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활인 목사님 가족

사무실 구 자료 업로드

손 활인 목사님 가족

2009/09/27 0 1 2022.03.30 14:05

일시 : 09.9.7.15:00
이름 : 손 활인 목사님의 사모님
관계 : 1953년 성암 교회 초대 목회자



1. 신상

손 활인, 82세 1922년생(28년 전 사망), 사모님은 1928년생, 광양 제철 과거 마을인 중동 출신, 첫째 아들 54년, 둘째 손 성은 목사님 58년 생이며 현재 부산의 고신 삼일 교회 담임



2. 학업  

초등 졸업 후 14세 정도 일본 유학, 부친이 왜정 말기 시국 상황에서 소망을 가질 수 없게 되자 자녀 교육에 신경 쓰지 않자 학업열을 가진 손 활인은 부산에서 배를 타고 도일, 일본에서 고학,



3. 첫 신앙  

약방 배달 중 구세군 선교사에게 전도 받고, 이후 그분은 목회자로 양육할 계획을 가져 미국 유학 기회도 있었음. 1944년 23세에 결혼했고 출산했으나 원폭 가운데 생존하고 해방 후 광양으로 나와서 아내는 광양 시댁살이를 하고 손 활인은 순천 매산 고등 성경 학교 공부.



4. 성경 학교  

1946년 25세에 순천의 매산 성경 학교 1회로 입학 후 3년 과정 중에 학구 교회가 목회자가 없어 학생들이 순회했고 손 활인도 주교 등을 맡아 공부와 순회를 함께하여 목회 경험에 도움. 성경 학교 시기에 반란 사건이 발생하여 사모님은 남편이 옹기꾼 지하실에 숨었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시체를 찾으러 갔는데 시체가 더미로 쌓인 정도여서 돌을 밟고 가듯 밟으며 사람을 찾아야 했던 시절, 조사님은 반란군이 시체들을 찔러 보며 죽었다며 지나갔는데 그 속에서 살아 남음. 구례 곡성도 수다히 죽어 돌처럼 무더기로 쌓였다고 했음.



5. 군내리 교회

현재 돌산읍 제일 교회라고 하는 군내리 교회를 개척했고 손 양원 목사님이라는 이름만 들었던 시기. 전쟁이 나자 가족은 숨었고 조사님은 반란 때 경험을 해서 그런지 즉각 입대 후 거제도 20일 훈련 받고 전상으로 망미동의 동래 통합 병원 후송, 우측 팔목 작은 뼈와 30센티 부상으로 전역. 가족과 입대 후 편지조차 되지 않고 9 개월 재회. 조사님 입대 중에 여수는 점령 후 수복이 되었는데 군내리 교회를 개척한 허 사용 집사님이 미평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 부인과 함께 시체를 찾아 옴. 손 목사님도 그 자리에서 함께 돌아 가셨으니 뒤에 말로 들음.



6. 금천 교회

전쟁 후에는 금천 교회 개척. 당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바다 가에 일해서 웃녁에 쌀을 바꾸러 다니는데 그것도 능력 있는 사람이나 가능. 학구 위에 나는 것을 가지고 괴목으로 다님.



7. 신풍 - 성암 교회

- 부임 과정
애양원 담임이던 서 현식 목사님이 광양 출신으로 손 조사님과 동향이고 서 목사님의 오 인모 사모님 부친은 이북 출신으로 성경 학교 교장인 장로님. 학교 다닐 때 눈 여겨 보았을 것이고 애양원 교회 서 현식 목사님이 사위면서 당시 사모님 부친 오 교장의 권세가 굉장했으므로 성암 교회로 초청 되었을 것. 당시 직원들도 배가 고프니까 썩고 냄새 나는 것도 함께 나누고.
정 양순 사모님은 눈물을 많이 흘리는 분으로 눈가가 헌 듯 했고, 오 인모 사모님은 입술로 눈까지 왼 쪽이 흉하여 두 분이 다 나 환자처럼 보임. 실제로 그렇게 본 정도.

- 신풍 교회
성암 교회에 와서 알고 보니까 정 양순 사모님은 성암 교회와 별도로 예배를 드리는 문제로 교인들끼리 다투는 것을 알게 됨. 애양원 직원들이 중심이었던 성암 교회는 고려파 신앙과 다르다 해서 정 양순 사모님은 가정 집에서 예배를 따로 보는데 사모님이 대장. 주로 서 귀덕 집사님에게 많이 들었는데 신풍 시절 서 귀덕 집사님과 제일 가까웠고 서 귀덕 집사님도 사모님과 신앙은 한 편. 교인들 중에서 여수 쪽에서 등을 넘어 오는 교인들이 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인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 심방을 다닌 기억. 등 너머 오는 교인은 60세나 될 분인데 교회를 살리려고 애를 썼고 여반 3명 정도인데 유씨 박씨로 기억.
손 활인 조사님은 처음 부임해 왔을 때는 양 쪽을 다 다독거림. 이미 공부는 해 놓았으므로 신학을 해야 했고 서울로 가서 한 학기 공부는 했는데 그 때 함께 공부하러 갈 교역자가 있어 서울로 가는 문제로 고민. 교회는 양쪽으로 나뉘었고 신학도 해야 했고 아직 확정을 짓지 않을 때여서 어느 편도 들지 않았음. 정 양순 사모님을 달래려고 손 조사님은 따로 심방을 다녔는데 교회 이야기에 머리가 아플 정도. 차 병용이라는 교인도 그 때 기억이 나는데 당시 청년이고 교회에서 교역자처럼 학생들을 가르침. 조사님은 차 병용을 뭘 시키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 교회에서 떼냄.

- 노선 정리
고려파 신앙 문제로 교회가 시끄럽던 중 한 상동 목사님이 애양원에 집회를 왔고 손 조사님이 집회에서 은혜를 크게 받자 집회 후 남해 금산으로 40일 기도. 기도 갔다 온 뒤에 손 조사님은 고려파 신앙으로 완전히 확정하고 소속 문제를 해결.
원래 성경 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총신으로 가서 한 학기를 공부했었는데 더 이상 총신을 갈 것이 없다 해서 고신을 선택. 원래 성격이 부드럽고 우유부단한 것이 있는데 결정적일 때는 단호.
처음 신풍에 갔을 때는 정 양순 사모님 관계가 애매했으나 나올 때는 사모님과 풀려 져서 좋아짐. 한 번은 사모님이 전도사가 담배를 핀다고 큰 일이라며 직원들에게 알려서 문제가 되었는데, 당시 담배 농사 짓는 사람들 때문에 냄새가 난 것. 손 활인 조사님의 사모님이 직접 정 양순 사모님에게 항의를 해서 사과를 받음. 처음 정 양순 사모님은 함부로 접근하기가 어려웠음

- 기타
정 양순 사모님은 환자들이 돕기는 해도 경제는 그렇게 좋지 않았음.



8. 충무동 교회

신풍에서 여수 충무동 교회로 간 것은 고신 교회였기 때문에 김 응도 목사님 시절 부목으로 갔고, 여수에서는 신학을 하려면 부산으로 가기 편해서 간 것.



9. 쌍봉 교회(현. 여천 교회)

충무동 교회에서는 교회 형편 상 고신을 다니기 어려운데 애양원에 아는 분의 소개로 쌍봉에 개척 목회. 쌍봉 교회(여천 교회) 개척 56년.



10. 신생원 교회

58년 밀양 신생원으로 부임. 3년 근무. 이동 후에 신생원 교회에 백 목사님 집회한다는 말을 들었음. 신생원은 이미 신풍에서 애양원 환자들을 겪어 봐서 잘 견딤. 원에는 환자들과 직원들의 알력.



11. 일동 교회
창원에서 2 년 근무



12. 장천 교회

순천에 장천 교회(팔복 교회)를 개척. 교회가 지낼 만하게 되었는데 총회와 고려파가 합동했고, 대대 교회를 맡았던 조 장로님에게 일이 있어 교회를 임시 교환 시무했는데,



13. 대대 교회

9 개 월만에 환원이 되자 대대는 잔류를 간곡히 부탁하는데 조사님은 나는 고신 신앙이라면서 장천으로 가려 했으나, 장천에 백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가 순천 성경 학교 학생 70여 명을 동원하여 막고 밀어 내어 분쟁. 당시 반대에 나선 학생들이 현 교계적 인물.



14. 남부 교회

갈 곳 없어 무임으로 2년 지낼 때 노회장 남 영환 목사님이 광양 남부 교회로 부임.



15. 중부 교회

진주로 갔고 호남 사람이라고 어려움, 사직동 교회 정 판술 목사님과 인연. 1964-5년 경.



16. 반송 교회

부산.



* 기타
목회자 사모의 어려움 - 한 상동 목사님 사모님이 예배당에서 밤낮으로 과부들이 떼로 몰려 와서 기도하니까 ‘과부떼들아! 나 좀 살자!’ 절규.
손 활인의 신앙 성향 - 광양의 엘리야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신앙에 곧게 갔고 교계 정치에 초월



- 평가
면담 전체를 통해 거의 모든 내용이 확실하게 회상 되었으며, 내용이 거의 객관적 자료에 일치하고, 평생 연락이 없었던 분들의 회상과 일치하였으며, 특히 신풍 체류가 1년이었으므로 신풍 교회의 개척 시점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언, 신풍 교회 개척은 1952년으로 확정할 수 있는 증언


==================================================================
졸업생 명단
고신 7회    서 완선(백 목사님 제명 시 서기) 이 병규(계약측 총회장)
고신 8회    장 영실(진해 한얼고교장 출신) 정 봉조(백 목사님 초등 학교 친구) 홍 근섭(내수동 교회)
고신 9회    최   훈(김 창인 이 병규와 동지) 추 국원(추 순덕 숙부) 박 복달(고신 최고 여 성도)
고신 10회    박희천(총신 성경 교수, 내수동 교회)  
고신 11회 명단 - 1957.3.15.
박창환 한삼석 장희근 김원희 김주오 김재병 김창인 박장실 박현진 손활인 이재근 추교경(추 순덕 부친) 곽순주  
우태숙 서옥련 

Comments

Category
State
433,961 since 2005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