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우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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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우열 목사님

2009/09/27 0 4 2022.03.30 14:01

일시 : 09.9.9. 09:50-11:00
이름 : 류 우열
관계 : 신풍 교회 초기 목회자



1. 신상  

- 원래
柳 우열 31년생, 박 애남 34년생(호적35년), 현 80세, 77세, 구례군 산동 수기리 45번지

- 신앙
목사님은 해방 후에 믿었고, 사모님은 부모님과 일본에서 믿었는데 한글로 ‘예수 사랑 하심은’ 찬송 부른 기억. 6-7세 믿었을 것. 사모님은 친정 모친이 구례 냉천리에 살았지만 간전면에 고려파 교회가 있어 신앙 생활은 그 쪽으로 했고 결혼을 하면서 고려파가 되어 부산으로 고려 고등 성경 학교

- 가족
1951년 결혼(24세 21세), 현재 2남 3녀 5 남매이며, 첫째가 거문 교회 유 에녹 목사님으로 53년생 현 57세.



2. 신풍

- 부임
1955-57년 신풍 근무, 57년 이후 이평 교회 개척
부산에서 고려 성경 학교를 다닌 인연으로 신풍 발령, 성경 학교를 다니면서 매 주일 배를 타고 신풍으로 왔고, 평소에는 강단을 비울 수가 없어 다른 서 전도사님이 대신 맡음(빼빼하고 안경 쓰고 작은 분, 밥은 사택)

- 시기
동길이 6살에 갔고 52세 딸을 신풍에서 낳았고 정 양순 사모님이 회복간을 직접. 2년 반 정도 근무 기억, 둘째가 기어 다닐 때 이임. 충무동 교회 목사님이 당회장

- 형편
처음 갔을 때 예배당은 돌로 쌓았고, 사택은 초가 3칸 집이었고, 사택에는 교회는 나오지 않아도 너무 어렵게 사는 분이 폰수 엄마라는 가족이 사택 작은 방에 살았는데 너무 가난해서 식구들은 많은데 이불조차 작은 것만 있는 정도.

- 교인
구암 김 집사님 부부, 역전에서 나오는 분(도리납작), 처녀 2명, 총각 5명. 차 병용 유 완종 열심히 믿던 것 기억. 주일 학생은 거의 없는 상태. 장년반은 가난했고, 사모님, 사모님이 개척을 해서 청빙한 것은 알고, 전임자 후임자는 모르고. 성암 교회는 모임이 있었고



3. 정 양순

- 생활
사모님은 애양원 문간 앞에 집이 따로 있었고

- 활동
항상 외지로 다니면서 모금했고, 나가면 가방 하나 들고 나가고, 한 번 나가면 월 요일에서 토 요일까지 보통 한 주간이고 어떤 때는 한 달도 걸렸고

- 경제
돌아 오면 쌀이나 과일이 있었고, 사모님이 사택 교역자와 꼭 같이 나눠 먹고 살았기 때문에 사모님이 나갔다 와서 양식을 구해 오면 함께 부자가 되었고 없으면 함께 가난하게 굶었고, 사모님 말씀이 나가 다니다가 배가 고파 주저 않으면 눈 앞에 과일이 보여서 먹었고 또 쌀이 없어 주저 앉을 때 쌀이 보여서 먹기도 한 적이 많은 말씀. 먹은 것보다 굶은 것이 많은 정도. 땔 나무가 없어 늘 짚으로 군불을 땠는데 겨울이면 추워서 너무 고생. 정 양순 사모님도 어려운데 어떻게 쌀을 팔아 두 가마니가 사택에 있었는데 누가 도적질. 먹는 것보다 방이 추워서 너무 곤란. 애양원 교회는 일체 도와 주지 않음. 그래도 교역자 부부는 교역자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았으나 사모님은 정말 늘 어려웠음. 특히 짚을 때야 해서 추움.

- 가족
동장이는 집에 없었고, 동길이는 아이였고, 큰 딸 작은 딸은 가끔 오고.

- 신앙
사모님이 너무 고지식해서 다른 교회는 남녀반이 조금 자유로운데 그 교회에서는 아예 근처도 가지 못하게 갈라 놓음. 매월 31일이 되면 사모님이 사례 계산을 하는데 쌀 통을 조사해서 한 두 되만 남아도 빡빡 긁어서 돈으로 쳐서 사례 계산. 아주 정확하고 철두 철미한 분. 구암에서 물을 길러 와야 하는데 주일날 쓸 물은 토 요일에 미래 갖다 놓아야 하고 주일에는 빨래라도 늘면 혼이 나고, 교역자에게 신사 참배를 했냐고 물었고 일제 때 믿지 않을 때여서 했는데 했다고 말하니까 깜짝 놀라면서 그대로 강단에 서지 못한다고 회개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사모님이 대표 기도를 하면 열불같이 해서 강단을 잡고 쩔쩔 매는 정도. 정말 대단한 분.

- 서 귀덕
신풍 근무 하는 동안 교회 출석하지 않아서 전혀 모르고,

- 이임
홀로 사는 시아버지가 있었고 독아 집에 사는데 모셔다 신풍으로 모셔다 놓았으나 짚으로 때고 사는 집이어서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부부가 시아버지 사는 용방으로 가서 살았고 용방 교회가 목회자가 없어 무보수로 몇 달 근무. 애양원 보이열 목사님이 이평을 개척하라 해서 시작. 월급 7천 원. 그 후 죽곡 교회로 이동. 순천에 보이열 목사님이 하시는 성경 학교가 있어 그리로 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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