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와 부탁, 그리고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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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와 부탁, 그리고 감사

2018.03.03 이영인 0 3 07.19 18:43

'자기'를 아주 빼버리고 살라는 뜻을 받아 이 글을 올립니다.

(또 한번의 기회)
'죽음'을 왼 손에 잡고, '생환'을 오른 손에 잡고 한 주간을 은혜롭게 감사히 그리고 뜻깊게 잘 보냈습니다. 백 목사님의 순교, 아내의 사고, 최근 여러 일들처럼 참으로 극단적인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이 노선을 알게 된 은혜를 가장 뼈저리게 느낍니다. 극단적인 상황을 만날 때 만일 제가 이 길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을 했을까? 아찔할 뿐입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본 방향을 알기 때문에 벼랑 끝으로 떠밀릴 때마다 방향은 제대로 잡고 온 듯합니다. 천하가 무너질 상황에서도 늘 감사했고 가야 할 방향으로 더 도움이 되었으며, 또 제가 해야 할 사명은 어느 정도 해 왔습니다. 이 노선에서 이 말씀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절망 분노 복수로 치닫고 자타를 참 불행하게 했을 제 모습이 늘 그려 졌기 때문입니다.

(주관을 버리라는 통고)
MRI 사진에 너무 선명하게 뇌경색이 표시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설명은 너무 확실하여 거침이 없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주님이 '이제, 너 없는 교회와 공회와 연구소를 대비하라'고 다그치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심부름만 했다면 제가 있든 없든 교회는 불편이 없어야 합니다. 주님과 다른 방식으로 목회를 했다면 제가 없으면 교회는 차질이 많고, 그 불편은 모두 제 인본이 원인입니다. 과거 몇 가지 기회를 통해 제가 교인들의 세상 문제를 살피던 것은 대부분 해소했습니다. 지금은 새벽예배를 나가면 10시가 넘어야 사택에 옵니다. 이제는 목사 흉내를 막 낸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이 번 일이 생겼습니다. 보통 일이 생기면 저는 제 속에 가책을 바로바로 찾아 냈고 해결해 왔습니다. 이 번 일은 평생 가장 큰 일인데도 별로 가책은 없습니다. 다만 나를 부인하는 일에 매진하자는 각오가 새롭습니다. 모든 교회 일에서 주관을 벗어 나는 것이 이 번 기간의 제 과제입니다. 일단 방향을 잡았으니 조금씩 나아 질 듯합니다. 이 번 일을 통해 교회적으로 소리 없이 달라 질 일들이 있어 양해를 구합니다. 좋게, 발전적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공회와 연구소와 우리 교회가 제게는 늘 활동 범위입니다. 이 길을 배웠으니 함께 대화하며 더 나은 길을 찾아 가면 좋겠으나 평생을 애타게 부탁해도 그렇게 하는 분이 없습니다. 이제 일이 중단 되어도 앞으로는
- '상황을 먼저 정리하고'
- '어떻게 대처할지'
제게 제시해야 하는 교인은 이 2가지를 제게 먼저 제시해야 제가 안내에 나서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이 제게 전부를 맡기고 그냥 저만 쳐다 보고 있다면 저도 최대한 말과 행동을 아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교인에게는 과거처럼 제가 목회자로서 충성하는 것이 맞지만, 자기 판단과 대처를 생각해야 하는 분들까지 제가 대신 요약을 해 드리고 대처 방향까지 설명하는 바람에 제가 나서지 않아야 할 일에 나선 것이 많았고 이 것이 지나 친 주관이 되고 무리가 되고 이런 건강 문제까지 닿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처럼 세상 일은 없지만 이제 교회와 연구소와 공회 일로 혼자 짐을 진 것은 백 목사님 사후보다 여러 배가 많을 정도입니다.


(생각하는 신앙으로 발전했으면)
타 교단처럼 목회자를 무시하는 것도 탈이고 우리 교회처럼 그냥 있으면 목회자가 알아서 다 해 준다고 자기 숙제를 버려 둔 것도 탈입니다. 다른 교회는 목회자가 좀더 움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움직여야 할 교인들이 움직일 때까지 목회자가 좀 두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연구소와 공회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미 말씀은 충분히 전했습니다. 수고하면 복이고, 던져 두면 자기 건설은 없습니다. 한꺼번에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렇게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둥 번개로 예배당 전기가 다 나갈지라도 우리 교인들은 자기 생업에 바빠서 피뢰침을 생각하거나 어떤 대책을 제시하는 일을 피합니다. 신앙의 사람까지도. 올해는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해도 제가 함께 기다려 보고자 합니다. 올해 집회는 제가 강사로 11시간을 다 맡습니다. 제가 갑자기 서지 못하게 되면 집회 전날이라도 또 집회 도중이라도 모두 멍하니 쳐다 보다 알아서 돌아 오는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나 가정이 걸린 문제를 두고 해당 가정이 마지막까지 제 얼굴을 쳐다 보고 있으면 저도 함께 쳐다 보면서 그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있는지 함께 보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안타까워 제가 먼저 하다 보니 멀쩡한 교인들이 세상 일로 치우치고 신앙은 비어 버렸습니다.

제가 강단에 서지 못하면 강단 문제를 어떻게 할지, 누가 누구와 결정하고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제가 건강할 때 서기들이 안을 마련하여 제게 먼저 제시하면서 서로 조절을 하면 불과 몇 번을 통해 강단에 대한 노선과 결정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 분들이 많아질수록 교회는 갑자기 강단이 없어 져도 넉넉히 대처를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겉으로는 목회자 1명을 세워 뒀으나 속으로는 목회자가 많아 지는 것이고, 이 상황이 우후죽순 다투고 제각각 제 소리를 하지 않고 이 길에서 바르게 방향을 잡게 되면 대단한 교회가 됩니다. 이 것을 교회의 실력이라고 합니다. 손 목사님 사후의 애양원교회, 백 목사님 사후의 서부교회가 오늘의 저 모습이 된 것은 목회자의 생전만 생각했지 그 사후를 미리 배우고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교회의 당시와 비교하면 100분의 1이라 할 정도 유약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건강할 때 이 길을 빠르게 배우고 함께 대처해 보는 실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교회도 공회도 범위가 작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려면 쉽습니다. 준비가 없으면 어느 날 산산히 흩어 진 역사의 교회처럼 그렇게 됩니다.


(제게 주어진 그 시절)
이 번 기간에 1980년 8월 중순, 부산의 금정산 70인 바위에 기도하던 중에 '백 목사님이 오늘 돌아가신다면 나는 어떤 신앙이 될까?'라는 과제로 기도를 하던 중, 강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고 그 날 결심 때문에 저는 1989년 8월 27일까지 백 목사님의 설교와 사건처리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저보다 더 건강한 저 분이 계시지 않으면 나는 이 말씀을 어떻게 깨닫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라는 과제로 살았습니다. 1989년 8월 27일까지 그렇게 준비하면서 꼭 모르는 것은 백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여쭸습니다. 이 혼자의 경험은, 백 목사님 순교한 바로 그 날 그 시간부터 서부교회와 총공회는 물론 백 목사님의 가족들조차 모두 제게 만사를 묻는 결과가 됩니다. 심지어 저를 서로 붙들려고 치열하게 분쟁이 일어난 정도였습니다. 제가 세상식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오늘과 정반대 모습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최근 160여 건의 고소가 몰아 친 것도 그 고소측 인물들이 그러기 전까지 저를 자기 사람으로 끌려고 얼마나 노력했던 것을 우리 교인들은 다 알지 않습니까? 말씀의 길을 버릴 수 없어 그들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제 상황을 두고 처방이 천차만별입니다. 무리했다는 분들, 공회 노선을 고집해서 자초했다는 분들, 인간적인 습성 때문이라는 분들, 수 없는 말들을 듣고 있지만 저는 이 길에 더 철저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더욱 충성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또한 작은 문제들은 있지만 전체 방향과 길은 옳았다는 입장에 변동이 없습니다. 제가 오늘 죽어도 대구공회는 틀린 길입니다. 오늘 제가 죽어도 서부교회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오늘 제가 죽어도 백영희 설교를 자녀의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늘 제가 죽어도 내계를 두고 신풍의 결정이 옳았다고 외치고 가지 모덕이 옳다는 말은 못합니다. 제 가족이 저희 교회에 돈을 받아 내는 일은 열 번이 아니라 백 번 죽어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놓고도 다시 말할 수 있고, 죽음을 놓고 오히려 더 강하게 외칠 수 있다면 평소의 판단과 조처는 제가 깨닫고 걸어 온 말씀에 따라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젊어서 큰 소리를 치고 또 건강할 때 활동적인 사람이라 해도 막상 죽음을 앞에 놓게 되면 꼭 그렇게 했어야 할까 라는 의심이 들고 마음이 달라 집니다. 저는 그렇게 바뀔 일은 평소 마음에 생각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제가 배운 말씀이 바뀌어야 생각이 바뀌지 그 말씀이 바뀌기 전에 일이 생긴다고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여수의 바닷가 시골 교회지만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이 그대로 쏟아진 개척에, 김현봉 목사님이 정성을 기울이고, 마지막에는 백 목사님의 사후가 쏟아 진 교회입니다. 하룻밤 세상을 살며 3끼 밥을 편히 먹고 웃고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가 없는 교회입니다.

(적어도 김영예보다는 앞서기를)
내일 주일, 김영예 선생님께 설교 부탁을 했습니다. 더 나은 분들이 많은데 모두가 자기 생각이 강하니 부탁조차 하지 못합니다. 장로님 한 분만은 모든 면에서 항상 부탁할 수 있으나 이제 다른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기 위해 최근에는 별로 부탁하지 않습니다. 최근 장로님의 사회 때 기도를 생각하면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훌륭하지는 못해도 강단이 빌 때 힘차게 맡아 나설 분은 많아야 하는데, 모두가 자기 주관으로 판단하고 버티니 기도할 뿐입니다. 교회에서 힘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앞으로 제가 더 기도하고 노력해서 우리 교회 절반의 교인들이 언제라도 강단을 맡기에 넉넉하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심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김영예 선생님은 시내 교회가 잘 맞는 분입니다. 그런데 제 안면 때문에 몇 번을 순종하다 보니까 지금은 우리 교회의 강단을 거의 맡고 있습니다. 이 상황은 교회 차원에서는 참으로 아쉽습니다. 성경은 남반이 머리 되라 하셨고 또 공회의 말씀을 두고는 김영예 선생님보다 잘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대로 알고도 남을 분들이 많은데도 왜 강단을 맡기지 못하고 있는가? 자신들의 주관이 너무 강해서 버티고 있으니 이 말씀을 전하는 것조차 발전이 없고 세월만 간 것입니다. 주시는 은혜에 따라 각자의 장단점이 다른 것은 있다 해도 여전히 제 탄식은 바꿀 수 없습니다. 모두가 제일 순종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자기의 몇 가지 주관을 평생 바꾸지 않으니 발전이 없습니다. 이 번 일로 제가 주님 앞에 제 주관을 더욱 철저히 부인하기를 각오했습니다. 함께 그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뜻만을 찾고 순종하는 우리, 그 모습이 교회입니다.

저도 여러분들도, 다시 새로 일어 서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영인 올림



교인: 노력하겠습니다.  [03/04-13:59]


여반: 처음에는 목사님처럼 되어 보려고 힘썼는데 이제는 흐려졌습니다. 다시 마음 다잡고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03/04-16:16]

실시간 교인: 세상이 어떻게 보든지, 유일 소망에 서서, 한 길 끝까지 가시는 목사님의 뒷모습이라도 닮기를, 이번 기회에 더욱 간절히 소원합니다.   [03/04-17:27]


교인: 소망을 하늘에 두고 모든 현실에서 충성을 다하기를 다시 결심해 봅니다.  [03/19-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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