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병권 집사님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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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병권 집사님 (교회사)

2009.08.13 0 6 2022.03.22 18:28

일시 : 2009.8.13. 13시
대화 : 서 병권 집사님 (성암 교회에서 72년 경 신풍 교회로 오셨던 교인)
전화 : 051-333-1612




서 병권

- 어린 시절
1936년 생(호적, 38.1.15.)
신풍에서 율촌면 율촌 초등 학교로 공부, 기차가 아침 저녁 2 회여서 불편했으므로, 부모들이 모두 9 세에 취학시킴. 1학년 10 세, 2 학년 해방. 율촌 초등 학교 졸업

- 신앙 생활
다니기 전에 구암 학서 마을에 손 목사님이 교회를 작게 세웠는데 서 현식 광양 출신 전도사님이 오셨고 (후에 여수 만성리 중고교 설립) 나중에 애양원 후임 목사, 초등 학교부터 주일 학교 다님. 해방 후에는 애양원 손 목사님 설교 들으러 다님. 서 귀덕 집사님 신앙이 깊었고 그 분이 손 목사님 잘 따랐음. 서 집사님이 우리를 데리고 애양원 예배에 가끔 갔음.

- 청년 시절
1950년 전쟁 때에 중1의 15 세였고, 손 목사님은 애양원 교인 중에 한 사람이 밀고. 신앙으로는 서 귀덕 집사님이 특별했다고 기억. 손 목사님 사모님은 막내 동장이 친구인데 한 번도 친구들을 놀러 오라는 말도 한 적이 없는 정도.

- 성암 교회  
68년에 교편을 사직하고 79년에 복직했고, 성암 교회 담임 오 동환 목사님이 1965-72년 성암 교회 부임, 교인들에게 백 목사님을 소개했고, 장로님들이 백 목사님 쪽이라고 분란 발생, 오동원 목사님이 공회로 넘어 올 때 뜻을 같이 하는 교인들이 함께 신풍 교회로 이동,

- 신풍 교회
박 목사님이 계셨고 이리의 이 교부 측에 가까웠음. 오 동원 목사님의 영향으로 허 인채, 유 종선, 서 병권 3 명이 백 목사님 집회 참석했고 서부 교회로 자주 다니며 필기하여 3 명이 돌아가면서 설교. 후임으로 온 곽 목사님이 우산 쪽으로 나갔을 것, 곽 목사님 오셨을 때는 분란은 없었고, 서울 신학을 했었고 한복을 입었고 우리와 함께 거창 집회와 서부 교회도 다님

- 현재
89년 백 목사님 생전까지 서부 교회 집사로 계시다가, 사후 분란 때 고신의 신평 교회로 이동,
이후 공기가 좋은 등의 이유로 부산 화명동에 거주하게 되어 신평 교회에 문의하고 포도원 교회
소개 받고, 최근 6 - 7 년간 출석


소개

집사님으로서 1970년대 초반에 부산으로 직접 배우러 다녔고, 교사였으며, 서부 교회를 출석한
신풍의 초기 교인이면서 이 노선의 가치를 잘 아는 분이나 공회 분란으로 이동하여 안타까운 분
아직도 신풍 교회 애착이 많으며 이 노선의 가치는 알고 계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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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09.9.3.
이름 : 차 수예 (손 양례 집사님 소개)
신풍 살 때는 학서 교회 시절은 다녔고 광주 중앙 교회에서 권사로 돌아 가셨고
남편은 문 숙자와 4-6촌인데 남편은 신앙과 멀었고 군 생활
딸 2 명(문 구나, 문 근영)인데 다 이화 여대 나왔고, 아들 2 명이며
첫 사위는 고대 출신으로 데모하다 눈 장애 상태며, 둘째 사위가 판사
차 중철 선생님의 4 형제 중에 큰 형님 집 딸로서 서 귀덕이 자녀 없어 특히 딸로 대함
차 중철과 차 종석은 4촌
차 수예 권사님 동생이 차 성례(64), 순천 삼일 교회 권사


일시 : 09.9.3.
이름 : 차 성례 권사님
전화 : 061-744-5080, 010-7649-5080

- 신상
현재 순천 삼일 교회 (고신) 권사님
1946년생이고 언니 차 수예 권사님은 1936년생으로 74세이며 최근 돌아 가심
신풍 초교 5회로서 8세인 1953년에 입학했고, 여수여중 14세 입학 정상으로 중학교까지 끝내고 집에 있다가 1971년 26세에 순천으로 결혼하여 신풍을 떠남

- 출석
학교 입학 전인 6-7세부터 언니를 따라 성암 교회를 출석했고 붉은 도단 지붕 집이던 시절이며 그 예배당 옆에 집의 밭이 있어 확실한 기억. 그 때 성암 교회에는 정 양순 사모님이 계시지 않았고, 어느 날 당숙모 되는 서 귀덕 집사님이 성광 교회로 데려 갈 때 언니와 함께 따라 갔으며, 초교 2-3학년 때로 기억. 정 양순 사모님이 초가집에서 예배를 따로 드렸는지 기억은 전혀 없고 성광 교회로 갔을 때 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한다고 모두 바다가에 가서 모래나 돌을 져 나를 때였으며, 예배는 그 초가집에서 드린 기억이 없음. 4-5학년 때쯤 건축이 완성되고, 바닥에 지푸라기 깔고 예배 본 기억.
당시 성암은 구호품도 많았으나 성광으로 나온 뒤로는 바로 구호품도 다 끊어지고 박 래석 목사님은 굶기를 먹기보다 많이 했다고 말씀한 정도
처음 갔을 때는 젊은 전도사님들이 와서 교대로 있다 갔고 뒤에 박 래석 전도사님이 오셨고 세월이 가니까 강도사 되고 뒤에 목사님 되었는데 신풍에 계시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중도에 가시고 다른 분이 오셨고, 비행장 때문에 예배당을 옮겼고 교회의 소속이나 그 변경은 전혀 모르고 믿었으나, 김 현봉 목사님 뒤에는 이 병규 목사님 이름을 들어 알고,

- 정 양순 사모님
처음 교회를 출석할 때부터 그 집은 신풍에 있었으나 사모님은 교회 출석은 꼭꼭 하지 않았고 부산으로 서울로 다니면서 모금을 한다고 하셨고, 사모님 댁에 동연 동림은 신풍에 있었고 사택도 식모도 아직 함께 있었음. 사모님 자녀들은 신풍 초등학교를 다니지는 않았고, 아들 동장은 머리를 깎고 교복을 입고 학교 다니는 모습 기억

- 소속
충무동 교회에 여전도회 연합 예배를 참석한 기억이 있고, 어느 날 박 래석 목사님이 머리를 깎고 옷도 바꿔 입었고, 남반은 머리까지 깎은 사람은 없었으나 여반은 김 판심 집사님 등 몇 분이 흰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는 아현 교회식 복장으로 바뀜. 김 현봉 목사님이 신풍에 3번쯤 집회 온 기억이 있으며. 한번은 아현 교회에 사경회가 있다고 가자 해서 아현동으로 여러 교인들이 함께 간 기억. 엄마들과 아가씨들이 함께 갔고,

- 예배당 이전
예배당을 처음 건축하고 나자 교인이 많아져서 4-50명이 된 것 같고, 그 뒤에 삼거리로 옮길 때에는 3-40명에 주교생 20여 명이나 된 것 같고, 어른과 청년 비율은 비슷한 것 같고,
26세 1971년에 불신 결혼해서 순천에서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시부모님을 전도해서 순성교회(통합, 구 시청 부근 성가롤로 옆)에서 5-6년 다니다가 교회가 해체 되어 고신의 삼일 교회를 찾아 지금까지 26-7년째 나고(아들 25세, 나기 전), 고신을 찾은 것은 성격이 원래 좀 고지식해서 통합측 설교를 들어보면 의례적이고 도덕적인 설교이고 핵심을 찌르는 것이 없어 싱거운데 고신측으로 가면 좀 비판적이고 격렬한 설교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찾아 나선 것. 고신이라는 이름은 무심한 편이었으나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 있어 말씀을 찾아 삼일 교회를 출석한 것.

- 총공회
신풍에서 교회 다닐 때는 백 영희 목사님을 몰랐으나 순천에 나와서 삼일 교회를 다니면서는 이단이라는 이름을 들었으나, 현재 삼일 교회 목사님은 한 번 믿었으면 천국은 꼭 가게 되고 믿다가 변색이 되어 안 믿는 생활을 할지라도 구원은 얻으나 천국의 상 차이는 크다고 가르치며, 삼일 교회가 임 진웅 목사님 오신 뒤에 장로님과 목사님이 맞지 않아서 분열이 되었으며 서로 합하면 좋겠는데 그 것은 어려운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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