 은혜스럽고, 그럴 때마다 제 주변 분들은 치매가 걸렸는지 맨날 자기 것이 제일이라 하는데, 성경 교리적으로 성경 말씀적으로 하나님은 매 주일을 역사의 최고에 더 이상이 없는 주일로 주고 계신다고 그리 되어 있다. 그러니 오늘 주일이 내게는 최고고 역사를 공부해보면 역사의 최고고 인류사를 다 알고보면 5천년이 아니라 6천년 인류 사회에 오늘 같은 날이 없다고 말을 한다면 그게 맞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는 나는 은수저라 흜수저라 목표 달성 못해서 들볶였다. 대부분 이게 전부일 것이라. 이게 계산이 잘못되어 그런 것이다. 게을러라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부지런한 것이 옳다. 성경은 얼굴에 땀 흘리는 것이 맞다. 성경은 일찍 결혼해서 아이 많이 낳는 것은 복이다. 그런데 여기에 귀신이 우리 속에 쏙 들어와서 이왕 결혼은 제일 이뻐 보이는 것, 텔레비 요즘 시대가 바꾸놓은 기준의 제일 이쁜 것 좋은 것 이게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눈이 삐고 세뇌가 되어진 우리가 되어가지고 그 다음 무난한 것을 되어야되지 않겠습니까? 무난이라는 기준이 너는 틀려졌다 고장나버렸다.

성경과 인간의 양심과 원래를 가지고 차분하게 보면, 자기 주변 손 닿는 곳에 제일 가까운 곳에 하나님은 제일 좋은 사람을 뒀다. 찾느니라고 보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보면 아이 주시고, 또 땀 흘림이 복이니 흘리려고 노력하면 이만하면 하나님이 주신 복은 다 가졌는데 인식을 바꿔놨지 목표치를 올려놨지, 그 다음 악령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부추기지. 잘못된 방향 목표 설정 부대끼는 이런 조급한 마음을 줘놓으니까 하나님은 매 주일 매 주일을 역사 최고의 환경과 여건과 우리 안에 필요한 모든 영육의 은혜를 다 주셨는데, 50프로도 안 맞지 마음에 영 맞지 않은까 원망으로 속에 불만으로 속에 반발심으로 그리 사는 사람들이 많고, 이제 철 들자 사람이 갈 때가 된다고 시간이 다 지나가버린다. 아직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는 우리에게 오늘 아침 본문과 약간 다른 이 내용을 설명드렸다.

[본론]

■ 오순절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그동안 사도행전 1장에 인간의 노력 넘어선 주님이 부탁한 절박 속에 2장에 눈으로 보고 귀로 접하는 역사를 보고나니까, 하루에 3천명이 전도 되는 이런 부흥과 기적이 펼쳐진 것이 사도행전 2장이다.

* 오순절에 대한 두 교단의 입장 : 장로교, 순복음
(이 바람에 역사의 모든 교회들이 그 성령이 뭔지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은 어쨌든 성령이 역사하면 하루에 교회에 3천명이 밀려든다? 돈 벌이가 될 것이니, 싫어할 사람 없고 다 좋아하지. 그래서 2장 1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오순절 운동 교파로 자꾸 강조하는 쪽은 하루에 3천명 전도가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만 보는데, 이것만 보이는데 세계적으로 장로교라는 교파가 제일 비율적으로 많은 곳이 한국이다. 미국 장로교인들이 한국 전도해서 한국 장로교가 생겼으나 한국 장로교는 미국에서 건너왔다 미국에는 장로교가 교인도 얼마 없다. 또 성경 안 믿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믿는 사람 취급을 안한다 미국에서. 우리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프린스턴 대학이 장로교가 만든 유일한 자랑거리다. 프린스턴과 하버드는 역사적으로 1,2등을 나누는데 성경읽는 사람이 없다. 잘 믿는 사람들이 불교 믿으면 불경 읽어야 유교 서열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서 삼경이나 읽고 있지 왜 이렇게 하느냐 비겁하게. 기독교인은 성경대로 믿어보자 이게 기독교인데 성경 틀린 것만 찾아낼 것 같으면 믿지를 말지. 교회적으로 그렇다. 우리 나라 연세대가 선교사들이 전도하려고 만든 학교인 거처럼 지금은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이대 소녀들 데려다가 사모님 만들려고 세운 학교이다 대안 학교이지 정식 학교 아니었다 비정규 야학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안오니까 우리 학교 보내달라고 집집마다 쫓아다닌 학교이다. 지금은 보내려 하는데 역사가 그렇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이 그런 곳이다 장로교 신학교이다 그런데 성경 믿지 말아라 그러고 있다. 한국의 장로교는 세게적으로 장로교 간판 단 교회가 세계쩍으로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러데 다른 나라 장로교는 잘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한국 장로교만 이상하게 성경으로 잘 믿어보자고 그렇게 열심이다 이게 한국의 참 특별한 일이고 이상한 일이라는 그런 몇가지 일중에 하나이다. 순복음 교회 쪽은 오순절 성령 역사 있고 하루 3천명 전도 되었다 그래서 순복음 교회는 간판이 오순절이라고 앞에 붙여놓는다. 장로교는 그 분들이 착오를 했다 그게 장로교이다. 그런데 순복음 쪽은 자꾸 교인이 많아지고 연보가 많아지니까 장로교가 간파도 안 바꾸고 내용만 바꿔가지고 양식은 잘되고 한식은 안되니가 안에서 양식 팔 듯이 장로교는 오순절 교파와 간판이 다른 곳이다. 장로교 교회를 다니는 분들, 여기도 장로교 교회니까 장로교 교히를 다니는 분들은 하루에 3천명 전도된 오순절 성령 운동의 성령 운동이 이게 기독교의 생명이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교회 설교가 아니라 상식이다. 불교 고기 먹는 중이 중인가? 말도 안되고 무식한 소리고. 그 다음 불교 안 믿고 기독교 안 믿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유교 교인들이다. 어린 아이 남녀 차이를 따지는 사람들은 유교 교리인데,유고 믿는 사람은 한문 배워가지고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배워야지. 왜 영어를 배우고 일반 학교 가나 다 유교의 금지인데, 이 나라 유교 교인들은 다 사기군들, 불교 교인들 다 사기꾼들. 기독교인은 그러면 양심이 있냐? 마찬가지. 장로교애서는 방언한다고 하면 이단이 된다. 불교에서 고기 먹지 말라고 한 것처럼, 순복음은 방언하는 것이라 하고 장로교는 그것을 이단이라고 해야 장로교인데, 이렇게 쉽고 간단하고 상식적인 것을 왜 이렇게 혼란하고 잇는지. 그래서 시골 몇 사람이지만 우리 교회 자부심이 있는 것)

■ 방언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2장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앞에 120명,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 소리가 전부 다 들렸고 3절 불의 혀가 앉아 있는 120명 눈에 다 보였다. 앞에 1장에 있었다 보이고 들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았더라. 그래서 오순절 성령 충만을 이렇게 교리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4절에 다 받았다. 저희가 1장에 보니까 120명. 저희가 120명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리고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까지만 읽어놓고 술 먹은 소리 옹알리는 소리를 다 해놓고 이게 방언이라고 한다. 그 다음 5절에, 4절에 방언 받았는데 5절에 출신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인데 천하 각국으로부터 흩어졌다가 예루살렘에 잠깐 모여든 사람들이 6절에 제자 120명의 방언 소리를 들었는데 자기들의 살던 나라의 방언으로 들렸다 그게 6절이다.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데? 9절에 이하에 보니까 바대 메데 엘람 등등 여러 나라를 꼽는데 아프리카 유럽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이쪽의 나라들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 들었는데 11절에 보니까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 중동 사람들까지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들렸다. 무슨 말인지 들려야 그게 방언이다. 나는 방언했는데 상대방이 못 알아 들으면 헛소리 잘못된 방언이고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아니다. 그래서 13절에 어떤 이들은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아는 술 먹고는 저리 되지 않는데 뭔 또 새 술취한 소리인고. 14절에 베드로가 11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이게 지금 앞에 5절로부터 방언이다. 베드로의 방언을 기록해놨다. 16절에 요엘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설교 시작한다. 그리고 25절 시편 다윗의 성경 말씀을  들려주고 읽어주고 설교를 한다 이게 방언이다. 성경의 방언이 나오니까 자기가 말하는 것이 방언이라고 아무데나 다 갖다 붙이니, 성경을 읽어본 사람인가 아닌 사람인가? 이랬든지 그랬든지, 그 날에 한꺼번에 제자가 된 사람이 3천명이 되었다. 3천명. 41절, 베드로의 방언의 제일 마지막 방언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여수 사투리로 패역한 세대에 구원을 받으라 하면 방언이 아닌가? 영어로 하면 방언이 아닌가?

* 방언에 대한 두 교단의 입장 : 장로교, 순복음
(지나가는 불신자들이 듣고 구원을 받아야 되는데 불신자가 무슨 소리인지 옆 사람이 무슨 소리인지 옹알이 같은 소리를 해놓고 방언이라 하면 사도행전 2장을 짤라버려야지. 그 교파가 오순절이다. 성씨부터. 사도행전 2장. 장로교 간판 붙인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오순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데 좀 오해가 많았다 그게 장로교이다. 우리 교파 말하는게 아니다 장로교는 어느 장로교는 다 그리 말을 했었다. 그 말을 하니 손님이 안 오고 순복으처럼 하니까 손님 많이 가니까 한국 장로교가 전부 방언하는 교파로 바뀌었다. 양식당은 바글 바글 한 식당은 바글 바글 하니, 간판은 한식 정통이라 해놓고 안에서는 정통 양식을 팔면 장사야 그렇지만 교회도 간판을 그리 달고 그런 말을 해야 될까 양심 문제가 아닌가?)

41절, 베드로의 방언, 베드로의 방언이라니? 성령에 붙들려 베드로가 과거에 알던 말고 다른 말, 과거에 알던 지식과 다른 지식, 그게 바로 성경의 방언이라. 원래 베드로는 주님 따라다니면서 의심하던 제자라, 속으로는 안 믿었었다 12제자가 다 그랬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디베랴 갔던 사람들이 이제는 성령에 마음을 붙들리고 보니까, 주님이 하나님이셨는데 날 구원하러 오신 분이셨는데 그 분의 십자가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는데 이 구원은 완전 단원 영원 구원이라 천국은 무조건 가게 되어있는데 성려엥 붙들려 지식이 바뀌고 이제는 마음이 완전 바뀌어버리니까 베드로가 지난 날에 했던 말과 똑같은 어투와 사투리로 하는데도, 베드로가 저것이 예수 따라다니면서 뻘 짓만 하더니만은 이제는 정말 예수님을 구원으로 전하네? 말의 내용이 방언이 되어져버린 것이다.

■ 제자 3천

그리고 베드로의 그 설교를 듣고 41절, 이 날에 한 자리에서 3천명이 제자가 되더라. 숫자로도 복이나 그러나 10년 50년을 예배당에 앉아서 믿어 왔는데 우리 마음 속에 안 믿는 마음은 한 3천명 되지않나? 12제자들 마음 속을 연구해보니까 12제자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로 특채 특별히 선발된 최고의 믿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의 제일 측근 12사도 행세를 사도행전 1장까지 연구해보면 이 사람들은 믿는 사람과 사도라는 말 마음 소의 마음이 보면 예수님 물 위에 걸어간 것도 안 믿었고 오병이어도 안 믿었고 죽은 사람 살린 것도 안 믿었고 심지어 부활한 주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다. 예배당 밖에 예수 이름 모르는 사람이 예수 이름 믿겠다고 온 3천명도 크지만, 그러나 그것만 크고 그 사람 설교하는 베드로 마음 속에 의심이 3천개 들었는데 그건 그대로 둬도 되는 일인가? 병원 밖에 암환자 3천명 건강하게 돌리는게 대학 병원인데 이건 큰일인데 그런데 암 수술 최고 유명한 의사들이 자기 검사 안해서 줄줄이 암으로 다 죽으면 자랑할 일인가? 3천명 환자도 깨끗이 치료도 해야 되고 그 보다 더 큰 것은 외과 과장 네 뱃속의 건강부터 챙겨라.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챙길 것이 아닌가, 그 양면을 보는 것을 장로교라 한다. 순복음은 죽을 사람 살렸으면 됐지 그족으로 가는 것이다. 장로교는 남 믿게 만들고 착하게 남 하늘나라 소망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해야 된다 그런데 자기를 먼저 돌아보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장로교이다.

그 말씀을 가지고 41절을 읽으면 “오순절에 3천의 제자가 더하더라” 오늘은 한국사회 거의다 믿는 사람들이다 통계적으로 18-20프로 나오는데 그 통계를 여수 분들은 잘 안 믿지. 요즘 통계 믿으면 대통령 반대가 70-80프로가 된다는데. 통계 안 믿지요? 옛날에도 요즘도 안 믿는지? 세상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기본의 정직성 양심성 일관성이 없으면 아예 성경 읽어봐야 헛일 한다 그래서 그러는 것이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불신자가 들어 앉았는가? 12제자들은 마태복음 사도행전까지 낱낱이 기록해서 검사할 수 있다. 12제자 아닌 사람들은 자세히 적지 않아서 모르는데 12사도는 다 적어놨다. 베드로 속을 다 들여다보면 안 믿는 지식과 의심이 3천개가 넘어간다. 12제자 속은 이런데 나머지는 그러면 다 순진하고 깨끗했을까? 양민이고 서민이고 일반 교인들은 다 착한가? 교계의 사건 터지고 목회자들 비리 방송에 나올 때마다 믿는 사람들은 우리 선한 교인들은 저것도 모르고 연보했다고 억울하다고 하는데 알면서 회비 갔다줘놓고. 안 믿는 사람이 평소에 또 칭찬했나 욕을 했지. 다 양심 없는 짓이지. 안 믿는 사람 비판이나 일반 교인 어리석다 하는 것 아니고 비리 목회자 옹호가 아니라, 12제자 베드로부터 12제자 속을 들여다보니까 기본적으로 몇 천개지 불신 미움 몇천가지 나쁜 요소가 다 들어 앉아 있었다.

여수 순천은 80-90프로가 믿는 사람일 것이라. 안 믿는다는 사람 면담을 해보면 예전에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냥 싫증 나서 안 다닌다. 교회 출석을 안하는 것이지 속에 들어 있는 사상은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현재 우리 나라는 여수 순천은 안 믿는 사람 3천명을 데리고 싶어도 안 믿는 사람이 3천명이 되지 않는다. 100년 전의 선교사들이 왔을 때에는 전부 미신이었다 그때는 예수 이름을 모르니까 이름이라도 전해서 천국의 기본구원이라도 우선 급해서 전했어야 되고 지금은 믿는 사람은 다 되었는데 가다 말다가, 또 기분 맞춰주면 열심히 가다가 뒤집어 엎어버리고 그것은 행패이지 안 믿는 것은 아니다. 부모 밑에 효도하는 아들만 아들인가? 호적에 판다고 남의 아들 되나 내 자식이지. 일너 세상에 오늘 우리에게 3천명의 제자는 신풍 예배당 밖의 다른 사람 3천 데려오면 2900은 다른 교회 다니던 사람일 것이라 남의 집 식구 데려오는 것이다.

2021년 오늘의 제자 3천은 내가 내 속을 좀 들여다보면서, 남들이 보면 잘 믿는 축에 드는 줄 아는데 혼자 한 주간 자기를 뒤져보면 잘못된 판단 생각 행동 잘못된 인격이 10도 100도 넘지 않는가? 마18장에 베드로가 주님에게 주변에 형제가 저한테 죄를 지으면 몇 번까지만 봐주겠습니까? 이렇게 물을 때에 주님이 일흔번씩 일곱 번. 제일 가까운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지을 수 있는 죄가 490번도 더 된다는 말이다. 부부 싸움 평생에 490번 하고 끝나는 사람 있나? 제대로 붙으면 한 주간에도 490번 부딫힐 수 있지 하루에도. 사람은 넘어지고 실수할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나라는 사람 하나인데, 겉으로는 라나는 사람 하나 속에 들어오면 몇 개나 들어있는지를 모른다. 한 민족 한반도 안에 나라가 둘이다. 김종필 충청도 나라 달랐고 김영삼 경상도 나라는 따로, 경북은? 전남은? 한 나라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이 좁은 우리나라도 나라가 10개는 더 될 것이라, 10개? 한 당 안에 계파가 속으로는 20개도 더 될 걸. 한 가정에 식구가 10명 모였으면 10명이 한 가족인가? 며느리 딸이 다른데, 할아버지 손주가 사상이 노는데가 다를 것인데, 겨울에 소 잡아 먹고 놀자고 안할까? 이래서 먹고 살 호주들은 놀면서 소 잡아 먹을 일 이을가 내년에 농사 못짓는데. 한 침상의 부부도 하나되기 어려워서 동상 이몽이라는 말이 있다.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동상이란 침대다 한 침대에 둘이 누웠으니 부부나 꿈은 다른 꿈을 꾼다 호적에는 부부인데 속 마음이 부부인지 아닌지 이렇게 들어가면 다 양심의 가책이 있을 걸, 이 집 아저씨 저쪽 아줌마 저 동네 아저씨. 안 그런 사람 별로 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 자기 남자 말고 다른 남자 하나만 품으면 그대로 둘이지만 그 남자가 매일 바뀌면? 한 부부 속에 한 부부인가 한 마음 안에 몇 명인가? 여자 남자 여럿 데리고 살 것이라. 자기 남자보다 더 마음에 드는 남자 여자들이 열이 아니라 100도 더 될 수 있다. 알고 그 속에 배울 것이 있고 발전에 유리한 것이 있으면 공부이다. 더 큰 죄 짓지 않는 법도 된다. 그러나 그냥 성실한 사람이 보면 해마다 철마다 달라지면 바르게 될까이렇게 자기 마음을 분석해 들어가다보면 겉으로는 인체가 하나이지만 호적에도 하나이지만은 인격적으로 사상적으로 지식적으로 행위적으로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참 많은 것이 많구나. 그 많은 요소들을 그냥 풀어놓을까 하나씩 둘씩 고치고 바꾸고 자꾸 씻어서 하나로 만들어가야 될까?

교회 모르고 예수 모르는 사람 전도해서 3천명 데려다놓는 것은 2천년 전에 오순절 제자들의 해야할 일이었다 복음의 출발이었고 한국 들어온 백년 전 선교사들에게 급한 일, 그러나 오늘 선교 다 되어 믿을 사람 다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도 예수를 더 잘 알고 비평까지 하는 사람, 우리 교회 예전에 다녔던 분들 공항 안에 예배당 있을 때에 바로 옆에 살던 분 대한민국 제일 유명한 목사니 밑의 교인으로 오랫동안 믿다가 안 다닌다고. 아버지 죽으니까 아들이 목사한다고. 아버지가 대통령인데 아들 대통령 하면 안되나? 기독교에 실망하여 아예 교회 안가신다는데 대화하니 더 잘 안다. 그 분 지금 설문 조사에 교회 어디 다니냐 기독교냐 하면 무교라고 표시할 것이라. 오늘은 잘 다니던 못 다니던 왠만하면 다 교인이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 3천을 기록한 41절을 읽으며, 내 속에 교회를 다니는데로 안 믿는 욕심, 의심하는 마음, 내 속에 하나님이라도 가룟유다처럼 돈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평소에는 좋다가 오기만 건드려놓으면 당장에 그냥 안 믿는 사람보다 몇 배 더 악하고 독한 말이 나올 수 있는 이것을 안고 있어야 될까 이거 하나 하나 다 바꿔야 될까? 이것을 바꾸는 것은 자기로서는 못한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 성령의 역사라야 되지. 남 전도 바꾸는 것도 그렇고 내 속의 교회를 이렇게 오래 다니면서 말씀을 의심하거나 반대하거나 상관 없는 내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고칠 것이 많은지 모른다. 여기까지를 알고

■ 사도의 가르침

그 다음 42절, 이제 사도의 가르침을 좀 받아야 한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한절 한절 읽어가며 안 믿는 사람만 가르치려 하지 말고, 교회를 이렇게까지 오래 다녔는데도 성경 말씀 속에 이것으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것은 알면서도 어겼다 이것인지 솔직히 몰랐기 때문에 이제 좀 배워봐야 되겠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내 속의 나를 가르치는 것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교제

“서로 교제하더라” 교제라 하니까 남녀 연애라고 더러워졌다. 선교사 기독교 오기 전에는 남녀는 얼굴도 못보게 했다. 왜 이렇게 엉망 만들어놨나? 예수님 구원 전하는 거으 좋았는데 남녀 뒤섞어 놓는 것을 선교사들이 가르쳐놓고 그러든말든 조심해야 되는데 이 판에 잘 됐다고 그냥 5천년 막아놓은 것이 봇물이 터져놓으니 이렇게까지 나왔다. 여기 교제는 안 믿는 사람이 믿고 나서 자기를 보니까 고칠 것이 많고 내가 고쳐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서로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고쳐나가는 교제이다.
노름 끊고 보니 이리 저리 하다보니 끊어지더라 주고 받으면서 서로 말씀으로 고쳐나가는 그 교제를 말하지. 주교 오전 예배 마치고 도너스 하나 들고 세상 살다온 대화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맥과 정보를 주고 받으며 세상을 향하여 더 잘 살아나가는 기독교 교인끼리의 교제를 말하는 것 아니다. 주님 배우 알고 말씀을 배워 나를 고쳐보고 한 사람이 물어보고 도와주고 그 교제를 말한다.

■ 떡을 떼며

“떡을 떼며” 여기 떡은 주님이 만찬에 마지막에 떡을 떼어 주며 이떡을 먹어라 내 몸이다 너희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는 내 몸이다. 내 속의 나를 꺽고 죽이는 이 희생을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서 꺽어라. 죄를 이겨라 그게 여기 떡을 떼며.

■ 기도에 힘쓰니라

이 일이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으니까 전적 기도로 주의 은혜를 구하거라.

[결론]

이게 정통 장로교의 500년 된 설교이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번 더 반복하면서 우리를 살펴볼 것.

통성 기도

주변 사람을 위해 애터지고 노력하고 간절해야 되고 내 속에 교회 다니고 믿었다는데 말씀과 다른 나에 대한 애절한 통회도 있어야 된다 고쳐내야 된다.

Comments

타이핑 담당 2021.06.06 16:22
(요약)

■ 방언

1. 교단의 본래 입장
①오순절에 대한
장로교 : 외적 부흥보다 자기를 먼저 돌아볼 것을 강조, 노선이 강함.
순복음 : ‘외적 부흥’을 교회의 목적시, 수단방법의 인본 세속화, 노선이 약함.

②방언에 대한
장로교 : 성경 정경 이후의 방언은 인정 안함, 성경에 집중.
순복음 : 성경 정경 이후의 방언도 성경과 동일시, 성경에 약함.

* 오늘날은 교리도 노선도 다 혼잡되었음.

2. 방언 착각
① 나는 방언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잘못된 방언
② 먼 외국어만 방언이 아니라, 가까운 영어나 지역의 사투리도 방언임.

3. 베드로의 방언
① 하나님의 뜻
 - 요엘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 시편 다윗의 성경 말씀을 풀어
 - 하나님의 뜻을 해석한 것

② 변화된 내용
 - 성령에 붙들려 지식이 바뀌고
 - 마음이 완전 바뀌어서
 - 지난 날에 했던 말과 똑같은 어투와 사투리로 하는데도,
 - 과거에 알던 말과 다른 말, 과거에 알던 지식과 다른 지식
 - 말의 내용이 방언이 되어져버린 것

■ 제자 3천

1. 양면
① 외면 : 실제 사람 숫자 3천명 (강조:순복음)
② 내면 : 우리 마음 속에 안 믿는 마음 (강조:장로교-양면)
 - 사람은 겉으로 인체가 하나요 호적에도 하나이지만
 - 인격적으로 사상적으로 지식적으로 행위적으로
 -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참 많은 것이 많음.

2. 적용
① 포화 상태 : 오늘 현실, 여수 순천은 전도할 사람이 없음.
② 내면 단일로
 - 그 많은 요소들을 그냥 풀어놓아야 할까?
 - 하나씩 둘씩 고치고 바꾸고 자꾸 씻어서 하나로 만들어가야 될까?

■ 사도의 가르침

1. 조심 : 안 믿는 사람만 가르치려 하지 말고,
2. 실제
 - 성경을 한 절 한 절 읽어가며
 - 깨달아가며
 - 하나씩 둘씩 내 속의 나를 먼저 가르치는 것

■ 교제

1. 교제 : 서로 말씀으로 고쳐나가는 교제
2. 실행과 구원 
 - 주님과 말씀으로 나를 먼저 고쳐보고
 - 그 경험으로 물어보고 도와주는 그 구원의 교제

■ 떡을 떼며

1. 떡을 : 사활대속의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의 몸.
2. 떼며 
 - 그 고난을 생각함으로 (떼어 먹고) 
 - 이제 그 힘으로 나를 꺽는 것, 죄를 이기는 것 (다른 사람에게 떼어)

■ 기도에 힘쓰니라

전적 은혜 : 이 일이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으니까 전적 기도로 주의 은혜를 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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