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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새21.5.24 행1:16 스스로 주님을 판 그 행위 그 생애, 하나님 연결을 끊고 세상으로 주력한 오판한 인격
* 설교 1차 교정본
210524 월새
찬송 : 91장 (환란과 핍박 중에도)
본문 : 사도행전 1장 16절 -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모인 무리가 한 120명이나 되더라” 이 안에 들어와야 되는 열두 사도 중에 하나, 그런데 은 삼십에 주님을 팔아버린 가룟 유다, 그 유다를 두고 지금 말씀합니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였더라 그리고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영이 중생 되어 지면 몸과 마음 자체는 무조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의 행위 우리 마음의 요소들 중에 성령에 붙들리면 천국 갈 마음으로 변화가 되어 지는데, 내 마음에게는 자유성 있어 말씀에 붙들려도 되고 말씀을 거부해도 됩니다. 말씀을 거부한 그 마음은 나 아닌 옛사람이라 자기 선택에 따라 이것은 버려집니다. 내 속에 있는 마음, 내 몸의 행위는 현실마다 선택이 주어지고, 내 마음 자체와 내 몸 자체는 천국 갈 우리들입니다. 열 두 사도 중에 가룟 유다에게 배정된 천국 구원, 그런데 주님을 팔아버림으로 스스로 주님을 판 그 행위, 그 생애는 당연히 자기가 버려야 됩니다. 가룟 유다 지목하여 배 터져 잘 죽었다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천국 가져갈 수 없는 심보, 그런 자세 그런 요소가 없겠는가? 우리는 마음속에 돈 때문에 주님을 외면한 적이 없었던가? 신사참배 육년에 신사참배 이긴 사람은 몇 되지를 않습니다. 지금의 신앙과 그때의 신앙은 비교도 못할 그런 신앙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잘 믿고도 마지막에 주님을 배신한 사람들. 그들은 전부가 지옥을 갔을까? 6.25 공산군 점령 하에 손 목사님 한 분 외에는 전부 피난 가거나 변절했습니다. 그때 고생 그때 그 마음 그때 그 행위는 가룟 유다 같은 배신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배 터져 죽은 사람도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판 그 고통에 배 터져 죽었는데 팔고도 빤빤스럽습니다. 가룟 유다보다 더 하지 가룟 유다보다 못한 사람이 없는 정도입니다. 가룟 유다 비판하기 전에, 난 내 생애에 그 가룟 유다처럼 그리 된 것이 몇 프로일까?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샀더라” 돈으로 밭을 샀더라. 세상을 팔아 천국을 사야 되는 것이 우리들인데, 천국을 팔아. 주님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 죄를 지어 하나님과 끊어진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다시 하나님을 모시는 천국을 가질 수 있도록 해결을 하신 분이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이 바로 천국인데 천국을 팔아 은 삼십에 땅을 샀더라. 하늘나라에 옳은 행위 맞는 행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기회 그 생을 두고 갈 땅을 위해서 바꿔버린 사람 땅 가지기 위해서 없애 버린 사람, 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샀더라. 두고 갈 땅을 샀더라. 두고 갈 땅을 일구어 이 땅 위에 건설을 샀더라. 천국 건설이냐 세상 건설이냐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그렇습니다. 말씀에 붙들려 말씀 순종하면 내 속에 천국 건설이 되어 질 것이고 그 말씀이 무거운 짐이라, 그 말씀이 불편하여 그 말씀 던져버리면 그 마음의 형성과 마음의 성향이 자기중심의 악이 될 것이고 말씀과 다른 행위가 될 것이고 이건 다 버려야 되는데.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뒤따라가야 되는 가룟 유다가 주님과 돈 중에 돈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매 현실에 항상 우리 앞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넓은 길, 좁은 길, 말씀으로 살라면 세상 살기는 좁습니다. 불편합니다. 험합니다. 말씀만 버려버리면 내 마음대로 주변 환경 따라 적당하게 편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늘을 위해 땅을 파는 사람, 땅을 사기 위해서 하늘을 파는 사람, 불의의 삯으로 불의라는 것은 자기 뜻입니다. 주님을 팔아 돈 삼십을 버는 이건 주의 뜻 아닌데, 자기 생각인데 그 값으로 세상을 샀더라. 우선은 땅 부자가 되었습니다. 몇 평이든지 간에. 그 결과가 보니까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그 소가지, 그런 내면, 그런 심보. 주님을 팔고 땅을 사는 그런 내면의 생각 그런 구조. 다 터져버렸습니다.
“이 일이 에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러 아겔다마라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그냥 땅을 샀는데, 그냥 땅 산 줄 알았디마는 세상을 산 것이었고. 아, 세상을 떠날 수가 있습니까? 세상을 사서 살아야지. 주님과 주의 뜻을 내버리고, 주의 뜻을 어기고 주의 뜻에 맞서 천국을 팔아 세상을 샀더라. 그 결과는 피밭이라. 생명의 값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생명인데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산 땅. 에덴동산 범죄 전에는 하나님께 붙들려 에덴동산을 통치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에덴동산 운영했는데 선악과라는 것은 하나님 떼버리고 나 중심 날 위하여 내 마음대로 에덴동산을 움직이니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떼어 밖에 내버릴 그런 인격이었습니다.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주님 팔아 세상을 사려는, 세상을 마련하려는, 세상 건설을 위하여 천국도 주님도 갈아 엎어버리는 이런 사망의 행위 멸망의 행위 되는가 스스로 늘 살펴봐야 됩니다.
뭔 고사리 밭을 하려고 불도저로 밀어버렸는데 알고 보니까 천년 묵은 산삼이었다면, 신풍 분들이야 산삼을 본 적이 없으니까 뭐 봐도 알겠습니까, 모르니까 밀 수 있겠지. 우리 내계 기도원 쪽 고 앞뒤가 유명한 산삼 산지입니다. 그쪽이. 우리 땅 넘어가면 남쪽이 됩니다. 산삼은 항상 그늘진 곳 북쪽으로 난다고 합니다. 우리 쪽이 그러면 다 그런데 일건데 몰라 놓으면, 이게 얼마짜리인지 모르면, 그냥 풀 인줄 알면 불도저로 밀어버리겠지요. 요즘은 난 광풍이 사라진 듯 한데 그 난 하나 백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십만 원짜리도 많습니다. 난 기르는 그 비닐하우스에 토끼 한 마리 넣어 놓으면 십만 원짜리 백만 원짜리 그거 뭐 그냥 잠깐이면 다 뜯어먹어버립니다. 토끼가 압니까 그거? 밥 한술이지. 난 한 꼭지에 십만 원이다 백만 원이다 난리들인데, 가치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비싼 거지 가치 모르는 사람한테. 주님이 얼마짜리인가? 어떤 분인가? 어떤 존재인가? 세상이란 뭔가? 모르면 멸망할 짐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되고, 그래서 배워야 되고, 그래서 연구해야 되고 그래서 이게 얼마짜리인지 느껴지고 나면, 아, 풀 한 포기에 그게 백만 원짜리라면, 알고 나면 그리고 백만 원이 뭔지 느끼고 나면 백만 원 이상을 주면 팔지 만원에라도 그거 팔겠습니까? 가치에 따라 행위가 따라갑니다. 주님이 얼마짜리냐? 어디에 쓰는 거냐? 뭐하는 거냐? 천국이란 몇 년짜리냐? 모르면 오늘 하루 세상 사는데 정신없어 내 앞을 지나가는 천국과 주님은 다 놓쳐버릴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배고프다고 문을 두드린 그 거지, 목이 마르다고 물 한 모금 부탁한 그 나그네, 옷이 없어서 떨고 있는 그 사람이 주님인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돌려보냈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네가 주님이 그렇게 시시했으니, 영원무궁토록 주님은 너한테 시시한 사람이 되어주마. 주님 있는 천국이 그렇게 싫어서 밀어 내쳤으니 주님 아예 볼 수없는 주의 은혜와 상관없는 그곳으로 마음껏 가거라. 자기 자유의 선택을 존중한 것이 음부였습니다.
깊이 깨달아 오늘의 매 결정 매 순간에 나의 주력은 어디를 향해야 되겠는가? 생각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장례식 예배가 일곱 시 반입니다. 일곱 시 반. 일곱 시 반까지 도착하게 하시고 예배실 장례식장에 예배실 숫자 조정을 하면 그 입구 문을 열어 놓으시고 복도 쪽에서 적당하게 떨어져 상가에 예의가 되도록 하십시다.
k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