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시판 '수정' 기능 삭제 2. 교회 책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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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판 '수정' 기능 삭제 2. 교회 책임자들

2013.10.28 " 0 31 2022.05.30 16:09

1. 교회 게시판에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없앴습니다.
- 글 '수정'을 포기합니다.
1362번 글의 직접 원인은 '댓글 수정'이었습니다. 이제 모든 글의 '수정'을 삭제했습니다. 남의 글을 함부로 삭제해 온 분과 이 문제로 교회를 함부로 비판한 '실망' 때문에 전체 교인이 은혜롭게 사용해야 할 '수정'이라는 보배를 우리 모두 버립니다. 수정 기능을 없애는 방법도 여러 가지며 한 주간은 시행착오를 거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 글 '수정'의 의미를 아십니까?
어느 교회든 게시판을 통해 교회의 행정과 의논을 보충할 수 있다면 그 유익이 큽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교인이라면 교회 게시판에 글을 적고 돌아 서면 아쉬움이 남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올린 글을 함부로 손을 대면 교회가 어지러워 지며, 수정 자체를 금지 시켜 놓으면 글을 올린 분의 '회개'를 금지하는 또 다른 모순이 있습니다.
잘 생각하고 글을 올리고, 실수나 부족을 느끼면 자기 글에 수정한 경위를 설명하고 수정하되, 토론으로 이어 질 때는 관리자 외에 수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게시판을 잘 이용하면 교회를 정말 교회답게 유지하는 데 게시판의 필요성은 더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 '수정'이 가능한 날을 소망합니다.
일단 신풍교인일 수 없는 분이 신풍교인 이름으로 이 곳을 밟고 다녔습니다. 이런 일을 막는 방법도 있고 누군지 밝히는 것도 쉽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분들의 좋은 의견도 함께 막혀 집니다. 일단 '수정' 기능이라는 보배를 당분간 포기합니다. 시간이 좀 가고 전체 글 쓰기의 수준이 정상화 되면 복구하겠습니다. '실망'과 같은 글이 다시 시도 되면 그 분이 죄를 더 짓지 않도록 밝히고 조처하겠습니다.
일단 이 번 일이 아니라 해도 우리 교회의 대화 수준은 '대화'를 모르고 '의논'을 모르는 상태이니 우리 전부 '수정' 기능을 없앤 상태에서 조금 불편해도 제대로 된 훈련을 거치면 좋겠습니다. 예상컨대 '수정' 기능의 복구는 아무리 빨라도 반 년 정도, 늦으면 몇 년이 걸리지 않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한 달 정도면 가능해야 할 터인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 관리자 외의 수정 기능
저는 컴퓨터 기술 쪽이 어둡습니다. 물어 가며 몇 가지 기능만 알고 있습니다. 글의 수정은 관리자만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 주변에 물어 봐도 다 그렇게 알고 계셨고 '실망'께서는 일반인도 수정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알면서 교회를 고의로 친 것인지 아니면 우리 정도로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실망'의 글을 기준으로 보면 관리자 외에 누구라도 삭제하고 수정할 수 있음을 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 글 쓴 사람의 '비번'이 댓글을 수정
이 번 일을 조사하는 과정에 첫 글을 적은 사람이 자기 글의 비번을 기억한다면 그 비번으로 자기 글은 물론 자기 글에 달린 댓글까지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있었습니다. 보통 글을 올릴 때 비번 표시가 있지만 지나 가는 형식 절차로 알고 아무 것이나 적지 훗날 수정을 생각하고 비번을 적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전부가 그만큼 순수하다는 말이고 우리 전부가 무지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망'의 욕설을 듣고 바로 살펴 보다가 알게 되었지만 게시판의 이런 기능을 바꾸지 않고 설명을 하면 우리 교회에 올려 진 수 많은 글들이 수정 될 수 있고 아이들까지 장난할 가능성이 있어, 일단 게시판에 '수정' 기능을 없앤 뒤에 이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2. 교회 책임자들
- 연구소를 운영하는 신풍교회 입장
우리 교회만 생각한다면 직원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백영희목회연구소'의 본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부임하던 1989년부터 신풍교회가 전혀 필요 없는 직원들이 생겼고 시골 교회로서는 아주 이상했고 저는 미안했으나 시간이 흘러 감에 따라 교회가 연구소와 직원들에게 많은 덕을 보게 되었습니다. 1989년의 첫 직원은 정혜은 이미영이었고, 1991년에는 오은아 오은정의 추가가 있었으며, 지금까지 여러 형태로 연구소의 직원은 참 많았습니다. 업무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월급을 주지 못하며 혹시 지급한다 해도 같은 조건의 외부 직장과 비교할 수 없었으니 모두는 봉사였습니다. 그런데 연구소 때문에 교회 내에 직원이 상주하거나 드나 들게 되면 교회는 마치 우리 교회 직원처럼 신세를 지게 됩니다. 우리 교회의 오늘은 연구소를 맡은 덕분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신풍교회 교인이 직원으로 수고하지 않았다면 연구소나 교회의 업무를 맡는 사람들에게 비판하는 일은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 교인은 사장이고 직원은 노동자인데 사장이 월급을 주지 않고 노동 여건을 최악으로 만든 상태에서 노동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라는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교인들은 직원들에게 부탁도 하고 협의도 하고 견실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직원들에 대한 무차별 비판
1989년에 직원 2 명이 월급이라 할 수 없는 용돈을 받고 일을 시작했고 저는 업무가 많아서 그 분들을 통해 교인들께 연락을 부탁하게 되자 당시 교인들은 젊은 사람들은 없고 모두 부모뻘이었는데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는 가이네들이 감히 어른에게...' 이런 말씀들을 했던 분들은 지금이라도 회개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회개의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전체 교회를 위해 수고를 해 본 분들이면 무료로 봉사하거나 용돈 좀 받고 사력을 다해 일을 하는 우리 교회 책임자의 입장을 모를 수가 없습니다.
박 집사님이 지금 전체 교인을 위해 수고하는 일은 온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교인이 작은 부탁을 했다가 바로 반응이 없으면 뒤로 돌아서 별별 말을 다합니다. 저는 박 집사님이 아이들을 길러 봤으니 그런 말은 철 없는 아이의 투정쯤으로 알고 지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일을 다 맡깁니다. 과거 장 선생님에게도 많은 일을 맡겼는데 되 돌아 오는 억울한 말이 너무 많으니까 그만 두었고, 홍 선생님은 신풍에 오기 전에 부산에서 복지부가 전국 수천 곳에 나누는 총 75억원 중에서 10분의 1이 되는 7억을 제가 부탁한 우리 교인들에게만 돌아 가도록 했는데 당시 홍 선생님은 군 생활 중에 생활비도 없어 하루 먹기가 어려웠으나 돌아 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비판이었습니다. 제 옆에서 수고하는 분들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가 많은 일을 무리하게 시키고 대우 대접은 없고 그대신 일을 잘 못한다고 닥달을 해서 저로부터 숨어 지내 듯 합니다.
제 심부름을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현재 교회 직원들의 업무 실력이나 개인 성향은 별도로 치고 그들의 고초나 어려움에 대해 우리 교회는 극찬의 말과 물질적 대우를 크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을 위해 온갖 헌신을 하는 이들에게 고졸 공부밖에 하지 않았냐며 핀잔을 준다면 그 사람은 우리 교회에 기저귀 찬 유아 수준일 것이고, 그들이 목사의 비호를 받아 교회에서 혜택을 본다는 생각을 해 보셨다면 앞에 거명한 장기웅 홍순화 박종규 세 분에게 직접 물어 보시며 교회 일을 하는 것이 어떤 십자가이며 어느 정도의 고난의 길인지 잘 설명할 것입니다.

- 저는 세 분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장기웅 홍순화 박종규 세 분은 제게 배우고 제 부탁 때문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부를 휘어 잡고 전국의 공무원을 혼 내면서 신풍 교인들이 당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이고 몸조차 가누지 못해서 둘은 물러 앉았고 현재도 박 집사님의 경우는 제가 건강 자체를 늘 걱정합니다. 그런데 세 분들은 그 과정에서 우리 교인들이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분들이 어떤 고통과 십자가를 지고 있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데도, 이런 분들이 교인으로 계신 우리 교회 안에서 현재 일반 교인들이 공사석에서 직원들이 마치 제게 비호나 받고 혜택을 누리는 듯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면 세 분이 도대체 어떤 자세와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북한은 지상낙원인 것처럼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북한에서 탈북하여 남한에 온 사람이 있다면 자기 주변에서 멋 모르고 엉뚱한 말을 하는 이들에게 그런 말이 다시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하는데, 세 분이 예전이나 지금 우리 전체 교인을 위해 수고한 자기 경험을 조금이라도 말을 해 왔다면 온 신풍 교인들이 직원들을 상대하면 고개 숙여 몸 둘 바를 몰라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나 직원들만 쥐어 박으면 직원이나 책임자들은 죄인처럼 되고 쥐어 박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무슨 민주화 인권의 수호신이나 되고 독재 정권의 피해자인 듯 이런 꼴입니다. 저는 직원들이나 제 주변에 심부름 하는 이들을 멋 모르고 쥐어 박는 이들을 그냥 기저귀 찰 유아로 상대하여 대충 달래고 말지만 상기 세 분은 과거부터 교회 직원이 아니라 같은 교인으로 다른 교인을 살펴 주신 분들이니 다른 교인들이 평소 교회 직원으로 있는 분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늘 교회 직원들을 향해 고마우며 전체 교인이 존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이 번에 '실망'의 글은 나오지도 못했 터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 분은 '실망'의 글을 적지 않았을지라도 마치 '실망'의 글을 직접 적은 듯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세 분이 서로 그 글은 내 글이라고 공개적으로 회개를 하며 나섰다면 초기부터 이런 십자가로 인해 '실망'을 실제 적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전체 교인 앞에 내 죄인데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선 것이라고 자기를 밝혀야 바른 순서입니다.

- 우리의 역량이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사고 난 아내의 보상금의 일부를 아내 위해 아껴 뒀다가 아내의 건강과 훗날을 위해 써야 하는데도 모두 연보를 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결혼이나 거취조차 교인들이 훗날 어느 정도로 돌변할지 미리 생각하여 그들이 감당할 없는 십자가를 지우게 됩니다. 백 목사님의 가정이 그렇게 부인과 7남매에게 십자가를 지웠으므로 그 값이 오늘 공회의 현재 모습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공회인들은 목사님은 존경하나 그 가족 중에 공회를 이렇게 만든 분들만 일방적으로 비판하나 그 분들을 그렇게 만든 배경에는 오늘 신풍 교인들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학벌이 낮거나 말버릇이 시골스럽거나 인간적인 결점이 있다고 대책 없이 시비하고 비판하고 '실망'의 글에서 나타 나는 그런 피해의식을 깔고 있다면 저는 사택 식구들을 다시 밀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 교인이 시골 교회에 20대 젊은 부부가 얼마나 필요하다고 느끼고 알아서 이해하고 잘 품는다면 불신자도 전도하려고 난리들인데 왜 교회 제일 안에 있는 가정을 밀어 내겠습니까? 이런 조처를 두고 저를 만류하는 분들은 많으나 제가 그렇게 조처할 필요가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회의 역량을 고려하는 분은 없습니다. 지금 사택 가정을 내 보내는 문제를 두고 펄펄 뛰며 제일 앞에 서서 막는 분이 1989년에 제 심부름으로 전화를 한 직원들에게 '입을 쥐어 박아야 한다...' '젊은 조사가 어린 것들에게 벌써부터 버릇을 잘못 들이고 있다...'고 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러니 그 분이나 그 분처럼 평소 생각하는 분들이 제 눈 앞에서 사택 식구를 내 보내지 말라고 충신이 목숨을 걸고 간언을 한다며 붙드는 모습을 두고 제가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냥 '고맙지만 훗날 교회를 위한 것이니 이해하시라'고 말할 뿐입니다.

신풍교회는 한 몸입니다. 우리는 한 몸이 아닌 것처럼 언행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한 몸으로 묶어 주셨습니다. 다리가 아프면 온 몸이 건강해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야 하는 법이지 그 다리를 타이어 집에 가서 교체해서라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것은 곤란합니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건강해도 더듬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가 복음을 위해 앞 서 헌신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며 감사하며 그들을 어떻게 잘 만들어 갈지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면 이제 교회 직원들을 앞으로는 유급으로 돌려 공채를 하는 경우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공무원 체제처럼 되어 끝장 납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평양이나 된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 교회가 평양이 될 수 있는 여건이나 가능성이 있습니까? 자유 투표제의 2년 시무평가가 있고, 이 게시판을 이렇게 자유로 비실명으로 적게 한 상태에서 그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직원들이나 각 책임자들이 원래 인간적 단점이 있는데 그런 수준 낮은 이들에게 교회를 맡겨 놓고 그들을 비판할 분들은 세상 일에 몰두하여 자기만 위해 살다가 아나운서가 세상을 비판하듯 수고하는 이들을 비판한다면 그 것은 처음부터 잘못입니다.

우리 교회는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의 약 절반이 봉사자며 각종 책임자며 우리 교회는 직원 생활을 거쳐 본 사람들이 열 명을 넘고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교회의 절반에 달합니다. 이런 교회 분위기에서 이 번의 '실망'이라는 글은 과거 직원을 했거나 제 심부름을 했던 분들의 조직적이거나 암묵적인 협력이나 양해가 없다면 나올 수가 없는 글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해치려고 제가 그런 의심까지 할 수 있도록 미끼를 던진 사람이 교묘하게 글을 적었다 해도 평소 교회 수고를 해 보신 분들이 주변에 자기 경험을 정상적으로 설명했다면 이런 시도는 허공에 주먹을 내 댄 것과 같습니다. 현재 제 마음은 두 번째로 생각합니다.

- '7일'이라는 레위기 13장의 법이 있습니다.
지금 대단히 혼란스런 글을 대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 글이 아니라 하고, 어떤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해 하고, 어떤 분들은 제게 적극적으로 설명을 하는데 저로서는 이런 일은 하도 많이 당해 봐서 일처럼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지켜 봅니다. 물론 제 속에 진심은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마음은 교인들에게 함부로 내 보일 수 없습니다. 직책이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7일이라는 하나님 정한 시간이 흘러 가면 모든 것은 환하게 드러 납니다.

지금은 그냥 '실망'의 글을 두고 저는 직원들을 다시 검토하여 교체나 업무 조정을 하거나 월급을 공무원처럼 지급해서 친절 공정 의무를 지우는 방법을 연구하겠으며, 전체 교인을 위해 수고해 본 분들이나 지금도 수고하는 이들은 우리 교회에 제 심부름을 하는 분들의 고난과 실상을 주변에 잘 설명해서 '실망'의 글이 도배칠을 해도 바람에 불려 가는 먼지처럼 되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했다면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목사는 마음껏 비판해도 목사의 부탁으로 전체 교인을 위해 무제한 수고하는 이들을 향해서 '실망'처럼 글을 적으면 패륜자가 됩니다. 신세를 졌으면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교회를 위해 잘 대화하되 꼭 안 되겠으면 제게 와서 직접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를 만나게 되면 이제 설명한 이런 내용을 듣게 되어 모두 고개를 숙이고 돌아 갔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분을 풀지 못해서 이 번 글을 적은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문제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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