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함, 탄식, 그리나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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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함, 탄식, 그리나 순종

2015.03.21 " 0 1 2022.06.21 16:51

(건축 법을 예로 들면)
예배당 건축을 위해 시청에 건축 허가를 받으며 주변에 함께 들어 갈 주택들의 허가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건축 허가는 건축할 땅이 도로법 상 '도로'에 반드시 2미터 이상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건축법과 도로법 상 '도로'의 의미는 '도로'라고 표시가 된 것은 물론 '실제 통행'하는 도로를 포함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어떤 면으로든지 건축법과 도로 규정에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법규정 중에 어느 부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실제 건축을 하고 이후 사용할 때 여러 면에서 좀 불편과 좀 편리한 차이는 있습니다. 특히 우리 예배당 주변에 있는 우리 교인들 거의 전부는 이 문제에 따라 집의 모양을 바꾸거나 평수에 불리합니다. 돈으로 말하자면 가정마다 몇백 만원씩 손해를 봐야 합니다.

현재 최미자 선생님 집으로부터 원룸들까지 6채의 집에 10가구가 사는 1029번지를 예로 들자면 여수시청은 이 일대 전부는 '도로'가 없기 때문에 소위 건축 허가가 되지 않는 '맹지'라고 규정하여 우리 교인들이 구입하기 전까지는 평당 16만원 정도였습니다. 원래 소유주는 산곡 주민입니다. 그 주민은 시청 때문에 자기 땅이 건축 불허의 몹쓸 땅으로만 알고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이 이 땅을 구입할 때 '주인 부르는 대로 주겠다'하였고 주인은 23만원을 요구했고 한 푼도 깎지 않고 다 주고 샀습니다. 그리고 시청과 항공청을 상대로 법을 가지고 따졌습니다. 그리고 현재 집이 지어졌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그렇게 집을 짓게 되면 그 땅을 판 주인은 그 땅 주변에 살며 늘 오고 갈 것인데 건축이 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시골 분이어서 평생 그 한이 계속 갑니다. 그래서 그 주인에게 건축이 될 땅인 줄 우리는 알기 때문에 정당하게 주고 사야 했고, 주인은 공무원들 때문에 건축 될 땅인 줄 모른 상태에서 최고의 값을 부른 것이 23만원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주인도 잘 팔았고 우리 교인들은 남에게 도움은 주지 못해도 착취하며 살고 남의 눈물 위에 집을 짓고 웃는 그런 일은 피했습니다. 그 과정에 여수시청 공무원들이 도로 없는 땅이라는 나쁜 짓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아주 희귀한가? 이런 경우가 너무 허다하여 일일이 말을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국가에서 신개발 택지를 만든 곳이 아니면 거의 다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강동교회 예배당도 이런 경우로 건축을 할 때 2층을 지으려 하다 1층으로 바꾸는 정도의 변경이 있었습니다. 내계도 공무원들이 제 멋대로 상상도를 그립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맞춰 주고 싶어도 맞춰 줄 돈도 없고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공무원들이 그렇게 할 때는 그 한 사람만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공무원 사회 전체가 그들의 직업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하는 소리 없는 불법 공감대와 협력 형태가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막가기)
그런데 시청은 죽어도 '실제 통행'하는 도로는 도로가 아니라고 허가를 거부합니다. 명백한 불법입니다. 나쁜 짓입니다. 결재 도장을 가졌고 공무원들이 전국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그들 편한 생활을 위해 범죄단체의 조폭처럼 그런 짓을 합니다. 건축의 '도로'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수합니다. 지금 하나만 예를 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도로'를 정식으로 만든다 해도 우리 나라의 도로법은 엄연히 '도로'라는 지목을 만들어 떼놓는 방법과 함께 '도로지정공고'라는 방법을 동시에 인정하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고등학교는 같고, 실업계든 인문계든 대학을 갈 때는 차별이 없어야 하는데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예전에 실업계나 사립에 진학하려면 마치 학교가 아닌 듯이 가지 말라고 지원 원서에 도장도 찍어 주지 않던 횡포와 같습니다.

공무원 중에 단순 발급이나 기계적 처리를 하는 분들은 그럴 일이 거의 없는데, 판단하고 결정하는 인허가 업무나 조사 감사 업무로 들어 가면 그 때부터는 혼자 아무리 정직하게 공정하게 하려 해도 그 부서나 공무원 사회의 전체 분위기 때문에 작정하고 불법 부당하게 일을 하면서 민원인들의 권리를 강탈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 안팎의 분위기)
공회 내 목사님들 중에서도 공무원들이 일단 안내하면 그 말은 무조건 정확하고 법이기 때문에 교회는 잘 따라야 한다는 분들이 계시고, 그런 분들은 제게 대해 극단적으로 비판하지만 저는 그런 목사님들에게 대해서는 세상을 저렇게 모르고도 목회를 나온 것이 불행이며, 세상을 저렇게 모르면 제가 좀 알려 줄 때 배워야 하는데 배우는 귀가 없어 불행이며, 수준 낮은 세상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교인들과 교회들의 그 복잡한 심리 세계와 죄악의 유혹을 이기도록 지도할 수 있을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공회는 목회를 나오기 전에 오랜 세월 육체 노동을 제대로 겪어서 인간의 고초를 통과하게 하고, 보따리 장사를 통해 인간의 심리 저변과 교인들이 어려울 때 살아야 하는 세상 사람들의 바닥을 먼저 체험하게 합니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지는 못해도 세상에게 휘둘리는 목회자가 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공무원들이 하는 짓을 보며 분노가 일어 납니다. 그러나 그들도 먹고 살려고 그 직업에 간 것이지 백성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들어 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먹고 살려면 그 직업에 맞추기 위해 그런 사람들이 됩니다. 앞에는 공직이나 뒤로는 직업이며, 앞에는 직업이나 뒤로는 자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이 타락 후 인간 세계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분노는 불법을 합법이라며 모든 주민들의 권리를 짓밟는 그 공무원을 상대할 것이 아니라 타락한 우리 인간 속의 자기 중심을 향해야 하고 만일 그 공무원 그 인간 자체를 그렇게 상대하면 그 사람이나 우리나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탄식이 나오는 것은 공무원이 직업상 그들 위해 남들의 권리를 무참하게 밟아 버리는 것인데 그런 공무원이 말을 한 마디 하면 그 말이 법인 줄 알고, 옳은 줄 알고, 당연한 줄 알고 알아서 그 밑에 기는 사람들입니다. 노예 근성이라고 합니다. 큰 사람, 높은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잘 난 사람 앞에 가면 무조건 굽히고 봅니다.

한 편, 우리는 이 노선의 사람들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이 모순이고 잘못이며 나를 착취하든 손해를 보이든 믿는 사람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뿐입니다. 현재 건축을 두고 전국 어디나 거의 예외 없이 벌어 지는 이런 일들을 두고 우리는 그 잘못을 헌법재판소까지 가서라도 꺾어서 그들을 고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실제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게 한다면 그 것은 세상이지 신앙은 아닙니다. 물론 세상에게 당하기만 하면 주님의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주님과 십자가를 잘못 알고 기독교 사회주의가 되고 무저항주의 이단입니다. 건축법에 관련 된 이런 나쁜 짓들을 보며 또 한 편 탄식이 되는 것은 우리 교회에 고위직 공무원들이 있었다면 다른 교회들처럼 또는 다른 사례처럼 그냥 슬쩍 넘어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세상 인물 없음이 탄식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세계의 인물은 세상 실력을 가진 인물만 인물이 아닙니다. 그런 인물은 신앙의 세계에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되는데 거의 독으로 작용합니다. 대통령이 우리 교회 교인이라 해도 우리는 그의 직업을 고려해서 인사나 예절은 차려도 그 이상의 세상적 신세를 지거나 교회 내의 다른 대우는 하지 않습니다.  탄식을 하면서 또 한 편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현실, 뻔히 불법인데 재산권을 짓밝히는 이 면을 두고 건축과 공무원들의 못되고 나쁜 짓만 상대하지 말고 그런 불법 처리의 배경 배후를 살피고 그 배경 배후의 더 넓은 배경과 배후를 살피며 자꾸 범위를 넓혀 가다 보면, 세상 범위에서만 봐도 분노나 탄식 대신에 여유를 갖고 웃음을 띠며 아량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원리 하나를 덧붙이면 우리는 속아 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좀 웃고 지내겠습니다.)
그 동안은 우리 교회나 교인들고 관계 된 이런 충돌이 있으면 저는 팔을 걷어 붙이고 공무원들의 버릇을 잡았습니다.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개펄에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밤예배를 뛰어 들어오는 교인들, 여수 서시장에서 추위에 떨며 배추 몇 포기를 팔고 온 교인들이 무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면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의협심과 사회정의감이 있다 하는데, 제가 그런 면은 좀 있지만 이 노선 목회자가 되면서 그런 인간 의협심이나 사회 정의감은 섬진강에 다 내 버리고 신풍에 왔습니다. 그냥 신앙의 눈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여러 면을 생각하여 제가 교인들을 도왔습니다. 우리 교인 대부분은 인생과 경제와 가족과 거의 전부를 교회에 바치고 살았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그들에게 강단에서 설교만 전하지 않았습니다. 교인의 생활이 제 생활이었고 또 교인의 생활은 말씀의 실행 장소였기 때문에 실험실의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학교사처럼 저는 교인들의 생활 속에 닥치는 다양한 세상 모습에서 이 노선 신앙인이 알고 대처하며 판단할 일을 소개했습니다. 수준에 따라 경우에 따라 초급부터 중급 고급까지 두루 안내했습니다. 실험 기구가 서툰 학생들에게는 손을 잡고 직접 화학 물질을 배합할 때 돕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때 마침 공회 내에서 목회자는 세상 누가 거짓말을 하고 강탈을 해도 모든 것을 다 내주는 무저항주의며 세상이 정의롭다고 인정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저를 비판하기 때문에 공회 내 분란도 좀 다독거리면서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더 넓은 면을 고려하여 이 번 건축 건에서는,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인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런 일들을 두고, 저로서는 상대방의 불법 부당을 알면서도 좀 속아 주려고 생각합니다. 제가 노력해서 권리를 다 찾아 준다 해도 그 권리를 손에 쥔 우리 교인들이 그 권리를 찾아 그 권리를 신앙에 유익되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안팎의 오해가 많고 또 제가 노력해서 권리를 찾아 준다 해도 그 결과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니 제 주력의 방향을 더 향상 시키고 싶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예배당 지적' 문제는 향후 현재 예배당의 건축물 전체를 법제화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소송을 해서 원상회복을 추구하고 싶고
그 외 문제들은 이제 제가 교인과 교회를 위해 적지 않은 세월을 노력했고 또 이미 실력을 길러 놓은 면들이 있으니 이제 그 분들에게 더 많이 맡기고 싶습니다. 최근 교회의 각종 결정을 위원회가 맡는 비중이 많아 지도록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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