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반의 옷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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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반의 옷 차림

2014.02.02 0 3 2022.05.31 18:44

오늘 오후 예배에 나온 동영상에서 아이들의 옷차림이 겨울이어서 그런지 노출은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대신 몸에 들어 붙는 옷인데 우리 교회도 전반적으로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객관성 때문에 멀리 있는 분 중에서 우리 교회를 방문해 본들에게 물어 봤습니다. 교회나 연구소의 직원 출신 어머니들도 문제라는 지적을 들었습니다. 제가 요즘 여자분들과 대화할 때는 얼굴의 약간 옆을 봅니다. 어느 정도인지 제 눈에 보이면 대놓고 이야기를 하거나 공석에서 말하게 될 것 같아서 미리 조심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문제라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말하기가 훨씬 편합니다. 누구 한두 사람의 문제라면 옷 차림 문제를 말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데 모두가 그렇다면, 교회에 구역장 반사 직원 간부들 오래 믿은 분들이 모두 앞장 서서 옷부터 조심합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본이 될 것 같습니다.

들어 붙지 않는 옷은 없다는데 그 것은 말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사람의 체형은 천차만별이어서 좀 큰 옷을 사면 되고 또 수선하면 될 것입니다. 아이들도 옷 차림에서 부모가 교육적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말 버릇과 행동과 외부 생활을 지도하는 것은 더 어려울 듯합니다. 아미쉬처럼 아현교회처럼 입어도 입어야 할 터인데 우리는 그렇게 과격하지 않고 합리적이며 부드러운 사람들입니다. 다만 오늘 세상은 미쳐도 확실히 미쳤고, 돌아도 아주 돌았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조금 달라야 하겠습니다.

어려운 부탁 드렸습니다.

평소 패션 감도 없고, 옷 갖춰 입는 것도 싫어 하는 분들은 이 글에 댓글을 달지 말았으면 합니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자기 처신과 관리가 확실한 분들이 조금 도가 넘어서 생기는 문제니 이 문제는 사회자가 그 분들에게 요청하는 글입니다.

여반: 사회자님 감사 합니다. 한가지 표현을 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02/02-22:13]

사회: '여반' 글에서 지적한 '표현'을 고쳤습니다. 그 표현이 '여반'의 댓글에 남아 있는 것도 다른 분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여반'의 댓글에 인용한 것도 함께 고쳤습니다. 제가 조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02/03-03:38]

여반 학부모: 정장 조차도 딱 붙게 나오는 추세라 여반 학부모로써 자녀의 옷이 거슬려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저부터 조심하고 집에서 먼저 주의하도록 가르치겠습니다.  [02/03-09:21]
교인: 여반님 지적대로 몸을 판다, 술집 여자, 딸년 등 극단적인 표현들이 너무 많아서 사회자님이 의도하신 좋은 내용보다는 표현 자체에 너무 거부감이 들어 많이 불편했습니다. 설교시간에 표현을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02/03-11:58]
교인1: 사실 극단적인 표현이야말로 시급히 새겨두지 않으면 안되는 험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성이 여성을 보는 눈들은 남성이 보는 눈과는 아주 반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 하셔야 합니다. 한마디로 남성의 눈들은 늑대로 표현 한다면 여성분들은 설마 하며 웃겠지요. 또 남성들은 무슨 표현을 그렇게 거칠게 하느냐고 항의 하겠지요? 아닙니다. 정말 우는 사자처럼 표적을 기다리며 엿보는 눈들이 안밖으로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시면 지혜로울것입니다.  다들 그렇다는 것이 아니나 어디까지나 제2의 제3의 무서운 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평소 방어하고 예방하고 조심하자는 표현들을 지나치지 않는 말로 새겨 두시는 것이 현명하고 안전한 충고임을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02/03-19:28]
사회:

1. 공석 표현에 대한 '원칙' 문제
강단이나 공석의 표현을 두고 제가 가진 다음 원칙을 먼저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원칙을 동의하시면 이 원칙을 고려하면서 상기 표현에 대해 다시 의견을 주시고, 이 원칙을 동의하지 않는다면 원칙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먼저 의논해야 합니다.

2. '공석의 표현'에 대한 원칙
- 개인을 지목할 때
개인을 직접 지목해야 한다면 저로서는 최대한 부드럽게 최대한 그 사람의 개별 형편을 살펴 드렸습니다. 잘못이 있어도 잘못 봤을 것이라고 하며, 고의로 했을지라도 실수였을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 개인 지목은 최대한 피할 것
그런데 공석에서는 누구를 책망하는 것 자체를 저는 피합니다. 제가 공석에서 A를 지목하면 거의 대부분은 A가 아니라 B 때문입니다. A는 제 판단에 그런 상황을 넉넉히 이해한다고 기대한 경우입니다. 이유는, 공개 자리에서 제대로 한 번 지적을 받으면 목회자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분들은 평생 상대방에게 마음 문을 닫습니다. 좋게 하자고 지적을 하는 것인데 평생 마음 문을 닫게 될 수 있는 일은 저로서는 하지 않습니다.

- 개인을 실제 지목하는 경우
2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정도 지적은 그 사람이 분명히 이해할 정도라고 생각한 경우입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의 행동이 신앙 어린 다른 사람에게 돌이 킬 수 없는 피해를 줄 때입니다. 이 때는 저로서 달리 할 수 있는 길을 알지 못합니다.

- 표현의 강약
어느 개인이 아니라 시대 전체나 어느 운동이나 어느 흐름을 비판할 때는, 필요하면 강하게 표현합니다. 듣고 있는 우리 교인 누구를 지목할 때는 최대한 둘러 가거나 피하고 있지만 남을 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살필 때는 '객관적으로 바른 평가'를 그대로 해 버립니다. 남을 두고 대화할 때는 우리가 평정심을 가지고 제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반복적으로 설명해도 너무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게 들으면 알아 듣기에 필요한 만큼 비판하는 강도를 올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경상도 사람들은 게으르다. 양로원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많다.'는 표현은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의 일반론적 평가입니다. 이 표현을 해도 우리 교회 경상도 출신 교인들이나 이 시대 전체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하여 이 문제 때문에 구원에 손해가 너무 많다면 '게으른 사람은 굶어 죽어도 쌉니다.'라고 표현하게 됩니다.

3. 우리 사회의 '언어 표현'에 대한 입장
강한 표현이란 사람을 무디게 만들어 다음에는 더 강해야 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과거에는 자식에게 '지ㄹㅂㄱ한다'는 말을 모두 흔하게 했습니다. 그 때는 너무 심했습니다. 반대로 지금은 자식 사랑에 넘치고 자기 사랑에 넘쳐서 눈만 껌뻑해도 뺨을 맞은 듯이 억울해 합니다. 부드럽게 해서 알아 듣지 못하면 표현은 조금씩 높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선을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옳다고 생각해서 해 왔습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은 '곤란한데'라고 하면 어명처럼 받들고 조심하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말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여러 면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란 말에 실수가 많기 마련입니다. 일단 원칙을 먼저 살펴 주시고, 원칙이 확립 되면 그 원칙에 따라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 함께 살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인: 목회자의 표현은 정말이지 과하지 않다 보여집니다..다만 복되게 듣는
자세를 가져서 어떠한 면에서도 감사를 찾고 싶습니다..
경험컨데,, 그실상은 참혹합니다.. 장례절차로 눈물로 혹은 슬픔으로
위장하고 잊어 버리는데 익숙한 우리입니다..
단지, 여반의 옷차림 뿐아니라, 저희의 내면은 표현 할 수 없이 남을
향해 피해를 줌니다. 무감각입니다..그런면때문인지..
이도 저도 기도를 강조하는가 합니다..   [02/04-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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