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9 연경과제 - 시므이 처리

사무실 구 자료 업로드

2011.1.9 연경과제 - 시므이 처리

2011.01.09 연경서기 0 4 2022.04.27 17:16

연경주제

왕상 2장에서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예루살렘 안에만 살게 하고 이를 어기면 죽을 것이라고 했을까?

* 참고 : 시므이가 다윗을 욕했던 때와 비교하실 것
* 제출 : 별도 말씀이 없으면 연경 과제 제출은 금요일 저녁까지며  tlgus151@naver.com 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61.84.206.222 교인1: 다윗이 도망하여 요단강을 건널 때 시므이가 저주했고 그 요단을 다시 건너 예루살렘으로 올 때 맞은 것을 보아, 시므이가 하나님이 이 요단을 경계로 삼았다는 것을 생각하였으니 이 요단을 건너가는 순간 죄가 있어 건너가게 되는 것으로 시므이도 스스로 인정하는 격이 됨.
 [01/15-20:39]
61.84.206.222 교인2:
(과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시므이가 저주한 것은 그 저주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인줄 알았기에 왕권을 회복한 후에 용서를 했지만 시므이가 개인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을 저주한 것이 자기가 지은 죄임을 알고 다시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계를 둔 것이 예루살렘 안에 거하게 한 것임. 또한 예루살렘을 벗어나는 것이 순전히 자기가 짓는 죄로 인하여 멸망을 받는 것임을 자기도 인정되고 부인하지 못하도록 알게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안에 두게 하심  
(교훈)
-솔로몬왕이 다윗을 대적한 죄에 대해서 묻고자 하고 보응을 하되 그 죄에 대한 용서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안에 제한을 시킴
-솔로몬의 관할하여 통제하는 직접적인 예루살렘을 벗어나면 또한 그 죄가 외부로부터 오는 불가피한 죄가 아닌 다윗을 저주한 것이 자기로 말미암은 죄라는 것을 확인케 하기 위해서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 어쩔수 없이 예루살렘을 피해 간것이 아닌 순전히 자기에게 베푼 시은의 구역인 예루살렘을 벗어난 것임을 확인케 하기 위해
-시므이에게 또 다른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 준 기회가 그 보호가 그 에덴동산이 예루살렘인데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사망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 살면서 참 자기는 죽을 죄인이며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그곳이 회개의 장소요 이곳을 떠나면 죽음이라는 것의 경계선을 알려주고  벗어나면 앞의 다윗에 대한 저주죄와 더불어 사망케 된다는 경고
-다윗이 도망가서 다시 왕으로 추대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한 것과 같이 자기자리(예루살렘)을 지키지 못하면 사망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위해
-은혜를 베푼 곳이 예루살렘인데 이곳을 떠나면 은혜를 벗어나는 것이므로 그 결과는 사망이라는 것을 자기도 알고 인정되는 멸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입었지만 또 다시 자기가 구별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다시 없는 사망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01/15-21:01]
61.84.206.222 교인3: 인간 만물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뜻 안에서 상기하고 살듯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지만 예루살렘이란 공간  성전이 있는 곳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선을 긋고서  
솔로몬왕을 인지하고 자기(시므이)의 머리인 왕의 존재와 명령, 규약을 잊지않고 자기를 제어하며 생명의 선, 벗어나는 선, 죄 짓는 선, 자기주관의 머리가 나타나는 선으로 벗어나면 죽음임을 명령한 것입니다  
시므이 : 현실의 옳음의 흐름을 평가하지 않고 (정평정가없이) 자기종족, 자기계통의 왕의 나라가 없어짐으로써 다윗이 자기의 원수가 되었다. 세상사람들도 곤경에 처했을 때(원수까지도) 도움까지 주지 못할 망정 불난 집에 부채질의 잔인성을 보였다
솔로몬왕 : 죽을 만큼의 죄인, 죽어 마땅한 죄인이나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이 세운 지혜있는 왕으로서 복음운동과 구원운동차원에서 원수까지도 돌이키고 고칠 기회를 주는, 회개의 기회를 주는 솔로몬왕의 처사가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 견고히 서리라한 솔로몬왕의 말이 지당하다   [01/15-21:11]
61.84.206.222 교인4: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것은 하나님이 세운 하나님의 사람을 저주한 것이고 이를 회개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거하여 살며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스스로  죽음을 자처하여 이방나라로 나감
 [01/15-21:12]
61.84.206.222 교인5: ●이스라엘 왕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으로만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음.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이유
-하나님이 선택한 베냐민 지파의 사울 왕권의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보았음.
-시므이는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의 사울 왕권을 택했다는 믿음으로 다윗의 몰락을 기다렸음.
●다윗이 시므이를 죽이지 않은 이유
-압살롬의 반역이 처리 되는 과정에서 스루야의 아들들의 세력이 커짐.
-다윗은 자기의지로 세력을 모으지 않고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함.
-시므이는 죄가 있으나...
●다윗이 솔로몬에게 진정으로 부탁한 것
-하나님의 명을 지키는, 하나님만 의지할 것.
-시므이는 무죄한 자이나, 지혜롭게 처리할 것.
-다윗이 당부한 ‘지혜’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할 것을 말함.
●시므이를 예루살렘에 살도록 한 이유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를 통해 왕권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삐뚤어진 믿음의 대표.
-시므이를 예루살렘이라는 왕권의 중심지에 거하게 함으로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중 어느쪽에 왕권 계승을 허락하셨는지 명백히 하고자 함.
-시므이가 솔로몬의 제안을 좋게 받아들인 것은 그 제안이 자신에게 쉽기 때문이 아님.
-만약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는 것이 쉽기 때문에 솔로몬의 제안을 허락한 것이라면 시므이는 다윗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약속한 것을 들어 반박했을 것.
-다윗은 시므이 속에 아직도 베냐민 지파를 통한 왕권계승의 믿음이 있음을 알았고 이것을 솔로몬에게 지혜롭게 처리할 것을 당부한 것.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제안한 것은 믿음 대결.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혈연에 묶인 삐뚤어진 믿음의 소유자였고 당시 그런 사람이 많았음.
-솔로몬은 세상 방식으로 권력을 모으지 않음.
-‘솔로몬의 지혜’의 특징은 “심리하여 판결”.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예루살렘에서 떠나지 말라 한 이유
-솔로몬은 하나님이 유다 지파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을 세우시고 왕권 계승도 솔로몬 자신에게 있음을 바르게 믿음.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아버지 다윗이 아닌 하나님임을 믿고 의지함.
●느낀점
‘마태복음 10:16’
1. 백영희 목사님 설교 中
'뱀같이 지혜롭고' 뱀의 지혜를 네가 다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오. 뱀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네 행동은 비둘기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는 비둘기같이 해야 된다. 네 자체의 본질이나 본성이나 생활이나 행동이나 그거는 꼭 너는 지금 행동이든지 네 자체든지 그것은 비둘기 같아야 되는데 비둘기 같은 네가 뱀에게 대한 것을 다 가지고 있고 알아야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세상을 다 알고 있으면서 살기는 너는 비둘기같이 살아야 된다 하는 말씀이라. 뱀의 지혜를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뱀의 지혜대로 행동하는 것이 탈입니다. 행동하면 그만 절단났지만, 뱀의 지혜를 다 가지고 있고 행동은 그대로 하지 안하고 비둘기같이 행동합니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비둘기같이, 성령 같이 너는 성결하라. 그러면 이 모든 죄악을 다 알고 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더러워지지 안하고 성결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지혜는 뱀같이 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요 둘이 한데 붙은 것입니다.
2. 이영인 목사님 ‘문의답변’ 게시판, 2004년 답변 中'뱀처럼 지혜롭고' 하신 말씀은 뱀의 지혜를 가지라는 말이 아니고 뱀의 지혜를 알고 뱀의 지혜에 속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뱀의 지혜는 성도를 꾀어 죄를 짓게 하는 나쁜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처럼 외부 모습은 지혜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지혜를 가지고 우리로 죄를 짓게 하는 목적에 사용하기 때문에 뱀의 지혜는 그 속에 독을 품고 있습니다. 또 그 지혜 자체도 하나님이 금하는 선을 어기며 재주를 부리고 있습니다. 성도는, 뱀의 지혜를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러나 뱀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알면서 그 지혜를 사용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성도가 싸워야 할 방향 중에 하나입니다.  [01/15-21:17]
61.84.206.222 교인6: 예루살렘은 신앙의 중심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살고, 하나님 뜻을 어기면 죽는 이치를 자유성을 주어 선택하게 했습니다. 즉 시므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아갈 때는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는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는 이치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할 때도 하나님의 주권역사임을 깨달았고 시므이가 살고 죽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 역사에 맡기는 처사라 판단됩니다.  [01/15-21:18]
61.84.206.222 사회`: 많은 분들이 과제를 제출해 주셨고 그 중에는 연구의 노력과 결과가 감탄할 정도의 글들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이 노선과 우리 교회에 소망이 생깁니다. 한 주간을 연구했다 할 만큼 또는 아마 시므이 처리 문제를 두고는 아직까지 신학계에 이 정도로 깊은 연구가 나오지 않았다 할 만큼의 철저한 분석도 있었습니다. 시므이 처리 하나도 거듭 생각하며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록해 주셨는지를 연구하다 보면 성경은 무한한 진리이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 가는 매 순간 아주 적은 일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그리고 세상과 신앙과 교회와 어느 사건 하나를 읽고 분석하는 데에도 과거와 차원이 다른 교인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노선의 또 하나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01/15-21:31]
61.84.206.222 사회: (과제 마무리)
이 글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고 앞에서 여러 가지로 살펴 주신 글들 중에 하나로 읽기 바랍니다. 다만 제가 연경회를 인도하고 있으므로 현재 솔로몬의 시므이 처리 대목에서 인도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면이라고 생각하셨으면.
(과제 흐름)
다윗은
평생 사울이 불법 부당하게 죽이려 해도 사울이 은혜의 기관이면서 하나님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피하기만 했지 칼을 들고 맞서지 않았습니다. 이 것이 바로 다윗의 장점 중 하나이니 다윗의 자기 위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죽음과 이후 그 집을 하나님이 버리심과 다윗을 세우심과 다윗의 평생을 통해 하나님이 세운 왕임을 알 수 있었는데 사울의 집안이었다는 인간 감정에 붙들려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고 다윗이 쫓겨 갈 때 기드론 시내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위에 세운 하나님의 은혜의 기관인 다윗에 대한 자기의 경계선을 넘었습니다. 유1:6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이 천사의 타락, 악령의 시작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경계를 시킨 것은
다윗은 요압이든 그 누구든 다 자기 관할에 두고 복음에 유익하게 사용하든지 눌러만 놓고 있든지 전체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 사자 곰 이리 등 맹수를 가리지 않고 제어한 실력자입니다. 왕이 되어서는 안팎의 적들을 그렇게 눌렀습니다. 특히 요압이나 시므이는 다윗에게는 다윗의 자녀이며 교인이며 양떼이므로 살리는 방향과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하고 특히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는 주로 다윗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들을 매나 채찍이나 발람의 나귀로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그들을 더욱 아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다윗을 잇기는 했으나 계통만 구원의 계통이지 실력은 유약하기 때문에 다윗처럼 요압이나 시므이 같은 인물을 자기가 부모나 목자 입장에서 길러 가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유 없이 칼을 들면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부족한 왕이 됩니다.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살 곳을 정해 준 것은
한 편으로는 복음을 반대하는 고라 같은 구제불능의 반항의 악성과 악습을 회개할 기회를 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스므이가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할 기회조차 버린다면 솔로몬이 칼을 들어 죽이는 대신 시므이 스스로 죽는 길을 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회개하면 한 사람을 건지는 것이고 회개하지 못하면 솔로몬이 원수로 상대하여 싸워서 죽이는 방법이 아니라 회개하지 못한 그가 스스로 죽을 길을 가서 하나님 나라의 반대 세력이 스스로 소멸 되는 방법을 내 놓은 것입니다.
시므이의 문제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니,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시므이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와 살아야 할 처소를 바로 지키도록 살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 사람이므로 예루살렘이 그들의 경계이며 또 원래 그 곳에 살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이니 신앙의 절정이며 중심지입니다. 그 곳 안에서 살아야만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고 그 것이 어떤 면으로 봐도 시므이의 복입니다. 만일 돌이켜 사람 되는 바른 길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또 자기 위치를 떠날 터이니 그 위치를 기드론으로 그어 두었습니다. 그 경계선은 오늘 우리가 각자 자기 신앙에 따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술잔을 최종 선으로 그어 두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일 성수로 선을 그어 두시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 경제 생활로 선을 그어 두시는데 시므이에게는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살게 하고 기드론으로 넘어 가지 말라 한 것입니다. 자연양심으로 보나 민족과 가족의 양심으로 보나 신앙양심으로 보나 또한 만왕의 왕 다윗을 저주한 죄를 지은 자기를 솔로몬이 예루살렘으로 정해 준 배려를 봐도 어떤 면에서도 그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선을 넘은 사람은 그 선을 또 넘게 됩니다. 처음 선을 넘을 때 악령이 악성을 충동질해서 그러했는데 두 번째는 목숨을 걸고 넘지 말아야 하는데도 이 번에는 악령과 악성뿐이 아니라 지난 번에 시므이를 붙들고 경계를 넘어 간 적이 있어서 생겨진 시므이 속에 악습까지 나서서 시므이를 넘어 가게 했습니다.
3 년이 지나자 그렇게 되었습니다. 작심 3일은 우리 마음의 흔들림을 말합니다. 제법 의지가 강해도 석 달 넘기기 어렵습니다. 3 년이라는 시기는 모든 믿는 우리 전부에게 참으로 심각하게 돌아 보고 따져 보며 경계해야 할 숫자적 한계입니다. 백 목사님 평생에 목회자들을 향해 결국 3 년을 넘기지 못해서... 라는 장 탄식 긴 탄식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이 노선에서 조심할 것)
위 글의 다른 분들의 깨달음은 제가 그 면까지 살필 시간이 없었고 이 번 성경 공부는 앞 뒤의 흐름이 있어서 지난 주일 강의를 할 때 이 면을 생각해 둔 것이어서 적었습니다. 이 글과 다른 면으로 적었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무한하기 때문에 제가 좀 큰 것을 설명할 수는 있다 해도 그 것이 전부이거나 유일은 아님을 아시고, 말씀 연구에 매사 이렇게 진력하시면 좋겠습니다. 모두 너무 깊게 좋게 잘 깨닫고 계셔서 한 가지 두려운 것은 이렇게 깨달음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면 수 년 전에 잃어 버린 어느 목사님처럼 어느 날 자기가 생각한 것과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다 옳다고 쉽게 단정하는 데까지 이를까 하는 염려입니다. 이 노선처럼 깊은 세계에서는 자칫 그리 되는 분들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성경이 가라 하는 데 가지 않아도 죄고 성경이 서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더 가거나 옆으로 가도 죄가 됩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도 사후에도 서부교회와 이 노선에서는 적지 않은 작고 큰 삐뚤어 진 스승들과 위험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역사도 그렇습니다.   [01/15-22:06] 

Comments

Category
State
434,178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