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태풍
오랫만에 위협적이었습니다. 사전 발표도 모처럼 아주 위협적이었고 전남 모든 학교와 전국의 많은 학교가 휴교에 들어 갔습니다. 전쟁이나 홍수나 반란 사건에 비교하면 이런 어려움은 어려움도 아닙니다. 하루만 참으면 지나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일어 날지 모르고 또 다른 환란과 달리 창문과 주변 나무와 전기줄과 사방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우리의 인체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움츠려 듭니다. 말하자면 휴전선의 전쟁 이야기나 어느 도시가 다 침몰했다는 소식보다 태풍이 우리를 흔들면 체감적으로 환란적 느낌을 같게 합니다.
- 오늘 새벽
좋은 말씀을 은혜롭게 전하는데 오늘 출석 교인은 11(남4, 여7) 명이었습니다. 특별한 날이어서 그 이름을 한 번 기억하고 싶습니다.
안응규(40대) 유영호 윤영삼(30대) 장주안(10대)
민정자 손양례(80대) 김현숙 정현자 김명선(50대) 오은정 최미자(40대)
분교 출석 8 명은 예배당 출석 명단에 들어 가야 하고 또 거리 때문에 그렇지 예배당 주변이면 출석했을 실시간이 2 명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용사를 많이 잡고 싶으면 21 명으로 잡아도 되고, 조금 박하게 잡고 싶으면 제 눈에 보인 숫자로 줄여 11 명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멀리 계신 분들은 환경도 어렵고 또 파악도 어려워서 이런 경우에 한 번씩 포함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해해 주십시오.
- 제가 부족하여
우리 교회는 현재 유치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회 원래 모습은 논산 훈련소나 특전사로 운영하는데, 제가 그 중에서도 제일 독하다는 말을 많이 듣기 때문에 강함을 가진 이들의 단점인 유연과 포용과 배려와 적용과 양육 면을 보충하려고 원래 제 체질을 아주 바꾸어 반대 모습으로 교회를 대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거친 모습이 엉성하게 드러 날 때가 많을 것이나 전체 방향은 기본적으로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 목표와 제 깊은 속은 아직 흔들려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거쳐 가는 과정에서 좀 나은 방법을 고민할 뿐입니다. 강한 지도자가 배후에서 모든 것을 책임 지고 마음껏 앞으로 전진하게 하던 시기가 지나 가고 이제 한 몸 겨우 부지하는 제가 모두에게 예전처럼 행군하자 하면 '나만 남았나이다.' 이렇게 될까 봐서 제가 만사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과 자세를 공회에서는 따뜻한 목회라 하지 않고 인본주의라 합니다. 인본주의를 좀 아는 편이어서 인본주의를 조심하면서 인본주의 부근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안에 있는 한 분이라도 신본 쪽에 옮겨 놓고 싶을 뿐입니다.
- 부산의 폭설
1952년 12월 9일, 부산에는 사상 최대 폭설이 내렸습니다. 무릎이 빠지는 눈이 쌓였습니다. 백 목사님은 그 해 여름인 7월에 조사님으로 부임했고 목회 5 개 월째였습니다. 부산의 폭설은 여수와 같아서 내려 봤자 바로 녹습니다. 하필 새벽예배에 눈이 마주쳤습니다. 백 목사님은 눈 많기로 이름 있는 덕유산의 무조 리조트 고개 너머 개명 골짝에서 평생 사신 분입니다. 무릎 높이의 눈은 눈으로 치지도 않습니다. 덕유산곡에서 믿던 공회 교인들의 기본이 그렇고 그 지역 사람들은 겨울 삭풍에 폭설은 평소 생활에 익은 편입니다.
백 목사님은 1952년 7월에 서부교회로 오던 그 순간까지 우리가 집회 하는 장소의 예배당 뒷 산 너머 위천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우리 집회 장소는 빨치산이 득실거리는 곳이었고 밤이면 산 너머 위천을 습격하여 방화 약탈 살인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6.25 전사에 나오는 지리산과 덕유산 주변의 빨치산 기록의 한 가운데 지역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매일 밤 철야하고 모든 예배 시간을 다 지키던 곳에서 바로 부산으로 이동한 백 목사님은 덕유산 빨치산 소굴에서 순교를 소망하며 싸우던 최전선의 전투병이었고 부산은 6.25 전쟁 기간에 총 소리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하고 미군이 본부로 삼은 안전 지역이었습니다.
무릎에 쌓인 눈 때문에 새벽예배를 나오지 못한 교인들을 보며 그 당시의 서부교회 교인들은 목사님 눈에 신자들이 아니었고 요즘 건강을 위해 명상 요가를 시키는 수련회 회원들 정도로 보였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목사님은 앞으로 20세기 최고의 순교자 교회로 만들 각오를 더욱 다졌고 목사님 돌아 가실 때쯤의 서부교회는 실제 순교할 준비가 된 교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공회 분쟁에 그들이 대량 유실 된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지식과 판단의 실패였습니다.
- 신풍의 태풍
우리 나라의 태풍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 기록을 남긴 것은 1959년 사라호입니다. 추석 날 들이 닥쳐서 여수에서 부산까지를 다 쓸어 버렸습니다. 우리 나라를 향해 오는 태풍은 그 경로가 거의 2 가지입니다. 여수에 상륙한 후 남해안을 따라 부산 울산 쪽으로 나가는 경우와 이 번처럼 제주도에서 목포 앞을 지나 인천을 통과하면서 북한 내륙을 가로 지르는 형태입니다. 우리 나라 전체와 여수를 기준으로 보면 여수 상륙의 태풍이 항상 피해를 많이 입힙니다. 사라호와 매미 태풍이 대표적 경우입니다. 목포 쪽으로 가는 경우는 해일 등으로 침수 피해 등이 많고 그렇게 기록적인 자연재해를 발생 시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번에도 전국이 떨도록 예보를 하는 이유는 수도권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방송국과 이 나라 머리가 모두 수도권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해를 통과하게 되면 수심이 얕고 양 쪽에 육지가 있어 태풍은 그렇게 큰 위력을 갖지 못하고 급격하게 위축 됩니다. 반면에 여수로 상륙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태풍은 태평양을 배경으로 삼은 남해안을 휩쓸고 가기 때문에 그 피해가 실로 막급합니다. 이 경로로 오는 태풍들은 신풍의 지붕들을 날려 버리고 거리의 간판들이 내동댕이 쳐 집니다. 가정 단위로 보면 창문을 타고 들어 오는 비를 막으려고 온 가족이 수건을 총동원하여 이 틈과 저 틈을 막아야 하며 한 쪽이 파손 되면 온 집안은 비바람에 엉망이 됩니다. 최근에 창틀 전부를 새로 붙인 공사를 하기 전까지는 사택도 6 명 식구가 밤새도록 정전의 흑암 가운데서 모든 수건을 동원하여 창문을 하나씩 맡고 참호전의 최후 방어전을 치르곤했습니다. 이 때는 예배 시간이 되어도 저 한 사람이나 예배당에 나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서해안으로 상륙하고 올라 가는 태풍은 신풍으로서는 뉴스에서 태풍이고 실제로는 비바람이 좀 심한 정도에서 그칩니다. 겨울 강풍에 전깃줄 울리는 소리와 이 번 태풍의 전깃줄 울리는 소리를 비교해 보시면 이 번처럼 위협적인 태풍이 신풍의 일반 겨울 하늘의 삭풍에 미치지 못합니다.
- 천하가 떠들석 할 때
믿는 사람은 사탄이 심리전을 벌이고 지금 협박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아니면 예배 시간이라 해도 교회로 가지 않고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무모하게 예배당으로 가는 것을 자제해야 하는지, 일단 신중히 살펴 보고 먼저 객관적인 판단을 하신 다음에 최종 결정을 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배 출석 자체를 목숨 걸고 해야 할 정도로 안내하지는 않습니다. 저부터 건강에 무리하면서까지 강단에 서지 않습니다. 강단을 가볍게 봐서가 아니라 제게 주신 앞 길까지 고려한 후의 선택입니다. 만일 목숨 걸고 서야 할 상황이 생기면 바로 그렇게 할 것이나 몸이 불편한 문제를 가지고는 앞 날에 대한 충성과 당장의 임무 중에 어느 것이 주님의 뜻인지를 살필 사안으로 생각합니다.
교인들로서 여수로 바로 치고 오는 태풍이 가정의 창문과 살림살이를 전부 엉망으로 만들 상황이 생기게 된다 해도 예배 시간은 무조건 교회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안식일에 소나 양이 구덩이에 빠진 경우에는 구출하듯이 일단 현장 조처를 해야 할 상황인지를 두고, 살림살이가 중요해서가 아니고 예배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둘 중에 어느 것이 내게는 주님의 뜻인지를 살필 사안입니다. 일반적으로 피해가 너무 클 상황이면 주택에서 비상 상황을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소 잘 준비했고 또 그 정도의 손실이면 별 것이 없다고 할 만큼 판단이 선다면 버려 두고 오셔도 됩니다.
오늘 태풍은 일기예보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읽고 있어야 했습니다. 수도권이 자기들 기준으로 호들갑을 떤 경우였지 여수 우리 기준으로 보면 여수 쪽에 상륙하는 중소형 태풍보다 덜한 경우입니다. 여수 쪽의 일기예보는 풍속이 초속 20 - 25 또는 30 - 35 정도로 예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미리 단속하면 별 문제가 없고 비만 강하지 않으면 새벽예배를 나올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다만 노약자의 경우는 다릅니다. 실시간이 있으므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일반 교인 기준에서는 오늘 새벽은 예배 참석에 별 무리가 없는 경우였습니다. 강수량이 오전을 모두 걸쳐 50 미리 정도로 예보 되면 평소 오는 비 정도입니다.
- 신앙의 자세
여러 면을 생각해서 주신 은혜의 분량에 따라 결정하시되, 최소한 우리는 전투 신앙만 신앙이며, 교회는 전투 교회임을 알고는 있어야 합니다. 음주 운전의 위험도 모르고 기회가 되면 편히 먹고 마음껏 취하여 운전한다고 다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니고 사고의 순간과 그 폐해를 알고 조심한다 해서 사고를 다 피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로서는 알고 조심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맡기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다음에는 태풍 때문에 실시간으로 집에서 예배를 드릴지라도 우리는 망망대해를 목숨 걸고 운항하는 선장이며 적진 속을 헤집고 들어 가서 적의 대장을 잡아 와야 하는 용사들이라는 사실만은 알되, 무조건 싸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여건을 주지 않아서 집에서 예배를 드리나 언젠가 어떤 비바람에도 목숨 걸고 가야 할 때도 있음을 잊지는 마시면 합니다.
태풍을 통해 몇 가지 생각해 봤습니다. 새벽: 오늘은 마치 주사기에 독감백신을 맞는듯 뜨끔했습니다.
내속 새사람이 보다 시급하고,성전은..//
제한적 성령님의 시험임을 어느때보다 강하게 느끼고 대풍보다
보이는 옛사람이 더 무서운 적임을 실감합니다.
흉악한 이리가 닥쳐질 현실을 주실터인데,그날을 기쁨으로
진리로,준비하심이 승리 하길 간절히 우리가 원합니다. [08/28-19:19] 교인: 귀한 말씀 감사하며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08/30-10:52]