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호칭을 '조사'로 변경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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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호칭을 '조사'로 변경할 듯

2015.02.21 " 0 2 2022.06.21 16:35

(목사 임직 과정)
제가 1982년에 교회 직원이 되고, 1989년에 조사 인허를 받고, 1991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특별 임직)
제 경력이 좀 특별하여 공회 일반 목사님들의 안수 과정과 달리 특별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선 연구소에서 1982년부터 설교록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공회의 목사 안수 과정인 '양성원'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연구부 경력은 양성원보다 훨씬 많고 강합니다. 또 1984년에서 1986년까지 미국의 카버난트 신학교에 파송을 받아 공부를 했는데 이 시기 때문에 연구소 일은 물론 양성원 과정을 밟지 못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제가 1986년부터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을 했고 1987년부터는 양성원의 교수로 일을 했습니다. 양성원에서 교수를 맡았고 서부교회와 공회의 중요한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양성원을 마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점을 보시고 백 목사님은 공회 목회자들이 목사가 되려면 무조건 통과해야 하는 양성원 과정과 성경 백독 읽기 과정을 면제하고 1989년에 바로 목사로 안수하려 했습니다. 서영준 목사님도 양성원 교수를 했고 중간반 부장을 맡는 등의 특별한 경우 때문에 양성원 졸업과 백독 과정 없이 안수를 받았는데 바로 그런 경우를 적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989년의 교학실장 이재순 목사님이 대구공회 성향이어서 제 안수를 반대하여 백 목사님 생전에는 받지 못했으나 1990년 부산공회가 새로 출발하면서 백 목사님이 안수하지 못한 유지를 받든다 하여 1991년에 저를 안수했고 당시 35세였습니다.,

(제 목표)
저는 성경 백독과 양성원 졸업을 하지 않으면 안수 받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백 목사님이 오십 넘어 안수를 받았으니 저는 70대에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 속에는 백 목사님 사후의 공회는 저와 함께 갈 목회자들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얼마 가지 않으면 분리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평생 안수를 받지 못하게 되며, 제가 안수를 받지 못하면 저를 따라 나설 분들에게 안수할 수가 없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노선이 이상하게 보이고 저는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인데 직책 이름 때문에 또 다른 논쟁에 빠져 시간을 소모할 것으로 보고, 부산공회에서 1991년에 안수를 하겠다 할 때 그대로 받았습니다.

(안수 받을 때 제 약속)
저는 우리 공회의 출발을 염두에 두고 안수를 받았으나 저 스스로 성경 백독할 때까지는 공회의 정식 목사라고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 박해수 조사님의 교역자 인준 과정에서 몇몇 목사님들이 '박해수 조사님이 훗날 떳떳할 수 있도록 지나 가는 소문조차 실제 조사를 해 보고, 또 공회의 절차에 흠이 없도록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받고 감사했고 환영했습니다. 후배를 사랑하고 좋게 만드는 배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들을 때 우리 공회의 제일 선임 목회자인 제가 공회의 목사 안수의 최소 조건인 성경 백독도 하지 않았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미 안수 받은 지 25년이 지났고 이제 60세를 바라 보는 나이인데 안수부터 받아 놓고 백독은 곧 채운다고 하다가 지금까지 미뤘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더 이상 저를 미룰 수 없고 '성경 백독을 할 때까지는 목사직을 사면하고 조사로 근무'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 우리 공회 다른 목사님들도 저를 따라 그렇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덧 우리 공회는 설교록 출간과 이 노선 파수에 전념하다가 이 노선의 제일 기본인 성경 백독을 채운 목회자가 1명도 없습니다.

이 번 주간에 교역자회에서 이 안을 제출하고 모두에게 동참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함께 하는 분이 없다면 저라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안이 워낙 중대하여 최종 결심은 하지 못했습니다.


외부: 멀리서 지켜 보기에 아슬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을 말세 소망으로 삼고 지켜봅니다. 힘을 잃지 마십시오. 너무 희생하려다 아주 가라앉을까 염려가 됩니다만.  [02/22-13:53]
교인: 목사님
보이는 면도 중요하지만 보이지않는면도더 중요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곳을향하여 바라보는 성도들을 위해 생각해주시고 감추아니하시고
드러나게 말씀 하셨으니 성경  백독 완독하시면 안되겠습니까
본인들은 드러내고 정작회개할것이 없을까요
그로인하여 어린신앙들이 시험에 들까 염려됨니다
  [02/22-16:28]

교인3: 그래요. 차라리 완독 못하셨던 분들이 계셨더라면
몇년 안에 완독하겠다고 서로 결의하는 것은 어떤가요?  [02/22-18:14]
여반 : 우리 목사님은 정말 파격적이십니다, 누가 이런 것을 생각해 낼수 있는지요. 잠시 '조사' 호칭을 사용하는 것 뿐이지 이미 알려진 목사님이시니 호칭이 그렇다고 목사님이 아니신 것은 아니니 이 얼마나 여유있고 당당한 발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목사님의 이런 면이 자랑스럽습니다. 부족을 인정하여 모든이에게 본이 되고 거리낄 것이 없이 하려는 우리 목사님의 행보에 지지의 박수를 보냅니다. 100독 완독하실 수 있도록 건강을 위하여 기도 드리겠습니다.   [02/22-20:38]
3년차 : 일반적으로 목회자 인준 과정에서 구두 시험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때 제가 속한 교단 지방회의 경우,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서 성경 앞에서 목사안수를 받는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기엔 이제까지 이 질문 앞에서 최소한 고개를 들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대부분은 부끄러움의 눈물과 죄송함으로 통곡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부공3의 교역자들이 말씀을 연구하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자발적으로 우리의 미비점을 이제라도 고치자는 운동이 격발이 일어 났다면 더욱 은혜가 넘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과 성경 앞에서 무흠하고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끝도없는 흠집내기를 여러 교역자들께서 시작하신 것 같습니다.
뭔가 기회만 있으면 혹은 건수만 있으면 상대를 죽이겠다는 모습입니다.
확실한 명분이 없어 그리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기회를 엿보며 부공3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확하게 문제를 밝히는 것도 없고, 회개를 촉구하는 분명한 내용도 없이, 뒤에서 수군 수군하는 자들로만 보여질 수 있습니다.

저또한 언제 이 노선의 지도에 반기를 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최소한 지금까지 충성한 여러 교역자님들과 성도님들 정도의 충성의 세월과 열매가 맺어진 때에나 그럴 기회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려운 세월을 부공3으로 함께 해오신 여러 교역자분들께서 이제라도 마음의 노와 분을 내려놓으시고 좋은 모습으로 더욱 발전되게 이어져 가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02/22-23:08]
교인: 최집사님은 그 수고의 어려움과 땀을 잊고 무조건 뜯고보고,,
이집사님은 그 직업 때문인지,, 아끼려 하시고,, 저는 그 중간에서
불평할 때가 많습니다.. 불편하면 , 과감히 버리고,,부수고, 해야겠으나
목사님처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미래의 조심함을 가지고 싶습니다..
건축이 한창 시작될쯤인데.. 목사님의 그 깊이있는 뜻은 다 헤아릴수
없으나,, 예배 시간만 정시를 맞추시면,, 좋을듯 합니다.. 예전에 집회
마무리 하고 돌아올 때에,.. 조사님의 휴개소에서의 한표현이 생각납니다.  과거 ,서부교회 반사를 우연히 만났는데.. 누군지.. 알지못하면서
무턱대고,, 반말을 하는것에.. 조사님의 언짠음이 기억납니다...  [02/23-19:06]
사회:
1. 예배 정시
저녁에 일이 많으면 다음 날 새벽에는 아내의 습관 때문에 정시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이 점은 이해를 부탁합니다. 그 외 대예배의 정시 맞추기는 주로 예배당 실내의 시계나 제 주머니 속의 시계를 보고 맞추는데 이 시계들이 잘 맞지 않습니다.

부탁을 하겠습니다. 남반 앞 자리에는 찬송 인도자 용도의 아주 작은 종이 하나 있습니다. 정시가 되면 그 종을 제가 들을 정도로 작게 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바로 일어 나겠습니다. 정시의 10초 전에 쳐 주시면 정확할 듯합니다. 새벽에도 제가 일찍 나왔을 때는 그렇게 해 주십시오.

2. 건축 과정
6백여 평에 150여평의 건축을 하는 과정이면 우리는 시골의 옛날 5일 장터처럼 시끄러워야 합니다. 갖가지 우스운 일, 어려운 일, 맞지 않는 일들이 있겠으나 우리 구원의 현실의 축소판이라 생각하셔서 만사를 복 되게 은혜롭게 진행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3. 장 조사님
1989년 백 목사님 돌아 가시던 해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으니 요즘 장주안 학생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본부인 연구소 직원이었고 설교록 판매 등을 맡아 창구에 있었으니 그 때 23세 교인이 조사님을 봤다면 정영혁 형님이 장주안 동생을 보듯이 했을 것입니다. 지금 조례교회에는 조사님보다 연세 많은 교인들이 목회자로 모시는데 세월 지난 것도 모르고 옛날처럼 상대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조사님은 자기의 과거를 기억하며 오늘의 목회자가 어제의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저를 보면 '아이구, 사람 됐네.'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럴 때 '주님, 사람이 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이런 마음에는 평화와 감사뿐입니다.  [02/24-09:47]
교인4: 목사님이 조사님으로 몇년을 계시면 호칭 외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까?  [02/25-18:07]
사회:
안수와 축도에 관련 된 것이 제일 먼저 중단 됩니다. 안수라 하면 공회적으로는 목사 장로 임직이고, 교회서는 세례입니다. 또 축도가 중단 됩니다.

제가 원래 백독 하기 전까지는 이름만 목사라고 생각했지 목사 신분을 마음에 둔 적이 없어 축도를 몇 년에 한 번 할 정도였습니다. 안수는 상대방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만 피치 못하여 했습니다. 일단 백독 끝날 때까지는 우리 교회에 세례 성찬이 없어집니다.  [02/25-21:42]
교인5: 한시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 목사님으로 다시 변경할때의 기준은 어찌되는지 궁금합니다....또한 공회적으로도 일반적으로
알았던 분들이 달라진 것때문에 혼란스러울까 염려 됩니다....
중심은 좋으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실질적인 보이는 큰 잘못도 없는데.. 신앙 양심 때문이라면,, 다시 한번 고려 해 주시길 바람니다..
혹 납득이 갈 만한 사건이 있는지요,, 아니라 봅니다...
백독이라면,, 성경을 현 목사님 만큼 통달하신 분은 없다고 여겨 집니다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면,,, 목사님외 다른 분들에게 큰 짐이 될것 같습니다 . 그리하지 않을 지라도, 세례 성찬이 없어 진다는 것은
자라나는 신앙을 위해 서라도 좋지 못하다고 생각 됩니다..
그것은 싹을 자르는듯 합니다,, 깨끗을 더욱 지향해야 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동천이나 모덕으로 가야 하는 건가요,,,,,
목사님의 중심은 옳으나,,, 또한 집사라는 직책도 그렇고
할튼 2년이라는 시무투표가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시는 것이
좋지 못하리라 봅니다......  [02/27-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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