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언' 게시판에서 분쟁이 있었습니다.
1364, 주인 잃은 물건? ('삭제' 건 조사 결과), 23 교인 2013/10/20 394
1363, 교회의 '대화법'을 배우는 기회입니다. 사회 2013/10/22 144
1362, 하나님 자리에 앉은 목사 문제 (목사 비판 글만 .. 2 실망 2013/10/25 180
1372, 모든분께 사죄 드립니다. 7 실망 2013/10/28 332
1371, 세번째로 짐을 벗어야 할 분(사과문) 1 교인 2013/10/29 67
2. 전체 대화 과정
교회에 아무 것이나 두고 다니지 말라는 '교인'의 부탁이 있었고
'교인'의 표현이 읽는 사람에게 지나 치다며 '실망'이 지적하셨고
'실망'의 지적한 글을 누군가 삭제를 하자
'실망'은 글 삭제는 게시판 관리자가 했고 그 가족이 적은 글을 도운 것이며 이는 평소처럼 목사가 배경이라 했고
'사회'가 살펴 본 바, 관리자가 아니라 '교인'이 자기 글을 삭제하는 방법을 알고 직접했다고 보고했으며
'실망'은 평소 사회자가 오래 된 교인과 교회 책임자와 유착 되어 교회는 희망 없게 되었음을 많은 글로 비판했고
'사회'는 목회자의 지도를 받는 입장을 벗어 난 글로 보고 저녁 예배 때 '실망'의 글을 전 교인에게 배부했으며
'실망'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공개 사과를 했고 수 차례 사과한 내용 중에 사회자가 볼 때 마무리 할 내용이었습니다.
3. 교회의 사건 처리 방법
- 지혜를 배우셨으면.
이 번 건도 문제지만 이 번 건을 통해 신앙의 근본 방향을 배우면 한 번은 실수를 해도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늘 하나의 사건은 그 사건을 보면서 동시에 신앙에 모든 면을 익혀서 걸음마를 배우고 달리기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 교회의 사건 처리 원칙
교회는 세상처럼 술을 먹고 그냥 덮거나 뒤로 거래를 해서 협상을 하거나 강한 쪽이 이겨 놓고 보는 일을 피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경찰처럼 수사를 해서 밝히거나 법원처럼 증거로만 판결하거나 필벌의 심판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건 처리는 구원 목적을 앞에 두고, 성경의 방법을 가지고, 모두가 배우고 자라고 유익의 길을 찾게 됩니다.
4. 관련 모든 교인들의 회개
- 첫 발언자 '교인'
1364번의 '교인'이 제일 먼저 제게 직접 자신을 밝히고 사과했습니다. 1371번을 통해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다른 글과 달리 이 번 글은 그 대화 내용 상 회개를 하려면 자기 실명과 회개의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인'이 최선으로 회개하려면 전체 교인에게 자기 실명과 회개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자에게 실명으로 사과했으니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그 때는 사회자가 아니라 전체 교인에게 자신이 직접 실명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 비판하신 '실망'
'실망'의 첫째 문제는 '표현'이었습니다. '교인'의 표현이 잘못 되었듯이 '실망' 역시 표현이 잘못 되었습니다.
'실망'의 둘째 문제는 '절차'였습니다. '교인'이 글을 마음대로 삭제한 것처럼 '실망'도 비판해 나가는 '절차'가 잘못 되었습니다.
'실망'의 세째 문제는 '위치'였습니다. 우리 교인이 아닌 위치에서 거론했습니다. 그 내용은 모두 할 만한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실망'은 공개적으로도 제게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했습니다. '실망'의 글이 예사롭지 않게 나온 것처럼 회개도 제대로 했으나 이 번 건을 두고 '실망'이 제대로 회개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했습니다. 이유는 모두가 홍 선생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홍 선생님이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본인이 홍 선생님이 아니라면 홍 선생님을 위해 실명을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필연적 회개인데, 여기서 제가 공개하기 어려운 사유로 저도 우리 전체도 또 홍 선생님도 '실망'의 글은 그냥 두고 가야 할 상황입니다. '실망'께서는 실명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를 제게 따로 설명했는데 저로서는 그 것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저로서 이 단계에서 멈춰야 하는 이유는 여기는 교회고, 우리는 신풍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공회의 사건 처리는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 참으로 많으나 마무리에도 굉장한 미학이 있습니다. 주님이 가자면 십자가에도 달려야 하지만 주님이 서면 우리도 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고 봤습니다.
이 정도로 회개하고 여러 사정을 설명했다면 이제는 만사를 모두 '실망'에게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 이제 남은 것은
저와 전체 교인의 몫입니다. 이 부분은 따로 '5번'에 설명합니다.
5. 교회적인 회개
- 게시판 서기의 실명 공개
오늘 아침에 교회 모든 게시판에 '서기'를 밝혔습니다. 이름을 밝히면 좋은 점도 있으나 불편한 점도 적지 않습니다. 세상은 철이 없고 제 정신이 아니어서 '밝히라'고 외치며 밝아 지면 좋은 줄 알지만 미쳐도 보통 미친 상태가 아닙니다. 말세 현상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명을 밝히는 것의 장단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 위험 때문에 극히 조심해 왔으나 현 상태로는 당분간 게시판 서기 이름을 적겠습니다. 8년이 넘도록 서기 이름 없이도 운영이 되었던 때로 돌아 가도 될 날을 소망하겠습니다. 이 번의 '실망' 때문에, 또 실망처럼 생각하고 주변에 말씀들을 하셨던 여러 사람들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교회에 뭔가 큰 것이 숨겨 져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잘못 된 교회와 세상과 바로 된 교회를 두고 한 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게시판 서기의 실명 공개는 목사 이름을 교회 달력에 걸어야 하는 논리로 갑니다. 교회를 목사에게 팔아 먹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만 잠깐 들춰 봤을 뿐입니다.
- 교회의 모든 책임자 선임
게시판 관리자만 엄하게 하고 나머지 교회 책임자들은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앞으로 교회의 일은 아무리 작은 것 하나까지도 모두 공개하고 엄하게 책임을 묻게 되면 이제 2 가지 현상이 나타 납니다. 책임 지고 나설 사람들이 주저 앉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유급으로 책임을 맡겨야 합니다. 이 것이 교회가 세상으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부족함이 많아도 무급으로 수고할 사람을 지금까지 세웠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사정 없는 비판을 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권리'와 '돈'을 보장해야 합니다. 교회가 원치 않는 분들을 강제로 세우고 그들의 봉사를 공짜로 먹고서야 그 것을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번에 비판한 분들이 무급으로 모두 책임자 자리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우리 교회의 월 1천 만 원 이상의 모든 수입은 거의 다 책임자들의 인건비로 지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지출한다면 목사 월급은 그냥 둘 수가 있을까요? 하나만 알고 둘을 생각하지 않으면 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해도, 당분간 교회 각 책임자들을 전체 교인 중에서 추천을 받아 임명하고 싶습니다. 기본 실력이 안 되면 제가 거부할 것이나 할 만한 분을 추천하면 최대한 새 인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곧 책임자가 필요한 각 분야를 적고, 최소한 실력이 되는 분들의 이름을 다 적고, 대상이 된 분들은 균등히 일을 맡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일한 분들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월급이 필요하면 교회는 지출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 돌려서 맡아 봐서 '실력'과 '월급'을 고려해서 교회가 가장 좋은 사람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이 당분간 교회 일을 맡을 새로운 책임자가 될 것이고, 그 분들이 사임을 할 때까지는 다시는 무분별한 비판을 삼가해야 합니다. 건설적 제안은 교회를 살리는 구원 운동이 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고 자기 이해 관계에 걸린다고 비판부터 하는 것은 파괴적 훼방자가 됩니다.
- 목회자 책임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6번'에서 적습니다.
6. 목회자의 책임
- 첫 글 '교인'에 대한 목회자 책임
첫 글을 적은 분은 평소 교회 충성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가끔 이 번 글처럼 그런 표현을 통해 '실망'의 글처럼 지적과 반대를 불렀습니다. '실망'의 글은 그 배경에 깔린 자세와 표현을 저는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그냥 잘 사용할 뿐입니다. 반대로 '교인'의 경우는 흠이 많아도 고쳐 가면서 사용해야 할 신앙 세계로 봅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세상의 유능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를 비판 받게 하는 우리는 천국 갈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고 우리는 우리를 더 낫게 고쳐야 합니다. 첫 글을 적은 '교인'의 글은 목사의 설교에도 그런 정도의 실수는 있고, 그런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를 비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칼에 끝장을 내야 할 잘못이 아니라 아이가 자라며 고쳐 가야 할 단점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첫 글에 대한 책임은 단번에 져야 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제 역량 문제로 봅니다.
- '실망'에 대한 책임
'실망'은 제게도 자신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알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예배당 안에 몇 사람과 신풍 밖에도 몇 사람이 해당 됩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설교를 통해 모두들 홍 선생님을 지목했다 하는데 제가 접하는 세계를 모두들 너무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홍 선생님을 배제하면 다른 분들이 너무 불안하게 될 수 있고, 홍 선생님에게도 '실망'의 글에 적은 성향은 평소 곳곳에 있었기 때문에 본인도 오해 받을까 당황했을 것이고 제가 언급하기 전에 그렇게 보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실망'의 글을 적을 분들이 교인들이 아는 사람들 외에도 있습니다. 이 노선은 마지막에 찍을 때는 정조준을 하지 않고 약간 옆을 대고 끝을 냅니다. 알 만큼 해 놓고 마지막 부분을 좀 흐리게 하고 끝을 내면 '실망' 본인도 자신을 제대로 고치는 데 도움이 되고 그의 앞 날은 더욱 발전을 하여 우리를 지도할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실망'을 정조준해서 해 치우고 나면 그가 바로 훗날 우리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레위나 유다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사람들끼리는 알 만큼,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각자에게 맡겨 두면 '자유성'과 '구원성'을 살릴 수 있고 우리는 정죄 심판자라는 위험한 자리를 피할 수 있습니다.
첫 글을 적은 '교인'도 어느 교회나 있을 수 있고 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그런 흠 많은 교인 중 하나이고
반론을 냈던 '실망'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너무 벗어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 우리 중 하나입니다.
이 번 일들에 대해 목회자 책임을 흐릴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질 수 없는 짐을 다 지고 초기에 엎드러 지는 것도 목회자의 과충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번 일을 통해 제가 확실하게 져야 할 짐은 따로 있습니다.
- 공연히 오해 받은 분에 대한 책임
제가 그 어떤 일을 단정해도 늘 최종의 '확정'과 '잠정'은 구별합니다. 제가 단정적으로 말해도 '확정'은 제가 직접 본 것이나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잠정'을 확정처럼 말합니다. 이 것은 교리와 성경 해석에서 나오는 자세이므로 일반 교인이 헤아리기는 좀 어려울 듯합니다. 제가 이 노선에 대한 '확정'은 백 목사님 돌아 가신 후에야 비로서 내릴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생존의 최종까지 제게는 '확정에 거의 이른 잠정'이었습니다.
이 번 일을 두고 제게 직접 질문하는 몇 사람에게 제가 '누구'를 찍었습니다. 듣는 이들은 확정으로 들었을 것이고 저는 습관처럼 이런 일은 '잠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25일 밤예배 설교 때 30대, 16년 전에 집을 얻었던 관계, 5년에서 8년 된 신풍 교인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되자 교인들은 홍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제게는 그런 분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제가 원래 숫자에는 좀 약합니다. 40세에서 몇 살 안팎인데 30대 후반으로 짐작을 했을 뿐입니다. '신풍에' 산다는 것은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멀리 있다 해도 신풍 삼거리에 산다는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5 년에서 8 년이라는 것도 우리 교회는 드나 든 교인들도 있고 또 그 햇수를 제가 잘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조건들을 열거하며 어떤 분은 다 해당 되고 어떤 분은 한 가지 정도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게는 이 번 건과 관련하여 4 - 5 명이 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생각한 분과 다를 수 있고, 심지어 제 입에서 누구 짓이라 해도 제 영안이 어두워 연혁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귀납적으로 말한 것이어서 영안의 단정이 아니라 경험의 추론입니다. 이 번 '실망'의 글에 남아 있는 중요한 지문 중에 하나가 '목회 실력'과 '주님 인정'인데 이 표현이 제 수준을 예리하게 바로 보고 정평한 것입니다.
이런 제 변명은 말 그대로 '변명'입니다. 저는 교회 목회자입니다. 그 것도 신풍교회 목회자입니다. 저는 수백 명의 교인들에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울 개인의 인생사를 결정한 목회자입니다. 결혼 여부와 상대 결정, 자녀의 출산과 진학과 전공 선택과 진로, 가족 전체의 이사와 직업과 생활 환경의 교체, 생명을 건 치료나 수술을 결정하는 문제까지, 또한 교회 결정과 이를 위해 생각하지 못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아 가는 일, 목회자로 출발하거나 포기를 시키는 일 등 요즘 어느 목회자나 지도자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중요한 일을 두고 수백 명 이상에게 저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제 위치에서 말 한 마디는 이 번의 '실망'의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농담처럼 말을 해도' 그 것이 웃고 넘어 갈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실망'이 실명을 밝히고 회개하는 것은 본인의 신앙으로도 감당하기 어렵고 주변의 어린 식구들 때문에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줄 알면서도 저는 오해 받는 몇 분들의 짐을 벗도록 실명이 나오기를 내심 기다렸고 한 편으로는 실명이 나오면 제 잠정과 내심 확정한 것을 살피며 제 영안의 시력을 보며 저를 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의 상황이나 여러 면을 볼 때 이제 이 문제는 여기서 그쳐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만하면 모두 수고했고 짐을 졌고 이제 해결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만 잘하면 됩니다.
여기서 '목회자'도 그렇게 하면 될 일인가?
저로 인해 오해 받았다고 모두들 생각하는 분, 그 분이 가진 고통과 이 번 일로 전체 교인이 겪은 어려움 중에 제가 질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짐을 질지 여러 면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직접 연결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택의 이영수 가정을 멀리 보내는 것으로 일부 짐을 지고 제가 또 다른 자숙을 하면 될까. 이영수 가정의 이사는 그냥 이사가 아닙니다. 해마다 벌써 3차례입니다. 그는 여러분들과 같은 교인일 뿐입니다. 현재 멀리 가지 않고 직장을 여수시 외로 옮기고 교회 이동 문제는 어떤 교인이라도 불편을 느끼면 그 때 옮기는 것이면 일부 짐이 될까? 이 가정은 제게는 불편한 아내를 바로 옆에서 항상 살피는 지팡이와 같고 휠체어와 같으니 보통 문제는 아닙니다.
여기에 무슨 짐을 또 하나 더 져야 할까. 제 가진 것이 없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우리 교인들이 흔히 하는 말로 직책을 내려 놓는 일은 직책을 맡긴 이를 발로 걷어 차는 행동이 되므로 평소 교인들께도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니 이 역시 어려운 일입니다. 타 교회라면 시무투표로 신임을 묻는 방법도 있으나 공회야 그런 말을 할 여지도 별로 없습니다.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일은 이 번 건이 직접 발화 된 25일 금요일부터 '실망'께서 사과하여 오해 받았다고 생각한 분들이 짐을 벗은 28일까지의 4일을 제 금식의 기간으로 삼아 오는 주일을 지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회개의 기회로 삼겠습니다. 현재로 제 건강을 고려하여 차라리 팔뚝만한 장작으로 제 종아리에 10대의 매를 힘껏 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는데 때려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20여 년 전에 저는 아내를 위해 그렇게 했는데 아마 현재 아내라면 그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을 듯도 합니다. 그 때 제가 든 매만큼 이 번에 때려 주면 그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고, 그보다 약하면 그 보충을 금식으로 하든지 어떻게 하든 제가 알아서 해 보겠습니다.
이런 일은 옆에서 말린다고 될 일은 아니고 그냥 제게 맡겨 진 제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맞아 주거나 금식한다 하여 제 것이 줄어 들 일도 아닙니다.
또 댓글을 통해 지지할 일도 아니고 오히려 댓글이 올라 온다면 쇼를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번 '실망'의 글에서 그런 표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번에 또 적으면 '실망'의 회개만 의심을 사게 됩니다. 전체 교인은 각 교인으로서 조심할 일만 조심하여 우리 모두가 이 번 일을 통해 주님 앞으로 한 발 다가가는 발전만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